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ARCHIVE: 오프 화이트 (Part 1)

MANGDI2021.01.22 18:06추천수 5댓글 7

main-logo.jpg
Off-White™

2. 오프 화이트(Off-White™)
 
Part 1
(1) 패션 신의 화두 버질 아블로는 누구인가? 
(2) 독립 레이블로서의 성장 
(3) 버질 아블로 x 나이키 더 텐의 나비효과 

Part 2
(4) 스트리트 패션 신의 또 다른 주역 
(5) 오프 화이트를 둘러싼 논란
(6) 오프 화이트와 대중 문화
(7) 그들만의 환상 특급 시리즈: 오프 화이트가 가져올 미래 현상


 
(1) 패션 신의 화두 버질 아블로는 누구인가? 
 
세상을 살다 보면 자기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길 때가 종종 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파이렉스(PYREX) 23이 스트리트 신에서 급물살을 탔을 적, 이 브랜드의 가치를 하나의 이벤트로 지레짐작했다. 그러나 그 헤드 디자이너는 불과 몇 해를 넘기지 않고 최고의 패션 하우스 중 하나로 꼽히는 루이비통(Louis Vuitton)의 디렉터가 되었다. 거대 패션 레이블 입성이 곧 성공의 척도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의 패션 커리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니, 놀랍고 독보적이며 기이하기까지 하다. 나는 나의 실수를 꾸짖으며 위험한 신념에 대해 다시 한번 고찰한다. 쓰라린 실패의 경험이 쌓여 승리할 힘이 된다고 했던가. '승리의 경험치'를 위해 하나씩 정리해보려고 한다. 성공 원인은 무엇이며 어떤 사람인지.



2(@virgilabloh).jpg
@virgilabloh

'옷 입기'와 '옷 만들기' 사이에는 만만치 않은 간극이 존재한다. 제품 제작에는 전문성이 필요할뿐더러 많은 경험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패션 디자인 교육을 전문적으로 이수해야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은연중에 생각한다. 하지만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는 그러한 의견에 철저히 반대되는 삶을 살았다. 토목 공학을 전공했던 대학 시절, 단순히 옷 입기를 좋아하고 잡지를 즐겨보며 보드를 탔던 그. 어찌 보면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생활이었다. (*TMI 아블로는 평소에 꽃꽂이를 즐긴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이가 더 들면 시골에서 꽃집을 운영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1(@virgilabloh).jpg
@virgilabloh

버질 아블로는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이 선수 생활을 했던 고장, 시카고 출신이다. 자연스레 그는 스니커와 힙합, 그라피티 등의 스트리트 문화 속에서 90년대를 보냈고, 당시의 문화적 경험이 지금의 그와 오프 화이트를 만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취미 생활의 일부였던 옷과 서브 컬처는 그래픽 티셔츠 제작으로 번진다. 그리고 장난과 재미라는 가벼운 명목하에 산업에 발을 들인 그는 2009년 팬디(FENDI)의 인턴 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 여기서 본인 나름의 시스템을 하나둘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아블로가 루이비통 남성복 책임자로 취임 시, 브랜드의 책임자였던 마이클 버크(Michael Burke)가 이때의 펜디 CEO다. 그의 입김이 상당히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3(@virgilabloh).jpg
@virgilabloh

여러 셀러브리티와의 관계를 이어오던 아블로는 펜디 인턴 동기인 칸예 웨스트(Kanye West)란 귀인을 만나며 행보의 큰 변화를 맞이한다. 칸예 웨스트가 설립한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돈다(DONDA)의 디렉터로 선임돼 활동하게 된 것. 아블로는 조 페레스(Joe Perez)가 속한 크리에이티브 팀과 함께 칸예의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Yeezus] 앨범 커버 디자인에 참여했다. 이외에도 음악계의 중요한 앨범들을 다수 작업했다(그는 뮤직비디오 감독으로도 활동했는데, 대표작으로는 팝 스모크(Pop Smoke)의 "Shake The Room"이 있다).



