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넉살
넉살은 하드웨어적으로도, 소프트웨어적으로도 확실한 래퍼다. 그는 자신이 담아내고자 하는 머릿속의 생각을 단어와 단어, 표현과 표현, 문장과 문장을 긴밀히 엮으면서도 타이트하고 유려한 랩을 뱉을 줄 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그는 지금의 실력을 갖추기 위한 연구를 지난한 시간에 걸쳐 해왔다. 서른이란 나이에 이르기까지, 좌충우돌하며 많은 일을 겪었지만, 어쨌든 랩과 힙합은 그가 인생에서 끝까지 놓지 않았던 무기 혹은 삶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넉살은 지금도 명예나 부와 같은 성공에 관한 이 시대의 대표적인 지표보다는 좋은 음악을 재미있게 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고 한다. 그런 그의 목표에 걸맞은 수작 [작은 것들의 신]이 드디어 얼마 전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음악 그 자체를 아끼고, 삶의 원동력으로 삼는 VMC의 와일드카드이자 블루칩, 넉살을 만나고 왔다.
LE: 반갑습니다. 먼저 힙합엘이 회원분들께 인사와 간단한 소개 부탁 드릴게요.
넉살: 안녕하세요. 넉살이고요. 굉장히 오랫동안 묵은 전설의 앨범, 저 자신에게도 오래 걸렸던 [작은 것들의 신]을 이번에 발표한 VMC 소속 래퍼 넉살입니다. 반갑습니다.
LE: [작은 것들의 신]이 데뷔 7년 만에 나온 개인 첫 정규작인데 반응이 굉장히 좋아요. 일주일 만에 [양화]의 판매기록을 넘었다고 들었어요.
[양화]가 한정판 앨범이라… (웃음)
LE: 예전 믹스테입 중 [Milli Tape]에서 마지막에 "형, 수고했어. 정규 대박나자."와 같은 나레이션이 있더라고요. 그 말을 5년 만에 지키는 건데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아요.
제작 기간도 너무 길고, 머릿속에서 너무 많이 생각했던 앨범이라, 냈을 때 엄청난 쾌감이 있을 줄 알았어요. ‘와, 나왔구나 X발!’ 이러면서 되게 시원할 줄 알았는데, 너무 오랫동안 만들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낼 때가 되어서 내게 됐구나.’라는 느낌이 일단 있었어요. 다른 소감을 말하자면, 말씀하셨던 애니마토(Animato) 형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이 앨범 얘기를 많이 자랑했거든요. 그래서 프라이드가 있죠. ‘형, 나 진짜 앨범 냈다!’ 이런 느낌.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 자랑스러워 해줘. 앨범 냈어.’ 약간 이런 느낌이 있었죠.
LE: 수록곡 “I Got Bills”을 들어보면, 용한 점쟁이가 서른에 풀릴 거라 말하는 가사가 있어요. [작은 것들의 신]이 그 풀림의 증거라고 봐도 될까요?
아, 그렇죠. 너무 잘됐죠. 사실 저는 점을 되게 싫어해요. 항상 안 좋은 쪽으로 많이 나와서… 저희 어머니가 점을 자주 보러 다니시는데, 거의 얘길 안 해주셔요. 분명히 제 얘기를 물어보셨을 텐데, 점이 어떤 식으로 나왔는지 말씀을 잘 안 해주시더라고요. 서른에 풀릴 거란 가사는 제가 진짜 점을 본 건 아니고, 그냥 하나의 표현으로 쓴 건데요. 어우, (그 가사가) 전조가 됐죠. 앨범을 많이들 좋아해 주셔서 운 좋으면 잘 풀릴 것 같아요.
LE: 앨범도 앨범인데, 지난주에 데프콘(Defconn) 씨와 함께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나오셨더라고요. 실시간 검색어에도 올라가고 그랬는데, 방송을 같이 해본 느낌이 어떠셨나요?
일단 굉장히 떨렸어요. 카메라가 많아서 옛날 <쇼미더머니 2> 때의 악몽이 떠오르더라고요. 카메라를 보고 있으니까 되게 떨리고… 데프콘 형님이랑 강일권 형님 두 분이 너무 잘해주셨어요. 사실 데프콘 형님이랑 저희는 처음 뵌 거거든요. 안면이 전혀 없는 상태였는데, 불러주셔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말씀해주시는데 너무 감사했었죠. 그리고 저희가 힙합플레이야(Hiphopplaya)에서 라디오를 하잖아요. 던밀스(Don Mills)랑 어느 정도 진행구도가 있어서 ‘틀리겠어? 방송이라고 해봤자?’라고 생각했는데, 어우… 한마디도 못하겠더라고요. 회전이 너무 빨라서요.
LE: 회전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제가 말할 타이밍이나 이런 거요. ‘말을 해야 해 말아야 해?’ 하고 있으면 지나가고… 이게 한정된 시간 내에 하는 콘텐츠다 보니까 타임 리미트처럼 두두두두 끝나요. 그래도 너무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화끈한’ 경험이었어요. 던밀스 말대로.
LE: <황치와 넉치>와 비교하면 확실히 제약이 있었을 것 같아요. 본인이 생각하기에 <황치와 넉치> 나름의 유머코드를 어느 정도 담아냈다고 생각하시나요?
어휴, 전혀 아무 것도 못했어요.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밥 먹었어요?”, “네” 이 정도 수준의 대화였어요 거의. 그래서 시키는 것만 하고, 던밀스랑 저랑 하는 특유의 이상한 개그나 독특한 그런 쪽은 아예 손도 못 댔죠. 던밀스도 걔가 ‘한 그릇’이라는 단어를 되게 자주 써요. ‘오늘 술 한 그릇 해야지?’ 약간 이런 식의 자기만의 워드가 있는데, 방송에서 ‘한 그… 한 번 해봤습니다!” 약간 이렇게 한 거예요. ‘그릇’도 못 뱉고… 많이 떨리고 하니깐, ‘한 그릇’ 그냥 하면 되는데 혹시 너무 이상하게 보일까 봐 더듬더라고요. 그 정도였습니다.
LE: 저희가 실시간으로 보았는데, 채팅창을 보니 라이브 때 반응이 좋더라고요. 잘 모르시는 분들도 라이브를 되게 잘하신다고 하더라고요. 방송 당시 <황치와 넉치>를 인터넷 방송으로 하면 재미있겠단 반응도 있더라고요.
너무 다행이에요. 사실 “작두”할 때 두 번이나 틀렸는데… 딥플로우(Deepflow) 형도 틀리고, 막 웃고. ‘모르겠다. 에이 씨, 에이 몰라!’ 이렇게 돼버렸어요. <황치와 넉치>는 조만간 아프리카 라이브로 한 번 할 것 같아요.
LE: 간단하게 근황을 여쭤봤어요. 이제 좀 더 본격적으로 들어가 볼게요. 우선, 음악을 처음 접한 게 언제고, 랩/힙합 음악을 어떻게 직접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거든요.
아예 처음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제가 형제가 많아요. 누나가 셋. 사 남매 중 막내인데, 누나들이 그쪽 음악을 좋아했어요. 힙합 음악을요. 다른 대중가요도 많이 좋아했지만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 (집에) [1999 대한민국]이 있었어요.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도 다 있었고요. 그런 거로 힙합 음악을 듣고 접하다가, 중학교를 올라가서 그때 당시 엠넷(M.net)인가, 그런 음악 방송에서 주석 형을 본 거예요. “Lastman Standing”을 부르시는 걸 봤어요. 링 위에서 빡빡머리로 듀렉 쓰고서 랩하는 걸 보고서 ‘와 저런 게 힙합이구나.’ 생각했었죠. 그러다가 어렸을 때 찬수라는 연희동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방에 바운스(Bounce) 잡지가 많았어요. 힙합을 좋아하는 친구라서 외국 힙합 앨범이 많았어요. 그래서 외국 힙합 앨범을 처음 소개해준 게 그 찬수라는 친군데, 그 친구가 그 커먼(Common)의 “I Used To Love Her”이 해석되어있는 페이지를 보여주면서 그 곡을 들려준 거예요. “한 번 봐봐 이거 되게 멋있는 거야.” 하면서 보여주는데, 그때 ‘와, 이거 장난 아니구나. 힙합이라는 게 엄청난 거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빠져들었죠. 그렇게 중학교 때 막 좋아하다가, 고등학교 때 가사를 쓰기 시작하고, 지금까지 랩을 하고 있죠.
LE: “I Used Love To Her”를 이야기하셨는데, “Do It For All”을 들어봐도, “15살의 나에게 커먼(Common)을 빼앗으려 하다니”라는 구절이 나와요. 처음 해석을 봐서 그런진 몰라도 커먼이 오랜 롤모델인 건가요?
그렇죠. 항상 엄청난 롤모델이었어요. 그걸로 커먼을 알게 되고 앨범을 쭉 듣는데, 가장 감명 깊게 들었던 게 [Be]에서부터 뭔가 좋아지는 바이브가 있었는데, 항상 조금씩 해석된 거나 그런 걸 비춰봤을 때 커먼은 저에겐 일말의 따뜻함이 있는 래퍼로 남아있거든요. 컨셔스 래퍼라고 하는데 제가 그런 컨셔스 래퍼가 되고 싶다기보단 뭔가 따뜻함을 가진 뮤지션이 되고 싶은데, 거기에 가장 부합한 사람이 커먼이었고, 그 음악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오랜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죠. 충분하죠.
LE: 커먼 외의 다른 롤모델이 있을까요? 국내 뮤지션 중에선 팔로알토(Paloalto) 씨를 꼽으신 적이 있어요.
맞아요. 팔로알토 형도 그렇고, 딥플로우 형도 그렇고 이 게임에서 되게 오래된 거목들이시잖아요. 되게 오랫동안 해왔고, 음악으로 증명할 수 있는 부분들을 되게 멋지게 증명해냈고… 팔로알토 형의 옛날 가사들에서 영감을 되게 많이 받았고요. 팔로알토 형님의 옛날 가사에서 영감 받은 적이 정말 많아요. 지금 딱 바로 생각하면 팔로알토 형이랑 딥플로우 형이 제일 생각이 나요.
LE: 그렇군요. 넉살이란 이름은 언제쯤, 어떤 뜻으로 지으신 건가요?
이게 고등학교 때 지은 건데, 그때 많은 래퍼처럼 수많은 이름이 왔다 갔다 했는데, 지금 제 네이버 아이디가 ‘Pet Flow’에요. 그때 당시 그런 이름도 있었고… 플로우를 애완동물처럼 자유자재로 이런 뜻이었어요. 그러다가 넉살로 짓게 된 계기가 제가 어릴 적부터 씨비매스(CB Mass)를 엄청 좋아해서 개코 씨의 팬이었는데, 개코란 이름이 이름만 들었을 땐 ‘이름이 개코가 뭐야. 말도 안 돼.’ 이럴 수 있는데, 실력을 보고 나면 ‘와, 개코 존나 멋있는 이름이다.’ 이런 느낌이 되잖아요. 저도 그게 너무 하고 싶었던 거예요. 이름을 완전 코믹적 요소를 넣어 지어도 실력이 엄청 좋으면 그 단어 자체가 엄청나게 멋있어지는 효과를 기대했던 거죠. 그래서 광대로 해볼까 하다가 광대는 너무 좀 느낌이 이상한 거예요. 사람들이 볼따구의 그 광대로 느낄 수도 있겠다 싶은 거예요. ‘광대 승천’할 때 그 광대로 알아들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처음에는 ‘넉살 꼬마’라는 이름을 지었었어요. 꼬마까지가 풀네임이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스무 살 때 밀러 랩 배틀에 나간 적 있는데, 그때 심사를 아이삭 스쿼브(Issac Squab) 형이 했었을 거예요. 근데 그 형이 넉살 꼬마인데, 넉살로만 부른 거죠. ‘자, 다음은 넉살입니다!’ 이렇게요. 그때부터 ‘그냥 꼬마는 때버려야겠다.’ 해서 넉살 두 글자만 쓰게 된 거죠.
LE: 어떤 다른 뜻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네요.
그런 건 전혀 없어요. 제가 옛날에 크라잉넛(Crying Nut)이었나, 인터뷰를 봤는데 이름을 반년 넘게 고민을 했었대요. 근데 막상 짓고 나니 아무런 의미가 없더라는 거예요. 이름은 그냥 이름일 뿐인 거죠. 그래서 저도 생각하다가 개코같은 한글 이름을 짓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하다가 ‘넉살 좋다.’, ‘너스레 떨다.’ 이런 뜻에서 넉살이 재미있겠다 싶어서 큰 뜻 없이 지은 것 같아요. 그게 한 고2 때쯤이었을 거예요.
LE: 검색해보니까 고등학교 때 랩을 너무 열심히 해서 대학을 못 갔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휴, 전혀 아니에요. 공부를 못했으니까 못 갔죠. 말도 안 되는… 에이… 아예 별개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LE: 과거 하신 인터뷰에 그렇게 올라가 있어요. 랩을 하다가 대학을 못 갔다고.
(웃음) 아마 제가 그렇게 얘기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왜냐하면, 제 성격상 그런 끔찍한 이야기를 하진 않았을 거예요. 아니 무슨 랩을 하다가… 아니죠. 그냥 공부가 좀 부족했고요. 한국외대 영문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꿈도 못 꿀 정도의 점수를 받았었어요. 왜냐하면, 제 기억에 수능 1교시 때 잤을 거예요. 심하게 졸았었어요. 그런 애인데 무슨… 대학을 못 갔죠.
LE: 그래도 그때부터 ‘나는 래퍼가 될 거야.’와 같은 생각이 있었던 건가요? 하고 싶은 게 명확해서 대학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든지요.
아니요. 전혀 없었고… 일반적인 드라마입니다. 미래가 없는 20대 초반에, 세상 모든 이가 나 빼고 대학을 가는 시기에 혼자서 알바 시작하고, 집에서는 ‘이제 넌 정말 끝장이다. 이런 쓸모없는 인간.’ 이런 소리 듣고 그랬어요. 랩으로 돈을 벌겠단 생각을 처음 해본 게 재작년부터인 것 같아요. 예전엔 꿈도 못 꿨죠. ‘난 아마 랩으로는 돈을 못 벌 거야. 다만, 내가 지금 집중할 수 있는 게 랩이니까 이거라도 열심히 해야 내 존재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겠다.’ 그런 생각 때문에 했던 거지, 그때 당시부터 앨범 내고 하면서 랩으로 유명해질 생각은 없던 것 같아요.
LE: 사실 한국이 대학을 못 간 20대를 사회에서 배제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래서 넉살 씨의 경우에는 20대 초반에 (대학을 안 간 게) 두려운 와중에도 래퍼가 되려는 꿈으로 그 두려움을 이겨냈던 게 아닐까 싶었거든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건 너무 멋있네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지하철 차비도 없고, 항상 돈도 없고, 지옥 같고 물속에 있단 느낌이 자주 들었어요. 왜냐하면, 너무 막막하니깐. 근데 또 랩은 좋아하니까 미친 듯이 하고, 술 좋아하니까 술 먹고 사고 치고, 그리고 알바하고. 이런 삶의 반복이니까 되게 암울했던 시기였는데, 그때는 랩을 어떤 의도나 목적을 갖고 연습했던 게 아니었어요. 그냥 단지 너무 좋으니까 그거에 미쳐서 했던 상태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열정이 참 대단한 친구였죠. 꽤나 대단했어요.
LE: 서울예대에 도전하셨다가 여러 번 떨어지셨단 자료도 있어요.
아, 많이 봤어요. 시험 한 세 번 봤어요. 항상 실기는 통과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게 꿈이어서 문예창작과에 지원했었는데, 실기는 다 붙었는데, 면접에서 얕은 지식으로 다 떨어졌었죠.
LE: 대학을 가려던 목적은 무엇이었나요? 좋아하는 걸 더 배워보려는 거였나요?
그렇죠. 왜냐하면, 목적이 뚜렷한 삶이 아니었기 때문에… 집에서도 ‘너가 아무리 랩을 열심히 해도, 세상이 요구하는 걸 조금은 맞춰라. 대학이라도 좀 가봐. 아무리 날고 기어도 대학은 가봐.’라고 하기도 했고요. 수능 점수가 필요하지 않은 곳은 서울예대 말고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희망을 품고 한 번 해봤는데, 예비 7번이 제 최후의 성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년에 시간 날 때 한번 해보면 되겠는데?’ 해서 했는데, 이후엔 예비도 없었어요. 다 실기만 붙고, 면접에서 항상 떨어졌었죠.
LE: 글 쓰는 건 포트폴리오 준비라든가 입시 방식으로 해오셨던 게 아니라 그냥 평소에 하셨던 건가요?
그냥 뭐… 되게 부끄럽긴 한데, 어릴 때부터 시인이 꿈이었어요. 그래서 시를 자주 쓰고 그랬었는데, 그런 것들이 지금 랩 할 때 작사 기법에도 많이 들어 있는데요. 시험 같은 경우에는 가면 제목을 주고 콩트 혹은 시를 쓰라고 해요. 콩트는 수필이라고 하죠. 이야기를 쓰는 거고, 시는 말 그대로 시 규격에 맞춰서 (던져주는) 제목을 갖고 쓰면 되는데, 저는 항상 시로 했었죠.
LE: 예전에 글을 쓴 것이 가사를 쓰실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움이 되었나요? ‘이 라인에서는 이 기법을 썼다.’ 이런 식으로 말씀해주시는 건 좀 어렵겠지만요.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랩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텍스트로만 봐도 구조적 단단함을 가지게 하는 것, 그건 거 같아요. 그 정도까지는 도움이 되었을 거로 생각해요. 이야기가 쭉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펀치감 있는 묵직한 무언가가 내려앉아서 그 글 전체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거죠. 구성 같은 거라고 할까요? 사실 랩은 구어체적인 표현이 많이 사용되잖아요. 시는 시만의 워드들이 있고요. 그래서 그런 게 직접 도움이 되었다기보다는 글을 구성적으로 단단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LE: 확실히 넉살 씨의 랩을 듣다 보면 어떤 특정한 이미지가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요. 시를 써오셨다 보니까 랩 가사를 쓸 때도 시상을 떠올리듯 고민을 하실 것 같아요.
맞아요. ‘시상’하니까 생각이 난 게, 제 생각에 저는 한국에서 잘 안 쓰는 단어를 쓰려고 해요. 이번에 “밥값” 같은 곡만 해도 카레, 비빔밥 이런 것들이 어찌 보면 랩으로 표현하기 되게 어렵고 허접스럽게 보일 수 있는데, 그런 단어를 쓰는 게 제 무기라 생각하거든요. 젓갈을 가지고 랩을 했을 때 한국적인 냄새도 나지만, 구린 식으로 표현이 안 되게끔 할 수 있는 거요.
