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연말 결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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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Tyler, The Creator, <CHROMAKOPIA>
2024.10.28 / West Coast Hip Hop, Experimental Hip Hop
<CHROMAKOPIA>.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가 가면을 썼다. 자신을 숨겼다. 13년간 이어져오던 홀수년도 발매 법칙을 깨버렸다. 그야말로 괴상한 행보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길래, 그 유구한 전통과 법칙을 그 '타일러'가 깨버린 것일까? 30대 중반에 접어든 그는 이제 성숙해졌고, 더욱 감정적인 인물이 되었다. 본작에서 그는 결혼, 자녀 등 앞으로 책임져야 할 것들에 대해 노래하며, 유명인으로서 겪게 되는 고충을 고백하기도 하고, 사라진 아버지를 찾으며 절규하기도 한다. 물론 일관성 있게 배치되지 못한 트랙 구성은 분명한 마이너스 요소이다. 대체 "Noid" 앞에 왜 "Rah Tah Tah"가 존재하고, "Hey Jane" 앞에 "Darling, I"가 존재하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일러가 처음으로 풀어내는 진솔한 자신 내면의 이야기는 나름 인상적이다. 항상 장난스러운 괴짜로 남을 것만 같았던 타일러는 이제 성숙해졌고, 아마 우리는 이전만큼의 '괴짜스러운' 타일러를 다시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타일러는 여전히 자신의 모든 '에고'의 주인공은 Tyler Gregory Okonma 본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해서 이 천재의 다음의 에고, 다음의 작품을 기대하고만 있어도 괜찮다. 그의 다음 앨범은 그의 커리어에 있어서 중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CHROMAKOPIA>는 그 변화의 시작일 뿐이다.
49.
Kendrick Lamar, <GNX>
2024.11.22 / West Coast Hip Hop
2024년을 설명할 때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는 Drake와의 디스전을 통해 힙합 역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써내려갔으며, 동시에 'The Pop Out: Ken & Friends' 등의 콘서트를 통해 West Coast의 승전보를 울렸다. 그의 커리어는 정말이지, 올해 Drake와의 디스전을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공개된 <GNX>는 그 변화를 상징하는 음반이다. 본작은 이전 켄드릭 라마의 작품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가 이전에 보여주던 완벽주의적인 성향은 사라졌고, 지나칠 정도의 즉흥성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본작에는 <To Pimp A Butterfly>를 비롯한 전작들처럼 특별한 목적성이나 의미가 부여되어 있지도 않다. 그저 West Coast를 위한 헌사, West Coast 뱅어 모음집, 그것이 <GNX>이다. 켄드릭 라마의 오랜 팬으로서 그의 거센 욕심과 야망이 흐려졌다는 점은 아쉽지만, 이런 스타일도 완벽하게 소화해내니 할 말이 없다. 지구상 최고의 래퍼 켄드릭 라마의 커리어가 큰 변화를 맞이하는 순간이다. 앞으로 이 변화가 씬 전체에 어떠한 파급력을 끼치게 될지, 또 켄드릭 라마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우리 모두 꾸준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48.
Amaro Freitas, <Y'Y>
2024.03.01 / Avant-Garnt Jazz, Post Minimalism
아마로 프레이타스(Amaro Freitas)는 <Y'Y>를 제작하기 위해 4,600 킬로미터에 달하는 아마존의 정글 지역을 순례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이로움을 손에 넣었고, 이는 본작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Viva Naná"에서 자연과 인간의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순간이나, "Uiara (Encantada da Agua) – Vida e cura"의 격렬한 피아노 연주는 자연의 위태로움을 절박하게 묘사하는 것처럼 들린다. <Y'Y>는 빼어난 재즈 음반임과 동시에 프레이타스가 겪은 그 긴 여정의 교훈을 담아낸 하나의 영적 매체와도 같은 작품이다. 본작에는 숲과 강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정령들이 녹아들어 있는 것만 같다. 아마로 프레이타스는 항상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감동과 기쁨, 그리고 놀라움을 선사한다.
47.
Sik-K, HAON & vangdale, <KCTAPE, Vol. 1>
2024.05.22 / Rage, Experimental Hip Hop
케이씨는 이도저도 아니었던 밍밍한 식케이-스윙스 디스전, 또 수장인 식케이의 마약 파문으로 창설과 동시에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이들은 대담하게, 그 어떠한 자숙 기간도 거치지 않고 첫 레이블 컴필레이션 음반 <KCTAPE, Vol. 1>을 발표하며 음악으로 논란에 정면승부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 성공했다. 이들의 레이지에 대한 이해도는 전세계의 아티스트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축에 속하며, 이 덕분에 'Playboi Carti 짭'이 아닌 본인들만의 스타일을 결합하여 굉장히 인상적인 청취 경험을 제공한다. 솔직히 논란 이후 곧바로 본작의 발매 소식이 들려왔을 때만 해도 '이새끼 뭐지' 싶었는데, 이렇게 잘해버리니 뭐 어쩔 수 없다. 식케이 너, 진짜 인정이다.
46.
Mach-Hommy, <#RICHAXXHAITIAN>
2024.05.17 / Abstract Hip Hop, East Coast Hip Hop
랩 네임과 눈 이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알려진 정보가 없는 남자, 마크 호미(Mach-Hommy). <#RICHAXXHAITIAN>은 그의 아이티 4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이다. 본작은 훌륭한 랩 음반이다. 마크 호미의 뛰어난 래핑과 톤은 말해봐야 입만 아픈 수준이며, 또 다양한 프로듀서의 기용으로 인해 더욱 스타일이 다채로워졌고 — 피처링진들 역시 훌륭한 퍼포먼스를 일관성 있게 보여주며 앨범의 완성도를 높였다. 동시에 모든 트랙들이 일관되게 훌륭한 완성도를 유지하기에 앨범의 크나큰 단점이라 느껴지는 지점 역시 없다. 물론 항상 그랬듯, 특별한 지점이랄 것이 딱히 없이 목넘김 좋게 흘러가 이 이상의 고평가는 어렵다 느껴진다. 그저 커리어 탄탄한 래퍼의 디스코그래피에 또 하나의 컬렉션이 추가되는 순간이다. 그나저나 가사 좀 풀고, 바이닐 가격도 낮췄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는데… 사실 이러한 기행에도 불구하고 많은 장르팬들이 그를 신봉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그의 재능 때문일 것이다.
45.
MGMT, <Loss of Life>
2024.02.23 / Neo-Psychedelia, Progressive Pop
MGMT의 커리어는 마치 청소년의 발달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 같다. 낙천적이던 어린 아이가 사춘기를 거치며 날카로워졌고, 이후 이들에게는 오랜 시간의 공백이 있었고, 이후 완전한 성인이 된 이들은 <Loss of Life>를 발표했다. 변화와 성장, 삶과 죽음 등 전에 비해서 훨씬 고상하고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는데 — 이들이 인간 속에 내지된 복잡한 감정선을 탐구하는 방식은 꽤나 인상적이다. 동시에 <Loss of Life>는 Ziggy Stardust부터 Simon & Garfunkel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을 머금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MGMT만의 사이키델릭 필터를 거쳐 드라마틱하고 달콤하게 변화한다. <Oracular Spectacular> 시절의 MGMT는 이제 희미해진 듯 하다. 대신 이 듀오는 성숙한 어른이 되었고, <Loss of Life>에서 이는 처절하고도 아름답게 드러난다.
44.
Xaoil, <인간목장>
2024.04.19 / Experimental Hip Hop, Alternative Hip Hop, Alternative Rock
국내 힙합에서 Xaoil (451)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독창성과 실험성을 모두 두루 갖춘 인물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데뷔 3년 차에 접어들어 발매한 첫 정규 앨범 <인간목장>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잠재력과 역량을 터뜨리기에 이른다. 사오일은 래퍼 이도 더 나블라가 직접 겪었던 정신질환 탓에 지냈던 정신병동을 추상적인 어휘와 종교적인 요소들을 결합하여 그려내 굉장히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사운드적으로도 카일러비트의 날카로운 기타 리프가 앨범 전반에 걸쳐 무게감을 선사하며, 이도 더 나블라의 그로울링이 어우러져 음산하고도 독창적인 분위기를 완성한다. <인간목장>은 사오일의 존재감과 독창성을 다시금 확인시킨 작품이며, 앞으로 이들이 어떤 음악을 선보여줄지 기대하게 만들어준 경험이었다.
43.
