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검색

리뷰

[녹색이념/해석] 11. 자각몽

title: 아링낑낑 (2)Nonlan2017.06.30 13:00조회 수 1001추천수 8댓글 8


하지만 ‘겨울잠’의 후렴에서 등장하는 ‘자기 최면’의 쓰임새를 다시 살펴보지 않고서 ‘자각몽’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는 것은 부적절해보입니다. 보통 자기 최면이라고 하면 자아의 방어기제가 부정적인 현실을 외면할 목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그러나 ‘자각몽’의 내용을 살펴보면 도저히 그렇게 작동하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자각몽은 흔히 루시드 드림이라고 불리는, 꿈 속에서 자기가 꿈을 꾸고 있는 사실을 자각하는 꿈입니다. 꿈을 자각하고 나면 자기가 원하는대로 꿈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 도피 장소로서 이만한 소재도 없죠. 그러나 ‘자각몽’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는 즐겁고 행복해서 돌아가고 싶은 장면이 아닙니다. 오히려 ‘막다른 길’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싸우고 헤어지는 순간의 기억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자기 최면’은 도피가 아니라 반대로 과거의 고통을 직시하기 위한 장치로 생각해야 합니다. 즉 ‘자기 최면’의 기능은 치료에 가깝습니다. 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의 ‘자각몽을 이용해 무의식의 실현인 꿈을 조작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그 사람의 현실 인식을 조작한다’는 컨셉을 차용한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도미닉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도 역)는 자신의 무의식에 죄책감으로 자리 잡은 죽은 아내 ‘맬 코브’(마리옹 꼬띠아르 역) 때문에 꿈 조작 임무 도중 수차례 죽음의 위기를 맞습니다. 차마 아내를 죽일 수 없는 그는 대신 이 영향을 줄이기 위해 그녀를 무의식 깊은 곳에 숨겨놓는 방법을 모색합니다. 자신의 꿈 속에서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자각몽’, ‘침대’, ‘책상’은 한 묶음입니다. 이 세 곡은 모두 그의 현실을 헤집어 놓는,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살아 움직이는 흉터’들에 대한 이야기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 연관을 ‘자각몽’으로 가져오면 ‘코브 - 맬’의 관계는 ‘김태균 - 전 여자친구’의 관계에 대응됩니다. 여기서 전 여자친구는 ‘막다른 길’에서 등장하는 그 여성으로 보입니다. 이 곡에서 드러나는 김태균의 모습은 굉장히 의외입니다. 이전까지 그의 여자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살펴보겠습니다. 대체로 자신의 돈과 명예를 보고 다가오거나(‘막다른 길’), 자기가 먼저 다가와 놓고 혼자 밀고 당기다가 헤어지자 하는, 추억보다 헤어질 때의 따끔함과 귀찮은 문자들만 남는, 짜증나는 존재입니다(‘Let It Flow’, 믹스테잎). 또한 이대로가 좋다고 해놓고 자기가 바라던 쪽으로 날 바꾸려 드는 위험한 존재이기도 합니다(‘너가 뭘 알아’, 믹스테잎). 거칠게 말해 그는 여자라는 존재를 ‘Bitch’로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반면 ‘자각몽’의 벌스 1을 보겠습니다. “비밀로 남아야 하는 그 상처에 대해” 말하지 않는 여자친구와 비교했을 때, 그는 ‘가족-친구-꿈-상처’로도 모자라 말할 필요 없는 그녀 이전의 여자친구들에 대한 얘기까지 늘어 놓는 등 적극적입니다. 심지어 애교까지 부립니다. 