4(twitter.com).jpg
twitter.com

아블로가 만든 옷을 입은 칸예는 어느 프로젝트보다 강력한 프로모션 효과를 보였다. 둘의 만남은 일대일의 수학적 함수 관계를 넘어서는 그 이상으로 확장됐다. 틀을 깨부수고 변주를 가하는 그의 옷에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최근에는 패션을 넘어 다양한 예술 활동의 중심에 있기도 하다. 일본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와 함께한 도쿄 개인전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5(youtube.com).png
youtube.com

아블로의 첫 결과물은 무게감을 뺀 그래픽 티셔츠였다. 후에 그의 이름을 알린 파이렉스 비전 프로젝트도 이것의 일환이다. 당시 진부한 캐주월웨어로 취급받던 랄프 로렌(Ralph Lauren), 챔피온(Champion)의 제품에 'PYREX 23'이란 텍스트를 새겼다. 이 셔츠는 입소문을 타 SNS와 미디어를 장악했다. '젊다'란 인식이 시작되는 계기였다. 그리고 일 년 뒤인 2013년, 그는 본격적인 브랜드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것이 지금의 오프 화이트다. 상징적인 블랙/화이트 스트라이프 무늬를 중심으로 트렌디한 스트리트 감성을 전개하며 대중의 큰 관심을 받는다. 본격적인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된 셈이다. 나이키(Nike)와의 협업은 아블로의 커리어에 빠질 수 없는데, 그의 패션 히스토리에 방점을 찍는 신의 한 수로 평가된다. 응모 전쟁의 서막을 알린 '더 텐' 컬렉션은 대중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 



6(Billboard).jpg
Billboard

그리고 그는 2018년 3월, 루이비통의 맨즈웨어 디렉터로 임명된다. 보수적이라 여겨지는 럭셔리 패션 하우스와 가장 진보적이라 평가받는 디자이너의 만남은 세간의 관심을 끌 만했다. 그렇게 아블로는 2018년 6월 21일 파리 팔레 루아얄 정원에서 첫 루이비통 19 봄, 여름 남성복 컬렉션을 선보였다. 칸예 웨스트와 루이비통 쇼에서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껴안는 장면은 펜디 인턴 시절을 상기하게 하며 그날의 명장면으로 손꼽혔다.
 
아블로의 루이비통 쇼는 화자로서의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의미들이 여러 곳에 함축되어 있다. 화려한 무지갯빛 런웨이가 펼쳐진 팔레 루아얄은 본래 귀족들의 입장만이 허용된 대저택(루이 13세 시대의 재상이었던 리슐리외의 저택)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자손 중, 진보적인 움직임을 보인 루이 필립 오를레앙이 토론장과 임대업의 공간으로 사용하며 많은 서민이 모이기 시작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스트리트 패션 신과 럭셔리 하우스의 만남이라는 의도를 명확히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또한, 쇼장과 관객의 컬러 바리에이션을 위해 입장객들의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색의 티셔츠를 나눠주기도 했으며, 런웨이 음악으로 사용된 칸예 웨스트의 “Ghost Town” 재즈 버전은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 새로운 것의 창조에서 오는 부담감, 진정한 자유를 노래한다는 점에서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보여줄 좋은 장치였다.
 


7(@virgilabloh).jpg
@virgilabloh

우리는 왜 버질 아블로에 열광할까? 나는 그가 추구했던 '변화와 혁신'의 정신이 대중의 시대 상황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한다. 기득권의 보수적인 성향, 높은 가격의 장벽, 단조로운 스타일. 이것들은 패션이란 영역이 우리에게 재미보다는 과시의 한 부분으로 전락하게 했다. 마치 고단한 역경을 딛고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시스템을 깨부수는 영화 속 주인공 같다랄까. 전문 교육을 받지 않고 가장 프로페셔널하다 일컫는 집단에서 크리에이티브한 행보를 펼치는 것. 그것이 아블로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세계를 대표하는 유수의 편집숍 행거에는 그의 따옴표들로 가득하다.

