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자를 위한 외국 힙합 입문 가이드 part 1
개인적으로는 어떤 장르든 간에 '입문용 앨범'이란 표현이 조금은 우습다. 모름지기 예술이란 분야는 취향이 80~90% 이상 좌우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초심자가 친구에게 추천 받은 어떤 앨범을 듣고 입문한다 치자.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성공적인 입문일까? 그대로 외국 힙합에 입문하여 매니아가 된다면, 즉 자연스럽게 입문에 성공하게 된다면, 그건 운 좋게 자신의 취향과 맞는 앨범을 찾았을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그렇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까지 되면서 음악을 들으려는 사람은 드물겠지만)의 초심자, '난 정말 요만큼도 모른다' 의 상태라면 그만큼 막막한 일도 없을 것이다. 바로 그런 분들을 위해 몇 가지 길을 제시하고자 이 글을 작성하게 됐다. 물론 이 글 역시 수많은 루트 중 하나일 뿐, 정답은 없다. 고로 자신과 맞지 않는다거나 불편하다면 그냥 다 때려치고 듣고 싶은 거 들으면 된다.
1. T.I - Paper Trail (2008)
처음부터 요즘 세대들의 눈으로는 좀처럼 적응하기 힘든 색감과 거친 스타일을 가진, 소위 90년대 '골든 에라' 시대 명반들에 집착할 필요 없다. 힙합과 일렉, 소울의 경계가 모호해진 요즘 우리에게 가장 거부감 없이 들을 만한 앨범을 하나 꼽아보라면 바로 이 티아이(T.I.)의 6집 앨범 [Paper Trail]을 권하고 싶다. 티아이의 다른 앨범들 역시 충분히 하이퀄리티를 뽐내지만 그 중에 이 앨범이 가장 성공했기 때문에, 즉 대중적으로 가장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만큼 쉽게 적응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특히나 앞으로 추천할 앨범들에 속속 등장하게 될 유명 래퍼와 프로듀서들이 이 앨범 곳곳에 산재해 있어 입문작으로 더 할 나위 없다. 랩과 비트를 충분히 감상한 다음, 반드시 뮤직비디오와 가사 해석, 그리고 원래는 눈물 없이는 듣기 힘든, 하지만 흑인이라 간지나는 그의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읽어보기 바란다. 이 정도만 해주면 티아이의 노예가 되는 건 순식간이다.
2. Kanye West - Late Registration (2005)
취미란에 '음악 감상'을 적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칸예 웨스트(Kanye West)를 알고 있을 것이다. 앨범을 소장하고 있지 않더라도 여기저기서 그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며 그의 얼굴이라든가 패션, 혹은 소소한 가십 등등. 분명 어디선가 한두 번쯤은 듣거나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유명하다. 칸예는 이 바닥에 뛰어들 때부터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트렌드를 주도해 왔으며 몇 년이 지난 요즘도 여전히 변화하며 발전하고 있다. 특히, 칸예의 1~3집은 따로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큰 환호와 갈채를 받았으며 음악적으로, 그리고 대중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이 앨범은 요즘의 칸예 스타일과는 많이 다르다. 가사를 몰라도 편안히 감상할 수 있고 힙합을 몰라도 흥얼거리기엔 충분하다. 한 가지 팁이라면 이 앨범에선 칸예의 랩 자체에 너무 집착하지 말도록. 앨범 전체를 가볍게 돌려보는 것만으로도 ‘또 듣고 싶은 힙합’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을 테니까.
3. Eminem - The Marshall Mathers LP (2000)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 에미넴(Eminem)을 모른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것-에 내 목숨과도 같은 수면양말 두 쪽을 걸겠다. 심지어 우리 고모도 알고 계신다.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다만 에미넴의 많은 앨범들 중에 이 [The Marshall Mathers LP]를 선정한 이유는 이 앨범 전의 결과물들은 초심자들이 접하기엔 다소 하드코어하며 이후의 결과물들은 조금 독특하기 때문.
