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음악은 많아졌고, 기억에 남는 음악은 적어졌다. 그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힙합엘이 매거진 에디터들이 한껏 마음 가는 대로 준비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들어보면 좋지 않을까 싶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2020년 7월의 앨범들이다.

잠잠하다 싶으면 또 새로운 프로젝트를 들고 오는 우리의 로버트 글래스퍼(Robert Glasper). 이번에는 작정하고 정말 카마시 워싱턴(Kamasi Wahington), 테라스 마틴(Terrace Martin), 나인스 원더(9th Wonder)와 함께 어마어마한 슈퍼그룹을 결성했으니. 그 이름하여 디너 파티(Dinner Party)가 되겠다. 현 시대 새로운 재즈의 흐름을 이룩한 이들이 뭉친 만큼, 데뷔 앨범 [Dinner Party] 역시 실험적인 사운드에 가슴이 웅장해질 거 같지만 실상은 힙합 기반의 퓨전 재즈 사운드가 주를 이뤘다는 점은 반전 포인트. 덕분에 힙합 팬들은 카마시 워싱턴의 솔로 연주, 구성진 펠릭스(Phoelix)의 보컬과 함께 어우러진 둔탁한 비트에 그저 몸을 맡길 수 있다. 참여진이나 리스너 모두 일상과 커리어에서 쉼표를 찍는 앨범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Juice WRLD [Legends Never Die]
발매일: 2020/07/10
추천곡: Tell Me U Luv Me, Life's a Mess, Wishing Well
주스 월드의 마음을 건드리는 가사, 유려한 멜로디는 항상 약이었고, 앨범의 부족한 짜임새는 항상 독이었다. [Legends Never Die] 역시 그런 전작들의 장단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난 뒤 공개된 사후 앨범이라는 사실 자체가 앨범의 줄거리로 달라붙으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몰입감을 제공한다. 이렇게 서사가 채워지고 나니 본래의 장점이었던 탁월한 멜로디 라인은 더욱 깊게 뇌리에 박히고, 세상을 떠나기 전에도 항상 써 내렸던 울적한 가사는 더욱 강한 울림을 지니게 되었다. "Life's a Mess", "Wishing Well" 등 생전 발표했던 곡들보다 더 큰 중독성과 완성도를 자랑하는 킬링 트랙들도 큰 몫을 해냈다. 주스 월드의 생애가 끝맺어진 다음 공개됐다는 걸 너무나도 믿기 싫을 만큼, 그의 음악성이 드라마와 합쳐져 만개해버린 프로젝트.
Lianne La Havas [Lianne La Havas]
발매일: 2020/07/17
추천곡: Bittersweet, Paper Thin, Please Don't Make Me Cry
지난 5년의 공백기는 리앤 라 하바스(Lianne La Havas)에게 많은 아픔을 안겨주었고, 동시에 그를 인간으로서, 그리고 아티스트로서 한 단계 성장하게 했다. 그 사이 그는 할머니와 증조할머니를 잃었고, 연인과 결별을 맞이했으며, 멘토였던 프린스(Prince)의 죽음을 직면해야 했다. 그 이후 돌아온 리앤 라 하바스가 한 일은 그 애절한 마음과 앞으로의 다짐을 오롯이 음악에 담아내는 것. 데뷔 때부터 인정받아온 기타 연주와 목소리는 이번 앨범에서 본인의 프로듀스를 통해 가장 ‘자신의 것’으로 표현됐다. 3집에 이르러서 앨범에 셀프 타이틀이 붙게 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 때문일 것이다. 모든 트랙은 커다란 테마 아래 하나로 이어져 나가고, 그 마지막은 희망적인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오랫동안 그의 작품을 기다려온 그리고 기다릴 이들에게 보여준 완벽한 재출발점.
