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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재즈 뮤지션과 블랙뮤직

title: [회원구입불가]soulitude2013.03.09 01:21추천수 4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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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뮤지션과 블랙뮤직
 
제목을 거창하게 지어놨지만, 따지고 보면 재즈와 흑인음악이 만난 것은 그다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재즈의 탄생은 '흑'과 '백'이 만난 케이스라곤 하지만, 사실상, 래그타임(Ragtime), 블루스와 같은 흑인음악을 모태로 하는 만큼 재즈는 흑인음악의 영향을 다분히 가지고 출발한 장르다. 이후, 흑인 연주자들은 흑인음악 특유의 리듬감과 연주법을 강조한 밥(Bop) 계열의 재즈 음악을 했고, 이후 퓨전 재즈 시대에는 펑크(Funk)와 소울의 소리를 적극 차용한 재즈 음악을 선보였다. 이후 80년대와 90년대에 들어서는 대세로 성장했던 힙합과의 교류를 통해 재즈 힙합의 시대를 열기도 했다. 재즈는 꾸준히 외부 장르의 이식을 시도했기 때문에, 때로는 맨하탄 트랜스퍼(The Manhattan Transfer)의 "Java Jive"와 같이 장르의 경계가 모호한 음악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결국엔 그것도 장르 발전의 일부였던 셈이다. 자, 그럼 이제 흑인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흑인음악 뮤지션과의 활발한 교류를 했던 재즈 뮤지션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Branford Marsalis
 
이제는 '윈튼 마샬리스(Wynton Marsalis)의 형'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게 민망할 정도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브랜포드 마샬리스(Branford Marsalis)는 여러모로 흑인음악 마니아들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구루(Guru)의 재즈 힙합 앨범 [Guru's Jazzmatazz, Vol. 1]의 수록곡 "Transit Ride"에 알토와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구루의 음악에 환상적인 연주를 덧댔던 브랜포드 마샬리스는 바로 이듬해에 벅샷 르퐁크(Buckshot LeFonque)라는 밴드로 셀프타이틀 앨범 [Buckshot LeFonque]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재즈 음악을 베이스로 록, 힙합, 알앤비, 펑크(Funk) 등 다양한 음악을 집대성한 앨범으로, 신전통주의에 집착했던 그의 동생, 윈튼 마샬리스의 행보와는 대비되는 것이었다. 앨범의 모든 트랙들은 브랜포드와 프리모(DJ Premier)의 주도하에 완성되었다. 브랜포드와 세션맨들이 연주한 재즈 음악에 프리모가 힙합의 붐뱁 드럼과 스크래치를 더해 재즈 힙합으로 둔갑시키는 것이었다. 이들의 조우가 신기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굳이 따져본다면, 영화 [Mo' Better Blues]의 사운드트랙 앨범 수록곡인, 갱 스타(Gang Starr)의 "Jazz Thing"에서 이미 대면식을 했었으니, 두 장르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만남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두 장르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만남과 이러한 합작을 통해 완성된 마스터피스는 음악 그 자체로도 위대했지만, 뛰어난 음악 속에 흑인들의 불합리한 사회적 입지 등의 인권문제를 다루면서 한층 더 높은 레벨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Frank Sinatra / Tony Bennett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는 재즈 보컬리스트라고 평가하기보다는 팝 아티스트로 보는 것이 나을 듯하다. 재즈가 팝 음악의 중심이었던 때부터 자리하여 오랜 시간 꾸준히 그 위치를 사수했으니 말이다. 뉴욕을 대표하는 곡이 이제는 제이지(Jay-Z)의 "Empire State of Mind"가 되어버렸지만, 그전까지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New York, New York"이었다는 점을 상기시켜본다면 이때까지 팝 음악계에서  그의 입지가 금방 그려지지 않는가? 프랭크 시나트라는 말년에 듀엣곡으로 가득 채운 앨범을 두 장 발표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1993년과 1994년에 각각 발표한 [Duets]와 [Duets II]다. 이 두 앨범에는 다양한 장르 음악가들이 참여했고 흑인 음악가들 역시 대거 자리했다. 대표적으로는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아니타 베이커(Anita Baker), 글래디스 나이트(Gladys Knight),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패티 라벨(Pattie LaBelle)이 있다. 사실상 전성기가 지나도 한참 지난 이 뮤지션의 두 앨범은 화려한 참여진을 무기 삼아 미국 내에서만 각각 트리플 플래티넘과 플래티넘이라는 대단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굉장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재즈 보컬리스트 토니 베넷(Tony Bennett)도 역시 두 장의 듀엣 앨범을 발표했는데 재미있게도 그것들은 그의 80세와 85세를 기념한 [Duets: An American Classic]와 [Duets II]다. 그의 듀엣 파트너는 대개 록, 재즈, 컨트리 뮤지션들이지만, 흑인 뮤지션과도 함께 하고 있다. 존 레전드(John Legend), 스티비 원더, 아레사 프랭클린,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그리고 사망 직전의 녹음으로 화제를 불러모았던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까지, 프랭크 시나트라와 함께 했던 뮤지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아티스트들이 그와 입을 맞췄다. 화려한 참여진과, '에이미 와인하우스 효과(?)'에 힘입어 두 번째 듀엣 앨범인 [Duets II]는 음반 시장의 불황 속에서도 미국 내에서만 100만 장이 넘는 대단한 판매 기록을 세웠다. 작년 말에는 이런 성공을 이어보려는 듯, [Viva Duets]이라는 세 번째 듀엣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이건 너무 멀리 나간 상술이 아닌가 싶기도...
 




