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혁의 정규 2집 <EROS>, 사실 제목만 처음 봤을 때는 에로스(eros)라는 단어가 성적인, 정욕적인 사랑을 뜻하는 만큼 이성 간의 사랑이나 풋풋한 감정, 뭐 그런 뻔한 주제들을 다루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남녀 간의 사랑, 정말 흔해 빠지고 고리타분한 소재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왔음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잃지 않는 소재이니까...
다만 앨범을 듣고 난 후에는 앨범에서 말하는 사랑의 의미가 단순히 하나의 의미로 정의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앨범에서는 타인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결핍에서 사랑의 의미를 찾아나선다
그 속에는 에로스뿐만 아니라 필리아, 스토르게, 그리고 기독교적인 아가페 역시 담겨있다
전반적으로 그리스 신화나 성경에 대한 은유가 많이 담겨있다고 느꼈는데, 그런 은유적 표현에서 각각이 상징하는 사랑의 의미를 연상할 수 있어서 전달 방식에 있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게 와닿았다
특히 <비비드라라러브>에서 제시된 '절대적이고 이상적인 사랑'에 대한 고민을, 결국 후반부에 다다라서는 완벽한 사랑은 없다는 것으로 결론지으며 불완전한 사랑과 결핍이 오히려 인간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고 말하는 점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헤어짐이 있기에 만남의 의미가 더 큰 법이고, 끝이 있기에 인간의 삶은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이찬혁은 이 앨범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전반적인 사운드 면에서도 앨범의 톤앤무드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점이 좋았다
전작의 <장례희망>에서처럼 코러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가스펠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나, 펑키한 사운드 위주로 악기를 편성하는 것 등등... 리스너들이 들으면서 질리지 않게끔 꾸준히 사운드를 변주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다소 일관된 분위기를 유지하며 앨범이 진행되는 것이 좋았다
<ERROR> 역시 충분히 잘 만든 앨범이라 생각했음에도 한편으로는 신스웨이브의 문법을 너무 의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번 앨범은 본인만의 색을 이전보다 더욱 듬뿍 담아낸 느낌이라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더불어 앨범에서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통일성 덕분에 앨범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결론을 내리자면, 훌륭한 사운드와 명확한 주제의식을 가진 좋은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전작에서 지적되었던 단점을 잘 극복하여 더욱 성장했다는 게 느껴졌다
다만 약간 아쉽다고 느낀 게 하나 있었는데, 정규 1집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후반부에 가서 힘이 조금 빠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 상 후반부를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도 충분히 설득력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후반부에 너무 주제의식과 결부지어 'holy'한 분위기를 내려고 애쓴 게 느껴져서 살짝 아쉬운 정도였다
베스트 트랙
SINNY SINNY
비비드라라러브
TV Show
멸종위기사랑
총점
8.0 / 10
멋진 뮤지션이죠
사실 인기있고 캐치한 곡만 내려면 얼마든지 낼 수 있음에도 이렇게 자기 생각을 담은 작업물 꾸준히 내주는 거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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