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준지 원작 애니메이션 <소용돌이>는
끝내 걸작이 될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습니다.
용두사미.
어쨌든 음악은 훌륭했으니
사운드트랙 담당한 콜린 스텟슨(Colin Stetson) 인터뷰를 번역해봤습니다.
콜린 스텟슨은 미국/캐나다의 프리재즈 연주자인데
다양한 영화 게임 사운드트랙도 많이 참여했습니다.
그래미 수상자, 색소포니스트,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 작곡가 등등 다양한 일을 하는 콜린 스텟슨.
그도 역시 이제 일본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을 맡은 비일본인 작곡가 중 한명이 되었다. 그의 섬뜩하면서도 동시에 아름다운 <소용돌이> 사운드트랙은 이제 스트리밍으로도 들을 수 있다.
<유전> <더 메뉴> <레드 데드 리뎀션> 등등 여러 사운드트랙으로도 알려진 콜린 스텟슨은, 이토준지 대표작을 원작으로 한 매혹적인 애니시리즈 음악으로 너무나도 적합한 인물이다.
이번 기회에 콜린 스텟슨을 만나서 <소용돌이> 특유의 섬뜩한 사운드를 만들어가는 과정,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방법, 그 외 그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등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일단 먼저 사운드트랙 발매를 축하드린다.
매우 드물게도 일본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을 맡은 비일본인 작곡가가 되었다. 이 프로젝트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또 그 전설적인 이토 준지와 작업하게 되신 소감은 어땠는가.
어덜트 스윔을 통해 총감독 나가하마 히로시와 제작진에게 닿을 수 있었다. 이미 예전부터 어덜트 스윔과 여러 작업을 해왔기에 제 음악이 감독에게도 소개되었고, 감독도 저를 음악가로 기용하는 아이디어를 좋아했다. 저와 감독 등등 모두가 직접 미팅을 원했고, 그래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직접 만나서 이 프로젝트에 어울리는 사운드트랙에 대해 각자의 아이디어와 각자 해야 할 것들에 대해 동의하는 부분들을 찾았고, 나는 그렇게 합의된 방향을 따라서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 답하자면, 그와 작업할 때의 기분은 그때그때마다 기분이 달랐다. 난 특정 장르나 주제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때그때 변하는 상황과 기분에 맞게 작업을 해올 뿐이다.
이렇게 특별하고 독창적이고 놓치면 안될 것 같은 그런 제안이 내게 다가올 때, 난 매우 강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 제안을 이메일로 받은 순간, 제발 하겠다고 답했다. 이토준지는 정말 말할 것 없는 전설이고, <소용돌이>는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 대표작으로 거론된다. 특히 공포만화의 역사 속에서도 매우 중요한 작품이지.
어쨌든 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제안을 덥석 잡았고, 작업 내내 정말로 흥분했었다.
처음에 그들이 원하는 음악 접근 방식에 대해 설명해 주었을 때도 정말 인상 깊었고, 이제 작품 공개를 앞두고 보니 그들이 완성한 결과물은 내 예상 이상이다. 정말 굉장한 작품이 나왔다.
나도 정말 기대된다. 작품의 중요성을 언급했는데, <소용돌이>의 이야기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는가? 이 프로젝트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만화를 읽어보았나?
사실 그 만화 전체를 읽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제안 받은 그날 제일 먼저 한 일이 그 만화를 읽는 것었다. 에이전트에게서 <소용돌이> 음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단 이메일을 받았을 때, 난 곧바로 서점에 가서 모조리 만화를 사서 빠르게 읽어버렸다.
그렇기에 난 누구보다 훨씬 더 앞서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미 그때 내 머릿속에는 그 모든 이야기가 잘 자리 잡고 있었다. 나가하마 감독과 만나서 대본도 보여주었고, 난 그거 역시 빠르게 읽고 만화 전체와의 유사점과 다양한 상관관계를 분석할 수 있었다.
확실히 그렇다. 정말로 길고 두꺼운 만화인데도, 30분 안에 다 읽을 수 있었다. 빠르게 휙휙 지나가는 공포 장면들이 많아서 읽는 속도도 빨라질 수 밖에 없다.