Jack White, <No Name>
2024.07.19 / Garage Rock Revival, Hard Rock
잭 화이트(Jack White)의 6번째 정규 앨범 던<No Name>은 많은 부분에서 즉흥적이다. 그는 기존 앨범들이 갖추었던 정제된 프로듀싱을 걷어내고, 더 거칠고 직관적인 사운드와 함께 마침내 만개한 자신의 천재성을 뽐낸다. 동시에 그의 음악적 뿌리였던 블루스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면서도 The White Stripes 시절의 강렬한 에너지로 회귀하기까지 한다. 모던 페달로 생기를 불어넣은 그의 기타 톤은 멜로디와의 균형을 잡으면서도 그 주위에서 격렬하게 회전하고, 앨범 전반에 걸쳐 꾸준히 예측 불가능한 일격을 날린다. <No Name>에서 잭 화이트는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근사한 마술을 부린다. 본작은 현대 록 음악 대부분을 압도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블루스 록의 부활을 알린다. 'Rock will never die'. <No Name>은 그러한 음반이다.
42.
Father John Misty, <Mahashmashana>
2024.11.22 / Singer-Songwriter, Soft Rock, Baroque Pop
앨범의 제목인 <Mahashmahana>는 산스크리트어로 화장터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파더 존 미스티(Father John Misty)는 본작에서 영적 여행을 이끄는 길잡이가 되어 우리 모두가 같은 곳으로 향하고 있음을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본작은 그의 전작 <Chloë and the Next 20th Century>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생과 사의 경계에 서 있는 화장터에서 시작된다. 앨범은 두 가지 파트 — 광기와 절망의 미드 템포와 감성적인 발라드 — 로 전개되는데, 그 어느때보다 훌륭한 그의 송라이팅과 합쳐져 그 깊이를 더한다. 타이틀 곡인 "Mahashmashana"는 고요한 묵상처럼 시작해 점차 우아한 색소폰의 파도에 휩쓸리며 끝을 맺는데, 파더 존 미스트의 어떠한 미련도 없이 끝을 맞이하겠다는 노랫말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동시에 "Amazing Grace"와 같은 트랙들에서 그는 타락한 문화 경제를 비꼬고, 희미해진 진실과 허구의 경계에 관한 통찰을 드러내기도 한다. <Mahashmahana> 속에서 그는 종말을 맞이한 시대의 끝자락에서 예술을 선택하는 용기와 사유를 보여주었다.
41.
Ulcerate, <Cutting the Throat of God>
2024.06.14 / Dissonant Death Metal, Technical Death Metal
뉴질랜드의 데스 메탈 밴드 울서레이트(Ulcerate)가 다시 한번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Cutting the Throat of God>는 지난 25년간 이들이 보여준 어두움의 미학을 극대화하며 장르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작품이다. 드러머 Jamie Saint Merat의 감각에 의존한 정교한 리듬, 기타리스트 Michael Hogard의 기괴한 리프 전개는 앨범의 중심이 되는데, 이가 만들어내는 차가운 멜로디와 무게감이 하여금 청자에게 갈망부터 절망에 이르는 수많은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앨범의 핵심 트랙이라고 할 수 있는 "Further Opening the Wounds"는 프로그레시브 한 구조와 긴장감 넘치는 기타 리프가 조화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탄생하는 얼어붙은 듯한 분위기는 TOOL을 연상시킬 정도로 압도적인 경험이다. 울서레이트는 1시간 동안 극한의 몰입감을 선사해가며 훌륭히 앨범을 이끌어 나가는 데에 성공했다.
40.
김반월키, <빈자리>
2024.01.31 / Indie Folk, Progressive Folk, Singer-Songwriter
1999년생 송라이터 김반월키의 정규 1집 <빈자리>에는 많은 이들의 음악이 녹아들어 있다. 스타일적으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한 공중도둑이 가장 먼저 연상되며, Sufjan Stevens, Phil Elverum 등등의 아티스트들의 색채를 양껏 끼얹고 섞어놓은 듯하다는 감상이다. '포크'라는 명목 아래 수많은 사운드들이 조밀하게 채워지는데, 이가 선사하는 아름다운 감동이 말 그대로 엄청나다. 김반월키 특유의 일기장 같은 가사는 작사 능력이 뛰어나다고 불리는 여타 싱어송라이터들과는 상반되는 뭉클함이 있으며, 동시에 앨범의 기타 리프와 멜로디 자체가 너무나도 빼어나다. '안에서 삭이다 소멸하기 전 / 낯부끄럽지만 할 말 해두면 아마 다행스럽겠지'. <빈자리>는 너무나도 아마추어스럽지만, 동시에 그 순수함이 그 무엇보다 깊은 여운을 남겨준다. 올해 1월 갑작스럽게 등장한 무명 싱어송라이터 김반월키가 갑작스럽게 이런 많은 관심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인연에는 끝이 있지만, 그 추억들에는 끝이 없는 법이니까.
39.
Sadness, <your perfect hands and my repeated words>
2024.08.23 / Shoegaze, Emo
새드니스(Sadness)는 <your perfect hands and my repeated words> 발매 이전까지 긴 공백기를 — 물론 그의 기준에서 — 가졌다. 매년 3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발매하던 그는 2023년을 아무 프로젝트 없이 조용히 보냈다. 그리고 2024년, 새드니스는 <I want to be there> 이후 가장 훌륭한 작품과 함께 돌아왔다. 새드니스는 지난 1년간 어떤 사랑을 해온 것일까? 본작은 그 어느 때보다 로맨틱하고 후킹한 멜로디가 두드러지는데, 극적이고 깔끔한 퍼커션과 어우러져 더욱 직관적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그가 블랙게이즈의 어두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더욱 성숙하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본작에서 블랙게이즈의 요소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슈게이즈와 이모틱한 사운드만이 눈부시게 내리쬐일 뿐이다. 그는 본작을 통해 자신의 장점만을 고스란히 가져간 채, 자신이 여전히 음악적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역시 모두에게는 사랑이 필요한 법이다. 그 대상이 그저 학생이던, 직장인이건, 예술가이건 말이다. 참, 올해 함께 발매된 <i love you> 역시 훌륭한 퀄리티를 자랑하니, 다들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38.
Vampire Weekend, <Only God Was Above Us>
2024.04.05 / Indie Rock, Chamber Pop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가 대담해졌다. 그들의 매그넘 오푸스와도 같은 음반인 <Only God Was Above Us>는 더욱 실험적으로 변모한 악기 연주, 정교해진 프로덕션, 또 그 어느 때보다 과감한 편곡이 눈에 띈다. 그 변화는 앨범의 오프너 "Ice Cream Piano"에서부터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곡이 점차 힘을 얻고 불타는 드럼 리듬, 아찔아게 치솟는 기타 리프, 그리고 격렬한 피아노 타건과 현악기 사운드가 결합되며 폭발하는 순간은 5년 전의 뱀파이어 위켄드는 탄생시킬 수 없는 수준의 사운드이다. 이 외에도 "Classical"의 재즈 퓨전, "Mary Boone"을 비롯한 많은 트랙들에서 두드러지는 R&B 비트, 또 앨범의 하이라이트인 "Connect"의 왜곡된 프로덕션 등 이들은 앨범 전반에 걸쳐 크게 진보한 모습을 일관성 있게 보여준다. 마지막 트랙 "Hope"에서 이들은 지난 40여 분간 노래한 모든 불안과 갈등을 담담히 내려놓으며 더욱 성숙해진 자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메마른 이 사회에서 <Only God Was Above Us>는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37.
Counterparts, <Heaven Let Them Die>
2024.11.07 / Metalcore
카운터파츠(Counterparts)의 새 EP <Heaven Let Them Die>는 기존의 Melodic-Hardcore 스타일을 계승하면서도 더욱 어두운 방향으로 진화한 작품이다. 전작에서 느껴졌던 희망의 기운은 사라지고, 대신 상실과 고통을 정교하게 묘사하는데 — 16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강렬한 에너지와 치밀한 구성으로 깊은 몰입감을 선사하며 — 감정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전혀 타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사에서는 인간의 상실과 분노,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몸부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To the sky I prayed, for flesh not yet decayed’라는 가사는 절망적이면서도 깊은 자기희생적인 면모가 관찰된다. <Heaven Let Them Die>는 짧지만 강렬하게 그들의 독창적이고도 진화한 모습을 보여주며, 카운터파츠가 자신의 음악적 위치를 다시 한번 확고히 다지게 만든 작품이다. 비록 최고작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지만, 그들의 강렬한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낸 중요한 작품이다.
