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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31 20:41

[인터뷰]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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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태균

여기, 본명으로 자신의 첫 정규 앨범을 내며 새롭게 거듭난 래퍼가 있다. 씬에 모습을 드러낸 지는 꽤 되었으나, 그간에는 테이크원(TakeOne)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피처링, 공연 활동을 이어왔었다. 그런 그가 오랜 기간 공들이고 공들인 끝에 지난해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발표한 [녹색이념]은 예명이 아닌 본명 김태균으로 살아오며 쌓인 약 10여 년간의 감정과 생각의 기록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고 끝에 나온 만큼 분명 그의 입을 빌려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또 있을 것만 같았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또 지극히 사회적이어서, 어쩌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든 고개를 어느 정도 끄덕이게 될 수밖에 없는 김태균의 녹색이념에 관해 듣고 왔다.



LE: 딩고(Dingo) 인터뷰에서도 말씀해주시긴 하셨지만, 앨범 발표하고 나서 어떻게 지내셨나요? 정말 잠만 계속 잤다고 하신 걸 봤는데요.

김: 한 일주일 정도는 잠만 잤어요. 그 뒤로는 EBS <스페이스 공감>이랑 단독 콘서트를 준비했어요. 새로운 걸 해보려고 앨범 곡을 밴드로 편곡하고 코러스도 맞춰봤어요. 두 공연을 같은 멤버로 준비했고,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도 이 멤버로 활동하려고요.





LE: 커버 아트워크에서는 머리가 엄청 길어 보였는데, 공연 때는 머리가 반대로 엄청 짧더라구요. 항상 머리를 엄청 길게 혹은 짧게만 하시는 이유가 특별히 있을까요?

과도한 의미부여일 수도 있는데요. 머리 스타일이나 의복에 있어서 사람들이 맞춘 틀에 있는 게 싫어요. 남들과 다르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머리는 깔끔해야 하고, 누구랑 만날 땐 어떻게 입어야 하는 그 틀을 깨고 싶어요.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잖아요. 제가 지금 머리가 짧지만, 긴 머리일 때는 짧은 머리조차도 힙합이 만든 틀이라는 기분이 들었어요. 래퍼는, 힙합은 머리 길면 가짜고 늘 짧아야 하는 그런 거요. 그게 싫어서 머리를 길렀는데요. 다시 밀은 이유는 [녹색이념]을 만들며 생긴 안 좋은 감정이나 부정을 털어내고 싶었어요. 이번에는 좀 더 좋은 기분으로 머리를 다시 기르려고요.





LE: 지난 달인가요? 제이통(J Tong) 씨가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노팬티 이야기를 하며 김태균 씨가 노팬티로 다닌다고 말씀하셨더라구요. 그것도 역시 틀을 깨고 싶어서…? (웃음)

아니요. 자주 그런 건 아닌데 그런 시기가 있었어요. 몇 번 안 되는데… 형은 지금까지도 제가 노팬티인 줄 알고 계신 거 같아요. 저는 그냥 가끔 속옷이 없으면 없는 채로 나간 거 뿐인데… 동질감을 느꼈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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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랬군요. (웃음) 앞으로도 같은 구성으로 공연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밴드 멤버가 있을까요?

건반을 쳐준 글림(GLEAM), 빛나 누나한테 샤라웃하고 싶어요. 누나가 밴드를 구성하셨고, 편곡이랑 밴드 마스터링까지 맡아주셨어요. 되게 고마워요. 아, 그리고 싸이코반(Psycoban) 형이 음향과 보컬 이펙트를 맡아줘서 공연에서 특별한 사운드를 낼 수 있었어요. 그 외에 다른 분들은 거의 다 처음 뵙는 분들이어서… (웃음) 아무튼,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이 멤버로 계속 활동하고 싶어요.





LE: 단독 콘서트에서는 어땠나요? 플랫폼 창동 61(Platform Changdong 61)의 공연장 레드박스가 음향 시스템이 좋다고 들었어요.

저도 사운드는 되게 만족스러웠어요. [녹색이념]으로 공연하면서 즐거울 거라 생각 안 했는데 엄청 즐거웠어요.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예요.





LE: 후기를 보니 “붉은 융단”이나 “겨울잠” 후렴에서 떼창할 수 있어서 좋았다더라고요.

네. 근데 재미있는 게 “겨울잠”에서 노래를 떼창하실 줄 알았는데, 랩을 떼창하시더라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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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신나는 분위기도 어느 정도 있었던 거네요. 곡에서 전달하는 메시지와는 별개로 어떤 라이브한 느낌 때문에 그랬던 거겠죠?

네. 대부분 신나는 분위기로 느껴졌어요. 제가 앨범의 2부로 지정해놓은 구간이 있는데요. 그 특정 구간만 진중한 분위기였어요.





LE: 큰 공연을 두 개 치렀으니 당분간은 공연 계획이 없으신가요? 꼭 공연이 아니더라도 어떤 콘텐츠나 활동이 될 수도 있구요. 회사에서 많이 얘기하고 계시려나요?

네. 얘기하고 계실 거예요. 사실 확정된 게 거의 없을 거예요. 힙합플레이야(Hiphopplaya) 페스티벌에는 출연하기로 했어요.





LE: 혹시 콘서트를 한 후 아쉬운 부분도 있었는지 궁금해요. 연습한 거에 비해 덜 보여줬다든가 해서.

콘서트는 굉장히 만족스러웠어요. 아직 [녹색이념]으로 공연한 횟수가 많지 않아서 자잘한 가사 실수가 몸에 남아 있어요. 랩이 몸에 익어야만 실수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완전히 몸에 익지 않았어요. 그게 조금 아쉬워요. 그 부분 외에는 만족스러웠어요. 그리고 사람들도 준비한 만큼 호응해주셔서 기분 좋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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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공연에서 2집 앨범 제목을 얘기하셨더라고요. [상업예술], 맞나요?

맞아요. 원래 얘기를 안 하려고 했는데, 제가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게 되는 성격인가 봐요. 어쩌다 입 밖으로 나왔어요. [녹색이념]을 작업하면서 동시에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엄청 오래전부터 생각한 제목이에요. 내용도 그렇고.





LE: [상업예술]의 각본 혹은 내용이 어느 정도는 나온 건가요?

그렇죠. 제가 할 얘기는 정리됐는데 푸는 방법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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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차기작도 차기작이지만, 아무래도 이번에 중점적으로 얘기해봐야 할 만한 건 당연히 이번 앨범 [녹색이념]이죠. 일단 앨범 내외로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수도 없이 나왔었잖아요. 그래서 더 이야기하실 부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녹색이념]을 소개해주세요.

[녹색이념]. 제가 이념을 가지고 사는 거 자체가 꿈이라고 표현한 건데요. 이념을 가지고 걷는 길을 표현한 앨범이에요. 꿈을 이념으로, 현실을 돈으로 표현했어요. 꿈과 현실의 괴리 안에서 살아가며 일어나는 일들과 이념을 가지고 제 길을 걷는 과정을 [녹색이념]으로 표현한 거죠.





LE: 앨범 소개 글에는 녹색이 자연과 돈을 상징한다고 쓰여있더라고요.

네. 자연, 숲과 상반되는 게 도시, 돈이라 생각했어요. 여기에 꿈과 현실, 이념과 타협을 묶어서 생각하고 작업을 진행했어요.





LE: 보통 자연의 반대말이 문명이라고들 하는데, 그 부분에서 돈이 상징적인 역할을 한 거네요.

그렇죠. 숲과 돈 그런 식으로. 제 이미지는 그랬어요.





LE: 이념과 꿈이 자연을 상징한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녹색이라는 색상도 자연과 돈, 두 가지에서 따온 거겠네요.

쉽게 생각해서 자연이라 하면 나무가 떠오르고, 돈이라고 하면 ‘배춧잎’이라고 하듯 초록색이 떠오르잖아요. 또, 저는 이념이 흐려지고 망가지는 모습도 담으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누가 농담으로 ‘녹슨이념’이라고 했는데, 그것도 어떻게 보면 의도했던 부분 중 하나였어요.





LE: 음감회에서는 누군가는 [녹색이념]을 듣고 상처받을 수 있다 하셨어요.

실제로 상처받은 사람도 있구요. 사실 저 자신도 만들면서 상처를 받았어요. 그 상처에 관한 생각들 때문에 작업하면서도 제가 가사를 쓰기 힘들어했었어요. 더 오래 걸렸던 이유 중 하나기도 하구요. 사실 지금도 저를 굉장히 괴롭히고 있는 부분이에요. 앞으로도 저는 이 음반이 제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을 상처 입힐 거고, 저한테도 상처를 입힐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LE: 왜 상처가 될 거로 생각하시나요? 제삼자는 ‘김태균이 자기 인생 이야기를 하는구나.’라고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렇죠. 단순히 말하자면 제삼자이지 않은 사람에게는 상처가 되는 거 같아요. 그 부분은 제가 알고 있었는데도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행한 어떤 죄악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쨌든 제가 표현해야만 했던 부분이죠. 그런데 저도 굉장히 놀랍긴 했어요. 제 두려움의 크기보다 제삼자인 다른 사람들은 잘 받아들이신 거 같아요.





LE: 잘 받아들였다는 게, 앨범을 좋게 들어줬다는 것일까요?

제가 예상했을 때는 많은 비난을 받을 줄 알았어요. 특히, “책상” 같은 트랙은 진짜 저의 바닥까지 표현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런 바닥까지 표현한 음악은 굉장히 위험할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또 그 위험함이 제가 추구하는 예술 중 하나거든요.





LE: 어떻게 보면 예술의 매력이죠.

네. 사람들이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막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제 음악에서는 열린 반응을 보여주신 거 같아요. 감사하기도, 놀랍기도 했어요. 제 고정관념을 깼어요.





LE: 그 반응들이 후에도 이어졌지만, 작년 마지막날부터 새해 첫날까지 커뮤니티에 쏟아져 나왔던 거로 기억해요. 당시에 어떤 기분이었는지 궁금해요.

사실 기억이 잘 안 나요. 앨범 발매 마지막 날까지도 계속 믹싱과 마스터링을 정신없이 진행했었거든요.





LE: CD 발매도 늦어졌었잖아요.

CD는 음원보다 더 오래 걸리다 보니 발매도 미뤄졌어요. 그렇게 잠도 못 자고 진행하고 앨범이 나온 날 공연까지 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앨범 발매 직후의 기분은 기억이 잘 안 나요.





