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를 가리지 않고 존재하는 속담이 있다. 한국어로는 '유유상종', 영어로는 '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라고 하던가, 비슷한 성질의 것들은 결국 모이게 된다는 뜻이다. 2010년대 한국힙합들의 문제아들이 집합한 패거리, Just Music은 주축 멤버들의 계약 종료와 함께 자연스레 와해되었으나 여러모로 신비주의적 이미지를 갖고 있던 두 아티스트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트게 되었다. 새로운 보금자리가 된 회사인 '희대의'는 중단됐던 그들의 활동에 박차를 가할 신호탄으로 보였으나 야속하게도 2년동안 유의미한 작업물은 공개되지 않았다. 2년의 시간동안 공개된 것은 기대치에 근접하지조차 못했던 블랙넛의 싱글 '0'과 라이브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몇 트랙 뿐이었다. 그렇게 레이블 '희대의'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자연스레 희석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2026년의 7월, 블랙넛의 인스타에 의미심장한 포스트가 올라왔다. 손가락 5개를 펼친 초췌한 셀카와 함께 7월 18일 저녁 6시를 언급하고 있었다. 발매 전까지 사람들은 '블랙넛의 싱글일 것이다', '희대의의 컴필레이션 앨범일 것이다'와 같은 의견을 내놓았으나 웃프게도 그 어떤 작업물도 발매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하였다. 블랙넛의 손가락이 하나씩 접혀가며 다가온 7월 18일에 나타난 것은 6곡 분량의 컴필레이션 앨범이었다.
컴필레이션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은 한껏 상기된 리스너들의 감정을 북돋 듯 공격적인 FX 사운드로 시작된다. 블랙넛과 씨잼이 한 마디씩 뱉는 인트로는 희대의라는 레이블이 신기루처럼 존재하는 허상의 존재가 아니라, 실존하는 그 어떤 무엇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블랙넛은 무척 공격적인 발성을 트랙에 타격감을 불어넣었고 씨잼은 고요히 흐르는 물처럼 바톤을 이어받아 대비 효과를 이루어냈다. 특히 씨잼의 도사같은 랩은 '걘'에서 선보였던 싸이키델릭 힙합의 청사진을 그대로 재현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오프너를 완성시켰다. 그러나 인트로 트랙의 모든 부분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블랙넛의 쥐어짜는 하이톤 래핑은 곡 전체의 속도감을 이끌지만 청자로 하여금 양산형 속사포 트랩이라는 오묘한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이어지는 트랙인 '잡아가세요'는 1번 트랙에서 불어넣었던 긴장감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킨다. 희대의 듀오는 1번 트랙에서 만들어냈던 음산하고도 긴장되는 분위기를 레트로한 감성의 신스로 풀어내는 선택을 한다. 이러한 영리한 트랙배치는 6곡의 한정된 트랙에서 성공적인 분위기 환기를 진행하며 '도모'를 하나의 완성된 앨범으로서 선보일 수 있는 근거로 자리한다. 곡 내부적으로 엄청 대단한 요소가 있는 것은 아니나, 블랙넛의 재치있는 소재의 훅은 청자에게 흥미를 유발하고 씨잼의 유려한 래핑은 단순히 웃긴 가사의 트랙으로 끝나지 않게 한다. 한편 본 트랙은 여러 페스티벌에서 사전에 선보여졌던 트랙으로 어딘가 먹먹하게 믹싱된 그들의 목소리가 세간의 아쉬움을 만들어낸 요인이 되었다.
세 번째 트랙은 '아 내 고통'은 앨범의 베스트 트랙을 뽑을 때 후보로 들어가 마땅하다. 앞선 트랙의 '잡아가세요'는 인트로 트랙에서 선보였던 양산형 트랩 앨범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제거하는 동시에 본 앨범이 '블랙코미디', '싸이키델릭' 풍의 앨범이 될 것임을 잘 예고하였다. 본 트랙에서 두 화자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울메트로부민의 미니멀한 신스 라인 아래, 수놓인 씨잼의 공허감은 창의적이면서도 중독성 있는 수준높은 훅을 완성시켰고 블랙넛은 최고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길 자처하며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이 중 주목해야 할 것은 블랙넛의 가사로, 늘 그렇듯 바운시한 플로우와 함께 자신의 지난 날(고통)을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그가 내뱉은 첫 마디 '내 최고의 빠순이 그녀 마저 날 떠나고'에서 지난 3년의 공백기 도중 이별을 겪었음을 시사하는 동시에 그녀와의 추억이 지뢰처럼 깔려있다고 언급하며 블랙넛만이 만들 수 있는 표현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뒤 이은 가사에서는 그러한 이별이 자신에게 어느정도로 고통스러웠는지, 알코올이라는 소재와 연결해 설명하며 이 때문에 '희대의'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었음을 설명한다. 본 트랙은 수준 높은 훅메이킹, 벌스를 포함해 레이블 '희대의'의 대표인 인간 김대웅이 어떤 일을 겪어왔는지 설명한다는 트랙이라는 점에서 앨범 내외적으로 가장 중요한 트랙이다.