 
George Benson
 
리드 보컬리스트가 다른 악기까지 연주하는 경우가 많은 록과는 달리, 연주자와 가수의 역할이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는 재즈 음악계에선, 뛰어난 연주 실력과 가창력을 모두 겸비하고 있는 경우는 쉽사리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여기에는 재즈에서 주로 메인이 되는 악기들이 대개 연주와 동시에 가창이 불가능한 관악기라는 점이나, 연주 음악이 보컬 음악에 양적으로 우위를 점한다는 이유도 포함해야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천재 재즈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두 재능을 모두 가진 아티스트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재즈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George Benson)은 천운을 갖고 태어난 사나이다. 그의 이름 앞에 '재즈 기타리스트'라고 표기는 했지만, 그에게 '재즈'나 '기타리스트'라는 식의 이름표를 붙이는 것은 다소 조심스러운데, 그건 그가 재즈를 넘나드는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단순히 기타리스트가 아닌 보컬리스트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는 자신의 음악에서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편인데, 가장 대표적인 것들로는 비틀즈(The Beatles)의 1969년작 [Abbey Road]를 재즈로 둔갑시킨 [The Other Side of Abbey Road]와 스무스 재즈의 형태로 알앤비/소울에 한층 다가선 [Breezin']이 있다. 알앤비라는 대중친화적인 소리로 불특정다수의 청자들에게 어필했던 [Breezin']은 지금까지 미국 내에서만 300만 장이 넘는 세일즈를 기록하며 조지 벤슨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앨범으로 남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들에게 가장 익숙한 곡은 "Give Me the Night"일 것이다. 퀸시 존스(Quincy Jones)의 주도하에 완성한 [Give Me the Night]의 음악은 재즈도 알앤비도 아닌 '펑크(Funk)' 그 자체였다. 아쉽게도 퀸시 존스와의 합작은 이 한 장의 앨범으로 끝이 났지만, 본작을 통해 조지 벤슨은 자신의 활동 폭이 단지 재즈라는 울타리 안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대중들에게 강하게 어필해 보였다.
 

 



Grover Washington, Jr.
 
원곡보다도 수많은 커버 버전으로 친숙한 "Just the Two of Us"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이 몽환적이고 소울풀한 곡을 단순히 '재즈 음악'으로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재즈적인 느낌보다는 알앤비/소울의 분위기가 진하게 나는 이 곡은, "Lean on Me"로 잘 알려진 소울 레전드 빌 위더스(Bill Withers)와 재즈 색소포니스트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Grover Washington, Jr)가 합심하여 시도한 알앤비와 재즈의 만남이었다. 그렇게 소울재즈(Soul-Jazz) 명곡은 탄생했다.
 
