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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스택스가 은퇴 의사를 밝힌지도 어느덧 5년이 다 되어간다. 창작이 괴로워 졌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였고, 음악 외에 다른 삶의 이유 - 대마 합법화 운동, 액상 전자담배 사업.... - 가 생겼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였다. 커리어 내내 건재했고, 항상 신선했던, 동시에 노련했던 그였기에 리스너들의 만감은 교차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빌스택스의 마지막 앨범 단위 프로젝트인 [LIVE FAST DIE SKRT]는 리스너들의 아련함과는 꽤나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저 지금의 자신을 멋있게, 담담하게 그려나갔기에 오히려 더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야 말로 이 작품의 가장 큰 역설일듯 싶다.
빌스택스라는 아티스트의 페르소나는 꽤나 다층적이다. 일단 그는 베테랑이다. 빌스택스 본인은 크게 좋아하지 않는 예명 전환 이전까지 감안하면 20년차를 훌쩍 넘긴다. 마스터플랜의 전성기부터 쇼미더머니 시대, 팬데믹까지 오롯이 겪어왔기에 그 관록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아버지'라는 개인적인 층위가 더해진다. 가정사에 몇번의 부침이 있었지만, 적어도 음악에 등장하는 그의 아들은 항상 밝고 천진하기만 하다. 빌스택스는 때로는 아들을 자랑하기도 하고, 그 책임감을 아낌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동시에 그는 트래퍼다. 부에 대한 자랑이나, 방탕함의 전시에 그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다. 808 베이스는 그의 가장 예리한 무기이며, 그 위로 펼쳐지는 여유로운 그루브는 한 세대 가까이 차이가 나는 영 건들과 비교해 보아도 압도적인 세련미를 자랑한다. 이모 랩부터 레이지에 이르는 유행의 수용에도 그는 항상 열려있고, 동시에 소화까지 완벽하다. 이 개방성과 과감함은 음악 외적인 부분으로까지 확장된다.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어온 대마에 대한 자유를 주장하는가 하면, 아슬아슬한 오프로드 바이크에 열광하는 순수한 면모도 있다. [LIVE FAST DIE SKRT]는 이러한 빌스택스의 정체성이 커리어에서 가장 다채롭게 꽃핀 작품이기도 하다.
사실, [LIVE FAST DIE SKRT]가 탄생하기 전 빌스택스의 계획은 [DETOX]의 연장선상에 가까웠다고 한다. 대마의 두 품종의 상반된 특성을 통해 자신의 자아와 주장을 드러냈던 [DETOX]에서 한발 나아가, 이 양면이 융합된 [HYBRID]로 결론짓는 것이 그의 초안이었다. 물론 이런 정돈된 엔딩도 충분히 그럴듯하지만, 빌스택스의 마지막 남은 열정은 조금 더 원초적인 것을 원하고 있었다. 릴러말즈와의 만남은 [LIVE FAST DIE SKRT]의 방향을 더 예측 불가능하게 틀어놓았다. 생각 나는대로 랩을 뱉고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릴러말즈의 즉흥성을 본 빌스택스는 생각을 비운채, 자신의 본능에 온전히 핸들을 맡기고 마지막 드라이브를 나가기로 했다.
앨범의 크레딧만 봐도 이러한 즉흥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멤피스, 레이지 등 트랩 씬의 하이엔드를 모아 나아가는 방식은 여전히 그답지만, 이를 채워내는 것은 익히 잘알고 있는 프로듀서들과의 익숙한 호흡과는 거리가 있다. 대신, 유튜브는 물론 BEATSTARS같은 해외 플랫폼을 돌아다니며 발굴해낸, 소위 'Type Beat' 위에서 생각나는 대로 툭툭 뱉은 말들이 앨범의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필터를 거치지 않은 표현들은 빌스택스라는 아티스트가 지닌 수많은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투영한다. 그러나, 이 자유분방함의 이면에는 5,000개 가량의 비트를 직접 수집하고 섬세히 검토하며, 앨범 발매 직전 까지도 믹싱을 계속 수정하는 치열한 면모 또한 존재한다. 과정부터 결과까지, 다면성은 일관적으로 유지된다.
인트로인 "반짝반짝 Freestyle"에서부터 [LIVE FAST DIE SKRT]의 방향성은 선명히 드러난다. 번쩍하고 지나갈 찰나같은 삶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빛나는 쾌락들로 마지막까지 채워가려는 빌스택스의 마음가짐은 보이스 샘플과 신시사이저가 낭만적인 교차를 이루는 뉴웨이브 트랩 위에 오브제처럼 놓인다. 이 짧고 굵은 순간들에 무엇을, 어떻게 채울것인가? 이후 앨범 내내 다뤄질 야성과 갈망, 책임과 행복은 이에 대한 그의 마지막 답변이다.
