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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바스코(Vasco)

Melo2013.06.06 02:56추천수 12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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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alon] 바스코 (Vasco)

고집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음악 스타일만을 추구하며 음악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현시대에 음악엔 회사와의 관계, 시장의 동향, 예상 판매량 등등의 음악 외적인 부분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언더그라운드,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들은 기성 아티스트보다는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는 편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신경이 안쓰일 수가 있을까. 그런 점에서 바스코(Vasco)는 커리어를 쌓아가면 쌓아갈수록 그런 음악 외적인 부분을 이전보다 덜 고려해가면서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게릴라 뮤직 시리즈는 그에 대한 증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가슴팍에 존경하는 안중근 의사의 신념을 박아 넣고 음악 하는 남자, 바스코를 만나고 왔다.


LE: 안녕하세요. 우선 힙합엘이 회원 분들께 인사 부탁 드릴게요.

V: 안녕하세요, 힙합엘이 회원 여러분! 힙합엘이 사이트를 되게 자주 가요. 거의 매일매일 수 십 번씩 로그인을 하는 것 같은데... 아마 많은 분들이 힙합엘이를 찾는 이유는 외국힙합 가사를 번역해서 뮤직비디오에 자막을 씌워 소개해줘서 그런 것 같아요. 또, (사람들이 외국힙합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채널인 것 같아 그런 것 같은데, 저는 한국힙합도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반갑습니다.





LE: 최근에 새 앨범을 발매하셨는데요. 쇼케이스도 하셨고요. 또 어떤 특별한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7월에 제이 키드먼(Jay Kidman)이라는 프로듀서 친구랑 저랑 둘이 프로젝트 앨범 하나를 준비하고 있는 게 있어요. 그래서 7월이면 그 EP 앨범을 만나볼 수 있으실 것 같아요. 그 외에는 11월에 EP를 준비하고 있는 게 또 있고, 공연은 그저께 해서 큰 공연을 또 따로 잡아놓은 건 아직은 없어요.





LE: 5월 18일에는 대구에서 공연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하시게 된 건가요?

아는 대구 친구가 연락해서 동성로에서 축제를 하는데 와줄 수 있느냐고 해서 한번 갔다 왔어요. 되게 좋았어요. 길거리니까 사람들도 아주 많고, 은근히 저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되게 재미있게 즐기다 왔어요.





LE: 이번 쇼케이스 이전에 있었던 공연들을 보면, 합캐스트(Hopcast) 공연 외에는 바스코 님의 이름을 라인업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연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 특별히 이런 옴니버스 공연에 참여하지 않으신 이유가 있나요?

4집 앨범을 준비하면서 일이 많았잖아요? 결혼도 있었고, 출산도 있었고, 마지막으로 이혼까지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작업을 할 시간이 많이 없었어요. 앨범을 빨리 내고 싶은 욕구가 강했는데, 앨범을 너무 못 내다 보니 공연 들어오는 것들을 제가 '나중에 할게요. 다음에 할게요. 앨범 나오면 할게요.’하면서 많이 뺐어요. 제가 튕겼어요. (웃음)
 




LE: 오퍼는 많이 들어왔지만 하지 않으셨던 거군요.

네. 제가 튕겼어요. 하고 싶은 상황도 아니었고, ‘앨범 작업이나 빨리 하자!’라는 식이었어요.





LE: 앞으로는 많이 기대해봐도 될까요?

네. 이제는 도와달라면 많이 도와줘야죠. (웃음)





LE: 이번 앨범의 쇼케이스는 어땠나요? 반응이라든가...

와~ 쇼케이스... 13년간 했던 공연 중 제일 좋았어요. 대신 손님은 제일 적었어요. 관객 분들은 가장 적었는데, 진짜 너무 좋았어요. 오셨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초대할 걸 그랬네요. 진짜 너무 좋았어요. 관객 분들이 제 노래를 다 따라 불러 주시고, 새로 나온 앨범 훅까지 다 따라 불러 주시고... 어떤 노래는 랩 더블링도 쳐주시고요. 그렇게 많은 친구들은 아니었어요. 예매가 100장 되었고, 현매가 20장 되었으니까 120분 정도? 그렇지만 이번만큼 관객들과 정말 소통하면서 할 수 있었던 공연은 없었던 것 같아요. 관객 분들 한 분 한 분 표정을 다 볼 수 있었고, 제가 여기서 어떻게 랩을 했을 때, 어떤 가사를 어떻게 뱉었을 때 각각 관객들의 표정들이 다 보이더라고요. 정말 최고였어요. 진짜 최고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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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간단하게 근황 이야기를 들어보았고요. 이제 본격적으로 들어가 볼게요. 우선 가장 기본적인 질문인데, 이름에 대한 뜻은 바스코 다가마에서 따온 걸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한 번 더 얘기해주신다면?

맞아요. 바스코 다가마에서 따왔는데, 바스코 다가마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바스코라는 이름을 만들고 난 이후였어요. 단순히 어감 때문에 선택한 이름이었어요. 원래는 셰도우(Shadow)라는 이름이었어요. 정말 오그라드는 이름이었는데, (웃음) 이름이 별로고 바꾸고 싶다고 느끼고 있을 때, 아는 스페인 친구가 여러 가지 스페인 단어들을 알려줬었어요.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바스코'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잠깐, 바스코 되게 좋은 것 같아. 무슨 뜻이야?' 라고 물어보니까 그냥 이름이랬어요. 그래서 'OK. 바스코 좋은 것 같아. 입에 잘 달라붙어.'하며 썼죠. 그러고 나서 나중에 바스코 다가마라는 분의 이름을 따온 걸로 하게 되었고, 알고 보니까 바스코라는 지명도 있고, 바스코라는 팀도 있더라고요. 





LE: 스페인어로 뜻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가요?

뜻이 있는 건 아니에요. 철수, 민수처럼 이름... 폴, 스미스 이런 것처럼 이름이에요.
 




LE: 바스코 님을 보면 바스코 다가마, 안중근 등등 위인들에 대한 존경을 자주 표시하시는 것 같아요. 이번 앨범에도 세종대왕, 신사임당을 가사에 쓰기도 하셨고요. 그런 분들이 어떤 인생의 롤모델이라서 언급을 하시는 건가요?

신사임당과 세종대왕은 지폐에 들어간 위인들이기 때문에 (돈에 대한) 메타포로 사용된 것이고요. 다른 위인 분들을 많이 쓴 이유는 제가 실화를 다룬 책이나 영화들을 좋아해요. 체 게바라 평전도 너무 좋아하고, 안중근 위인전도 두 가지 버전을 읽었어요. 그런 것들에서 느껴지는, 실화이기 때문에 더 와 닿는 무게감? 같은 게 저를 더 움직이더라고요. 그런 곳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LE: 독립운동 앨범에도 참여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것도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시는 마음에서 하신 건가요?

네. 그렇죠.





LE: 작업을 하실 때 그 당시 에피소드라든가, 특별히 느낀 점 같은 게 있었나요?

딱 한 가지였어요. "선봉대가"라는 노래를 그전까지 알진 못했어요. 나중에 알게 되었고, "선봉대가"라는 노래를 리메이크하며 느낀 것은 딱 하나에요. '내가 이 음악을 잘 완성해서 젊은 친구들도 이 노래를 듣고 (애국심을) 느낄 수 있게 해줘야겠다.'라는 것? 요즘 젊은 친구 중에는 애국심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많지 않아요. 저도 처음부터 애국심을 가지고 태어난 건 아니긴 해요. 한국사람으로서의 애국심이라는 걸 예전 분들만큼 느끼면서 자란 세대는 아닌데, 커가면서 점점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지켜가며 살아야겠다는 느낌? 그런 것들을 조금이나마 다른 친구들도 느꼈으면 좋겠다 해서 만든 노래들이 꽤 있죠. "노장"이나 "뿌리"가 그래요. 의무나 책임감 같은 게 있어요.





LE: 이 부분과 관련된 질문일 수도 있겠는데, 가사에 영어를 쓰시긴 하지만 길게 사용하시진 않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 기인한 건가요?

그건 애국심은 아니지만, 표현력에 있어서 영어를 많이 써 봤자 전달력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 같고요. 사실 제가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그거거든요, 바스코는 허세라고... (웃음) 그런 이야기를 되게 많이 듣거든요. 그래서 웬만하면 그런 걸 스스로 피하려고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괜히 영어 많이 썼다가 허세라고 할까 봐... 눈치 보는? (웃음)





LE: 그래도 영어를 꽤 잘하시는 것 같은데, 따로 영어를 배우셨던 건가요?

어릴 때 미국에서 살다 왔어요. 세 살부터 일곱 살 때 까지... 그래서 처음 배웠던 언어가 영어였고, 고등학교 3년간도 살다 왔고요.





LE: 어릴 때 미국에서 살다 오신 게 바스코 님이 힙합에 관심을 갖고 랩을 시작하게 된 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미국에서의 생활이 힙합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진 않았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을 것 같은데...
 
96년에 미국에 갔을 때 MTV에서 지겹게 나오던 음악이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 투팍(2Pac)이었어요. 그때 힙합 음악이 저에게 팝송처럼 익숙한 음악이 되었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힙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던 거 같아요. 한인들도 전체적인 간지가 힙합이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힙합에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LE: 바스코 님 하면 남성적이고 거친 이미지가 있는데요. 혹 어릴 때, 학창시절 때부터 그런 남성적이고 거친 면모가 있었나요?
 
초,중학생일 때는 키가 굉장히 작았어요. 안경 쓰고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학생이었어요. 여자도 없고... 소극적이고 움츠려 있었는데 미국에 가서 키가 엄청 컸었어요. 그리고 나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때 자신감도 많이 생기고 힘도 많이 생겼어요. 작은 아이들을 괴롭히던 아이들을 생각하며 제가 커서 그런 문제아들을 괴롭히고 다녔어요. 하지만 정말 약자에게는 잘해줬던 것 같아요. 강자들 중에서 꼴 보기 싫은 친구들을 엄청 싫어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부터 좀 거칠어진 것 같아요. 근데 제가 그렇게 거친가요? 뭐 소문이 그렇게 나긴 했지만… 제 입으로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전 그렇게 악마 같은 인간은 아니에요.





LE: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 문신도 있고, 안중근 의사에 대한 존경심이 엄청나신 것 같아요. 문신은 언제 하신 건가요?

2004년이요. 제 기억으로는 2004년이에요. 제일 처음 했던 문신이기도 해요.





LE: "선봉대가"를 만들 때와 비슷한 시기네요?

그런 것 같아요. 아마 "선봉대가"를 만들고 바로 했을 거예요.





LE: 역시 기본적인 질문이에요. 음악은 어떤 계기로, 언제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별게 없어요. 대학교 재학 중이었는데, 처음 대학교에 입학해서 다른 애들은 동아리를 들어갔었는데 저는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았었어요. 그러다 ‘대학교 4년 동안 학교 다니는 것 외에, 무엇을 하면 좋을까?’하고 생각하던 찰나에, 어느 날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고 있는데... (웃음) 옛날 PJ 핍즈(PJ Peepz) 멤버들 중 한 명이 들어와서는, 오줌을 누면서 '형, 우리 언더그라운드에서 힙합 팀을 하나 만들 건데, 같이 할래?'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전까지 저는 힙합을 할 생각도 없었고 음악을 할 생각도 없었는데, 그냥 오줌 누면서 '그래, 재미있겠다.'하면서 시작하게 됐어요.





LE: 랩이나 음악을 전혀 하지 않는 상태였는데 친구가 할 의향을 물어봤던 건가요?

네. 그래서 그때 라임이라는 것도 친구를 통해 접했고, 비트 쓰는 것도 그때 접했고, 녹음하는 것도 그때 시작했었어요.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그전부터 힙합 음악을 많이 듣기는 했었죠. 힙합 음악을 많이 들으며 자라긴 했지만, 그걸 연구하거나 파면서 이걸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렇게 스무 살 때 시작했었어요.





LE: 그럼 PJ 핍즈는 세종대의 힙합 동아리와 관련이 있는 팀인 건가요?

학교 동아리 소속은 아니었어요. 세종대 두 명, 건국대 두 명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던 팀이었어요.





LE: 마스터플랜(Master Plan) 무대에 PJ 핍즈(PJ Peepz)로 올랐던 게 데뷔인 걸로 알고 있어요. 

거기까지 가는 데에 굉장히 오래 걸렸었어요. 마스터플랜 들어가기 전까지의 기간이 2년 정도 되죠.





LE: PJ 핍즈 멤버들끼리는 서로 원래 알고 계셨던 사이었나요?

제가 미국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했잖아요? 옛날에는 외국에서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들어오면 다니는 한국어 학원이 있었어요. 거기서 아까 얘기했던 화장실에서 같이 오줌 누던 친구를 만났고, 어떻게 하다 같은 대학교에서 만나게 된 거죠.





LE: PJ 핍즈 멤버들 중에 스퀘어(Square) 멤버 두 분이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네. 그 삐쩍 마른 친구가 오줌 같이 누던 친구예요. (웃음)





LE: 당시에 멤버가 네 명이었는데, 무대에 오를 때는 세 명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원래는 네 명이었는데, 리더가 중간에 빠졌어요. 그리고 제가 리더가 되면서 세 명으로 다시 시작했었어요.





LE: 지금은 바스코 씨 말고는 활동하고 계신 분이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워낙 오래 전이긴 하지만, 혹시 연락하고 지내지는 않으시나요?

아니요. 연락 안 해요. 서로 안 좋은 건 아니고요. 시간이 너무 지났고 각자 삶이 너무 바쁘니깐요. 나머지는 음악을 안 하다 보니 이쪽 바닥에서는 보이지도 않고...





LE: PJ 핍즈의 다른 멤버 분들은 이쪽 씬에 전혀 걸쳐 계시지 않나 보네요.

네.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어요. 몸이 멀어지니까 마음도 멀어진 것 같아요.





LE: 마스터플랜 무대에는 어떻게 서게 되셨던 건가요?

제일 처음에는 신촌에 라이브 클럽이라는 곳들이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언더그라운드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지금처럼 작업을 해서 (작업물을 인터넷에) 올리는 게 아니라 곡 작업을 하고 작업한 곡을 들고 클럽을 찾아가는 식이었어요. 그리곤 거기서 라이브로 오디션을 보죠. 클럽 사장님과 활동하던 뮤지션들이 이러고 지켜봐요. (팔짱을 끼고 뒤로 몸을 젖히며) '얼마나 하나 보자~' (웃음) 그렇게 지켜보다가 공연을 좀 한다 싶으면 'OK. 다음 주 금요일부터 매주 금요일, 토요일 나와서 공연해!'라고 이야기해요. 그럼 매주 금요일, 토요일에 거기서 공연을 하는 거예요. 저희가 준비한 세 곡을... 그때 당시엔 공연 보러 온 관객들이 두 분, 세 분... 어쩔 땐 한두 분... 공연진들이 더 많았어요. 그런 공연을 1년 간 계속했었는데, 그때 언더그라운드에서 가장 큰 시장은 마스터플랜이었거든요. 거기에 들어가면 힙합계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거였죠. 그래서 오디션을 봤어요. 근데 떨어졌어요. 그리고 나서 준비를 다시 하기로 마음먹고 다시 봤는데 또 떨어진 거예요. 너무 슬펐죠. 그래서 클럽을 슬러거라는 곳으로 옮겼어요. 거기서는 오디션을 보고 붙어서 슬러거에서 1년 정도 더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2년 정도 했을 때, 리더가 나가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리더를 하게 되면서부터 다시 팀을 세 명으로 재정비하고 음악 스타일을 재즈힙합으로 완전히 바꿨어요. 그 후에 재즈힙합으로 다시 마스터플랜의 문을 두들겼고, 그때부터 마스터플랜에 들어가게 됐죠.