조지 그로버 워싱턴의 대중적인 입지를 끌어올린 것은 "Just the Two of Us"가 수록된 [Winelight]이었지만, 그가 흑인음악에 관심을 보여온 것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였다. 그중 가장 완성도 높았던 것을 꼽아보라면 [Inner City Blues]가 될 것이다. 고전 재즈의 독자적인 길보다는 다른 장르와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퓨젼 재즈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던 70년대에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가 재즈의 짝으로 선택한 것은 흑인음악이었다. 그는 기존의 소울 명곡들을 재즈로 연주하여 [Inner City Blues]에 수록했는데, 레이 찰스(Ray Charles)의 대표곡이라 말할 수 있는 "Georgia On My Mind"와 마빈 게이(Marvin Gaye)의 대표 히트 넘버 "Inner City Blues"와 "Mercy Mercy Me (The Ecology)"가 이 앨범의 대표 격 트랙들이다. 클래시컬 뮤직과 재즈를 접목하여 음악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작곡가 조지 거슈인(George Gershwin)의 "I Loves You Porgy"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커버해낸 것도 앨범의 백미다. 빌 위더스의 "Ain`t No Sunshine"도 재지하게 커버되었는데, 이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Just the Two of Us"가 그로버 워싱턴과 빌 위더스의 첫 만남은 아니었던 셈이다.
 



 

Herbie Hancock
 
국내 재즈 애호가들에겐 '허병국'이라는 한국식 이름으로 친숙한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의 진짜 별명은 '카멜레온'이다. 다양한 악기, 그리고 다양한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그의 넓은 활동 폭을 묘사하기에 이만한 단어도 없을 것이다. 그가 음악가로 커리어를 시작한 것은 거장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5중주 밴드였다. 60년대 중반부터 마일즈 데이비스와 함께하면서 모달 재즈(Modal Jazz)와 포스트밥(Post-bop) 기반의 재즈 장르를 다루다가 60년대 말부터는 퓨전 재즈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렇게 허비 행콕은, 퓨전 재즈의 시대를 연 마일즈 데이비스의 주요 조력자 중 한 명이었다.
 
70년대에 들어서자 마일즈 데이비스 퀸텐의 멤버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퓨전 재즈를 다루기 시작했는데, 색소폰 주자였던 웨인 쇼터(Wayne Shorter)는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라는 재즈 록 밴드를 꾸려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고, 허비 행콕은 흑인음악 소리를 빌려 소울재즈/펑키재즈의 문을 두드렸다. 이때 허비 행콕이 발표한 앨범이 바로, 전자 악기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생성해낸 펑키한 리듬감으로 재즈의 새로운 지평을 연 [Head Hunters]다. 그의 음악은 펑키 재즈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펑키 재즈에서 한층 더 발전시켜 애시드 재즈까지 폭을 넓혔고, 심지어는 [Dis Is Da Draum]이라는 앨범을 통해서는 재즈 힙합까지 시도하기에 이른다. 또한, 그는 다양한 장르 뮤지션들과의 협연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흑인음악가들과 궁합이 잘 맞았던 걸로 유명하다. 가장 최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The Imagine Project]에는 존 레전드, 씰(Seal), 샤카 칸(Chaka Khan), 인디아 아리(India.Arie), 케이난(K'naan)과 같은 블랙뮤직 아티스트들을 대거 참여했으며, 샘 쿡(Sam Cooke)의 명곡 "A Change is Gonna Come"이 커버되었다.
 