LE: 기분보다는 앨범 자체에 대한 여러 가지의 해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해석이 많은 건 재미있었어요. 제 의도와 맞는 부분도 되게 많았고요. 앨범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게 했는데, 한 개씩은 다 맞추셨어요. 전혀 생각하지 못한 해석도 있었고요. 틀린 건 없고, 제 음반을 듣고 무언가를 느꼈다면 다 맞는 해석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해석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게 되게 기분 좋았어요. 그러길 바랐거든요.





LE: 아직까지 안 나온 해석에 대해 직접 얘기해주시기는 어려울까요? (웃음)

답을 해드릴 수 있을 거 같은데요. 한편으론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앨범이 처음부터 이렇게 흘러가는 거고, 이런 숨은 요소가 있다고 얘기하기에는 너무 설명하는 기분인 데다가 그러면 재미가 없지 않을까 싶어요.





LE: 테이크원이 아닌 김태균이란 이름으로 앨범을 낸 이유가 무엇인가요?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아서 그런 거 같은데요.

복합적인데요. 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본명을 썼어요.





LE: 그럼 [상업예술]도 김태균으로 나올까요?

네. 저는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LE: 개인 커리어는 본명으로 계속 나오는 거네요.

네. 제 정규 음반에서는 본명을 쓸 거 같아요. 다만, 피처링을 비롯해서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은데요. 그럴 때 본명을 쓰는 게 맞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하고 있어요.





LE: 김태균과 테이크원은 할 수 있는 이야기와 성질이 다르겠네요.

같으면서도 달라요. 그게 (고민하는) 큰 이유인 거 같아요. 저는 둘 사이의 괴리를 느꼈기 때문에 (이번 앨범에서) 김태균이라는 이름을 쓰게 됐죠.





LE: 괴리가 어떤 식으로 느껴지나요?

사용하는 언어와 가사 쓰는 방법이 그래요. 어느 순간부터 테이크원으로는 가사를 용기없이 쓴다고 느꼈어요. 정말 깊숙하고, 저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을 꺼내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한영혼용도 미국에서 살았으니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쓰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며 어느 정도 변명하고 있었고요. 사실 저는 처음부터 한 가지 언어로 가사를 쓰는 게 더 멋있고, 좋은 가사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도 한글로만 가사를 쓰는 게 익숙하지 않고 더 어려우니 저 자신을 속여온 거죠. 근데 김태균이라는 사람은 힘들어도 소신을 지키는 게 자신의 기준에 더 부합하는 거죠. 그러므로 힘들어도 이 길을 걸어야 하고, 실제로 걷고 있죠. 자신의 기준에 솔직하게. 이건 비단 음악과 가사에서만 그런 게 아니에요.





LE: 삶에 있어서도 그런 거군요.

네. 제 삶에서도 그렇고, 제가 하는 말에서도 그런 거 같아요. 그 태도가 많이 다른 거 같아요.





LE: 태균 씨의 시선에서는 김태균이라는 사람이 테이크원보다 더 자신감 넘치고 솔직한 거네요.

그렇죠. 정확히는 김태균이란 사람은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은 것조차도 말할 수 있는 거죠. 그게 더 자신감 넘치고 솔직해서라기보다는 음악으로써 표현하는 부분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LE: 외부에서는 김태균이 하는 이야기보다는 테이크원이 하는 이야기가 더 자신감 넘치고 멋있어 보이기도 하잖아요. 힙합의 멋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에서 특히 그렇고요.

그게 저 자신에게는 솔직하지 못한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항상 자신감 넘치고 패기와 열정을 가지고 살 수 없잖아요. 테이크원은 그런 모습이 힙합이기 때문에 항상 유지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오히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때도 있어요. 근데 김태균은 자기가 무너질 때는 무너진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감 있을 때는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김태균이란 사람이 더 힙합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LE: [녹색이념]은 김태균의 이야기잖아요. 전혀 다른 모습을 정규 앨범으로 보여준다는 점에 대한 불안함은 없었나요?

제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거에 대한 불안함이 더 컸어요. 정체되는 거죠. 예술가가 같은 곳, 같은 상황에서 정체되는 게 더 무서웠어요. 저는 예상이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처음에 사람들이 저한테 기대하는 모습을 저는 그걸 기대하는 게 아니라 예상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예상하는 모습을 벗어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아주 처음에는 저의 믹스테입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음악을 굉장히 많이 만들었었어요. 그런데 그게 좋지 않더라구요. 정체되는 기분이 계속 들었어요. 오히려 김태균의 음악을 만들면서 그런 불안함이 사라졌던 거 같아요.





LE: [녹색이념]을 발표하면서 앨범을 통해 태균 씨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줬잖아요. 스스로에게서 해방되는 느낌도 들었을 거 같아요.

공연 때도 말했는데, 저는 어느 순간부터 테이크원으로는 공연을 하기 싫었었어요. 저를 보러 온 관객들, 팬이라고 하는 분들은 제가 좋아서 보러 오셨겠지만, 그분들이 저를 좋아하고 바라보는 모습이 제가 아닌 기분이었어요. 반면에 김태균으로서 음반을 내고, 제 모습을 다 보여줬는데도 저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정말 제 모습을 보고 있는 팬이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공연도 기쁘게 할 수 있었어요. 행복하게 재미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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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점에서 예전에 했던 공연, 평소 했던 공연과 이번에 한 두 공연에서 느낀 기분이 달랐던 거군요.

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암울한 분위기가 될 수 있는 곡도 있었는데, 화목했던 거 같아요. 공연에서도 얘기했는데, 진짜 친구들끼리 모인 기분이었어요.





LE: 앨범을 만드는 기간이 정말 오래 걸렸잖아요. 여러 번 갈아엎고, 마지막 날까지도 믹싱, 마스터링을 하셨다고 말씀해주셨고요. 그래서 “이제는 떳떳하다”에서 “다시 해볼게요, 처음부터”를 듣고 웃었어요. (웃음)

저도 그 부분은 어떻게 보면 개그 요소로 넣은 거긴 해요. 그걸 뺄까 넣을까 굉장히 고민하기도 했구요. 근데 되게 재미있는 게, 그 공연도 실수하고 다시 처음부터 했고, 제 음반이나 그 곡 자체도 처음부터 다시 만든 거잖아요. 그런 부분과 맞물려서 넣어야겠다는 판단이 서더라구요.





LE: 사람들이 앨범을 하도 오래 기다렸다 보니 말도 많았잖아요. 제작 과정을 궁금해하시는 분도 많을 거 같아요. 실제 앨범 제작 과정도 ‘다시 한번 갈게요’의 반복이었나요?

녹음이 가장 힘들었어요. 가사 쓰는 것도 그렇긴 했지만, 그래도 콘셉트를 엎은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가사가 제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을 때만 다시 썼어요. 같은 얘기를 하더라도 방법과 방향이 무수히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최적의 길을 찾는 데에 오래 걸렸어요. 녹음은 제가 상상한 기준이 하나 있었는데 부합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계속 재녹음했어요. 제작 과정에서 제일 어려웠을 거예요. 그렇다 보니 녹음을 같이 봐주는 분들이 계속 바뀌었어요. 처음에는 웜맨(Warmman) 형이랑 시작했는데 음향 문제로 한번 엎은 이후에 포기하셨어요. DJ 돕쉬(DJ Dopsh) 형도 중간에 포기하고, 싸이코반 형도 도와주러 왔다가 가고. 또, 저와 같이 랩을 시작했던 사람 중에 삼이(Sam E) 형도 와서 가끔 녹음 도와주고… 이런 식으로 굉장히 많은 사람이 녹음을 포기하고, 바뀌고 그랬어요. 결국, 마지막에는 웜맨 형이랑 처음부터 다시 했어요.





LE:프로듀서에게 편곡 등에 있어 바꿔 달라고 한 적은 거의 없었던 건가요?

네. 비트에 있어서는 제가 거의 관여한 게 없어요. 오히려 편곡을 더 안 하는 쪽으로 밀고 갔어요. 왜냐하면, 여러 프로듀서한테 받다 보니까 각자 편곡하게 되는 순간 음반의 흐름이 깨져버리더라구요. 전 이미 완성된 비트들을 모아서 음반의 흐름을 구성했는데, 한 명씩 각자 편곡하는 순간 제가 정해놓은 흐름이 깨져서 비트들은 웬만하면 토대 그대로 가져갔어요.





LE: 녹음 과정은 얼마나 걸렸고, 얼마나 힘들었던 건가요?

한 벌스를 녹음하는 데에 3일이 걸리기도 했어요. “붉은 융단”은 그런 식으로 열 번도 넘게 처음부터 끝까지 재녹음을 했어요. 그러면 “붉은 융단”만 한 달을 넘게 녹음한 거잖아요. 저는 한 벌스를 녹음할 때도 사소한 한 단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정하는 편이거든요. 그런 것까지 다 포함하면 한 곡당 (녹음 횟수가) 만 번 이상은 넘을 거 같네요.





LE: ‘다시 갈게요’가 농담이 아닌 거네요. (웃음) 여러 번 녹음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상상한 랩의 모습이 있어요. 그 모습을 구현하려는데 안 된거죠. 안돼서 계속 다시 했고, 됐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달랐던 경우도 있었어요. 부분부분이 달랐는데, 부분부분을 고치려고 하다 보면 전체를 다시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LE: 하나만 고치더라도 톤이 달라지니까.

네. 처음에는 한 곡 안에서만 그림을 그렸는데, 나중에 음반 전체로 그림을 그리니까 음반 전체가 흘러가는 톤에도 신경을 쓰게 됐어요. 그런 것도 계속 다시 하게 된 이유죠. 제가 그린 그림에 부합하려고 계속 다시 한 거죠.





LE: "이제는 떳떳하다"에서 1년이면 된다고 하셨는데, 본인을 채찍질하기 위함이었나요? 어쩌다 보니 최고의 마케팅 포인트가 되었잖아요.

마케팅 포인트로 설정한 건 아닌데… (전원웃음) 마케팅은 저 혼자만의 의견으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회사에서는 항상 빨리 내자고 했거든요. 2016년 초에 [녹색이념]을 내려고 회사는 기획했었어요. 저는 1년은 걸릴 거란 걸 알았던 거죠. 그걸 넘기지 않으려는 기한을 정한 거죠. 회사랑 얘기한 건 아닌데 저 혼자만의 마케팅 포인트가 되었네요.