LE: 그 당시 심사를 보기 위해 앉아 계셨던 뮤지션들 중에 지금 활동하시는 분들도 계셨었나요?

그럼요. MC 메타(MC Meta) 형도 계셨고, 주석 형도 계셨고... 많이 계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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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후 마스터플랜에서 한동안 활동하셨어요. 마스터플랜이 본인에게 준 것이 있다면? 또 본인에게 마스터플랜은 어떤 곳인가요?

마스터플랜은... 저에겐 들어가면 바로 보증수표였어요. 들어가기만 해도 '쟤네는 최고로 잘하는 애들이야.'라고 인정받는 곳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들어가고 싶었던 곳이었어요. 회사로 치면 삼성이었어요. 들어가고 싶었어요. 최고. 솔직히 처음 들어가서 느꼈던 건, 제가 외톨이라는 거였어요. 왜냐하면, 서로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어요. 딱히 선을 그어놓은 것은 아니지만... 우선 에잇더블투 크루(822 Crew)가 있었어요. 주석 형과 일스킬즈(Ill Skillz)가 있던... 그리고 MC 메타 형과 MC 성천 형, 원썬(One Sun) 형 쪽 크루가 있었고요. 그리고 돕보이즈(Dope Boyz) 형들 패거리, 그리고 MC 스나이퍼(MC Sniper) 형이랑 스컬(Skull) 형 쪽이 또 있었고... 뭔가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어요. 그렇게 봤을 때, 저희는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처지였어요. 말도 잘 안 걸어 주고... 말을 안 걸어 줬다는 게 나쁜 의미는 아니고요. 저희도 별로 다가가지는 않았었거든요. (웃음) 저희도 딱히 다가가지 않고 형들도 저희에게 다가오지 않았고... 좀 그런 처지였어요. 별로 누구 아래에 기고 싶지 않고, 어디에 끼어서 예쁨 받으며 올라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어요. 우리가 잘하면 팬들이 소리 질러 줄 거고, 팬들이 인정해주면 알아서 올라갈 거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마스터플랜에 대한 기억이 좋은 편이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그렇게 좋은 기억은 아니에요. 굉장히 냉정한 바닥이었어요.





LE: 그래도 곧 마스터플랜의 주축 뮤지션들 중 하나가 되셨다고 볼 수 있겠는데, 실력을 입증하여 그렇게 된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실력... 지금 보기엔 별로지만 2002년도에서 2004년도 당시에는 그 정도 실력이었으면… (웃음) 그렇게 올라갔던 것 같아요. 제가 자신 있는 점은 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여기까지 올라왔어요. 지금도 그래요. DJ DOC 형들 아래에 있고 형들 도움을 많이 받긴 했지만, 도움을 받아서 여기까지 올라온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은 있어요. 제가 뭐 최고 넘버원 MC는 아니지만 당당해요. 여기까지 온 건 다 제 힘이에요.





LE: 그렇게 올라가신 게 PJ 핍즈로서 올라가신 건가요, 아니면 솔로로서 올라가시게 된 건가요?

PJ 핍즈로 어느 정도 올라갔던 것 같아요. 처음에 어느 정도 그렇게 올라갔다가, 제가 솔로 선언을 하고 홀로 나와 하면서부터 조금 더 저라는 캐릭터를 알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당시엔 저 같은 캐릭터가 없었거든요. 지금으로 치자면 제이통(J-Tong)이 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막 욕하고 ‘으르르~’하고 샤우트 랩하는 그런 느낌의 MC는 마스터플랜에 없었거든요. 일스킬즈가 그랬어요? 아니에요. 주석 형이 그랬어요? 아니에요. 그나마 있었던 비슷한 스타일을 꼽자면 데프콘(Defconn) 형이었는데, 데프콘 형보다는 제가 조금 더 로우한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LE: 그럼 PJ 핍즈 활동 당시부터 솔로 아티스트를 염두에 두고 있으셨던 건가요?

네. 팀이 재즈힙합이라고 했잖아요? 재즈힙합도 좋았는데...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음악을 너무 하고 싶어서... 팀원들이랑 조금 안 맞더라고요. '이런 거 하자!'라고 하면 '아~ 싫어~ 너무 쎄~ 재미없어~'라고 해서 결국 솔로를... (웃음)





LE: 솔로 선언을 하시고 나서 피처링을 꽤 많이 하셨어요. 주석 님 2집에도 그렇고... 그런 것들이 다 바스코 님을 다른 뮤지션 분들이 먼저 찾아서 성사가 됐던 건가요?

네. 그렇죠.





LE: 마스터플랜 앨범에서 바스코 님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곡 중 하나가 “첫 느낌”이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도 바스코 님의 대표곡 중 하나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바스코라는 뮤지션의 인지도에 도움을 많이 줬을 것 같아요.

네. 바스코라는 뮤지션과 제 얼굴은 몰라도 "첫 느낌"이라는 곡은 아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LE: "첫 느낌"이라는 곡이 좀 부드러운 편이잖아요?

네. 좀 게이 같죠. (웃음) 저랑 안 어울리죠.





LE: 본인은 "첫 느낌"이란 트랙을 좋아하시나요?

제가 선택한 노래가 아니었어요. 어느 날 스튜디오에 딱 갔더니, '자, 이 노래에 너랑 볼트릭스(Boltrix a.k.a B.L.X)가 해!'해서 시작된 노래였어요. 그래서 제가 '아…' 했는데, '해. 인마 해! 이 노래는 “첫 느낌”이야.'라고 해서 그냥 했었어요. 진짜 이렇게 사랑을 받을 거라곤 기대도 안 했었어요. 그냥 어쩌다 작업했던 노래였어요.





LE: 그 벌스가 진짜 좋았어요. '플레이 버, 튼!을 누르면...' (전원 웃음) 그리고 나서 이후에 첫 앨범인 [The Genesis]를 낼 때엔 마스터플랜에서 많은 기대가 있었나요?

기대는 많이 안 했던 것 같아요. 기대가 많았다면 투자도 많이 하고 이리저리 움직였을 것 같은데, 그런 게 별로 없었어요. 그리고 1집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해 보자면, 1집에 실린 음악들이 제가 원한대로 나온 음악이 아니에요. 전부 다 필터링을 한 번씩 거쳤었어요. 그래서 저 스스로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앨범 중 하나에요.





LE: 지금 기획사들이 하는 것으로 따지면 A&R과 같은 식이었나요?

네. 맞아요. 딱 A&R이었어요. 다 변형이 됐어요. 드럼 질감도 많이 변형시켰고, 베이스라인도 추가시키면서 화려해지고, 보컬도 막 JYP에서 다 끌어와서 제가 원하던 게 아닌 화음이 추가되고... 좀 많이 변형된 앨범이에요.





LE: 말씀하셨던 대로 JYP와 어떤 제휴 같은 게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건 제가 알기에는 박진영 씨와 저희 사장님이 서로 호흡이 맞아 진행된 부분이지, 그 아래 있는 뮤지션들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한 것이었어요. 저는 마스터플랜 사장님이 시킨 대로 한 거고, 임정희 씨나 노을도 JYP에서 하라고 하니까 한 거고...





LE: 그럼 녹음이나 작업 과정에서도 따로 만나지 않고 하신 건가요?

작업은 만나서 했었어요. 임정희 씨도 저희 스튜디오에 와서 했었고, 노을도 와서 작업했었어요.




LE: 그럼 그때 서로 조금이라도 친해지셨었나요?

친하긴 친해요. 이때 작업하고 나서 친해지긴 했죠. 작업하고 나서 공연도 같이 서고 하면서 친해지긴 했었어요. 나이대도 비슷하고 하니까... 그때 당시엔 그런 게 있었거든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하면 지금보다도 더 '음악 하는 친구들'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2000년대 초반에는 그게 더 강했었어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저를 더 많이 좋아해 줬던 기억이 있어요.





LE: 데뷔 초반과 첫 앨범 때, 특히 "얼굴 없는 싸나이"같은 곡들을 보면 독설이 많이 섞이고, 강한 이미지, 악동, 이런 걸로 주목을 받았어요. 요즘에 와서 그때 당시를 돌이켜보면 느낌이 어떤가요?

이때 "얼굴 없는 싸나이" 때문에 제 이미지가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었어요. 혹시 제 1집 때 활동할 때부터의 제 이미지나 분위기에 대해 아세요? 마스터플랜 내에서의 바스코라는 뮤지션의 느낌? 분위기? 되게 좋았어요. 분위기가... (웃음) 바닥에서부터 막 치고 올라가던 때였어요. 신예로서 막 치고 나갔었어요. 근데 이 앨범을 내고 "얼굴 없는 싸나이"라는 노래 하나 때문에 제 이미지가 팍 떨어졌었어요. 디씨트라이브(DCTribe)라는 사이트에서 저를 엄청 씹기 시작하는 거예요. 제가 그때 'Fuck DC, Fuck 힙합플레이야(hiphopplaya), Fuck MP힙합닷컴(MPhiphop.com)...'라고 하면서 메이저 힙합사이트 세 개를 다 씹었었어요. 근데 아이큐가 두 자리 이상이라면, 아니 한 자리 이상이라면 다 알 수 있잖아요. 그 사이트 주인장을 욕한 게 아니라, 그 사이트를 욕한 게 아니라, 그 사이트에서 말도 안 되는 글을 쓰는 말도 안 되는 허접한 애들을 씹은 건데, 디씨트라이브의 대표라는 사람이 '우리 사이트를 씹어?' 이러면서 병신이라며 저를 씹기 시작하더라고요. 디씨트라이브라는 사이트를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 친구들은 광신도예요. 그 리더가 딱 글을 쓰면요. ‘맞어. 맞어. 맞어. 맞어.’라고 하는 사이트에요. 지금도 여전히 그렇고 거기는 그냥 광신도들이에요. 그렇게 그 친구가 저를 그렇게 씹어대니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생겼고, 그런 친구들이 나가서 저를 더 씹고 다니게 된 거죠. 그러면서 제 이미지가 완전 바닥을 찍는, 터닝포인트가 되었죠. 이 앨범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얼굴 없는 싸나이" 때문에...





LE: 그 전에 주석님 2집에 피처링하셨을 때는 MP힙합닷컴을 디스하셨었잖아요? 그때는 여파가 없었나요?

네. 그때는 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얼굴 없는 사나이"가 많이 사랑 받았던 곡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저를 많이 힘들게 했던 곡이기도 해요. 오묘한 곡이에요.





LE: 지금도 디씨트라이브를 싫어하시나요?

네. 지금도 되게 싫어해요. 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이젠 아예 로그인도 안 해요. 오히려 주위에서 가끔씩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그런 글들을 얘기해 줘서 듣는 경우는 있지만요. 디씨트라이브 아이디도 없어요. 없앴어요. 거기는 아예 들어가지를 않아요.


스핏파이어.jpg


LE: 이후의 얘기를 해 보자면, 스핏 파이어(Spit Fire) 프로젝트를 통해 클럽 사운드를 본격적으로 한 적도 있으셨어요. 당시 스핏 파이어로의 활동은 그 당시 본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이었던 건가요?

아니요. 제 취향이 반영되어 한 선택은 아니었어요. 단순히 DJ 스케쥴 원(DJ Schedule 1) 형이랑 되게 친했었고…





LE: 프랙탈(Fraktal) 님...

프랙탈 형이랑은 안 친했어요. (웃음) 잘 모르는 사이였고... DJ 스케쥴 원 형이랑 많이 친해서 형이 디제잉을 하실 때 제가 호스트 MC로 많이 따라다녔어요. 돈을 떠나서 너무 재미있었어요. 제가 호스트 MC를 함으로써 DJ와 호흡을 맞춰서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내고, 분위기를 가라앉힐 수도 있다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한 1년, 2년 정도는 DJ 스케쥴 원 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도 '형 하고 싶어요!'하면서 맨날 쫓아다녔었어요. 그러면서 클럽튠 노래들이 재미있어지긴 했지만 별로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DJ 스케쥴 원 형이 저에게 제의를 했었어요. 이런 유닛을 만들어서 한번 해보자고. 프랙탈 형이라고 이런 노래를 잘 쓰는 형이 있다고 해서 셋이 한번 해보기로 했었어요.





LE: 여전히 클럽튠 스타일의 음악들을 즐겨 들으시나요? 

그렇게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싫어하는 것도 아니에요. 호스트 MC를 하면서 어느 정도 즐거움을 느끼고는 있었고... 그렇게 ‘하고 싶다, 앨범을 내고 싶다’라는 생각은 없었는데 그냥 했던 거예요.





LE: 그 당시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요즘은 일렉트로닉 음악을 트는 클럽이 많지만 그 당시엔 힙합 클럽이 많았잖아요.

많았죠. 황금기였죠.





LE: 그런 부분도 프로젝트 그룹과 앨범을 만드는 데에 영향이 있었나요?

네. 그렇죠. 아시겠지만 그 당시 나왔던 힙합앨범들 중 클럽튠을 모아 낸 건 스핏 파이어가 처음이었어요. 진보적인 앨범이기는 했었어요. 그 당시에는....





LE: 한국힙합에서 클럽튠 앨범을 논하자면, 예전에 이름이 릴조(Lil’ Joe)였던 조 브라운(Joe Brown) 님의 앨범보다도 스핏 파이어가 먼저였던 것 같아요.

오히려 타이틀 곡이, 저희가 먼저 내고 그 후에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어떤 흑인 아티스트가 싱글을 냈는데 저희 거랑 되게 똑같았었어요. 그 정도로 형들이 되게 빨랐던 것 같아요.





LE: 지금도 DJ 스케줄 원 님과 연락하고 지내시나요?

네. 방금 전에도 전화통화하고 왔어요. 뭐 물어보셔서...





LE: 서로 작업이나 음악 작업도 하시나요?

가끔 했었어요. 한 3년 전에도 한 곡 했던 것 같고... 그 정도만... 그렇게 자주 활발하게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에요.





LE: 이후의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있었던 사건 중 하나가 일명 ‘힙합 가수 대마초 사건’인데요. 하지만 오랜 기간 잠복을 하는 일반적인 방법보다는 그 다음 해에 바로 활동을 하는 방법을 선택하면서 그 사건을 더 빨리 씻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당시엔 어떤 생각이었나요?

네. 뭐, 부끄럽다고 생각을 그렇게 크게 안 했거든요. 물론 잘못을 했지만, 잘못에 대한 죗값은 제가 치렀거든요. 치렀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생각해도 제가 뭐 어마어마한 죄를 지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죄를 짓기는 지었지만... 그 죄에 대한 것은 국가에서 주는 벌을 받았고, 그 대가를 치렀고, 벌을 받았으니까 뭐... 근데 그랬다고 팬들이 나에게 손가락질을 할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실제로 손가락질도 하지 않았고요.