벌스 2에서는 싸우고 나서 여자친구와의 사이가 소원해지자 불안해 눈물을 흘립니다. ‘막다른 길’에서 보았듯 그는 이전의 ‘Bitch’들과 “너(그녀)는 달랐으면”하고, 그 특별한 존재가 “내 자신(김태균)을 똑바로 들여다 봐줬으면”하기 때문입니다. 그 기대감은 사랑을 권력 관계로 치환합니다. 그녀에 비해 그의 사랑의 크기가 더 커보입니다. 언제나 사랑을 갈구하는 쪽이 더 큰 상처를 받는 법이죠. 문제를 해결하려 고통받고 노력하는 쪽은 그입니다. 그는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강아지를 한 마리 분양 받아서 집으로 데려갑니다. 그 덕분에 그와 그녀 사이에 오랜만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하지만 어김없이 갈등은 다시 찾아오고 결국 그는 그녀의 집에서 자신의 짐을 정리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개를 두고 몸싸움을 벌이는 두 사람을 서술하는 그의 관점입니다. 그녀 앞에서 그는 ‘강아지’가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을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느낍니다. 그리고 강아지에 대한 이러한 심리적 동일시는 강아지를 입양하면서 현실적으로 구체화 됩니다. 그는 돈을 지불하고 입양한 강아지가 자신에 대한 여자친구의 시들한 사랑을 보충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벌스 3에서 여자친구가 애완견 베리를 자신과는 다르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돈에는 온기가 없지만, 강아지에게는 온기가 있습니다. 여자친구는 베리를 선물로서 소유하지만, 그는 베리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합니다. 그가 짐을 챙기는 동안 그녀는 그저 구경할 뿐이죠. 그러나 “우린 싸우지 않으려고 개를 키웠는데 / 자릴 차지하네 이 싸움의 중심에 어느새”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베리를 놓고 싸움이 시작됩니다. 아마도 그가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베리를 챙기는 것에 대해 그녀가 불만을 표시했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애초에 그는 베리를 그녀에게 주는 것이 불가능 했습니다. 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자친구가 베리를 쓰다듬는 것은 그를 쓰다듬어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강아지’로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그녀에게 베리를 선물로 ‘주었다면’, 그녀가 베리를 쓰다듬는 행동은 그녀가 자신의 고가 핸드백을 어루만지는 것과 다르지 않을겁니다. 거기에는 그가 감정을 이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애초에 베리는 그의 분신으로서 입양되었다고 봐야합니다. 그가 그녀에게서 버려졌다면 베리 역시 그녀에게서 버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녀와 결별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분신이 여전히 그녀에게서 사랑받는 장면은 그가 생각하기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한편 스스로를 ‘강아지’에 이입한 그는 베리를 ‘비명을 지르는 3개월밖에 안된 아이’로 묘사하면서 ‘자신 – 그녀 – 베리’의 관계를 ‘아빠 – 엄마 - 자신'으로 확장시킵니다. 앞서 여러 곡에 걸쳐 집안 내의 불화, 강압적인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그입니다. 그러나 “두 눈을 부릅뜬 채 널 뒤로 밀친 다음 / 욕을 하는 내 모습”에서 그만 그토록 부정하고 떨쳐내고 싶었던 유산의 상속을 확인하고 맙니다. 


