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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이념/해석] 10. 겨울잠 (2부 시작)

title: 아링낑낑 (2)Nonlan2017.06.30 12:59조회 수 826추천수 6댓글 0


무대에 다시 불이 들어오면 방 안에 침대와 책상만이 덩그러니 놓여있고 배우는 입김을 뿜으며 그 앞에 홀로 서있습니다. 그는 허공을 보며 마치 항변 같은 독백을 시작합니다. “어쩌면 이건 다 피해의식일진 몰라도 여전히 흉터는 남아.” 그는 지금껏 믿고 의지해 온 가치들이 뿌리째 흔들리고 뽑히는 경험 끝에 이 모든 것이 전부 거짓일까 쉽게 잠에 들지 못하고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후렴구를 보죠. 일단 ‘겨우 잠’에 드는 것과 ‘겨울 잠’에 든다는 유사한 발음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믹스테잎 ‘Headphone’에서 쓰였던 “또 다시 자기 최면 내가 최고인 것 같이”, “자만이란 것 덕에 초심으로 돌아가지”라는 가사를 다시 등장시킵니다. 원곡 ‘Headphone’의 맥락에서 화자는 누구든 최고가 되겠다면서 돈과 명예를 쫓고, 음악이 변해가는 세태를 지적합니다. 그리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변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돈과 명예보다는 철없이 등골 빼먹는 것에 익숙해서 음악이 주는 감동만으로 움직이겠다고 말합니다. 이건 정말로 믹스테잎을 준비하던 당시 그의 초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겨울잠’으로 돌아와 벌스 2를 살펴보겠습니다. “아무 대가 없이 내 돈까지 써가며 섰던 무대”가 이미 자기가 그토록 혐오했던 용돈 버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모두가 자기를 이용하려고만 든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반면 같은 시즌에 ‘쇼미더머니’에 참가한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왔던 로꼬의 태도는 이와는 상반되죠. 로꼬의 ‘입버릇처럼’을 살펴보면 일단 김태균과 비슷하게 “방송국은 여전히 낯설어, 나도 여전히 말을 절어 / 최근에 알게된 사람들은 전부 다 사기꾼 같아”라고 고백하긴 합니다. 그러나 바로 “시기와 질투는 이해되는 부분 총알보단 악수를 장전”이라고 말하고, 더 나아가 ‘호랑이’라는 곡에서는 “좀 더 쌘캐가 필요해졌어. 그래서 난 주문했지 호랑이(비싼 차)”라면서 새로 주어진 환경을 완전히 흡수하고 활용하는 듯 합니다. 두 사람의 금전적 문제와 얽힌 경험의 차이 때문일까요? 이유야 어찌됐든 김태균의 이러한 반응은 더더욱 유난스럽고 과해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심지어 ‘이제는 떳떳하다’에서 위기에 빠진 자신과 대비시키며 “그때 내가 만난건 그랜드라인의 웜맨”이라고 외칠 정도로 신뢰했던 사장에게도 대립각을 세웁니다. 웜맨은 그와 친한 긱스를 언급하며 어차피 방송계에 발을 들인 이상 돌이킬 수 없으니 시기가 지나기 전에 곡을 내고 돈을 벌자고 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의 기준과 관심은 애초에 그런 곳에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김태균은 지금까지 꿈꿔왔던 자기 자신의 모습에 대해 “광대가 되려던 건가 그동안 꿈꿨던 내 모습이 고작 이런 거였나 물어”라며 격렬한 거부반응과 혐오감을 드러냅니다. 

 

‘막다른 길’이 욕망이 최대치를 찍고 돌이킬 수 없을 시험에 빠져드는 계기를 암시하는 것이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막다른 길’은 오히려 자신이 “뭘 원한 건지도 모르겠”는 혼란 속에서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그저 억지로 움직이는 이 곡의 상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에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현실이 이상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있는지 확인시켜주는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이 초심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상의 이유일 뿐이고, 어디서부터 문제가 되었기에 이 상황에 이르게 됐는지 까지 알지는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자만 때문에 초심을 잃은 탓’이라고, ‘남들 덕분에 몸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벌하며 그저 당장의 고통을 덜어줄 ‘자기 최면’을 거는 선택지뿐인 듯 보이죠. (앞 트랙들에 깔려있는 미세한 균열들을 미리 검토해 본 우리는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미 대략 파악하고 있긴 합니다만.)  

 

그러던 와중에 “두려워하지마 넌 / 난 늘 너의 곁에 있잖아 떠나지 않아”라고 포근하게 다독이는 어떤 여자의 익숙한 목소리가 내면으로부터 들려옵니다. 이 목소리는 ‘섬광’과 ‘잔상’에서 계시를 내려줬던 천사의 목소리일까요, 아니면 ‘막다른 길’에서의 창녀의 목소리일까요? 지금껏 끊임 없이 울려나왔던 ‘내면의 목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서 사나운 겨울을 잠시 뒤로 하고 지금은 그저 억지로 잠에 들며 “너의 머리 속에 가득 찬 고민들을 모두 말해봐”라는 음성에 응답합니다. 잠재된 내면 깊은 곳에 해답이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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