Jessy Lanza [All the Time]
발매일: 2020/07/24
추천곡: Lick in Heaven, Badly, Over and Over
제시 란자(Jessy Lanza)는 전자음악 레이블 하이퍼팝(Hyperdub) 소속의 아티스트다. 그는 일렉트로닉과 알앤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얼터너티브한 사운드를 선보이며 마니아들의 찬사를 받아왔다. 그러나 그의 두 전작들이 워낙 실험적인지라 음악성에 비해 대중의 눈에 띄지 못한 감이 살짝 있는데, [All The Time]은 다행히도(?) 조금 더 가볍고 편안한 사운드로 채워져 있는 편이다. 제시 란자와 든든한 파트너 제레미 그린스펀(Jeremy Greenspan)은 다양한 전자음악의 요소를 합쳐냄은 물론, 80년대 포스트 디스코 사운드의 향취까지 앨범 전반에 불어 넣었다. 아직 그의 이름이 낯설다면, “Alexander”나 “Baby Love”에 담긴 컨템포러리 알앤비 사운드에 귀를 기울인 다음 초반부 트랙을 감상해 보는 것을 추천해 본다.
Kamaal Williams [Wu Hen]
발매일: 2020/07/24
추천곡: Street Dreams, 1989, Hold On
2010년 말에 들어 갑작스러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영국 재즈 아티스트. 이 중에서도 카말 윌리엄스는 중심인물이라 할 만큼 영국의 전자음악과 재즈 씬을 누벼왔다. 그런 그의 두 번째 정규앨범 [Wu Hen]은 70년대 퓨전재즈와 90년대 브로큰비트(Brokenbeat)의 요소를 섞어 낸 전작과 음악적인 결을 비슷하게 이어간다.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 더 재즈·훵크에 초점을 맞춰 부드러운 사운드를 들려준다는 것. 예시로는 스트링 편곡자 미겔 앳우드 퍼거슨(Miguel Atwood-Ferguson)이 참여한 “Street Dreams”, “1989”, “Toulouse”를 들 수 있으며, 로렌 페이스(Lauren Faith)가 참여한 “Hold On” 역시 네오 소울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 여러 음악들을 융합했던 전작의 신선함에는 살짝 못 미치지만, 영국 재즈 음악의 현주소를 가볍게 파악하기에는 좋은 작품.
The Kid LAROI [F*CK LOVE]
발매일: 2020/07/24
추천곡: GO, TELL ME WHY, ERASE U
랩 록, 이모 랩, 무엇이라 부르든 힙합 씬에서 록 음악을 베이스로 한 음악을 내놓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러한 이모 랩 열풍을 이끌던 주스 월드와 텐타시온(XXXTENTACION)이 세상을 떠난 지금, 키드 라로이는 이모 랩 록 씬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아티스트 중 하나다. 이번 앨범에서는 그에게 큰 영향을 준 동료 주스 월드를 잃게 된 후의 감정을 담아낸 “TELL ME WHY” 같은 트랙에서 목소리에 애절함을 담아낼 줄 아는 키드 라로이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있다. “GO”는 그 둘이 얼마나 좋은 궁합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줘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한다. 그 밖에 국내에서도 유명한 니요(Ne-Yo)의 2006년 히트곡을 새로운 감각으로 풀어낸 재밌는 트랙도 있다. 여전히 진한 이모 랩이 고프다면 이 앨범을 들어보자.
Logic [No Pressure]
발매일: 2020/07/24
추천곡: Hit My Line, DadBod, Heard Em Say
음악가는 작품 제목을 따라간다 했던가. 데뷔 앨범 [Under Pressure]는 이후 모든 앨범의 발목을 잡았고, 그럼에도 급증해버린 팬덤과 함께 그의 부담감은 하늘을 찔러버렸다. 그렇기에 마침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은퇴작 [No Pressure]는 가뿐하고, 또 촘촘하다. 자신을 짓누른 부담감, 랩 게임에서 생존하며 느낀 감정,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얻게 된 새로운 시각 등 허투루 채워 넣은 이야기가 거의 없다. 또, 전작들에서 끄집어낸 오마주 요소들과 [Under Pressure]의 "Soul Food"를 꼭 빼닮은 "Soul Food II" 등, 로직에게 큰 애정을 갖고 있던 리스너일수록 몰입할 구석이 자꾸만 보인다. 로직의 그간 수고했던 자신을 향한, 동시에 팬들에게 바치는 훌륭한 헌사.