“저는 그저 마냥 기쁘기만 해요. 럭셔리의 정점과도 같은 브랜드에서 디자인의 다음 단계와 럭셔리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 이 기회야말로 제가 항상 꿈꿔왔던 것들이죠. 또한, 어린 세대에게 이러한 분야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꼭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직접 보여준 것이야말로 가장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버질 아블로는 자신의 개인 레이블 오프 화이트와 함께 루이비통 컬렉션 그리고 미술, 전시,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꾸준히 이어 나오고 있으며, 현재 패션 신과 대중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로 자리 잡았다. 그는 가구 브랜드 이케아(IKEA)와의 협업을 시작으로 인테리어 사업에도 뛰어들었으며, 비행기 디자인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의 최종 꿈은 우주선을 만드는 것이라고. 자신의 재능, 이것에 부합하는 사회의 변화를 위한 노력이 진보라 했던가. 개인의 풀지 못한 욕구를 시원하게 해소해줄 그의 진보한 움직임을 응원한다. 
 


9(@off____white).jpg
@off____white

(2) 독립 레이블로서의 성장
 
우리는 오프 화이트와 같은 태생의 브랜드를 일견 봐왔다. 피갈(Pigalle), 후드 바이 에어(HOOD BY AIR), 안티 소셜 소셜 클럽(AntiSocialSocialClub) 등이 비슷한 시기에 함께 했다. 이들은 초기의 열광을 뒤로하고 점점 쇠퇴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출발이 유사했던 오프 화이트는 이와 달리 패션 산업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점유했다.
 
오프 화이트는 현재 스트리트 패션 신에 빠질 수 없는 브랜드지만, 디자이너인 아블로는 초창기 여러 고충으로 골머리를 싸맸다. 비형식주의를 비관하는 마니아들이 늘어났고, 그것이 옷의 사용 가치에 대한 회의감으로 번졌다. 오직 재미와 위트로만 경쟁하기엔 대중들의 눈은 이미 상당히 높아져 있었다. 완성도 있는 디자이너, 더 많은 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선 오프 화이트도 이를 피해 갈 수 없었다.
 


10(@off____white)1.jpg
@off____white

아블로는 문제의 해답으로 오리지널리티에 감각적인 터치를 추가하거나 변형하는 '3% 법칙'을 실천한다. 스트리트웨어의 정형성에서 벗어나 본질에 대한 더욱더 깊은 탐구와 혁신, 그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바꾼 이 공식은 버질 아블로에게 가장 필요했던 비율이었다.



11(@off____white)..jpg
@off____white

첫 번째로 여성복과 남성복을 따로 론칭하며 디자이너 개인의 집중도를 높였다(아블로의 여성복은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제품 디자인에 단순 그래픽 프린트 아닌 원단의 재조합과 실루엣에 대한 고민이 수반됐다. 마치 정형화된 건축물을 개조하듯 아블로는 과감히 해체하고 다시 조립했다. 검은색과 흰색을 바탕으로 한 방사형 스트라이프, 레터링, 케이블 타이와 같은 산업적 디테일 장치들이 그 예다. 이 악센트들은 옷 위에서 노래하고 춤췄다.
 
온갖 요소들이 섞인 제품들은 섬세하게 배치된 색 조합, 조율된 핏과 실루엣 아래에서 난잡하게 가능한 한 심플하게 보이도록 정리된다. 오프 화이트 특유의 오버사이즈 실루엣은 몸통은 크고 팔 기장은 짧은 미국 스트리트웨어의 특징에서 나왔다. 하이 패션의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스트리트웨어를 지향하는 간결함이 살아있는 새로운 룩을 만들어낸 거다.
 