 
Miles Davis
 
역사적으로 재즈는 '수축'과 '팽창' 프로세스의 반복이었다. 대중적인 입지가 필요할 때에는 청자들의 니즈를 수용하여 팽창했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뒤에는 뮤지션들이 연주자를 위한 음악을 하여 수축했다. 그러나 수축의 결과로 대중들이 떠나가게 되자, 다시 대중적인 재즈 음악을 선보이게 되고, 이런 식의 반복은 끝없이 이어졌다. 흔히, 저녁 시간에 카페에서 들을 법한 나긋한 이지리스닝 계열의 재즈 음악은 팽창의 결과물이고, 난해하다고 느껴지는 기교 중심적 재즈는 수축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경우에는 그 영향력이 막대하여, 팽창과 수축의 진영에 모두 걸쳐 있긴 하지만, 굳이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말하자면, 팽창을 이끌었던 공이 더 컸다. 개개인의 기교가 제한된 빅밴드에 구속되었던 뮤지션들은, 트렌드가 소규모 밴드로 재편되자 자신들의 개인기와 연주력을 과시하는 음악을 선보였고 그것이 비밥(Be-bop)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음악가들이 너무 자신들의 연주에 집중한 나머지 감상자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이를 개선하여 나온 것이 대중친화적인 하드밥과 쿨 재즈(Cool Jazz)였다. 이 두 장르의 탄생에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역할이 지대했으며, 특히 쿨 재즈의 경우 마일즈 데이비스의 [Kind of Blue]와 [The Birth of Cool]을 그 시초 격으로 꼽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60년대에 들어 재즈는 모달 재즈, 프리 재즈(Free Jazz)의 형식으로 발전되어 갔고, 마일즈 데이비스는 이러한 기류의 중심에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수축'의 역사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중음악의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한 록과 소울에 밀려 재즈는 비주류로 몰락했다. 이때 마일즈 데이비스는 퓨전 재즈에 눈을 뜨게 된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지미 핸드릭스(Jimi Hendrix)의 신들린 듯한 전자 기타 연주를 보고 영감을 받은 마일즈 데이비스는 자신의 음악에 전자 악기를 적극 도입하여 퓨전 재즈 앨범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가 [Bitches Brew]다. 이렇게 그는 대중들이 원하는 소리를 재즈에 이식시키면서 다시 한 번 팽창의 시대를 연 것이다. 그는 이후 록뿐만 아니라 펑크를 포함한 다양한 흑인음악도 자신의 음악에 도입했는데, 그중에는 [Doo-Bop]이라는 재즈 힙합 앨범도 있다. 그는 힙합이 점차 대세로 성장하고 있던 이때를 놓치지 않고 랩을 재즈에 가미한 것이다. 앨범의 힙합적인 사운드 메이킹은, 90년대 명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렸던 이지 모 비(Easy Mo Bee)가 담당했다. 본작에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멋진 트렘펫 연주도 있지만, 쿨 앤 더 갱(Kool & the Gang),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케이씨 앤 더 썬샤인 밴드(KC & the Sunshine Band) 등의 소울/펑크 음악가들의 곡을 샘플링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만큼, 힙합 특유의 작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마일즈 데이비스는 앨범 작업 도중 사망하여, [Doo-Bop]은 사후 앨범으로 발매되었고, 마일즈 데이비스 최초의 재즈 힙합 앨범이자 마지막 정규 앨범으로 남게 되었다.
 



 

Mike Carr
 
재즈 건반 연주자 마이크 카(Mike Carr)는 아마도 본문에서 언급되는 뮤지션들 중 가장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그런 데에는 그가 여타 뮤지션들만한 커리어를 쌓지 못했다는 것과 그가 미국계가 아닌 영국인이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이크 카는 재즈 힙합의 탄생에 앞장서며 음악계에 이름을 남기는 데에 성공하는데, 1985년에 영국인으로 구성된 재즈 밴드 카고(Cargo)로 [Jazz Rap]이라는 앨범을 발표해 재즈 힙합의 표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Jazz Rap]의 음악은 흔한 재즈 힙합의 소리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편인데, 오히려 펑키 재즈 사운드를 샘플링한 올드스쿨 힙합의 느낌에 가깝다. 그러나 보컬 사이사이에 연주되는, 거장 로니 스캇(Ronnie Scott)과 가이 베이커(Guy Baker)의 테너 색소폰과 트럼펫 연주는 이 곡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를 단숨에 날려버린다. "Jazz Rap"의 보컬 버전과 인스트루멘탈 버전뿐인 앨범 구성이지만, 본작은 마일즈 데이비스의 [Doo-Bop]과 함께 재즈 힙합의 모델을 제시했던 선구자 격 음반이었다.
 