LE: 초창기 시절에서 얘기를 건너오면요. 2009년에는 애니마토 씨와 함께 퓨처 헤븐(Future Heaven)이라는 팀을 결성해서 앨범을 발표하는데요. 일단은 그 전에 스무 살에 밀러 랩 배틀에 참여하고, 퓨처 헤븐으로서 앨범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밀러 랩 배틀과 퓨처 헤븐 그 사이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게 스무 살부터 군대 가기 전까지의 시기인데…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고, 거의 술이 지배하는 시기였어요. 애니마토 형 얘기를 살짝 하면, 제가 고등학교 친구 중에 쿠마(Kuma)라는 애가 있는데요. 아이삭 스쿼브 형이랑 라디오하는 덩치 큰 돼지 같은 친구가 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데, 그 친구는 대학을 갔어요. 저는 그때 횟집에서 알바하고 있었고요. 한 번은 그 친구한테 전화가 왔었어요. ‘야, 학교 선배한테 우리 옛날에 노래방에서 녹음했던 것들 들려줬는데, 널 보고 싶대. 근데 이 형이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아. 프로야, 프로’ 이런 식으로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쿠마라는 친구의 대학교 선배였던 애니마토 형을 만나게 됐죠. 애니마토 형은 프로듀서이면서도 랩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저랑 2009년도에 퓨처 헤븐이라는 팀을 하게 된 거죠. 이때 당시에는 저희끼리 모여서 한 건 대학교 동아리 공연 정도의 활동밖에 없었어요. 그때는 진입 장벽이 너무나도 높게 느껴졌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녹음은 하지만, 이걸 어디다 보내고 팔고 광고해달라고 하는 걸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어떻게 하는지도 아무도 모르고… 그냥 저희끼리만 쿵짝쿵짝거렸죠. (애니마토 형이랑 쿠마가 다닌 대학교가) 한세대학교인데, 힙합 동아리 공연 같은 것들만 했었어요. 활동은 전혀 없었고요.
LE: 그럼 리드메카 크루 같은 경우에도 애니마토 씨를 중심으로 뭉쳤던 건가요?
네, 그렇죠. 거기 대장이에요, 대장. 애니마토 형이 리드메카란 크루를 만든 거고, 거기에 저랑 쿠마란 친구, 들개, 블랭타임(Blnk Time), 영제이(Young Jay), 아이딜(iDeal) 형도 있어요. 음악적으로 뭔가를 이뤄보자는 것보다는 정말로 그냥 ‘서로서로 알고 지내면 도움이 될 거야. 같이 만나서 술도 마시고.’ 이런 식으로 결성된 거였어요. 아무튼, 저는 그 후에 2009년이 되어서 퓨처헤븐으로 [Sine Qua Non]이라는 시리즈 EP 앨범을 볼륨 1, 2해서 냈었는데, 그거로 그때 당시에 볼트(Volt) 같은 공연장을 다녔어요. 볼트였을 거예요. 지금은 텐미닛(10 Minute)이라는 감성 주점으로 바뀌었는데요. 벨벳 바나나가 있던 거기인데요. 거기서 공연했을 때 딥플로우 형을 만났었죠. 그때 당시에는 (딥플로우 형이) 데드피(Dead’P) 형이랑 같이 하던 때였는데, 딥플로우 형이 (저를 만난 건) 기억해요. 신기하더라고요. 되게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퓨처 헤븐 CD도 딥플로우 형이랑 데드피 형 주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저는 쓸쓸하게 11월인가 군대에 갔죠.
LE: 리드메카가 활동이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활발하지는 않았어요. 확실히 친목 위주로 형성된 거라서 조직적으로 행보를 가져갈 생각은 크게 없는 것 같아요.
그렇죠. 예전에 막 리드메카 믹스테입도 내고 하긴 했지만… 애니마토 형 같은 경우에는 원래 프로 디자이너를 겸업으로 하고 있던 터라… 다들 먹고 살기 바쁘고, 하나 내도 반응도 시큰둥하니까요. 이건 약간 다른 이야긴데요. 애니마토 형이 제 음악적 스승이에요. 제가 래퍼로서 가져야 할 태도부터 세상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까지 전수해준 진짜 친형 같은 형인데, 너무 고마운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리드메카 전체에게 고마운 존재키도 하고요. [Milli Tape] 같은 경우에도 제가 군대에 가서 “형, 난 이제 뭐, 인생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전역하면 진짜 기술을 배워야 할 것 같아.”라고 했더니, “야, 놀지 말고 가사라도 써. 집에 가서 녹음하게. 너 안에서 가사 쓰면, 형이 다 믹스해서 믹스테입 내게 해줄 테니까. 나오자마자 그거로 재개해.”라고 해서 제가 부대에 들어가 가사를 쓰고, 휴가 나와 녹음을 했고, 그걸 모아서 [Milli Tape]을 만들게 됐죠. 스승 같은 형이에요.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고요.
LE: 그러면 애니마토 씨 말고 다른 분들 같은 경우에는 음악 안 하시는 분들은 다른 일을 하고 계신 건가요?
네. (크루) 단체 카톡방은 있고요. 워낙 서로 오래 봐온 사람들이라, 1년에 한 번씩 같이 놀러도 가고 해요. 원플로우(1Flow)라는 이름 쓰는 일균이 형은 비트도 쓰는데, 노컷뉴스(No Cut News)에서 기자 하는 형이에요. 쿠마 그 친구는 라디오 포함해서 여러 가지 하고요. 허훈이라고, 제 고등학교 동창 이 친구는 공연 기획 쪽에서 일하고 있고, 들개라는 친구도 일하면서 랩하고 있어요, 리짓군즈(Legit Goons) 함께 하고 있는 아이딜과 블랭타임. 둘은 활발히 음악하고 있고요. 영제이도 그렇고요. 영제이는 완전 제 친동생 같은 애예요. 여튼 친목 위주죠.
LE: 그럼 활동 재개 같은 건 딱히 없겠네요?
그렇죠. 리드메카 내에서 들개라는 친구도 앨범을 준비하고 있는데, 제 앨범도 나왔고 해서 자유로운 상태니까 재미있게 모니터 좀 봐주고 그러려고요. 영제이랑 뭔가를 같이 만들어볼 생각도 있고요. 같이 도와주는 식으로. 그렇게 할 것 같아요.
LE: VMC도 들어가셨고, 앨범도 나오고 했으니 크루 내에서 넉살 씨의 입지 같은 게 달라지거나 하진 않았나요(웃음)
근데 워낙 오랫동안 봐서… (웃음) 그게 컸어요. VMC 앨범도 컸는데, (<마이 리틀 텔레비전>으로) 실시간 검색어 뜨는 순간 저한테 ‘선생님’이라고 하더라고요. ‘이 선생님 납시오.’ 약간 이런 느낌으로 가더라고요. 그 정도로 리드메카는 저에게 가족 같은 수준이에요.
LE: 퓨처 헤븐 같은 경우엔 팀 안에서 자체적으로 모든 걸 해결했더라고요. 커버부터 믹스까지요. 어떤 루트 같은 게 없어서였나요? 아니면 둘만의 힘으로 해보겠단 의지가 컸던 거가요?
그때는 루트가 없었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정말. 엔지니어링도 애니마토 형이 그런 쪽에 관심이 있고, 하고 싶어서 했던 거고요. 저희가 아는 게 정말 없었어요. 제작할 때도 주먹구구식으로 무식하게 했고, 음악도 잘 몰랐고, 엔지니어링이나 프로모션에 대한 개념도 없이 만들어서 향뮤직에 팔아줄 수 있느냐고 갖다 주고 그랬었거든요. 영원히 팔리지 않더라고요. 계속 남아있더라고요. 힙합플레이야나 이런 데에도 유통했을 거예요. 이건 라디오에서 제가 했던 얘기인데, 친구가 힙합플레이야에서 앨범을 샀는데, (퓨처 헤븐 CD가) 번들로 같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공짜로 주고 있다고… 그래서 “잘 들어 이 새끼야.”라고 했었죠. 그런 기억이 나네요.
LE: 그 당시 퓨처 헤븐 음악을 들어보면 어수룩한 면이 없지 않아 있어요. 우선, 앨범을 제작하게 된 계기나 의도가 궁금해요.
이것도 술 얘기가 들어가는데… 제가 술로 일화가 많습니다. 아시겠지만요. 이때 당시에 제가 군대에 2009년 초였나 갔었어야 했어요. 들개라는 친구와 동반 입대가 예정되어 있었어요. 근데 제가 그 친구들과 술을 먹고 넘어졌는데, 너무 심하게 다친 거예요. 이가 부러지고, 머리가 터진 거죠. 그때 당시에 딱 폭행당한 리아나(Rihanna)의 모습이었어요. 송곳니가 부러지고, 머리가 찢어진 거죠. 집에서도 ‘호적에서 너를 파내겠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까지 갔었고요. 그때 애들은 군대로 끌려간 거죠. 들개가 “이준영 개새끼, 넌 진짜 끔찍한 새끼다.”라고 하면서 (군대에) 갔는데, 애니마토 형이 그러더라고요. “이건 신의 뜻이다. 너가 군대에 가지 못한 건 신의 뜻이야. 비록 얼굴은 많이 망가졌지만 이건 앨범을 내란 뜻이다. 너 군대 가는 시기도 왔는데, 그냥 있지 말고 뭐라도 남겨두자.”라고 해서 11월로 입대 날짜를 잡아놓고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죠). 그 사이에 투닥투닥 빨리 만들어서 Vol.1, 2로 해서 발매하게 됐고요.
LE: 그럼 [Sine Qua Non Vol.1]과 [Sine Qua Non Vol.2]를 같이 작업하셨던 건가요?
네. 제 기억에 아마 하나를 만들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머지를 만들었고, 발매만 그렇게 (나누어서) 했던 것 같아요.
LE: [작은 것들의 신]에 담긴 인트로, 아웃트로를 들어봐도 알 수 있듯이 넉살 씨가 리드메카 혹은 퓨처 헤븐에 대한 샤라웃을 정말 많이 하시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초기에 자신이 속한 그룹이나 어떤 집단을 자주 샤라웃하지만, 시작점으로서 리드메카와 퓨처 헤븐은 넉살 씨에게 특히나 의미가 큰 것 같아요.
네. 정말 크죠. 정말… 제가 너무나 프라이드를 갖는 게, 그때 배웠던 것들을 지금 구현을 잘하고 있다는 거예요. 애니마토 형이 항상 그런 얘기를 했었거든요. “세상이 요구하는 걸 하지 마라. 항상 너가 진짜 뭘 원하는지를 존나 찾아야 한다. 너가 뭘 원하고, 너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아무튼, 그런 되게 디테일한 것, MC로서 갖춰야 할 태도 같은 걸 많이 알려줬었는데, 그것이 분명 아직도 통용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 형한테 배운 것들이 지금의 앨범을 만들어줬단 프라이드가 강하게 있어요. 비록 딥플로우 형과 함께 완성한 앨범이지만, 아이디어나 모토 같은 자체가 태어난 시점은 애니마토 형이 강한 에너지를 줬을 때부터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프라이드가 굉장히 크죠.
LE: 퓨처 헤븐 얘기에서 [Milli Tape] 이야기로 넘어가면, 2011년 11월에 나왔더라고요. 이 믹스테입이 복무 중에 나왔던 건가요?
그게 11월에 나왔나요?
LE: 네. 힙합플레이야 기사는 11월에 났더라고요.
아, 그러면 제가 말출이었을 거예요. 제가 수색대였는데 휴가가 엄청 많았어요. 제가 2월인가 전역을 했는데, 그때가 계속 (휴가 나와서) 왔다 갔다 했을 때일 거예요. 전역 직전에 휴가가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아마 그때였던 것 같아요. 군대 안이니까 현역 병사였겠죠. 그리고 전역을 다음 해 2월에 했을 거예요.
LE: 믹스테입 제목은 당연히 군대와 관련해서 지으신 거겠죠?
네. 아무 뜻도 없어요. 그냥 군대니까 Milli. 그냥 그거예요. 정말 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뒤에 탱크도 지나가고, 눈에서 레이저빔 쏘고… 그게 자켓인데, 그것도 (가사를) 군대에서 썼으니까 그렇게 갔던 거죠.
LE: [Milli Tape]을 들어보면, 확실히 지금 넉살 씨의 랩 스타일 초기 원형이 그때 잡혔단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아우, 근데 지금 들으면 사실 끔찍하죠. 어우, 맙소사… 근데 맞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애니마토 형과 항상 듀오로 활동하거나, 들개 같은 친구와 함께 활동했었는데, 솔로로 직접 작업을 해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습작들은 있었지만 제대로 혼자 트랙을 해본 게요. 그런 것들이 분명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제가 혼자 한 곡을 끌어가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고, 어떤 게 내 약점이고, 강점인지를 18곡에 담아보면서 지금 상태를 만들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LE: 그 당시에는 개인사를 털어놓는다든가, 서사적인 스토리텔링을 자주 시도하셨던 것 같은데, 요즘은 다른 방식을 선호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최근 들어 좀 더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넘어가게 된 건가요?
근데 저는 작사를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는 걸 좋아해서요. ‘내 얘기 쓰고 싶으면 내 얘기 쓰지 뭐.’ 싶을 때는 그냥 그거에 필요한 작사법을 써요. 저는 하나에 국한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거든요. 그게 플로우가 됐든, 가사의 구성이 됐든 간에요. [Milli Tape]을 할 땐 그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필요했던 거죠. 요즘 피처링을 하거나, 프로듀서 앨범에서 혼자 한 곡을 소화하거나, 이번 앨범을 만들거나 할 때는 또 거기에 맞춰서 했고요. 단타성으로 타격함 있는 강력한 단어를 써야겠다 싶을 땐 서사성을 빼고, 단락만 존재해도 랩으로 가치가 있는 스타일로 써요. 하나의 큰 맥락만 갖고 가사를 쓰진 않아요.
LE: 그럼 작사 시에 활용하는 특정한 스타일이 본인의 머릿속에 어느 정도 이론적으로 정립되어 있는 건가요?
있긴 있는 것 같아요. 설명하긴 어려운데,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너무 많이 쓰다 보니까 제 뇌 회로에서는 이걸 들으면 ‘아, 이거는 B 세트로 가야겠다.’ 이런 게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좀 복잡하죠. 여러 알고리즘이 섞여 있으니까. 분명 있긴 있는 것 같아요. 지금도 조금씩 생겨가고 있죠. 완벽하진 않을지언정.
LE: 다시 돌아오면, 입대를 결심하신 건 조금 안 풀리는 감이 있어서 다녀오신 건가요, 아니면 군대를 빨리 해결해야겠다 싶어서 다녀오신 건가요?
그냥 뭐, 놀고 싶었고요. (웃음) 정말 생각 없는 아이여서 맨날 술 먹고 찌기장짱하는 걸 좋아하기나 했죠. 그렇게 놀다 보니 집에선 맨날 ‘저 몹쓸 놈, 쓰레기 같은 놈.’ 이런 소리 듣고… 정말 개차반 같은 짓을 몇 가지 저질러서… 큰일은 아니었지만요. 제가 겁이 많아서요. 하여튼, 한 23살쯤에는 정말 마지노선이었어요. 이 이상 넘어가 버리면 삶에서 아무것도 제대로 되어 있는 게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런 찰나에 시기적으로 성공한 앨범은 아니었지만 퓨처 헤븐이라는 프로젝트를 1년간 하기도 했으니까 ‘그래. 내가 이 나이 때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군대라도 다녀오자. 군대라도 안 다녀오면 진짜 쓰레기로 남을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해서 마지노선처럼 느끼고 다녀오게 됐죠.
LE: 중간에 계속 사고를 많이 쳤고, 집안에서 골칫덩이였다고 얘기해주셨는데요. 누나 세 분이 계셔서 좀 더 자유롭고 그런 것도 있었나요?
그런 게 있었겠죠. 근데 저희집이 (기본적으로) 터치를 잘 하지 않아요. 하지만 응원도 하지 않아요. 그런 타입이에요. 자발적으로 너 알아서 하라고 하는 편이죠. 그래서 셋째 누나 같은 경우에도 원래 한복 디자인을 하다가 갑자기 그림을 그리겠다고 혼자 입시학원에 다녀 편입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저도 할 때 (집안 식구들이) 막아서거나 ‘이놈의 자식, 마이크 보이기만 해. 다 때려 부술 거야.’ 이러진 않았는데, 믹서를 한 번 던지시긴 했어요. 예전에 한 번 그랬었는데… 여하튼, 막지도, 응원도 하지 않는 편이었죠.
LE: 예전 인터뷰에서 본인이 불효자라는 말을 하셨더라고요. 근데 “밥값” 뮤직비디오를 보면 어머니가 나오시잖아요. 요즘은 집에서 인정해주는 분위기 같은 게 생겼나요?
네. “밥값”에 나온 건 실제 어머니세요. 이제는 많이 좋아하시죠. 아버지가 페이스북을 배우셨는지, 모든 걸 퍼 나르고 계세요. ‘공유하기’로요. 아버지 이름이 이 석 자 훈 자 되는데, 이석훈 씨가 계속 당당당당 박혀있더라고요. 아버지가 잘 모르시니깐, 영상을 보지도 않고 퍼 나르시는지, 경기도 광고 영상 같은 것도 퍼 나르고, 제가 태그된 이상한 외국 사진도 퍼 나르고… 잘못된 게시물까지 퍼가실 정도로 많이 응원해주세요.
LE: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는 설 때 된통 당하셨다고 그러셨던 것 같은데요.
그건 조금 과장이고, 요즘은 다 잘해주십니다. 그냥 방송 플로우를 탄 거죠. 뭐냐면, 구정이나 연휴 때 뻔한 그 느낌이에요. ‘그거 해갖고 뭐…’ 약간 이런 뉘앙스죠. ‘이야, 이렇게 해도 성에 안 차는구나.’ 싶더라고요. 던밀스가 그 얘기를 했어요. 집에 가게라도 안 해드리면 진정한 인정을 받기 힘들다고. 명절에 성이라도 하나 쌓지 않으면. 그런 거였죠.
LE: 그래도 이번에 방송 나가면 다들 좋아해 주시지 않을까요?
그렇죠. 부모님이 많이 좋아해 주셨던 큰 계기가 <불후의 명곡>을 오디(Odee)랑 한 번 나간 적 있어요. 방송이 또 크잖아요. 게다가 KBS니깐. 그러니까 ‘얘가 뭘 하긴 하는 놈이구나.’ 하시더라고요. <마이 리틀 텔레비전>도 나오면 좋아하실 거예요.
LE: 군대는 당연히 머리를 짧게 하고 들어가야 하는데요. 지금은 ‘넉언니’라는 별명이 잘 어울릴 만큼, 긴 머리가 트레이드마크잖아요. 예전 버벌진트(Verbal Jint) 씨 정도인데요. 군대에서는 지금과 모습이 많이 달랐겠죠?
굉장히 호구 냄새가 강하게… 제가 느끼기에 저는 머리가 완전히 짧거나 완전히 길지 않으면 이상하더라고요. 머리 기른 건 전역하고 나서부터였어요. 전역하고 아무 일이 없으니까 가끔 DJ 티즈(DJ Tiz) 형이 자기 타임에 데리고 다니며 공연할 때 빼고는 아무 일이 없었어요. 알바와 그런 것들로 채워진 삶이었는데… 그냥 ‘머리 돈 주고 깎아서 뭐해?’ 약간 이래서 방치해뒀고, 그러다 보니 자라기 시작했죠. 나중에 늙어서 기르면 주책이라고 할 테니까 싶어서 기른 것도 있고요. 그때 당시에 더 도어스(The Doors)의 짐 모리슨(Jim Morrison)을 되게 엄청 좋아했었는데요. 그걸 보고 길러서 파마하면 그런 느낌이 나지 않을까 했는데, 말도 안 되는 거더라고요. 절대 불가능이더라고요. 아무튼, 그냥 그때부터 길렀는데 사람들이 잘 어울린다고 하고 그러니까 계속 기르게 됐죠. 큰 의미를 두고 길렀다기보다는요.