LE: 1년이라고 말한 탓에 못 한 것도 있었나요? 아니면 온 힘을 끌어모아 무조건 그때 내겠다는 식이었나요?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완벽하게 끝냈어요. 제 손을 떠난 작업에 관한 걱정은 있었어요. 믹스나 편곡, 마스터링 같은 거요. 다른 부분에서 시간을 더 쓸 수 있었는데 못 쓴 건 아닌가라는 생각은 했었어요. 근데 그건 아닌 거 같은 게, 믹스를 부스트 놉(Boost Knob) 씨가 하셨는데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셔서 그 기준을 신뢰하며 진행했어요. 여하튼 1년이란 시간을 저에게만 너무 많이 투자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LE: 음감회에서 건강이 안 좋아졌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음악 작업을 반복적으로, 완벽한 게 하려다 보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건강으로까지 옮겨간 결과인 건가요?

오히려 아팠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더 힘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어느 순간부터 제 몸이 상상의 기준에 부합하는 랩을 구현하지 못하는 기분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한 벌스 녹음할 때 걸리는 시간도 굉장히 늘어나고, 호흡도 짧아지고 그랬어요. 그전에는 녹음도 되게 수월하게 했고, 가사도 수월하게 썼었거든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아프기 전에는 반년 만에 앨범의 반을 작업했었어요. 가사 쓰는 것도 그렇고, 정확하진 않지만 어쨌든 녹음도 그 시기에는 엄청 짧게 했었어요. 근데 아프고 나서는 모든 게 그렇지 않게 되면서 정신적으로 더 피폐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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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개인적이고 민감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작업을 시작하면 몰두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몸을 혹사해가면서 음반 작업을 했었어요. 작업실을 옮겨 다니면서, 틀어박혀서 집도 안 가고. 한동안은 겨울이었는데 난방도 안 되는 곳에서 쪽잠 자 가면서 음반을 작업했었어요. 그 마음가짐으로 6개월 만에 앨범 절반을 만든 거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밤에 잠을 못 자는 거예요. 몇 주일 동안 제대로 못 자고, 복통이 오고, 땀이 나고. 화장실에 가면 변이 아니라 피가 계속 나오고 밥도 못 먹길 시작했어요. 근데 저는 단순히 ‘장이 좀 안 좋나 보다’, ‘뭘 잘못 먹었나 보다.’ 이런 식으로 병원을 안 가다 나중에 갔어요. 그런데 거기서도 진단을 못 했던 거예요. 그 병이 뭔지를 몰라서. 그 이후에도 같은 생활을 반복했어요. 잠 안 자고, 잘 안 먹고, 에너지 드링크 마셔가면서 계속 작업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밤에 거의 비명을 지를 정도로 아픈 거예요. 결국에는 큰 병원에 갔는데, 알고 보니 되게 큰 병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그 이후로 병원 생활을 하면서 몸이 안 좋기 시작했죠. 그게 2014년 초에요. 그래서 2013년 부근에는 음반이 금방 나올 줄 알았었죠.





LE: 그래서 SNS를 통해서 이야기하셨던 거겠네요.

근데 SNS로 앨범 얘기한 건 아마 저보다 회사가 먼저였을 거예요. 제 작업 속도를 보고 나름의 계산을 하셨을 테니까요. 저는 아파지고 나서 [녹색이념]이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직감했었어요. 회사는 저와의 계산이 계속 달랐던 거 같아요. 전 빨리 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회사는 계속 곧 나온다고 홍보한 거죠.





LE: 온전히 본인의 의지로 [녹색이념]에 관해 언급했던 건 아니네요.

그렇죠. 온전히 제 의지로 이야기했던 건 2013년까지였던 거 같아요. 아, 아픈 후에도 어떤 인터뷰에서도 곧 나온다고 이야기하긴 했네요. 그때가 처음으로 병이 호전되어서 다시 음악 작업을 하려는 순간이었거든요. 또다시 예전처럼 생활하면서 다시 반년 만에 나머지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제 몸은 그게 가능한 상태가 아니었고요. 좀 후회되는 인터뷰죠.





LE: 커뮤니티에서 ‘언제 나오냐’는 이야기가 되게 많았던 앨범이잖아요.

그런 반응이 있다고 듣기는 했었는데요. 음악 작업할 때는 반응을 거의 안 찾아봤어요. 다른 분들의 기대나 시선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빨리 내야 한다거나, 제가 잊힌다는 말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저 자신의 뚜렷한 비전, 기준을 맞추는 데에 급급했어요.





LE: 앨범의 절반을 반년 만에 만들었다가 아픈 이후 수정을 많이 거쳤다고 하셨잖아요. 아픈 이후에 완벽주의적으로 성격이 바뀌신 건가요?

완벽주의적으로 바뀐 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제가 아프기 전과 후의 성격이 많이 달라요. 다른 사람이 봐도 그렇게 느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술도 안 해요. 예전에는 술이라든가, 파티라든가 (그런 것도 즐기면서) 좀 더 활발하고 쾌활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어요. 근데 요즘 그런 부분은 많이 사라진 거 같아요. 굉장히 차분해진 편인 거 같아요. 그래도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여전히 그런 부분이 남아 있는 게 보이죠. 어쨌든 제 성격은 평범하다고 생각해요. 다를 거 없다고 봐요. 전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거의 다 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의 모습은) 제 상황에 맞춰 나오는 성격일 뿐이지, 따로 완벽주의적이라든가 뭔가가 특출 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LE: 앨범 제작 기간이 길다 보니 제작비가 많이 들었을 거 같아요. 스튜디오 빌리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비용이 막대하게 들었을 거 같은데요. 회사 측에서 눈치를 준다든가 그런 적은 없었나요?

뮤직비디오 찍을 때만 해도 제작비 걱정이 꽤 많았는데요. 근데 스튜디오를 다시 빌린다든가 하는 음악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놀랍게도 아무 말이 없으셨어요. 오히려 굉장히 믿어주셨어요. [녹색이념]을 작업하면서 믿음이 생겼던 거 같아요. 처음에는 이런 믿음이 없었는데, 이 음반을 같이 작업하면서 저한테 그 믿음이 생기셨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어요.





LE: [녹색이념]은 김태균의 과거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아프고 난 이후의 태균 씨의 시각에서 과거의 이야기를 다룬 건가요, 아니면 그 당시의 시각을 되살려 서술한 건가요?

과거에 젖어서 썼죠. 제가 아팠던 시기의 얘기나 감정들은 최대한 배제했었어요. [녹색이념]의 구간은 2002년부터 2013년까지거든요. 2013년 이후의 일은 나중에 다루고 싶어서 아꼈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현재의 제 시야와 상황이 반영되긴 했죠.





LE: [녹색이념]을 만드는 데에 가장 영향을 끼친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가장 영향을 끼친 건 제가 겪은 경험과 삶이죠. 또 많은 영향을 끼친 건 영화인데요. 수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지금 기억나는 영화는 <어벤저스>랑 <인셉션>이에요.





LE: <어벤저스>는 시기상으로 1이겠네요.

네, 그렇죠. 처음 나왔을 때인데, <어벤저스>가 각 영화가 하나로 뭉친 영화잖아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저는 그 각 영화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고,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요. 하나로 뭉친 걸 보면서 그 각 영화도 재미있게 느껴지고 그랬는데. 그게 제가 이번 음반을 만드는 데에 큰 영감이 됐던 거 같아요. 각 곡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하나의 큰 내용, 음반이 된다는 생각이었죠. 또 다른 영화 <인셉션>은 저한테 굉장히 와 닿았던 게, 저도 어릴 때 꿈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할 때가 많았어요. 꿈속에서도 또 꿈을 꾸는 거예요. 그래서 꿈속에서 일어나서 현실인 줄 알았는데, 꿈인 거예요. 또 일어났는데 꿈이고. 그런 경험을 하면서 제가 [녹색이념]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게요.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해석하고 있진 않은데. [녹색이념]이 온전히 현실이고, 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녹색이념]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두 꿈으로 치부했어요. 그것도 제 의도 중 하나였어요. 그래서 “제자리”에서 알람 소리와 함께 악몽 같은 꿈에서 눈이 떠진다는 가사를 썼는데 . 그런 식으로 꿈에 대한 요소를 넣었던 게 <인셉션>의 영향이었던 거 같아요.





LE: 기술이나 사운드, 랩에 관해서는 또 없을까요? 공연에서의 코러스나 앨범 속 요소들을 들으며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Late Registration] 같은 음반이 떠올랐었거든요.

칸예 웨스트의 음반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죠. 전 새로운 것보다 들었던 것 위주로 듣는 편이에요. 새로운 걸 들어보기는 하지만, 옛날 음반을 다시 들으면서 계속 새로운 감정을 느껴요. 듣는 순간마다 다른 감정을 느껴서 지금도 예전에 들은 음악을 많이 들어요. 그중에는 항상 칸예 웨스트가 있어요. 제이지(JAY Z), 나스(Nas), 에미넴(Eminem)도 있고요. 어쨌든 [녹색이념]을 만들면서는 칸예 웨스트의 영향을 특히 많이 받았어요.





LE: 칸예 웨스트가 작년에 낸 [The Life Of Pablo]가 처음 냈을 때와 지금이 다르잖아요. 곡이 추가되고, 바뀌고, 구성도 바꾸고, 믹싱도 새로 했어요. CD가 안 나오고 스트리밍으로만 제공해서 그럴 수 있었죠. 혹시 태균 씨도 [녹색이념]을 수정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저도 처음에 제 음반이 나왔을 때는 몇 가지를 수정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없어요. 그런데 이 음악을 푸는 방법이 여럿 있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떳떳하다”도 솔로 버전과 여러 동료와 함께한 버전이 있잖아요. 그렇게 여러 방향을 보여줄 수 있는데, 왜 보여주면 안 되는지 생각하긴 해요. 저도 앨범을 내고 [The Life Of Pablo]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왜 음반은 한 번 나오면 여기서 끝내야 하는 거지?’ 싶었죠. (나중에 다시) 그런 생각이 든다면 하게 될 거 같아요. 하게 될 거예요.





LE: "이제는 떳떳하다"는 처음 공개된 버전과 앨범 버전이 많이 다르잖아요. 구성원이 많이 줄고 미니멀해졌는데요. 어떤 이유였나요? 첫 버전이 미완성 혹은 데모였나 싶기도 해요.