제목부터 거창한 "Bless K-Trap"은 빌스택스가 지닌 야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회 운동이나 사업을 통해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그려나가려는 빌스택스이지만, 아직 그 꿈은 엄연히 불법이다. 결국 텔레그램이라는 인터넷의 뒷면에서 좌표를 찍으면 얼굴 조차 마주 치지 않고 물건을 송수신하는 수법은 멤피스 프로덕션 위에서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날것의 정서를 그려내는데 누구보다 능숙한 권기백이 여기서는 코러스와 브릿지에서 악기처럼 활용된다. 그럼에도, 예의 걸쭉한 톤으로 '바보같이 그냥 계속 간다'며 줄기차게 외쳐대는 모습은 그자체로 'K-트래퍼'들의 지금에 대한 축복처럼 들린다. 스꺼러갱 비즈니스 레이블의 동료들이 모두 모인 "Bricks n’ Mortar Shop (SKRR GANG)"에서 강조되는 부귀와 방탕은 이 '축복'이 극적으로 현실화되는 지점이다. 훅에는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들이 나열되고, 각자의 개성이 담긴 벌스에서는 약과 여자, 돈, 자동차와 같은 남부의 클리셰들이 아낌없이 그려진다. 마침, 비트의 레퍼런스도 현시점 남부 최고의 슈퍼스타인 Travis Scott이다. 첨단의 장르가 지닌 전형성을 자신의 노련함으로 풀어갈줄아는 빌스택스의 장점이 단연 빛나는 순간이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아빠
아빠는 ㄸ쟁이~
Sub2, "아빠는...(skit)"
이 쾌락의 정점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이 장난스러운 동요는 빌스택스의 페르소나를 부귀의 환상에서 다시 현실적인 층위로 끌어내린다. '트랩 대디' 빌스택스 이전에, 가족과의 안온함과 조금 더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섭이 대디' 신동열의 초상이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 지탱하는 것은 어른으로서, 아비로서 마땅한 책임감이다. 이는 "빵"이라는 중의적인 키워드를 통해 지역과 친구들을 향하기도 하고, 느와르 드라마의 주인공인 "차무식"의 의리를 통해 재구성되기도 한다. 헤콥, GEM IV 등 국내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공간감 있는 조력은 이에 음악적인 정당성과 중량감을 확실하게 부여한다. 재지한 색소폰 소리가 묵직한 트랩으로 변주되는 순간, 또 보이스 샘플과 전자음을 쌓아올려 조성해낸 차가움은 앨범의 중반부에 느와르적인 긴장감을 부여해낸다.
"나쁜영화"와 "MDMA"에 이르면 빌스택스의 개인적인 부분으로 더욱 깊숙히 파고들게 된다. The Alchemist를 연상시키는 블루지한 드럼리스 프로덕션은 수많은 영화를 인용하며 자신의 일상과 추억, 자아로 침잠하게끔 하는 촉매로서 작용한다. 그 심연에서 마주하는 트랩 소울 넘버 "MDMA"는 그야말로 앨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환상적인 하프 샘플 사이로 사랑에 빠진 순수함을 마약의 환각에 빗대는 파격에는 은은한 에로티시즘마저 배어있다. 이것이 빌스택스의 자연스러운 멜로디 메이킹과 어우러져 폭발하니, 연가(戀歌)는 적나라한 표현을 초월하는 짜릿함마저 느끼게 한다.
하나 역설적이고도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면, 빌스택스의 개인적인 감성이 드러나는 이 부분에서 유독 게스트들의 분량과 활약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플레이어는 빌스택스 본인도 '이번 앨범 작업 지분의 30%를 가지고 있다'라고까지 단언한 릴러말즈다. "차무식"에서의 박자를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는 촘촘함부터 "MDMA"에서 선보인 애수어린 싱잉 랩에 이르기까지, 한껏 물오른 그의 역량에는 병역으로 인한 공백을 만회하려는 결연함 마저 느껴진다. 착 가라앉은 보이원더의 그루브부터 우슬라임의 유연한 멈블링에 이르기까지, 마지막까지 빌스택스는 젊은 피를 자신의 음악에 수혈하며 음악적인 예기를 갈고 닦았다.