하지만 네 번째 트랙 '잊어버리기로 해'는 어떠한 측면에서 보든 희대의의 실책으로 남는다. 씨잼의 반복적인 후렴구와 함께 시작되는 드랍은 앨범 중반부에서 방점을 찍으려는 듯한 의도로 느껴지만, 그 의도가 노골적이고 예측 가능한 범주여서 지루함만을 남긴다. 특히 이전 트랙들보다 단순하고 플랫된 듯한 멜로디는 씨잼의 무의미한 후렴구와 겹쳐 악효과를 낸다. 히든 피처링으로 등장한 TAKUTELLER의 작사법은 과하게 단순하며 유의미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는 음절 컨테이너의 역할을 할 뿐이다.
다섯 번째 트랙 '리킹 더 스카이'는 네 번째 트랙에서 저질렀던 실수를 꽤 깔끔하게 정리한다. 세 번째 트랙 '아 내 고통'과 같이 아날로그하면서도 센치한 무드의 비트는 자기회고적인 가사와 상당한 시너지를 낸다. 그렇기에 '누구나 한 번씩은 혼자여봤을 걸'이라는 씨잼의 한마디는 앞선 트랙 '잊어버리기로 해'에서 3분동안 강조했던 메세지보다 설득적으로 들린다. '잊어버리기로 해'에서는 반복적인 단어 선택이 주는 지루함으로 트랙 전체가 산만했지만 '리킹 더 스카이'의 씨잼의 무분별하면서도 세련된 단어 선택은 그가 느끼는 공허함, 외로움을 성공적으로 표현한다. 세 번째 트랙에서 보였던 성공적인 벌스 배치는 다섯 번째 트랙에서도 재현된다. 앨범의 중후반부에서 시작되는 블랙넛의 독백 4마디 이후 이어지는 808 드랍은 앨범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작년엔 마포대교 위, 올해 나 다시 작업실'에서 언급되는 충격적인 그의 고백은 극단적 선택을 떠올렸을 만큼 궁지에 내몰렸던 자신의 처지를 담담하게 전달하고 '아직 나 못 가 하늘아, 메롱 I'm licking the sky'로 이어지는 가사는 '블랙넛'이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왜 그의 명성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지 증명하는 유쾌한 표현이다. 곧이어 808베이스 위에서 내뱉는 그의 강렬한 래핑은 희대의의 CEO로서 자신이 물러서지 않았음을 선포하는 동시에 결연한 그의 의지를 보인다. 본인의 회사가 스캠 컴패니(코미디적인 구한말 발음이 인상적이다)가 아니며 씨잼과 저스트 뮤직의 전 매니저이자 공동대표인 '성영'을 언급하는 가사에서는 형용하기 어려운 희열이 느껴지며 더 이상 자신이 언급했던 '이별'에 구애받지 않으며 하늘에게 전하는 블랙넛의 인사에는 왜인지 모를 뜨거운 감동이 느껴진다. '리킹 더 스카이'는 두 래퍼의 벌스에 이어 블랙넛의 브릿지 - 씨잼의 훅으로 마무리되며 흠결없는 구성이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 '오예오예'는 앨범의 마지막 트랙으로서 여운이 남는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하지만 '오예오예'가 환기시키는 분위기와는 별개로 트랙의 완성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앞서 지적했던 씨잼의 반복적인 단어 위주의 훅 구성은 마지막 트랙에서도 계속되며 그 구성이 지루하며 타 트랙에 비해 주제의식의 깊이가 얕다. 블랙넛의 벌스는 과거 발매했던 En의 '22'에서 선보였던 벌스가 겹쳐보이는데 적당히 듣기 좋은 싱잉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며 어떻게든 벌스를 채워넣어야 했다는 인상을 남긴다. 씨잼의 벌스 또한 무난한 안전지대에 머무르며 앨범의 클로징 트랙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할 뿐이다.
두 래퍼의 오랜 공백기를 깨고 나온 '도모'는 여러 장단이 공존하는 앨범이다. 씨잼과 블랙넛이 낼 수 있는 독자적인 사운드와 B급 감성의 트랙들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만, 어떠한 분위기를 환기시키려고 할수록 노골적인 태도에서 오는 지루함이 앨범의 완성도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앨범은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방향성을 담고 있다. 본 작의 대부분이 셀프 프로듀싱이라는 점, 청자들이 그들에게서 기대하던 요소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 희망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다만 '도모'의 음악적 수준은 희대의 듀오의 공백기를 완전히 변호하진 않는다. 6개의 트랙은 그들의 역량을 증명하기엔 너무나 짧은 무대일 뿐이며 6개의 트랙이 모두 새로운 모습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작에서 도달하지 못했던 수준은 오랜 시간의 작업과 선별이 아니라 본작에서 선보였던 긍정적인 요소의 재가공을 통해 성취될 것이라 예상한다. 그것이 아티스트, 리스너 양측에게 좋을 것이 뻔하지 않은가.




개추
ㄱㅅㄱㅅ
공감이 되게 많이 가는 리뷰네요
읽어주샤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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