미완성 버전은 아니고요. 같은 곡을 다른 버전으로 푼 거예요. 한 곡을 다른 방향으로 보여주는 게 왜 안 되느냐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 곡이 여러 방향을 보여줄 수 있는 곡이라 생각했어요. 믹스테입 때도 공개한 곡이고요. <EBS 스페이스 공감> 때 이 질문에 대답했었는데요. [녹색이념]은 제 삶을 순차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하잖아요. 근데 제가 "이제는 떳떳하다"를 만들던 시기는 혼자였던 시기에요. 혼자 작업하고 동료도 없고 방에 박혀서 믹스테입을 작업하던 때거든요. 많은 인정도 받지 못했고, 저 자신과 미래에 관한 불안도 많았어요. 그걸 음반에서 표현하려면 당연히 혼자여야 한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저를 인정하는 많은 동료도 있고, 도와주는 사람도 많잖아요. 한마디로, "이제는 떳떳하다"의 음반 버전과 싱글 버전의 시기가 다른 거죠. 싱글 버전은 현재를 표현한 거고, 음반에서는 "이제는 떳떳하다"를 처음 만들던 시기로 돌아간 거죠. 오히려 음반 버전이 미완성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다른 방향을 표현한 거예요.





LE: 애플 뮤직(Apple Music)에는 앨범 제목이 ‘Green Ideology’로, 각 곡도 영어로 올라갔어요. 태균 씨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가 한글의 사용이잖아요. 각 곡의 제목도 한글로 쓴 이유가 있을 거고요. 앨범의 영문번역은 직접 하신 건가요? 

제가 직접 했어요. 원래 한글로 제목을 짓기 전에 영어로 제목을 지었던 곡들도 많았어요. 그리고 원래 앨범 제목도 ‘Green Ideology’였구요. 번역할 때 거의 원래 제목을 쓴 것도 있고, 새로운 제목을 지은 경우도 있어요. 근데 (애플 뮤직에) 영어 제목을 쓰게 된 건, 회사에서 그쪽에 올릴 때는 영어 제목을 써야 한다고 했거든요.





LE: 사실 한글도 돼요.

아, 그러면 제가 속은 거 같은데요? (전원 웃음)





LE: 보통 한글이 먼저 나오고, 뒤에 영어가 붙는 식이 많은 편인 거 같더라구요. 얘기 나온 김에, 곡명이 대부분 간결한 단어나 표현이잖아요. 직관적으로 보였으면 했던 건가요?

제목을 지을 때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이미지에요. 그러다 보니 직관적이게 표현된 거 같은데 저는 제목으로 그림을 그리려고 했어요. 한 배우를 그린 거예요. 그 배우의 삶을 그리려고 했어요. 성공한 배우가 붉은 융단을 걸으면서 자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그 전성기가 끝난 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섬광으로 시작해 암전으로 끝나는. 그런 하나의 연극이라고 해야 할까요? 제목이 제 음악에 담긴 이야기와도 연관되어 있지만, 제목으로 또 하나의 이야기를 그리려고 했어요.





LE: 가상의 배우가 성공하고 전성기를 보냈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이라고 하면,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패배주의적인 시각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죠. 배우의 삶에 빗대어 제 이념이 충만한 시기의 모습과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기의 모습을 표현한 거죠. 하지만 저는 제가 패배주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표현하고 싶었던 건 패배주의적 시각을 갖게 만드는 사회였어요. 지금 이 사회를 사는 다른 많은 사람이 패배주의적인 시각을 가지게 됐잖아요. 헬조선, 3포세대, 5포세대 같은 단어들이요. 그걸 제 상황과 경험으로 푼 것뿐이죠. 저는 제 얘기를 하는 게 곧 사회를 얘기하는 거라는 생각이에요. 사회를 얘기하는 게 곧 세상을 이야기하는 거고. 어떻게 보면 전 예술은 꼭 자기 자신을 예술이 꼭 자기를 벗어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살아가는 게 곧 사회고, 사회는 곧 세상이니까요. 제 얘기에 중점을 많이 두지만, [녹색이념]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결국 사회예요. 돈과 사회, 현실. 패배주의적인 시야를 가지게 하는 사회를 그리기 위해 더 패배주의적으로 앨범이 표현된 거죠.




LE: “암전”의 마지막에서 거친 톤과 내용으로 랩을 하잖아요. 앞서 말씀하신 환경적인 부분을 극복한 건가요, 아니면 이겨낸 건 아니고 계속해서 투지를 불태우는 모습인가요?

여러 가지 해석을 남겨둔 부분인데요. 사실 그 부분에 대한 완전한, 정확한 결말은 정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진짜 결말은 앞으로 저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암전"의 가사만 보면 이 아티스트가 이겨내고 이념이 확고해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른 숨겨놓은 요소를 발견하면 (해석이 달라질 수 있어요.) 당신의 영향이 남아 있다고 하고, 투신자살하는 사운드를 숨겨놨어요. 영향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부분이죠. 그나마 제 이념이 확고해지는 곡은 “제자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자리”와 “암전”은 이어지는 곡이 아니라 두 개의 엔딩이라고 생각해요. “책상”에서 이어지는 곡이 “제자리”일 수도 있고, “암전”일 수도 있는 거죠. 책상 앞에서 밤새 작업을 하다가 결국 잠들어서 달콤한 꿈을 꾸게 되는 게 “제자리”고, 책상 앞에서 잠들지 못하고 계속 피폐해진 마음으로 작업하는 모습을 담은 게 “암전”이에요. 그 두 곡은 서로 이어지는 곡이 아니고 특히 "암전"은 어떻게 보면 음반과 별개의 곡으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는 원래 “암전”을 음원으로 공개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암전”은 원래 보너스 트랙이었어요.





LE: 이분법적으로 딱 잘라 나눌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해피 엔딩, 새드 엔딩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네. “암전”은 오히려 저에게 있어 새드 엔딩이에요. (마지막에서) 세게 말하는 톤조차도 제 확고함이 아닌 절규를 표현한 부분이거든요. 근데 많은 분이 그걸 확고함으로 느낀다면 틀린 건 아니죠. 언젠가 다시 힘을 얻어서 다음에 정말 확고해진 모습으로 돌아올 수도 있잖아요. [녹색이념]의 진짜 끝은 앞으로 제가 앞으로가 만들어 나갈 거예요.





LE: 사실 해피 엔딩은 인과응보의 클리셰가 강하잖아요. “암전” 자체가 그런 관성적인 방식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개봉판과 감독판의 느낌?

네. 저도 개봉판과 감독판의 느낌으로 음원에서 “암전”을 빼려고 했던 거죠. 근데 회사에서는 이 곡에 사람들의 반향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더라고요. 회사를 믿고 따랐죠.





LE: 실제로 “암전”이 가장 반응이 많은 편이었죠?

네. 사람들이 저한테 예상하는 모습, 에너지와 가장 가까워서일 듯해요. 그리고 김태균이 아닌 테이크원으로 봤기 때문에 그 곡을 확고함으로 받아들이신 게 아닌가 싶어요.





LE: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결국 사회적인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해주셨는데요. 힙합이라는 음악이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어쩌면 음악을 듣고 공감할 여지가 많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요. 과거 한국힙합에서는 그걸 ‘학원차 바이브’라는 말로 치환해서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 학원차를 타고 다니면서 보았던 풍경이나 느꼈던 감정들을 잘 건드린 게 소울 컴퍼니(Soul Company)라고 할 수도 있을 거 같구요. [녹색이념] 같은 경우도 그 느낌은 사뭇 다르지만, 비슷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헬조선을 살아가는 2, 30대의 절망 같은 게 담겨 있는 앨범이랄까요? 이런 지점도 설계한 건지, 아니면 그냥 풀어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나온 건지 싶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힙합이 자기 얘기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얘기를 하는 게 곧 아까도 얘기했듯 사회와 세상을 얘기하는 건데요. 결국에는 같은 사회에 살기 때문에 공감하고, (힙합에) 반응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저는 이 얘기를 쓰면서 제가 곧 사회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사람들이 공감할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그걸 공감을 위해서 설계한 거냐고 한다면 당연히 아니구요. 다만, 제 얘기를 하는 게 공감이 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죠. 사실 저도 다를 게 없거든요. 사람들이 말하는 헬조선을 사는 20대, 30대. 저도 그 사회, 그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제 얘기를 하는 거 자체가 같은 세상을 사는 분들에게 와 닿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게 힙합과 가요의 다른 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가요는 대부분 자기 얘기를 하지 않아요. 누군가가 적어준 글과 가사,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말(을 대신 하죠). 그렇게 해서는 절대 자신의 깊은 마음을 꺼낼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힙합이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 있었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봐요.





LE: 가사를 보면 개인의 경험이 녹아 있으면서도 보편적인 단어나 표현이 많더라고요. 공감대를 만들면서도 김태균만의 인생을 담는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 것처럼 느껴졌어요.

확실히 그런 부분이 제 기준 중 하나였어요. 제 얘기를 다 풀면서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형식과 형태를 오래 고민했고 결국엔 찾았어요. 가사를 잘 썼는데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 해서 다시 쓴 적도 있어요. 반대의 경우도 있었고요. 두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죠.





LE: 형태를 확장한다거나 그러지는 않으셨나요? 이를테면 가사가 24마디나 32마디가 나왔는데 가사가 마음에 들어서 맞춰서 비트를 편곡했다든지.

저는 제 랩에 비트를 맞춰서 하기보다 제가 비트에 맞춰서 주로 음악을 구상해요. 그래서 원래 비트 안에서 제 의도를 다 표현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비트에 관한 부분은 프로듀서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왜냐하면, 그 부분은 아직까지 제가 잘 못 하는 부분이에요. 제가 잘 아는 부분이 아니라서 그보다는 제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서 많이 노력하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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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녹색이념]에 한국힙합의 가사를 많이 인용하셨잖아요.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의 “Good Life” 속 “한 잔 두 잔 넘어가는 술잔” 같은 구절이나 버벌진트(Verbal Jint) 씨의 “역사의 간지” 속 가사를 차용한 것처럼요. 한편으로는 키스 에이프(Keith Ape) 씨의 ‘Korean Rap Sucks’ 발언을 곡으로 비판하기도 했고요. 한국힙합을 향한 애정을 음악 안에서 드러내는 이유가 궁금해요.