36.
Vince Staples, <Dark Times>
2024.05.24 / Conscious Hip Hop, West Coast Hip Hop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는 항상 음악으로 리스너들을 설득시키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해 이를 직설적으로 제시하고는 했었에 빠져 있는 자신의 딜레마를 노래하고, "Black&Blue"에서는 어린 시절 경험했던 갱단 활동의 어두운 단면을 들춰내며, 이어지는 "Government Cheese"에서는 그 낭만화를 벗겨 내고 더욱 성숙해진 자아에 초점을 맞춘다. 음악적으로도 굉장히 진보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Freeman"은 Portishead를 떠오르게 만들며, "Why Won't The Sun Came Out?"은 마치 Boards of Canada의 곡처럼 들린다. 아쉽지만, <Big Fish Theory> 시절의 23세의 빈스 스테이플스는 이제 없다. 많은 것이 바뀐다는 30대에 접어든 그는 더욱 성숙해졌고, <Dark Times>는 이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어두운 성찰의 초상화이다. <Dark Times>는 그의 커리어에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했다. 여러모로 그의 커리어 최고작이라 칭할 만한 작품이다.
35.
The Smile, <Wall of Eyes>
2024.01.26 / Art Rock, Post-Rock
팬데믹 기간 Jonny Greenwood와 The Smile에게는 Radiohead 이외의 창작이 필요했었다. 그들은 <OK Computer>, <Kid A>, <A Moon Shaped Pool>에 비견될 만한 훌륭한 음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더 이상 억압받고 싶지 않아했고, 이로 인해서 탄생하게 된 그룹이 바로 더 스마일(The Smile)이다. 그러나 그들의 첫 정규 앨범 <A Light for Attracting Attention>은 Radiohead 시절에 존재하던 미공개곡들을 모아 만들어졌기에, 그저 Radiohead의 잔재라는 인상이 강했었다. 그러나 <Wall of Eyes>는 다르다. 기존 Radiohead와의 음악과 전혀 상반되는 접근법을 보여주는데, 더욱 자유롭고 즉흥적인 스타일을 채택하여 다채로운 사운드를 탄생시켰다. "Read the Room"과 "Under Our Pillows"와 같은 트랙들은 우리의 신경계를 자극하는 놀라운 트랙들이다. Thom Yorke가 이런 곡도 끝내주게 잘 쓴다는 것을 그 누가 알았겠는가? <Wall of Eyes>는 기존에 그들이 발매해오던 음반들과 다른 방식으로 아름다우며,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해준다. <Wall of Eyes>는 등장과 함께 2024년 음악계의 기준을 엄청나게 높여놓았다.
34.
SUMIN & Slom, <MINISERIES 2>
2024.07.18 / Contemporary R&B, Synth Funk, Neo-Soul
전작 <MINISERIES>는 두 남녀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MINISERIES 2>는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로 규정지을 수 있다. 역시나 "보통의 이별"의 제목에서부터 언급되듯이 지극히 평범한 두 남녀가 경험할 법한 이별을 생동감 있게 녹여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인데, 이별 속에서 느끼는 해탈감과 당황스러움, 또 자연스레 짓게 되는 헛웃음 등을 모두 담아내며 유쾌한 쓴맛의 공감을 자아낸다. 동시에 <MINISERIES 2>는 음악적으로도 굉장히 다채로운 색깔을 띠는데, 앨범 전반에 걸친 펑키한 리듬과 멜로디와 수민의 관능적인 보컬은 존재만으로 청자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며, 앨범을 마무리하는 트랙 "신호등"의 드럼 앤 베이스와 보사노바는 청자에게 여러모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한 편의 로맨스 드라마와도 같은 미니시리즈 시리즈의 장점은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과 감독의 디렉팅이 너무나도 훌륭하다는 것이다. 수민과 슬롬은 살면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이별'이라는 주제를 자연스럽게 녹여냄으로써 리스너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빠르면 내후년쯤 공개될 <MINISERIES 3>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하게 된다.
33.
Logic, <Ultra 85>
2024.08.09 / Boom Bap, East Coast Hip Hop, Conscious Hip Hop
Welcome to Ultra 85 program. 2017년에 처음 예고되었던 로직(Logic)의 앨범 <Ultra 85>가 마침내 세상에 공개되었다. 오래전부터 아주 야심차게 준비해 온 프로젝트인만큼 로직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태도로 본작에 임하는데, 다행히도 로직의 작품이 맞나 귀를 의심하게 될 정도로(!) 훌륭한 퀄리티의 탄탄한 랩 앨범이 탄생했다. 사실 훌륭한 랩 앨범이 갖춰야 할 기본 조건으로는 훌륭한 프로듀서와 훌륭한 MC가 아니겠는가? 로직은 <Ultra 85>에서 그 간단한 공식을 완벽하게 적용시킨다. 인트로 트랙 "Paul Rodriguez"부터 그는 9분간 현란한 랩 테크닉으로 리스너들의 혼을 쏙 빼놓는데, 약 1시간 20분이라는 방대한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랩 메이킹 실력을 여지없이 보여주며 앨범을 기세 좋게 이어나가는 데 성공한다. 동시에 6ix를 비롯한 프로듀서들의 비트 역시 구태여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경이로운 수준에 도달한다. 7년 동안 꾸준히 예고되어온 작품인만큼, <Ultra 85>의 이곳저곳에 숨겨진 로직의 개인적인 이야기들 역시 우리에게 소소한 감동을 전해준다. 로직은 자신의 모든 욕심과 야망, 그리고 진심을 <Ultra 85>에 완벽하게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로직의 커리어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32.
samlrc, <A Lonely Sinner>
2024.03.08 / Post-Rock, Shoegaze, Slacker Rock
Rate Your Music, Album Of The Year, Bandcamp와 같은 플랫폼들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훌륭한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이 주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올 3월 갑작스럽게 등장한 samlrc가 리스너들의 이목을 끌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이 때문이었다. <A Lonely Sinner>는 포크, 앰비언트, 드론 메탈, 포스트 록 등의 장르를 넘나드는 대담한 구성 속에서도 완벽한 유기성을 갖추고 있는데, 이로 인해 Pink Floyd와 Godspeed You! Black Emperor, Low와 Björk가 함께 연주하는 듯한 감상을 선사한다. 또한 본작은 BM-800 마이크와 BMG22 오디오 인터페이스를 비롯한 소박한 장비로 제작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웅장하고 정교한 사운드스케이프가 구현되어 있다는 것 역시 인상적인 지점이다. 특히 "Philautia"는 점층적으로 긴장감을 쌓아 올리다 모든 것을 폭발시키며 청자를 압도하는 훌륭한 트랙이다. 본작을 통해 그녀는 수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었고, 또 레이블과 계약을 맺는 등 여러 성공을 거두었다. <A Lonely Sinner>야 말로 현대 음악 플랫폼이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31.
KA, <The Thief Next to Jesus>
2024.08.19 / Abstract Hip Hop, East Coast Hip Hop, Drumless
카(KA)는 매 앨범마다 야심찬 주제를 담아오던 인물이었다. 그리스 신화를 활용한 <Orpheus vs. the Sirens>, 일본 봉건 시대의 사무라이에서 레퍼런스를 따온 <Honor Killed the Samurai>, 그리고 올해 발표된 그의 마지막 작품인 <The Thief Next to Jesus>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기독교 사이의 복잡성을 겨냥한다. '난 항복 전에 죽음을 먼저 계획해' / '모두가 천국에 대해 떠들지만, 모두가 그곳에 가는 건 아니야'. 카는 어느때보다 직설적인 방식으로 흑인 공동체가 겪어온 억압과 모순을 파헤친다. 결정적으로 <The Thief Next to Jesus>의 장점은 프로덕션에 있다. 꾸준히 이어지는 피아노와 오르간 샘플은 앨범에 성스러움을 불어넣으며, 합창단 샘플이 가미된 "Beautiful"은 현대의 새로운 찬송가와도 같은 트랙이다. 카는 번지르르한 프로덕션보다는 훌륭한 샘플들만을 가진 미니멀한 비트 위에서 언제나 담담하게 랩을 내뱉는다. 현재로서 본작을 청취할때에 가장 기억에 남는 트랙은 "Borrowed Time"이다. 음산한 오르간 리프 위에 '굴복 대신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그의 말은 지난 10월 그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현실이 되었다. <The Thief Next to Jesus>는 그의 죽음으로 마무리된 앱스트랙 힙합 씬의 또 다른 바이블과도 같은 작품이다. Rest in peace, KA.
