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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도끼 - CRAZY

title: [회원구입불가]LE_Magazine2017.11.30 16:15추천수 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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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Good Vibration
02. 엄지손가락 2 (Feat. 김효은)
03. Crazy
04. I Don't Know (Feat. Hash Swan)
05. Vibe (Outro)
06. Crazy (Remix) (Feat. CHANGMO)


정말 순진하게 테크닉적인 랩만 놓고 보면 “Beverly 1lls (Remix)”는 2016년 최고의 랩 트랙이었다. 정확하게는 도끼(Dok2)의 벌스가 그렇다. 전형적인 트랩 비트에 늘 해왔던 자수성가를 전시하는 가사를 얹었지만, 그 대신 마구 출렁대는 플로우의 랩을 무차별적으로 뱉으며 적어도 입으로 말을 내뱉어 리듬을 두들기는 기술에 있어서는 유아독존임을 자처하는 것만 같았다. 그는 지난 10년간 수많은 앨범과 미디어 노출로 끊임없이 소비되었지만, 여전히 랩스킬만으로도 장르팬들의 감흥을 다시 돋우는 최고의 기술자다. 도끼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모든 음악을 비롯한 커리어를 떠받치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 베이스다. 중요한 건 해를 더할수록 그 베이스를 바탕으로 충분한 기획력을 더해가며 꾸준히 들어볼 법하고, 듣기 좋은 앨범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올해는 정규 앨범은 없었으나, 자신의 스물여덟 번째 생일을 자축하는 [Reborn]과 PPL의 향기가 폴폴 풍기는 [CRAZY]라는, 어떻게 보면 컨셉츄얼한 앨범들로 이를 더욱 여실히 증명했다.
 
두 앨범 중 [Reborn]이 규모나 구성에서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정규 앨범의 형태에 가깝다면, [CRAZY]는 보다 더 외전 혹은 보너스로 인식될 만한 다소 짤막한 앨범이다. 하지만 작품이 가진 힘은 결코 약소하지 않다. 도끼는 마치 랩과 성공, 그리고 랩스타라는 키워드를 또 꺼내고 싶다면 짧은 앨범을 만들 때도 이쯤은 해야 한다는 듯 진짜 웰메이드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당연하게도 그 중심에는 그가 뮤지션으로서 가진 영리함이 있다. 이는 프로듀서를 선택하고, 어떤 스타일의 곡을 쓰고, 각 곡에 누군가를 게스트로 초대하고, 러닝 타임과 같은 전체 텐션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염두에 두며 작품을 구성하는 등 음악을 만들 때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일반적인 사항들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니까, 랩을 잘하는 건 기본이고 음악을 잘하려는 노력이 역력해 보인다는 것이다.


♬ 도끼 - CRAZY


우선, 앞서 나열한 요소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Good Vibes Only”, “Bad Vibes Lonely”와 같은 곡을 통해 이미 그 합이 입증된 도끼와 그레이(Gray)의 콤비네이션이다. 전곡을 프로듀싱한 그레이는 다작 때문인지 최근 들어 트랙들이 다소 관성적으로 느껴지고, 그로 인해 약간의 기복이 있어 보였던 것과 달리 다양한 스타일을 정갈하고 말끔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을 십분 살린다. 묵직한 베이스가 섹시하게 이끌고 나가는 “Good Vibration”은 웨스트코스트의 향기마저 살짝 느껴지고,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의 “엄지손가락”을 차용한 “엄지손가락 2”는 “Hot Summer”의 재림마냥 투박하지 않은 세련된 붐뱁이 무엇인지 다시금 들려준다. 외에도 정석적인 트랩(“CRAZY”), 미니멀한 악기 구성(“I Don’t Know”)까지, 100의 만족도를 제공하진 않아도 최소 80이 기본값인 준수한 비트들이 연달아 이어진다. 음악만 들어서는 둘의 작업 방식이 어떠했고, 평소와 어떤 점이 달랐는지를 알 순 없다. 다만, 1 MC 1 프로듀서 포맷에 가깝게 전담하는 식으로 진행했다는 건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좀 더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이 동반되었을 수도 있고, 그로써 앨범의 전반적인 방향을 원활하게 공유했을 수도 있다. 그 예상에 어느 정도 확신을 하게 하는 건 도끼의 목소리가 얹어지며 완성된 트랙들이 모두 각 트랙이 가진 지향점에 걸맞은 진한 풍미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과장 조금 보태면 프로덕션 너머로 호스트의 디렉팅이 보인달까.

디렉팅 측면에서 빛나는 또 다른 부분으로는 피처링 게스트 배치와 짧은 러닝 타임이 있다. [CRAZY]에는 앰비션 뮤직(Ambition Musik)의 멤버들만이 참여했는데, 늘상 그렇듯 단체곡 형식으로 세 래퍼와 한꺼번에 함께하진 않는다. 한 곡에 한 명씩, 아주 계획적인 모양새로 도끼가 혼자 소화하는 트랙과 콜라보 트랙들이 교차해서 배치되어 있다. 더 자세히 뜯어보면, 일단 “엄지손가락 2”에는 지나온 삶에 대한 짧은 반추를 늘어놓는 만큼 저기압(?)의 보이스 톤으로 진한 페이소스를 드러낼 수 있는 김효은이 함께한다. 마찬가지로 통통 튀는 리듬 파트가 주된 “I Don’t Know”는 비트 위를 능구렁이같이 헤집고 다니는 유려한 플로우의 해쉬 스완(Hash Swan)에게, “Crazy”는 특유의 맛깔 나는 발음과 억양을 통한 타이트한 랩이 주무기인 창모(Changmo)에게 제격이다. 너무나 예상되는 조합이지만, 도끼는 이를 비틀거나 피해가지 않고 스트레이트하게 접근해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지금 당장 제일 잘할 수 있는 걸 최상의 상태로 뽑아낸다. 그리고는 앨범이 주는 감흥이 괜하게 식기 전에 여섯 트랙으로 얄짤없이 마무리 짓는다. 짧은 호흡의 작품 흐름을 잘 관장한 셈이며, 이는 지난 10여 년간 끊임없이 성장해 온 도끼가 이제는 이 정도 프로젝트쯤이야 핏하게 매듭 짓을 수 있는 절도 있는 뮤지션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올해, 어느새 두 장의 앨범으로 허슬하고 스웩한 도끼가 쌓은 난공불락의 철옹성은 다시 한번 단단해진 데다, 그 속의 내공은 더욱 무르익은 듯하다.


글 | 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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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짧고 즐겁게 소비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퀄리티 있는
    힙합 음악을 만드는 래퍼가 그렇게 많진 않은 것 같아요
  • 12.5 02:59
    리본을 기점으로 리얼루다가 다시 태어난것마냥
    앨범이나 곡들이 기대를 가지게 함
    이전인 도끼가 앨범낸다 곡 낸다 하면 다작충 또 똑같고 재미없는 곡
    이런 느낌이었는데
    리본 느무나도 신선했고 이번 앨범도 개좋음
    이젠 도끼 곡이 기대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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