LE: 그 당시 '힙합 가수 신모 씨, 손모 씨'라고 하며 뉴스에 보도가 됐던 건 이례적이었던 것 같아요.

네. 재수 없었어요. 미디어가 미친 것 같아요. 그런 건 아니죠.





LE: 엄청나게 대두가 많이 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참 웃긴 것 같아요. 아마 되게 유명한 사람이었으면 그렇게 안 했을 걸요? 그런 식으로 다 알아볼 정도로 꺼내진 않았을 걸요? 유명한 사람이었으면... YG 가수였어 봐요. 이렇게 했을까요? (웃음) 





LE: 그 사건 이야기를 넘어가서 MP 쪽에서 활동하던 초창기 이후의 이야기를 해보면 역시 지기 펠라즈(Jiggy Fellaz)가 바스코 님의 커리어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키워드 중 하나잖아요. 2007년에 지기 펠라즈가 큰 컴필레이션 앨범인 [Xclusive]를 내면서 출범(?)했었는데, 그때 씬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그 정도의 컴필레이션 앨범은 엄청난 규모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은 지기 펠라즈는 MP와는 별개로 진행됐던 일인가요?

네. MP와는 완전히 별개로 진행됐던 것이고, [Xclusive]는 그 당시에 저희가 어디서 천 만원을 투자를 받아서 시작했던 앨범이에요.





LE: 그럼 시작하기 전부터 원래 그 정도 규모로 진행하려 했던 앨범이었던 건가요?

네. 한국힙합에서 ‘와, 짱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만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 앨범들이 그때 당시에 많이 없었거든요. 뭔가 이렇게 다 모아놓은 듯한 그런 느낌?


지기펠라즈-초창기-시절-포스터-사진.jpg


LE: 그 당시에 앨범, 포스터, 티셔츠 세트를 4만원 정도에 팔았던 기억이 나요. 제가 그때 샀었는데… (웃음) 그때 제가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처음 듣던 시기라서 이런 컴필레이션 앨범을 처음 봤었어요. 그래서 ‘와, 아티스트들 진짜 많이 참여했다.’라고 하면서 샀었던 거 같아요.

예~ 혹시 이 앨범에 있던 트랙들 기억나요? 그 트랙들의 느낌?





LE: 저는 되게 다 제각각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근데 이때 트랙들 느낌도 (당시 한국힙합에 비해) 빨랐었는데… 그때 당시에 가장 유행하던 스타일을 되게 빨리빨리 흡수해서 했었는데…
 




LE: 그런데 그런 [Xclusive] 앨범 내에서 바스코 님의 비중이 엄청 크고 그러진 않은데, 그래도 그 당시에도 바스코 님이 크루의 주축이셨었나요?

그렇죠. 제가 다 진행했으니깐요. 저는 만드느라 바빴었어요.





LE: CD 뒷면에 Project Producer에 바스코 님 이름이 새겨져 있네요. 그때 프로모션도 되게 크게 하셨었죠? 그런 부분도 다 바스코 님이 기획을 하셨던 건가요?

네. 맞아요. 제가 다 했죠.





LE: 당시에 JG 님이 또 지기 펠라즈의 정신적 지주 같은 역할이셨던 것 같은데... 지기 펠라즈에 연관이 많이 되어 계셨던 것 같고요.

그렇죠. 장고 형과 제가 지기 펠라즈를 시작했던 거니깐요.





LE: 지기 펠라즈 이야기를 잠깐 해봤는데, 다시 또 커리어대로 얘기를 해보면 2집 얘기를 들어가볼게요. 2007년 당시에 [덤벼라 세상아]가 나왔었는데, 그전보다 프로모션을 대대적으로 했던 걸로 기억을 해요. 지금도 음원 사이트에 [덤벼라 세상아] 앨범 기획사가 엠넷미디어로 되어있고요. 뮤직비디오도 플레잉이 꽤 됐던 것 같고요. 당시에 앨범이 나올 때 2집에 담긴 바스코 님의 구상이나 계획의 방향에 대해 얘기해주신다면?

사실 2집 때는 좀 그래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는 했었어요. 예전처럼 필터링 당하는 과정은 없었지만 1집 때 ‘난 뭔가 될 거야.’라고 느꼈음에도 그렇게 되지 못하면서 자신감도 별로 없었고, 그다지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는 없었어요. 과도기? 뭐랄까, 작업할 때 커다란 목표나 계획 같은 게 없었어요.





LE: 말씀하셨다시피 필터링 당하는 과정이 없다 보니 다른 앨범보다도 [덤벼라 세상아]가 자전적인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담고 있어요. “100문 100답”도 그렇고, “My Way”도 그렇고요. 아무래도 필터링이 없다 보니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많이 드러내고 싶으셨던 거겠죠?

네. 그렇다고 봐야죠.





LE: 개인적으로 질문지를 준비하면서 “Bank Rob”을 다시 인상 깊게 들었어요. 그 곡의 컨셉이 은행을 터는 스토리 텔링이지만 단순히 그 이야기에서 그치는 게 아닌 어떤 언더그라운드의 현실? 그런 것들을 풍자해서 풀어낸 것 같아서 음악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느꼈어요.

맞아요. 제가 2집에서 제일 좋아했던 노래가 “Bank Rob”이거든요. 솔직히 그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하고 싶기도 했었어요. “Bank Rob”은 그런 노래 맞아요. 정확히 해석하셨고, 이 씬을 조금 꼬집고 싶었어요. 그때 장고 형이랑 맨날 한여름에 아는 동생 방에서 반바지 입고 땀 질질 흘리면서 TV 틀어서 가수들 나오는 거 보면서 ‘아, 시발 우리 그냥 은행 한번 털어서 앨범 제대로 한번 만들어볼까? 뮤직비디오도 제대로 찍고, 녹음도 제대로 하고 그렇게 한번 해볼까?’라고 했었어요. 그때는 저희가 강했거든요. 굉장히 강했어요. 정말 털 것 같았어요. (전원 웃음)





LE: 그렇게 “Bank Rob”같은 트랙은 그런 부분에서 좋은데, 사실 2집의 전체적인 모습은 좀 아쉬운 게 1집은 완전히 날 것의 이미지가 있고, 3집은 중후하고 비장함이 묻어나는 이미지가 있다면 2집은 그런 탁 떠오르는 이미지가 희미한 것 같아요.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네.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2집은 저도 뭔가 좀 그랬어요.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내고 나서 더 아쉬웠었어요. 집중을 많이 못했던 것 같아요. 진짜 제가 원하는 걸 제대로 못했던 것 같아요.





LE: 그 당시 같이 작업했던 아티스트를 열거를 하자면, 조 브라운(Joe Brown), 덕답(Duckdap), 뉴올리언스(Nuoliunce) 님 등이 있었는데요. 한 분씩 얘기를 해볼게요. 조 브라운 씨 같은 경우에는 세컨 라운드(2nd Round)때부터 같이 하셨는데, 꽤 유서가 깊은 인연이에요. 앨범에서의 공동작업 이외에도 ‘좆되어 질 수 없는’, [Unfuckable] 믹스테입을 내신 적이 있잖아요. (웃음) 조 브라운 씨와 작업을 하실 때는 주로 어떤 더리한(?), 네스티한 부분에서 서로 합일점이 있었던 거 같아요.

맞아요. 그렇습니다. 저희는 더럽습니다.





LE: 그때 조 브라운 씨와 함께 했던 “Ass”라는 곡에서 전화번호를 공개하셔서 전화가 많이 왔다고 들은 것 같아요.

미쳤죠. 옛날 핸드폰은 부재중이 하나씩 떴잖아요. 그래서 핸드폰을 껐다 키면 부재중이 계속 오는 거예요. 거의 30분 동안… 핸드폰을 만질 수가 없었어요. 뭘 하려고 해도 부재중이 뜨면서 그 화면으로 가고… 되게 많이 왔었어요.





LE: [Unfuckable] 믹스테입에도 그런 스킷이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문자 오는 알림음이 하도 많이 울리니까 여기다 랩 할 수 있겠다면서… (웃음)

네. 맞아요. 그런 스킷이 있었죠. (웃음)





LE: 근데 요즘 조 브라운 씨는 랩퍼로서는 활동을 많이 안 하시는 것 같던데, 근황이 어떠신가요? 자주 보고 지내시는지도 궁금하네요.

요즘은 뮤직비디오를 열심히 찍고 있어요. 실력도 되게 많이 늘었고, 클라이언트도 많이 늘어서 돈도 많이 벌었어요. BMW도 샀고… 바쁜 것 같더라고요. 음악 안 하는 게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돈 더 잘 버니까… (웃음)




LE: 조 브라운 씨가 바스코 씨의 곡 중에 뮤직비디오 작업을 해준 걸로는 어떤 곡이 있나요?

아, 하죠. 3집의 “The 1”도 찍어줬었고, 이번에 “Karma”도 찍어줬고, “젊은 날의 초상화”도 찍어줬고요. 물론 돈은 주고요. 싸게… 형제 DC. (웃음)





LE: 다음은 뉴올리언스 님에 관한 얘기인데요. 몇 주 전에 뉴올리언스 님이 바스코 님과 처음 만난 일화에 대해 페이스북에 올리셨더라고요. 혹시 보셨나요?

아니요. 못봤어요.





LE: 보니까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곡을 듣고 바로 녹음을 하셨다는데, 뉴올리언스 님이 감탄을 했다고 써놓으셨더라고요. 바스코 님은 프로 랩퍼 임에도 평소에 그런 즉흥적인 작업에 별 거리낌이 없으신가 봐요.

아니요. 그런 거 있죠. (웃음) 있는데, 뉴올리언스 곡이 그만큼 좋았어요. 정말 들으면 바로 나올 수 밖에 없는 노래였어요. 되게 신선했어요. 그때 뉴올리언스 작업실을 간 게 아직도 기억나요. 쿤타(Koonta)를 통해 놀러 갔었는데, 양재동에 있는 그냥 일반 가정집이었어요. 근데 나무로 손수 만든 녹음 부스 같은 게 있었어요. 그래서 그 스튜디오에 뮤지션들이 오면 한 명씩 그 부스에 싸인을 해서 문이 싸인으로만 되어 있었어요. 완전 힙합인 거예요. ‘아,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뉴올리언스가 약간 무뚝뚝한 표정으로 ‘아, 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 음악을 하나씩 들려주는데 되게 좋은 거예요. ‘좋다. 좋다.’하고 있는데, 중간에 “Ass”를 딱 나왔었어요. 너무 좋은 거예요. 정말 그때 당시에 대한민국의 프로듀서들 사이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스타일의 곡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프로듀서들 10명 중에 9.5명은 다 샘플링, 먹통힙합 비트를 많이 만들었었는데, “Ass”가 나오니까 정말 미칠 것 같은 거예요. ‘와~ Shit. 죽었다 이거.’. 그래서 ‘어, 나 이거 하고 싶어.’라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가사를 바로 써서 녹음을 했던 기억이 있어요.





LE: “Sound Of Rhyme”도 그 자리에서 녹음을 하셨던 곡인가요?

아니요. “Sound Of Rhyme”은 그 다음에 했어요. 근데 제가 “Ass”를 가져갈 때 뉴올리언스가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이 노래는 이 바닥에 있는 수많은 랩퍼들한테 들려줬었다고… 자기가 이 곡을 너무 좋아해서 다 들려줬는데 다 까인 노래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 곡을 선택해줬다고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아, 뉴올리언스랑 나랑 뭔가 맞을 수 있겠구나. 오래 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했었죠. 이 친구가 (자기 음악을) 방출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으니까 나를 통해 방출하면 되겠다고 느꼈었죠.
 




LE: 처음 만날 당시는 두 분 다 아니셨지만, 지금은 자식을 두고 있는 아티스트라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어요. 약간 동질감을 느끼실 것 같기도 해요.

굉장히 많이 느껴요. 같이 만나서 30분, 1시간 동안 계속 가족에 대한 얘기만 한 적도 있어요.





LE: 자식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아들 자랑 좀 해주세요. (웃음) 요즘 아들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사시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 돌이 지난 지 4달이 됐어요. 16개월인 거죠. 그런다고 하잖아요. 부모들은 다 자기 자식이 천재인 줄 안다고. (전원 웃음) 저도 제 아들이 천재 같아요. 이 정도, 이 맘 때에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이건 15개월 때부터 했던 거예요. ‘개미 갖고 와.’라고 하면 막 달려가서 책에 있는 개미가 있는 페이지를 펼쳐서 딱 집어줘요. 이 정도는 하나요? ‘옥수수.’라고 하면 또 옥수수가 있는 페이지를 펼쳐서 딱 집어주고요. 그 정도? 천재구나.





LE: 어떤 랩퍼로서, 음악가로서의 재능 같은 건 지금 너무 어려서 알아보기 힘든가요? (전원 웃음)

그건 해요. 저희 집이 오디오 세트가 있고, 전선이 문어발로 멀티탭에 연결되어 있고, 그 멀티탭 전선을 화장실 쪽으로 가서 꼽고 플레이를 하게 되어 있어요. 근데 섭이가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데 음악이 안 나오면 콘센트를 잡고 화장실까지 가서 ‘아빠~’하면서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콘센트를 꼽아주면 자기가 가서 음악을 플레이하고 혼자 막 춤을 춰요. (전원 웃음, 감탄) 그걸 14개월 때부터 했었어요. 근데 이런 얘기를 하면, ‘그래. 다들 자기 자식을 천재인 줄 아는 거야.’라고 하죠. (전원 웃음) 





LE: 예전에는 야한 가사들도 많이 쓰셨잖아요. 요즘에는 많이 줄어 들으신 것 같은데... 역시 나이와 아들 때문인가요? (웃음)

결혼해서 줄어들었던 건데요. 이혼했으니까 다시 할 거예요.
 




LE: 혹시 아들이 커서 힙합과 랩에 관심이 있으면 가르쳐주고 알려주고 싶으신가요?

네. 알려주고 싶죠. 
 




LE: 직접 힙합을 하겠다고 한다면?

네. 그것도 좋아요. 뭐든지 하고 싶은 걸 시켜주고 싶어요.





LE: 2집 이후 이야기를 이어가면, 잠시 회사를 다니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가사에도 꽤나 언급을 하시는데요. 근데 회사를 굉장히 빠르게 그만두지 않으셨나요?

네. 6개월이요. 





LE: 그때 회사를 다니면서 직장인의 루틴한 삶에 회의감이 드셨을 것 같은데…

그때 제 입장에서는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학교를 더 다니는 게 제일 편했어요. 학교를 다니면 부모님이 터치를 안 하시니까요. 공부는 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대학원을 들어갔어요. 1년 정도 음악을 하다가 대학원을 들어가서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니까 좀 마음이 편하긴 했어요. 근데 그때 당시에 만났던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 집안에서 저를 딴따라라고 반대를 하는 거예요. 그때 뭔가 굉장히 서글펐어요. 그래서 ‘내가 그냥 딴따라 병신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지 뭐.’라고 생각해서 이력서를 내고 합격해서 (회사에) 들어갔죠. 그러고 나서 그 여자랑 헤어졌어요. 헤어지고 나니까 더 이상 여기를 다닐 의미도 없고, 음악은 미친 듯이 하고 싶더라고요. ‘내가 여기 왜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사표를 냈죠. 음악이 너무 하고 싶었죠.