LE: 힙합은 뭔가 머리 짧고, 남성적인 걸 되게 강조하잖아요.
그렇죠. 게다가 제가 VMC인데…
LE: 그러다 보니 머리 갖고 놀리는 분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어우, 많이 놀렸죠. 근데 대부분이 금방 익숙해지더라고요. 생각보다 잘 어울렸나 봐요. 사람들한테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데?’란 이야기를 은근 많이 들었죠.
LE: ‘넉언니’란 별명은 맘에 드시나요?
아니, 뭐… 사실 섹스 어필이 많이 감소되는 닉네임이니깐 ‘넉사나이’, ‘넉삼손’ 막 이런 게 (더 좋긴 한데요). 머리 기르면 (남자 중에는) 삼손 같은 것도 있는데… 그래도 많이 불리는 게 중요한 거니까 좋습니다.
LE: 확실히 긴 머리가 트레이드마크란 생각이 든 게, 넉살 씨 인터뷰한다 할 때, 저희 스태프 중 한 분이 가장 먼저 한 말이 헤어 관리 어떻게 하느냐는 거였어요.
맞아요. 쓸데없는 거 맨날 물어봐요. 말도 안 되는 거를… 그냥 감아요! 관리는 무슨, 제가 무슨 두피 케어를 받고 이런 얘기를 원하나 봐요. 항상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냥 샴푸 쓰고… 그래요. 아무것도 안 하는데 그런 걸 원하시나 봐요. 그런 질문들 많이 하시죠.
LE: 머리도 머리인데, 되게 마른 체형이시잖아요. 원체 살이 안 찌는 편이신 건가요? 마른 거에 대한 콤플렉스 같은 게 없으신지 궁금해요.
어릴 때부터 되게 왜소했고, 뼈가 얇기도 했어요. 콤플렉스까진 아니었는데, 한 번쯤 살이 좀 쪄보고 (싶기도 하더라고요.) 빈약해 보이니까요. 그리고 제가 입도 짧고 많이 안 먹기도 하는데, 먹으면 열이 좀 많이 나는 타입이에요. 제 생각에 기초 대사량이 높은 것 같아요. 먹으면 열이 되게 많이 나거든요. 그런 거 보면, 원래 살이 조금 안 찌는 체질인 것 같은데, 입도 짧으니 당연히 마를 수밖에 없죠.
LE: 긴 머리에 마른 체형이라는 특징이 이제는 넉살이란 래퍼의 캐릭터를 만들어준 것 같기도 해요. 독특하잖아요.
그렇죠. 딥플로우 형처럼 아예 뚱보로 가든지, 던밀스처럼 악인 같은 얼굴로 가든지, 저같이 왜소하고 머리를 길러 남잔지 여잔지 모르게 하든지. 뭔가 하나 있으면 좋은 것 같아요. 캐릭터적으로 기억되기 쉬우니까요.
LE: 넉살 씨의 과거 이력, 커리어를 살펴볼 때, 입대와 제대가 우연히 일종의 분기점으로 작용한 것 같은데요. 2011년, 2012년쯤 제대한 이후에는 리드메카나 퓨처 헤븐으로만 활동하기보다는 개릴라즈(Guereallaz)의 멤버로 활동하기를 시작하시잖아요. 또, 솔로로 전향하시기도 하고요. 어떤 계기에서였나요?
퓨처 헤븐은 그때 당시에도 존재했어요. 그런데 DJ 티즈형이랑 같이 다니면서 솔로로 무대를 하니까 주변에서 피처링 제의 같은 게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하고 신기해하고 있었어요. 그때 애니마토 형 같은 경우는 랩적으로 어떤 플러스 요인이 슬슬 없어지는 시기였고, 저 같은 경우는 [Milli Tape]을 하면서 랩적으로 실력이 조금 늘어가는 타이밍이었어요. 이러다 보니 갭이 점점 커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결국, 애니마토 형이 “그러면 난 프로듀서로 전향할게. 서른 넘어서까지 무대를 한다는 걸 생각하지는 않았어. 너는 랩을 하는 애니까 하면 잘 될 거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형은 프로듀서로 전향하시고, 저는 솔로 활동을 하면서 개릴라즈를 만나게 됐죠. 뉴챔프(New Champ) 형, 콸라(Qwala)… 그 활동이 솔로 커리어의 시작 같은 느낌이에요.
LE: 사실 2009년부터 2012년이 힙합 씬이 이전보다는 조금 가라앉던 시기이긴 해요. 애매한 시기라서 어떤 범위에서 어떻게 활동할지가 조금은 덜 잡혔을 것 같아요.
그때도 아무것도 몰랐죠. 그래도 롤링홀(Rolling Hall)에서 뉴챔프 형이랑 만나면서 (시작했던) 개릴라즈 활동이 컸던 것 같아요. 한 성깔씩 하는 사람들이 모이기도 했고, 랩도 다들 잘하기도 하고… 그래서 재미있는 것도 많이 했었죠. 그게 활로가 되어서 활동했던 것 같아요. 제가 재작년부터 ‘랩으로 돈을 벌 수 있겠구나.’ 하는 꿈을 꿨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이때 당시에도 저는 그런 생각이 없는 애였어요. 랩이 좋으니까, 지금 집중해서 제일 잘할 수 있고, 오늘이라는 시간 안에 몇 시간을 투자해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한다고 했을 때 나오는 답이 랩이니까. 그냥 좋아서 열정으로 한 것 같아요.
LE: 뉴챔프 씨는 그때 당시 뉴블락베이비즈(New Block Babyz) 소속이기도 했죠?
정확히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소속이었던 것 같아요. 아닌가? 아무튼 (뉴챔프 형이) “뉴블락베이비즈에서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 내가 보기에 랩을 잘하는 사람들끼리 모아 또 하나를 같이 하자.”라고 해서 만든 게 개릴라즈인 거죠. 그렇게 완성된 거예요.
LE: 리드메카에서 개릴라즈까지 이어진 멤버로는 영제이 씨가 있어요. 더 각별할 것 같기도 해요. 영제이 씨도 술 정말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그런데 요새는 또 끊었다고 까불더라고요. (웃음) 엄청나게 각별하죠. 애니마토 형이 제 멘토처럼 있던 형이었으면, 지금은 제가 영제이의 멘토 같은 사람일 거예요. 제가 친동생처럼 생각하고, 걔도 저를 거의 친형으로 생각하는 애거든요. 많이 각별하죠. 둘이 미친 짓도 많이 했어요. 재미있는 추억도 많아요.
LE: 그 추억 중에는 술자리에서 나온 것도 있을 것 같아요.
대부분이 그렇죠. 같이 놀러 간 적도 있고요. 리드메카끼리 놀러 가기도 하고요.
LE: 개릴라즈의 멤버들은 정말 각각이 서로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하나의 크루로 뭉칠 수 있었던 원동력이랄게 따로 있을까요?
그때는 뭐, 뉴챔프 형이 다 했어요. 멤버들 모으는 것부터 해서 형이 모든 걸 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계속 개릴라즈로 활동했었는데, 요새는 다들 바쁘기도 하고, 워낙 색깔들이 다들 강하기 때문에 저희가 뭉쳐서 뭘 못해요. 그게 불가능할 정도로 색이 달라요. 다들 랩을 잘하고 좋은데, 각자 생각하는 게 뚜렷하게 달라서… 요새는 거의 친목 정도로 남아있죠.
LE: 리드메카, 개릴라즈, VMC 등에 속한 것에서 볼 수 있듯 굉장히 다양한 뮤지션들과 만나고 또 작업하시는 것 같아요. 다양한 관계 속에서 어떤 영감 같은 걸 얻으시는 편인가요?
네, 맞아요. 저는 그걸 확실히 믿어요. 굉장히 믿는 편이에요.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무언가가 많은 게 왔다 갔다 하고, 그 교류 속에서 굉장히 많은 영감이 제게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밥 말리(Bob Marley)도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가장 큰 영감이 무엇이냐?”라는 물음에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고 즐겁게 노는 것이다. 그게 내 영감의 가장 큰 덩어리이다.”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저도 전적으로 동의해요.
LE: 가사를 쓴다는 작업 자체는 사실 그런 것 같아요. 집에 콕 박혀서 고민을 많이 하니 고독한 시간이기도, 개인적인 시간이기도 하잖아요. 사람들 많이 만나는 게 가사 쪽으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말씀인 것 같아요.
네. 다 연결된 것 같아요. 개인적인 시간이 꼭 독립된 어떠한 시간이 아니라,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과의 시끌벅적한 시간과 하나가 되는 것 같아요. 지금 모여서 하는 이야기가 개인적인 시간에 영향을 주고, 반대로 개인적인 시간에 한 고민을 타인과 대화할 때 꺼낼 수도 있고요. 이런 것들이 계속 톱니바퀴 굴러가듯 흐르는 것 같아요. 하나의 덩어리로.
LE: 우스갯소리로 그런 이야기도 하잖아요. ‘남자들끼리 술 마시면 꼭 철학 얘기를 나누는 둥 진지해진다.’라고. 보통 술자리를 가지는 멤버가 몇 분 계실 텐데, 그분들과는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나요?
일단 VMC는 철학 얘기 절대 금지입니다. 철학 얘기 금지, 진지한 얘기 금지, 음악 얘기 금지, 힙합 금지. (웃음) VMC 같은 경우는 던밀스랑 제가 이런 얘기를 많이 해요. ‘누가 개그의 진정한 일인자냐.’ 롸키엘(Rocky L) 형, 딥플로우 형은 서로 막 혈전을 벌여요. 같이 일하는 경우다 보니까 술자리에서도 음악 얘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물론, 마시면 하죠. ‘앨범이 어쩌고저쩌고…’ 막 하는데, 어찌 됐든 술을 마시면 활달하게 얘기하는 편이에요. 리짓군즈(Legit Goons)랑도 많이 먹는데, 그쪽은 음악 얘기를 조금 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그쪽도 어찌 됐든 개그 얘기를 많이 해요. 리짓군즈에도 뱃사공 같은 쟁쟁한 개그 파이터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리드메카 만나면 추억 회상 많이 해요. 그런 식이죠, 뭐.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해서 특별한 화젯거리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일상적인 얘기나… 다들 음악을 하니까 뭐 작업하는지 얘기하기도 하고 그렇죠.
LE: 음악 말고 다른 영역과도 활발히 교류하시는 것 같아요. 대표적인 예가 던밀스 씨와 함께 참여하고 있는 뱅크투브라더스(BANKTWOBROTHERS, 이하 B2B) 활동인데요. B2B는 힙합, 팝핀 등 스트릿 댄스에서 한 가닥 하시는 댄서들이 많은 크루이자 의류 브랜드잖아요. B2B에는 어떤 계기로 합류하게 됐나요?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호림(Horim)이라는 굉장히 로비스트 같은 애가 한 명 있어요. (전원 웃음) 그러니까, 이쪽의 큰 손이에요. 큰 손.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런 애가 한 명 있어요. 준백(Jun Beck)이가 하는 회사에서 같이 하면서 B2B도 그 친구가 같이하는 거죠. 그 호림이는 노래하는 애인데…
LE: 네, 저희도 호림 씨 물론 알고 있습니다.
아, 호림이를 아시나요? 아무튼, 정말 지독한 큰 손인데, 그 친구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호림이한테 소개받은 게 제이락(J-Roc, 힙합 댄서)이라는 친구고, 댄디(Dandy, 팝핀 댄서)라는 친구에요. 그 둘이서 의류를 하는데, 그게 저도 지금 입고 있는 B2B예요. 같이 파티도 구경 가고, 춤추는 것 보러 가고 하면서 친해진 거죠. 그러다가 ‘야, 어차피 우리 친하기도 한데 문화적으로 한 번 섞어보자! 같이 하면 재밌지 않을까?’라는 취지로 시작했어요. 공연 이름은 배드캠프(Bad Camp)로 지었고요. 던밀스, 제이호(Jayho), 블랭타임(BLNK TIME), 어글리덕(Ugly Duck), 제이락, 댄디 같은 친구들이 같이 모여서 춤도 추고, 랩도 하고, 퍼포먼스도 같이 하고 그런 식으로 하고 있어요.
LE: 그 외에도 ‘페이데이(Pay Day)’라는 이름의 스트릿 댄스 공연에도 자주 등장하시더라고요. 어렸을 때 춤을 추셨다고 알고 있는데, 그 영향이 조금 있는 건가요?
(웃음) 사실 없고요. 중학교 CA 시간에 힙합부 막 이런 거였어요. 당시 <힙합>이라는 만화책이 유행하니까 친구 중에는 대학로에 비보이 학원도 다니고 그랬던 애도 있었어요. 그 친구들이랑 같이 몰려다니면서 춤도 추고 그랬는데, 사실 그 영향은 없어요. 사실 <페이데이>나 그쪽 파티도 호림이 때문에 같이 보러 갔던 거였는데, 정말 너무 멋있는 거예요. 보고 완전 뻑이 가버린 거죠. 일단 보러 온 사람들 자체부터 멋있어요. 댄서 분들이 많이 보러 오니까요. 랩 쪽에는 되게 뭐랄까… 제가 생각했을 때는 저도 그렇지만 엄청나게 간지를 뿜어내는 사람이 흔치 않거든요. 그런데 거기는 다 하나같이 강력한 간지로 무장하시고…
LE: 뭔가 그들 특유의 바이브가 있다는 건가요?
네. 그걸 완전히 느낀 거죠. ‘진짜 멋있는 거구나. 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홀딱 빠졌고, ‘같이 해보자!’해서 하게 된 거죠.
LE: 힙합 씬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공연과 스트릿 댄스의 공연은 호응이나 공연의 분위기 같은 게 조금은 다른 편인가요?
조금은 다르죠. 왜냐하면, 제가 생각했을 때는 춤을 추시는 분들이 터지는 구간을 일반 분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춤추시는 분들이 다 같이 춤추다가 “워우~, 워~”하고 환호를 지르잖아요? 그런데 저는 잘 모르니까 “음, 오? 어어어어”하고 소리를 지르는… (웃음)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LE: 약간 엇박으로 호응하게 된다는 거죠?
네. 뭔가 되게 멋있는 걸 하면 춤을 추는 분들은 이게 뭔지 아시니까 감탄사가 나오는 건데, 그런 게 좀 다른 것 같아요. 근데 사실 힙합이라는 게 결국 같은 바이브를 공유하는 거니까 얼추 비슷하더라고요. (댄스 공연에서) 랩을 보실 때도 같이 응원해 주시고요.
LE: 힙합이 한국에서는 씬이 다소 구분되어 있잖아요. 랩과 댄스 씬이 따로 있는 수준으로요. 그래서 스트릿 댄스 공연에는 어떤 연령대의 분들이 오시는지 궁금하더라고요. 나이 있으신 분들도 조금 오고 그럴 것 같은데요.
<페이데이>라든가 그런 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아요. 기존의 랩 공연은 제가 생각했을 때는 연령대가 아주 낮은 편인데, 댄스 공연은 확실히 조금 높아요. 결혼도 많이 하셨고. 저는 굉장히 놀랐어요. 그 쪽 분들이 결혼을 굉장히 많이 하셨더라고요. 그런 기억이 납니다. 확실히 연령대가 낮은 편은 아니었어요. 랩 공연보다는 조금 있었던 것 같습니다.
LE: 관객 수나 공연 규모가 그렇게 큰 편은 아닐 것 같아요.
네. 그게 그렇더라고요. 랩 씬이나 다른 것들과 비교했을 때는 확실히 큰 편은 아니긴 하죠.
LE: 앞으로도 그쪽 계열 공연으로 (활동할) 계획이 있나요?
<배드캠프>를 아마 올해 여름에도 한 번 할 것 같아요. 워낙 일을 벌여 놔서… 또 일을 만들어서 하는 타입이기도 하고, 할 얘기도 없고 귀찮기도 한데, 막상 하면 너무 재미있어요. 다들 서로 재미있으니까 ‘그래도 또 뭐라도 하자. 우리끼리 뭐 또 해야지.’ 이래서 아마 여름에 B2B, <배드캠프>를 할 것 같아요.
LE: 사실 제대한 시기와 넉살 씨가 뜨게 된 시기 사이에는 또 공백이 있어요. 기억하기에는 2013년 11월과 2014년 1월 각각 발표한 공개곡 “Just Do It”과 “RHYD YO”가 굉장히 임팩트가 있었던 거로 기억하는데요. 당시 두 곡을 그렇게 공개했던 계기로는 어떤 게 있었는지,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쇼미더머니 2>가 있었고, 탈락해서 플스방 알바를 할 때였나 그랬는데, 현실로 돌아온 거였죠. ‘참 힘든 거구나. 방송은 역시 무서워.’ 이러면서 알바하면서 술이나 마시고 기웃거리고 있다가, 은사이신 애니마토 형이 와서 “그만 좀 놀아 제발. 와서 뭐라도 해!” 이래가지고 “아… 그러면 그때 그 DJ 프리미어(DJ Premier) 같은 비트 있었잖아. 그거 돈 주고 팔기 그러니까 공개곡이라도 하나 하자.”라고 얘기를 마친 후 “Just Do It”이라는 곡을 만든 거죠. 애니마토 형한테 비트 받고, 집에서 가사 써서 녹음해버렸죠.
LE: “RHYD YO” 같은 경우는 뮤직비디오까지 만든 걸 보면 조금은 공들였다는 느낌이 있거든요.
네. 그렇죠. 그때는 “Just Do It”을 먼저 냈으니까 많이들 ‘래퍼 넉살이라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알고 계시는 것 같더라고요. <쇼미더머니 2>도 있었고요. 그래서 영상을 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저를 항상 엄청나게 도와주는 우리 블랭타임이 이때 영상을 찍어줬어요. 제가 도움을 청했고요. 기억에 남는 게, 블랭타임이 자기 돈을 거의 다 썼어요. (웃음) 그래서 아직도 그 얘기를 많이 해요.
LE: 뮤직비디오 촬영 장소는 어디였나요? 동굴 같은 곳이더라고요. 신기하더라고요.
목동에 있는 아파트 지하에 서사무엘(Seo Samuel)이 친구들이랑 작업하던 작업실이에요. 되게 독특한 곳이에요. 크고 넓은 공간인데, 거기서 찍었죠.
LE: 분위기가 독특하더라고요.
맞아요. 동굴 같이 보신 곳이… 아무튼, 되게 이상해요. 아파트 지하이다 보니까 이상한 데가 막 나오고, 그런 공간이에요.
LE: “RHYD YO” 같은 경우도 뮤직비디오 분위기가 굉장히 좋고, 이번 앨범과 같이 나온 영상들도 분위기가 되게 잘 잡혀서 나왔어요. 요즘은 비디오 디렉팅이 정말 중요하잖아요. 그런 쪽도 많이 신경 쓰시는 편이겠죠?