12(@off____white).jpg
@off____white

그는 겉으로 드러나는 제품의 매력뿐만 아니라 내면의 의미도 주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러니는 현대적 창조성을 위한 도구다.” 이제는 오프 화이트의 상징이 된 따옴표(“)는 그가 던지는 질문임과 동시에 관습에 대한 도전이다. 특유의 따옴표 서명 또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대표 작품 <샘>에 적힌 ‘R. Mutt’ 서명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버질 아블로는 현재 가장 많은 팬덤을 거느린 패션 디자이너다. 그는 도전적인 패션 마케팅으로 많은 비즈니스 이익을 취했다. 특히, 소셜 미디어 활용을 빼놓을 수 없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수많은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대중들과 가감 없이 소통한다. 이것은 개인의 의미를 넘어 산업 마케팅의 한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제품의 프로모션뿐 아니라 아직 공개되지 않은 아이템의 작업 과정, 비하인드 스토리, 작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표현한다. 그런 일련의 일들 속에서 대중은 브랜드가 피력하는 여러 지점을 손쉽게 흡수한다. 그렇게 오프 화이트의 브랜딩은 더욱 굳건해졌다.

오프 화이트가 독립적인 패션 레이블로 자리매김하면서 다양한 이들의 러브콜 또한 이어졌다. 나이키를 비롯해 리모와(RIMOWA), 모엣샹동(Moet&Chandon) 등 수많은 브랜드의 러브콜을 받는 인기 레이블이 된 것이다.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역시 좋은 사업 전략의 한 수단이 됐다. 오프 화이트는 이제 누가 뭐래도, 어엿한 독립 브랜드가 되었다.
 


15(@virgilabloh).jpg
@virgilabloh

(3) 버질 아블로 x 나이키 더 텐의 나비효과
 
오프 화이트의 붐 업 시기를 꼽으라면 버질 아블로와 나이키의 더 텐(THE TEN) 컬렉션 이후라 말할 수 있다. 나이키와의 협업의 성과는 버질 아블로 개인으로 시작해 그가 운영하는 레이블에도 거대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고, 패션 신과 우리를 덮쳤다.

아블로는 나이키 본사에 첫발을 내딛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나이키와 고작 '미팅' 따위를 하려고 이렇게나 많은 날을 기다려온 것이 아니에요.” 그는 곧바로 그 자리에서 아트 나이프와 몇 가지 색의 마커를 꺼내 들고 검은색의 에어 포스 1 로우를 개조했다. 나이키와 오프 화이트의 프로젝트 '더 텐' 은 그렇게 처음 시작됐다.

잘 갖추어진 대량 생산 공정 시스템과 인프라로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 모두를 가진 나이키는 또 다른 변화를 위해 버질 아블로를 선택한다. 2017년부터 시작된 이들의 콜라보레이션은 단숨에 메가 히트를 하게 됐다. 나이키와 그 산하 브랜드 컨버스(Converse), 조던(Jordan) 모델을 재해석한 10개의 스니커를 공개하는 더 텐 컬렉션은 당시 나이키 디자인의 지루함을 느끼던 스니커 마니아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기 충분했다. 더 텐 제품들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한다. 아블로는 오프 화이트에서 전개했던 디자인 방식인 재조합, 레터링, 케이블 타이 디테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기법으로 슈즈를 꾸몄다. 이처럼 공룡 브랜드와 포괄적인 스니커 협업을 진행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많은 스니커 헤드들이 이 콜라보 신발에 열광하는 동안 그 반대편에서 또 다른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21세기 창조경제라는 우스운 이야기와 함께 기존 발매된 모델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 것. 대부분 20만 원대를 유지하는 초기 출시가와 비교해 아주 높은 리셀 가격대를 형성한 것이다.
 
이러한 행보는 조던과 칸예 웨스트의 이지(YEEZY) 스니커와 많이 닮았다. 신발을 제품의 실사용에 의미를 두지 않고, 제테크의 또 다른 방향으로 혹은 자신의 아카이브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스트리트웨어가 마니아들이 연결되는 그 지점이다.