한국힙합을 듣고 랩을 시작하게 됐기 때문인 거 같아요. 그리고 한국힙합이 아니었으면 랩을 시작하지 않았을 거고, 랩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제 이념은 탄생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 이념이 곧 꿈인데, 꿈을 꾸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제 음반, 제 삶을 이야기하는 데에 당연히 한국힙합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죠. 인용한 곡들은 제가 한국힙합을 사랑하고, 배워가고, 그로써 꿈을 꾸고 이념을 갖는 데에 영향을 끼친 노래들이에요. 당연히 사랑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죠. 지금도 한국힙합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예전만큼 듣지는 않지만요. 새로 나오는 것 다 확인해 보구요. 듣는 양으로 따지면 한국힙합이 굉장히 많은 거 같아요. 미국 힙합의 경우에는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위주로 듣지만, 한국 힙합처럼 다 확인하면서 듣지는 않거든요.





LE: 태균 씨가 미국으로 유학 가셔서 힙합을 접한 거로 알고 있어요.

네. 그때 외롭게 지냈었는데, 항상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녔어요. 그때 즐겨 들었던 게 MC 스나이퍼(MC Sniper) 형의 “한국인”이었어요. MC 스나이퍼 형이 (커리어) 초기에 한국을 표현하는 음악을 많이 하셨잖아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도 그렇구요. 어쨌든 제가 향수병과 외로운 감정을 갖고 있어서 굉장히 와 닿았었어요. 그렇게 MC 스나이퍼 형을 시작으로 한국힙합을 찾아 듣게 됐죠. 그 외로움 때문에 한국 인터넷 사이트들을 많이 찾아보게 됐고, 그러면서 힙합 사이트도 찾아보게 됐던 거예요. 거기서 많은 콘텐츠를 접하다가 저도 랩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랩을 시작하게 됐죠.





LE: 녹음도 미국에서부터 시작하신 거겠죠?

네. 그 부근이죠. 맞아요. 정확히 제가 랩을 하게 된 계기는 밀러 프리스타일 랩배틀 대회 영상이었어요. 처음 보는 사람들이 랩을 하더라고요. 그전까지는 가수들만 음악을 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본명을 쓰는, (제가) 처음 보는 일반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랩을 하는 걸 보고 평범한 사람도 음악을 할 수 있단 걸 알았죠.





LE: 태균 씨의 첫 랩 네임은 왜 바보(Babo)였나요?

정말 의미 없는데… 있는 척하는 답변이 하나 있지만, 솔직하게 얘기하면요. 제가 정글 라디오라는 다음 카페에서 활동했었어요. 정글 라디오(Jungle Radio)라고, 그게 아마 제 세대의 랩을 하던 분들이라면 다 아실 거예요.





LE: 그 이후에 힙합플레이야 자작 녹음 게시판이 흥하고 그랬죠.

네, 맞아요. 저한테 친형이 있어요. 제가 컴퓨터를 할줄 모르던 어린 시절에 인터넷을 처음 들어간 거예요. 그때 아이디를 만드는데 뭐로 만들어야 할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형이 그냥 ‘바보 어때?’라고 해서 그걸 아이디로 만들었었어요. 그 후에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면 닉네임을 정해야 하잖아요. 닉네임을 안 정하니까 아이디 그대로 바보로 되더라구요. 그 아이디 그대로 활동했던 건데, 활동을 오래 하다 보니까 바보라는 이름이 제 닉네임, 래퍼 이름으로 굳어버린 거죠. 근데 제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자면, 천재의 반대말이잖아요. 그게 굉장히 마음에 들었었어요. 저는 항상 저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살거든요. 평범한 사람이지만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요. 천재가 아니라 바보 같은 저도 이렇게 음악을 할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다는 의미를 스스로 부여해서 활동했었죠.





LE: 한국힙합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지금의 힙합 씬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요. 누군가는 지금의 한국힙합 씬이 <쇼미더머니>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기형적인 형태라 말하잖아요.

저는 한국힙합이 기형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에요. 저도 물론 아쉬움을 느낀 적도 있죠. 근데 아쉬움을 느끼면 제가 채우면 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아쉬움을 느낀 부분을 제가 채웠다고 생각해요. 그걸 채우는 게 곧 바꾸는 것이라고도 생각하거든요. 저한테 있어서는 그렇고, 다른 래퍼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믿고 있어요. 예를 들어, 뭔가가 아쉽다면 그 아쉬운 부분을 채우려고 각자 활동을 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힙합이라는 시장이 돌아가고, 멋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채우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타협이죠. 타협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해요. 우선, 저 자신만큼은 항상 그 아쉬움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에 한국힙합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지는 않아요.

<쇼미더머니>에 관해서도 이야기하자면, (출연했던) 그 당시에 저는 힙합을 보여줄 매체가 없다는 게 아쉬웠어요. 그때 <쇼미더머니>가 생겼는데 이건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고 봤어요. 그런데 당시 <쇼미더머니> 나가는 사람들은 Wack이고, 나가면 매장시켜버린다는 식의 여론이 돌았단 말이에요. 그 여론이 제가 <쇼미더머니>를 나가게 된 가장 큰 동기였어요. 왜냐하면, 그런 모습마저도 아쉬웠어요. 그렇게 힙합이란 시장이 닫혀 있는 모습을 한다는 게. 그래서 저는 (제가 출연해서) 그 부분을 채웠다고 생각하고, 바꿨다고도 생각해요. 앞으로도 한국힙합은 그럴 거기 때문에 굉장히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만약에 <쇼미더머니>에 모두가 나가서 아쉬운 상황이 되면 안 나가는 사람이 많아지겠죠.





LE: 지금으로써는 자연스러운 상황이라는 거군요.

그렇죠. 뭐든지 유행이 되잖아요. 유행이 되면 사장되며 돌고 도는 법이고요. 이게 문제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LE: “Recontrol”이나 “Come Back Home”을 냈을 때도 아쉬움을 채운다는 일종의 용기, 대담함을 보였던 건가요?

제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신 거 같은데요. (웃음) <황치와 넉치>에서도 얘기했듯이 주변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것에서 가장 큰 동기를 얻고 행동했거든요. 그게 어떻게 보면 그런 아쉬움이었어요. 이 사회에서의 눈치라고 해야 하나요? 주변 사람의 눈치,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털어놓고 싶은 속마음을 얘기하지 못하는, 인간관계라든지, 그 모든 것들 때문에. 그런 사회적인 아쉬움도 있었고, 그게 제가 속한 힙합 씬에서도 만연한다는 것도 아쉬웠어요. 그걸 깨고도 싶었어요. 그리고 디스전이 있으면 생겨나는 많은 반응 중에 아쉬운 게 사람들이 자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요. 너가 뭔데 이렇게 잘 나가는 사람을 비판하느냐는 식으로 많이 얘기해요. 그것마저도 저희가 교육받아 온, 이 사회에 만연한, 고쳐나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LE: 일종의 급이 되어야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이겠죠.

네. 계급주의라고 하죠. 사람들의 침묵 속에서 그런 것도 느꼈어요. 저는 그런 계급주의 같은 사상도 항상 깨고 싶고 아쉬워하는 부분이란 말이에요. 그런 아쉬움 때문에 더 행동하게 됐었죠.





LE: “돈”에 <쇼미더머니> 시즌 1에 함께 출연한 분이 많이 참여하셨잖아요. MC 스나이퍼 씨, MC 메타(MC Meta) 씨, 로꼬(Loco) 씨. 피처링 진의 구역이 명확히 정해져 있었어요. 참여진들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피처링에 있어서는 전부 다 제 의도대로, 제가 구상한 것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이뤄졌었어요. 그렸던 그림 그대로. 사실 이 앨범에 있어 (피처링 작업이) 협업이라기보다는 어떻게 보면 제가 좀 더 요구한 것에 가깝죠. 제 그림에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래서 아쉬워하는 분들도 있긴 한데, 어쨌든 저는 저의 그림에 맞게 잘 진행했다고 생각해요.





LE: 녹음을 했는데, 본인 마음에 들지 않고 이런 적은 없었나요?

있었어요. 근데 그런 부분에서 제가 크게 터치는 안했구요. 수정을 요구한 적은 몇 번 있지만, 제가 표현하려는 그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대로 진행했어요.





LE: 재미있는 게, 사실 얘기를 듣다 보니까 참여진이나 프로듀서들에게는 기준이 되게 관대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근데 또 본인에게는 철저하신 거 같구요.

네. 제가 확실히 프로듀싱이나 참여진 그런 부분에서는 굉장히 관대했었어요. 몇 명은 이 관대함에 놀랐다고 하시더라구요. ‘이렇게 끝내도 되는 거야?’라고 물어본 사람도 되게 많았어요. 그래도 저를 표현하는 아트워크라든가, 믹스 같은 부분에서는 제 랩이나 가사만큼은 아니더라도 귀찮게 하긴 했어요. 제가 많이 참여했죠. 그래도 다시 엎는다든가, 그 정도 수준으로 하진 않았구요. 믹스는 몇 번 그런 적 있고, 힘들게 했지만 제 기준에서는 굉장히 관대했어요.





LE: 반대로 본인이 피처링을 할 때는 어떤가요? 피처링으로 참여하는 기준이 있으실 거 같은데요.

제가 피처링할 때 되게 까다롭게 구는 부분이 있어요. 단순히 랩을 자랑하기 위해 저를 원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근데 그건 곡을 만든다기보다는 랩으로 천하제일무술대회를 여는 느낌이잖아요. 그럴 때마다 다 거절했어요. 단순히 랩을 잘하는 건 보여줄 필요가 없다 생각해요. 뽐낼 순 있지만 이미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제가 추구하는 좋은 음악의 기준과도 다르고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하고, 표현하고 싶은 감정이 있어야 하니까요.





LE: 확실한 본인만의 기준이 있으신 거 같네요. 앨범 내 참여진 얘기를 좀 더 해보면요. 제대로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더 나은 놈이 되어 돌아와”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크루셜 스타(Crucial Star) 씨 목소리도 나오는 것 같더라구요.

아, 맞아요. 그것도 크루셜 스타 형의 가사를 인용한 부분인데요. 형이 “이제는 떳떳하다” 믹스테입 버전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작은 부분이지만 더블링으로 재등장시켰죠.





LE: 그렇게 등장시킨 아티스트 중에 거론이 많이 안 된 아티스트도 있을까요?

“겨울잠”에 자메즈(Ja Mezz), “붉은 융단”에 릴보이(Lil Boi), 어글리덕(Ugly Duck). 그리고 “침대”에 에이솔(Asol) 씨도 많이 거론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침대” 2절에서 제가 여자를 연기하는 벌스가 있는데요. 에이솔 씨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굉장히 잘 어울리는 거 같아서 단순히 목소리 때문에 같이 작업하게 됐어요.