사실 저는 그쪽으로 감이 많이 없는 편이에요. 저한테 가장 큰 조력자이자 사장인 우리 딥플로우 형이 그쪽을 잘 알고, 블랭타임도 그쪽으로 워낙 빠삭하고 하니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이죠. 말씀하신 대로 비디오가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앨범 할 때도 많이 준비하고, 공을 들인 면이 있죠.
LE: 영상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도 하잖아요.
네, 정말… 이 세상 모든 뮤비가 다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웃음) 그냥 음악만 하고 싶은데, 너무 짜증 나고, 힘들고… 나오면 멋있긴 한데, 그 일련의 과정이 괴롭고 힘들어요. 영상이 항상 제일 힘들더라고요.
LE: “팔지 않아” 뮤비를 봐도 그렇고, “작두”를 봐도 그렇고 막… 어디 땅에 파묻히시고, 끌려다니시고 그러잖아요. 다른 분들은 제스처만 하는 정도라면, 넉살 씨는 뭔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정도에요. (웃음)
지금 생각해보니까, 제가 힘든 걸 해서 힘든 거였어요. (전원 웃음) 영상이 힘든 게 아니라, 묻히고, 끌려다니고, 이 겨울에 강원도에서 반팔 반바지를 입고. 그러니까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랬네요. 제가 힘든 걸 했네요.
LE: 누가 컨셉을 잡아오면 힘들 것이라는 걸 별로 따져보지 않고 수락을 하시는 편인가요?
그렇죠. 할 때는 또 프로니까 재미있게 해요. “작두” 같은 걸 보고서 딥플로우 형한테 ‘이야… 이제 진짜 갈 데까지 가는구나. 진짜 갈 데까지 가보자는 거지?’ 하면서 묻히고, 이번에 “팔지 않아” 준비하면서 GDW 팀이랑 미팅하면서는 ‘강원도, 끌려가고, 반팔 반바지를 입고.’ 하는 얘기가 딱 나오는데… (웃음) ‘OK…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구나.’ 싶더라고요.
LE: 어찌 보면 시작부터 고된 걸 하는 이미지로 굳혀지신 것 같아요.
네. 그러니깐요. GDW 팀이랑 미팅할 때도 ‘일단은 넉살 씨는 눈에 광기가 있어요.’ 이러시는 거예요. 결과물이 너무 멋져서 만족은 하는데, 사실 조금 춥기는 했죠. 너무 멋있게, 너무 잘 찍어 주셔서 앞으로 “팔지 않아”같은 뮤직비디오가 나올지도 모를 정도로 너무 만족스럽게 찍었어요.
LE: 앞서 언급했던 그 두 곡의 경우에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넉살 씨가 래퍼로서 가진 역량의 아주 일부만을 보여준 느낌이었어요. 특히, 소프트웨어적인 측면보다는 하드웨어적인 측면이 두드러지게 보였는데, 그래서 더 이목을 끌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상대적으로 무명인 래퍼로서는 우선 한 귀에 딱 꽂히는 하드웨어적인 무언가가 있는 게 좋으니까요. 혹시 이런 부분도 의도하셨었나요?
꿈보다 해몽이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그런 게 아니라 “Just Do It”은 진짜 애니마토 형이 “너 제발 그만 정신 좀 차려!” 해가지고 가사 써서 녹음한 거였고, 자켓도 “야, 나와. 내가 사진 찍어줄게. 손들고 뻐큐해.”라고 해서 뻐큐하고 사진 찍고 만들어서 공개한 거였어요. (전원 웃음) “RHYD YO” 같은 경우도요. 플스방 알바 하는데, 영제이가 게임하러 오면 “게임이나 해.” 이랬는데, 그때는 제가 빅크릿(Big K.R.I.T.)에 너무 꽂혀있었거든요. “RHYD YO”가 빅크릿의 “I Got This”를 아예 레퍼런스로 삼은 곡이었어요. 후렴도 굉장히 똑같고요. 그래서 제가 영제이한테 “야, 이거 드럼을 빅크릿으로 가져와.”라고 해서 공짜로 하고, ‘그냥 재미로 하는 거니까, 나도 서던 트랩 느낌을 내면서 화려하게 한번 해보자.’ 해서 “RHYD YO”가 나온 거죠. 제목에 ‘RHYD’가 들어가니까 리드메카 샤라웃도 하고, 공개곡이니까 뇌를 비우고 주댕이만 놀려보자는 생각에서 만든 거예요.
LE: 그 당시 “RHYD YO”에서 보여준 하이톤, 텅트위스팅 같은 게 이제는 넉살만의 무기로 자리 잡은 느낌이에요. 언제부터 지금과 같은 하이톤과 텅 트위스팅을 장착하셨던 건가요? “RHYD YO” 같은 걸 하면서인지, 아니면 그전부터 준비하던 거였나요?
저도 잘 모르겠는 게, 원래 제가 랩 연습을 조금 많이 하는 편이에요. 연습이라기보다는, 녹음 전에 제가 썼던 가사를 많이 뱉어보고 했었거든요. 요즘에는 ‘빨리 써서 녹음하면 되지 뭘.’ 하고 할 때도 있는데, 일단 기본적으로 저는 제 가사를 제 몸이 완벽하게 흡수를 해야 녹음할 때 잘 나온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외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요. 보면서 녹음하긴 하지만, 충분히 익숙해지고, 완벽히 바이브를 받아들일 정도까지 연습하는 편인데, “RHYD YO” 같은 경우는 연습이 많이 들어간 거죠. 쓰다 보니까 ‘이거 너무 과한데… 내가 이것까지 할 수 있나?’ 싶었는데, 그래도 쓴 가사니까 도전은 해보자 싶었죠. 이거 하면 랩이 좀 늘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래서 “RHYD YO” 전부터 준비된 무기였는지, 아니면 “RHYD YO” 같은 곡을 하면서 단련이 되어 강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중간쯤 되지 않을까 싶어요.
LE: 어떤 공연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레진코믹스 브이홀(Lezhincomics V-Hall)에서 넉살 씨가 했던 공연을 한 번 본 적이 있는데요. 그 당시 넉살 씨가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는데도 그 노래가 나오니까 분위기가 굉장히 좋아지더라고요. 사람 미치게 하는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그 노래에서는) 일단 제가 쉬지를 않으니까…
LE: 네. 그게 굉장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요즘도 그 곡을 라이브로 부르시나요?
너무 오래 우려먹어서 올해는 할 일이 많이 없겠죠. 가끔은, 필요할 때 할 수도 있고요.
LE: 사실 하이톤의 래핑이 잘못하면 정말 듣기 싫게 들릴 수도 있잖아요. 뭐랄까, 모기처럼 앵앵거린다고 해야 할까요? 리스너들에게 좋게 들릴 수 있도록 많은 연구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그게 “RHYD YO” 때보다 지금이 더 정제되었다는 느낌이 있고요. 조금 더 편안하게 들릴 수 있도록 연구했달까요?
인터뷰할 때마다 말하는 것 같은데, 저는 제 톤이 되게 싫어요. 랩을 하려면 딥플로우 형 같은 목소리, 크고 묵직한 목소리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알고 있는 힙합은 그런 거거든요. 그런데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목소리가 나지를 않더라고요. 그래서 [Milli Tape]에서는 그걸 해보려고 막 웅얼웅얼 대는 것도 있는데, 그런 시행착오를 겪다가 제가 낼 수 있는 본연의 소리를 찾기 시작했죠. ‘내 톤이 앵앵대고 까랑까랑한데, 이 한계를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연구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말씀해주신 것처럼 조금 정제되고, 많이 정갈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연구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나지 않나 싶어요.
LE: 발음에 관한 연구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화려한 랩을 하는 만큼 발음이 뭉개질 위험성도 크잖아요.
여기서도 애니마토 형 얘기가 또 나오는데, 그 형이 저한테 얘기했던 게 딱 그거였어요. “넌 두 가지만 있으면 베스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하나는 발음이고, 두 번째는 펀치라인이야.” 라고 형이 저한테 얘기했었어요. 그때 제 발음이, 퓨처 헤븐만 들어봐도 이게 외국말인지, 방언인지, 한국말인지 모르는 식으로 랩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래서 애니마토 형이 “네가 가사가 현학적인 느낌으로 그 안에 철학을 담으려고 하는 건 좋은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문장을 정리하고 가사 전달력 같은 걸 연구하면 좋을 거고, 랩 안에 펀치라인 같은 것도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아.”라고 얘기해주셨었어요. 발음, 이거 진짜 연습 많이 했어요. 어떻게 보면 총체적인 거죠. 가사 속 문장, 문맥과 발음, 톤 이런 것들이 다 딜리버리라는 것에 관한 거라고 볼 수 있고, 그걸 많이 연구했죠.
LE: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독특한 편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가사의 내용,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이 가장 부각됐던 곡이 당연히 코드쿤스트(Code Kunst) 씨의 첫 정규 앨범 [Novel]의 수록곡 “Organ”이 아니었나 싶어요. 가사에 촌철살인의 라인들이 있으면서도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아요. 발매된 지 몇 년 되긴 했지만, 들을 때마다 여전히 ‘이런 내용을 이렇게까지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는, 충격적인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듣는 사람에게 확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그런 가사를 쓰게 된 이유 같은 게 있나요?
자꾸 플스방이 나오는데, (웃음) 코드쿤스트랑 작업을 하면 (사람들이) 자꾸 케미스트리가 좋다고들 하시잖아요. 저는 코드쿤스트 같은 타입의 프로듀서가 한국에 얼마 없는 것 같아요. 걔는 곡을 줄 때, ‘래퍼가 어떤 이야기를 해 줘야 한다.'라는 게 있거든요. “Organ” 같은 경우에도 어떤 가사의 디테일을 전해준 건 아니지만, “형, 뭔가 사회적인 이야기가 들어가 있으면 좋겠어요. 형이 세상을 보는 시점 같은 게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저는 “음… 그래?” 하고는 플스방 알바를 하면서 한 달을 더 고민했어요. 멋진 걸 보여줘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뭘 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그러다가 쓴 “Organ”의 가사 내용, 주제를 하나로 표현하자면, 사람들이 너무 생각을 많이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거였어요. 느끼는 대로 얘기해도 되는데, 너무 가리려고 하고, 가식적이고… 그런 게 꼴도 보기 싫다, 네가 싫으면 싫은 걸 얘기하면 되는 거고, 아프면 아픈 걸 얘기하면 되는데, 그렇게 굳이 꾸밀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었어요. 거기다가 요즘 가식 떠는 친구들의 얘기를 “대화 속에 떠다니는 숫자들이 보여” 같은 가사로 표현한 거죠. 그런 걸 담고 싶어서 그렇게 쓴 건데, 잘 됐죠. 곡이 잘 나왔어요.
LE: 방금 코드쿤스트 씨와 케미가 잘 맞는다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런데 사실 코드쿤스트라는 아티스트가 하는 음악이 사실은 넉살 씨가 지금까지 한 음악과는 결이 조금 다르잖아요. 샘플링보다는 신디사이저를 많이 쓰는 편이고, 프로덕션이 머금은 공간감도 조금 다르고요. 작업을 처음 하실 때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네. 이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저는 듣자마자 ‘존X 구리다.’ 이런 생각을 보통 많이 했었어요. (웃음) ‘개똥이다. 끔찍한 걸 줬네?’ 싶었죠. 저도 그런 스타일의 곡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게 분명 구조는 힙합이 맞는 것 같은데, 내가 아는 소스가 1%도 없네.’ 같은 생각을 많이 했었죠. 말씀하셨던 대로 저는 소울풀한 샘플링을 기본으로 드럼이 튀어나와서 싸대기를 때리고 하는 게 익숙한데, 얘는 엄청나게 널찍한 공간감을 비트에 구현하고… 그래서 ‘뭐지?’ 싶었어요.
LE: 그래서 오히려 가사나 랩을 할 때 더 자유로운 것도 있었을 것 같아요.
네, 맞아요. 그러니까 일차원적으로 코드쿤스트와의 케미, 호흡이 잘 맞는 부분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런 요소가 분명 있었던 것 같아요. ‘어? 씨X, 내가 못 들어본 스타일이네?’ 했다는 점부터 새로운 걸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제가 했던 천편일률적인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게 나올 수 있었던 이유가 코드쿤스트의 비트가 낯설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LE: 코드쿤스트 씨는 하이그라운드(HIGHGRND)에 들어간 이후에 변한 점이 있나요?
주변 사람들이 변했죠. 그 선생님을… 저희가 코선생님이라고 부르거든요. (전원 웃음) ‘코선생님, 오늘 안 바쁘시면~’ 약간 이런 느낌으로. 근데 얘도 무식하고, 워낙 의리파 같은 타입이라 그런 게 전혀 없어요. 강직한 성격이고 해서 하이그라운드 갔다고 그런 건 없어요.
LE: 이렇게까지 잘 맞으면 서로 1 MC 1 PD 같은 포맷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나요?
그래서 지금 기획을 하고 있어요. 아직 디테일하게 잡힌 게 아니라, 올해 코드쿤스트 앨범이 나오는데, 그 앨범이 나온 다음에… 올해의 목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풀렝스 앨범 느낌보다는 그냥 다양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제가 이번 앨범에서 저의 이야기나 서사를 풀긴 했는데, 사실 아쉬웠던 게 “에디슨”처럼 발상의 전환이 담긴 곡들은 별로 없었거든요. 코드쿤스트랑 하면 (그런걸)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목표는 연말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LE: 느낌이 약간 딥플로우 씨가 [양화]를 낸 다음에 [Jam Cook]을 낸 것 같은 그런 느낌일 수도 있겠네요.
그런 느낌이 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시도를 조금 더 많이 할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이 ‘정권 지르기’ 같은 앨범이었다면, 그 앨범은 약간 ‘뱀권’ 같은… 약간 그런 느낌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것 같아요.
LE: 본인이 느끼기에도 “Organ”이 나왔을 당시 반응이 남달랐나요?
네. 달랐어요. “RHYD YO”를 찍었던 서사무엘 작업실에서 녹음도 하고 그랬었거든요. 이 정도로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사랑해주실 줄 꿈에도 몰랐어요. 곡 마지막에 “Feeling your body” 부분을 제가 엄청 올려서 하거든요. 그걸 서사무엘이 듣고 “형, 옥타브를 조금만 더 올려보자.”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야, 그건 완전 락이야!”라고 했죠. (전원 웃음) 그리고는 더 높여서 막 했는데, ‘이게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어요. 끝나고 서사무엘이 “형, 이거 존X 좋은 거 같은데요?”라고 하길래 조금 반신반의한 채로 코드쿤스트한테 보냈었죠. 코드쿤스트도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곡이 나오고 나서 반응이 정말 뜨겁더라고요. 멜론 어떤 리뷰에서는 ‘옛날 다이나믹듀오의 희열이 느껴진다.’라고 하는 거예요. ‘이거 개오버 아닌가?’ 하고 있는데, 좋은 평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반응을 몸소 체감했죠. 그리고 VMC에 입단할 수 있었던 것도 “Organ”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딥플로우 형이 저한테도 이야기했고, 어떤 인터뷰에서는 “”Organ”을 듣고 확신했다.”라고 했더라고요.
LE: 사실 딥플로우 씨가 지난번에 저희와 인터뷰할 때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넉살은 래퍼로서 수명이 긴 아티스트다.”라고요. 단순히 스킬적인 측면이 아니라, 내용을 채울 수 있는 능력을 많이 보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네 맞아요. 사실 딥플로우 형이 저한테 “얘는 늙어서 미사리에서라도 랩 하고 있을 것 같아.”라고 많이 이야기해요. (전원 웃음)
LE: 그게 어떤 의미죠?
딥플로우 형이 저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거든요. 이렇게 얘기하면 가식적일 수도 있는데, 아직도 저는 어떤 명예나 랩으로 얻을 수 있는 성공, 부보다는 좋은 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한 목표가 굉장히 커요. 재미있는 행동, 패턴이 저를 살아있게 하고, 재미있게 하는 거라서… 딥플로우 형이 그런 걸 많이 본 게 아닌가 싶어요. ‘얘는 늙어서도 랩 하는 게 재미있으면 미사리에서라도 기타 치고, 젬베 치면서 랩 할지도 몰라.’ 이런 식으로 얘기하셨죠. 재미있으니까 진짜 그렇게 할 수도 있는 거죠. 늙어서 제 목소리가 젊음을 잃고, 힙합에 대한 에너지가 다 떨어지면 새로운 악기를 배워서 프로듀서가 될 수도 있는 거고, 악기 연주자가 될 수도 있는 거죠. 생각하고 있어요.
LE: “Organ”을 기점으로 인상적인 가사의 곡들이 쭉쭉 이어집니다. 가사 쓰는 일을 잉크에 비유한 “Black Ink”, 물질의 양립하는 성격을 주목한 “에디슨” 모두 가사를 계속 곱씹게 되는 곡이었어요. 한번 들어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기도 했는데요. 계속 이런 주제를 생각해내고, 가사를 써내는 것도 넉살 씨가 말씀하신 그 재미있는 과정 중의 하나였을 것 같아요.
사실 제일 괴로우면서도 재미있고, 충격적인 순간이죠.
LE: 그런 발상이 어떨 때 많이 떠오르나요?
그게 정말 무작위적이에요. 대부분의 다른 뮤지션들도 그렇겠지만, 어떤 순간에 뭐가 나올지 저도 몰라요. ‘어후, 똥 싸야지’ 하고 바지를 내리는 순간이라든지, (웃음) 밥을 먹는 순간이라든지, 여자친구와 영화를 보는 순간이라든지, 추위에 떨다가 갑자기 음악을 듣는 순간이라든지 (제각각이죠.) 그냥 특정 순간이 아니라 급작스럽게 어떤 순간에 무의식의 반영처럼 떠오르는 거죠. 요즘에는 또 그런 게 떠오르더라고요. 나중에 새로 나올 주제인데, 언제 한 번 갑자기 그냥 뜬금없이 영화 <그랑블루>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랑블루>. 물속에 계속 잠수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 더 깊이 잠수할수록 더 높이 떠오르네? 그러면 이걸 나 자신에게 비유를 해보자. ‘물속으로 더 돕하게 들어갈수록 난 더 성공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겠지. 근데 계속 물속에 있으면 숨이 차오르니까 제대로 된 숨을 뱉기 위해 다시 물 밖으로 나와야 하지만, 사실 난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야 하잖아. 이걸 <그랑블루>로 얘기하면 되겠다.’ 이게 갑자기 생각이 나는 거죠. ‘와 나는 천재다!’ (웃음) 그런 거죠. 그렇게 (순간적으로) 떠오르기 때문에 특정 순간이 있거나 한 건 아니에요.
LE: “Organ”에서 반향이 오다 보니까 조금은 의도적으로 그런 류의 가사를 쓰게 되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아, 그런데 그게… 잘 안 돼요. (웃음) “Organ”은 워낙 그때 자연스럽게 아다리가 잘 맞아서 그런지… 저는 여러분들이 왜 그 곡을 많이 좋아해 주시고, 임팩트를 많이 받으셨는가에 대해 여전히 ‘왜 그랬을까?’ 싶은 생각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건 있죠. ‘사람들이 이 곡의 이 부분에서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포인트가 있었겠구나.’ 하는 거요. 그래서 그걸 많이 담아야겠다고 생각은 많이 해요. 그런데 못하겠더라고요. 정말 안 되더라고요.