30.
The Cure, <Songs of a Lost World>
2024.11.01 / Gothic Rock, Alternative Rock
더 큐어(The Cure)의 컴백은 분명 올해 음악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사건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걸출한 명반들과 함께 80년대 락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던 이들이, 약 13년의 공백기를 깨고 마침내 새로운 앨범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앨범 발매 솔직을 들었을 때 필자는 이가 훌륭한 퀄리티로 나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그렇듯, 나이를 먹어갈수록 전성기 때에 비해 부족한 작품들을 발매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테니까. 그러나 <Songs of a Lost World>는 아니다. 본작은 놀랍게도 이들이 지금껏 발매해온 작품들 중 가장 훌륭한 축에 속한다. 이들은 50대가 되었지만, 30년 전에 품었던 낭만과 패기를 여전히 갖고 있다. “Alone”과 “Endsong”이 주는 감동을 보아라. 이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큰 감동을 선사해 준다. 우리의 청춘과 우리의 낭만, 또 우리의 슬픔과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것이라는 것을 큐어는 본작을 통해 다시금 증명해 보인 것만 같다.
29.
Mdou Moctar, <Funeral for Justice>
2024.05.03 / Tishoumaren, Psychedelic Rock, Blues Rock
Mdou Moctar의 두 번째 Matador 시리즈 앨범, <Funeral for Justice>는 프랑스 식민주의와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실패를 비약적으로 성장한 음악성과 함께 신랄하게 비판하는 앨범이다. 앨범의 초반부터 강렬한 기타 리프가 분위기를 휘어잡는데, 빠르게 변화하는 기타 리프와 유려한 솔로 파트는 곡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Sousoume Tamacheq"와 "Tchinta"에서 강렬하게 치솟는 기타 리프는 곡의 감정을 극대화해준다. Tuareg 사막 블루스의 전통적인 요소를 기반으로 하는 본작의 리듬은 그루브와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Imouhar"에서 이들은 간결한 드럼 비트 위에서 점진적으로 기타와 보컬을 쌓아가며 강력한 감동을 선사한다. "Modern Slaves"에서 이들은 '내 사람들은 울고 있는데, 너희들은 웃고 있다. 신이시여, 왜 이리도 편향적이십니까?'라며 강렬한 가사를 전달한다. 이들은 지금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고 있으며, <Funeral for Justice>는 확실히 이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중요한 한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2월에 발매될 <Tears of Injustice>는 어떠한 모습일지 너무나도 궁금해진다. 이들은 정의가 죽었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정의를 되살리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한다.
28.
Blood Incantation, <Absolute Elsewhere>
2024.10.04 / Progressive Death Metal
블러드 인캔테이션(Blood Incantation)은 <Absolute Elsewhere>에서 70년대의 Yes, Popol Vuh, Gorguts가 되어 광기로 가득 찬 프로그레시브 록 사운드를 담아낸다. 본작은 두 개의 20분짜리 트랙이 각각 세 개의 'Tablet'으로 명명된 파트로 나누어져 복잡다단하게 전개된다. 이들은 첫 순간부터 강렬한 기타 리프를 쏟아부으며 신시사이저 아르페지오의 늪으로 우리를 인도하는데, Cluster와 핑크 플로이드 그리고 Morbid Angel을 동시에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굉장히 신비로움을 내뿜는다. 폭발성으로 무장한 드럼과 기타, 아날로그 한 신디사이저와 완벽한 완급 조절은 저마다 모두 우주의 심연을 토해내며, 그 모든 과정에서 블러드 인캔테이션은 극강의 몰입감을 연출해낸다. 블러드 인캔테이션은 프로그레시브와 데스 메탈의 교착점에서, 자신들만의 방식대로 자신들만의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27.
Joey Valence & Brae, <NO HANDS>
2024.06.07 / Hardcore Hip Hop, East Coast Hip Hop
사실 이들은 작년 <PUNK TACTICS>부터 굉장히 범상치 않은 자들이었다. 특유의 광기로 완전히 점철되어 말 그대로 자신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재미'를 살며시 살포하고 갔고, 젊은 20대의 백인 둘로 이루어진 듀오가 올드스쿨-붐뱁을 완벽히 소화해냈다는 점에서 여러 장르 팬들에게 큰 인상을 남기지 않았는가. <NO HANDS>는 작년과 똑같이 전곡을 뱅어 트랙으로 채우되, 이를 더욱 정갈하게 다듬어 자신들이 가진 매력을 극대화한 작품이라 말할 수 있겠다. 오프너 트랙 "BUSSIT"부터 "OMINITRIX"까지 일관되게 둘이 보여주는 완벽한 케미의 래핑과 높은 장르 이해도로 높은 완성도의 트랙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며 크나큰 재미를 선사하는 데에 성공한다. 또한 "NO HANDS"의 올드스쿨의 향취를 가득 머금은 프로듀싱은 이들이 프로듀서로서 가진 재능 역시 출중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오직 재미만을 추구하며, 그것만으로도 이 듀오의 음악은 이미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여러모로 이 듀오는 Beastie Boys의 재림이라 칭할 만하다.
26.
Adrianne Lenker, <Bright Future>
2024.03.22 / Singer-Songwriter, Contemporary Folk
아드리안 렌커(Adrianne Lenker)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항상, 여러 의미로 매번 놀라게 된다. 그런데 <Bright Future>에서 그녀의 가사는 어딘가 다르고, 더욱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Real House", "Ruined". 이 두 트랙을 집중적으로 관찰해보도록 하자. 긴장감의 명확한 해소 없이 선형적으로 흘러가는 본 트랙은 렌커의 어머니를 주제로 하고 있는데, 그녀의 울음을 처음 본 순간에 대한 가슴 아픈 묘사는 지금껏 그녀가 써 내려온 가사 중 가장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다. "Ruined"는 어떠한가. '파괴'로 묘사될 수 있는 본 트랙은 너무나도 깊이 빠져 자신을 삼켜버린 관계에 대해 노래하며, 이가 끝나 파괴된 이후에도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렌커의 음악은 우리가 가진 평범한 감정들과 경험마저도 진지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감정을 부여한다. 어쩌면 이따금씩, 아드리안 렌커와 같은 가수들이 노래하기 덕분에 우리가 함께 사는 세계가 아름다운 것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아드리안 렌커는 항상 여전하다. 우리를 눈물짓게 만들고, 따뜻한 위로를 선사해 주고, 동시에 파괴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항상 여전하다. 또 여전할 것이다.
25.
Moor Mother, <The Great Bailout>
2024.03.08 / Poetry, Electroacoustic, Experimental
무어 마더(Moor Mother)의 <The Great Baliout>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두어야 할 하나의 사건이 있다. 1835년 노예 해방법에 따른 영국 정부의 보상 정책은 영국 내의 노예제를 폐지하면서 46,000명의 노예 소유주에게 '재산'으로 간주한 노예를 잃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대출금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영국 납세자들은 2015년까지 170억 파운드의 대출을 갚아나가야 했고, 심지어는 노예의 후손들까지 납세자로 포함되어 있었기에 크나큰 파장이 일었다. <The Great Baliout>에서 그녀는 이 불편한 진실을 최대한 직설적인 방식으로 청자들에게 전달한다. '유죄'라는 단어가 10분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GUILTY"를 보자. 2018년 2월 영국 재무부의 '수백만 명이 세금을 통해 노예제를 종식하는 데 기여했습니다.'라는 자기중심적인 트윗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과도 같은 트랙인데, Lonnie Holley의 처절한 보컬 퍼포먼스와 함께 영국 정부를 향한 거센 비판 — 어쩌면 비난 — 을 쉴 틈 없이 쏟아붓는다. <The Great Baliout>은 굉장히 난해하며, 이해하기도 힘든 작품이다. 그리고 이는 당연한 일이다. 역사의 끔찍한 이면을 마주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닐테지만, 그 고통을 미래를 위한 연료로 전환시킬 수 있는 그 시발점이 될 수 있다.
24.