정말로 중요한 질문을 하겠다. 애니메이션의 모든 상황들이 다 "소용돌이"와 연관이 있다. 어떻게 이런 이미지를 당신의 음악에 접목시켰는가? 주로 어떤 것들이 이런 소용돌이에 대한 집착을 표현하는데 영감 주었나?
내 작업의 목표는 소용돌이의 개념을 시각화/청각화할 수 있는 다양한 음악적 접근방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애댕초 내가 이 프로젝트에 제안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이미 솔로 앨범에서 이런 유사한 음악기법을 많이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내 색소폰 연주법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순환호흡 연주법이나, 아르페지오를 연상시키는 연주법이나, 그리고 물결치는 듯한 느낌의 연주법 등등 이런게 결합된것들이 기본적인 음악적 접근 방식이 되었다.
또한 그런 접근 방식 안에서도 또 다양한 표현법들을 연구했다. 아주 기초적인 연주 테크닉도 잇었고, 아주 많았다. 당신이 언급한 "소용돌이에 대한 집착"이나 "풍차"에 대한 이미지 청각화도 있었는데, 이런 것들은 좀 더 추상적이고 난해한 접근을 했다.
내가 어떤 공간을 떠날 때, 어떻게 그 공간에서 무엇이 당신을 집어끌어당기는지에 대해 질문을 해봤다.
내가 공간과 “침묵”을 가지고 하려는 것은 다음 순간의 기대를 조작하고 당신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느리게 움직이고 후퇴하는 소리들이 끝없이 그 집어당기면서 영원한 끌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는 이 소용돌이를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단순 멜로디란 개념에 접근하는 방식보다 더 넓은 범위로 생각했다.
특히 현악기 부분이 그렇다. 거의 모든 멜로디가 단순히 전통적인 멜로디 위주의 방법으로 작곡연주된 게 아니다. 내 목소리가 사용되었지. 그래서 잘 들어보면, 모든 현악기와 전체 오케스트라는 마치 물결치는 뱀처럼 서로 엮여가며 대위법을 연주하고 있다.
나가하마 감독님은 첫 번째 미팅에서 말하기를, 이 애니시리즈의 진행속도는 마치 소용돌이의 움직임을 반영해서 점점 빨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쇼가 진행될수록 내가 만든 음악속도 역시 점점 빨라진다.
정말 멋진 아이디어다. 분명히 작품 속 크로우즈 마을은 마치 자신 스스로를 잡아먹는듯한 모습을 보여줬고, 난 그 사운드트랙에서도 그런 느낌을 들을 수 있엇다. 소용돌이처럼 점점 반복되는 순간들, 예를 들어 계속 반복되는 똑딱거리는 소리가 사운드트랙 전체에서 완벽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작품 속에서 소용돌이는 여러 매체를 통해 그 형태를 보인다. 각기 다른 모습의 나선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악기나 전혀 다른 음악적 접근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나?
예를 들어, 바람과 물 같은 자연에서 보이는 소용돌이, 인간의 혀와 눈을 통해 보이는 소용돌이, 심지어 도자기나 달팽이껍데기 같은 곳에서 보이는 소용돌이까지, 각자 다르게 접근했는가?
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거의 4년이 넘게 걸렸기 때문에 음악 만들 때 애니메이션 장면에 맞춰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보통 영화 작업을 할 때처럼 화면에 맞춰 음악작업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난 그저 각본과 만화책, 그리고 캐릭터와 만화 속 컨셉들을 기반으로 작곡을 했다.
그래서 당신의 질문처럼, 나는 소용돌이의 여러 모습이나, 전반적인 내러티브와 캐릭터와 관련된 주제들을 다양한 곡들에 연결지으면서 작곡했다. 그런데 내 답변은 "그렇다"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마 당신이 생각했던 방식과는 조금 다를 가능성도 있다.
그래도 난 최대한 핵심까지 파고들고 싶어서 그 질문을 한 것이다.
우리의 구독자들 대부분은 당신만의 연주법에 대해서 잘 모를 것이다. 당신이 주로 사용하는 연주법인 순환호흡 연주법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정말로 독특하고 멋진 소리기 때문이다.
