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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are Groove, Why Not] 02. Brutalist Architect (3) dayb4free

감살주의6시간 전조회 수 2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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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감사해야 할 분들이 더 늘었다. 먼저 'ear radio'를 주관하며 이와 연계된 프로젝트 ‘글귀(ear and ink)’를 기획하신 고성재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는 서울의 ‘호락호락 작업장’에서 작은 음악 도서관과 음악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계신데, 선뜻 초대해 주신 덕분에 찾아간 그곳에서 이 글의 방향을 잡는 데 핵심적인 바탕이 된 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그 책인 《플레이리스트》를 집필하신 한국 음악 전문 기자이자 작사가 김호경 님께도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플레이리스트라는 매개체를 살롱, 즉 서로 친밀하게 모여 있는 하나의 공간으로 보자. 'Brutalist Architect'는 이 모임을 주관하고 진행하는 호스트다. 이 모임의 이름이나 주제 등 전반적인 틀을 정한 것은 온전히 그 한 사람이므로, 내가 '글귀' 프로젝트에서 그랬듯 나 역시 단지 초대를 받아 참여한 관객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모임의 취지에 충실히 부응하기 위해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 과연 그의 이력과 일생 전반을 꿰차고 있어야 할까? 아니면 우리가 그의 선곡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테스트라도 거쳐야 할까? 혹은 그가 고른 모든 전시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할까? 하물며 '샘플링'이라는 비정형적인 공정을 거친 각각의 사본들은 그 출처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까다롭지 않은가. 그것들을 낱낱이 파헤칠 줄 아는 지독한 감식관이라도 되어야 하는 걸까?

 

저자가 말하듯, 이 매개체가 제공하는 맥락은 일종의 ‘단서’라 할 수 있지만 ‘정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각자의 경험을 이끌어내는 ‘장(場)’을 위한 것이다. 즉, 이 게임의 근본적인 장르는 일방적인 퍼즐 맞추기가 아니라 ‘샌드박스’다. 주어진 오브젝트를 활용해 저마다의 맥락대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겉보기보다 훨씬 자유로운 유희인 것이다. 제공된 소스들이 경계가 분명한 틀 안에 놓여 있고 가느다란 실 하나로 연결 및 반(半)고정되어 있을지라도, 그것들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주체는 결국 ‘감상자’다. 정확히 말해, 그 순간부터 매개자와 감상자 사이의 위계는 사라지고 그저 동등하게 어울려 노는 것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주입받는 것이 아니라 공유한다. 현장을 총괄하는 이가 비록 그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를 주인공으로 삼아 각자 자신만의 시나리오를 써 내려갈 수 있다. 아니, 굳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각자의 경험과 감각에 의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각자의 경험은, 적어도 이 살롱 안에서는 한 번도 꺼내본 적 없는 지극히 사적이고 고유한 영역이다. 그러므로 ‘free from this dance’에 관한 관찰은, 그가 정해준 의미가 무엇인지를 좇기보다 내가 임의로 부여한 의미가 그가 제공한 맥락과 맞물려 어떤 감상을 이끌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Dayb4free 

 

https://brutalistarchitect.bandcamp.com/album/daysb4free-ep

 

십여 분 남짓 기록된 이 여정의 프롤로그로 되돌아가 본다. 앞선 인용문은 내가 그를 처음 알게 해 준 이 작품을 밴드캠프에서 후원하며 남겼던 메시지다. 당시 나는 이 트랙에서, 무엇이라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어도 윤곽만큼은 또렷한 어떤 ‘서사’를 발견했던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를 단순한 플레이리스트로 규정하기보다, 구조적 믹스셋과 내면적 여정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인 작업으로 어렴풋이 짚어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 조촐한 단상을 서론으로 끌어와 보자. 만약 당신이 샘플 발굴의 귀재이자 능숙한 장르 감별사라면, 그의 취향 목록과 음악적 지형도를 손쉽게 도식화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곡 도중에 그 질감들을 극단적으로 뭉개버리고, 거친 노이즈를 난입시킨다. 만약 그러한 연출이 오로지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당신의 해박한 지식만으로는 이를 온전히 헤아릴 수 없다. 그때는 심리학자의 명찰로 바꿔 달아야 할지도 모르겠으나, 애초에 우리는 그저 음악을 듣기 위해 이곳에 모인 것 아닌가. 그가 직관적으로 던져 둔 단서는 그리 많지 않다. ‘days’가 일종의 일기라는 점, ‘before free’는 그 일기가 ‘free’를 향한 프롤로그라는 점, 그리고 이 ‘free’는 당시 곧 발매될 예정이던 ‘free from this dance’를 가리키는 암시라는 점 정도다. 이 최소한의 단서만을 쥐고 내가 그려본 시나리오는 이렇다. ‘음악을 향한 열정만큼은 비범했으나, 그와 맞물린 모종의 갈등으로 인해 극심한 답답함과 혼란, 고립과 좌절을 겪어야 했던 한 소년의 과거.’

 

내게 가장 흥미롭게 다가왔던 사운드의 질감 위에, 몇 가지 구체적인 이미지를 겹쳐보고 싶다. 그가 사용하는 시각적 코드 속에서 보아온 오브제들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줄이 끊긴 전신주, 덩굴에 뒤덮인 폐건물, 녹슨 표지판 같은 것들. 이들은 부식과 풍화, 쇠락의 과정을 환기한다. 요컨대 서서히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풍경이지만, 인위적인 철거나 급작스러운 붕괴의 충격과는 전혀 다른 결의 심상이다. 이러한 고유의 심상을 트랙의 질감과 포개어 본다면, 이 작업이 디콘스트럭티드 클럽 씬 특유의 요란스러운 ‘해체와 교란 쇼’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바로 이것이 내가 그의 콜라주 기법을 에픽 콜라주(디콘스트럭티드 클럽에 뿌리를 둔 채 과격한 파괴를 일삼는 관습)와 선을 긋는 주된 근거다. 때문에 이 믹스는 마구잡이로 엉켜 있거나 산산조각 났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기능적으로 온전하며 구조적으로도 난잡하지 않은 플레이리스트의 형태를 띠되, 단지 듣는 이를 기이하게 거스르고 있을 뿐이다. 건축 자재들은 저마다의 층위와 순서를 질서 있게 유지하면서도, 지저분하게 때 묻은 날 것의 상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렇게 직조된 결정체는, 설계자의 어느 지난 나날 속 가장 불온했던 감정 기복의 순간을 묵묵히 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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