LE: [녹색이념]은 태균 씨의 범주 안에 있는 사람들과 만든 앨범이잖아요. 태균 씨의 주변인들로 구성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모든 곡에서 그렇게 접근한 건 아닌데, 대부분 곡에서 제가 하는 이야기, 곡의 상황, 한마디로 제 삶과 연관된 사람만 기용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금처럼 됐어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 삶과 전혀 관련 없는데 음악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는 제 풀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기용했어요. 에이솔 씨라든가, 엘로(ELO) 형이라든가 그런 분들이 그렇죠. “돈”, “대마초” 같은 곡들에서는 제 삶과 연관되어 있는 내용에 맞는 피처링이죠. 제 기준에서는 이런 곡들이 정말로 멋진 피처링이에요. 정말 잘 쓴 피처링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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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랩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요. 어느 곡이든 간에 태균 씨는 흐트러지지 않게, 빡빡하게 랩을 하는 스타일이긴 한 거 같은데요. 이번 앨범 들어 유독 더 치밀한 느낌이 있는 거 같아요. 랩 디자인에 있어 강박이 보이기도 했는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랩을 짰나요?

제 가사와 랩이 맞물리는 모습이 가장 중점이었어요. 랩을 할 수 있는 방식도 무수히 많은데요. 예를 들어, 흔히 말하는 트랩 플로우라는 게 있잖아요. 근데 그 트랩 플로우로 “입장” 같은 가사를 소화한다고 하면 굉장히 이질감이 느껴질 수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가사에 딱 들어맞는 옷을 찾으려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어요. 더 타이트하게, 더 빠르게, 더 현란하게 할 수 있지만, 이 가사와 맞지 않으면 그보다 더 어울리는 랩을 했어요. 그렇다고 너무 가사 중심적이다 보니 심심하다거나 음악적으로 수준도 떨어지지 않게끔 노력했어요. 그렇게 가사와 랩 둘 다 서로 잘 어울릴 수 있는 모습을 구현하려고 노력했어요.





LE: 실제로 그런 접근이 흥미로웠는데요. 곡들을 보면, 트랩의 리듬 구조를 가진 경우도 몇몇 있잖아요. “보여줄 때”라든지, “돈” 이런 트랙이 그렇죠. 거기서는 아무래도 리듬 구조와 랩이 살짝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있기도 했었는데요. 아무래도 가사와 어울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셔서 그대로 둔 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돈”도 그렇고, 전부 다 제가 상상한 그대로 랩을 해서 전 랩과 가사, 저의 영역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전혀 없어요. (리듬 구조와 랩이) 어울리지 않는다든가 그런 생각은 따로 한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제 랩에 엇박의 느낌이 있다고 받아들이는 거 같아요. 그런데 전 제 랩이 굉장히 기본에 충실하다고 생각해요. 엇박이라는 말조차도 동의할 수 없어요. 저는 박자에 있어서 집착하는 수준으로 맞추는 편이고, 그 포맷을 지킨다고 생각해요. 제 의도와 상상이 그대로 실현될 때까지 녹음하고, 그걸 벗어나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박자적인 부분에서는 사실 그런 생각에 크게 동의할 수 없어요.





LE: 리듬 구조상 엇박 랩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잖아요. 보통 두 번째, 네 번째 박자에 라임을 맞추는 게 정박 랩이라고 하긴 하는데요.

그렇죠. 제가 느끼기에, 저는 제가 듣는 힙합이랑 거의 비슷하게 리듬 구조를 가져간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제가 엇박 랩을 한다고 생각하더라구요. 제 생각에 엇박은 그냥 틀린 박자가 아닌가… (전원 웃음)





LE: 발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앨범이 앨범이다 보니 아무래도 가사 전달에 초점을 많이 맞추셨을 거 같은데요. 요즘은 소리적인 측면을 강조하다 보니 발음을 일부러 흘려서 랩하기도 하잖아요. 태균 씨는 반대로 딜리버리 신경을 많이 쓴 듯하고, 그러다 보니 녹음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요.

한 단어, 아니 한 단어도 아니고 한 음절 단위로 수정을 많이 했었어요. 그리고 제가 ‘의’ 발음이 지금도 굉장히 힘들어요. 그 외에도 힘든 발음이 몇 개 있었는데, 그것도 하나하나 제대로 하려 했구요. 말씀하셨듯이 발음을 일부러 흘리는 스타일이 추세고 유행이잖아요. 저한테 있어서는 추세를 따르는 게 예술가로서 재미없는 행동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앞서도 말했듯이 예술가는 예상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예상되는 행위잖아요. 추세를 따르더라도 자기만의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어쨌든 그런 아쉬움 때문에 제 발음을 더 신경 썼던 거 같기도 해요. 그리고 힙합에 있어서 제가 좋아하는 부분이 어떤 사람의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거든요. 발음에 신경 쓴 건 저도 얘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기 때문에 더 그러기도 했죠.





LE: 랩 톤이 안정된 경우에는 마디별로 끊어서 녹음을 가져갈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호흡을 온전히 살리기 위해 통으로 16마디를 녹음하는 경우도 있구요. 어떤 식으로 녹음을 많이 하셨나요?

아프기 전에는 통으로 다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거의 한 테이크만에 끝내는 게 대다수였어요. 처음 녹음실 갔을 때 빼구요. 그 이후에는 거의 두세 번 안에,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끝냈어요. 근데 요즘도 그럴 때가 있어요. 제가 저 자신한테 관대할 수 있는 작업들 있잖아요. 피처링으로 참여한 곡에서 덜 열심히 한다는 건 아니지만요. 어쨌든 제 음반에 있어서의 잣대가 굉장히 엄격해서 제 음반 녹음할 때는 한 마디 단위로 할 때도 있어요. 그 한 마디조차도 여러 번 다시 하고. 퍼즐들을 맞춰가는 식으로 작업을 많이 했어요.





LE: 여러 번 다시 녹음할 때, 발음이 문제였을 수도 있고, 악센트가 문제였을 수도 있고, 뉘앙스가 문제였을 수도 있었겠죠? 그 모든 게 마음에 들 때까지 하신 거겠죠.

그것도 그렇고, 이 음반에 있어서 제가 상상한 모습을 그대로 구현하려고 하다 보니 (그랬죠.) 제가 이 음반을 만들며 정했던 기준 중 하나로 쉬지 않고, AR로 제 목소리를 깔지 않고도 제 목소리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있었어요. 그래서 공연할 때 음반에 수록된 곡들을 할 때는 굉장히 힘들어요. “암전” 같은 곡은 특히 제가 속삭이면서 랩을 해도 힘들 정도예요. 빠르지 않아도 빽빽하고, 쉴 구간이 거의 없거든요. 어쨌든 그러다 보니까 공연하는 것도 힘들고, 녹음하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그 흐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해야 하니까요. 흐름 때문에 녹음을 다시 하는 상황이 많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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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렇군요. 처음으로 돌아와서 (웃음) 다시 [녹색이념]이란 텍스트 자체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좀 더 해보도록 할게요. "섬광"과 "붉은 융단"은 디모데전서 6장을 인용하고 가스펠을 사용했단 점에서 호불호가 갈리더라고요. 앞서 말한 요소를 곡에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까 아파지고 나서 종교적으로 영향을 받았냐고 물어보셨잖아요. 종교는 어떻게 보면 [녹색이념]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존재 중 하나였어요. 아프고 난 후부터 종교에 관해 더 많이 생각했거든요. [녹색이념]은 제 삶에 관한 이야기고, 항상 거부해왔지만 제 삶 언저리에는 항상 종교가 있었거든요. 사실 종교적인 색은 [녹색이념] 작업의 후반에 생겼어요. 종교적인 부분이 배제된 건 아니었지만, 지금만큼 내세우는 건 초기 계획에는 없었어요. 제가 구상을 다 하고 작업이 어느 정도 되었을 때 음반을 쭉 들어보고 나니, 제가 이야기하는, 음반 안에서 말하고 갈망하는 모든 것의 해답이 종교 안에 이미 있더라구요. 그 사실이 저에게 굉장히 크게 다가왔고, 그 영향 자체를 음반 안에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넣게 됐죠.





LE: 실제로도 종교는 천주교인가요?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미국 천주교 학교에서 나왔어요. 천주교 학교에 가게 된 이유는 종교가 아니었어요. 제가 유학을 혼자 갔거든요. 부모님과 함께 미국에서 살아야지만 공립학교에 갈 수 있고, 시민권이 없는 저 같은 유학생은 사립학교에 다녀야 했어요. 그중에서 학비가 저렴한 학교를 찾다 보니 천주교 학교를 가게 된 것뿐이에요. 그런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많은 만남을 가졌는데 종교를 가진 사람이 주변에 많았어요. 그렇다 보니 종교에 관해 생각하게 되는 일이 많았고, 그 생각조차도 음반에 담아내려 했어요. 지금만 하는 게 아니라, 제가 평생 해야 할 생각이란 말이에요. [녹색이념]으로 제 삶을 이야기하는데 평생 할 생각을 얘기 안 하는 것도 이상하죠. 어떻게 해답을 내려야 할 지 모르겠는 혼란도 담고, 그 해답마저도 삶을 통해서 언젠가는 내리고 싶었어요. 제 경력, 음악, 삶 전체에서 해답을 찾고 싶었던 거죠. 그 과정 중 하나가 [녹색이념] 속 종교인 거죠.





LE: 나중에 보니 종교가 많이 담겨있었다고 하셨는데, 원래는 기피하셨던 건가요?

굉장히 기피하고 싫어했어요. 왠지 모르겠어요. 어린 마음에 세상이 제 중심이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많은 래퍼가 그렇듯이. 제가 어렸을 땐 지금보다도 자신감 넘치는 음악도 많이 만들었거든요.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너만이 존재한다. 너가 선택하며 너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신을 믿는 사람에게도 강압적으로 얘기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지 않게 됐어요. 바뀐 이유도 건강이 컸어요. 건강이 나빠지면서 처음 진심으로 기도했어요. 인간이 나약해져서 의지할 존재를 찾는 건지, 정말로 신이 있어서 필요한 순간에 다가오는 건지는 지금도 고민해요. [녹색이념]을 들어보신 분은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제가 신앙을 확고히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저의 주변에서 신앙을 얘기하는 것뿐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제가 종교인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LE: 미국에 계실 때 바이블 벨트(Bible Belt, 미국 중남부에서 동남부의 개신교, 기독교 근본주의, 복음주의적 성향이 강한 종교적 지역)에 계셨던 건 아니죠?