순환호흡 연주법은 고대 역사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온 연주법이다
쉽게 말해서 아주 오랫동안 숨쉬면서 연주하는 연주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하는 연주법이 상당히 어려운 연주법이라고 알고 있다. 근데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자전거 타는 것처럼 익숙해지면 매우 쉽다.
순환호흡 연주법을 사용하면 관악기를 거의 무한대로 연주할 수 있다. 다만 그런 과정에서 모든 근육과 얼굴이 항상 뻣뻣해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힘줄이 계속 팽팽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순환호흡 연주법은 그때그때 연주되는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다. 난 이런 연주법을 개성을 여러 방식으로 거의 40년 넘게 활용해왔다.
이 연주법은 매우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인류의 거의 모든 고대 문명에서 이 연주법을 사용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아마도 사람들이 소리를 내고 자연 세계에서 서로 교감하기 위해 사용했던 기술이었을 것이라고 상상된다.
나는 이 기술이 전통적인 입으로 전달되는 언어기술보다도 훨씬 앞서 있었다고 믿는다. 그 정도로 정말 오래된 기법이다.
https://youtu.be/-KoDRj3qHGs
[Twisted Souls]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곡은 정말 아름답고, 사운드트랙 앨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트랙 중 하나다.
이 곡은 곡의 뒤틀린 어둠 속에서 잠시나마 짧게 빛나는 순간처럼 느껴지고, 이건 마치 이토 준지가 <소용돌이>의 핵심을 묘사하는 방식과도 잘 어울린다고 본다. 위협적인 소용돌이로 가득 찬, 섬뜩하면서도 아름다운 세계 말이다. 당신의 음악에서 행복의 순간을 어떻게 찾아내는가?
이 작품 속에서, 행복의 순간은 마치 나무에 드디어 열매가 열리는 것처럼 나타난다.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달콤한 현상이다. 그 자체로도 이미 아름다움이지만, 동시에 그 안에는 어떤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희소성이 내재되어 있기에 더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사운드트랙에서 이런 순간들을 작곡하는데 정말로 좋아한다.
<소용돌이>를 위한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감독의 요구 사항은... 그것이 끔찍하고 기괴하며, 무서운 서스펜스가 담긴 바디호러 신체기형화로 가득 차있지만, 그와 동시에 엄청나게 매혹적인 무언가가 느껴지는 음악을 원했다.
마치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 안에도 더 많은 아름다움이 있는 그런 느낌 말이다. 이렇게 기괴하고 흉측한 것을 아름다움과 동시에 대조되는 듯한 느낌으로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Twisted Souls]는 색소폰도 사용했지만 비전통적인 방식으로 내 목소리를 색소폰과 조합한 곡이었다. 다른 곡들 중에, 즉 더 내면적이면서도 역동적이고 환각적이고 애특한 곡인 [Kirie and Shuichi]도 이와 비슷하다.
애니메이션의 매 오프닝마다 매우 섬뜩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가 당신의 사운드트랙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 같다. 당신의 음악에서 이 소리를 사용하여 그 크로우즈 마을을 어떻게 표현한 건가?
메인 테마 말하는 건가?
그렇다.
그래서 그건 앞서 말했던 음악적 접근방법 중 하나였다. 소용돌이가 사물뿐만이 아니라 사람이나 자연에도 미치는 그런 영향을 소리로 표현한 것이었다. 소용돌이는 다양한 것들을 다른 괴상한 형태로 비틀어 놓고, 내가 이런걸 음악으로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는... 모든걸 섞어버리는 것이다.
사실 당신이 사이렌이라고 부르는 그 소리는 내 목소리와 현악기 섹션을 섞어서 음압을 낮췄다. 그리고나서 그 섞은 소리의 질감이 마치 털이 엄청 복실복실 많은 괴물처럼 들리도록 믹싱해놨다.
이것은 작품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이며, 그 곡의 멜로디, 특히 후렴구는 여러 다른 곡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난다. 다양한 형태로 여기저기에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The eye follows the pattern]이나 [Eerily in the dark] 같은 곡에서는, 마치 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시청자에게 어떤 느낌으로 전달되기를 의도한건가? 이런 표현을 하고 싶었던 이유가 뭔가?