LE: 그럼 회사생활이나 회사 업무에 대한 불만 같은 건 없으셨던 건가요?

네. 그런 건 없었어요. 대신에 배운 교훈이라면 음악보다 여자가 먼저가 되면 안된다는 거였죠. 음악은 절대 다른 거랑 비교해서 바꿀 수 없는 거 같아요. 음악이 항상 먼저여야 하는 것 같아요.





LE: 회사 생활 기간 외에도 공백기가 조금 조금씩 있으셨는데, 특별히 다 이유가 있는 공백기인가요?

지기 펠라즈 앨범을 한창 할 때. [The Black Album], [The Blue Album]. 그리고 또 누구 앨범까지, 세 장의 앨범을 1년 동안 냈었는데, 그걸 제가 다 진행했었거든요. 그래서 1년 쉬고, 또 다른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쉬고… 그런 것들 때문에 공백기가 많았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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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뮤지션으로서 앨범을 내고, 트랙을 만드는 것도 하시지만 어떤 기획이나 제작에도 관심이 많으신 거 같아요.

네. 그렇죠. 제작. 그게 너무 즐거웠었어요.





LE: 근데 보통 뮤지션 분들은 그런 제작에 참여하는 걸 힘들어하고 그런 걸 안하고 싶어하는 편이잖아요. 아무래도 음악만 하는 게 좋으니깐요.

(제작이) 힘든데요. 힘든 걸 즐기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변태 같은 사람들이 있어요. 일 중독자들. 그걸 즐겨요. 행복한 스트레스에요. ‘아, 시발 이거 어떡해.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해.’라고 하면서 쫓기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어요. 그게 저였어요. ‘3일 동안 밤샜어. 난 지금 존나 열심히 하고 있어. 난 존나 멋있어. 행복해.’ 그런 걸 느끼는? 혹시 여기도 다 그런 분들 아닌가요?





LE: 그렇죠. 그런 게 없으면 안하고 있겠죠?

그렇죠. 월급을 천 만원을 주는 것도 아니고… 왜 여기 나와있어요? (전원 웃음)





LE: 정곡을 찌르셨네요. (웃음) 어쨌든 그렇게 2009년에 회사에서 씬으로의 복귀를 지기 펠라즈로서 낸 앨범으로 알립니다. 특히 [The Black Album]이 잘됐었는데요. 무엇보다도 “간지”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바스코라는 아티스트가 지기 펠라즈의 중심으로 좀 더 떠오른 느낌도 있었고, 그 당시가 지기 펠라즈의 전성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으로 치면 일리네어 레코즈(Illionaire Records) 느낌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지금 일리네어 레코즈가 의류도 되게 많이 팔리고, 공연하면 되게 많이 오잖아요. 그때 당시에 저희도 700명 꽉 차고 옷 한번 만들면 몇 백 개씩 나가고 그랬었어요. 되게 좋았죠. 최고였죠.




LE: 지금도 여전히 “간지”는 바스코 님의 공연 레퍼토리 중 하나일 것 같아요. 아무래도 반응이 제일 폭발적이겠죠?

네. 아직까지도 가장 뜨겁죠. 
 




LE: “간지”에 참여한 또 다른 한 명이 바로 베이식(Basick) 님인데요. 알기로는 베이식 님을 DJ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 비트 컴퍼티션 이후에 발굴한 게 바스코 님인 걸로 알고 있어요. 

맞아요. (베이식이) 2집 작업 당시에 스튜디오에 놀러 왔었어요. 서로 인사를 하고 ‘시간되면 저 공연할 때 게스트로 와서 무대 설래요?’라고 하니까 너무 좋다고 해서 무대에 서고 연락하고 지내면서 알게 됐죠.





LE: “간지”의 바스코 님의 벌스와 베이식 님의 벌스가 있는데, 객관적으로 봤을 때 누가 더 잘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웃음)

제 벌스가 짱이죠. (웃음) 베이식… 그때 당시에 둘이 너무 좋았던 거 같아요. “간지”는 하루 만에 뚝딱 나온 노래인데, 진짜 딱 꽂히는 노래가 있는 거 같아요. ‘이 노래야! 으아! 그래 하자!’하면서 후다닥 하루 만에 끝내도 느낌이 좋은 노래?





LE: 베이식 님이 바스코 님이 특별히 또 아끼는 후배이고 동생인데, 지금은 미국에 유학 가계셔서 아쉬우실 것 같아요. 결혼도 하신다고 들었는데...

결혼… 축하한다는 말 밖에… 한국에는 들어올 것 같기는 해요. 근데 좀 아쉬운 건 베이식한테 맨날 이런 얘기를 했는데,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어요. 정말 뭘 하고 싶냐고. 이 친구한테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물어보고 싶어요. ‘넌 랩을 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좋은 아들이 되고 싶은 거야?’ 너무 공부 열심히 하고 지금 회사 들어갈 생각도 하고 있는데, ‘랩하기 싫어? 취미야 랩? 진짜 하고 싶은 거 맞아?’라고 묻고 싶어요. 잘 모르겠어요. 이 친구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LE: 바스코 님은 베이식 님이 계속 음악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거군요.

네. 그렇죠.





LE: 베이식 님에 이어서 후진양성(?)에 관한 이야기를 더 해보면, 숨은 보석 발견에 일가견이 있으신 것 같아요. 베이식, 이노베이터(Innovator), 제이 키드먼(Jay Kidman), 제이문(Jay Moon), 투탁(2TAK)&투에이치(Two H) 등등이 있는데요. 후배 아티스트들을 끌어주고 수면위로 올려주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으신 건가요?

그 얘기는 제가 음악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MP 때로 돌아가면 알 수 있어요. 전 저한테 먼저 와서 손을 뻗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먼저 다가와서 ‘너는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아.’라고 하면서 의견을 주거나 도와준다고 한 사람이 없었어요. 아까 외톨이라고 얘기를 했잖아요. 그래서 혼자 여기까지 막 힘들게 올라왔는데, 올라와서 아래를 보니까 몇몇 저 같은 친구들이 보여요. 어디에도 소속되어있지 않고, 방황하고 있고, 하지만 실력은 정말 좋은 친구들? 그런 친구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우리만의 무언가를 우리끼리 만들어서 그 누군가와 싸워서 같이 올라갈 수 있다면 좋은 것 같아요. 그 친구들한테도 좋고, 나한테도 좋고요. 그래서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같이 하고 싶은 것 같아요.





LE: 요즘도 신예들을 지켜보고 계시나요?

아니에요. 지금은 저 자신만 보고 있어요. 그런 것도 요즘엔 의미를 안 두고 있어요. 다시 혼자로 돌아가서 혼자 싸우는 게 맞는 거 같아요.





LE: 투탁 씨가 인디펜던트 레코즈(Independent Records)에 들어가게 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처음에 만났을 때 투탁이 고등학생이었어요. 고등학생이 교복을 입고 저를 만나러 왔는데, 앤덥(Andup)이랑 같이 왔었어요. 고등학생인데 머리를 막 드레드를 딴 거예요. 그래서 ‘쟤는 뭐야?’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근데 전 앤덥 때문에 일을 보러 왔으니까 앤덥이랑만 막 얘기를 하는데, 앤덥이 그 친구를 비트박스하는 친구라고 소개시켜주는 거예요. 그 친구가 그때 저한테 들려주려고 비트박스를 준비를 해왔었대요. 지기 펠라즈 들어오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은준 이후로 비트박스는 없어’라고 하면서 (전원 웃음) 얘기를 딱 끊고 앤덥이랑 얘기를 계속 했었대요. 그때 되게 서러웠다는데, 그러다 나중에 자기 팀이 앨범을 내는데 영상 인터뷰를 해줄 수 있냐는 거예요. ‘왜 못해줘. OK. 가서 도와줄게.’하면서 찍었어요. 찍고 집에 가는데 제 공연할 때 게스트를 한 팀 부르고 싶었는데, 좀 특이한 팀을 부르고 싶었어요. 그때 딱 이 친구가 비트박스를 한다는 얘기가 생각나서 ‘너네 공연한 거 영상으로 만들어서 보여줘.‘라고 해서 그 친구가 메일로 영상을 보내줬죠. 보고 반해서 무대에 올렸죠. 올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뻥 터뜨려버린 거예요. 제 공연이었는데 인디펜던트 레코즈 뮤지션이랑 저빼고 공연장 분위기가 제일 좋았던 거예요. 그 뒤로 바로 ‘야, 너 같이 하자.’라고 했죠. 처음엔 개무시했다가…





LE: 근데 인디펜던트 레코즈라는 레이블가 ‘랩 뮤직’을 하는 아티스트들이 위주였잖아요. 비트박스는 약간 다른 분야인데, 저는 처음에 비트박스 듀오를 영입했다는 기사를 보고 조금 뜬금없다는 느낌을 받았었어요. 근데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냥 잘하니까 영입을 하신 건가요?

그렇죠. 지금 봐봐요. 힙합 공연 10개 중에 절반 이상은 투탁&투에이치가 나와요. 그 정도로 힙합씬에서 많이 찾고 있는 팀이죠.





LE: 요즘은 자신에 대해 집중을 한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요즘 활동을 많이 하는 젊은 아티스트들, 신예들도 많이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보면서 느끼는 신예들이 잘하는 점과 아쉬운 점을 말씀해주신다면?

그냥 좋은 친구와 별로인 친구가 있는 것 같아요. 좋은 점, 안 좋은 점이 있는 것 같진 않고요. 잘하면 다 좋아요. 별로인 애들은 별로고요.





LE: 그래도 어떤 신예들의 구사하는 스타일이나 느낌의 추세 같은 게 있잖아요.

아, 요즘 유행 따라가는 게 너무 싫어요. 다들 요즘 유행하는 트랩 뮤직을 하고 있는데… ‘따라~ 따라~ 따라 따~’같은 랩하는 거 너무 듣기가 싫어요. (전원 웃음) 좋은데 듣기가 싫어요. 좀 그래요. 다 똑같아요. 너무 재미없지 않아요?





LE: 바스코 님은 트랩 뮤직 스타일을 구사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아니요. 저도 할 수 있어요. 저도 준비하고 있는데, 절대 ‘따라~ 따라~ 따라 따~’라고 랩은 안 할 거 같아요. (전원 웃음) 스윙스(Swings)가 트랩에 한 거 들어봤죠? 완전 스윙스 식으로 했잖아요. 절대 유행을 막 좇아가진 않잖아요. 어느 정도 따라는 가지만, 그 안에서 자기 것을 완전히 버리고서 가는 느낌은 아니잖아요. 근데 요즘 애들은 무조건 따라 하는 느낌? 도끼(Dok2)는 트랩을 해도 옛날 그 [Thunderground]의 느낌을 가지고 해요. 절대 흉내만 내지 않아요. 너무 오그라들어요. 그 친구들한테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유행이 지나면요. 그 친구들도 지나가요. 그러면 안돼요. 유행이 죽으면 걔네도 죽어요. 그런 건 절대 안돼요.





LE: 다시 지기 펠라즈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어가보면, 2009년에 활발한 활동으로 꽤나 큰 팬덤이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지금이야 일리네어 레코즈, 그랜드라인 엔터테인먼트(Grandline Entertainment), 벅와일즈(Buckwilds)와 같은 레이블, 크루가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그 전 세대는 지기 펠라즈의 시대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인기나 명맥을 지금까지 유지하지 못해서 아쉬운 건 없으신가요?

없앴으니까 유지가 안 된 건 당연한 거 같고요. 아쉽죠. 너무 아쉽죠. 근데 어쩔 수 없죠. 그게 운명이었으니깐요.





LE: 혹시 지금도 지기 펠라즈 일원들 몇 분들과는 친분을 유지하고 지내나요? 지기 펠라즈에는 메이저에서 활동하는 언터처블(Untouchable), 엘리(LE)같은 분도 계셨었는데…

연락을 자주 하는 친구들은 없는 거 같아요. 제가 원래 좀 그래요. 항상 혼자 있어요. 제가 연락을 잘 안하고 못해요. 근데 연락을 한다 해도 친하다고 얘기할 수 없는 것 같고, 연락을 안 한다고 해도 안 친한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 거 같아요. 저는 항상 한결 같은 거 같아요. 그 친구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LE: 그럼 인디펜던트 레코즈 멤버들과는 계속 연락하고 지내고 계신 거죠?

네. 뭐, 연락하면 하는 거고, 안 하면 안 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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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자연스럽게 인디펜던트 레코즈 이야기로 넘어가보면, 이후에 인디펜던트 레코즈를 설립하셨는데, 지기 펠라즈와는 별개로 인디펜던트 레코즈를 설립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지기 펠라즈에서 제가 나왔잖아요. 나온 이유는 제가 그 당시에 지기 펠라즈에서 일을 진행할 때 스타일이 어땠냐면, 히틀러였어요. 히틀러. ‘해. 안 그러면 죽어.’ 이런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추진력이 최고였어요. 제가 하라고 하면 애들이 다 하는 거였어요. 무서워서. 혼나기 싫어서. 그러다 보니까 애들이 저를 무서운 형으로만 알고, 저와 거리감을 두기 시작하는 거예요. 무서우니깐요. 좋은 형인 건 다 알아요. 자기를 위해서 뭘 해주려는 형인 건 아는데, 같이 있으면 불편한 거죠. 그때는 일을 얻었어요. 제가 일을 얻고 사람을 잃었어요. 그래서 되게 지쳤고 힘들었을 때 나와서 일 다 필요 없고 그냥 사람을 얻고 싶었어요. 그래서 인디펜던트 레코즈는 (소속 아티스트들을) 사람으로 봤어요. 근데 그랬더니 일을 안 하네? 앨범 작업을 안 하네? 저는 뮤지션이라면 제가 푸쉬를 하지 않아도 당연히 작업을 미친 듯이 해서 저를 괴롭힐 줄 알았어요. 근데 안 그러더라고요. 인디펜던트 레코즈… 사람들이랑은 되게 깊이 있게 친했었는데, 작업을 아예 안 하는…





LE: 인디펜던트 레코즈가 바스코 님의 그런 기조나 태도가 바뀌었던 시점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네. 그렇죠.
 




LE: 인디펜던트 레코즈의 구성원 중에 지기 펠라즈의 멤버들도 몇 명 포함이 되어 있어서 제가 인디펜던트 레코즈를 처음 봤을 때는 지기 펠라즈의 연장선상으로도 느꼈었어요. 물론 지금에 와서는 전혀 다르다는 걸 알지만요. 그런 게 자연스럽게 알고 지내는 친구들이고, 잘하는 친구들이니까 당연히 같이 해야겠단 생각을 하시고 같이 하신 거죠?

그렇죠. 지기 펠라즈에서 가장 좋아했던 두 친구를 데리고 나왔죠. 베이식, 이노베이터.
 