바이블 벨트는 아니었어요. 뉴욕의 올버니(Albany)에 살았어요. 뉴욕이 경기도면, 뉴욕 시티는 서울이고 올버니는 경기도 김포 정도인 거죠.





LE: "붉은 융단"에는 '구원해주소서'라는 가사가 있어요. 김태균 씨에게 '구원'은 어떤 의미고, 누구에게 바라는 건가요?

이 가사는 정확히는 릴보이가 썼어요. [녹색이념]에서 의미하는 구원은 현실에서의 자유에요. 저는 앨범 안에서 꿈, 이념을 지키면서 현실, 타협이 없는 삶을 살고 싶어 하잖아요. 이런 자유를 구원으로 표현했어요. 구원을 누구에게 바라는 거냐면, 두 가지 대답이 있는데 하나는 제가 신에게서 구원, 자유를 바라는 모습이고 또 하나는 제가 선지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이 저로 인해 자유의 희망을 가지게 되는 모습을 그리려고 했어요. 믿는 것이 신이냐 자신이냐에 따라 해석이 갈릴 수 있게요.





LE: "붉은 융단"에는 2002년 월드컵을, "제자리"에는 개화행 지하철 소리가 삽입되었잖아요. 앨범 속 스킷은 어떤 역할인가요?

[녹색이념] 속의 스킷들은 제 꿈과 이념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들을 표현해요. 2002년 월드컵의 슬로건이 '꿈★은 이루어진다'였잖아요. 이 슬로건이 제 꿈과 이념을 형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어요. 제가 꿈을 꾸게 만들었으니까요. 또 한편으론, 당시에 저는 어린 마음에 우리나라가 우승하지 못했으니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받아들였어요. 저는 우리나라가 패배했던 4강 경기를 직관했거든요. 그래서 그 슬로건이 희망과 절망 두 가지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붉은 융단"의 인트로 스킷은 그 슬로건을 표현한 거예요. 그리고 꿈에 대한 희망과 절망은 곧 [녹색이념]을 함축해서 표현한다고도 생각했어요.

"제자리"의 '개화행' 스킷은 꿈에서 일어나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걸 표현하는 스킷이에요. 꿈을 이루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결국 제 꿈이 집으로 돌아가는 게 되었다고 표현하는 거거든요. '개화역'으로 돌아가는 것. 과거에 현실로 치부하던 것들이 제 꿈이 되었고, 꿈이라 생각하던 건 현실이 됐어요. 꿈과 현실이 뒤바뀌었어요. 그걸 표현하려고 했어요. 집을 떠나 꿈을 좇는 게 과거의 꿈이었고, 집, 결혼 같은 것은 현실이었죠. 지금은 제 꿈을 좇는 게 악몽으로도, 현실로도 표현되고, 가정을 꾸리며 평범한 삶을 사는 게 꿈이 되었단 말이에요. 그걸 "제자리"에서 표현했어요. 꿈을 이루겠다고 하고 나오는 스킷이 집으로 가는 상황인 것도 이런 이유에요. 어떻게 보면 계속 꿈을 꾸고 있지만, 변질되어 버린 꿈 자체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자리"도 완벽한 해피 엔딩은 아닌 거죠.





LE: '집'이 중의적인 거네요.

모든 곡이 중의적이에요. 여러 갈래의 해석과 해답을 정해놨기 때문에, 지금도 저에게 단 한 가지 해답을 내려달라고 하면 말하기가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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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2002년 월드컵이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릴 때부터 그 생각을 하셨던 건가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굉장히 웃긴 게, 독일전을 실제로 보러 갔다고 했잖아요. 지고 나서 왠지 모르게 많이 울고 좌절했어요. 제가 직접 가서는 처음 보는 축구 경기였는데,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지만 졌잖아요.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어요. 제가 아까 꿈과 현실에 관해서 얘기했잖아요. 꿈과 현실, 이념과 타협 이렇게 묶어서 얘기했는데요. 현실을 타협으로 생각한 것도 어릴 때부터였어요. 제 첫 꿈은 화가였어요. 화가의 꿈을 꾸지 못한 게 부모님이 돈이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거든요. 화가는 꿈, 타협은 현실. 꿈과 항상 상반되는 게 현실이었어요. 타협하게 만드는 요소는 돈이었고요. 다른 꿈은 요리사였는데 같은 이유로, 제가 유학을 가고 공부를 하는 것보다 벌 수 있는 돈이 적어서 타협하고 포기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항상 꿈과 현실, 이념과 타협, 그런 식으로 대칭되었어요.





LE: 힙합엘이 커뮤니티에는 '김태균은 아빠 되게 싫어하는 것 같다'라는 내용의 게시글도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크게 느껴졌고 무서웠어요. 지금은 무섭지 않아요. 아버지는 항상 저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을 거라 생각해요. 제가 바라는 사랑의 방식이 아니었던 거죠. 항상 저에게는 강압적이게 느껴졌던 거 같아요. 랩하는 것조차도 부모님 때문에 타협하고 랩을 하지 않을 뻔한 적도 있어요. 이런 점을 포함해서 저의 감정은 "입장"에 다 담았어요. 확실한 건 싫어한다고 얘기할 수 없어요. 전 사랑받기를 원하고, 실제로 사랑받고 있으며, 사랑하니까요.





LE: 사랑받기를 원하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여러 표현이 후렴에 나와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떤 하나를 포기하면 쉬워지기도 하잖아요. '인정은 필요 없으니 자유로워지고 싶어'라든지요. 그런데도 모두 원했던 이유는 뭔가요?

제가 살아간다는 증거죠.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모든 걸 벗어 던질 수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요. 계속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죠. 상반된 부분이기도 했죠. 가족과 잘 지내고 싶고, 같이 있고 싶지만 동시에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었어요. 지금도 집에 잘 안 들어가요. 꽤 가까워졌는데도 잘 안 들어가게 돼요. 어쩔 수 없는 듯해요. 제가 꿈을 꾸는 한 밖으로 나돌겠죠. 그래도 화목하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녹색이념]을 낸 게 행복한 거 같아요. 상처도 줬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LE: [녹색이념]을 가족분들이 다 들어보셨나요?

음감회에도 오셨어요. 공연 때도 오셨고요. 제 음악에 이렇게 관심 가진 적은 처음이에요. 저 자신도 제 음악을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았었어요. 저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온전히 힙합 팬들을 위한 음악을 했었어요. 제 성격마저도 힙합이기 때문에 맞춘 적도 많아요. 그런 모습을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긴 창피했어요. [녹색이념]을 제 이름으로 낸 이유도 비슷해요.





LE: "입장"에는 태균 씨가 유학을 갔고 안 좋은 상황이 있었다는 정도가 유추되지만, 자세하진 않아요. 가사만 보면 미국에서도 힘든 일이 많았던 거 같아요.

"입장"은 [녹색이념]의 원인이 되는 곡이에요. 유학생활도 제 의지대로 한 게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더 힘들었는데, 어릴 때 전 항상 가족과 함께 있고 싶었어요. 어릴 적 꿈은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돈 때문에 유학을 갔어요. 미래의 제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하니까요. 저는 공부를 좋아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도 유학을 가고, 현실 때문에 공부하며 살았어요. 과정 자체가 저를 불행하게 했고, 이 과정의 반작용이 제 이념, [녹색이념]인 거예요. 유학생활도 저는 현실과 돈, 타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게 오히려 꿈을, 이념을 찾게 된 계기가 된 거죠.





LE: 유학 과정에서 차별 같은 경험은 없었나요?

지금 생각나는 건 학교에서 인종과 성격 등으로 그룹이 나누어지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어느 그룹에도 속하질 못했어요. 이게 차별이라면 차별일 수도 있겠네요. 피부도 다르고 저랑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도 없었고, 상황도 좋지 않았죠. 저는 다른 사람의 집에 머무르는 상황이었고, 방과 후 활동을 할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더 섞일 수 없었죠. 그거 외에는 총기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때가 제가 유학하던 때였거든요. 인종차별이 극에 달했던 때였어요. 맥도날드에 가면 동양인이고,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햄버거를 안 팔기도 했어요. 사회에 차별이 만연하다는 걸 처음 느꼈죠.





LE: 그럼 랩을 하게 된 게 인생에서 처음 본인 의지로 한 행위인가요?

네. 제가 아버지에게 반항한 것도 랩을 하는 게 처음이었어요. ‘이건 내가 처음으로 내 의지로 하는 행동이자 꿈이다’라고 말했어요. 어떻게 보면 제 이념이 탄생한 거죠. 그래서 더더욱 포기하질 못했어요. 어떻게든 설득했고 꿈을 계속 꾸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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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다음 트랙이 “이제는 떳떳하다”이기도 하고,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정직하고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고, 그게 음악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거 같아요. 혹 그런 성격이 스스로 피로하다고 느낀 적도 있나요?

래퍼라면, 힙합이라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어요. 물론 굉장히 피로해요. 어느 순간부터 강박 같은 게 싫어지기 시작한 게, 힙합이고 래퍼기 때문에 떳떳하려고 애쓰는 모습마저도 떳떳하지 못한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보여주고 증명하라는 말 때문에 저를 움직이는 거 자체도 떳떳하지 못하단 생각이 든 거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김태균이란 이름을 쓰게 되고 이름을 드러내게 된 것 자체도 떳떳하기 위한 과정이고, 떳떳하기 위한 증명 범주에 속해있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피로하지만 떨쳐낼 수 없어요.





LE: 주변 사람들이 너무 빡빡하다고 하진 않나요?

그러죠. 하지만 저를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저도 저와 다른 사람에게 끌리고, 많은 사람들과도 동질감보다는 달라서 친해진 거고요. 그래서 서로 더 존중하는 거 같아요





LE: 본인과 달라 매력적인 사람이 주변엔 누가 있나요?

긱스(Geeks). 저랑 다르고 그래서 매력적이죠. 매력적이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는 누군가에게서 저와 비슷한 무언가를 느끼는데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일 때에요. 왜냐하면, 저도 언제든지 그럴 수 있으니까요. 저도 언젠가 타협하고 이념을 잃어버릴까 항상 두려워요. 그래서 그런 모습을 보면 절망하고, 보고 싶지 않아 해요. 근데 긱스는 제 눈에는 떳떳하고 저랑은 전혀 다른 음악관, 다른 생각을 가진 거 자체가 매력적이고요.