Denzel Curry, <King of the Mischievous South Vol. 2>
2024.07.19 / Southern Hip Hop, Trap, Hardcore Hip Hop, Memphis Rap
<Melt My Eyez See Your Future>라는 음반 이후, 갑작스레 멤피스 랩 씬으로의 귀환을 선포하며 12년 전 믹스테입의 후속작을 발매하는 덴젤 커리(Denzel Curry)의 선택이 다소 의아하다 느껴질 수도 있다. 본작에서 그는 멤피스의 사운드에 대한 탐구를 가감 없이 진행하면서도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여전히 고수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며, Project Pat부터 That Mexican OT에 이르는 수많은 피처링진들을 활용해 멤피스 힙합 씬을 향한 새로운 바이블과 헌사를 써 내려갔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King of the Mischievous South Vol. 2>는 전작에서 더욱이 넓어진 음악적 스펙트럼과 함께 과거와 현재의 사운드를 아우르는 시도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다. 본인이 어디서 왔는지를 되새기며, 지난 10년간 얻은 음악적 역량을 등에 업은 채 멤피스 랩을 새로이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원초적으로도 본작은 초기 믹스테입의 거친 날 것의 에너지와 함께 셀 수도 없이 많은 훌륭한 벌스들을 보여주며 우리들의 귀를 즐겁게 해준다. 오직 자신의 고향만을 위해 제작된 그의 헌사가 우리에게 수많은 즐거움을 주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본작은 충분한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3.
Vylet Pony, <Monarch of Monsters>
2024.11.15 / Noise Rock
언더그라운드 일렉트로 팝 씬에서 매년 수작 이상의 작업물들을 꾸준히 발매해오며 장르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던 바일렛 포니(Vylet Pony)가 정말 느닷없이, 또 정말 급진적인 변화를 택한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일렉트로 팝 음악에 종사하던 그가 새로운 앨범 <Monarch of Monsters>를 통해 노이즈 락, 얼터너티브 메탈, 포스트 락 등등, 이전과는 전혀 상반된 장르의 음악에 도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왜일까, 앨범 속 구현된 사운드가 굉장히 신선하고, 또 결정적으로 위화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앨범의 하이라이트인 "The Wallflower Equation"을 그 예시로 들어보자. 굉장히 인상적인 지점이었던 색소폰의 기용, 날카롭게 휘몰아치는 기타 리프와 노이즈 락의 거친 사운드를 바일렛 포니는 자유롭고 또 유동적이게 조율해나가며 섬세하게 폭력성을 내비친다. 바일렛 포니가 기존에 추구하던 음악과 180도 다른 음악을 선보인 <Monarch of Monsters>는 그 과감함, 그리고 그의 음악적 세계관을 몇십 배는 확장시켜 나갔다는 점에서 매우 놀라운 작품이다. 바일렛 포니는 본작에서 자살, 강간 등의 무거운 주제들을 거의 시뮬레이션 하다시피 하는데, 이러한 음악들이 선사해 주는 불쾌함은 단지 충격을 선사하기 위함이 아닌 — 우리가 흔히 지나치고 외면해온 진정한 아름다움과 마주할 기회를 주는 것만 같다.. 내가 자라온 편견을 넘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란 — 이 푸른 세상의 아름다움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란 — 또 자신이 원하는 사운드를 완벽하게, 또 멋지게 구현해낼 수 있는 재능이란!
22.
Fontaines D.C., <Romance>
2024.08.23 / Indie Rock, Post-Punk Revival
폰테인즈 D.C.(Fontaines D.C.)에게는 항상 하나의 딜레마가 존재했다. <A Hero's Death>, <Stinky Fia>와 같은 작품들에서 이들은 항상 훌륭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고, 또 이를 어느 정도 잘 실현시켜놓는 모습들을 보여주었으나 — 그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들이 지나치게 산발되어 있어 이들이 자연스럽게 융합되지 못하고 서로서로가 충돌하는 현상을 관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Romance>는 어딘가 다르다. 앞서 언급한 문제를 하나의 큰 흐름 안에서 앨범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내며 완성도를 높였으며, 동시에 "Starbuster", "Sundowner", 또 "Favourite"와 같이 각각의 트랙들이 저마다의 감정과 메시지를 머금고 있고 — 또 저마다의 방식으로 색다른 충격을 선사해 준다. 본작의 가장 큰 변화는 프로듀서 James Ford의 참여로 더욱 풍성해진 사운드와 다층적인 악기 기용인데, "Romance"의 격렬하게 요동치는 사운드와 서정적인 감성에서 이가 두드러진다. 폰테인즈 D.C.는 이제 삶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발견되는 희망을 노래하기로 하였고, 그 결과물인 <Romance>에서 이들은 본인들의 성장과 아이디어들을 완벽하게 담아내며 자신들의 영역을 더욱 확장해나갔다.
21.
Cindy Lee, <Diamond Jubilee>
2024.03.29 / Hypnagogic Pop, Psychedelic Pop
2012년 밴드 Women의 해체 이후 Patrick Flegel는 신디 리(Cindy Lee)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이자 방점과도 같은 작품인 <Diamond Jubilee>는 전작의 거친 질감을 여전히 일정 부분 수용하나, 보다 밝고 대조적인 무드를 제시하는 모습이 관측된다. 본작의 가장 큰 특징점으로는 32곡, 2시간에 달하는 방대한 러닝타임일 것이다. 솔직히 단순한 관점에서 접근해 보았을 때는 '과하다'는 인상이 자리 잡을 수 있다. 실제로도 여러 번 앨범을 청취해도 어떤 트랙이 어떻게 좋았는지 제대로 기억에 남지는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Diamond Jubilee>는 그 압도적인 분량 속에서도 앨범 전체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특유의 정서만으로 청자를 붙잡아 두는 데에 성공한다. 50년대 팝과 두왑(Darling of the Diskoteque), 글램 록(Glitz), 신스팝(GAYBLEVISION), 클래식 소울(Always Dreaming, Stone Faces) 등 수많은 장르가 혼합되어 마치 오래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왜곡을 경험할 수 있다. Patrick의 고혹적인 보컬과 앨범 특유의 질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악기로 기능하며, 32곡의 트랙들 사이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한다. <Diamond Jubilee>는 그저 '음악'으로만 표현될 수 없다. <Diamond Jubilee>는 1950년부터 2020년까지, 70년의 시공간을 초월하는 대서사시와도 같은 작품이다.
20.
Friko, <Where we've been, Where we go from here>
2024.02.16 / Indie Rock
인디 록에 여전히 젊은 사람들이 열광한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순간이다. 프리코(Friko)의 데뷔 앨범 <Where we've been, Where we go from here>는 여러모로 00년대 초반을 강타했던 Arcade Fire, Wilco, Grandaddy 등을 떠오르게 만든다. 이들은 한껏 냉소적인 태도로 개인적인 고백과 감정을 날 것 그대로 전달한다. "Chemical"의 날선 에너지와 "For Ella"의 아름다움을 보라. 모든 트랙이 킬링 트랙인 본작은 여타 다른 작품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다. 또한 본작이 선사하는 파괴적인 카타르시스는 우리로부터 하여금 이들의 음악을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끔 한다. <Where we've been, Where we go from here>는 현재와 과거의 인디 록을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프리코는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청자에게 깊은 사색과 고민을 요구한다. 이들은 올해 최고의 감정적 깊이와 역동성을 보여주며 2024년 최고의 신예의 한자리를 당당히 차지했다.
19.
Floating Points, <Cascade>
2024.09.13 / Tech House, IDM
<Cascade>는 팬데믹으로 인해 억눌려있던 플로팅 포인츠(Floating Points)의 댄스 플로어의 충동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는 그러한 열망을 단순히 발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정교하고 짜임새 있게 다듬어 실시간으로 부식되고 디튠되는 세심한 사운드를 그려냈다. 앨범 전반에 걸쳐 존재하는 미세한 톤의 변화와 광대하게 쌓여있는 레이어, 또 후반부의 사색적인 순간들까지 <Cascade>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계산적이다. "Key103"은 오직 댄스 플로어를 위해 바치는 끝내주는 헌사이며, "Birth4000"의 경우 다양한 질감의 사운드들을 적절히 배분해 내는 그의 탁월한 역량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Cascade>는 고에너지 트랙과 내성적인 트랙들이 균형 잡혀 배치되어 있고, 동시에 그의 현란한 테크닉과 섬세함을 양껏 체험할 수 있는 앨범이다. 그는 본작을 통해 댄스 플로어를 다시 한번 정복하며 장르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고, 그가 프로듀서와 송라이터로서 가진 재능을 마음껏 펼쳐놓았다. <Cascade>는 여러모로 이 시대의 <Selected Ambient Works 85-92>라고 칭할 만하다.
18.