LE: 레이블의 이름에서도 드러나지만 인디펜던트 레코즈는 확실히 인디펜던트, 언더그라운드 색채가 짙은 레이블이에요. 이런 인디펜던트 레코즈를 비롯해서 바스코 님은 언더그라운드에 대해 외친 적이 많으시잖아요. 언더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 가져야 할 정체성에 대한 생각이 많으실 것 같아요.

솔직히 유행이라는 건 방송국, TV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어떤 새로운 장르는 TV 브라운관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언더그라운드의 뮤지션들이 실험을 하고,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요. 그게 이 바닥에서 사랑을 받고 점점 끓어오를 때 그걸 누군가가 가져가서 방송에서 빵 터뜨려서 어마어마한 유행이 되는 거죠. 언더그라운드는 어떻게 보면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곳이에요. 메이저 시장은 그 무언가를 가지고 굉장히 크게 만들어서 터뜨리는 곳이고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라면 어느 정도 유행을 만들어내고, 흐름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 같아요. 막 저기서 유행하고 있는 걸 쫓아다니면 안되고요. 나만의 음악을 만들고, ‘이거 크게 하면 대박 나겠다.’해서 누군가가 가져가서 터뜨리고 싶게 만들어야 하는 것 같아요. 언더그라운드는 그런 시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LE: 최근에는 언더그라운드 팬덤이 아이돌 팬덤과도 영합이 많이 되고 하면서 언더그라운드 씬의 정체성이 예전보다 많이 희미해진 것 같기도 해요. 나이대도 많이 달라지고요. 가요계 팬덤 문화와 별다를 것 없이 팬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부분을 옛날부터 이 씬에 몸담고 있었던 바스코 님이 보면 아쉬울 것 같기도 해요.

아니요. 전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어요. 만약에 그 주인공이 저였다면 되게 좋았을 것 같아요. 저를 되게 빨리 알릴 수 있으니깐요. 도끼가 그렇게 하면서 도끼의 음악이 변질이 되었으면 모르겠는데요. 도끼의 음악이 변했어요? 아니요. [Thunderground] 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잖아요. 걔는 아직까지도 고집을 부리고 있어요. 부럽죠. 그런 음악을 박재범을 통해서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잖아요. 타협하지 않고 잘하고 있잖아요. 그런 부분에서는 부럽죠. 지코(Zico)같은 경우에도 그래요. 방송 나가서는 좀 다른 걸 하더라도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어떻게 하는데요. 제대로 하잖아요. 이상한 걸 하진 않잖아요. 그런 부분에서는 존경할만하죠. 그런 친구가 이 바닥에서 이상한 걸 전파하고 있다면 짜증날 것 같지만 그런 건 아니니깐요.





LE: 뮤지션들은 그렇지만, 팬들 중에서는 힙합을 좋아한다기보다는 특정 인물만을 좋아하면서 언더그라운드로 유입되기도 하잖아요. 그런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 팬 분들은 안 그러니까 좋아요. (웃음) 그쪽 팬들은 그쪽 팬들이니까 상관 없어요. 다른 뮤지션 팬을 부러워해본 적은 없어요. 전 제 팬 분들만으로도 충분해요. 사랑해요.
 




LE: 인디펜던트 레코즈와 관련된 얘기를 좀 더 하면, 설립 이후에 [Guerrilla Muzik Vol.1 : Prologue]를 내셨어요. 일단 Vol.2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세 장의 앨범에 걸쳐 이어지는 거대한 서사를 시리즈가 담고 있으니까 시리즈의 구상에 대해 먼저 얘기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체 게바라 평전을 읽을 때, 쭉 읽으면서 감명도 감명이지만 전체적인 큰 그림을 봤을 때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느낌이 되게 많이 들었어요. 뭔가 큰 시장에 대항을 하는 작은 힘이라는 느낌이 되게 공감이 됐었어요. 저런 큰 자본주의 시장에 억압받고 있는 이 작은 세력들이 막 뭉쳐서 싸워서 점점 올라가는 그런 느낌이 와닿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은 게릴라군 같다 싶었어요. 큰 세 단락을 놓고 제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었어요.





LE: Vol.1과 Vol.3는 이미 나왔고 여기저기서 어떤 앨범이라고 얘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그럼 Vol.2는 어떤 컨셉의 앨범인가요?

전쟁. 때리고 부수는 전투. 게릴라군이 싸우는 마지막 전투죠. Vol.3가 전쟁이 끝나고 지면서 결국은 자본주의 시장에 쓰러지는… (웃음)





LE: 정리해보면 Vol.1,2,3가 선전포고-전쟁-전쟁이 끝난 뒤라고 볼 수 있는 거네요.

그렇죠. 처음에는 (게릴라군이) 슬슬 기어 나오고, 싸우고, 끝나고.





LE: 그 사이에 나올 Vol.2.5도 기획하고 계신가요?

네. 메딕. 싸우다가 ‘메딕~’을 외치면 치료를 바라는? 그런 거죠.





LE: [덤벼라 세상아] 까지는 바스코 특유의 패기와 강하고 빡센 느낌이 음악에 묻어 나왔었잖아요. 근데 그러다가 게릴라 뮤직 시리즈를 시작하면서는 그 느낌이 조금 바뀐 것 같아요.

솔직히 저는 [Guerrilla Muzik Vol.1 : Prologue]를 1집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저에겐 [Guerrilla Muzik Vol.1 : Prologue]부터가 1집이에요. 그 누구의 터치도 없고, 그 누구의 간섭이나 여러 계산없이 정말 순수하게 제가 하고 싶은 스타일을 제 스스로 다 만든 앨범이 이 앨범이에요. 이거부터가 시작이에요. 그래서 전 이 앨범을 1집이라고 하고 싶어요. 그전의 있던 제 모습은 잘못된 모습이고요. 지금부터가 제대로 된 저의 모습? 만약에 [The Genesis]가 아무 터치를 안 받았다면 이런 느낌이 그때 나왔을 수도 있겠죠.





LE: 아무래도 이런 대서사가 있는 시리즈는 큰 구상이 먼저 있어야 쉽게 쉽게 다음 작업을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게릴라 뮤직 시리즈의 구상은 앨범의 시리즈를 시작하기 전 단계에 이미 다 짜놓으셨던 건가요? 

네. 그렇죠. 메딕도 컨셉이 다 나와있어요. Vol.2도 이미 다 나와있고요. 어떤 이야기를 할지도 다 정해져 있고요. 작업을 이미 하고 있는 곡들도 있고요. 대신에 진행이 되면서 바뀔 수 있는 건 이런 거죠. Vol.3를 먼저 내는 것. 왜냐하면 Vol.3는 이미 컨셉이 나와있었고, 지금의 상황상 이 얘기를 하는 게 적합한 것 같고 지금이 이걸 내놔야 할 때인 것 같아서 Vol.3를 먼저 내놓은 것 정도는 중간에 바뀐 점이죠.





LE: 사실 뮤지션 입장에서는 앨범을 만드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큰 것을 구상하다가도 중간에 뭔가 딴 거를 만들고 싶어지기도 할 것 같은데요. 예를 들면,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4집 앨범 같은 경우가 그런 케이스잖아요. 그렇게 만드는 기간 중에 구상을 바꾸고 싶어졌다거나 다른 걸 하다가 하고 싶었다든가 하진 않으셨나요?

(다른 걸 할 계획이) 있어요. 그래서 7월 달에 EP 앨범을 내는 게 그런 거예요. 작업을 손가는 대로 하고 있어요. 오늘은 사랑 노래가 만들고 싶으면 사랑 노래를 만들고, 오늘은 어떤 걸 하고 싶으면 또 그 어떤 걸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이 노래는 여기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 이 노래는 이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라고 생각하게 되니깐요. 그래서 손가는 대로 하고 있어요.
 




LE: “Hero”에는 멋있는 구절들이 굉장히 많아요. 가장 공들이고 아끼는 트랙이실 것 같아요. 오랜만에 들어도 구절구절마다 소름이 돋더라고요.

“Hero”는 가사를 두 달 동안 썼어요. 정말 한 줄 한 줄 되게 공을 많이 들였었어요. 되게 많이 지우고 버리고 다시 쓰고…





LE: "Hero"의 가사도 그렇고, "Lord Keep Me Shining"의 제목도 그렇고 신에 대한 언급을 꽤 하는 편인데 혹 이런 부분은 본인이 믿고 있는 종교에서 기인된 것인가요?
 
어릴 때 기독교를 다녔는데, 그래서 그러한 표현력들이 많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그 신이 예수님 혹은 어떤 신을 딱 꼬집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우리가 의지하는 무엇이에요. 단어의 시작은 종교이지만 의미는 신과 같은 큰 무언가의 존재에요. 참고로 저는 무교고요.





LE: 듣기로는 본인은 이번 앨범에 수록된 크라이베이비 씨랑 같이 작업하신 “Hero” 리믹스 버전을 더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네. 그 버전이 더 좋아요. 기승전결에서 더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구성인 거 같아요.





LE: 바스코 님이 [Guerrilla Muzik Vol.1 : Prologue]으로 활동을 하실 쯤에 스탑덤핑뮤직(stopdumpingmusic) 운동이 활발했었는데, 앞에서 언급했던 앨범의 이미지와 스탑덤핑뮤직이 가지는 취지와 정체성이 합일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시간이 좀 지났지만 스탑덤핑뮤직과 저작권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스탑덤핑뮤직이 시작되기 전부터 음원 정액제의 문제점에 대해서 혼자 얘기하고 있었어요. 그 당시 인터뷰를 보셨을 지 모르겠지만, 스탑덤핑뮤직 전부터 그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고,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스탑덤핑뮤직이 시작됐을 때, 저는 정말 기뻤어요. 왜냐하면 저 혼자 얘기할 때는 제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근데 그런 걸 여럿이 뭉쳐서 한 목소리를 내면 조금이라도 집중을 해주잖아요. 그래서 그때 너무 행복했고 기분이 좋았고, 유독 열심히 활동했던 기억이 있어요. 스탐덤핑뮤직 같은 움직임은 계속 됐으면 좋았을 텐데, 1회성이어서 좀 아쉽긴 하죠.
 




LE: 앨범으로도, 여러 활동으로도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신 가운데, 공중파 프로그램인 유희열의 스케치북에도 출연하셨잖아요. 당시 화제가 많이 됐었어요. 그때는 더 많은 대중들 앞에 바스코 님의 음악을 들려준다는 게 벅찼을 것 같기도, 그리고 지금 와서는 그때 완벽하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을 것 같아요.

우선 미친 듯이 떨렸었고요. 너무 긴장을 했었어요. 그때 제가 긴장을 하고 있을 때 제 어깨를 쳐주면서 응원을 해주던 사람이었던 DJ DOC 형들, 45RPM 형들, 매니저 형들, 이사 님이 ‘바스코, 넌 최고야. 니가 원래 언더그라운드에서 보여주던 무대 그대로 여기서 해.’라고 해주셨었어요. 근데 딱 올라가고 그렇게 돼버린 거예요. 왜 그렇게 됐냐면, 우선 첫째로 무대가 어색했었어요. 언더그라운드에서는 항상 제가 위에서 아래로 보고 하는데, 방송국을 가면 제가 밑에서 위를 보면서 해야 하잖아요. 카메라들이 있고, 불이 막 여기저기서 들어오고 있고… PD들이 분주하게 왔다갔다하고 있고, 모니터도 잘 안되고… 뭔가 그런 어색한 분위기에 ‘자, 다음은 바스코입니다!’라고 하는데 함성 소리가 되게 큰 거예요. 근데 그 방송의 관객들이 나이대가 좀 있잖아요. 중고등학생들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날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난 개좆밥이다. 그러니까 가서 열심히 하면 돼.’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러니까 좀 당황했죠. ‘뭐지? 날 알고 있는 거야? 이거 어떻게 하지?’ 약간 이러면서… 완전 블랙 아웃 됐었어요. 랩을 하는데 두 마디 이상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완전 Fuck Up이었어요. 너무 떨렸었고, 그렇게 틀리고 나서 형들한테 너무 미안했고요.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LE: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연결해서 이야기하자면, 출연의 계기가 아마 이하늘 씨를 통해서였을 것 같은데 맞나요? 

네. 형들이 해준 거죠. 형들이 저를 끼워 넣어 준 건데 내가 그걸 망쳐버리다니.





LE: 이어서 이하늘 씨와 부다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볼게요. 일단은 이하늘 씨와의 첫 인연은 언제부터였나요?

당시에 제가 MP에서 2집을 내고 활동할 때였는데, 저와 DJ DOC 형들이 같이 게스트로 있던 어떤 공연이 있었어요. 그때 하늘이 형이 제 무대를 쭉 지켜봐 주시고, 제가 공연을 끝내고 내려왔을 때 ‘야, 시발 너 소속 어디야?’라고 하시는 거예요. ‘야, 시발 부다 사운드 들어와.’라고 하시길래 좋다고 했어요. 근데 지금 MP를 그냥 나오고 형한테 가면 형이랑 하다가 또 다른 데서 더 좋은 조건을 내밀면서 얘기한다고 가버리면 나는 형을 버리고 또 갈 사람이 된다고 했죠. 그래서 MP랑 계약돼있는 대로 이행은 다 하고 그 다음에 형한테 넘어 가겠다고 했더니 ‘OK. 좋아. 알았어. 기다려줄게.’라고 하셨죠. 그래서 앨범 작업을 다 끝내고 하늘이 형과 약속을 지키게 됐죠. ‘형 저 끝났어요. 이제 같이 해요.’라고 하면서… 근데 지금은 하늘이 형이 도와주신다고 하셔도 ‘형, 제가 그냥 혼자 할게요.’라고 하는 편이에요.





LE: 지금까지도 부다 사운드와 계속 정식으로 계약이 되어 있는 건가요?

네. 지금도 계약되어 있어요.





LE: 그럼 게릴라 뮤직 시리즈의 앨범을 내는 건 부다 사운드의 아티스트로서 활동하는 것과는 별개의 활동인 건가요?

네. 이게 그렇게 수익성이 높은 음악이 아니잖아요. 이런 리스크를 하늘이 형에게 떠맡기기 싫었고, 하늘이 형도 시원하게 이런 앨범 제작을 하고 싶진 않으셨고요. 하늘이 형은 되게 큰, 메이저 앨범을 제대로 하고 싶어 하셨어요. 저는 이걸 안 하면 죽을 것 같았고요.





LE: 그럼 지금 바스코 씨가 하고 있는 부다사운드의 멤버로서의 활동은 어떤 게 있나요?

형들이 불러줄 때 언제든 달려가서 공연하는 것 정도? 백업하라고 하면 ‘네. 알겠습니다.’하고 가서 백업하고요.





LE: “나 이런 사람이야” 무대 때 계속 백업하셨던 것도 그렇게 하게 되신 건가요?

그럼요. 저는 자랑스러웠죠.





LE: 근데 계약이라고 하면 보통 앨범 몇 장, 이런 계약이 있는데…

저도 있었어요. 3장이었나? 근데 저한테 의미가 없어요. 계약금을 10원을 주든, 1000만원을 주든, 앨범 1장을 하든, 10장을 하든 그런 건 의미가 없었어요. 지금도 의미가 없고요. 