LE: 근데 그 인생곡이 앞서 잠시 말씀해주셨듯이 2014년 상반기에 넉살 씨를 급작스레 수면 위로 띄우고, 또 VMC 입단까지 연결되잖아요.
네, 맞아요.
LE: 이제 VMC에 들어가게 된 계기, 과정이나 그 사이에 있던 에피소드에 관해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때도 플스방인데… (웃음) 술자리에서 딥플로우 형을 보면 워낙 큰 형이니까, 볼 때마다 ‘안녕하세요.’ 이러는데 같이 몇 번 술을 먹었었어요. “뭐 준비하고 있니?” 라고 물어보시길래 “[작은 것들의 신]이요.”라고 했죠. 그때부터 (앨범을) 팔았죠. 이 제목의 작품을 준비한 지가 꽤 오래됐거든요. 아무튼, 그런 걸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어느 날 술 한잔 하자고 연락이 온 거예요. 그래서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저 거구가 왜… 때리려는 건가? 날 부를 일이 없는데.’ 싶었어요. 그러다가 그 생각이 딱 들었죠. VMC 관련 제의가 아닐까 싶은 거예요. 이때도 리짓군즈랑 술을 먹고 있었어요. 애들한테 “야, 딥플로우 형이 나 보쟤. VMC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아.”라고 했죠. 칠성포차에 갔는데, 술 먹다가 “앨범 준비하는 거, 오래 준비한 건데 멋지게 내면 좋지 않니.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야. 들어와서 같이 내보자. 회사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날에 앨범 멋있게 낼 수 있도록 도와줄게.”라고 해서 “네. 그래요’ 하고 바로 같이 했어요. 공개가 안 된 건데, 어떤 리믹스에서 딥플로우 형이 “넉살이를 칠성포차에서 삼만 원에 샀지.” 뭐 이런 가사를 쓰기도 했어요. 그때 흔쾌히 (제의를 수락)했던 건 이제까지 딥플로우 형이 낸 앨범을 보면, 형이 힙합에 대한 이해도가 엄청 깊은 사람이라는 걸 많이 느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앨범 계약을 하기로 한 후, 얘기할 때 제가 딥플로우 형한테 이런 부탁을 드렸어요. 앨범을 같이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그랬더니 형이 “랩 디렉팅을 내가 다 봐줄게.”라고 하시더라고요. 이번 앨범은 딥플로우 형이랑 같이 만든 거예요. 그렇게 VMC에 들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Nuckle Flow”를 만들었죠.
LE: VMC 멤버들 다수가 톤이 굵고, 선 굵은 느낌이 세잖아요. 그래서 넉살 씨가 좀 더 스페셜 원(Special One) 같은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VMC에 없는 무언가를 채워주는 역할인 것 같아요.
네. 일단은 하이톤이 없었다는 게. (웃음) 하이톤이 없었기 때문에 하이톤 MC인 제가 추가로 들어오면서 더 느낌이 생겼죠. 사실 (소속이 없는) FA가 적기도 했고요. 어쨌든, 딥플로우 형이 저를 오래 봐왔더라고요. 데려올 생각을 한 2년 정도 생각을 했대요. 공연장에서 저를 봤는데, ‘이 새끼가 공연을 잘하는구나.’ 싶었대요. 그때부터 시작했고, “Organ”에서 확실히 도장을 찍은 게 아닌가 싶어요.
LE: “Nuckle Flow”의 경우에는 확정이 나고 난 후, 술자리가 있고 난 후 만들게 된 곡인가요?
그렇죠. 딥플로우 형이 그때 해준 비유가 지금도 기억이 나요. ‘출사표’ 랩이잖아요. 일종의 자기소개서인데, 저는 그게 너무 하기 싫은 거예요. 그래서 “Black Ink”를 대신 발표하려고 했는데, 딥플로우 형은 “아니야. 너는 이걸 잘못 이해하고 있어. 이게 뭐냐면, 일본 만화책에서 갑자기 여자 주인공이 바람에 날려서 팬티가 보이는 장면 같은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임팩트 측면에서 메리트가 있다면서 그렇게 표현하시더라고요. 그러더니 50마디 랩을 하라는 거예요. “무슨 50마디나 써요!”라고 반발했는데, 결국 딥플로우 형이 여러 가지 얘기를 해주고, “몰입도 있는 50마디를 지루하지 않게 써라. 넌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씀해주셨죠. “아무 비트에나 일단 쓰고 해볼게요.” 하고 “Hip Hop Is Dead”에 가사를 다 쓴 다음에 딥플로우 형이 비트를 갈았고, 브라스코(Brasco) 형이 믹스해줬죠. 그렇게 입단식 격의 곡이 만들어진 거죠.
LE: “Nuckle Flow”라는 제목 자체도 출사표 같은 느낌이에요. 그것도 본인이 생각하신 건가요?
제목도 딥플로우 형이 지었던 걸로 기억해요. 뮤직비디오도 딥플로우 형이 찍었고요. 저는 그냥 “50마디 지루하지 않게 랩 써와!”라고 해서 “흐어어어엉” 하면서 썼던 기억이 나네요.
LE: “Hip Hop Is Dead”에 가사를 쓰셨다고 했는데, 제목도 그렇고 곡 자체가 소위 말하는 ‘한국스러운 느낌의 곡’이었어요. 가장 한국스럽게 랩 하시는 분 중 한 분이 넉살 씨라는 생각도 드는데, 처음부터 그런 느낌이 나올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작업하셨던 건가요?
굳이 그런 느낌까지를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그렇게는 생각 안 했어요. 다만, 하나 목표로 둔 게 있었는데요. 딥플로우 형의 얘기한 것처럼 ‘지루하면 안 되겠다. 50마디나 갈기는데 지루하면 나 같아도 안 듣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칠맛 나게 50마디쯤에서 탁 끝나는 느낌인데, 지루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면서 완급 조절에 신경을 많이 섰던 것 같아요. 듣는 애들이 지루해질 때쯤 ‘자지 마!’ 이러면서 싸대기 한 대 탁 때려주고, 또 풀어줬다가 ‘으샤샤샤!’ 하면서 탁탁 쳐주고. (웃음) 당시 플로우에 대한 개념을 이런 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계속 밀고 당기고, 밀고 당기고.
LE: 이쯤부터 ‘The God Of Small Things’라는 표현을 쓰셨는데요. [작은 것들의 신’이 이미 구상 중이었던 것 같은데, 작업은 어느 정도 진행이 되어있는 상태였나요?
(예전에 만든 작업물 중에서) 세 곡이 살아남았어요. 원래 포맷은 EP였어요. “올가미”, “밥값”, “작은 것들의 신” 이 세 트랙만 살아남았고, 나머지는 버려지거나 교체되는 등 다 바뀌었죠. EP에서 LP로 변환하는 과정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 케이스예요. 시간이 오래 걸렸으니까 딥플로우 형이 “지금 네 커리어에 EP가 나오면 안 돼. 정규를 내야 해.”라고 하시더라고요. “정규 너무 힘들으어어어어” 이러는데, 형이 “내야 돼!”라고 하셨죠.
LE: 이제 본격적으로 앨범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앨범 얘기기도 하고, 커버 아트워크가 독특하기도 하니까 지금부터는 VMC의 사장님이신 로우 디가 씨와도 함께 얘기를 나눠보도록 할게요. 일단 PR 시간입니다. (웃음) 정식으로 [작은 것들의 신] 소개를 부탁 드릴게요.
[작은 것들의 신]은 제가 VMC에 입단하고서 발표하는 첫 작품이고요. 열두 트랙으로 구성했어요. 타이틀곡은 “밥값”이고요. 그리고 사장님이 항상 이 앨범에 VMC의 사활이 걸려 있다고 압박해주셨어요. (웃음) 이 앨범이 망할 시에는 너도 죽고, 나도 죽고, 우리 모두 죽는 거라고.
로우 디가(Row Digga, 이하 R): 죽지.
아무튼, 그런 앨범이고요. 제가 굉장히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타이틀이에요. 햇수로는 3, 4년 전에 아룬다티 로이 (Arundhati Roy)의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을 접한 순간부터 필을 받아서 EP든, 정규든 간에 반드시 이 제목이 제 첫 번째 앨범의 타이틀이 되었으면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자켓은 보시다시피 여기 사장님인 로우 디가 형이 해주었어요. 그리고 딥플로우 형과 함께 디렉팅을 해주시면서 완성된 앨범이에요.
LE: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을 읽고서 앨범의 컨셉을 착안해내셨다고 하셨잖아요. 그 소설을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어떤 내용의 소설인지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고, 또 그 소설을 지금의 앨범으로까지 만들게 된 이유에 관해 말씀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작은 것들의 신>이 굉장히 복합적이고, 다각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데요. 읽은 지가 너무 오래되긴 했는데, 주인공이 이란성 쌍둥이 남매이고 인도가 배경이에요. 도입부에서 아마 인도가 식민 지배를 당하는 내용이 나올 거예요. 아무튼, 그 상태에서 천주교가 인도에 뿌리내리는데, 인도가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는데요. 그래도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 있을 거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천주교를 믿는 가족의 이야기가 인도 전체의 역사 이야기와 합쳐지면서 생겨나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책에서 힌두교가 지배하는 인도라는 나라에서 천주교를 믿는 몇몇 신도들이 ‘우릴 지켜줄 신은 없는 건가?’라고 해요. 그 내용에서 착안해서 종교만 세상으로 바꿔서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은 개인이라는 존재가 세상에 살아가는 와중에 그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게 무얼까?’라는 생각을 메타포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싶어서 앨범 제목을 동명의 이름으로 짓게 되었죠.
LE: 앞서 말씀해주신 대로 세 곡만 남긴 시점부터 지금까지, 앨범 작업 기간이 꽤 길었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 사이에 다른 아이디어도 많이 생각났을 것 같은데요. 앨범에 대한 아이디어를 확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셨나요? 말씀해주신 그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고수해온 게 어떻게 보면 신기한 것 같기도 해요.
근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작은 것들의 신”, “밥값”, “올가미”의 가사가 햇수로 벌써 2년 좀 넘게도 전부터 작업된 거였는데, “밥값”이라는 가사를 쓸 때 이게 저를 대표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코드쿤스트 비트를 듣자마자 바로 뺐었어요. (웃음) 지가 뭐, 맥 밀러(Mac Miller)한테 보낸다는 둥 헛소리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야, 내가 타이틀로 쓸 테니까 제발 나 줘.”라고 해서 그때 받고, “밥값”이란 가사를 쓸 때부터 ‘여기서부터 출발해서 잔가지를 뿌려내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있었어요. 사실 [작은 것들의 신]에 요즘 유행하는 트랩 리듬의 트랙이 한 트랙밖에 없어요. 그 정도로 요즘 음악적 흐름이나 사운드 측면에서는 구식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이 아이디어를 계속 가져갈 수 있었던 이유는 가사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였던 것 같아요. 음악적인 스타일은 변할 수 있어도 이야기가 변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2년이고, 3년이고 ‘이걸 내야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LE: 대략 감은 잡히는데요. 커버 아트워크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상세히 들어봐야 할 것 같아요. 누가 아이디어를 냈고, 어떻게 지금의 커버 아트워크를 구상하게 되셨는지 여쭤봐야 할 것 같아요.
R: 처음 시작할 때, 원래는 딥플로우의 의견이 굉장히 컸었어요. 이미 힙합엘이 인터뷰를 통해서 딥플로우가 제 디스도 했지만, 사실 (딥플로우가) 저하고 좀 상극이에요. 저 같은 경우에는 엄마 같은 사람이고, 딥플로우는 아빠 같은 듬직한 스타일인데요. 근데 가부장제 사회 구조 속에서는 당연히 엄마 같은 제 의견보다는 (아빠 같은) 딥플로우의 의견이 좀 더 세게 반영되겠죠. 그러다 보니까 제가 아이디어를 냈을 때, (딥플로우는) “나는 내가 그려놓은 게 있어. 인간 군상을…”이라고 하면서 설명하더라고요. 인간 군상이라는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딥플로우가 냈었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사진 촬영으로 가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분을 구하려고 했었는데, 딥플로우는 우리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내려면 조금 변태성이 있는 작가 분을 구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디테일을 잡으려면요. 근데 하필이면 요즘 그림 추세가 힙한 쪽이다 보니까 그런 분을 찾기도 어려웠을뿐더러, (작가 분에게) 저희가 생각한 컨셉을 얘기하니까 바로 겁먹으시고 가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저희가 70명을 그려주셔야 한다고 얘기하니까 그걸 감당 못 하셨는지, “좋습니다.” 하다가 나중에 “죄송합니다.”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아이디어 자체가 거의 존폐의 위기에 있었어요. 그래서 사실 인제 와서 이야기하는 거지만, 부클릿 뒷 편에 실린 사진이 딥플로우가 2안으로 준비한 아이디어였어요. “미니멀하게 가자.”라고 했던 건데, 저는 성격이 뭔가가 딱 결정됐을 때 끝장을 봐야 하는 편이라서 사진은 당신이 찍고, 뼈가 으스러지는 한이 있어도 제가 하겠다고 했어요.
뭔가… 사무라이들이 출정하기 전에 혈서라도 쓰는 듯한 결단이었어요. (웃음)
R: 그래서 디자인 들어가기 전 한 1, 2주? 전쯤에 저희 크리스마스 공연 당일 날 그렇게 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었어요. 그러고 나서 딥플로우가 이왕 사진을 찍을 거면 작가가 필요하다고 해서 부바(Booba) 씨를 섭외하게 됐죠. 그날 한 6시간 정도 촬영했던 거 같아요. 근데 커버 아트워크가 다른 데서는 모르겠는데, 특히 힙합엘이 안에서는 남자 유저 분들이 안 좋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극혐. 극혐.
R: 네. 극혐이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 같은 경우에는 저도 그랬고, 딥플로우도 그랬는데… 특히 제가 더 그랬어요. 우리가 이 (커버 아트워크) 안에 힙합을 많이 녹여내야 하느냐.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작은 것들의 신]에 대한 제 아트 디렉션의 가장 중요한 포커스는 사실 힙합을 벗어나자는 거였어요. 근데 딥플로우는 그래도 힙합적인 멋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었어요. 그래서 커버 아트워크 중앙에 있는 이 얼굴이 잘생기게 보이도록 여기에 네 장의 사진을 썼었어요. 합성한 거예요. 뜯어고친 거예요.
LE: 승무원 사진 합성하듯 하는 거군요.
R: 네, 그렇죠. 그것도 결국에는 딥플로우가 끝내 포기하지 못한 힙합스러움 때문이었어요.
원래는요. 뱀이었어요.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뱀의 얼굴이… (웃음)
R: 이게 원판이… 물론, 이 친구가 머리 풀고 그러면 어여쁨도 있지만, 원판이 그렇게 잘 생긴 편은 아니잖아요. 그게 VMC의 전통이라 모두가 그런 게 있는데요. 덩어리지고… 근데 그 와중에도 커버 아트워크를 작업할 때, 포인트가 여태까지 우리가 묵직한 걸 해왔는데, 넉살이는 유일하게 살찐 상태여야 한다는 저희의 가입 조건에 상극인 친구잖아요. 목소리부터 시작해서요. 저는 그 점에 가능성을 뒀기 때문에 커버 아트워크는 최대한 힙합에서 벗어나게 하자고 했던 거죠. 그리고 제가 항상 그런 걸 선호하는 편인데, 직관성을 주고 싶었어요. ‘작은 것들’이라는 말에 (인간) 군상을 녹여서... 근데 처음에도 작가분들도 겁을 내셨던 게, 저희가 그냥 “70명을 그려주세요.”라고 하니까 그 설계를 하는 게 너무 힘들었던 거죠. 그래서 넉살이한테 앨범을 계속 들으면서 키 포인트를 잡으라고 얘기했었어요. 그렇게 해서 네 구역을 정한 건데, 가령 우측 상단은 기술을 뜻해요. 우측 하단은 좀 퇴폐적인 요소, 유흥 같은 걸 뜻해요. 그리고 좌측 상단 같은 경우에는 희(喜)를 뜻해요.
‘야~ 신난다~’ 이런 거죠.
R: 그리고 좌측 하단 같은 경우에는 “ONE MIC”에서도 나오는 얘기인데, <쇼미더머니 4>에서 있었던 싸이퍼 스테이지에 대한 패러디에요. 그래서 여기 그려진 왕좌가 스눕 독(Snoop Dogg)이 있었던 자리를 뜻하고, 그걸 비웃는 거예요. 이 모든 게 제 아이디어는 아니고 넉살이가 얘기하고, 마침 애니고 출신인 딥플로우가 있어서 형한테 처음에는 졸라맨이라도 좋으니 그려달라고 해서 나온 거예요. (딥플로우가) 워낙 그림을 그려오던 사람이다 보니까 설계가 가능한 멋진 스케치를 주더라고요. 그걸 가지고서 촬영을 한 거죠.
LE: 그간 VMC에서 발표된 앨범 커버 아트워크들과 비교하면, 이 커버 아트워크가 손이 가장 많이 간 편이었나요? 얘기를 들어보면 아이디어 기획부터 해서 여러 가지로 그런 편인 것 같은데요.
R: 사실 의외로 그렇게 (품이) 많이 들어간 편은 아니에요. 의외로. 왜냐하면, 던밀스 같은 경우에는 하루를 통째로 썼었거든요. 강백호라는 이미지를 위해서 영등포를 하루 종일 돌아다녔었어요. 근데 이 친구 같은 경우에는 딥플로우가 스케치를 너무 완벽하게 해서 거기에 맞춰서 조명만 맞추고 정말 찍기만 한 거 같아요. 그 촬영 당일도 웃겼던 게, 저도 그렇지만 넉살이도 멋진 걸 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더라고요.
아, 할 수 있어요.
R: 그래서 프로필 사진을 찍는 게 더 어렵더라고요. ‘나 멋져.’ 이런 걸 시키면 못하고, 오히려 바보 같은 걸 시키면 잘하더라고요.
(웃긴 건) 막 순식간에 “OK. OK.” 이러면서 진행됐어요. (전원 웃음)
R: 근데 프로필 사진은 한 30장 찍으면서도 마음에 드는 게 나오지 않아서 되게 걱정했었어요. 다른 건 30초도 안 걸려서 다 OK 됐던 것 같아요.
찍으면서 그렇게 웃더라고요.
R: 그렇게 천여 장 정도를 찍었었죠. 그러니까,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시간이 많이 걸렸죠. 한 명씩을 다 따야 하니까요. 근데 따서 디자인에 녹여내는 시간은 오히려 이틀? 이틀밖에 안 걸렸던 것 같아요.
LE: 왠지 말씀해주신 걸로만 미루어보면, 과정이 되게 복잡하고 힘들었을 것만 같아서 여쭤봤는데, 아니었군요. 근데 아까 얘기해주신 대로 저희 사이트 유저 분들의 경우에는 중국 삼류 영화 같다는 식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해서 좀 아쉬우셨을 것 같기도 해요.