LE: "대마초" 같은 트랙에서는 방송에서 김태균 씨를 소위 말하는 '악마의 편집'처럼 물건 취급하는 거에 관한 이야기가 있잖아요. 엔터테이너로 본인을 정의하는 분들은 이런 걸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요. 김태균 씨는 아닌 것 같고요.

저는 그 상황에서 고통을 많이 받았어요. 사람들은 오히려 그게 잘 된 거고, 멋있는 거고 그런 상황을 감사히 여겨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대중에게 저를 각인할 기회라고 많이들 생각하시더라고요. 근데 저는 아무래도 <쇼미더머니>에 나간 의도가 힙합을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한 거다 보니 제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게 고통스럽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엔터테이너가 아닌 저의 이념을 가지고 보여주기 위해 나갔기 때문에 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트러블이 생겼던 거 같아요. 그래서 소위 말하는 '악마의 편집'을 당했다고 생각하고요. 지금은 그때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쇼미더머니>를 꺼렸는지 이해가 되긴 해요. 하지만 후회하진 않아요.





LE: “돈”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나도 사라질게 당신들의 곁에서 영원히"라고 말했잖아요. 프로그램이 끝난 후 실제로 슬럼프 같은 게 왔던 건가요?

네. 초기에는 활동을 열심히 하려고 했어요. 관객들이 저를 바라보는 모습이 제가 아닌 다른 모습을 바라보는 거라고 느껴졌다고 아까 얘기했잖아요. 그게 <쇼미더머니> 이후거든요. <쇼미더머니>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그래서 사라지고 싶었고요. 떨쳐버리려고 음반 작업에 몰두하면서 활동을 거의 2년 정도 쉬었어요. 2014년 초까지는 열심히 활동하다가 어느 순간 생각에 사로잡히며 공연을 하기 싫어졌어요. 들어오는 공연 섭외는 전부 거절하고, 온전히 저를 표현하려고 했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녹색이념]이 나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LE: "막다른 길"을 보면 상황이 계속 변하잖아요. <쇼미더머니> 이후 여성의 어필이나 파티에 가는 모습이 담기는데요. 의구심을 품고 반하는 행동이 많이 보였어요.

방금 한 이야기랑 비슷한데요. 관객이나 이성이나 모든 것에 있어서 사람들이 진짜 저 자신을 들여다보고 좋아한단 생각을 못 했어요. 그 상황을 즐긴 순간이 분명 있었지만, 의문이 생기면서 더는 즐기지 못한 거죠. 지금도 저는 파티 문화에 있어서 동떨어져 있어요. 다른 계기는 치료 때문에 술, 담배를 하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더 멀어졌죠.




LE: 돈, 명예, 향락을 멀리함에 있어 자유로운 의지도 있었겠지만, 불가피한 것도 있었네요.

그렇죠. 전체적으로 보면 그게 원래 제 성격이었어요. 그런 거에 중점을 두지 않는 게 제 성격이고, 여러 상황이 겹쳐서 이렇게 된 거죠. 그렇다고 제가 힙합이고 래퍼기 때문에 성격을 연기하고 바꿔가면서 파티를 좋아할 필요는 없잖아요. 제 진짜 성격을 표현하고 음악으로 만드는 게 더 힙합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LE: 지금은 본인이 여러 것에 있어 자유로운 존재가 된 거 같나요?

네. 굉장히 자유롭다고 느껴요. 저와의 대화를 엄청 오랜 시간을 들여서 했고, 어느 정도 끝냈어요. 다만 지금도 해결 못 한 부분은 꿈과 현실이죠. 그게 [녹색이념]에서 이야기하는 가장 큰 부분이죠.





LE: "잔상"에 나오는 구절이 야고보서 1장인데요. 앨범 중앙에서 인터루드의 역할을 해요. 앞부분이 인생 서사를 쭉 이야기한다면, 뒷부분은 구체적인 상황에 감정이나 생각을 자세하게 묘사하는데요. 앨범의 전, 후반을 만드는 상황은 어떻게 달랐나요?

일단 제 작업 방식이 변했어요. 전반부를 작업할 땐 한글로 가사를 쓰는 게 익숙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곡을 만들 때 단어로 구상하고, 단어를 토대로 글을 적었어요. 그게 앨범의 초안이고, 초안을 토대로 가사를 쓴 게 전반부에요 "섬광"부터 "막다른 길"까지의 1부죠. 후반부에서는 단어는 썼지만, 글을 쓰진 않았어요. 아마도 한글로 가사를 쓰는 게 익숙해졌기 때문일 거예요. 얘기하는 지점도 달랐어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사는 2부에 있어요. 1부의 "입장"은 잘 나왔지만, 그래도 제 이상적인 작사법은 2부에 있어요.





LE: 의미상으로 1, 2부는 어떻게 다를까요?

1부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건 저의 이념 자체와 이념의 탄생, 이념을 통해 벌어지는 일이었어요. 2부에서는 이념이 망가지는 계기와 모습을 중점으로 뒀어요. "잔상"의 야고보서에서도 저의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암시하고요.





LE: “자각몽”, “침대”, “책상”에 관하여 특정 감정을 그렇게나 길게 늘어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아쉬움을 나타내는 분들도 종종 있었어요.

제가 2부에서 (소화)한 내용은 저의 이념을 파괴하는 데에, 현실과 마주 보게 하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들이란 말이에요. 그러니 얘기할 수밖에 없는 거였고요. 왜 그런 영향을 미쳤는지 얘기하려면 그 특정 상황과 감정들을 표현하는 수밖에 없어요. "막다른길"이 저의 이념이 흐려지는 계기라면 그 뒤는 과정을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똑같은 이야기를 길게 늘어 놓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LE: 앨범 내에서 ‘붉은 융단’은 목적지로 표현되잖아요. 그렇다면 김태균이란 아티스트가 밟길 원하는 붉은 융단은 무엇인가 궁금해요.

여길 벗어나지 않고 계속 걷는 게 목적지에요. 끝이 있는 게 아니라 과정 자체가 꿈이고 목적지인 거죠. [녹색이념]에서 제가 흔들리는 부분이 어느 순간부터 붉은 융단에서 벗어나고 현실을 쫓는 게 목적지가 되어가는 부분이에요. 그게 이미 제 목적지가 되었을 수도 있구요. 음반을 한 번 쭉 들어보시고, 다시 들어보시면 "붉은 융단"이 진정한 마지막 곡이 될 거예요. "제자리"나 "암전"에서 꿈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붉은 융단"으로 제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겠네요. (LE: <인셉션>이네요.) 맞아요. (전원 웃음) 그래서 제가 <인셉션>에 영향을 많이 받았단 거예요. 구상 초기부터 생각했던 거예요.





LE: 솔직하게 음악을 하는 과정이 곧 목표네요. 그래서 2집 제목이 [상업예술]인 거고요.

그렇죠. 지금부터 얘기할 방향. [상업예술]… 되게 고민 많이 하고 있어요. 정해둔 이야기는 있는데 이야기조차도 두 가지 얘기가 있어요. 두 가지가 걸어갈 방향조차 상반됐고요. 섣불리 2집을 만들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과정 자체가 재밌어요. 제가 걷는 길 자체가 또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만들어서 내는 것뿐이 아니라 방향을 정하고 이야기하는 삶 자체가 예술이라 생각하며 준비 중이에요. 그래도 [녹색이념]처럼 동굴에 갇혀서 앨범만 바라보며 만들진 않으려고요. 전에는 사람들에게 잊히고 싶은 맘도 있었고, 온전히 저만 보여주기 위해 다른 모습을 아예 보여주지 않았는데, 지금은 계속 저를 보여주면서 다음의 저를 보여줄 구상을 할 거예요. 즐겁게 음악을 할 겁니다.





LE: [녹색이념]의 작가로서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단 생각은 안 드시나요? 열린 결말을 제한시킨다든지 등의 생각이요.

항상 하죠. 원래는 [녹색이념]에 관한 내용은 전혀 이야기를 안 하려 했어요. 근데 그런 생각이 든 거죠. 제가 이야기를 함으로써 다른 분들이 상상할 여지가 늘고, 다른 해석이 나오잖아요. 한 번쯤은 자세한 얘기를 해도 괜찮겠단 생각을 했어요. 저는 제 얘기지만, 제가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른 분들의 해석이 저에게 더 와 닿을 때도 있어요. [녹색이념]은 매우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음반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이 너무 거세되어있는 듯해서 제가 먼저 소통을 시작한 거죠. 상상을 제한시킨다는 두려움은 없어요.





LE: 저희도 정답이라는 확신이 들면 오히려 상황이 안 좋아질 거 같단 생각을 하곤 해요. 과정이 의미가 있지, 목표나 결과를 이루면 되레 약간 허망해지더라고요.

그게 삶인 거 같아요. [녹색이념]을 만들며 많이 느꼈는데요. 단순히 음악 하나만 생각하는데도 삶에 관한 깨달음을 많이 느꼈어요. 방금 말씀하신 과정에 관한 소중함 등이요. 처음에는 [녹색이념]으로 모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근데 문제는 끝나지 않았고, 헤쳐나갈 일이 많아요. 하지만 모든 게 의도대로 완벽하게 됐으면 삶의 의의를 못 찾았을 거 같아요. 오히려 (그 불완전한 과정에서)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LE: [녹색이념]을 듣는, 들을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콘서트 때도 말했는데요. 이렇게까지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게 너무 고맙고, 콘서트에서 저와 함께 소통해주신 분들이 모두 친구로 느껴졌거든요. [녹색이념]을 좋아하고, 반응해주시는 분들은 저에 관해 굉장히 많은 걸 아는 거거든요. 친구나 마찬가지고… 엄청 고맙죠. 그런 분들이 있단 거 자체가 너무 감사할 뿐이에요.





LE: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 음반을 만드는 과정을 함께한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어요. 처음부터 참여했든, 잠깐 참여했든, 중간에 포기했든 이 과정에 참여해준 사람들에게 다 너무 감사해요. 이 얘기를 한 번도 못 했거든요. 아무튼, 이 음반이 만들어진 과정에 얽힌 얘기가 많다 보니 같이 해준 사람들에게 굉장히 감사해요.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악몽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 같은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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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GDB (심은보), 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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