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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REWIND 16화, 훵크의 완성, 슬라이 & 더 패밀리 스톤

쏘울풀몬스터2011.10.09 19:34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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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IND] 16화, 훵크의 완성, 슬라이 & 더 패밀리 스톤



♬ Sly & The Family Stone - Family Affair (1971)

James Brown may have invented funk,
but Sly Stone perfected it;
제임스 브라운이 훵크를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슬라이 스톤이 그것을 완벽히 했다.

이 한 문장은 훵크 역사상 가장 큰 화제를 일으킨 그룹
슬라이&더 훼밀리 스톤, 그리고 리더 슬라이 스톤에 대해서
가장 잘 말해주고 있는 문장이다.

훵크의 창시자이자 디스코 리듬의 창시자인 슬라이 스톤은
캘리포니아에서 그의 가족 몇몇과 친구들을 모아 롹밴드를 결성한다.
그것이 슬라이&더 패밀리 스톤의 시작이었다.


♬ Sly & The Family Stone - Dance to the Music (1968)



그들은 67년에 데뷔앨범 어홀뉴씽을 통해 활동을 시작했으며
단 5장의 정규앨범만을 발표했고, 81년에 팀의 해체를 맞았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이 위대한 그룹이 훵크 역사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대중음악 평단에서는 그들의 대중음악사적 의의를 이렇게 표현한다.
'아프로아메리칸음악은 두가지로 분류된다 : 슬라이& 더 패밀리 스톤 이전의 음악과 그 이후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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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엄청난 그룹을 이끈 리더는 달라스에서 태어난 슬라이 스톤, 본명은 실버스타 스튜어트.
그는 그의 가족인 기타리스트 프레디 스톤과 합심하여 팀을 결성하고
드러머 그레그 에리코, 섹소포니스트 제리 마티니, 베이시스트 래리 그레이험 등을 영입한다.
이 그룹은 백인과 흑인, 남자와 여자가 한데 섞인 밴드의 구성만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으며 등장했다.

슬라이 스톤은 성장기에 겪었던 히피 개혁의 새로운 흐름에 공감하여
정치적, 사회적 비판이 담긴 사이키델릭 소울음악을 구사했다.
그의 음악은 히피사조에 어울리는 반항적, 비판적 메세지와 함께 역동적인 폴리리듬을 가지고 있었는데
리드미컬한 그의 음악은 후에 디스코 음악의 시작을 불러일으켰고
그의 음악적 재능은 제임스 브라운과 함께 훵크의 창시자로 지목될 만큼 위대했다.
스스로가 보컬, 작사, 작곡을 도맡았고, 기타를 포함한 여러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연주자이기도 했다.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하게 존재했던 당시 그들의 앨범판매는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그룹맴버에 백인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메리트가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기록한 판매고는 다른 흑인가수들에 비교하면 엄청난 대기록이었다.


♬ Sly & The Family Stone - Everyday People (1968)

그러나 밴드가 최정상의 자리에 오르자, 팀의 중심, 슬라이 스톤은 마약에 찌든 삶을 살게된다.
베이시스트 레리 그레이험과 스톤 가족들 간의 관계도 악화되었고,
슬라이 스톤은 항상 바이올린 케이스에 불법약물을 소지하고 다니며 마약파티를 벌였다.
덕분에 그룹활동이 급격한 추락을 겪게 되었고 몇년간 단 한개의 싱글을 냈을 정도로 활동도 저조했다.
한때, 슬라이 스톤은 약물에서 벗어나기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70년대에는 그들 본연의 색을 잃기 시작했고, 레리와 슬라이의 갈등은 심해져만 갔다.
심지어 레리가 슬라이를 죽이기 위해 청부업자를 고용했다는 소문까지 들리기 시작했고,
레리는 이 루머 때문에 습격당하여 아내와 함께 머물던 호텔의 창문을 통해 가까스로 탈출한 적도 있다.