R: 저희는 오히려 그런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커버 아트워크 속 넉살의 이 머리를 다 반대했었어요. 내부에서도 이 머리가 왜 멋있느냐는 얘기가 있었는데, 저 혼자 이걸 밀었었어요. 긴 머리를 떠나서 지금 이 머리로 활동하는 래퍼가 없어요. 저는 그래서 그 독특함을 살리고 싶었어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VMC가 스스로가 만든 틀에 갇히면서 매너리즘에 빠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되게 많이 했거든요. 해서 처음에는 이 친구한테 앱소울(Ab-Soul)을 얘기했었는데…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미지적인 측면에서 이목을 집중할 수도 있었던 거 같아요. 그렇게 해서 VMC가 보여드릴 수 있는 스펙트럼의 확장을 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있어요. 그리고 아까도 얘기했지만, 넉살이는 멋진 걸 못하는 애라는 걸 느꼈고요.
에이, 그런 얘기는 빼주세요 제발. 할 수 있어요. 아무튼, 이 커버 아트워크가 반대가 정말 많았어요. 모든 게 로우 디가 형과의 전투와 싸움이었어요.
R: <300: 제국의 부활>에서는 300명의 스파르타 군인들이 페르시아 군대와 맞서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정말 저 혼자 모든 멤버와 싸워야 했었어요. 카톡에다가 계속 글을 도배식으로 쓰면서 열정적으로 싸웠고… 실제로 이 에피소드를 갖고 딥플로우가 앨범 홍보용으로 설 연휴에 뿌리려고 했던 영상이 있어요. 예전에 이상민 씨가 했던 <음악의 신>처럼 페이크 다큐 식으로 제가 “X도 모르는 게…”라고 중얼거리면서 싸우는 컨셉을 구상했었는데, 제가 연기를 너무 못해서 세상에 못 나오게 됐죠.
LE: 그렇게 거센 반대를 뚫고 지금의 컨셉이…
R: 사실 그렇게 된 이유에도 딥플로우가 굉장히 크게 작용했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때 [작은 것들의 신]에 관한 아이디어를 한 세 개 정도 냈었어요. 근데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딥플로우가 워낙에 완고하다 보니까 “어, 나는 이거 해야 해.”라고 하는데, 저도 이 사람이랑 몇 번 투닥거리니까 이 사람 마음속에서는 어떻게 하고 싶다는 게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걸 알고 “그래요.”라고 했죠. 그랬더니 갑자기 이 사람이 자신이 없어졌는지, “아, 못하겠어. 포기해야겠어.”라고 하니까 괘씸한 거예요. (전원 웃음)
아, 이런 게 있었어?
R: ‘뭐지?’ 싶어서 그때 임원만 있는 단체 카톡방에서 엄청 싸웠었어요. 어느 정도였느냐면, 제가 막 화를 내고, 전화까지 씹을 정도였는데, 너무 괘씸했던 거죠.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면서 설계하고 있는데, 무섭고 못하겠다고 하니까 괘씸죄가 적용되면서 제가 어떻게든 하겠다고 하면서 진행이 된 거죠.
정말 지옥 같은 반대를 무릅쓰고… (웃음)
R: 근데 만약 지금의 커버 아트워크가 아닌 2안이 메인 아트워크가 되었으면 굉장히 심심한 앨범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LE: 임팩트가 많이 약해 보였을 것 같기는 하네요. 딱 부클릿 뒤쪽에 있을 때 빛을 발하는 정도가 아닌가 싶네요.
하여튼, 정말 충격과 공포의 커버 아트워크인데, 저 개인적으로는 되게 마음에 들었었어요. 근데 대부분 이런 식으로 얘기했었어요. 네가 지금 최면에 걸려 있다. 자기최면에 걸려 있다면서 ‘이걸 첫 앨범의 커버 아트워크로 한다고?’라는 식의 얘기를 많이 들었었어요. 근데 진짜로 이게 재미있잖아요. 그리고 로우 디가 형 말대로 그간 없었던 포맷이고요. 저는 그런 부분에 대한 점수가 워낙 후하게 주면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근데 다들 ‘아니, 서른에 나오는 너의 첫 번째 정규 앨범에 커버 아트워크가 하필 이게 웬 말이냐.’ 이런 식으로 얘기가 나오니까… (웃음) 전 그냥 ‘이게 왜? 이거 존나 멋있는 건데.’라고 생각했어요.
LE: 힙합 앨범이라고 멋있게 찍는 건 이제 그만둬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 차에 나와서 더 재미있고 좋았던 거 같아요.
R: 네. 아마도 유저 분들의 생각은 그랬던 거 같아요. 어린 마음에 약간 넉살이 내 영웅인데… (전원 웃음) 되게 멋있게 나오기를 원했는데…
LE: 그런데 너무 컬트적으로 나와버리니까…
R: 네. 그렇게 되니까 이 친구들이 상처를 받은 거죠. 제 생각은 그래요.
근데 솔직히 징그럽긴 해요. 제가 여기저기 막 말도 안되게… (웃음)
R: 아, 물론 찌찌 파티가 워낙에 심하긴 한데… (전원 웃음)
LE: 혹시 넉살 씨 가족분들은 어떻게 반응하시던가요?
저희 가족은 ‘어머, 이게 뭐야?’ 이런 게 없어요. 어머니는 그냥 “이쁘네~” 하셨어요. 요즘 들어 응원을 많이 해주시긴 해도 그닥 본질까지 보지는 않으세요. (웃음) 깊게는 안 보시고…
LE: 그냥 ‘얘가 이런 걸 냈구나.’ 이런 거군요.
네. 그 정도죠.
R: 다른 사담이지만요. 딥플로우가 클로즈업해서 SNS에 올려서 이슈가 되긴 했는데, 좌측 하단 쪽에 ‘넉개’라고 해서 개랑 넉살이의 얼굴이랑 합성해놨었어요.
이게 대박이야. 미쳤어. 아무리 생각해도. (웃음)
R: 원래는 러프 스케치에만 존재했던 거예요. 심지어 러프 스케치에서는 이런 형태도 아니었고, 정말 흉하게 모자란 개가 똥을 지리고 다니는 그런 거였어요. 근데 거기서 착안해서 좀 살리면 어떨까 했던 거죠. 개판에 대한 의미도 있고… 러프 스케치 그대로 했으면 아마… 이 친구는 랩 인생을…
커버 아트워크하니까 또 생각이 나는 게요. 초안을 딱 보는데, 촬영 당시에 찍은 모든 걸 다 썼더라고요. 앨범 뒷면에 TV 보는 모습까지 쓸 줄은 몰랐어요. 그렇게 모든 컷을 활용해서 완성된 커버 아트워크에요.
LE: 그럼 이번에는 로우 디가 씨가 생각하기에 커버 아트워크 디자인하시는 디자이너 입장이 아닌 VMC 대표 입장에서 [작은 것들의 신]이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인 것 같나요? 레이블 차원에서 말이죠.
R: 아까 했던 얘기와 조금 겹치긴 하는데요. 저는 시기적으로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게 2016년 신년을 맞아 제가 항상 강조했던 VMC의 목표 중 하나가 약간 검은 덩어리의 빼자는 거였어요. 대신 개개인이 빛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고, 우리가 맨날 하던 음악에서 벗어나자는, 이미지 탈출에 대한 생각이 많았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올해 계획된 것만 하더라도 넉살 다음에 바로 TK 앨범이 나오고요. 그다음에 던밀스 거가 나오고요. 오디도 올해는 무언가를 꼭 보여줄 거고요. 그런 측면에서 시기적으로 굉장히 환기를 해준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원래 저희는 앨범 작업에 착수할 때 프로듀서부터 해서 계획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아이디어는 즉흥성에 기반을 둔다고 하더라도 대체로 그러는 편인데, 그래서 처음에는 넉살이의 작업 방식이 불쾌했었어요. 소문을 들어보면, 이 친구가 술을 좋아하니까 ‘술자리 비트’라고 하죠. 모종의 거래. 그렇게 많이 받는다고 해서 저는 ‘아니, 무슨 앨범을 그렇게 작업해?’ 싶었는데, 오히려 그런 방식이 작용했기 때문에 VMC적인 색채가 덜하지 않았나 생각도 들어요. 그러니까, 메시지적인 측면에서 묵직한 건 유지를 하되,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는 그렇게 환기가 됐다고 봐요.
LE: 그에 관한 좀 더 이야기를 이어가 보면요. 그간에 발표됐던 VMC 소속 아티스트들의 앨범에는 TK 씨가 참여를 많이 했었는데요. 이번 앨범에는 여러 프로듀서가 많이 참여했잖아요. 근데 그게 모두 로우 디가 씨가 말씀해주신 대로 의도된 게 아닌 모종의 거래를 통해 된 건가요?
제가 VMC 들어가기 전부터 제 개인적인 음악적 동료들이 많이 있다 보니까 그 분들이랑 협업하고 싶었어요. VMC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여러 프로듀서의 비트를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그리고 들어오고 나서 진행한 새로운 작업에서는 TK랑 버기(Buggy)가 도와준 게 있죠. 그 정도로만 도움을 받고, 나머지는 이미 제가 받아 놓은 것들 안에서 처리가 많이 됐죠.
LE: MGFC라든가, 포카페이스(4Kapas) 같은 경우에는 지금 한국힙합 씬 안에서 래퍼들에게 본인들의 비트를 많이 제공하는 스타일의 프로듀서는 아닌 것 같은데요. 이런 프로듀서들과의 협업한 경우에는 넉살 씨가 직접 좀 찾아본 결과라고 봐야 할까요?
포카페이스 같은 경우에는 똘배가 소개해줬었는데, 저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예전에 가리온 리믹스라든가 이런 걸 많이 해서… 그리고 MGFC 같은 경우에는 로비스트 호림이가… 또, MGFC의 멤버 중 한 명인 준백이라는 친구가 집이 저랑 되게 가까워요. 그 친구를 호림이를 통해서 소개받아서 이미 알고 있기도 했고, 크래프트 앤 준(Craft And Jun)이라는 회사에서 하는 <라이브 앤 다이렉트(Live & Direct)>라는 콘텐츠를 통해서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MGFC는 진짜 잘하는 친구들이에요. 디프라이(Deepfry)라는 친구랑 준백이 둘인데, 음악에 대한 이해도도 정말 높고요. 힙합적인 질감을 어떻게 해야 낼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는 프로듀서 팀이라서 굉장히 좋아해요.
LE: 프로듀서 진을 다양하게 가져가다 보면, 일성 측면에서 앨범의 색깔을 일관되게 가져가는 건 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일반적인데요. 사실 앨범 속에 유독 튀는 트랙이 있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긴 하지만요.
일단 딥플로우 형의 도움이 컸어요. 딥플로우 형이 디렉팅을 봐주면서 두 곡이 상반되는 느낌이더라도 배치에 따라 유기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식의 조언을 해줬었죠. 그리고 제가 처음 비트들을 골랐을 때도 강력하다고 느껴지거나 ‘와, X발!’ 싶은 건 성향상 일부러 피하려고 했었어요. 되게 단순한 생각인데, 메시지 쪽으로 에너지가 집중이 많이 되었으면 했어요. 너무 비트가 화려해서 그런 거에만 (청자들이) 꽂혀 버리면 그런 의도가 죽어버릴 수도 있겠다 싶었고요. 그렇게 예전부터 되게 심플하고, 소울풀한 느낌을 낼 수 있는 비트로만 골라야겠다는 생각으로 비트를 골랐어서 어딘가가 모가 날 것 같다는 걱정은 안 했던 거 같아요.
R: 이게 아티스트 본인의 생각이면, 저와 딥플로우는 이 측면에서 초반에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말씀하신 대로 (앨범의) 통일성에 있어서 ‘이걸 어떻게 정리하지?’라는 생각이 제일 컸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다른 일을 부업으로 하는 게 있다 보니까 작업실을 자주 오지는 않는 편인데요. 가끔 와서 보고 형태로 받고, 그때마다 딥플로우랑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요. 올 때마다 딥플로우가 항상 수심이 깊더라고요. 뭘 얘기하면 “넉살이가 말을 안 들어.” 맨날 이러고요. “또 술자리에서 비트 가져왔어.” 맨날 이런 얘기만 하고 있으니까 저도 처음에는 듣고 걱정했었죠. 그렇게 (넉살이가) 갖고 온 비트들을 들어보니까 좀 철 지난? 그 당시에는 ‘이거 철 지난 비트인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어요. 편곡 전 상태였죠. 근데 그게 요즘 예전 것을 파고드는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시기적으로 잘 맞아 떨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에 트랙리스트 짜는 작업이 신의 한 수였죠. 수차례 했던 거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작은 것들의 신”이 앨범과 동명이니까 당연히 첫 트랙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었는데요. 오히려 ”작은 것들의 신”이 뒤로 가면서 마무리되는 느낌이 났죠. 그렇게 비트 하나하나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앨범 하나를 유기적인 구성으로 꾸리기 위해 투자했던 시간이 (정돈되게 보이는 데에) 굉장히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LE: 또 모가 난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게 동명의 소설도 어떤 인물이나 큰 스토리 하나보다는 사건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잖아요. 근데 넉살 씨의 앨범도 약간 그런 느낌이었어요. 어떤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다음에는 또 다른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고…
오, 맞아요. 엄청나게 예리하신데요? 맞습니다. 만약 이걸 하나의 책이라고 생각하면 이 앨범은 주인공 시점에서 진행되는 게 아니에요. 옴니버스식으로 만든 사건의 모음집인데, 근데 그게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것도 아니에요. 다만, 그냥 우리 삶 주변에서 너무나 일상적인 사건들을 재구성하면 되겠다는 게 처음 가사 쓸 때의 모토였어요.
LE: 또, 원작이 삶에 밀착되어 있기도 하고…
근데 사실 그 책에 있는 내용에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사건들이 많아요. 제가 기억나는 게, 극장에서 막 꼬마애가 자기 바지에 손 넣게 해서 “내 고추 만져.”라고 하면서 성추행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쌍둥이 중 한 명이 자살하나 그럴 거예요. 아무튼, 되게 잔인하고, 아주 무자비한 책이에요. 차가운 소설이에요. 근데 또 그거까지 가져와 버리기는 좀 그랬던 게 저는 음악이 어떤 일말의 따뜻함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소설을) 다 가져와 버리면 너무 차가울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밥값”의 마지막 가사나 “올가미” 정도가 차가운 느낌을 주는 정도고, 다른 것들은 좀 따뜻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LE: 이번 앨범의 가사를 보면, 정말 쉬운 단어들인데도 가사 안에서는 정말 안 쓰는 단어들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꽤 있어요. 어느 정도는 일부러 그런 단어들을 골라 쓰시는 거잖아요. 그 고르는 과정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이 오직 다른 사람이 가사 안에서 쓰지 않는다는 것 그거 하나인가요?
아니죠. 그건 너무 뻔하고요. (웃음) 저는 그런 단어들을 고를 때, 뉘앙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밥값” 같은 경우에는 1절에서부터 끝날 때까지 비슷한 뉘앙스의 단어들을 많이 쓰려고 했었어요. 예를 들면, 지하철 상행선, 서류 가방, 점심시간, 담배와 커피. 딱 직장인들 하면 점심시간에 자판기 앞에서 커피 마시면서 담배 피우는 게 그려지게. 그런 식으로 쓰고, 2절에서는 제가 공연장에서 일을 하고, 돈을 받고, 그러니까 어떤 걸 하고서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받는 그런 모습. 우리가 밥값을 해나가는 과정을 표현할 수 있는 뉘앙스의 단어들을 많이 썼는데, 그중에서도 포인트가 “한 솥 가득해 논 카레와 / 젓갈 몇 개 혹은 남은 찬에 비빔밥” 이 라인이라고 생각해요. ‘제목이 밥값이니까 음식 이름을 넣어야지.’ 이런 식의 일차원적인 메타포이긴 한데, (웃음) 남은 찬으로 비빔밥을 해먹고, 그리고 카레를 한 솥 해놓으면 그걸 막 일주일씩 먹고 그런 게 자취하는 사람들에게 와 닿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젓갈 같은 것도 한 번 먹으면 오래 먹잖아요. 회식에서 술에 취하고 그런 것도 제가 현실에서 다 있었던 일들이에요. 정말 술 많이 먹고 취해서 집에 가서 냉장고를 딱 열었을 때 있던 카레와 오징어 젓갈. 그게 생각나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모가 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뉘앙스의 표현들을 썼죠. 딥플로우 형은 그걸 페이소스라고 하더라고요. 서로서로 어떤 문학적인 시너지를 줄 수 있는… 그런 것들을 (가사에) 많이 쓰려고 하죠. 전체적인 뉘앙스에서 벗어나지 않는 단어들 위주로 골라서 쓰려고 하고요.
LE: 그런 거들이 하나씩 쌓이다 보면 어떤 이미지라는 게 완성되는데, 그걸 하나의 앨범으로 만드는 데에 피로감이 컸을 것 같기도 해요.
아, 짜증 나고 힘들고 괴로웠어요. “올가미”라는 트랙은 7개월 정도 걸렸어요. “올가미”가 살아서 뭐하느냐는 내용인데, 가사를 쓸 때 집중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런 내용을 쓰면) 자연히 우울해지거든요. 100% 사람을 우울하게 하고, 진짜 짜증 나게 하는데, 진짜 ‘살아서 뭐해? 내가 이걸 왜 쓰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오래 걸렸던 거예요. 말씀하신 대로 그런 부분에 대한 집착이 있어서 좀 힘들 때가 있었죠.
LE: 또 돋보이는 부분 중 하나라면 한영혼용을 거의 하지 않는 점이었어요. 이런 부분에 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셨나요?
사실 제가 영어를 잘 못 해요. 로우 디가 형이 항상 주의를 시키죠. 어설픈 영어는 금지. 무식함 오픈 금지.
LE: 근데 사실 영어를 잘 쓰고,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타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간혹가다 쓰는 경우도 있잖아요. 반면에 넉살 씨는 한영혼용을 거부하는 의도조차도 없이 되게 자연스럽게 한국어로만 가사를 풀어내신 것 같아요.
네. ‘한글로만 채워서 메시지를 드러내야지.’ 이렇게 생각한 게 아니고 제가 그렇게 못하기 때문에 안 하는 것뿐이에요. 영어가 자연스럽게 안 나오니까… 메킷레인 레코즈(MKIT RAIN Records) 분들처럼 영어가 물 흐르듯 나오면 쓰고 싶은데, 안되니까 못하는 거죠.
LE: 예전에 ‘Never Don’t Stop’이라는 가사도 있었죠. (전원 웃음)
R: 이 얘기가 나온 김에 얘기하면, 옥에 티가 있는데요. 이 친구가 커먼을 좋아하잖아요.
아, Warrior? 뭘 그런 얘기까지 해. (웃음) 말씀하세요. “Skill Skill Skill” 가사 얘기에요.
R: 제가 디자인 때문에 가사집을 정리하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맞춤법 같은 걸 굉장히 많이 보는 편이에요. 그래서 어설픈 영어 쓰지 말라고 하는 게요. 물론, ‘Broken English’가 있어도 어느 정도 통용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걸렸던 게 “Skill Skill Skill”에 ‘Walk Like Warrior’라는 구절이 있었어요. 이게 전사를 뜻하는 거라면 Warrior 앞에 a가 붙어야 할 텐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니까 이 친구가 커먼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게 “Be” 가사를 인용한 거더라고요. 제 기억에 그 노래에서는 ‘Walk Like Warriors’였던 거 같아요. 근데 이 친구가 Warrior밖에 안 들리니까… (전원 웃음)
맞아요.
