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스 짐머의 스코어 중에서 좋아하는 스코어들이 있습니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 테마와 <인터스텔라> 스코어 중 몇몇 곡을 꼽을 수 있겠네요. 최근에는 <듄: 파트 2>의 스코어도 좋았어요. 그러나, 저는 한스 짐머가 스코어 업계 전체에 끼친 악영향 때문에 최고라고 부르기가 선뜻 꺼려질 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음악인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한스 짐머와 그의 회사 리모트 컨트롤은 특유의 공장형 시스템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한스 짐머처럼 작곡하는 법을 배우면서 한스 짐머가 테마와 모티브를 던져주면 빈칸 채우듯이 완성하는 식이죠. 이런 작업 방식을 바탕으로 빠른 시간 안에 스코어를 완성한다는 점을 앞세워서 한스 짐머와 그의 회사는 업계를 휘어잡았죠. 물론,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이 크레딧이나 돈을 충분히 받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한스 짐머 본인은 협업하거나 자신의 밑에서 일한 사람들에게 크레딧을 최대한 나눠주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전히 그에게는 작곡 대필 의혹이 따라다니고, 그의 회사는 작업 환경이 열악하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다른 작곡가에 비해서 빠른 시간 안에 작업하는 것을 앞세워서 업계를 휘어잡은 만큼 과로하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다가 그 회사에서 일한 사람들의 폭로에 따르면 시급 12달러에 추가 근무 수당이 없다고 합니다.
또한, 한스 짐머와 그의 회사가 업계를 장악하면서 한스 짐머처럼 작곡하는 작곡가들이 업계에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한스 짐머와 협업하면서 사실상 그의 작곡 대필을 담당했던 톰 홀켄보그(정키 XL)과 론 바르프가 있죠. 여기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의 예술업계를 하나의 스타일이 정복하면 그만큼 다양성이 떨어져서 업계 전체에 타격이 가고, 그 예술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예술 자체의 풍부함이 줄어드는 것이죠. 심지어 한스 짐머 특유의 스타일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비판하기 전에 한스 짐머 스타일의 장점부터 살펴보죠. 저는 한스 짐머가 업계에 미친 악영향이 너무나 크기에 마음 놓고 최고라고는 못해도 이름을 그만큼 날릴 만한 이유는 있다고 보거든요. 한스 짐머는 존 윌리엄스처럼 라이트모티프의 멜로디를 관객의 귀에 맴돌게 하는 것보다는 잘 매만진 질감과 음색이 마치 천둥번개처럼 관객을 향해 내려치게 만드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데에 강한 작곡가입니다. 한스 짐머가 작곡한 스코어가 기억에 남았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멜로디보다는 특정한 질감의 음이 내려치는 순간들이죠. 여기에는 한스 짐머가 도가 텄기 때문에 그가 업계에 미친 커다란 악영향에도 불구하고 영화 음악 작곡가로서의 재능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크나이트>의 'Why So Serious?' 장면이나 <듄: 파트 2>에서 폴이 아라키스 남부에 거대한 모래벌레와 함께 도착하는 순간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물론, 한스 짐머가 기억에 남는 멜로디를 아주 못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놀란 배트맨 3부작의 배트맨 테마나 <인터스텔라>의 몇몇 스코어들의 라이트모티프 멜로디는 기억에 남죠. 그러나, 그 곡들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멜로디가 음색과 질감에 비하면 부차적인 요소로 느껴집니다. 실제로, 한스 짐머는 전통적인 라이트모티프보다는 시퀀스의 어디에 들어가도 무리가 없는 환경적인 소리를 만드는 것을 선호한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한스 짐머의 스타일에는 섬세한 표현력이 부족합니다. 그의 스코어는 감정을 써내려감으로써 입체적이고 풍성한 경험을 주는 날카로운 펜이라기보다는 그저 감독이 이미 영상으로 형성한 감정에 밑줄을 그어주는 뭉툭한 형광펜에 가깝죠. 게다가, 한스 짐머의 스코어를 들을 때 인상적인 순간들은 있지만, 그 인상적인 순간들을 둘러싸고 있는 부분들은 요란하지만 비어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냥 한스 짐머가 테마를 던져주면 빠른 시간 안에 보조 작곡가들과 인턴들이 특색 없는 앰비언스로 채운다는 인상이 들어요. 그래서 한스 짐머와 그의 스타일을 따온 사람들이 못 만들 때는 듣는 사람을 정말 피곤하게 만드는 스코어가 나와버리죠. 이 두 개의 단점은 한스 짐머의 공장형 시스템이 빠른 작업 시간을 자랑하는 만큼 놓치는 부분들을 명확히 드러냅니다. 문제는 한스 짐머가 만들어낸 공장형 시스템이 업계를 휘어잡고 그 시스템으로부터 탄생한 작곡가들도 그 시스템을 적극 차용하니 이 단점들을 답습하는 스코어들이 업계를 장악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점점 섬세한 표현력을 라이트모티프의 멜로디로 뽐내는 스코어들을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고, 하나같이 퍼커션의 힘과 질감을 뽐내면서 관객의 귀를 내려치는 부분과 꽤 요란하지만 흐릿한 앰비언스 사이를 오가는 스코어만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스코어가 하향평준화되어버렸어요. 그런 결과를 부른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지금까지도 차용하는 작곡가이기 때문에 한스 짐머를 최고의 작곡가라고 부르기가 선뜻 망설여집니다.
어느정도 동감 합니다 비단 영화음악 뿐만 아니라 현시대의 많은음악들에서 선율에 대한 생각을 배제하고 만든 음악들이 너무나도 많은것 같아요 각자의 취향이 있는 거지만 저는 좋은 선율의 흐름은 항상 존재했고 그런 부분들을 디테일하게 음악에 담아내는 것 자체가 굉장히 성의있게 음악을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해요낮은 음역대의 악기들까지도 한음한음 고민하면서 만든 음악들은 분명히 다른 음악들보다 힘이 있다고 생각해여
관련된 논란은 처음 아는 내용이네요.. 정보추
듄1을 극장에서 볼 때 사운드트랙이 너무 시끄러워서 못 들어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이유를 말씀하신 내용에서 찾는 것도 가능하겠네요
저도 한스짐머 시끄러워서 별로 안좋아함
필름 스코어 쪽에서 어떤 뮤지션들 좋아하시나요?
당장 떠오르는 사람들은 존 윌리엄스, 마크 머더즈보 정도에요.
멜로디와 관련된 부분은 매우 동감하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엘머 번스타인 좋아합니다
마음속에만 있던 그런 말들을 글로 너무 깔끔하게 정리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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