♬ Sly & The Family Stone - If You Want Me To Stay (1973)

 

팀의 갈등이 계속되고 다사다난한 날들이 계속되면서 결국 그들은 서로가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들은 뿔뿔히 흩어졌지만 슬라이&더 패밀리 스톤의 음악은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았고
래리 그레이험처럼 각자가 솔로 활동을 통해서 전설적인 뮤지션으로 남기도 했다.
그들의 음악은 허비행곡이나 마이클 잭슨, 레드 핫 필리페퍼스, 존 메이어 등 많은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재즈의 살아있는 역사, 마일스 데이비스조차도 훵크를 즐겨들을 당시에 슬라이 스톤의 앨범을 가장 좋아했다고.. 최근 윌아엠을 비롯한 기라성같은 후배 뮤지션들이 재해석한 그들의 헌정음반이 발매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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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11.28 13:03

    sly앤더 패밀리 스톤이네요!! don't call nigga whity don't call me whity nigga가 처음 들은 곡이었죠 ㅋㅋ 훵크이 계보가 제임스브라운,헨드릭스-슬라이스톤-펑카델릭-프린스인가요?

  • 11.28 15:22
    @JASON0119

    특별히 계보랄것은 없구요 워낙 훵크란 장르가 복합적이고 광범위해서

    년도별 전성기로 보면 

    60년대가 제임스브라운, 70년대가 슬라이스톤/훵커델릭, 80년대가 프린스 이정도라고 할수 있겠네요. 


    1)

    모든 훵크, 소울 뮤지션이 제임스브라운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기에

    제임스브라운의 후계자가 누구냐는 질문은 무의미하죠 사실


    하지만 저는 프린스와 마이클잭슨이 제임스브라운의 그 무엇을 가장 잘 이어받았다고 생각합니다.

    > 프린스는 제임스브라운 음악의 어떤 동물적이고, 원초적이고, sexual 한 코드를 이어받아

    남녀가 섹스할때의 교성을 자신의 음악의 모티프로 삼기도 했구요.

    > 마이클잭슨은 제임스브라운의 퍼포먼스적인 측면, 특히 제임스브라운 스텝을 기초로

    자신의 독특한 춤 스타일을 개발해내기도 했죠. 초기의 잭슨의 시원시원한 샤우팅 역시

    제임스브라운 특유의 걸걸한 샤우팅 창법에서 비롯되기도 했구요.


    2)

    지미 핸드릭스는 한 장르를 이끌었다기보단 전설적인 기타연주자로 보는 편이 낫겠네요

    싸이키델릭, 블루스부터해서 하드한 롹스타일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한 천부적인 연주자였죠.


    3)

    훵커델릭은 70,80년대를 풍미한 훵크 밴드인데요

    그 수장인 조지클린턴은 훵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죠. 살아있는 역사라고나 할까요

    워낙 오랫동안 다양한 시도로 훵크음악을 이끌어온 사람이기때문이죠

    마일즈 데이비스를 째즈의 역사 그자체라고 한다면 조지클린턴 역시 그런인물이죠.

    그의 밴드를 거쳐간 사람들 중에선 부치콜린스, 메이시오 파커(제임스브라운의 horn 세션이엇습니다)

    같이 훵크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연주가들도 있었답니다.

    그영향력을 무시하기 힘들죠


    후엔 west coast의 G-funk 가 이들의 음악에 영향을 받죠.

    G-funk의 그 특유의 전자음들이 바로 조지클링턴의 훵크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입니다.

  • 11.28 15:23
    @JASON0119

    이번엔 이 정도까지만 개괄적으로 말씀드릴게요 ㅎㅎ

    후에 차차 훵크의 전설적인 뮤지션들과 연주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다룰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PS) 아 그리고 흑인음악에 뿌리를 두고있는 Funk와 롹음악인 Punk 를 구분하기위해 

          모든 표기를 훵크라고 적은점 이해해주시길  


  • 11.28 17:42
    @쏘울풀몬스터

    감사합니다 ㅎㅎ 많은걸 배워가네요 훵카델릭의 음악은 maggot brain 앨범을 접해봤어요. 에디헤이즐의 기타솔로를 듣고 단번에 눈물을 흘렸죠 ㅋㅋ 비하인드스토리까지 멋있더라구요

  • 11.28 22:37

    쏘울풀몬스터님 제임스 브라운 애기가 나와서 말인데 rewind 1화 제임스브라운 사진만 되있고 내용을 보니 레이찰스 내용으로 되있네요 ㅎㅎㅎㅎㅎ


    나만그런가 ;;ㅋ

  • 11.29 19:10

    크흑 이 시리즈 정말 사랑합니다. 감사.

  • 12.1 04:26

    상세한 설명까지! 잘 보고 잘 듣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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