R: 그래서 막판에 인쇄 다 넘어간 채로 이거 어쩌나 하고 있었죠. 저는 마지막에 “그럼 이거 ‘Wrestler Warrior’로 바꾸자.”라고 했었어요. (전원 웃음) 그럼 고유명사니까 a가 없어도 괜찮거든요. 근데 그래도 본래 의미를 전달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해서 거기까지는 그냥 넘어갔죠.
너무 웃기더라고요. (웃음) 그분 돌아가시지 않았나? 얼티미트 워리어(The Ultimate Warrior)… 그 레슬링 선수 워리어처럼 걷는 걸로 가라고 하는데, 영어가 잘 모르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번쩍 들더라고요.
LE: 확실히 로우 디가 씨가 칼같이 하시는 경향이 있네요.
아, 칼이죠.
LE: 어떻게 보면 제일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제일 놓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죠.
s… (웃음) Warrior까지만 들리더라고요.
LE: 가사를 찬찬히 보면, 넉살이란 래퍼가 가사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자신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되는데요.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자신 있다기보다는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요즘에 딥플로우 형이 미는 표현 중에 ‘정신 똑바로 박힌 랩’이라는 게 있는데, 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당연한 거라는 거죠. 가사에 대한 프라이드는 MC라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거죠. 힙합과 랩이 말을 가지고 만드는 것들인데, 당연히 가사를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제가 가사를 잘 씁니다.’라고 할 정도로 프라이드가 큰 건 아닌데, 나쁘지 않게 또 (메시지가) 전달되는 데에 무리 없게 쓰고 있지 않나 싶어요.
LE: 요즘에는 퓨처(Future)나 영 떡(Young Thug) 같이 발음이 부정확하고 가사적인 측면에서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다른 측면에서 인정받고 있는 래퍼들이 뜨고 있는데요. 그런 래퍼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건 음악의 의도 자체가 턴업하는 데에 있기 때문에 그거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거죠.
LE: 그런 추세가 있지만, 본인은 본인대로 가겠다는 거군요.
네. 그리고 저도 클럽 가면 그런 음악을 신나게 듣기 때문에… 이번 앨범은 그렇지 않지만, 그런 재미있는 것도 해볼 생각이 있어요. 물론, 트랩 뮤직이나 클라우드 랩을 완전히 하는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요. 이 앨범으로 진중한 건 학을 떼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으니까요. 나중에는 내려놓고 예전에 발표했던 “RHYD YO” 느낌으로 많이 해보고 싶어요.
LE: 앨범 관련된 얘기를 수록곡별로 좀 더 해보면요. 일단, 첫 트랙 “팔지 않아” 뮤직비디오 이야기를 해보면, 복장이 되게 멋스럽게 개성적이었어요. 근데 뮤직비디오 스타일리스트를 블랭타임 씨가 했더라고요.
아, 네. 지금도 계속 참치회 안 살 거냐고 독촉을… 제가 참치회 산다고 하고 (뮤직비디오 촬영에) 데려갔거든요. “팔지 않아”는 거의 블랭타임의 뮤직비디오라고 보셔도 돼요. 모든 옷이 거의 블랭타임의 옷이고요. 패션 아이템 관해서는 동묘도 같이 다니고, 미팅까지 같이 할 정도로 다 도와줬었어요. 그 친구가 동묘 쪽을 잘 아니까요. 거기 나오는 안경이라든지, 소품 같은 것들…
LE: 총도 혹시…?
아니요. 총은 영상팀 GDW 팀 쪽에서 준비해주신 거고요. 총은 저희가… (웃음) 그거까지는 저희가 좀 힘들고, 파이프 정도까지는 저희가 준비했죠. 직접 출연까지 하고. (웃음)
LE: 조금 넘어오면, “밥값”이나 “작은 것들의 신”은 뭐랄까, 타인에 대한 응원이 담긴 노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근데 채택한 방식이 소위 말하는 발랄한 ‘힐링송’의 문법은 아니었어요. 이를테면,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 같은 곡이겠죠. 다른 방식을 취하시는데, 사람들을 위로하는 노래를 만들고는 싶은데 너무 클리셰처럼 갈 수도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의식하고 비튼 건지 궁금해요.
제가 항상 앨범에 관해 말씀드릴 때, 사실 이 앨범의 모든 트랙이 저 자신을 응원하는 얘기들로 채워져 있어요. “Make It Slow”도 그렇고, “밥값”도 그렇고 ‘난 아직 늦지 않았어. 준영아, 아직 너 할 수 있어.’ 이런 식의 응원이거든요. “작은 것들의 신”도 마찬가지고요. 되게 멋있게 얘기를 하고 싶기도 했지만, 사실은 저를 향한 위로와 응원을 담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위로를 제가 아닌 다른 어떤 개인도 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사고가 확장된 격인데, 당연히 제가 “작은 것들의 신”이나 “밥값”에서 그런 클리셰적인 걸 할 수는 없어요. 그런 거에 치를 떠는 사람이라… 으, 말도 안 돼. 오그라들어. ‘X발 수고하기는, 너 같이 안 사는 사람이 어디 있냐. 수고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러는데… 저는 “밥값”이랑 “작은 것들의 신”에서처럼 더 현실적이고 잔인하게 얘기해주고, 근데도 괜찮다고 얘기해주는 게 진짜 위로라고 생각해요. ‘너 상황이 어떠냐면, 암 말기라 내일 죽을 수도 있어.’ 이런 식으로 얘기해주고 나서 ‘그래도 너에게 남은 시간이 있다는 것에 대해 행복해해.’라고 얘기해주는 게 저는 진짜 위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몸이 많이 안 좋으시지만, 그래도 어떻게 나을 수도 있으니까요.’라고 얘기해주는 것보다요. “밥값”은 확실히 그렇게 하고 싶은 의도에 따라 잘 나온 것 같고, 근데 “작은 것들의 신”은 약간의 클리셰가 있죠. 마지막에 ‘그래도 잘 될 거야.’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는데, 근데 그 정도 얘기까지는 또 하고 싶더라고요. (웃음) 좀 많이 오그라들기도 하지만… 저같이 맨날 술만 먹으면서 개차반 같이 살아온 사람도 무언가에 집중하고, 염원하면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이런 앨범을 낼 수 있는 것처럼 모두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작은 것들의 신”에서는 ‘다 잘 될 거야. 걱정하지마.’라고 하면서 끝내는 느낌을 줬죠.
LE: 앨범에 보컬 피처링이 거의 없는데, “밥값”에는 쿤타(Koonta) 씨가 참여했어요. 어떤 계기로 쿤타 씨와 함께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쿤타 씨가 포멀한 스타일의 보컬은 아니시잖아요. 그 독특한 스타일이 곡의 분위기와 매칭이 잘되는 것 같기도 한데요.
그렇죠. 쿤타 형 관한 얘기를 하자면, 이건 실화인데요. 제가 고등학생 때 쿤타 형의 공연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어요. 감수성이 예민했던 아이가 쿤타 형이 “I Feel Love”를 공연하시는걸 보고 ‘이게 뭐지?’하면서 눈시울이 젖으며 감동을 받았던 거죠. 사실은 다른 보컬 분들이 물망에 올라 있었어요. 막 고민했었죠. 근데 쿤타 형의 팀 루드 페이퍼(Rude Paper)의 앨범이 새로 나오기도 했고, 딥플로우 형이 딱 그러더라고요. “야, 이건 쿤타 형이다. 여기에 쿤타 형 들어오면 끝이야. 확실해.”라고 하더라고요. ‘쿤타 형이랑 잘될까?’ 생각하면서 앨범 때문에 몇 번 뵈어서 전화를 드렸더니 너무나 흔쾌히 “당연히 콜이지. OK, 해줄게.”라고 하셔서 같이 하게 됐죠. 그러고 나서 저희 작업실에 와서 쿤타 형이 녹음을 해주셨는데, 듣는 순간 딱 느꼈어요. ‘아, X발 확실하구나. 너무 좋다.’라고. 쿤타 형 곡에 제가 들어간 느낌까지 받았었어요. 너무 찰떡같이 잘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딥플로우 형이랑 저랑 둘이 굉장히 흡족했었어요.
LE: “악당출현”은 VMC 특유의 단체 곡 느낌이 물씬 났는데요. 이번 곡의 경우에는 여느 단체 곡보다도 더 파트 배분을 좀 더 치밀하게 한 느낌이에요.
그렇죠. “악당출현”은 딥플로우 형이 완전히 전담해서 만들어진 곡이에요. 파트 배분이나 이런 부분도 형이 주도하셨고, 더블링의 개념이나 모니터링도 하나씩 디렉팅을 봐주면서 “야, 니가 들어가서 여기에다가 랩 쳐”하는 식으로 작업했던 기억이 나요. 사실은 앨범 안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으면서 가장 튀는 곡이기도 하죠.
LE: "악당출현"외에도 VMC의 색이 묻어나는 트랙이 "I Got Bills"였던 것 같아요. 전체적인 구성에서 이 두 곡에만 VMC 색깔을 담아낸 이유가 있나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VMC 특유의 색 빼기의 일환인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요. (웃음) 사실 "악당출현"이나 "I Got Bills" 풍의 비트를 이전에도 많이 해왔어요. VMC 들어오기 전에도 이런 비트를 좋아했으니까. 그런데 제가 이번 작업을 하면서 느낀 점이 어떤 메시지적인 측면에서 다가갈 때 그런 비트들이 전체적인 메시지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그런 색이 이번에 줄어든 것 같아요. 게다가 "I Got Bills"는 정말 정확하게 딥플로우 형이 만들기도 해서 그 입김이 많이 들어갔죠. 그래서 다른 트랙에 비해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R: 저는 사실 "악당출현"이나 "I Got Bills" 두 개를 듣고 걱정을 많이 했어요. 일단 넉살이가 한 다른 앨범 트랙 작업과는 다르게 누가 들어도 ‘우리는 VMC야.’ 하는 느낌이 들어서… (웃음) 그래서 처음에 “악당출현” 뮤직비디오를 찍는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저는 너무 반대했어요.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우리가 하던 거를 그대로 하는 느낌이어서 모양새가 좋지 않을 거로 생각했어요. 저는 오히려 “밥값”이 더 잘되길 원했었죠. 그 곡이 넉살의 페이소스가 더 확고해서 아티스트적인 모습을 더 부각해줄 거로 생각했죠. 그런데 앨범이 나오자마자 모든 팬분들이 “”악당출현”이 킬링 트랙이다.”라는 반응이어서, ‘아… 이제 내 더듬이가 잘렸구나…’ (생각했죠.) (전원 웃음)
이 얘기는 사실 저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곡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사실 저희가 판 함정은 “ONE MIC”의 스토리텔링이나 “밥값”의 페이소스 같은 부분이었는데… 역시 팬들은 그래도 때려 부수고, 누군가가 사지를 떼어나는 가사가 나오고, 비트가 후려치고… (전원 웃음) 이런 곡들이 사랑을 받더라고요.
LE: 앞서 언급한 “ONE MIC”의 경우는 논픽션에 가까운 형식이었어요.
그렇죠. “ONE MIC”는 딥플로우 형의 아이디어였어요. 같이 <쇼미더머니>를 보고 있다가 충격에 빠졌죠. 스눕 독(Snoop Dogg) 사건이 정말 가관이었잖아요. 정말 충격에 빠져서 ‘이제 정말 갈 데까지 갔구나.’라고 생각했죠. 근데 딥플로우 형이 “야, 네 앨범에 ‘ONE MIC’라는 트랙을 하나 넣자. 그리고 스토리텔링이 중심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하더라고요. 원래 딥플로우 형이 처음에 얘기한 거는 믹스테입을 낸 래퍼가 갱스터적인 삶을 살고 누구랑 싸우는 거를 생각했는데, 저는 거기에서 ‘ONE MIC’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제 나름의 각색을 했어요. 1절에서는 제가 <쇼미더머니 2>를 나간 경력이 담겨 있고, 믹스테입을 낸 이야기가 있으니까 얼추 버무리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2절에서는 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다가 스눕 독 사건으로 넘어가면서 제가 봤던 이야기를 그대로 담으려고 했어요. 그리고 3절에서는 완전 픽션으로 돌아와서 그 곡의 주인공이 결국 꼰대가 되어서 명예만 바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냈죠. 그리고 “ONE MIC”에서는 시점 전환이 주요했어요. 저는 시점 전환이 자유로울수록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요. “ONE MIC”는 1인칭인 듯하다가 3인칭 인듯 중첩되는 게 곡의 핵심이고, 두 번째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얼마만큼 관찰한 내용을 잘 기록할 수 있는가였어요. ‘얘는 <쇼미더머니> 나가 떠서 아무것도 없는 거품이다.’라는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얼마만큼 묘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트랙이었던 것 같아요.
LE: “ONE MIC”에서 언급한 '지옥도'에 대한 생각도 궁금해요. 이제는 <쇼미더머니>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를 안 하려는 생각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근데 뭐 모르죠. 나갈 수도 있어요. (웃음) 저희가 너무 반미디어로, 무슨 ‘다 죽여야 해, 우린 언더의 수호신이야.’ 막 이런 이미지로 가는 거 같은데… (전원 웃음) 그렇게 꽉 막힌 사람들은 아니거든요. 다만 스눕 독을 모셔다 두고 그런 미친 짓을 하는 건 당연히 개판이었기에 끔찍하다고 이야기할 뿐이죠. 그래도 무슨 ‘<쇼미더머니> 개새끼들, 힙합을 좀먹는 악당들’ 이런 입장은 아니에요. (전원 웃음) 사실 저희를 그런 집단으로 많이들 생각하세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도 강일권 형님이 ‘그쪽으로는 오줌도 안 싸시죠?’ 이 정도의 강도로 얘기하셔서… (전원 웃음) 그래도 아직은 회의적인 입장이긴 해요. 방송이 주는 악영향이 있긴 하죠.
R: 넉살이의 말대로 저희가 특정 부분에 선을 긋는 거는 없어요. 저희는 단지 희화화시키는 거에 특화된 거뿐이죠. 딥플로우의 “잘어울려”라는 곡도 그렇고, 저희는 뭔가 할 때 희화화하면서 놀리는 형태로 가는 걸 좋아할 뿐이에요. 선을 긋거나 ‘쇼미더머니 Fuck You.’ 이런 거는 아니에요. 오히려 이전 시즌 같은 경우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처음에 섭외 같은 제안을 받았을 때도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지나갔는데, ‘오 VMC가 유일하게 안 나왔다, 유일한 수호신이다’라는 반응이 나온 거죠. (웃음) 그런데 거기서 저희가 ‘아니에요. 고민하다 지나간 거예요.’라고 하기도 그렇고… (전원 웃음) 그래서 가만히 있었더니 수호신 이미지가 되더라고요. 뭐, <쇼미더머니>는 친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미워하지도 않아요.
LE: “얼굴 붉히지 말자구요”의 경우는 실제 술자리 이야기인 거 같더라고요. 술은 요즘도 많이 하시나요? 그런 상황이 요즘도 자주 벌어지는지 궁금해요.
앨범 내고 지금 기분 한껏 내고 있죠. 어렸을 때 진짜 친한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데 앨범 준비하면서 잘 못 봤거든요. 그래서 (요즘) 못 봤던 사람들이랑 만나서 술을 마시고 있어요. 어제도 영 제이랑 어릴 때 친구들 만나서 술 먹고… 그러고 있습니다.
LE: 혹시 주사 같은 거는 있으신가요?
주사가 개판이에요. 얼마 전에도 버기 집 문을 부수려고 했어요. (웃음) 소화기로 내려쳐서… (웃음) 주사가 술을 잘 못 하는 거예요. 술이 센 편이 아니거든요. 그냥 술 먹고 얘기하는 거를 좋아하는 거죠. 끽해야 두 병 넘어가면 맛이 가요. 그리고 사실 “얼굴 붉히지 말자구요”는 던밀스가 술자리에서 실제로 하는 유행어였어요. 그래서 ‘이거 내가 써야지.’ 생각하고, 던밀스한테는 “내가 쓸 거니까, 너 피처링 들어와.”라고 해서 같이 하게 된 거죠.
LE: 펍, 맥주집 이런 곳에 가시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소주파이신 거 같아요.
저희는 하드한 소주종족이에요. (웃음) 거의 아마 힙합 씬 최고의 소주 집단이지 않을까 싶어요. 저희는 펍 자체에 있지를 못해요. 저희는 포차에서 우동이나 찌개에 소주가 최고죠.
LE: 이제 후반부 트랙 얘기를 해볼게요. “Hood”는 서울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한 듯해요. 이중적인 표정이나 회색빛, 그럼에도 고국이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Hood”는 비트를 초이스할 때, 딥플로우 형이 “야 비트가 다 너무 템포가 빨라, 느린 거 하나 가자.”라고 해서 단순하게 시작했죠. 그래서 마일드비츠(Mild Beasts) 형님에게 비트 하나 부탁드려서 진행하게 됐어요. 곡은 비트를 듣자 마다 영화 <Boyz n the Hood>가 생각나서 “Hood”라는 제목을 지었고, 여기에서도 일말의 따뜻함을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멀리 돈을 벌러 떠난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랄까요. 솔직히 제가 벌스에서 쓴 얘기는 네이트판 이런 데서 많이 볼 법한 이야기잖아요. ‘야, 노래방 도우미 불렀는데 초등학교 동창인 미애가 왔어.’ 막 이런 거. 그런데 이게 실제로 제 친구가 겪었던 일이거든요. 그 이야기가 저에겐 너무 충격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런데도 괜찮다고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데… ‘그래도 네가 행복하면 괜찮아, 지금 혼자라고 생각돼도 옛날에 만난 친구들이 있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후렴이랑 벌스를 짜고, 차붐 형에게 곡을 넘겼어요. 차붐 형은 이 고향이라는 개체를 떠나 돈을 벌러 갔을 때, 일을 크게 벌여서 망해버린 젊은이의 모습을 표현했죠. 화지 같은 경우는 사이버 세상과 외양적인 부분에 미쳐, 그런 거에 휘둘리는 세태에 대한 가사를 쓴 거죠. 처음에 제 벌스를 보내주고, ‘고향을 떠나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위로를 해주자’라는 얘기를 해준 다음에 마음대로 쓰라고 했어요. 그 뒤에 화지랑 차붐 형이 보고 너무나 멋지게 해준 거죠.
LE: 이어진 “Do It For”는 조금 더 넉살이란 래퍼 개인에게 집중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곡의 도입부인 팔로알토 씨의 벌스인 “이 모든 순간들이 영원하길 바라지만 그럴 순 없으니 젊은 날이 내겐 소중하지…” 라는 부분이 “팔지 않아”의 뮤직비디오 막바지에도 나오잖아요.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장면이지 않나 싶은데, 두 곡을 연결한 데에 어떤 의도나 이유가 있을까요?
