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 10
2024.09.06
Jazz Fusion, Space Ambient, Progressive Electronic
https://www.youtube.com/watch?v=kFeGwhbqKiU
한 역병의 대유행으로 인해 세상이 멈췄던 2021년 음악계에는 하나의 큰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의 전자 음악가 Floating Points와 전설적인 재즈 아티스트 Pharaoh Sanders, 그리고 London Symphony Orchestra의 합작 앨범 <Promises>가 발매된 것이었다. 그들은 일렉트로닉 뮤직과 앰비언트, 그리고 재즈를 적절히 섞어내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리스너들에게 영적이고 초월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그리고 약 반년의 시간이 지난 그해 9월 신예 날라 시나프로(Nala Sinephro)의 반짝이던 데뷔작 <Space 1.8>가 발매되었는데, 마치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완벽한 타이밍에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다. <Promises>가 그러하였듯, 그녀의 데뷔작은 고요한 앰비언트 사운드 위에 재즈를 접목하며 — 세션의 즉흥 연주 속에서 자신의 영역을 발견하고 전개해나가였다.
약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발매된 그녀의 정규 2집 <Endlessness>는 겉으로 봐서는 <Space 1.8>과 별다른 차이가 존재하지 않다 보일 수도 있다. 두 작품 모두 재즈와 앰비언트, 그리고 일렉트로닉 뮤직을 결합하여 시공간을 거니는 듯한 영적인 경험을 선사하며, 또 숫자로 구분된 트랙들을 통해 앨범의 흐름과 호흡을 적절하게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Endlessness>는 <Space 1.8>과 동일한 고요한 공간에서 머무르지만, 그 영역을 더 넓게 확장시키고 선율 하나하나를 더 자세하게 쌓아간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Space 1.8>이 비교적 조그만 범위 내에서 정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다면, <Endlessness>는 그 고요 속에서 더욱 광활한 공간을 끊임없이 창조시켜내며 정교하게 배열된 음들이 귀를 사로잡는다는 것이다.
시나프로의 스튜디오에서의 밴드 리더로서의 역량은 근 몇 년간 눈에 띌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그녀는 <Endlessness>의 모든 트랙의 프로듀싱을 맡았으며, Rick David와 함께 엔지니어링도 담당하였다. 또 앨범의 모든 현악기 편곡도 맡았는데, 이를 지나치지 않게 다른 악기들과 동일한 절제된 감동을 선사한다. 이는 Lyle Barton의 키보드, Nubya Garcia의 색소폰, Morgan Simpson의 드럼, Shelia Maurcie-Grey의 트럼펫, 또 현악 앙상블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어우러져 청자들을 황홀한 현악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천상으로 이끌며, 우주의 질감을 느끼게 하는 경이로운 <Endlessness>를 완성시킨다.
<Endlessness>는 아르페지오를 중심으로 구성된 10개의 연속체(Continuum)으로 이루어져 모든 트랙이 마치 물결처럼 매끄럽게 이어져있다. 분명 모든 연속체들이 각자만의 개성을 지니고 있으나, 일관된 분위기를 중심으로 마치 하나의 거대한 파도가 여러 겹으로 펼쳐지는 것만 같다. "Continuum 1"은 black midi의 전 드러머 Morgan Simpson의 느슨한 드럼 비트와 James Mollison의 고독한 색소폰 선율, 그리고 시나프라의 모듈러 신디사이저 사운드가 결합되어 장엄함과 몽환적인 느낌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하며, 또 "Continuum 3"에서는 신디사이저와 하프를 중심으로 밝고 가벼운 울림을 선사한다. 신디사이저의 아르페지오가 보다 느려지고 하강하는 패턴이 추가되어 무중력의 우주를 체험하는 듯한 "Continuum 7", 그 뒤에 이어지는 드럼과 베이스의 역동적이고 강렬한 리듬을 통해 다시 청자를 현실로 끌어당기는 "Continuum 8" 모두 각기 다른 색채를 띠나— 동시에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앨범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으로 완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앨범의 전체 흐름의 절정과 아르페지오의 해방을 암시하는 마지막 트랙 "Continuum 10"에서는 피아노와 현악기가 물 흐르듯 어우러져 감정적으로 고조된 상태를 잘 그려내며, 동시에 앞서 등장한 모든 아르페지오들이 자유로이 해방되어 퍼져나가는 모습을 그린다. <Endlessness>가 끝나면 마치 모든 여정이 완벽하게 마무리된 것 같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 것만 같다는 묘한 여운이 남는다.
<Endlessness>는 시나프라의 역량, 그리고 가능성을 증명해냄과 동시에 이를 한데 집약시켜놓은 작품이다. 본작에서 그녀는 "앰비언트 재즈"의 잠재적인 도전 과제를 극복해 내며, 지나치게 고요하거나 제한되지 않은 눈부신 작품을 만들어냈다. 눈을 감고 들으면 편안한 감상이 가능하지만, 동시에 본작은 너무나도 경이로우며 또 복잡하다. 그녀는 여러 가지 장르를 융합해냄과 동시에 그 속에서 균형을 잡을 방법을 잘 알고 있으며, 섬세함과 강인함을 오가기도 하고 — 또 중력을 따라 흘러 내려가기도 하며 동시에 그 무게와 맞서 싸우려고도 한다. 시나프로는 그녀의 역량과 한계를 계속해서 깨부술 것이며 — 다음 앨범에서는 이보다 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녀의 미래에 또 한 번 기대를 걸어본다.
저 앨범 개좋음 aoty까지는 아니어도 확실히 올해 주목 많이 받을듯
더 많은 분들이 들어주셨으면 합니다잇
지금 듣는중인데 나쁘지 않네요
인스타에서 보고서 앨범 다운받고 계속 들었습니다
전 원래 이런 엠비언트류 쪽은 집중해서 끝까지 못들었는데 이 앨범은 신기하게 집중이 잘되고 정말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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