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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한국 힙합 시장의 양적 성장에 큰 역할을 한 쇼미더머니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이례적으로 팀당 전업 비트메이커가 한명씩 있으니 만큼 음원의 질에 대한 기대가 높았고, 다행히도 안정적인 퀄리티의 음원이 나와 그 기대에 어느정도는 부응해 주었다.
1. 자이언티 X 슬롬 팀 (던밀스, 카키, 노스페이스갓, 에이체스, 소코도모) - TROUBLE (Prod. Slom)
트래퍼 둘 (던밀스, 노스페이스갓), 팝 랩 하던 래퍼 (카키), 붐뱁 래퍼 (에이체스), 실험적인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 (소코도모) 라는 흥미로운 조합이 나왔다. 슬롬과 자이언티가 이들을 어떻게 조율할지가 관건이었는데, 이들의 선택은 그린데이가 연상되는 팝펑크 요소의 도입이었다.
팝펑크 기반의 악기 조성을 기초에 두고, 멤버들의 특성에 맞춰 룹을 변화한다는 편곡 전략은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던밀스와 에이체스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잘 소화해냈고, 노스페이스갓은 예의 재치있는 가사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소코도모는 훅과 벌스를 맡았는데, 소코도모의 거친 톤이 의외로 락 보컬에 잘 어울린다. 벌스에서도 자신의 독특한 개성이 잘 드러났다. 카키의 랩과 싱잉을 오가는 퍼포먼스는 안정적이었으나, 존재감은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기존에 알앤비 내지는 재즈, 훵크에 베이스를 둔 곡을 주로 선보여온 슬롬이었으니 만큼 이런 락킹한 곡이 나온건 꽤 의외였다. 그럼에도 자이언티의 전반적인 지휘와 슬롬의 탁월한 편곡 센스 덕에 구성이 잘 짜인 곡이 나온 것 같다.
2. 염따 X 토일 팀 (365lit, 황지상, 베이식, 송민영, 쿤타) - 너와 나의 Memories
역시 이 팀도 트래퍼가 두 명(365lit, 황지상)이다. 여기에 전(前) 씬 최고의 핫루키 겸 쇼미 우승자(베이식)와 한국 레게의 전설(쿤타)이 합류해 기세를 더했다. 특이하게도 초등학생(송민영)이 팀에 선정이 되었는데,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9할에 가까운 걱정과 1할의 기대 (아마 염따가 고등래퍼4 멘토로서 보여준 꽤 괜찮은 튜터링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를 불러왔다.
토일은 이전에도 락적인 요소를 힙합 편곡에 잘 녹여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트랩 기반의 곡에 락 기타를 더한, 자신이 가장 잘하는 편곡을 들고 왔다. 쇼미는 기본적으로 경연이니 만큼, 음악적인 모험을 하기에는 꽤 리스크가 있었을 것이나 전 시즌의 'VVS'(2020)의 그림자가 언뜻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염따는 본인의 주장기인 멜로디컬한 훅을 보여주었는데, 이게 중독성이 상당하다. 기존의 작업물에서 보여준 번뜩이는 재치와 감각이 어디 가지는 않은 모양이다.
곡이 나온 후 많은 이들이 벌스 구성에 아쉬움을 표했다. 각 부분을 떼고 보면 좋은데 합쳐 놓으니 뭔가 그림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이해가 되는 부분이나 달리 말하자면 그만큼 각각의 개성이 단적으로 잘 드러났다는 말이기도 하다. 베이식이 가장 잘하는 타이트하고 정석적인 랩이라거나, 쿤타의 레게풍의 멜로디컬한 랩이 하나의 룹에서 제 기능을 다 하는데서 오는 쾌감은 상당하다. 365lit의 경우 언더성수브릿지에서 보여준 트랩 기반의 쫀득한 랩은 잘 보여줬으나 가사는 '추억'이라는 주제와는 조금 동떨어져 아쉬움이 있었다. 황지상의 경우 이 문제가 더 잘 드러난다. 아무래도 경험의 부족에서 오는 부족함이 컸던 듯 싶다. 의외였던 것은 송민영이 제대로 된 벌스를 보여줬다는 점인데, 미성년자 특유의 변성기 안온 톤은 아쉽긴 했으나(믹싱이 잘 되서 그런지 그런게 생각보다 덜하긴 했다) 구조도 꽤 단단하고, 가사적으로도 초등학생만이 할 수있는 소소한 이야기가 있어 듣는 맛이 있었다.
