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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디의 ‘패션 부적응자’ - ⑭2017년을 마무리하며

Beasel2017.12.31 15:42추천수 3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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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디의 ‘패션 부적응자’

‘정석’이라는 말은 나에게 항상 불편한 존재였다. 학교에 다닐 때나 사회에 나온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공부, 대학에서 시작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패션에 관해서도 그렇다. 천편일률적인 것이 싫었다. 재미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이 글은 ‘패션’에 대해 삐딱하게 보는 내 시선이 담겨있다. 결코 부정적인 면이 화두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틀에 박힌 패션관을 조금은 '틀어서' 보자는 취지이다. 그게 또 재밌기도 하고. 우리는 어쩌면 비정상 안에서 정상인으로 잘 버텨내며, 오히려 부적응자라는 낙인을 얻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이어질 이야기는 이런 부적응자들의 지옥에서 작은 공감을 갈구하는 소심한 끄적임이다.


*한 달에 한 번 연재될 연재물임을 알려드립니다.


2017년 12월 31일, 부푼 기대를 안고 시작했던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 그동안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일 년의 성과를 마주하기도 하고 실패에 대해 자책하기도 한다. 패션업계 또한 다르지 않다. 패션업계 특유의 속성인 변덕스러움과 쇼맨십은 여전했고, 어떠한 영역보다 빨랐으며, 업계 당사자들은 그것에 누구보다 민첩하게 대응했다.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일 년의 패션 이야기들. 고루한 스토리, 정설에서 벗어나 변화를 기꺼이 수용했던 한 해이자 어쩌면 본 시리즈의 취지에 가장 적합한 시기. 변혁의 시기였던 2017년을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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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해의 디자이너


올 한해, 구찌(Gucci), 베트멍(Vetements), 발렌시아가(Balenciaga), 오프 화이트(OFF-WHITE) 등 소위 ‘천재’라 불리는 유수의 디자이너 브랜드가 특히 눈에 띄었지만, 그 최전선에 캘빈 클라인(CALVIN KLIEN)의 라프 시몬스(Raf Simons)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2016년 하반기 캘빈 클라인의 유례없는 직책인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를 맡으며 새로운 변혁의 흐름을 몰고 왔다. 


클래식과 지적인 무드를 대변하는 브랜드에 위트를 얹은 특유의 세련됨은 왜 그가 최고의 디자이너로 아직 거론되는지 여실히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는 혁신적인 변화의 중심에 있었던 그의 공로가 인정되어 영국패션협회가 주최하는 <2017 패션 어워즈>에서도 당당히 ‘올해의 디자이너’로도 이름을 올렸다. 유니클로(Uniqlo)와의 협업과 함께 셀러브리티들의 브랜드가 된 조나단 앤더슨(JW Anderson)과 영국패션 신의 태풍의 중심 크레이그 그린(Craig Green) 또한 너무 훌륭했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라프 시몬스의 무게감은 여전히 독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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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이키의 브랜딩 그리고 오프 화이트


디지털 미디어의 홍수, 세대의 변화에 따른 유연한 수용력은 현재 패션 브랜드의 꼭 필요한 부분이 되었다. 올 한해, 공룡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Nike)의 행보는 얄미울 정도로 뛰어났다. 기성복의 지루한 이미지를 탈피함과 더불어 매력적인 상품으로 탈바꿈하는 그들의 브랜딩 능력은 놀라웠다. 나이키의 정체성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스트릿 무드를 중심으로 트렌디한 향을 얹길 원했던 그들에게 버질 아블로(Vilgil Abloh)의 오프 화이트는 최고의 파트너였다. 


나이키 역시 고루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우리는 너희들이 열광할 수 있는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라고 말하듯 보여주는 그들의 행보는 마니아들을 열광하게 했다. 버질 아블로의 파이렉스(Pyrex) 시절, 그는 이런 일련의 상황들을 예견했을까? 나이키와 오프 화이트의 윈윈(Win-win) 컬렉션이 된 ‘더 텐 컬렉션’은 나이키, 오프 화이트 모두에게 고무적인 작업으로 남을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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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이패션의 스트릿화


2017년은 메종의 가치에 중심을 두던 코어 패션 신이 하위패션으로 여겨지던 스트릿 패션에 더욱 관심을 가진 시기였다. 빠른 시대 변화에 더욱 유연하게 대응하던 스트릿 패션과 컬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며 코어 신에서 비주류 계층이었던 스트릿 마니아들이 주류로 전환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위 하이패션이라 불리던 그들은 각자의 브랜드의 문화를 형성하면서 주류를 납득시킬만한 제품군을 선보이고, 하이패션 브랜드 사이에도 무리 없이 섞이길 원했다. 루이비통(Louis Vuitton)이 스트릿 패션의 아이콘인 슈프림(Supreme)과 콜라보레이션 컬렉션을 기획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이와 더불어 구찌와 버버리(Burberry), 발렌시아가, 젊어진 멀버리(Mulberry)가 하이패션의 젊은 스트릿 무드를 얹은 대표적 브랜드이다.


모든 것이 뒤섞이고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 시대에 그들은 변화했고 씨 나우, 바이 나우(See now, Buy now) 프로젝트와 디지털 미디어의 다각적 활용 등은 그들의 변화된 노선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예전처럼 하나의 정답이었던 시대는 지났다. 정통파라 불리던 코어 신의 하이패션 브랜드들은 현재 규정되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들의 창작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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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패셔니스타의 부재


특정 계층의 전유물인 양 여겨지던 저항 정신과 기성세대를 조롱하는 브랜딩이 주류의 계층에게 유입되며 젊은이들은 크게 열광했다. 이렇게 다채로운 변혁의 시기를 맞이한 패션 신에도 아쉬운 면이 있다. 바로 ‘패셔니스타의 부재’이다. 물론 칸예 웨스트(Kanye West),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에이셉 라키(A$AP Rocky),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 등은 여전히 건재하다. 하지만 수년 간 지속되는 이들의 패션 군림은 조금 지루하다. 가장 최근 세대인 이안 코너(Ian Connor), 루카 사바트(Luka Sabbat), 플레이보이 카티(Playboi Carti) 등이 혜성같이 등장하긴 했지만, 전 세대의 무게감을 뛰어넘기는 역부족이다. 


올해의 패셔니스타로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의 캠페인 모델, 생로랑(Saint Laurent)의 모델, 콜라보레이션 앨범을 발매한 트래비스 스캇을 뽑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디드 자매를 유일하게 위협한 켄달 제너(Kendall Jenner)의 이름 역시 신선하지는 않다. 디자이너, 셀러브리티, 인플루언서 이 모두를 안을 수 있는 파괴력 있는 인물의 등장은 패션 신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 분명하다. 유독 신선함을 찾는 패션 신에서의 ‘패셔니스타’의 갈증은 역설적인 부분이다.



글 l MANG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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