OTTO [World Greetings - EP]
발매일: 2020/07/29
추천곡: Bathroom on the Bus, About You Now, Massachusetts Cowgirl
‘에어팟 프로’ 덕에 노이즈 캔슬링 기능까지 흔해진 마당에, 보유한 오디오 기기의 유려한 소리를 시험할 음악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일렉트로닉 신예 오토(OTTO)의 첫 EP [World Greetings]는 그러한 목적에 딱 적합할지도 모른다. 인트로를 지나치자마자, 귀를 두드리는 온갖 소리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내달리기 시작한다. 140 BPM을 넘는 평균 템포 덕에, 1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도 괜히 풍성한 느낌이 드는 건 덤. 그나마 따뜻한 "About You Now"를 제외하면 인간미(?)가 묻어 있는 트랙이 없기에, 커버 아트와 맞물려 조금은 무서운 프로젝트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혹시 모른다. 고개를 흔들며 무아지경 함께 휩쓸리다 보면 어느새 비슷한 계열의 다른 뮤지션들을 알아보고 있을 수도.
Brandy [B7]
발매일: 2020/07/31
추천곡: Saving All My Love, Borderline, I Am More
브랜디(Brandy)는 매 작품마다 진화한 음악 세계를 선보이며 현 시대의 음악가들에게 롤 모델로 여겨지고 있는 존재다. 무려 8년 만에 발표된 7집 [B7]은 올드 팬들과 함께 요즘 세대의 취향까지 모두 고려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브랜디는 앨범 전반에서 풍부한 화음을 쌓으며 부드러움과 복합적인 감정을 청자에게 느끼게끔 만든다. 여기에 DJ 캠퍼(Camper)가 앨범 전반을 프로듀싱해, 브랜디의 시작인 90년대의 알앤비와 현대 알앤비 사운드를 한데 조화시켜 놓았다. 브랜디는 살아가면서 느낀 부정적인 감정과 경험들을 표출하고, 이로 인해 진정한 내면의 평화를 찾으며 앨범을 마무리한다. [Never Say Never], [Full Moon]을 통해 지난 경험을 털어내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던 브랜디. [B7]을 통해서도 개인으로서, 아티스트로서도 한 단계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냈기에 더욱 반갑다.
Dominic Fike [What Could Possibly Go Wrong]
발매일: 2020/07/31
추천곡: Come Here, Chicken Tenders, Politics & Violence
지난해 “3 Nights”로 많은 사랑을 받은 도미닉 파이크의 첫 정규 앨범이 나왔다.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부터 케빈 앱스트랙트(Kevin Abstract), 할시(Halsey) 등 많은 동료 아티스트들이 ‘넥스트 빅 띵’으로 인정한 그의 첫 앨범은 사운드 면에서 굉장히 다양하다. 싱글 컷된 “Chicken Tenders”와 “Politics & Violence”가 팝 알앤비와 약간의 힙합을 담고 있었다면, 앨범은 인트로 트랙부터 찢어지는 기타 사운드로 예상 밖의 출발을 알리고, 그러한 무드는 다음 트랙까지도 이어진다. 록 사운드 기반의 트랙부터 힙합, 팝 알앤비까지 온갖 장르를 오가지만, 모든 트랙들이 일정한 무드 안에서 전개된다는 점에서 통일성도 갖췄다. 성공을 맞이한 어린 아티스트가 느끼는 솔직한 감정들을 다채로운 사운드와 함께 만날 수 있다.
City Morgue [TOXIC BOOGALOO]
발매일: 2020/07/31
추천곡: HURTWORLD '99, YAKUZA, ALL KILLER NO FILLER
멤버 질라카미(ZillaKami)의 욱일기 사랑이 자꾸만 도를 넘어 다음 앨범에 대한 관심이 뚝 떨어졌는데, 신보 [TOXIC BOOGALOO]가 시티 모그(City Morgue)의 가장 정제되고 멀끔한 정규 앨범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여전히 가슴을 뻥 뚫어주는 트랩 메탈 사운드는 궤도에 올라 있고, 질라카미와 소스물라(SosMula)의 성대가 나갈 듯한 악지름도 다행히 건재하다. 그럼 전작과 뭐가 다를까 싶지만, 의외로 기름기를 쫙 뺀 러닝타임(19분)과 각 멤버의 개인 트랙들에서 보여준 역량이 차별점을 만들어냈다. 아무래도, 시티 모그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추천할 수 있는 정규작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ditor
힙합엘이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
테야나 테일러 신보 얘기에 브랜디의 [B7]이 올라와 있네요. 수정 바랍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
TOXIC BOOGALOO 존나 좋은데 욱일기로 병크를...
항상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 들을게요!
리앤 라 하바스 너무 좋음
좋은정보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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