 
Robert Glasper
 
작년 2012년 재즈계에는, 앞서 언급했던 브랜포드 마샬리스를 포함해 칙 코리아(Chick Corea), 팻 매스니(Pat Metheny)와 같은 기존 거장들의 성공적인 컴백과 '존 콘트레인(John Coltrane)의 아들'이라는 이름표를 벗어 던진 라비 콜트레인(Ravi Coltrane)의 새 앨범, 그리고 재즈 보컬리스트로 변신한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선보인 첫 재즈 앨범 등 대단한 음반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 무엇도 로버트 글래스퍼(Robert Glasper)의 [Black Radio]만큼의 신선함을 제공해주진 못했다. 물론, 2013년도 그래미 시상식에서 칙 코리아는 무려 5부문에 올라 2부문을 수상하며 재즈 뮤지션으로는 최고의 지점에 올랐지만, 로버트 글래스퍼는 알앤비에서 2부문에 올라 '올해의 알앤비 앨범'까지 수상하며 칙 코리아와는 또 다른 의미로 주목을 받았다.
 
물론, 재즈 뮤지션이 알앤비 부문에 오르고 수상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런데 과거에 알앤비 부문을 수상했던 재즈 뮤지션은 대개 알앤비 그루브가 느껴지는 재즈 음악을 선보인 경우였다. 이에 반해, 로버트 글래스퍼는 적극적으로 알앤비를 수용하는 방식을 통해 수상을 이뤄냈다. 이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앨범의 크레딧을 살펴보면 된다. 에리카 바두(Erykah Badu), 레디시(Ledisi), 빌랄(Bilal), 뮤직 소울차일드(Musiq Soulchild), 크리셋 미셸(Chriette Michele), 미셸 엔디지오첼로(Meshell Ndegeocello), 레일라 해서웨이(Lalah Hathaway)가 참여했는데, 이걸 보면 로버트 글래스퍼는 알앤비의 대중적인 사운드보다는 네오 소울이라든지 컨템포러리 소울을 통한 진중한 느낌의 알앤비 음악을 추구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이는 자극적이지도 과하게 꾸며지지도 않은 로버트 글래스퍼의 연주와 완벽한 궁합을 맞춘 뛰어난 선택으로 보인다.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라든지 야신 베이(Yasiin Bey a.k.a. Mos Def)와 같은 힙합 뮤지션의 랩도 적절하게 첨가되어 앨범의 흥을 돋운다. 그리고 같은 해에 로버트 글래스퍼는, 나인스 원더(9th Wonder), 피트 락(Pete Rock), 퀘스트러브(?uestlove) 등의 힙합 프로듀서들의 손을 거친 리믹스 앨범 [Black Radio Recovered: The Remix EP]을 발표했는데, 나인스 원더가 리믹스한 "Afro Blue"에는 폰테(Phonte)가, 퀘스트러브가 리믹스한 곡에는 루츠(The Roots)와 솔란지(Solange Knowles)가 참여했으니, 리믹스 앨범과 원작을 비교해 들어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운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Quincy Jones
 
클래식 음악 공부를 위해 파리에서 유학했으며, 이후, 팝, 알앤비, 힙합, 재즈 등 다양한 장르에 걸친 음악 레코딩 프로듀서로 활약하며 수많은 천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퀸시 존스를 특정 장르의 인물로 언급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프로듀서 퀸시 존스의 이야기고, 뮤지션 퀸시 존스를 말한다면 스토리는 크게 달라진다. 퀸시 존스는 시작부터가 뿌리부터가 굵고 질긴 길거리의 재즈 트럼펫 연주자였으니 말이다.
 
퀸시 존스는 앨범 프로듀서로도 이름을 날렸지만, 이미 그 이전에 자신의 음반을 내놓은 뮤지션이었다. 1956년 [This is How I Feel About Jazz]로 재즈 뮤지션의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70년대에는 대세를 따라 퓨전 재즈를 선보이기도 했고, 스티비 원더 등 여러 소울 뮤지션들의 음악을 커버해내기도 했다. 그가 소울을 수용한 결과가 바로, 레이 브라운(Ray Brown)과 함께 작업한 [Body Heat]였다. [Body Heat]와 더불어 대중들이 기억하는 퀸스 존스의 명반은, 그가 한창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Thriller]를 작업하고 있던 시기에 발표한 [The Dude]일 것이다. 이 앨범은 재즈보다는 알앤비적인 색이 더 진하게 나타나는데, 그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데뷔조차 하지 않았던 알앤비 뮤지션 제임스 잉그램(James Ingram)과, 데뷔는 했지만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있던 패티 어스틴(Patti Austin)을  앨범에 중용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결국 제임스 잉그램이 부른 알앤비 넘버 "Just Once"와 "One Hundred Ways"가 대형 히트를 기록하며 제임스 잉그램은 슈퍼스타로 등극했고, 패티 어스틴도 더불어 스타로 등극하는 결과를 낳았다.
 
