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Welcome to West Coast Hiphop
미국에서의 힙합 음악은 흔히 지역적인 기준에서 동부, 서부, 그리고 남부로 나뉜다. 그러한 방식의 구분은 힙합 음악의 태동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나 힙합 음악에서는 래퍼가 출신지를 잊지 않고 그곳을 대표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기에 더욱 그렇다. 다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이제는 문화의 특수성보다는 동시성이 부각되고 있다. 그만큼 각 지역의 음악 간의 차이가 예전보다는 흐려진 편이다. 이는 더 게임(The Game)이 LA 출신임에도 나스(Nas)를 비롯한 이스트 코스트 스타일이 묻어나는 랩 스타일을 구사하고, 에이셉 라키(A$AP Rocky)가 뉴욕 출신임에도 피치를 한껏 내려 느릿하고 몽환적인 휴스턴 힙합 특유의 스타일을 선보이는 등 여러 예시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문화의 동시성, 그로 인한 혼합성은 현시대의 힙합 음악을 단순히 지역에 대입하여 규정지을 수 없게 했다. 또한, 그것을 규정하는 주체가 전문가와 매체, 그리고 대중이 아닌 아티스트 본인 쪽으로 좀 더 이동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힙합 음악은 유달리 출신지를 비롯한 근간이 어디에 있는지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아티스트 개인이 자기 자신을 단순히 독립적인 존재보다는 환경과 구조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회적인 존재로 정의하는 셈이다. 웨스트 코스트 힙합에는 역사적으로 더 그럴 수밖에 없는 맥락이 존재한다. 힙합은 1969년, 자메이카 출신의 DJ인 DJ 쿨 허크(DJ Cool Herc)가 블록 파티를 벌이며 뉴욕에서 시작됐다. 그에 반해 LA를 중심으로 한 웨스트 코스트 힙합은 1988년, N.W.A의 첫 앨범 [Straight Outta Compton]이 발매되기 전까지는 뉴욕 힙합을 모방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정도였다. N.W.A의 주축이었던 닥터 드레(Dr. Dre)가 지훵크라는 하위 장르를 탄생시키는 등 웨스트 코스트 힙합만의 색채가 생겨난 건 그 이후인 90년대 초반부터였다.
물론, 이것이 동부 힙합에 대한 반발 심리로까지 작용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나, 뉴욕으로부터 파생된 게 아닌 LA에서 좀 더 독자적으로 발생한 만큼 웨스트코스트 힙합 씬은 분명 그 명맥을 유지하는 데에 보다 큰 노력을 기울였을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으로는 더 게임이 닥터 드레와 손을 잡고서 자신의 데뷔로 웨스트 코스트의 부활을 알리고,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웨스트코스트 힙합 특유의 장르적 색채가 덜함에도 컴턴과 LA를 대표하는 래퍼의 명맥을 이으려 한 점이 그렇다. 피츠버그를 기반으로 한 위즈 칼리파(Wiz Khalifa)의 레이블 테일러 갱 레코즈(Taylor Gang Records) 소속으로 트렌드의 정점에 서 있는 클럽 뱅어가 된 타이 달라 싸인(Ty Dolla $ign) 역시 LA를 대표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그가 표방하는 스타일인 래칫의 음악적 기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설령 현재 범람하는 웨스트 코스트 출신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과거 웨스트 코스트 힙합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웨스트코스트 힙합 씬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건 상당히 중요한 작업이다. 현재의 상태를 공시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역사 속에 축적된 지식과 정보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살펴보는 통시적인 시각은 그 부족한 면면을 하나하나 채워줄 것이다. 힙합엘이가 3월 한 달간 진행하는 웨스트 코스트 먼쓰는 그러한 의의를 바탕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우리는 총 31일에 걸쳐, 모든 파트의 콘텐츠를 동원하여 웨스트 코스트 힙합이 무엇인지 들려주고, 보여주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이를 테면, 왜 웨스트 코스트 힙합 음악에서는 유독 싱코페이션된 드럼 라인과 묵직한 피아노 라인, 그리고 높은 피치의 신스가 많이 등장하는지, 지훵크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것을 만들어냈던 이들은 누구인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왜 N.W.A를 비롯한 많은 힙합 아티스트가 LA 빈민가 속 흑인들의 처절한 삶을 리얼하게 담아내려 했는지, 왜 켄드릭 라마가 투팍의 계승자로 지목되는지, DJ 머스타드(DJ Mustard)를 위시하여 뜨는 신종 장르인 래칫이 어떤 점에서 웨스트 코스트 힙합에 기반을 두는지까지도 물론이다. 이 밖에도 크립과 블러드가 어느 정도로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서 살아 숨쉬는 빈민층의 삶은 어떠한지, 웨스트 코스트 힙합 아티스트들의 패션은 어떠한 지, 웨스트 코스트 힙합 씬을 대표하는 아티스트와 레이블로는 누가, 어디가 있고, 또 그들이 서로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등 음악 외적인 측면도 다룰 것이다.
‘Welcome to West Coast Hiphop’이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시작했지만, 이 글은 보시다시피 웨스트 코스트 힙합을 마구 소개하지 않는다. 그저 웨스트 코스트 먼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음을 알릴 뿐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웹상에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웨스트 코스트 힙합을 소개하는 글은 위키피디아를 비롯한 국내,외 사이트에 널리고 널렸다(개중에는 정확하지 않은 글도 있겠지만 말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이제부터 시작될 웨스트 코스트 먼쓰 기간 동안 사이트 곳곳에서 올라올 뉴스, 글, 인터뷰, 자막뮤비를 비롯한 영상 등 각종 콘텐츠로 웨스트 코스트 힙합을 몸소 느껴보길 바란다. 그로써 데뷔한 지 30년이 다 되어감에도 여전히 건재한 닥터 드레, 이제는 거의 팝의 영역에 가 있음에도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거목으로 인정받는 스눕 독(Snoop Dogg), 지난해 [The Documentary 2]와 [The Documentary 2.5]를 발표하며 부활을 알린 더 게임, 그리고 서부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 나아가 전 세계를 장악하는 켄드릭 라마를 더욱 잘 알게 될 것이라 장담한다.
글│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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