Knocked Loose, <You Won't Go Before You're Supposed To>
2024.05.10 / Metalcore
Bryan의 분노로 가득 찬 보컬, Issac의 말 그대로 경지에 오른 듯한 기타 리프, 또한 강렬하게 몰아치는 베이스와 폭발적인 드러밍까지. Knocked Loose의 방점과도 같은 작품인 <You Won't Go Before Youre Supposed To>는 정말이지 여러모로 경이롭다. 27분 동안 메탈 코어 특유의 터치가 그대로 살아 숨 쉬며 생동감 있게 움직이고, 그 안에 브레이크 다운과 데스코어의 폭력적인 에너지를 더해 말 그대로 압도적인 경험을 선사해 준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Don't Reach For Me"와 "The Calm That Keeps You Awake"에서 이들이 보여준 테크닉은 Gojira와 Mastodon, Opeth를 연상시키는 지경이다. <You Won't Go Before You're Supposed To>의 매분 매초는, 심지어는 46초의 인터루드 트랙인 "Moss Covers All"마저 의미 없게 소비되지 않는다. 본작의 무시무시한 폭력성과 곳곳에 숨겨져있는 수많은 디테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룻밤이 꼬박 새우도록 얘기할 수도 있다. 확실히 이들은 이 세대를 대표하는 메탈 밴드이며, <You Won't Get What You Want>는 그러한 밴드가 발매할 수 있는 최고의 음반이다.
17.
Cameron Winter, <Heavy Metal>
2024.12.06 / Singer-Songwriter, Contemporary Folk
밴드 Geese의 보컬리스트 카메론 윈터(Cameron Winter)는 여러모로 다재다능한 아티스트이다. 그가 밴드 활동 당시에는 독특한 보컬과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정열적인 퍼포먼스로 주목을 받았었다면, 솔로 아티스트로서 첫 발걸음을 내디딘 데뷔 앨범 <Heavy Metal>에서 그는 또 다른 면모를 선보이며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나섰다. 그는 본작에서 레너드 코헨의 서정성과 비트 세대의 시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환각적인 시각들을 엮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독창적인 목소리와 함께 풀어낸다. "$0"과 "Can't Keep Anything"은 꾹꾹 쌓아왔던 감정들이 모두 폭발하는 앨범의 하이라이트를 이루는 트랙들이며, 카메론 윈터가 자신의 음악을 감정으로서 깊이 뿌리내리는 방식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Heavy Metal>은 고요하면서도 폭발적이게 청자를 매 순간 파괴해간다. 어쩌면 이 역시 헤비메탈일지도.
16.
Godspeed You! Black Emperor, <"NO TITLE AS OF 13 FEBURARY 2024 28,340 DEAD">
2024.10.04 / Post-Rock, Drone, Chamber Music
NO TITLE AS OF 28 DECEMBER 2024 46,800 DEAD. 어떻게 보면 매 앨범마다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야심 차게 녹여내던 갓스피드 유! 블랙 엠페러(Godspeed You! Black Emperor)가 2024년 올해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2023년 10월부터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그 원인이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진행된 전쟁은 현재 그저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한 무차별적인 학살로 변질되었으며, 매주 수천의 소중한 생명들이 우리의 곁을 떠나가고 있다. 이들은 본작 <"NO TITLE AS OF 13 FEBURARY 2024 28,340 DEAD">에서 밀도 높은 사운드들로 지구 건너편의 우리에게까지 전쟁의 공포를 온전히 전달한다. 이전 작품들과 유사하게 강렬한 드론과 오케스트라적 요소를 결합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거대한 서사와 그 안에 담긴 감정적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게 만들며, 동시에 인류에게 자유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며 그 과정에서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본작은 분명 올해 최고의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사무치게 아름다운 작품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한 학살 행위는 이제 멈춰져야 할 때이며, 희망이 사라져서는 안 되니까.
15.
O'KOYE, <Whether The Weather Changes Or Not>
2024.07.15 / Jazz Rap, Neo-Soul
'대한민국의 재즈 랩 음반'… 당장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반이 무엇인가? 힙합 팬들이 해당 질문을 받는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Jazzyfact요' 하고 대답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 대한민국의 재즈 랩 음반은 실제로도 빈지노와 시미 트와이스의 <Lifes Like> 외에 하이프를 받은 전적이 존재치 않았다. 그러나 2024년, 느닷없이 등장한 오코예(O'KOYE)가 한국의 재즈 랩 장르의 새로운 클래식 <Whether The Weather Changes Or Not>을 써 내려갔다. 이들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완성도와 장르적 이해도가 너무나도 출중하여 지금껏 한국 힙합 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간지를 제공한다. 첫 트랙 "O'KOYE"에서부터 휘황찬란하게 휘몰아치는 트럼펫 사운드와 함께 변칙적인 리듬으로 래핑을 내뱉으며 흥미로운 시너지가 발산된다. 또한 "서울"과 같은 트랙들에서 언젠가 날아오르겠다는 희망을 담아내며 예상치 못하게 감동을 선사하는 것 역시 매우 인상적인 지점들이다. 이로써 오코예는 대한민국 재즈 힙합 씬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기는 데에 성공했다. '올해의 발견'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아티스트는 바로 이들일 것이다. <Whether The Weather Changes Or Not>에서 오코예는 마치 우리에게 '우리 음악 개쩌는데, 안 들어보실래요?' 하는 것만 같다. 그 질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할 것이다. 'Yezzir~'.
14.
MJ Lenderman, <Manning Fireworks>
2024.09.06 / Alt-Country, Slacker Rock
엠제이 렌더맨(MJ Lenderman)의 음악은 조금의 진지함을 품고 있으나, 궁극적으로 굉장히 가볍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Manning Fireworks>에서도 그는 역시나 여전하다. 평범한 나날들 속에 숨어있는 우스꽝스러운 순간들을 포착하며 예상치 못한 웃음을 자아내는데, 본작에서 그는 그 너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감정들까지를 모두 촬영하며 다소 하찮은 넋두리를 보여준다. "Rudolph"와 같은 트랙들에서 그가 묘사하는 우스꽝스럽지만 처연한 루돌프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아름답게까지 느껴진다. 음악적으로도 <Manning Fireworks>는 더욱 다채로워졌다. 느릿하게 굴러가는 기타 리프와 절제된 솔로, 그리고 얹히는 랩 스틸 기타와 바이올린의 터치는 남부적인 정서를 더욱 진하게 완성한다. 평범한 일상의 순간순간들 속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고뇌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 <Manning Fireworks>는 그러한 작은 이야기들로 만들어진 커다란 공감의 세계다.
13.
Mount Eerie, <Night Palace>
2024.11.01 / Avant-Folk, Slacker Rock, Post-Rock
<Night Palace>는 마운트 이어리(Mount Eerie), Phil Elverum의 대표작인 <The Glow Pt. 2>와 <A Crow Looked at Me>가 섞여진 작품이다. 커리어 초기의 그는 오직 자신의 생각에만 몰두한 광인처럼 보였지만, 아내의 죽음 이후 발표된 <A Crow Looked at Me>에서 그는 처음으로 가정적인 한 남성의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담아냈다. 총 두 가지의 디스크 (직접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Night Palace>는 분명 더블 앨범이다)로 이루어진 본작은 그가 평생 갈구해오던 자연의 이야기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다. 즉 <Night Palace>는 그가 지난 25년간 걸어온 여정들의 집약체이자, 동시에 그의 삶을 관통한 대서사시이기도 하다. 바람과 안개는 결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고, 그가 사랑하는 이들 역시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Night Palace>는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작품일지도 모른다.
12.
Kamasi Washington, <Fearless Movement>
2024.05.03 / Spiritual Jazz, Jazz Fusion
카마시 워싱턴(Kamasi Washington)의 <Fearless Movement>가 가진 가장 큰 특징으로는 그의 기존 음악 스타일에 고전적이고 희망적인 요소를 추가해놓았다는 점이다. 그의 전작들에서는 드물게 등장했던 보컬과 랩의 피처링진들이 이번 앨범에서는 주요한 역할을 하며 앨범을 더욱 다채롭고 풍성하게 만드는데, 특히, Thundercat의 소울풀한 보컬과 D Smoke, George Clinton 등의 랩이 가장 두드러진다. 본작은 전반적으로 전자 음악과 재즈를 결합한 독특한 스타일로 이루어져 있는데, "Computer Love"와 같은 서정적인 트랙부터 "Get Lit"과 같은 펑키한 트랙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신선한 충격을 전한다. 2024년 최고의 노래라 칭해도 과언이 아닌 "Prologue"의 경우 그가 지금껏 걸어온 모든 발자취들을 집약해놓은, 말 그대로 무시무시한 트랙이다. <Fearless Movement>에서 카마시 워싱턴은 현대 재즈의 경계를 장인의 손길로 힘차게 확장해보이며 여러 오묘한 감정들을 최대한 아름다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전달한다.