LE: 부다 사운드 일원으로서 느끼는 부다 사운드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얘기해주신다면?

장점은 하늘이 형도 좋고, 창렬이 형도 너무 좋아요. 사람들이 무섭다고 그러는데 아니에요. 되게 좋고 따뜻해요. 진짜 인간적이에요. 형들보다 더 인간적일 수가 없어요. 재용이 형도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고요. 항상 좋은 얘기를 되게 많이 해주세요. 같이 있으면 나를 나 자신보다 더 챙겨준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고, 힘들 때 위로도 많이 해주고요. 그래서 같이 있으면 한 식구라는 느낌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아요. 단점이라면 일 적으로는 부다 사운드라는 회사가 조금 부족해요. 직원이 많이 있는 게 아니라서 앨범도 늦게 나오고… 리오케이코아(Leo Kekoa)도 앨범 한 장 나오고 말았잖아요. 라임버스(Rhymebus)도 한 장 나오고 더 안 했고요. 레드락(Red Roc)은 EP 앨범 한 장 나오고 말았고요. 근데 그게 거의 6년 동안 한 장이잖아요. 일 적으로는 되게 활발하지 못한 회사이기 때문에 그 부분은 조금 단점이죠.





LE: 정리해서 한 번 더 바스코 님에게 이하늘 님이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을 때, 저에게 월급을 주면서 음악을 하게 해준 형이에요. ‘내가 월급 줄 테니까 음악 해. 넌 음악 해야 돼.’라고 하면서 저에게 월급을 줬어요. 그 정도로 제가 음악을 계속 할 수 있었던 힘이었고, 원동력이었어요. 하늘이 형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수도 있어요. 회사를 그렇게 시원하게 관두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아무튼 하늘이 형은 제 음악 인생에 있어서 은인이죠.





LE: 다시 3집 앨범 이야기로 넘어오면, [Guerrilla Muzik Vol.1 : Prologue] 발매 이후에 그 해 말에는 지기펠라즈 탈퇴를 밝히셨어요. 당시 딱 선을 긋고서 인디펜던트 레코즈에만 전념하셨었는데, 그 당시 정확하게 어떤 상황이었던 건가요?

탈퇴를 밝히기 전까지는 탈퇴라는 말은 안 했지만 그냥 발 하나 담그고 있는 느낌?





LE: 암묵적인 탈퇴였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죠. 정리하고 새로 출발하자 해서 탈퇴했었죠.
 




LE: 인디펜던트 레코즈는 이후에 제이문, 투탁&투에이치, 크라이베이비 같은 아티스트를 영입하고 서포트 했었는데요. 제각기 다른 분야와 다른 스타일을 가진 아티스트들이에요. 당시에 영입에 대한 기준 같은 건 어떤 것이었나요?

첫 번째 기준은 그냥 제가 봤을 때 ‘어?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고, 두 번째 기준은 저희를 먼저 찾아 온 친구. ‘형 저 하고 싶습니다.’하고 찾아 온 친구. 크라이베이비 같은 경우가 먼저 하고 싶다고 찾아 온 경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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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크라이베이비 씨 같은 경우엔 영입 이후에는 여러 비트들을 선보이며 이런 것도 할 수 있다고 보여주셨지만, 영입 당시에는 R&B 싱어로서의 이미지가 강해서 인디펜던트 레코즈와는 안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도 드셨을 것 같아요.

저도 고민은 좀 했었어요. ‘크라이베이비가 우리랑 어울릴까?’ 싶었죠. 하지만 그때는 모든 결정을 저 혼자 내리는 게 아니고 모든 친구들이 다 같이 생각해서 내렸었어요. 다른 친구들 모두가 좋다고 해서 OK했었죠.
 




LE: 특히 제이문 씨 같은 경우엔 아주 어린 나이에 영입을 하셨고, 원석을 발굴했다는 느낌이 있어요. 특별히 애착이 더 있으실 것 같기도 해요.

그럼요. 제이문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 랩을 듣고 ‘와, 시발. 짱이다.’ 싶었어요. 얘 좀만 더 잘하면 대한민국 랩스킬의 발전을 이뤄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었어요. 그래서 바로 데려왔죠.





LE: 근데 제이문 씨가 그런 스킬적인 부분에서도 잘하시지만, 어떻게 보면 요즘 신예 랩퍼들에게서는 쉽사리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주제 선정이나 표현 방법이 잘하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런 부분도 보시고 영입하셨던 건가요?

그렇죠. 근데 그런 부분은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었는데, 만나서 얘기를 되게 많이 했었어요. ‘넌 좀 더 뭔가를 보여줘야 해. 랩만 보여주지 말고 뭔가 이야기를 더 해야 해.’라고 얘기를 많이 했었죠.





LE: 저희 힙합엘이 토크콘서트 때 얘기를 들어보니까 제이문 씨 모의고사 성적표도 직접 보셨다고… (웃음)

네.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셔서 저에게 특별 당부를… 그때 당시에는 멤버들 부모님들과도 얘기를 많이 했었어요. 제이 키드먼 어머니과도 얘기를 많이 했었고, 이노베이터 부모님들과도 얘기를 했었고요. 가끔씩 부모님들이 저랑 통화하시다가 우시기도 하고… 자기 아들 때문에 힘들다고. 그런 상담도 많이 했었어요.





LE: 제이문 씨가 며칠 전에 트위터에 자기는 바스코 형님에게 완벽하게 인정받은 적 없다고 쓰셨더라고요. 그렇지만 존경한다고.

인정과 존경이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고 제이문이 그런 걸 왜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완벽하게 인정… 안 한 건 아닌데. (전원 웃음) 누구라도 완벽할 순 없으니깐요.
 




LE: 그런데 이후에 인디펜던트 레코즈가 점점 주축 레이블로 떠오르는 와중에 최근 들어서 인디펜던트 레코즈는 사실상 해체다, 끝났다라는 말을 하셨는데요. 현재 정확하게 어떤 상황인건가요?

멤버들을 각자 다 ‘알아서 해라.’라고 말한 상태이고, 저 혼자 가는 상태에요.
 




LE: 그럼 이제는 바스코 님 개인의 1인 레이블이라고 봐야 하나요?

네. 그렇죠.





LE: 그렇게 하게 된 계기가 어떤 것이었나요?

계기는 제 능력 부족? 결혼 생활을 했을 때는 맞벌이를 했었잖아요. 그때는 수입이 어느 정도 있어서 레이블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근데 이혼을 하면서 혼자서 모든 걸 진행을 하다 보니까 지출이 되게 많았어요. 애를 낳아보면 아시겠지만, 돈이 되게 많이 나가요. 한번은 뮤직비디오 회의를 갔는데, 회의를 하고 뮤직비디오 감독이 가격을 제시했어요. 근데 제가 그 가격을 충당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노베이터한테 ‘형이 돈이 부족해서 못해줄 것 같다.’라고 했어요. 이노베이터가 너무 쿨하게 ‘아, 괜찮아요. 형. 그거 안 해도 괜찮아요. 안 하면 어때요.’라고 하는데, 그게 너무 가슴이 아프고 슬픈 거예요.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내가 얘네를 잡아두고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싶더라고요. ‘차라리 더 능력 있는 사람 만나게 해서 얘네 꿈을 막지는 말아야지.’라는 느낌? 그래서 놔준 거예요.





LE: 그렇게 1인 레이블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금도 멤버들과 잘 지내고 계신 거죠?

네. 그럼요.





LE: 말씀하신 대로 온전히 혼자 하게 되시면서 느낀 것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재정적인 부분을 비롯한 여러 문제에 힘이 부치실 것 같은데…

그냥 너무 힘들 때 혼자 있는 게 편했어요. 아무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어요. 돈도 혼자 있으면 많이 안 나가거든요. 그냥 굶으면 되니깐요. 혼자 있고 싶었어요.





LE: 1인 레이블이긴 하지만 어쨌든 인디펜던트 레코즈가 살아 있는 레이블인데, 앞으로 인디펜던트 레코즈의 향후 미래에 예전처럼 다시 커질 수도 있는 건가요?

아니에요. 그냥 저밖에 없을 거고요. 끝까지 저 혼자 갈 거예요. 누구랑 같이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이런 경우는 있을 수 있어요. 인디펜던트 레코즈가 아니라 다른 회사에 제가 그 회사 소속으로 들어갈 수는 있어요. 누군가의 아래에 들어가는 게 차라리 나은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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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이제 이번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에요. 일단 PR 시간입니다. (웃음) 앨범 소개 부탁 드릴게요.

이번 4집은 게릴라 뮤직 시리즈의 마지막, 세 번째이고 제목은 ‘Exodos’에요. Exodos는 마지막 장, 마지막 단. 모든 연극이 끝나고 커튼이 쳐지면서 나오는 그런 장이고요. 그런 것처럼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고, 무엇에 대한 마지막이냐고 하면 젊음에 대한 마지막, 인생의 마지막, 끝나고 지옥에 가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조금의 희망도 이야기해요. 그런 앨범이에요. 여태까지 제가 냈던 앨범 중에서 가장 차분한 앨범이니 차분하게 새벽 시간에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LE: 많이 알려진 이야기지만, 지금의 감정상태에 충실하기 위해 Vol.3를 먼저 내셨다고 들었어요. 
 
네. 그렇죠.





LE: 트랙 별로 이야기를 해보면, “Guerrilla’s Way”는 굉장히 락적인 요소가 많이 있어요. 그 동안 락적인 트랙을 몇 번 시도하기도 하셨고, 바스코 님의 스타일이 락에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락밴드와의 콜라보를 생각하셨을 것 같기도 한데... 밴드 세션과 함께 하는 공연을 앞서 보여주신 적도 있고요.

서태지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를 했던 창록이 형이 있어요. 그 형 밴드가 따로 있어요. 아실 지 모르겠지만 디아블로(Diablo)라는 밴드가 있어요. 한국의 전설적인 헤비메탈 밴드에요. 그 형들이랑 계속 콜라보를 하고 있어요. 그 형들의 공연에 객원으로 랩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 형들과의 많은 콜라보를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앨범의 모든 기타와 락적인 느낌은 창록이 형이 해준 것들이에요.





LE: 단일 앨범이나 싱글로 나올 계획이 있진 않나요?

그런 것 까지는 아니고 약간 객원으로 랩을 해주고 형들이 객원으로 밴드 해주는 그 정도로만 할 것 같아요. 나오려면 또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되게 쿨한 타입이라…
 




LE: 제가 예전에 카피머신의 공연에 간 적이 있었는데, 바스코 님이 게스트로 나오시더라고요. 실제로 락밴드들과도 친분이 어느 정도 있으신가요?

친하죠. 카피머신 멤버들과도 친구라서 친해요. 매드 앳 갓(Mad At God)이라는 밴드가 있었는데, 그 형들이랑 프로젝트를 원래 하나 계획하고 있었어요. [Unrated]라고 해서 림프 비즈킷(Limp Bizkit) 같은 핌프 락을 하고 있었는데 엎어져서 지금은 안하고 있어요. 그 정도? 두루두루 아는 것 같아요. 제 보이스를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LE: 그 동안의 바스코 님이 보여준 모습, 이미지는 남자다움, 마초같은 것이 많았는데 이번엔 조금은 다른 이미지를 띄고, 또 좀 더 다양한 주제를 다루셨어요. 물론 그 모든 내용들이 하나의 감정과 이미지로 합일을 이루지만요.

네. 그렇죠.





LE: 특히 “GREY”같은 경우에는 같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바스코 식으로 잘 풀어낸 것 같아요. 애착이 좀 있으실 것 같아요.

“GREY” 같은 경우는 작업을 하던 그때 당시 상황을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제가 이제 아버지가 되었잖아요. 아버지가 되고 나서 아버지를 다시 되돌려서 생각해보니까 그 전까지는 정말 아버지에 대한 존경은 암묵적인,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어요. ‘아버지 존경하세요? 왜요?’라고 물어보면 ‘내 아버지니까. 날 낳아주시고 고생하셨으니까.’라고 하죠. 뭘 고생했는지는 몰라요. 그냥 고생하셨고 날 위해서 뭔가를 해주셨으니까. 뭘 해줬냐고, 돈 대줬다고? 그게 다는 아니거든요. 자식이 생긴 최근이 왜 아버지가 진짜 존경스러운지를 되게 깊게 느꼈던 시기였어요. 자식이 생기면서 이제서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거죠. 언제 이해가 되었냐면, 아버지의 모습을 내가 하고 있을 때, 그때 아버지가 이해가 되더라고요. 사실 제가 하고 있는 행동들이 가장으로서 좋은 행동도, 올바른 행동도 아니에요. 하지만 아버지도 그러셨거든요. 항상 올바른 아버지는 아니었거든요. 항상 가족들과 매주 어딜 놀러 가고 분위기 좋은 가정을 만들어주는 아버지는 아니셨어요. 무뚝뚝하고, 맨날 힘들어하고, 잘 안 놀아주고, 시간 있으면 자고, 맨날 늦게 들어오고… 제가 그런 모습이 되어 있는 걸 발견하고 ‘와, 아빠는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속마음은 그게 아닌데 말이죠. 그걸 못하고 맨날 일만 해야 하는 그 모습이 이해가 됐어요. 그러면서 만든 노래라 더 애착이 가요. 아버지를 굉장히 많이 이해하게 되면서 만든 아버지에게 바치는 노래. 





LE: 며칠 전에 어떤 영상에서 바스코 님의 아버지, 바스코 님, 바스코 님의 아들까지, 이렇게 3대가 함께 산책하는 걸 봤었는데요. 되게 인상 깊었어요.

대대손손이 같이 있으면요 (웃음) 알지 못하는 오묘한 바이브가 있어요. 그 느낌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 경험해보세요. (웃음).





LE: 아버님은 “GREY”를 들어보셨나요? 들어보셨다면 반응은 어땠나요?

네. 좋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아직도 무뚝뚝하세요.





LE: 그 동안 바스코 님의 다른 음악들도 부모님들께서 항상 들어오셨었나요?

네. 충격을 받으셨었죠. (전원 웃음) 아무 말도 안 하셨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3집을 낼 쯤에 “노장”을 들으시고 그때서야 ‘그래. 1집 때 같은 것 좀 하지 말고 이런 걸 좀 해라, 좋네.’라고 말씀해 주셨었죠.





LE: 앞서도 얘기했지만 이번에 노창 님과 작업을 많이 하셨어요. 노창 님을 굉장히 많이 칭찬하셨던데, 노창 님의 어떤 점이 바스코 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나요?

음악을 들으면요. 아까 뉴올리언스 얘기 때도 그랬지만 대한민국의 다른 프로듀서들에게는 들을 수 없는 사운드와 샘플 운용, 악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걸 접하지 못했어요. 사랑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근데 만나서 작업해보니까 얘는 진짜 다른 프로듀서들보다 한 단계 더 앞서나가 있어요. “GREY”에서 앞에 나오는 부분이 피리 소리는 녹음 눌러놓고 피리를 지가 불고 그걸 샘플을 따서 다시 만든 노래에요. 2000원짜리 리코더를 불어서 녹음을 했어요. 되게 실험적이에요. 보이스 샘플도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서 피치 만지고 찹해서 만든 거예요. 대단해요. 되게 노력하고 열심히 하고 실험적이고 환상적이에요.