4. Jay-Z - The Blueprint (2001)
제이지(Jay-Z)를 뉴욕의 제왕의 자리에 앉게 만들어준, 그리고 힙합 명반으로 앞다투어 손꼽히는 [The Blueprint]이다. 시간이 없다면 2001~2003년 사이의 힙합 음악은 이 앨범 하나만 들어도 충분하며 입문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제이지의 가장 큰 매력은 영리하고 스타일리시하다는 것. 이 앨범 이후로 가수 활동을 비롯해 어느 분야에서든 '실패'하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끽해봐야 몇몇 앨범이 조금 덜 팔린 정도? 그렇다고 해서 이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도 아니다. 힙합계에 수 많은 별들이 노닐었던 90년대 중후반에 데뷔해 꾸준히 활동해왔다. 하지만 부와 명성, 그리고 최강자로 군림하기 시작한 건 이 앨범이 출발점이 된 거나 다름없다. 이전 앨범에서 보여줬던 조금은 투박했던 랩 스타일을 한 차례 정제시킨 듯한 느낌, 즉, 대중들로 하여금 조금은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한층 더 깔끔한 스타일을 선보인다. 이 앨범의 또 다른 주역들인 프로듀서 저스트 블레이즈(Just Blaze)와 칸예 웨스트 역시 이 앨범의 백미이므로 절대 놓치지 말 것!
5. Lil Wayne - The Carter III (2008)
여전히 호불호가 갈리지만 이 남자를 빼놓고 현 힙합씬을 얘기할 수 없다. 자세한 디스코그라피를 나열하진 않겠으나 자타가 공인하는 워커홀릭이자 믹스테입 제조기다. 약간의 과장을 더해서, 2000년대 중반 즈음해선 좀 괜찮은 비트들이 떴다하면 전부 릴 웨인(Lil Wayne)의 목소리를 거쳤다-라고 봐도 될 정도의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준다. 그 중 [Tha Carter III]는 이전 그의 앨범들이 갖추지 못했던, 상당한 수준의 밸런스와 성숙한 랩을 선보여 2008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돼 버렸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지만 가사면에 있어서는 비교적 단순하고 선정적인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독특한 개성과 스타일로 많은 사람들, 특히 -힙합을 잘 듣지 않던- 여성 팬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어느 순간 '오 좋은데?‘ 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처음엔 징그럽다고 느꼈던 -마치 오랫 동안 비염을 앓아온 듯한- 그의 목소리에 중독돼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6. 2pac - All Eyez On Me (1996)
레전드. 드디어 나왔다. 조금 더 높은 순위에서 다루려 했지만 아무래도 요즘 세대들의 귀로는 적응하기 만만치 않으리란 생각에 약간 뒤로 미뤘다. 말 그대로 전설. 투팍(2Pac)에 의해 시작된 것, 투팍을 추종하는 사람들, 투팍에 관련된 일화와 루머 등등, 정말 끝도 없다. 웨스트코스트 랩을 즐겨 듣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열거한 릴 웨인, 칸예 웨스트를 잘 모르는 이들도 투팍을 무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힙합 역사상 최초의 2CD 앨범이자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던 [All Eyez On Me]. 음악 자체는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그러니 그만큼 팔린 거고. 앨범 자체에 대한 얘기만 하려 했으나 이 앨범이 발매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이 앨범과 떼레야 뗄 수가 없으니 감상 후 꼭 알아보도록 하자. 그리고 96년에 나온 앨범이라 고리타분할 거라는 고정 관념 때문에 이 앨범을 놓치는 일은 없도록 하자. 수십, 수백 번을 들어도 매번 만족하는 앨범은 흔치 않다.