가장 많은 걱정을 받은 팀이었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로 그럴듯한 게 나왔다. 참가자들의 극단적 개성이 염따의 훅으로 묶여있는, 사금파리가 모여서 된 추상적인 모자이크 같은 느낌이다. 프로듀서 둘 모두 쇼미더머니는 처음이었던걸 감안하면 이정도면은 합격이지 않을까.
3. 개코 X 코드 쿤스트 팀 (아우릴고트, 신스, 안병웅, 태버, 조광일) - Wake Up (Prod. 코드 쿤스트)
팀 구성을 보면 알겠지만 이들 모두 기존에 하던 음악이 다 다르다. 트랩 기반의 멈블 랩 (아우릴고트), 트랩 기반의 정석적인 랩 (신스), 빅엘 류 붐뱁 (안병웅), 얼터네티브 알앤비 기반의 싱잉 랩 (태버), 과격한 속사포 랩 (조광일)까지. 이들이 쇼미 3회차 베테랑들인 코드 쿤스트와 개코를 거쳐 어떻게 뭉칠지 기대가 컸다.
코드 쿤스트 프로덕션의 특징은 1. 빈티지한 악기 구성 기반의 멜로디컬하고 유려한 편곡, 2. 보이스 샘플과 신시사이저를 활용한 몽환적인 분위기와 질감 조성 이 두가지이다. 비트는 이 구성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지극히 코드 쿤스트스러운, 멜로디컬한 트랩 비트이다. 음원미션이 '우리 팀은 이런 팀입니다'하는 쇼케이스에 가까운 미션이니 만큼 이러한 안정적인 선택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코드 쿤스트라는 비트메이커 자체의 개성이 뚜렷하니 만큼 퀄리티는 꽤 잘 나온 편이다.
각 멤버의 개성이 한 팀이라는 그림에 가장 잘 녹아든 느낌이다. 아우릴고트의 멈블랩과 조광일의 격정적이면서도 타이트한 벌스, 그리고 태버의 몽환적인 싱잉이 깔끔하게 조화를 이룰 줄은 상상도 못했다. 특히 태버의 싱잉이 곡의 분위기 형성에 큰 역할을 한다. 신스는 최근 받았던 스포트라이트에 걸맞은 타이트한 벌스를 선보였으며, '봄비'(2021)에서 보여준 가사적 센스는 여기서도 제 역할을 했다. 안병웅도 이전보다 가사의 내러티브가 더 발전했고, 기존의 장점인 단단하고 편안한 톤과 플로우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음원에는 개코의 벌스가 새로이 추가되었는데, 불혹이라는 나이가 무색한 관록과 기량이었다. 전반적으로 '한 팀'이라는 인상을 제일 강하게 받았던 곡이다.
각 멤버의 뚜렷한 개성이 코드 쿤스트와 개코라는 두 베테랑의 탁월한 조율을 거쳐 끈끈한 한팀으로 거듭났다. 방송용 음원은 어쩔 수 없이 대중성에 치중할 수 밖에 없는데, 그 대중성의 바운더리 안에서 꽤나 준수한 퀄리티까지 챙겨간 것 같다. 물론 2015년의 코드 쿤스트가 보여줬던 건조하고 어둡고 난해한 맛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지만서도....그래도 지금의 코드 쿤스트도 충분히 좋다.