나는 그 째깍거리는 소리들보다, 오히려 째깍거리는 소리들 사이의 공간을 더 집중시키고 싶었다.
이런 심리학적 요소를 잘 이용하면 우리 몸은 무의식적으로 공포감정으로 반응하게 된다. 이를 사용하여 마치 시청자를 알게 모르게 간지럽히고 유혹하는 방식은 꽤 무섭게 느껴질 수 있다. 마치 숲 속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처럼 말이다.
째깍거리는 소리는 서스펜스를 쌓아 올리는 수단으로도 사용될 수 있고, 또한 다가오는 위협을 예고하며 주의를 끌기 위한 방법으로도 잘 활용된다. 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를 구현해냈다. 잘 들어보면 기괴하게 왜곡된 현악기 소리가 나는데, 이는 니켈하르파(nyckelharpa)로 연주한 것이고, 다른 몇 곡에서도 이미 써먹은 피아노 소리도 역시 깔려있다.
정말 멋지다.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최고의 효율적인 방식으로 불안감을 선사하고, 주변상황이 자꾸 계속해서 무너져가는 느낌이 드는게 매우 중요한 목표인 것 같다. 특히 이번 <소용돌이> 애니메이션은 각 에피소드가 짧기에 이게 더더욱 중요하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앞으로도 계속 애니메이션 음악에 참여할 계획인가?
좋은 질문이다.
특별히 싫은 장르 같은 거는 없다. 아직 음악제안조차 받아보지 못한 장르들이 많은데, 이야기가 내게 어울린다면 당연히 참여할 것이다. 그런 새로운 장르엔 경험도 없고 시도해본 적도 없기에 더더욱 뛰어들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대답은 그렇다. 내가 흥미를 느끼고, 내가 그 프로젝트에 새로운 것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이라면 더더욱 많은 애니메이션에 참여하고 싶다.
애니메이션 작업에 대한 제안은 여러번 있긴 있었지만, 일본애니메이션은 아니었다. 이게 유일했다. 그래서 그런 기회가 올 때 난 항상 열려있고 수용적인 마인드로 검토한다.
좋아하는 일본애니메이션 있는가? 일본이 아니더라도 국가를 떠나서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있는가?
왜 요즘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지 모르겠지만... 안그래도 최근에 이걸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일본애니메이션은 전혀 아니고, 매우 오래된 애니메이션인데, 아서 랭킨 주니어가 아주 오래전에 제작한 <호빗> 애니메이션 버전이 떠오른다.
그 애니메이션은 작화 스타일이던 성우 연기던 모두 정말로 뛰어나다. 모든 것이 뛰어나고 아름다우며 기괴했다. 나에게는 완벽하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고, 원작소설 축약도 정말 잘했다. 정말 시대를 초월한 작품이지.
당신도 이미 피터 잭슨 감독 <호빗> 실사영화의 수수께끼 장면을 이미 아실 것이다. 내가 말한 호빗 애니메이션에서도 그 장면이 나오는데 꼭 봐야 한다. 정말 완벽하기 때문이다. 골룸 역할을 맡은 성우인 브라더 시어도어의 목소리 연기는 정말 대단했다.
나도 확인해봐야겠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 만약 다음에 또 만난다면 소용돌이 음반 바이닐에도 반드시 사인해달라.
당연히 그러겠다. 이거 애니메이션 음반 바이닐이 너무 훌륭하게 잘 뽑혔다.
https://youtu.be/5f0qKjhKvR4
소용돌이 티저 떳을때부터 기대하고있다가 애니메이션이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김이 팍 식어버렸는데
사운드트랙이라도 들을겸 보고싶긴하네요
아니 그리고 바이닐 미치도록 매혹스럽네요 저걸 어떡하지
바이닐 사서 저 주세요
진짜 원래 계획대로만 나왔다면 걸작이었을텐데
차라리 1화만 나오고 취소되어버린 비운의 명작으로 기억할랍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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