7. Lupe Fiasco - Lupe Fiasco's The Cool (2007)
내 페이보릿 엠씨 리스트 3위 안에 항상 자리하고 있는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의 두 번째 앨범이다. 삼박자를 고루 갖췄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부감이 없다. 물론 장르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요즘 힙합 음반에 단골 손님인 강렬한 신디사이저도, 릴 웨인이나 제이지처럼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부담감도 덜하다. 한마디로 소프트하고 편안하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아티스트들의 앨범들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루페 피아스코에게 가사, 즉 '메세지'를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뛰어난 표현력과 상상력, 특히 본인의 경험을 사물이나 상황에 이입시켜 재치있게 뱉어내는 가사들은 대중들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감’이라는 힘을 극대화 시켜준다.
8. Dr.Dre - 2001 (1999)
CD로 구매했든, 동영상 사이트에서 감상했든,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간에 이 앨범을 듣는 동안 몸을 가만히 둘 수 있다면 당신은 굳이 힙합이란 장르를 들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우리가 닥터 드레(Dr. Dre)의 신보에 징징대는 것도 이 앨범 때문이며 힙합을 언급할 때 스눕(Snoop Dogg)이나 에미넴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 것도 이 형 몫이 크다. 발매한 지 10 여년이 지난 앨범 가운데, 당장 오늘 밤 클럽에서 들어도 어색하지 않을 몇 안되는 앨범이다. 부연 설명이 길었다. 이렇게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앨범인데... 개인적으로 닥터 드레의 G-Funk는 현대 음악에서 가장 훌륭한 실험작이자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 뿌리를 살펴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즉, 약간의 변화만 줬을 뿐인데도 많은 이들로 하여금 환호하고 따르게 만들었다. like 수면 양말...
9. DJ Khaled - We The Best (2007)
원성이 들린다. 하지만 명심하자. 이 글은 완전 생 초심자들을 위한 가이드라는 것을. 사우스 힙합의 여러 명반들을 제치고 이 앨범을 택한 이유는 ‘가장 적응하기 쉽다’는 데 있다. UGK, 자 룰(Ja Rule), 넬리(Nelly), 칭기(Chingy), 릴 존(Lil Jon) 등등, 모두 서던 힙합에 한 획을 그었던 인물들이지만 이들보다 요즘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둔 디제이 칼리드(DJ Khaled)의 [We The Best]. 그냥 컴필레이션 앨범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 앨범을 적당히 소화하고 나면 요즘 잘나가는 아티스트들의 목소리를 단번에 캐치할 수 있다. 물론 이 앨범만 따로 놓고 보면 밸런스도 형편없고 그다지 오래 들을 만한 앨범도 아니며 컨셉- 이딴 것도 없다. 무엇보다 '칼리드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라는 생각부터 갖게 될 거다. 그러니 너무 깊이 들어가진 말자. ‘난다 긴다하는 남부 래퍼들을 소개하는 앨범‘ 정도의 개념을 가지고 듣는다면 좋은 입문작이 될 것이다.
10. Nas - Stillmatic (2001)
굳이 입문 얘기가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에게 부탁하건데 [Illmatic]이라는 이름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았으면 한다. 물론 [Illmatic]은 내가 힙합에 입문했던 첫 앨범이자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앨범이긴 하지만 초심자들에게 적합한 앨범은 아니라고 본다. 점점 상업적으로 변해간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던 나스(Nas)의 회심의 역작이다. 나스에 대해 길게 설명하는 건 시간 낭비일터이니 그냥 들어 보도록 하자. 어째서 주변에 힙합 좀 듣는 다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나스의 이름을 이야기하는지, 1집과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앨범이다.
글 | heman
힙합의 매력을 느낄 앨범을 잘 소개해주셨내요. 저도 저 앨범들과 함께 할때 와 힙합 정말 멋지고 좋구나! 했던 앨범들이내요.
명반들이나 꼭 들어야할 앨범들을 알고싶었는데..
이렇게 자세히 설명까지 해주시니..감사합니다 잘읽었어요!
일단 5번까지만 들어봐야겠다
이전꺼는 얼마나 쎗던건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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