LE: 혹시 노창 님 랩도 좋아하시나요?

랩보다는 프로듀싱을 좋아해요. 랩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정확히 무슨 말을 하려는 지가 어렵고 메타포가 깊어요. 제가 아직 무식해서 그런 건지, 감성이 딸려서 그런 건지 노창의 것들을 못 따라가요. 그 세계를 못 따라가겠어요.





LE: 이번 앨범에서의 노창 님을 많이 기용하신 것처럼 바스코 씨는 항상 어떤 프로듀서에 꽂히면 그 프로듀서 분과 작업을 많이 하시는 거 같아요. [Xclusive]부터 [덤벼라 세상아]까지는 덕답 씨나 EJ 씨와, [Guerrilla Muzik Vol.1 : Prologue]에서는 제이 키드먼 씨가 그랬는데요. 그렇게 앨범 별로 어떤 특정 프로듀서에게 곡을 많이 받아가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주축을 두죠. 3집 때는 제이키드먼이 그랬어요. 앨범을 여러 번 만들어보면서 느낀 건데, 한 가지 색깔이 있긴 있어야 해요. 앨범의 중심이 있어야 해요. 다 듣고 나서 이 앨범은 어떤 느낌이라고 느끼게끔 만들어 줘야 해요. 3집 앨범이 되게 거칠고 차갑고 때려 부수는 느낌이라면 4집 앨범은 약간 몽환적이고 떠다니는 우주적인 느낌이 있고 그래요. 3집은 제이 키드먼이 절반을 해주면서, 4집은 노창이 절반을 해주면서 그런 앨범의 색깔이 정해진 거죠. 어떤 색깔을,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 프로듀서가 어느 정도 기여를 많이 해주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 앨범에서는 제이 키드먼보다 노창이 그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작업을 많이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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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뉴올리언스 같은 분은 보통 앨범을 만드실 때 아예 프로젝트를 많이 하시잖아요. 혹시 뉴올리언스와도 그런 걸 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뉴올리언스도 좋은데 제가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될 지 모르겠어요. 앞으로 노창과 안 할 수도 있고, 어떻게 될 지는 모르니까요. (뉴올리언스의) 트랙들을 되게 많이 들었는데, 그 중에 “Ass”같이 딱 꽂히는 노래들이 항상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LE: “Rapture”부터 “Requiem”까지의 트랙들에서 다루는 주제와 컨셉들이 굉장히 흥미로운데요. 게릴라뮤직 시리즈의 끝이 더 극단적으로 치닫는 데에 많은 역할을 하는 구간인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 인간의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본성과 본능, 욕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네. 정확해요. “Rapture”부터 시작해서 세 곡이 연결이 되잖아요. 거기에 큰 그림을 그렸고, 시간을 되게 많이 할애했어요. “Rapture”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착한 척하고 잘난 척 하고 역겹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얘기하고 싶었고, “All We Go To Hell”에서는 ‘우리 같은 놈들은 지옥에 가야 해. 지옥 가는 게 축복받은 거야, 임마.’같은 감성으로 작업을 했어요. 마지막을 슬프지 않게, 분노의 느낌으로 표출한 거죠. “Requiem”에서는 썩어가는 그런 모습을 ‘나 돈 존나 많이 원해.’ 하는 그런, 자본주의 사회에 찌든 모습을 보여주면서 ‘저게 좋지 않은 거구나.’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트랙이거든요. 절대 자본주의에 대한 찬양가는 아니죠. 내가 돈에 중독되어서 질투심과 경쟁심에 벅차서 으르릉거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모습이 좋지 않구나.’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그런 곡이에요.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주제가 다양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약간 한 가지 주제에서 표현을 여러 가지로 나눈 거죠.





LE: “All We Go To Hell”에서 노창 씨 보컬이 되게 독특했어요. 태평하게 노래를 부르는 느낌이 독특했어요.

첫 줄만 제가 던져주고 그 뒤를 맘대로 쫙 쓰라고 했어요. 멜로디랑 첫 줄을 다 쓰고 ‘이거 어때?’하며 얘기했더니 ‘어, 좋은데요.’라고 하길래 바로 하게 되었죠.





LE: 욕망이나 욕구를 표현한 이런 트랙들이 마초적이고 거칠었던 젊은 날의 바스코 님을 표현한다고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네. 정확해요. 제가 멋있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나쁜 놈이었기 때문에…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죠.





LE: 그리고 이어지는 뒤의 두 트랙인 “Lord Keep Me Shining”과 “젊은날의 초상화”에서는 그런 지난 날들을 현재에 와서 정리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제 바스코 님의 의도는 이 해석과 흡사한가요, 아니면 다른가요?

네. 거기서 그런 가사가 나오잖아요. ‘지나간 내 젊음을 위해 얼마나 주위 사람들을 내 가슴 위에 상처를 냈는지’.





LE: 바스코 님은 본인의 젊은 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번 앨범은 그런 젊은 날을 돌이켜 본 앨범이었는데, "젊은 날의 초상화"만 들으면 자신의 젊은 날에 대해 회의적이실 것 같아요.
 
제 젊은 날을 돌이켜 보면 굉장히 즐거웠던 순간들이 많았어요. 또래에 비해서 돈도 많이 벌었고 여자도 많이 있었고요. 간지도 많이 부리고 다녔고요. 문제도 많았고… 돌이켜 보면 정말 꿈같던 시간들이죠. 그런 젊은 날이 지나간 것 같아서 씁쓸한 이야기를 한 것이지, 저의 젊은 날에 대해 회의적이지는 않아요. 제 젊은 날은 제 인생의 황금기중 하나였고. 지금은 제 인생의 황금기를 다시 준비하고 있어요.





LE: 게릴라 시리즈의 첫 앨범 제목이 ‘Prologue’고, 마지막 앨범 제목이 ‘Exodos’인데요. 혹시 싱글이나 다른 작은 트랙들을 통해 에필로그를 만들 생각은 없으신가요?

있어요. 이미 하나 준비되어 있는 게 있어요. 녹음까지 다 했는데, “위대한 유산”이라는 노래를 조만간 무료로 공개할 거예요. 모두에게 배포할 건데, 이건 팬들에게 그리고 내 자신,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바치는 노래예요. 제가 이번 앨범을 내고 댓글들을 봤을 때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감동이라기 보다는, 감동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쪽팔린 느낌도 있고 되게 오묘한 느낌인데요. 이렇게 써있었어요. ‘무너질 것 같던 나의 히어로. 바스코. 힘내란 말 밖에…’ 앨범이 좋다는 얘기가 아니라 저에 대한 위로들이 달리는 거예요. 그때 가슴이 뭉클해지고 ‘고맙다, 이 친구들 너무 고맙다.’라고 생각하면서도 ‘근데 왜 내 음악에 대한 얘기는 없지?’ 이랬죠. (웃음) 오묘함을 느끼면서 마지막에 도달한 건 ‘진짜 고맙다.’라는 감정이었어요. 그래서 그 친구들한테 바치는 노래에요. “위대한 유산”은 기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무료로 재미있게 들어주세요. 멋있게 잘해서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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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GREY”가 가장 애착이 가는 트랙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또 다른 트랙 중에 리스너 분들이 좀 더 주의 깊게 들었으면 좋겠다는 트랙이 있나요?

“Guerilla’s Way”? 그리고 “Karma”도 좀 더 주의 깊게 들어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뿌리”는 정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들어봤으면 좋겠고요. “젊은 날의 초상화”도 그렇고요. 그 정도?





LE: “Karma”의 뮤직비디오는 나왔는데, 에이조쿠(Aeizoku)님이 “GREY”의 뮤직비디오를 무기한 작업 중이시라고.

언젠가는 나오겠죠? (전원 웃음) 정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대요. 그래서 오래 걸린대요. 그래서 터치 안하고 있어요. 연락은… 된다고 해야 하나? 답변은 오기는 하는데,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요. (웃음) 근데 정말 열심히 하고 있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니까 믿고 기다려야죠.





LE: 어쨌든 게릴라 시리즈의 결말을 보기는 봤는데, 게릴라 시리즈 이후의 작품에 대한 구상은 아직 나온 것이 없나요?

아까 말씀 드린 두 장의 EP가 준비되어 있고요. 내년에는 또 다른 EP를 준비하고 있기는 해요. 그 세 가지 EP를 준비하는 과정 안에서 Vol.2를 준비할 거고요. 아마 끊임없이 여러 가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정규는 일단 게릴라 시리즈로 나갈 거고요. 좀 작은 단위의 프로젝트들을 보여주려고요. 왜냐하면 정규를 작업하는 게 정말 힘들어요. 정말 그냥 쉽게 열 두 곡을 뚝딱한 것 같지만, 이 열 두 곡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버린 곡들이 되게 많아요. 3집 때만 해도 몇 백곡을 작업하고 그랬는데, 이번에도 백곡 정도를 작업했어요. 정규는 그 만큼 정규인 이유가 있어요. 그냥 열 두 곡 아무거나 가져다가 붙여서 정규를 낸 게 아니에요. 정규는 하나의 컨셉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큰 틀이 있기 때문에 열 몇 곡을 만드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정규는 중간 중간에 계속 작업을 하지만 중간에 남는, 하나의 작은 카테고리들은 계속 EP로 던지려고요. 그래야 저도 안 지치고 팬들도 덜 기다리게 되는 것 같아요.





LE: [Xclusive] 앨범에 수록된 바스코 님의 곡 중에 앨범을 대충 만든 것들에 대해 비판하는 곡이 있는데, 앨범을 만드는 것에 대한 장인 정신이 있으신 것 같아요.

저는 정규 앨범은 정말… 제이 키드먼과 항상 하는 얘기예요. 정규는 정규인 이유가 있어요. 정말 확고한 이야기, 중심, 뼈대가 딱 있고 거기서 가지가 뻗어나가야 하는 게 정규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앨범 안에서 이거 했다가 저거 했다가 하는 건 정말 메리트가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할 거면 차라리 싱글로 던지는 게 나아요. 정규는 정규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LE: 들은 얘기로는 앤덥 씨가 제이키드먼 씨와 작업할 때 벌스를 한 일곱 번을 엎었다고 하더라고요.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했다고 그러던데, 정말 그런가요?

네. 제가 할 때도 그랬어요. 제이 키드먼이랑 나이 차이가 십 몇 살 나는데 확고해요 이 친구는 ‘형 아닌 것 같은데요, 다시 하죠.’, 형 별론데요.’라고 해요. 그러면 다시 해요. 빡치는 거 전혀 없어요. 저는 제가 존경하는 사람들한테는 나이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존경해요. 노창도 제가 어떤 트랙에 같이 하자고 했는데, ‘형, 저는 거기 안 어울릴 것 같아요. 제가 할 얘기는 없는 것 같아요. 전 안 할게요.’라고 하더라고요. ‘OK. 좋아.’ 했죠. 저는 그런 친구들이 더 좋아요. 더 편해요. 가식 안 떨잖아요. 저도 얘가 지금 뭐 하고 있나 하며 계산할 필요가 없어요. ‘싫어? 그래 그럼 됐어.’하고 마는 거죠. 근데 걔가 좋다 그러면 그건 정말 좋은 거거든요. ‘형 이거 좋은데요?’라고 하면 저도 확신이 생겨요. 그게 되게 편해요. 좋아요.





LE: 노창 씨가 저스트 뮤직(Just Music) 소속이신데, 스윙스 씨와 후진 양성에 대한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으신 것 같아요. 3집과 4집에서 각각 한 곡씩 같이 하셨는데, 스윙스 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어디 나가서도 이런 얘길 했는데 대한민국에 존경하는 랩퍼 둘이 있다면 버벌진트(Verbal Jint)랑 스윙스에요. 그 두 친구는 게임을 바꾼 친구들이거든요. 스윙스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정말 존경하고 배울 게 너무 많아요. 인간적으로도 배울 게 많고 음악도 그렇고요. 존경해요.





LE: 기타 여러 가지 질문들을 조금 더 해볼게요. 예전엔 라디오 로고 송도 하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텐텐클럽이 생각나서요.

그래요? 했겠죠? (전원 웃음) 기억이 안 나요. 아마도 DJ 스케줄 원 형이랑 같이 스핏 파이어 때 했던 것 같아요.





LE: 저희 힙합엘이와 인터뷰했던 리플로(Reflow) 님은 한국에서 티아이(T.I.) 간지를 낼 수 있는 건 바스코 님 뿐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동의하시나요? (웃음)

전혀요. (전원 웃음) 제가 티아이 간지라니. 아닌 것 같은데…





LE: 제 생각에는 티아이의 간지라는 게 ‘비장미’라는 부분에서 뿜어져 나온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떤 아티스트의 음악보다도 바스코 님의 음악에 그 ‘비장미’가 가득 담겨져 있는 것 같아요.

티아이 좋아하긴 하는데 한 번도 그렇게는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LE: 실제로 티아이라는 아티스트를 좋아하시는 편이신가요?

엄청 즐겨 듣지는 않아요. 





LE: 그럼 요즘은 어떤 걸 주로 즐겨 들으세요?

요즘은 라나 델 레이(Lana Del Ray)를 즐겨 들어요. 매일 끼고 사는 것 같아요.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 칸예 웨스트는 정말 넘버 원이고요. 그 외에는 다 좋긴 좋은데 막 미친 듯이 빠진 건 없는 것 같아요.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도 저는 그렇게 빠져들지는 않았어요. ‘어우, 좋다.’라고는 했지만 막 빠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빠졌던 랩퍼는 칸예 웨스트랑 릴 웨인(Lil Wayne) 정도? 솔직히 힙합보다 다른 음악을 더 많이 들어요. 요즘은 (힙합을) 많이 안 듣는 것 같아요. 라나 델 레이나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를 들어요. 약간 오묘한 음악들? 몽환적인 것들을 많이 듣는 것 같아요.





LE: 바스코 님이 구사하는 라이밍 방식을 보면 두 글자, 세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나 구절을 사용해서 라임을 많이 구사하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글자 수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라임을 맞추는 이유가요. 저는 하나의 형식이기 때문에 맞춘다고 생각을 해요. 그 형식을 누가 더 잘 맞춘다고 해서 더 좋은 음악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라임을 열 글자씩 다 맞췄다고 해서 ‘우와!’라고 하진 않아요. 한 글자를 맞추든, 두 글자를 맞추든 그냥 무슨 말을 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라임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아요. 라임에 대한 싸움은 버벌진트 이후로 무의미해진 것 같아요. 라임 모르는 친구 없잖아요. 열 글자 맞춰서 요즘 ‘와~’ 할까요? 일단 ‘와~’는 하지만 그 이상이 많이 느껴지진 않는 것 같은데… 그냥 쇼죠. 전 그렇게 신경을 많이 안 쓰는 것 같아요.





LE: 바스코 님은 "꽐라"같은 명곡도 만드시고, 비트 메이킹을 꽤 하시는데 그럼에도 바스코 님의 비트를 누구에게 주거나 직접 쓰거나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더라고요. 본인의 비트를 많이 안 쓰는 이유가 특별히 있으신가요?
 