퀸시 존스가 발표한 알앤비 앨범 [The Dude]도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흑인음악 애호가라면, 그보다 앞서 그가 80년대 말에 발표했던 [Back on the Block]을 떠올릴 것이다. 재즈 힙합의 탄생에는 앞서 언급했던 마일즈 데이비스와 마이크 카의 앨범도 있었지만, 퀸시 존스의 [Back on the Block]은 언더그라운드 문화였던 힙합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린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앨범에는 쿨 모 디(Kool Moe Dee), 빅 대디 케인(Big Daddy Kane), 아이스티(Ice-T), 멜리 멜(Melle Mel)과 같은 올드스쿨 힙합 거장들을 포함해 엘 드바지(El Debarge), 시다 가렛(Siedah Garrett) 같은 알앤비 보컬리스트들도 참여했다. [Back on the Block]은 33회 그래미 시상식을 7부문이나 휩쓴 맘모스급 앨범이었다. 트렌드를 수용하고 젊은 피를 수혈받기 원했던 퀸시 존스의 의지는 2010년대에도 이어졌는데, 그 결과가 바로 [Q: Soul Bossa Nostra]다. 이 앨범은 그가 기존에 프로듀싱했던 곡을 신세대 감성에 맞춘 세련된 느낌으로 단장한 후, T.I., B.o.B, 티페인(T-Pain), 어셔(Usher), 루다크리스(Ludacris), 스눕 독(Snoop Dogg) 등 서른 개에 이르는 힙합/알앤비 팀을 투입해 완성한 대단한 걸작이다. 음반 작업에서의 다양한 포지션과 각종 장르 간의 벽을 허물며 음악에 기여를 해온 퀸시 존스는, 지난 세기와 현재가 동시에 공유하는 위대한 거장이다.


글 | greenpla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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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 재즈도 막상들으면 매력적인 장르지만 손이 잘안가는...
  • 3.9 02:13

    좋은 음악 알아가네요 ㅎㅎ

    이글과 함께 읽으시면 좋은 글이 있어서 올려봐요

    http://www.jazz.com/dozens/the-dozens-hip-hop-meets-jazz

    이 원문을 번역 해볼려고도 생각했는데 미루다 미루다 결국은 안하게 되버렸네요

    글과 함께 더 들어볼만한 곡들을 추천한다면

    재즈 아티스트 로이 하그로브가 프론트맨인 RH Factor의

    1집 앨범에 common free style 이란곡에 커먼이 랩피쳐링을 했습니다

    펑키한 재즈를 듣고 싶다면 rh factor 적극 추천해요 ㅋㅋ

    그리고 보사노바의 거장 세르지오 멘데스의 timeless도 정말 듣기 좋더라구요

    저스틴 팀버레이크, 질 스콧, 블랙 땃, 윌아이엠, 에리카 바두

    큐팁, 존레전드, 파라오 몬치, 스티비 원더가 참여를 한 음반입니다

    곡중에 큐팁과 윌아이엠이 함께한 the frog 추천해요

  • 3.9 07:44
    프랭크 시나트라..♥
  • 3.9 09:09
    저도 Tony Benett의 Duet시리즈는 재밌게 들었어요ㅎ
  • TIP
    3.10 23:18
    소울이 너무 좋아
  • 3.11 18:53
    마일드 데이비스 퀸텐 오타나신듯
  • 3.17 21:24
    내사랑 에이미 와인하우스..................
  • 3.21 18:53
    에이미 와인하우스 보니깐 좀 저리네여...ㅠ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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