그냥 무드입니다. (전원 웃음) GDW 팀에서 영상 편집을 해주시다가 봤는데 그 영상이랑 가사가 느낌이 잘 맞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넣게 된 거예요. 그래서 항간에는 “Do It For” 뮤비까지 나오는 거 아니냐는 말이 있는데… 그따위 계획은 없고요. (웃음)
LE: 여기서 아쉬운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앨범의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피처링 진들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느낌이 있어요.
사실 아쉬운 면이 있죠. 솔직히 반반인 거 같아요. 잘해줘서 고맙긴 한데, 던밀스 식으로 표현하면 ‘나보다 잘해서 익스큐즈미다.’(웃음) 이런 건데… 사실 “Do It For”나 “Hood”는 원래 솔로 곡으로 생각하고 기획하면서 가사를 썼어요. 실제 “Do It For”는 5~6개 벌스를 할애해서 만든 거기도 했죠. 그렇게 진행했던 거라 그런지 아쉽기도 하죠. 실제로 제가 원래 피처링을 넣고 진행하는 트랙은 시작부터 아예 벌스를 쓰는 시스템이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중간에 구성이 약간 바뀌고 진행된 거에는 약간 아쉬운 마음이 있죠.
LE: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해볼게요. 최근에 힙합플레이야 컴필레이션 앨범인 [COMMENTARY 2016]에서는 코드쿤스트가 아닌 그루비 룸(Groovy Room)과 함께 하셨어요. 그루비 룸의 음악이 [작은 것들의 신]과는 결이 다른, 팝한 음악에 가까운데 어떻게 함께하게 되었나요? 먼저 제안을 하신 건가요?
힙합플레이야 측에서 앨범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저를 원하는 프로듀서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생각해보니 여기서까지 코드쿤스트랑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랑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루비 룸이랑 미팅을 하게 됐고, 어린 두 명의 친구가 멋지게 작업을 하고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이거 나한텐 너무 세련됐다는 느낌이었는데, 이런 것도 한 번 해보자 해서 해보게 됐죠.
LE: 지금까지 언급한 주요 작품 말고도 기억나는 참여 곡이 있나요? 레이백사운드(Laybacksound)와의 작업은 색달랐고, 불한당과의 작업 역시 뜻깊었을 것 같고, 핑앤퐁(PingNPong)과의 콜라보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격이었다고 생각되는데요.
우선 일단 정말 많이 했어요. (전원 웃음) 이게 뭐, 왕건이는 사실 별로 없지만… 친한 뮤지션이 많다 보니까 많이 작업했는데… 재미있게 한 기억은 팔이 안으로 굽어서 그런 지 몰라도, 블랭타임이랑 할 때 신선했던 거 같아요. 얘가 옛날에는 붐뱁 위주의 올드 힙합을 좋아했는데, 사실은 되게 음악적 스팩트럼이 넓어요. 음악을 엄청나게 많이 듣거든요. 그래서 그 당시에 준비한다는 앨범을 들어봤는데, 라운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음악이 시원시원하더라고요. 뭔가 제가 아는 쇠창살을 잡아 뜯는 힙합이 아니라 (전원 웃음) 되게 칠하게 예쁜 음악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랜만에 상쾌한 느낌이 들어서, 같이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레이백사운드와 함께 한 작업의 경우는 걔네 옥탑방에서 한껏 취해서, ‘그래, 뭐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녹음한 기억이 나요. (웃음)
LE: 불한당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MC 메타(MC Meta) 씨와의 인연을 맺게 된 건 쇼미더머니를 통해서일 거 같기도 한데요.
사실 그 이후로는 잘 못 뵙고, 작업할 때가 제대로 인사 드린 계기인데요. 일단 DJ 스킵(DJ Skip) 형에게 연락이 왔던 거로 기억해요. 사실 옛날에 MC 메타 형님이 가라사대에 계실 때, 제가 고등학교 때 가라사대 컴페티션에 곡을 보냈다가 떨어진 적이 있어요. 그리고 어떤 공연장에서 그 컴페티션 곡을 한다고 해서 클럽 앞에 찾아가기도 했어요. 근데 제가 멍청하게 늦게 가서 다 끝나고 도착했었죠. (웃음) 가니까 무대가 끝나는 쯤에 MC 메타 형님이 올라오시더라고요. 거기서 제가 당시 고등학생인데, 버릇없이 “언제 가는 같은 무대에 설 겁니다.” (전원 웃음) 이렇게 말했어요. 그러니 MC 메타 형님이 “그래요.”라고 하면서 웃으시며 갔던 기억이 있어요. 그만큼 MC 메타 형님과의 작업이 뜻이 깊었다는 거죠. 이후 작업을 통해 가리온 형들이랑 친해지게 됐죠. 킵루츠(Keeproots)형을 알게 돼서 큰 영광이기도 했죠. 제가 어릴 때부터 진짜 팬이었거든요.
LE: 외부 작업 중에 정말 독특했던 거는 경기도 희망 근로 사업 홍보 뮤직비디오와 수도권 통합 환승 할인제 홍보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적이 있으세요. 두 개 다 어떤 계기로 하게 되신 건가요?
이거는 둘 다 같은 라인에서 소개해준 거였어요. 아까 그 노컷뉴스를 다닌다는 형이 아르바이트처럼 소개해 준건데… 그때가 아마 20대 초반이었을 거예요. “이거 A4 몇 장 되는 거를 정리해서 랩 하면 30만 원 줘.”라고 해서 하게 됐던 거죠. 다 제가 군대 가기 전, 앳될 때 한 거죠.
LE: 제1의 키썸(Kisum) 씨네요.
(전원 웃음) 그렇죠. 사실 지금 생각하면 충격과 공포죠.
LE: 이번에는 VMC 멤버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요즘 <황치와 넉치>가 너무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던밀스 씨와의 케미는 원래부터 좋은 편이었던 건가요? 실제 생활은 라디오의 몇 프로 정도인가요?
거의 리얼 100%죠. (웃음) 가끔은 저희가 개그 이야기를 정말 진지하게 할 때도 있어요. 막 “던밀스, 너는 소프웨어랑 하드웨어를 완벽하게 합쳐서 머릿속으로 계산도 하고 몸으로 웃기잖아.” 이런 얘기도 해요. 그만큼 개그를 많이 생각하고 있죠. 라디오는 거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거죠.
LE: 라디오 진행하는 거는 어떠세요? 새로운 경험이실 거 같아요.
사실 거의 연장선 같아요. 그냥 저희 이야기를 풀어내는 거라서 던밀스랑 둘이 놀 때처럼 하고 있죠. 진행 자체도 기본 텍스트만 있고, 거의 프리스타일로 하고 있어요. 그리고 나중에 제가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라디오가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정리하는 훈련이 되더라고요. 재미있는 경험임과 동시에 다양한 의견도 듣다 보니 도움도 많이 되죠.
LE: VMC 같은 경우는 매주 회의를 한다는 식이 있나요?
R: 사실 저희가 뭔가 할 때 야심 차게 시작하긴 해요. (웃음) 가령 한 달에 한 번 정기회의, 임원은 2주에 한 번 회의하자 하다가… 한 달 정도 지나면 흐지부지되곤 하죠. 그런데 요즘은 앨범이 연타로 나오다 보니까 하나하나 만전을 기하려고 회의를 자주 해요.
LE: 딥플로우 씨가 작년에 인터뷰를 하면서 넉살 씨가 래퍼로서 비전을 크게 볼 수 있는, 길게 갈 수 있는 래퍼라고 살짝 언급하셨었는데요. 사장으로서의 딥플로우 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또 사장으로서의 로우 디가 씨는 어떤 스타일인가요?
로우 디가 형은 엄마, 딥플로우 형은 아빠죠. 일단 딥플로우 형은 확실히 완고하고, 그리고 대단한 천재예요. 머리가 진짜 좋고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는데, 그게 다 일정 수준의 퀄리티를 유지한다는 자체가 대단하죠. 분명 난 사람이라 생각해요. 뭐, 지금은 비록 살이 막 많이 찌고 볼품없어지긴 했는데, (전원 웃음) 대단한 형이고, 저한테는 음악적으로 두 번째 스승이죠. 게다가 사장이다 보니 더욱 믿음이 많이 가요.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거에서든 도움을 많이 받을 거로 생각하죠. 삶의 측면에서도 많이 배우는 것도 많고요.
로우 디가 형 같은 경우는 자켓 만들면서 음흉하게 떠들고 킥킥대는 타입인데… (웃음) (자켓에 그려진) 개 만들면서도 혼자 엄청나게 웃었을 거예요. 좋다고. (웃음) 아무튼 로우 디가 형이 힙합에 대해 엄청 잘 알아요. 진짜 모든 걸 다 알고 있어. “요즘에 이런 거 어때?” 이러면서 추천도 잘해줘요. 딥플로우 형이 음악을 만드는 거에 특화된 사람이라면, 로우 디가 형은 자켓 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영감에 대한 자료를 많이 제공해주는 편이에요. 그런 식으로 저를 많이 도와주고 있죠
R: 그래서 모든 일 처리가 진짜 엄마 아빠처럼 이루어져요. 가령 밖에서 고된 일을 하는 게 대략 아빠가 하는 일이라면, 엄마는 어르고 달래며 서포트 해준다고 볼 수도 있잖아요. 물론, 제가 막 어르고 살피는 성격은 아닌데… 둘이 싸울 때도 진짜 엄마 아빠 싸움하고 똑같아요. 아빠는 보통 싸울 때 막 화를 안 내잖아요. 엄마는 옆에서 바가지를 막 긁고… 실제로 딥플로우랑 저랑 싸우는 것도 그래요. 제가 막 옆에서 쫑알쫑알 대고, 게다가 제가 하나 물면 정말 끝까지 가거든요. 그러다 보면 딥플로우도 아빠가 빵 폭발하듯, “이제 그만해!” 막 이러고. (전원 웃음) 그런데 엄마 아빠가 ‘여보 내가 미안해.’라고 하듯이 꼭 화해하진 않잖아요. 저희도 나이 들고 그러다 보니까, 게다가 맨날 봐야 하는 얼굴이니까 그냥 보고 일하고 하는 식이에요. (웃음)
LE: 아까 말씀해주신 사례처럼 실제로 의견 대립이 많이 있나요?
R: 둘이 완벽하게 꼰대인데… 성향이 다른 꼰대예요. (웃음) 그렇게 보시면 돼요. 그렇다 보니 지향하는 게 달라지죠. 가령 저는 진보를 하고 싶은 경우가 있으면, 딥플로우 같은 경우는 약간 합리적인 보수에 가까운 스타일이에요.
LE: 그러면 두 분이 싸우시면 다른 멤버 분들이 좀 난처하지 않나요?
R: 저희는 남들 앞에서 싸우진 않아요. 둘이서 싸우는 스타일이어서. 앞에서 그러진 않아요.
페이스북 같은 데 보면 지하철에서 아저씨들 싸우는 거 있잖아요. 때리진 않는데 막 “에이, 이걸 아… 확” 막 이런 거. “아이고, 요거 요거 확.” 이런 거죠. (전원 웃음)
R: 그래도 고마운 게 많죠. 제가 밖에서 뭘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저는 그냥 뒤에서 자료 정리하고 책략가처럼 전략을 짜는 편이에요. 그런데 딥플로우는 진짜 밖에서 덩치에 맞게 모든 화살을 맞고 다 처리해주는 사람이라 저는 늘 고맙죠. 뭐 맨날 죽네사네 이러다가도 그런 거 보면 항상 고맙고 해요(웃음)
로우 디가 형이나 딥플로우 형이나 각자의 분야에서 확실한 퀄리티를 뽑아낼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저는 사실 둘이 싸우는 게 상당히 좋은 가치라고 생각해요. 만약 하나의 통로만 있고 하나의 길만 있으면, 분명 새롭거나 좋은 게 나오기 힘들 텐데, 각자의 분야에서 잘하는 사람들이 티격태격하니까 저는 ‘더 좋은 게 나오려고 저러는구나.’라고 생각하죠.
LE: 그러다 보니까 VMC 특유의 무게감 있으면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콘텐츠가 나오는 거 같기도 해요.
네. 맞아요.
LE: 넉살 씨를 SNS로만 접하면 되게 가벼운 사람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을 것 같거든요. 음악이나 가사의 면면을 보면 특히 더 그런 것 같은데, 본인은 본인이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시나요?
저나 던밀스처럼 밝은 면이 큰 사람들은 반드시 어두운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뭐, 조증이니 그런 건 아니고요. (웃음) 그렇다고 막 염세론자고 이런 느낌도 아니고… 사실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타입이거든요. 혼자 생각하거나 혼자 집에서 뭔가를 쓰거나 했던 거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것들이 작품에 연결돼서 가사에도 묻어 나오는 거 같아요. 그런데 또 별개로 제가 형제들이 많고 해서 흥이 많은 부분도 있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또, 제가 분위기가 불편한 거를 되게 싫어하거든요. 항상 화기애애하고 저와 대화할 때는 누구나 편하게 생각하는 게 좋아서… 무슨 헛소리를 한 거야. (웃음) 아무튼, 그냥 저를 평가해보자면 되게 개인적인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요. 밝은 면도 많이 있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 타입이에요.
LE: 사실 요즘 래퍼들이 <쇼미더머니> 없이 뜨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요. 아마추어들의 결과물이 주목받기가 영 어려운 환경이죠. 그런데 넉살 씨는 퓨처 헤븐부터 VMC의 주축 중 한 명이 되기까지, 정말 말 그대로 ‘Started From The Bottom’을 몸소 실천해냈잖아요. 그런 만큼 아직 뜨지 못한 실력 있는 래퍼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아요. 굳이 그런 게 아니더라도 본인이 걸어온 길에 나름의 감상도 있을 것 같고요.
사실은 현실부터 얘기해보자면 포기는 빠를수록… (전원 웃음) 현실에 빨리 적응하는 게 좋죠. 사실 말이 좋아서 ‘Started From The Bottom’이지, 저는 진짜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해요. 정말 안타깝게도 실력이 있어도 뜨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시기적인 부분도 있거든요. 그 시대의 화술에 잘 맞는 래퍼가 뮤지션으로서 성공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시대상이 바라지 않은 화술을 가지고 있으면, 마치 공룡이 쇠퇴하듯 자연히 없어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뭐, 사실 시대가 좋고 이런 얘기는 사실 뻔할 뻔 자기도 한데요. 제가 사자성어 중 하나를 얘기하자면,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자신을 송곳이라고 믿는다면, 어떤 것이라도 반드시 뚫고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가 송곳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내가 나 자신을 서포트할 수 있으면 기회는 언젠가 있다고 생각해요.
LE: 인터뷰가 막바지입니다. 저희 힙합엘이는 자주 오시나요?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고 계셨었나요? 아니면 이번 앨범에 대한 유저들의 반응 같은 것도 보시나요?
잘 보고 있죠. 힙합엘이 게시판에서는 (저에 대한) 반응이 별로 안 좋더라고요. 새끼들이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는데… (전원 웃음) 아무튼 ‘내 건 딱 이 정도다.’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웃음) 그리고 힙합엘이는 제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정말 꼬박꼬박 출근하듯이 봐요. 그 해석된 자료가 정말 귀한 거잖아요. 게다가 저는 그런 거 보는 걸 엄청 좋아하거든요. ‘이런 가사는 어떤 말일까?’ 이런 부분이 얼마나 궁금해요. 그리고 힙합엘이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도 다 팔로잉 돼 있어서 ‘칸예 웨스트(Kanye West) 또 트윗하다.’ 같은 짧은 외신들 같은 것도 다 잘 보고 있어요.
LE: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콘서트 홍보를 해주셔도 되고, 2016년에 세운 계획을 말씀해주셔도 좋습니다.
제가 이제 앨범을 내고 생각해보니까, 예전처럼 게으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자칫 잘못하면 이게 내 마지막 앨범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조금 더 작업을 많이 할 거 같아요. 그리고 일단 3월 11일에는 제 쇼케이스가 있어요. 제가 또 VMC에 들어간 가장 큰 이유가 라이브를 딥플로우 형이 본 거기도 해서 라이브가 제 강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앨범에 있던 트랙을 라이브로 더 멋있게 보여줄 수 있는 공연이 될 거 같아요. 3월 11일에 롤링홀에 많이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활동 같은 경우는 이번에 앨범을 내고 보니까 스스로도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그런 것들이 나중에 보완이 될지 계속 약점으로 남을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이번 앨범에 실린) 스타일의 비트는 대부분 하지 않을 거예요. 우선 재미가 없으니까. 저는 일단 첫 번째로 새로운 거를 하는 게 좋아요. 그래서 이런 류의 비트는 아마 당분간 피처링에서만 들으실 거 같아요. 이제는 독특한 류의 무언가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연말에는… 코드쿤스트랑 얘기는 하고 있는데, 아마 같이 소규모 작업이라도 할 수 있을 거 같고요. 이외에도 VMC에서 나오는 결과물에 피처링이나 다른 작업에서 자주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LE: 단기적인 계획을 여쭤봤다면, 장기적으로 어떤 뮤지션이 되고 싶은지도 궁금해요. 본인이 생각하는 넉살이 몇 년 뒤에는 이런 래퍼가 됐으면 좋겠다는 식이 있나요?
이번 앨범 하면서 저도 저 자신에 대해 많이 찾아봤어요. ‘왜 내가 랩을 하지?’, ‘랩에서 어떤 에너지를 뿜어야 할까?’ 등을 생각했죠. 근데 이게 참 웃긴 게 나이가 들고, 누나들이 결혼하고, 조카들이 생겨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음악에 세상이 종말로 치닫지 않는다는 어떤 에너지가 담겨있어야겠다는 생각, 즉 따뜻한 위로가 반드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뭔가 되게 웃긴 것 같은데, 애기들 보니까 이 생각이 많이 들었고, 실제로 앨범 준비하다 보니 이게 더 단단해졌죠. 그리고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때 ‘아, 그 음악을 들었을 때 참 따뜻한 느낌이 있었지!’, ‘랩을 엄청 잘하는데 따뜻하기까지 해?’ (웃음) 막 이런 느낌이었으면 좋겠어요.
LE: 질문에 없어서 하지 못한 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인터뷰 소감 등등 자유롭게 얘기해주세요.
충분히 많이 했고요. 벌거벗겨진 느낌이에요. (전원 웃음) 이런 긴 인터뷰를 해본 게 처음인 것 같은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저 자신을 이렇게 풀어헤친 적이 많이 없는데… 덕분에 진짜 재미있게 잘한 거 같고요. 힙합엘이 항상 잘 보고 있으니, 앞으로도 올 한해도 잘 부탁 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전원 웃음)
LE: 인터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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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글|Melo, GDB, Pepnorth(녹취), Beasel(녹취)
사진|ATO
엘이 인터뷰는 항상 너무 알차서 좋습니다 넉살이야 뭐 페이보릿 엠씨 중 한 명이니까 말할 필요도 없고 에디터분 수고하셨습니당
쇼미더머니2에서 부터 쭉 지켜봐온 팬으로써
항상 응원하고 이번앨범 너무 좋게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기대치가 너무 높았나 했는데
자꾸 듣다보니 정확한 메세지를 파악하긴 어렵더라도
귀가 즐겁네요 .
앞으로도 좋은 랩 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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