4. MINO X 그레이 팀 (아넌딜라이트, 언오피셜보이, 비오, 지구인, 머드 더 스튜던트) - 쉬어 (Feat. MINO) (Prod. GRAY)
챈스 더 래퍼가 연상되는 가스펠 힙합 (아넌딜라이트), 붐뱁과 트랩을 오가며 2000년대 힙합의 복각을 시도하는 아티스트 (언오피셜보이), 대중적인 싱잉 랩 (비오),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얼터네티브 힙합 (머드 더 스튜던트), 하이톤의 정석적 랩 (지구인) 등 여기도 개성은 만만치 않다. 다만 다들 기본기 있는 랩에 능하다는 공통분모가 있고 (심지어 비오도 3차 예선에서 그라임 비트에 타이트한 랩을 선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한국 힙합 씬에서 최고의 대중성을 보장하는 그레이, 그리고 현역 아이돌 래퍼 중 최상위의 랩스킬과 음악적 센스를 지닌 송민호의 터치가 더해졌다.
그레이의 음악적 폭은 굉장히 넓은 편이다. 올드 스쿨한 붐뱁 ('Hot Summer'(2014), 'ON IT'(2015)), 신나는 래칫 ('몸매'(2015), '자꾸 생각나'(2014)), 끈적한 슬로우 잼 ('Sex Trip'(2014), 'Give It To Me'(2014)), 강렬한 트랩 ('니가 알던 내가 아냐'(2016))까지 흑인 음악의 영역 안에서의 모든 세부 장르를 높은 완성도로 구현 가능하다. 그랬으니 만큼 이번에 어떤 곡을 가져올지 궁금했는데, 그레이의 선택은 기타와 스트링 사운드, 신시사이저를 적절히 배합한 라틴 + 재즈펑크 사운드였다.
언오피셜보이는 특유의 독특한 톤을 기반으로 한 심플하면서도 유려한 플로우를 잘 보여주었다. 하나의 라임으로 밀어붙였음에도 지루하지 않게끔 플로우 디자인을 잘 짰다. 지구인은 팀원 중 가장 경험이 많으니 만큼 화려한 스킬을 선보였고, 비오는 자신의 깔끔한 미성을 기반으로 멜로디컬한 랩을 보여주었다. 특히 'ㅐ'라임으로 쭉 밀고간 후반부 부분이 좋았다. 머드 더 스튜던트는 특유의 실험성이 그레이와 송민호의 대중성에 어떻게 녹아들까 궁금했었는데 꽤 깔끔하게 맞아 떨어졌다. 아넌딜라이트도 탄탄한 기본기에 기반한 안정적인 랩을 보여주었으나 다른 멤버에 비해서 조금은 평이했다는 인상이다. 송민호는 아이돌 7년차 경력에 걸맞는 중독성 있는 훅을 제대로 보여줬고 아웃트로 부분의 랩도 매끄러웠으나 기존에 보여줬던 벌스에 비해서 기발함이 살짝 아쉬웠다.
차트 성적이 증명했듯 가장 팝에 가깝고 대중적인 곡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랩적인 쾌감도 꽤 그럴듯 하게 구현되었다. 송민호는 참가자 경험도 있고 아이돌 출신이니 만큼 퍼포먼스적인 부분에 능할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도 무대 연출의 완성도는 이 팀이 제일 높았다. 여기에 그레이의 대중적이고 세련된 프로덕션이 더해지며 이 팀은 라이브 경연에 제일 최적화된 팀이 되었다. 과연 이 조합이 이후의 경연에서 어떤 것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글을 읽어보니 내공이 상당하시네요. 재밌게 봤습니다
좋은 글 추
혹시 쉬어의 무대연출의 어느 부분이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하시는건가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학예회 같은 분위기라고 느꼈습니다.
쉬어는 재즈펑크에 가깝지않을까요?
사실 저도 그거 때문에 여기저기 물어보긴 했어요...ㅠ당장 쇼미게 밑에보시면 제가 써놓은 질문글이 있습니다.
내공이 돋보이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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