아래는 한 매체가 버질 아블로 x 나이키 컬렉션 제품들의 리셀 시장을 분석한 내용이다. 데이터는 가격과 발매 시기에 따라 분류된다. 이 자료는 스톡X(StockX)의 판매량을 참고했다. (스톡X : 특정 제품을 원하는 구매가에 입찰하면 판매자가 선택한 입찰가에 판매하는 방식의 사이트)



16(Highsnobiety).jpg
Highsnobiety

2017년 9월, 에어 맥스 90, 에어 베이퍼 맥스, 에어 조던 1 ‘시카고’, 블레이저 미드, 에어 프레스토 5개의 모델이 발매됐다. 위 차트는 2018년 7월까지의 스니커 재판매 추이를 분석한 표이다. 조던 1, 프레스토와 같은 특정 모델은 리셀 시장에서 다른 제품보다 더 높은 재판매 가격 변화를 그린다. 5개의 운동화 중 조던 1 시카고, 프레스토, 베이퍼 맥스 모델은 평균 1,000달러 선에서 리셀이 유지되는 모습이다. 제품들 모두 11월, 12월 두 달에 거쳐 가장 낮은 가격을 보이고 다시 상승하는 패턴을 보여준다. 2018년 5월에는 시카고 에어 조던 1이 2,339달러로 가장 높은 재판매 가격을 기록했고, 전체 평균 리셀가는 1,591달러로 측정됐다.
 
이베이 리셀 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아이템으로 오프 화이트와 나이키의 ‘더 텐 컬렉션 에어 조던 1’이 선정되기도 했다. 거래가는 3,409달러. 이외에도 ‘더 텐 에어 프레스토’, ‘더 텐 베이퍼맥스’ 등이 큰 사랑을 받았다. 버질 아블로와 나이키는 2018년 12월 더 텐 시리즈의 마지막을 알리면서 그들의 협업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또 다른 형태로의 공동 작업은 언제든 이루어질 수 있다는 여운도 함께 남겼다. 그렇게 아블로는 20 봄/여름 파리 패션위크에서 오프 화이트의 새 시즌을 알리면서, 협업 나이키 SB 덩크 모델을 함께 선보였다. 라이트 블루, 오렌지 기본 색상에 두 가지 슈레이스가 혼합된 디자인이 특징인 슈즈다. 스타일리시 러닝 스니커인 오프 화이트 x 나이키 줌 테라 카이거 5 모델도 이어서 공개하며 그들의 파트너십이 건재함을 보여줬다.



17(@off____white).jpg
@off____white

2021년 1월, 버질 아블로와 나이키의 '더 텐' 협업을 담은 책이 출시됐다. 미술 관련 출판사인 타스첸(TASCHEN)을 통해 발매되는 이 책의 이름은 <아이콘스(ICONS)>. 아이콘스는 아블로의 상징적인 나이키 슈즈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데, 콜라보 제품의 다양한 제작 과정이 포함됐으며 스니커와 관련된 문화 양상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모델의 프로토타입부터 아블로가 나이키 디자이너들에게 남긴 텍스트 메시지, 미공개 모델까지 확인할 수 있다. 아블로는 "아이콘스는 제가 디자인한 50개 이상의 나이키 신발을 들여다보며 그 모든 제품을 '하나의 신발'로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입니다. 하나의 이야기죠."라고 소감을 밝혔다. 더불어, 버질 아블로는 나이키와의 새 협업 프로젝트, ‘더 트웬티’ 컬렉션을 예고하며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버질 아블로의 오프 화이트는 이렇게 패션 신에 중요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다. 스와로브스키(Swarovski) 주관 아래 개최되는 2018 패션 어워드에서 오프 화이트는 발렌시아가(Balenciaga), 버버리(Burberry), 구찌(Gucci), 프라다(Prada)와 함께 올해의 브랜드로 선정됐다.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버질 아블로의 존재가 점점 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그가 운영하는 개인 브랜드 역시 대중의 관심을 예전보다 더욱 받게 되었다. 오프 화이트의 산업 리테일은 패션 시장에서 더욱 사랑을 받았고,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그들을 비웃던 콧대 높은 패션 하우스들도 오프 화이트만의 디자인 화법에 영감받기 시작했고 스트리트 패션 신 역시 검은색, 흰색 방사형 로고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거대하게 불러일으킨 새로운 바람으로 오프 화이트의 숨결이 우리들 삶 곳곳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는 버질 아블로란 도입부를 통해 오프 화이트란 절정을 맞이했다.


CREDIT

Editor

MANGDI

신고
댓글 7

댓글 달기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