11.
TURQUOISEDEATH, <Kaleidoscope>
2024.10.11 / Atmospheric Drum and Bass, Progressive Breaks
터콰이즈데스(TURQUOISEDEATH)가 작년 선보인 <Se Bueno>는 자신이 언더그라운드 Drum and Bass 씬을 이끌어갈 새로운 인물임을 알리는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Kaleidoscope>에서 그는 다시금 자신의 뿌리였던 Atmospheric Drum and Bass로 돌아가 더욱 넓고 압도적인 사운드스케이프를 그려낸다. Trance와 Breakcore를 결합해 복잡한 리듬 구조와 강한 브레이크 비트를 만들어내는데, 앨범의 모든 순간들이 하이라이트라 느껴질 정도로 초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대류가 앨범을 가득 메운다. 50분간 내리꽂혀지는 수많은 비수들은 우리의 몸 전체를 관통하며, 모든 순간마다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섬세함과 야심으로 가득 채워져있는 <Kaleidoscope>는 그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보인 중요한 이정표로 기억될 것이다. Drum and Bass는 여전히 진화하는 중이다.
10.
Quadeca, <SCRAPYARD>
2024.02.16 / Experimental Hip Hop, Art Pop, Glitch Hop
콰데카(Quadeca)가 이루어낸 업적들과 그의 가파른 성장세는 실로 놀랍기만 하다. 그는 한때 유튜버 출신이라는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 평가절하를 당했으나, 이후 2022년 <I Didn't Mean to Haunt You>를 통해 그는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으며 자신의 무구한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약 2년의 시간이 지나 발표된 믹스테입 <SCARPYARD>에서 그는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양립하며 진정한 아티스트로서 성장해나간다. 콰데카의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이 얼마나 뛰어난지 다시금 체감되는 순간이기도 하였는데, 조밀하고 흐릿한 믹스 속에서 세밀한 순간들까지 완벽하게 조율해나가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Lo-Fi 한 음질로 이루어져 있는 모든 악기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감동을 선사한다. 또한 "U TRIED THAT THING WHERE UR HUMAN"과 같은 트랙들에서 그가 보여준 호소력 짙은 보컬은 그가 얼마나 훌륭한 연출가인지를 일깨워 주기도 하였다. 콰데카는 더 이상 한철 장사 유튜버가 아니다. 콰데카는 예술가이다. 그것도 엄청난 예술가.
9.
Geordie Greep, <The New Sound>
2024.10.04 / Jazz-Rock, Progressive Rock, Art Rock
여러모로 조르디 그립(Geordie Greep) 다운, 또 조르디 그립만이 보여줄 수 있는 행보이다. 밴드 black midi의 비극적인 해체 선언 이후 곧바로 발매된 그의 첫 정규 앨범 <The New Sound>는 말 그대로 경이롭다. 본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역시 그립의 테크닉에 있는데, 살사와 삼바, ECM 재즈와 프로그레시브 락 등 다양한 상반된 장르들을 유려하게 엮어내며 어색하거나 과하다 느껴지지 않게 앨범을 구현해나가는 능력은 실로 놀랍기만 하다. 또한 "Blues"나 "The Magician"과 같은 트랙들에서 돋보이는 스토리텔링, "If You Are But A Dream"의 밀도 있는 보컬 재즈 등 <The New Sound>는 다방면에서 인상적인 지점들로 가득 채워져있다. 그립의 그득그득한 욕심과 야망으로 빼곡하게 채워져있는 <The New Sound>는 매분 매초가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작품이었다. 이 99년생의 천재 — 혹은 광인 — 이 한계는 여기서 끝이 아닐 것이며, 그는 곧 전설로 도약할 것이다.
8.
Chat Pile, <Cool World>
2024.10.11 / Noise Rock, Sludge Metal
챗 파일(Chat Pile)의 2번째 정규 앨범 <Cool World>는 마치 인간 속의 끝없는 무채색의 영역을 탐험하는 듯하다. 앨범의 첫 트랙 "I Am Dog Now"가 흘러나오는 순간부터 무겁고 질척거리는 사운드 속에 휘말려 길을 잃게 되는데, 42분간의 공포스러운 경험이 모두 끝나고 나면 자아마저 상실된 채로 죄책감과 분노만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된다. "Shame"의 멈출 기세 없이 부풀어 오르는 사운드, 날카롭게 현대 자본주의에게 일침을 날리는 "Frownland"까지, 본작을 감상하다 보면 자연스레 온몸이 뒤틀리며 고통 속에 빠져드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 얻는 것은, 어쩌면 한층 더 선명해지는 현실의 진실이다. <Cool World>는 단순히 부정적 감정과 사회에 대한 비판만을 지속하지 않고, 그 안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한번 묻는다. 이 멋진 세상 속의 방랑자인 그대에게.
7.
Nala Sinephro, <Endlessness>
2024.09.06 / Jazz Fusion, Progressive Electronic, Space Ambient
일렉트로닉 뮤직과 앰비언트, 그리고 재즈를 적절히 섞어낸 Floating Points와 Pharaoh Sanders, London Symphony Orchestra의 <Promises>는 2021년 음악계의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반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발매된 날라 시나프로의 정규 1집 <Space 1.8> 역시 그와 비슷하게 고요한 앰비언트 위에 재즈를 접목한 음악을 선보였다. 약 3년이 지나고 발매된 그녀의 정규 2집 <Endlessness>는 겉으로만 봐서는 전작과 유사하다 보일 수 있겠으나, 고요 속에서 더욱 광활한 공간을 끊임없이 창조시켜내며 정교하게 배열된 음들이 귀를 사로잡는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갖는다. <Endlessness>는 시나프라의 역량, 그리고 가능성을 증명해냄과 동시에 이를 한데 집약시켜놓은 작품이다. 그녀는 여러 가지 장르를 융합해냄과 동시에 그 속에서 균형을 잡을 방법을 잘 알고 있으며, 다음 앨범에서는 이보다 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6.
Charli xcx, <BRAT>
2024.06.07 / Electropop, Electonic Dance Music, Bubblegum Bass
과연 2024년 찰리 xcx(Charli xcx)의 활약상이나, <BRAT>이 행사했던 영향력에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가? 언더그라운드의 왕으로 군림하던 그녀는 마침내 팝 뮤직의 새로운 청사진을 써 내려갔고, 전 세계의 대중들이 그녀에게 열광했다. 그 결과 <BRAT>은 2024년의 상징이 되었다. 특별한 목적 없이 흔한 팝 뮤직만을 산재시켜놓았던 <CRASH>의 문제점을 완전히 타파해 내며, 한치도 예측할 수 없게 레이브 씬으로 돌아가 원초적인 클럽 음악을 보여준다. 그렇게 <BRAT>에서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클럽 문화의 본질로 회귀하며 세상에 선포한다. 자신은 본인만의 길을 걸어서, 결국 모두를 인정시켰다고! — <BRAT>은 향후 수년간의 팝 문화를 정의하게 될 것이다.
5.
Magdalena Bay, <Imaginal Disk>
2024.08.23 / Synthpop, Neo-Psychedelia
성충원기(imaginal disc)란 곤충 유충의 일부가 되며, 이후 변태 과정을 거치며 날개, 다리, 더듬이로 발달하는 조직을 의미한다. 막달레나 베이(Magdalena Bay)의 어마 무시한 두 번째 정규 앨범 <Imaginal Disk>에서 이는 초월의 의미로서 사용된다. 전작 <Mercurial World>가 몽환적이고 감각적인 팝 음악을 통해 갈망을 그려냈다면, 본작은 변화의 본질과 자기 초월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더욱 넓어진 스펙트럼으로 아름답게 그려낸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시로 앨범의 핵심 트랙인 "Death & Romance"의 경우 프로그레시브한 신스 사운드와 Mica Tenenbaum의 매혹적인 보컬을 보자. 환상적인 장르 변주, 환각적이고 중독적인 멜로디와 흥겨운 리듬. Mica와 Matthew는 <Imaginal Disk>의 모든 순간을 매우 정교하고 밀도 있게 설계해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Imaginal Disk>는 마치 동물이 탈바꿈을 하여 완전한 육체를 얻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이들은 앞으로 더욱 놀라운 작품들을 끊임없이 생산해낼 것이며, 이들은 빠른 시일 내에 전 세계를 향해 최면을 걸어올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아티스트는 바로 막달레나 베이이다.