무엇보다 더욱 치명적인 손실은 다른 여자들과 다를 줄 알았던 그녀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베리를 자기 것으로 여기는 그녀의 모습은 속물적인 과거 그녀들의 모습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때 그에게 밀쳐진 그녀의 입에서 “개새끼”라는 욕설이 튀어나옵니다. ‘강아지’는 ‘개새끼’로 전락하고, ‘동물, 본능, 폭력’의 연상을 거쳐 ‘내 안의 아버지’와 연결됩니다. 분노로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용암 같은 피”(‘책상’)가 끓어오름을 느끼며 그는 그녀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으로 곡은 마무리 됩니다. 

신고
댓글 8
  • 6.30 14:13
    잘읽었습니다 스웨엑
  • title: 아링낑낑 (2)Nonlan글쓴이
    6.30 14:15
    @미악새
    워럽 미스터 열독자 맨
  • 6.30 15:12
    논란님 해석이 맞다면 보여줄때 뮤직비디오 마지막 부분 인셉션 오마쥬가맞겟네요.좋은 글 감사합니다!
  • title: 아링낑낑 (2)Nonlan글쓴이
    6.30 15:57
    @once903011
    저는 좀 아리까리한데 좀만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
  • 6.30 17:51
    @Nonlan
    제가 얕게해석한바로는 인셉션 영화장면에 '킥'행위(킥이맞앗나요?기억이..)가 김태균이 뮤직비디오에서 물에빠지는 장면이 유사하다고 느껴지거든요.
    앞에 풀파티 장면들이 꿈,책상앞에서 가사를 쓰는 장면이 현실이라고 생각됩니다ㅎㅎ
  • 6.30 17:42
    잘 읽었습니다. 아직 남은 트랙 해석본을 읽지는 않았지만 감상평은
    ' 위버멘쉬가 되고자 했으니 되지 못한, 심지어 그시도조차 위버멘쉬 적인 것인지 환경적 요인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예술가의 자서전' 같아요. 본질적인 성격은 에넥도트랑 꽤나 비슷한 것 같네요.
  • 6.30 17:45
    뭐랄까....철저하게 인간적이고도 인간적이라서 슬픈 느낌
  • title: 아링낑낑 (2)Nonlan글쓴이
    1 6.30 18:38
    @가인♥
    개인적으로는 위버멘쉬처럼 거창한(철학 넘 어렵습니다..) 차원의 뭔가라기 보다는 부모와의 불화에서 시작된 몇몇 트라우마의 극복기?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야기 스케일이 아니라 표현방식의 조밀함이 감동적이더라고요

댓글 달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일반 [공지] 회원 징계 (2024.04.05) & 이용규칙23 title: [회원구입불가]힙합엘이 2024.04.05
[공지] 웹사이트 변경사항 안내 (24.03.18)3 title: [회원구입불가]HiphopLE 2024.03.18
인디펜던트 뮤지션 프로모션 패키지 5.0 안내 title: [회원구입불가]힙합엘이 2023.01.20
화제의 글 음악 말없이 개추가 쌓이는 짤.jpg19 우린필요해vacation 2024.04.24
화제의 글 음악 그냥 저게 손심바 생존 전략임8 김휘 9시간 전
화제의 글 일반 '래퍼는 살쪄야 폼이 좋다' 이거 ㄹㅇ 공식인가23 제리케이그니토 2024.04.24
62793 음악 쇼미더머니6 1화 선공개 (나상욱 넉살 더블케이)5 힙pop 2017.06.30
62792 음악 Rap Monster X Wale - Change MV2 offair 2017.06.30
62791 음악 아티스트들 일정이 쇼미에 맞춰지는거 같아서 아쉽네요..6 00LK 2017.06.30
62790 음악 릭 브릿지스(Rick Bridges) 신곡 태워 (Burn) 스트리밍 공개2 title: UTOPIA그린그린그림 2017.06.30
62789 음악 이효리 신곡 Seoul (Feat. 킬라그램) 뮤직비디오 공개3 title: UTOPIA그린그린그림 2017.06.30
62788 일반 mba ek 아시는 분 계신가요?2 title: [E] ScHoolboy Q - OxymoronTangza 2017.06.30
62787 음악 음악은 걍운임26 iapetus 2017.06.30
62786 음악 일리닛 exhibit i - the mixtape instrumental 있으신분1 히팝원럽 2017.06.30
62785 일반 오카샨형...12 title: The Notorious B.I.G.VJino 2017.06.30
리뷰 [녹색이념/해석] 11. 자각몽8 title: 아링낑낑 (2)Nonlan 2017.06.30
62783 리뷰 [녹색이념/해석] 10. 겨울잠 (2부 시작) title: 아링낑낑 (2)Nonlan 2017.06.30
62782 리뷰 [녹색이념/해석] 9. 잔상 (1부 끝)2 title: 아링낑낑 (2)Nonlan 2017.06.30
62781 일반 오왼 poem4 Scotch chin 2017.06.30
62780 일반 ㅋㅋ도끼 쇼미더머니6 참가자로 나오려고했다네요14 오꾸닭 2017.06.30
62779 일반 SNS로 누군가를 디스하는 게 왜 치졸한 짓이 되나요?25 title: Kanye West (Vultures)Parachute 2017.06.30
62778 일반 [FGI] 패션 관련한 그룹 인터뷰 참여자를 모집합니다. akakyunz 2017.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