요즘도 계속 트랙작업은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JJK의 신보 [비공식적기록 Ⅱ] 에 “종의 마지막”을 작곡해줬어요. 6월에 나올 저의 무료 공개 싱글도 제가 작곡을 했어요. 써놓은 곡들은 많이 있는데 정작 제가 활발하게 작곡 쪽으로는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앞으로 좀 더 여유가 된다면 프로듀싱도 또 활발히 해볼 생각이에요.





LE: 최근에 어떤 사이트에서 나온 기사에 바스코 님의 가사에 ‘인생은 한방’, ‘인생은 삼세판’, ‘인생은 2절부터’같은 다양한 인생론(?)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어요. (웃음) 이런 가사들에 대해서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혹시 가끔씩 제 자신이 포기하고 싶은 순간 있어요? 다 갖다 버리고 싶은 순간 있어요? 그러면서도 가끔씩 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낀 적 있어요? 그거예요. 어떨 때는 ‘인생은 삼세판이야.’ 라고 하면서 이를 꽉 무는 순간도 있지만, 어떨 때는 ‘인생은 한 방이야.’라고 이를 더 악물 때도 있어요. 그게 모순인가요? 제가 ‘인생은 삼세판이야. 힘내.’라고 얘기하면서 또 ‘인생은 한 방이야. 힘내.’라고도 얘기하는 게 모순인가요? 저는 제 가사에 자신 있어요. 왜냐하면 전 그때 그렇게 느꼈거든요. ‘인생은 삼세판이야. 한 번 더 할 수 있어. 자, 열심히 하자.’라고 느낄 때도 있었고, ‘아무것도 없어. 인생 한 방이야. 한 방에 가야 돼.’라고 느낄 때는 그렇게 쓴 거예요. 그게 왜 어색하죠? 되게 바보 같은 사람이 쓴 것 같아요. (전원 웃음) 병신 같아요. 인생을 살면서 그런 걸 안 느껴본 것 같아요. 존나 모노이고, 스테레오이지 못해. 되게 모노네요. 그렇게 자기는 완벽한가? ‘난 이거야.’라고 하면서 그렇게만 살아가는 사람인 것 같은데, 부럽다. 축하해요. 앞으로 자기가 갈 수 있는 길이 있어요. 가고 싶은 길이 있어요. 끝까지 자기가 그 길만을 갈 수 있을지 지켜봐요. 너는 실수 안 할 것 같아? 너는 실패 안 할 것 같아? 너는 안 무너질 것 같아? 너가 돈을 많이 벌었으면 그 다음에는 안 잃을 것 같아? 지켜보라 그래요. 인생은 삼세판이에요. 근데 한 방이야. 봐봐요. 전 그 얘기 할 때마다 되게 열 받아요. 한번만 더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어요. 자기 자신을 한 번만 더 돌이켜보면 돼요. ‘나는 그런 적이 없는가?’라고 생각해보면 돼요. 누군가가 바보 같은 짓을 했어요. 그때 가장 중요한 건 뭔지 알아요? 자신을 보는 거예요. ‘나는 저 사람처럼 그런 행동 해본 적 없나?’라고 생각하면 답은 나와요. 사람은 다 그런 존재에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거예요. 어쩔 때는 이 여자를 미친 듯이 사랑하다가도 어쩔 때는 이 여자 꼴도 보기 싫고 그러는 거예요. 그럼 제가 남창이에요? 걸레예요? 아뇨 전 그냥 사람이에요. 이 여자를 미친 듯이 사랑하다가도 그럴 수 있어요. 그게 인간이에요.





LE: 최근 디유닛(D-Unit)의 곡에 피처링을 해주기도 하셨어요. 메인스트림 활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네. DM 씨를 통해서 한 거고요. 메인스트림 활동은 당장에는 관심이 없지만 메이저 앨범은 한 장 정도 내 보고 싶어요. 





LE: 나오게 된다면 부다 사운드 통해서 나오게 될까요?

아, 아닐 것 같은데요. 부다 사운드는 힘들 것 같고요. 다른 데서 찾든지 해야 할 것 같아요. 꼭 한 번은 내보고 싶어요. 방송 활동 같은 것도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어요. 근데 하더라도 너무 갑자기 새로운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제 옷에 뭔가를 더 붙이는 느낌이었으면 하지, 갑자기 확 바꾸는 건 아닌 것 같고요.





LE: 브랜뉴뮤직(Brand New Music) 정도면 좋을 것 같은데요?

브랜뉴뮤직도 좋은 데죠. 정말 좋은 곳이죠. 어디든 생각해 놓은 곳은 없어요. 근데 제 자신이 떳떳할 정도로 올라가야 회사에 들어가서도 제가 제 것들을 버리지 않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빈지노(Beenzino)가 지금 가장 핫하잖아요. 빈지노가 어느 기획사를 가더라도 아마 빈지노는 자기 색을 안 버릴 수 있을 거예요. 자기 음악으로 이미 증명을 했으니까요. 저도 어느 정도는 좀 올라가서 들어가야 제 걸 버리지 않고, 회사에 휘둘리지 않고 내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LE: 오랜 기간 증명을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되게 겸손하신 것 같아요.

아니죠. 제가 증명한 게 뭐가 있어요? 없어요. 대중적으로 증명한 게 뭐가 있어요.





LE: 많은 질문을 거쳐 이제 인터뷰가 막바지입니다. 저희 힙합엘이는 자주 들어오시나요? 평소 어떻게 생각하고 계셨나요?

자주 들어가고요. 진짜 너무 좋아하는 사이트 중에 하나고, 제가 너무 많은 걸 얻어가고 있어요. 진짜 힙합엘이 관계자 분들께 정말 감사해요. 정말 많은 걸 배워가고 있어요. 가끔씩 해석된 게 너무 깨끗하게 되어서… (전원 웃음) 더 재미있는 부분인데 수위를 좀 낮춰 해석을 해서 아쉬운 부분은 있어요. 그런 게 좀 보이기는 하더라고요. 저도 정말 많은 걸 얻어가는 사이트고, 다른 힙합 팬들이라면 여긴 진짜 천국일 것 같아요. 영어 모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재미있겠어요. 정말 좋은 사이트이고, 앞으로 계속 갔으면 좋겠고 더 다양한 수익모델도 생겨서 돈도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컨텐츠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한국 힙합 컨텐츠도 늘려가는 것 같아서 너무 기분 좋아요. 처음에는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힙합엘이는 한국 힙합에 벽을 쌓고 있는 사이트인가?’라는 느낌도 약간은 받았었거든요. 요즘은 그런 게 많이 있어서 기분 좋고 진짜 감사해요.





LE: 최근에는 어떤 뮤지션을 많이 듣고 있는지, 또 어떤 뮤지션에게 영향을 받고 계시나요? 아까도 얘기해주셨지만, 이번엔 힙합 아티스트 관련해서 한 번 더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영향을 받는다는 게 저는 랩 음악보다 다른 장르에서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이번 앨범에서는 김광석 씨 영향을 많이 받았고요. 에어로스미스(Aerosmith) 영향도 많이 받았고요. 그래서 힙합 음악은 진짜 많이 안 듣는데… (웃음) 아니지. 많이 듣기는 하는데 막 ‘우와!’ 하지는 않아요. 최근에는 누노 베텐코트(Nuno Bettencourt)의 “Crave”를 듣고 되게 좋았고, 다른 장르에서 더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아까 말씀 드린 뮤지션들까지 포함해서요. 계속 그런 것에 빠져 있어요.





LE: 앞으로 이번 앨범으로의 활동 계획이나 바스코라는 뮤지션으로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게릴라 뮤직 Vol.2가 남았는데, 진짜 믿고 들을 수 있는 음악 만들 거고요. 게릴라뮤직 시리즈는 진짜 돈 생각 안하고 계속 하고 있으니까 정말 많이 즐겨주세요. 앞으로 메이저 앨범 내게 되면 또 열심히 할 거고, 당장 나올 EP는 다시 한 번 때리고 부시는 건데 기대해주시고, “위대한 유산” 기대해주시고, 그 다음에 나올 섹시한 EP 기대해주세요. 되게 많은, 다양한 걸 준비하고 있어서 이번 년도와 내년에 걸쳐서 여러 가지 모습들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이 기대해주시고 서포트해주세요. 솔직히 많은 팬 욕심 없어요. 그러니까 저를 진짜 좋아해주시는 분이면 숨어있지 말고 밖으로 나와서 같이 재미있게 놀았으면 좋겠어요. 조만간 홍대 놀이터에서 게릴라 무료 공연을 할 것 같은데 다 기어 나와서 같이 놀았으면 좋겠어요.





LE: 끝으로 질문에 없어서 하지 못한 말, 평소에 하고 싶으셨던 말이 있으시다면 부탁 드릴게요.

전 그게 되게 아쉬워요. 이번 더 콰이엇(The Quiett) 사건 보면서 느낀 거예요. 많은 팬 분들이나 매니아라고 하는 분들이, 활동을 하는 사람들인 뮤지션들을 깎아 내리기 바빠요. 죽이기 바빠요. 더 콰이엇이요? 잘못했어요. 잘했다는 건 아니에요. 물론 힙합 음악이 그 태도와 함께 가는 건 맞는데요. 그런 거 같아요. 뭐 하나 트집 잡아가지고 그걸로 내가 더 많이 아는 척, 내가 더 리얼한 척, 내가 누구보다 더 많이 아는 척하려는 거 같아요. 자신의 그 뭔가를 Show Off하기 위해서 이용해먹는 것 같아요. 제발 Shut The Fuck Up. 그냥 뮤지션도 사람이야. 연기하는 사람도 사람이야. 얼마나 힘든 줄 알아요? 이 쪽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걸로 얼마나 많이 자살한 줄 알아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약 먹고 있는 줄 알아요? 제발 거울 좀 봐요. 사람들 거울 좀 봐. 너네는 얼마나 모순 없고 얼마나 완벽하길래 우리를 그렇게 얘기를 해. 나도 똑같은 사람이야. 노무현도 이명박도 다 똑같은 사람이야. 더 콰이엇한테 뭘 더 바래? 우리 다 실수해. 제발 닥쳐. 너 많이 알어. 잘났어. 혼자 자위해. 왜 그걸 자꾸 보여주면서 잘난 척 하려 그래. 그런 사람들은 필요 없어요. 쓰레기에요. 전혀 도움되지 않아요. 발전적이지 못해요. 더 콰이엇이 낸 앨범들이 훨씬 발전적이었어요. 아마 제 모순이 이 씬에 더 기여하고 발전적이었을 거예요. 이 씬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하는 척 안 했으면 좋겠어요.





LE: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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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글 | Melo, Bluc, Twangsta
인터뷰, 사진 | 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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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8
  • 6.7 18:37

    헐...LE에서 내 소원을 이뤄주셨네요...
    스웩찍고 선리플달고 읽을게요 ㅋㅋㅋㅋㅋㅋ

  • Melo글쓴이
    6.7 18:59
    @HipHop
    사실 그때 댓글달때도 이미 준비중이었는데, 밝힐 수 없어서 모호하게 얘기를 했던 기억이... 하핳
  • 6.7 21:49
    @Melo
    어 기억하시네요 ㅋㅋㅋㅋ
    뭐 나왔으니...좋습니다!ㅋㅋ
  • 6.7 19:12
    잘봤어요!
  • 6.7 20:41
    한글자도 빠짐없이 정독했네요.
    너무 재미있는 인터뷰 감사합니다.
    바스코
    정말 묵묵히 자기 음악 멋지게 해내는 멋진 MC
  • 6.7 21:52
    진짜 길면서도 끝까지 집중할수 있는 인터뷰였어요 ㅋㅋㅋ
    이번 앨범뿐만 아니라 바스코씨의 과거까지...


    왜냐하면 정규를 작업하는 게 정말 힘들어요. 정말 그냥 쉽게 열 두 곡을 뚝딱한 것 같지만, 이 열 두 곡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버린 곡들이 되게 많아요. 3집 때만 해도 몇 백곡을 작업하고 그랬는데, 이번에도 백곡 정도를 작업했어요. 정규는 그 만큼 정규인 이유가 있어요. 그냥 열 두 곡 아무거나 가져다가 붙여서 정규를 낸 게 아니에요. 정규는 하나의 컨셉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큰 틀이 있기 때문에 열 몇 곡을 만드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이 부분 보고 메이저던 언더그라운드던 정규앨범을 너무 쉽게 내던 몇몇 뮤지션들이 생각나네요(싱글을 모아놓고 정규라던가...)

    마지막 더콰이엇관련 언급도 공감합니다.
    분명히 더콰이엇씨가 잘못했지만 아주 못죽여서 안달난 몇분들 보이시더라구요 ㅋㅋ(알겁니다 누구말하는지...)

    올해에는 바스코씨 작업물이 많이나올 계획이네요 ㅎㅎㅎ

    팬으로써 정말 기대합니다! :)
  • 6.7 22:05
    상남자 바스코 ㄷㄷ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바스코 음악을 들어야 겠네요.
  • 6.7 23:49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음악 항상 잘 듣고 있어요.
    마지막 부분도 좋은 말 해주셨네요.ㅋ
  • 6.8 01:04
    되게 뭔가 시원하게 뻥뚫린 느낌 잘읽었습니다. ㅎㅎ
  • 1 6.8 11:56
    저는 일리네어한테는 헤이터, 바스코한테는 쓰레기로 칭해지게 됐네여.
  • 6.8 12:14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 6.9 19:27
    예전 첫 인펜 공연에서 2집 앨범에 싸인을 받았었는데 벌써 2년이 흘렀네요. 그 사이 3,4집이 나왔고 항상 잘 듣고 있습니다. 인터뷰도 항상 다 챙겨보고 있습니다! 평산 신씨의 자랑 바스코 응원합니다.
  • 7.9 09:28
    바스코님 이번앨범 잘 듣고 있습니다
    Grey뮤직비디오 감동이었어요
    항상 좋은 행보 이어가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힙합의 자랑!
  • 언제나 응원하고있어요 바스코님!!!!!!!
  • 10.25 13:02
    바스코~!!
    99년인가 2000년인가 당시 바스코가 피제핍스로 활동하던 시절
    홍대 슬러거 클럽 공연 보러 갔다가
    담배 피면서 랩하는 모습 보고 컬쳐쇼크!!
    그냥 그때부터 뭔가 몰라도 멋졌다는 ㅎㅎ
  • 11.22 19:21
    별로 안좋아했는데 게릴라뮤직에 hero는 진짜 완전 명곡인듯 완전 많이 들었음 앨범 자체도 상당히 좋았는데 이번 앨범도 한번 들어봐야겠네요ㅎㅎ
  • 7.28 12:51
    디씨트라이브 ㅋㅋㅋ
    또라이들 집단이죠. 운영자부터 제정신이 아니에요.
    개인적으로는 반드시 없어져야할 커뮤니티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일베나 다를바 없죠. 인터뷰 정말 잘봤습니다. !
  • 8.4 23:50
    와우 이렇게 또 제 2전성기를 만드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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