4.
Willy Rodriguez, <wetdream>
2023.12.25 / Noise Pop, Indie Rock, Emo
윌리 로드리게즈(Willy Rodriguez)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다. 2명의 멤버로 구성된, 존나 쩌는 음악을 만드는 이들이란 것 빼고. 무시무시한 <wetdream>은 정말이지 여러모로 엄청난 작품이다. 매우 거칠고, 산발적이며, 또 다채로운데 — 본작을 청취하다 보면 Have a Nice Life의 <Deathconsciousness>, The Cure의 <Disintegration>, Car Seat Headrest의 <Twin Fantasy> 등 수많은 작품들이 연상된다. 그러니까, 본작은 노이즈 팝, 인디 록, 파워 록, 드림 팝, 포스트 락, 쟁글 팝 등 수많은 장르가 적절히 블렌딩되어 앨범의 모든 순간들을 흥미롭게 만든다. 여러 장르들의 경계를 허물며 그들만의 고유한 언어를 만들어 그들의 존재감을 뇌리에 똑똑히 각인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가사와 보컬의 특이성도 앨범의 질을 한층 더 높여주는 데에 일조한다. 가사는 다른 아티스트들과 달리 너무나도 직설적이어서 깊은 인상을 남기며, 호소력 짙은 보컬 역시 우리를 흐느끼게 만든다. <wetdream>은 노이즈와 디스토션, 그리고 수많은 실험들이 수 놓여있기에, 단 한두 번의 청취만으로 본작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wetdream>은 정말이지 다른 앨범들과는 굉장히 차별화된다. 본작에는 무엇인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는 베이지색의 신비로움이 존재한다. 열망으로 가득 차있던 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게 충격을 주며 우리의 곁을 떠났다. 나는 지금 이들이 남기고 간 유산과 감동에 경의를 표하며, 또 한 번 눈물을 흘린다.
3.
Porter Robinson, <SMILE! :D>
2024.07.26 / Electropop, Indietronica, Indie Rock
그 미소 뒤에 무엇이 숨어있는지 나는 쉽게 망각해버리곤 한다. 날 보며 애써 괜찮다 말하며 웃음을 지어 보이는 이들의 마음속에선 수많은 생각들이 요동치고 있었다는 것을. 그 웃음이란 작은 동작에는 여러 자아와 감정들이 섞여있다는 것이다. <SMILE! :D>는 그런 작품이다. '웃어봐!'라는 — 지극히 포터 로빈슨(Porter Robinson) 다운 — 앨범의 제목과 함께 반짝이는 신스와 유쾌한 멜로디와 가사들로 단순히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듯하지만, 곧 그 안에 담긴 자신의 여러 깊은 이야기들을 펼쳐내며 자아를 돌아보는 과정, 불안정한 관계,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몸부림들이 트랙들 사이사이를 부유한다. 포터 로빈슨은 웃음 뒤에 숨은 진짜 이야기를 꺼내 보이며 그의 무게와 밀도, 또 아름다움을 측정하며 지금껏 우리가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위로의 말을 건넨다.
<SMILE! :D>는 마치 삶의 축소판 같다. 웃고, 춤추고, 넘어지며 다치는 순간들을 기억해야 '웃음'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본작은 지극히 개인적인 작품이다. 본작에 칠해져있는 모든 감정의 진폭과 좌절, 그리고 성장은 철저히 포터 로빈슨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거한다. 그러나 포터 로빈슨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이들의 보편적인 감정을 자극한다. <SMILE! :D>는 웃음을 통해 아픔을 이해하고, 아픔을 통해 웃음을 이해하는 여정이다. 그의 음악은 곧 그의 삶이었고, 그의 음악은 곧 나의 삶이었으며, 그의 음악은 곧 우리 모두의 삶이었다.
2.
glass beach, <plastic death>
2024.01.19 / Art Rock, Indie Rock, Progressive Rock
창의성은 수단일 뿐이며, 예술에 있어 '창의성'이 예술가들의 목표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이를 가장 잘 준수해오며 항상 독창적이고 대담한 음악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틀 안에 구속시킬 수 없는 밴드 글래스 비치(glass beach)가 그들의 대망의 정규 2집 <plastic death>에서 이루어낸 바는 실로 놀랍다. 여러 장르를 한 음반에 융합시켜놓는 것으로 유명한 밴드이니만큼, <plastic death> 역시 Art Rock, Progressive Rock, Math Rock, Post-Hardcore, Emo, Power Pop 등 여러 장르가 결합되어 복잡하면서도 조화로운 사운드를 선보인다. 정교한 드럼 패턴, 추상적인 곡 구조, 독특한 리듬감, 그리고 몽환과 무저갱無底坑을 넘나드는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선보이는데 — 이러한 끝도 없는 난해함 속에서도 여전히 큰 비중으로 내지 되어 있는 탁월한 멜로디 감각과 중독적인 리프레인들로 청자들에게 최면을 걸어온다.
물론 몇몇 구간에서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motions" 초반부의 힘 빠진 보컬, 다소 약한 "waterfalls"의 클라이맥스, 밀도가 부족한 "slip under the door"의 마무리는 어느 정도 앨범의 흠이라고도 칭할 수 있는 지점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소한 아쉬움조차도 앨범의 압도적인 완성도와 창의성 앞에서는 큰 결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대담함과 깊이 있는 감정 표현, 또 정교한 프로덕션으로 빼곡히 채워져있는 본작은 올해 가장 신선한 충격을 선사해 주었던 탁월한 작품이다. "coelacanth"의 압도적인 시작부터 "commatose"의 웅장한 피날레에 이르기까지, <plastic death>의 모든 순간들은 연속적으로 예상치 못하게 우리의 이곳저곳을 가격한다. <plastic death>는 웅장한 순간들에서 여유를 즐기고, 또 이곳저곳을 유영해나가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하나의 생명체이다.
1.
파란노을, <Sky Hundred>
2024.08.03 / Shoegaze, Noise Pop, Emo, Indietronica
파란노을의 시작을 다시금 떠올려보자. 대한민국 서울 어느 좁은 방구석에서 쏘아 올린 한 외톨이의 신호탄은 전 세계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아무도 예상치 못한 거대한 파동을 일으킨 그는 국내외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슈퍼스타가 되었으며 — 심지어 최근에는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자신이 막연하게 바라오던 '락스타'가 되었다. 공연 도중 갑작스럽게 발매된 <Sky Hundred>는 자기혐오와 불행을 노래하던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으로 회귀하려는 듯한 사운드가 담겨있으나, 동시에 파란노을은 그를 그저 한시의 '환상'으로 규정하며 빛을 바라본다. 성층권 너머로까지 아찔하게 피어오르는 노이즈 사운드는 다소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따스하게 어루만진다. 푸른빛의 "주마등"이 스쳐간 후 일제히 폭발하는 "황금빛 강", 파란노을의 전부를 총집합시켜놓은 듯한 14분의 대곡 "Evoke Me", 더욱 흐릿하고 또 넓은 시각에서 눈물을 훔치게 만드는 "Maybe Somewhere"과 "환상"까지. <Sky Hundred>의 매분 매초는 우리를 완전히 붕괴한다.
<Sky Hundred>의 주된 비판의 논지는 '전작 <After the Magic>에서 보여주었던 풍성한 악기 구성은 사라졌고, 노이즈에 대한 욕심이 너무 과했던 탓에 앨범에서 의도되었던 바가 소멸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 필자는 성숙함이 단지 무언가를 더하는 것만으로 정의될 수는 없다고 믿는다. 가장 날아올라야 할 시기에 오히려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 그는 자신만의 음악 — 즉 존나게 시끄러운 '파란노을 음악'을 더욱 명확하게, 또 보다 넓은 시각에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파란노을은 <Sky Hundred>에서 자신의 뿌리이자 시작점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주었던 이들, 그리고 수백의 자신과 수백의 그대, 또 수백의 우리를 향한 헌사를 바친다. <Sky Hundred>를 듣고 나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기로 나 스스로와 약속했다. 수백의 파란노을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백의 나와, 수백의 그대와, 또 수백의 우리에게 — 나는 또 한 번 이 52분의 사진첩을 바친다.
https://www.youtube.com/watch?v=5SoXPvpAD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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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봤습니다
님아 렉 걸려서 로딩이 안ㄷ
밤에봐야지
감사합니다
빈스 스테이플스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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