이렇게 만난 어느 동료와의 장난스러운 일상의 단편이 스킷으로 스쳐 지나가고 나면, 이윽고 앨범에서 제일 원초적인 플럭앤비 "너는 너무 이뻐"가 등장한다. '사랑 노래로 돈 벌려면 진심을 담아야 한다'라는 릴러말즈의 조언에 이 트랙은 너무나도 충실하다. '사귀는 건 싫고 잠만자고 싶어'라며 처음에는 말초적인 쾌락으로만 상대를 대하지만, 금세 외로움을 드러내며 같이 평생 있고 싶다 질척거린다. 빌스택스의 절친한 동생이기도 한 쿠기의 벌스에 이르면 한 술 더 떠서 아예 상견례 치르고 아이까지 만들자고 애원한다. 대중적인 멜로디와 유려한 싱 랩 퍼포먼스의 한켠에는 인간적인 정착에 대한 갈망이 위치하게 된다.
갈망은 갈수록 범위를 넓혀간다. 애초에 이름부터가 '돈 다발(BILL STAX)'이니, 직관적으로 돈을 세며 욕망을 토로하는 "엄지 검지"의 등장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머니 스웩에 있어 또 다른 거물인 더 콰이엇은 마지막에 유유히 등장하여 성과를 자축한다. 보이스 샘플과 바이올린이 어우러진 차가운 프로덕션 위로 열정과 전설이 영원하길 축원하는 모습, 또 지금의 욕망과 쾌락을 그려내는 모습이야 말로 두 거물이 살아가는 오늘이요 살아갈 내일일 것이다. 돈 세는 행위 자체를 몽환적인 플러그로 변주해낸 "2, 4, 6, 8, 10" 또한 이 갈구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결국 이 다층적인 페르소나들은 "이 동네에서 젤쎈약"으로 집결한다. '약'이라는 키워드는 허슬의 목적이자,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비유이고, 금기를 넘어서려는 예술가의 표상이다. 이 쾌락은 오토바이를 타고 천둥처럼 달리다가 끝내 사고를 친다. 그러나, 이 사고가 끝은 아닐 것이다. 이 앨범의 게스트 가운데 가장 젊은 피인 트레이드엘이 그의 쾌락과 욕망까지 이어가는 것은 Don Toliver를 연상시키는 그의 퍼포먼스가 플러그 프로덕션에 환상적으로 스며들며 환한 설득력을 확보한다. 앨범 내내 빌스택스는 여전히 다음 세대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하며 자신의 가치와 그들의 지향을 동기화 했다. 앨범의 실질적인 결론인 이 트랙이야 말로 그 결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앨범의 마지막 트랙에 이르러, 빌스택스는 아예 힙합의 프레임 마저 벗어나버린다. 예명 전환 이전부터 보여온 락에 대한 애정은 "Loney Stoner"에 이어 라콘과 또 한번 함께한 "아침 점심 저녁"에 여지없이 드러난다. 물론 우리가 흔히 '락'하면 떠오르는 격렬함이라기보다도 여유로운 기타와 세박자 리듬에서 우러나는 평온한 일상감이 더 짙게 맴돈다. 이제는 그저 누구 시선도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삼시세끼 먹듯 한대 피고 늘어져 자는 삶, 이것이야 말로 그가 오랜 허슬과 투쟁끝에 얻고팠던 진정한 자유였던 듯 싶다. 굳이 마지막이라고 눈물 흘리며 손 흔드는 대신,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진 일상을 보여주며 '형은 앞으로 이렇게 행복하게 살거야. 아, 편하고 좋다'라며 무심한 듯 미소지으며 헤어지는 모습, 그 속에는 여전히 친한 동생들과 동료들이 있을 것이고, 당연히 섭이도 있을 것이다.
사실은, [LIVE FAST DIE SKRT]만큼 역설적인 제목도 없다. '굵고 짧게 간다'라는 의미와는 달리, 빌스택스는 계속 변하고 적응하며 누구보다 굵고 길게 커리어를 이어왔으니까. 그럼에도, 그가 자신의 커리어를 매듭짓는 시점에서 이런 락스타의 페르소나를 꺼내든 것은, 방탕함과 욕망을 넘어서는 순수한 재미와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새로운 것, 새로운 아티스트들과 접촉하고, 때로는 그들의 입을 빌려 자신의 진심을 말하고, 그렇게 모든 것을 미련 없이 흘려보낸 뒤 가장 필요로 하는 것들만 남겨둔 평안. 어쩌면 그 다운 마무리요 이별이다. 그렇게, 그는 떠났다. 후련하게, 시원하게, 빛났고 빛나며 빛날 삶을 향하여. 이런 담백한 작별 인사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미련 때문인지, 내 솜씨가 부족해서인지, 글은 길어지고, 지면은 넓어져만 가지만, 결국 이것저것 다 쳐내고 이 뻔한 한마디만 남기고 싶다.
수고했어요,
고마웠어요,
우리의 트랩 대디!
Best Track: Bricks n’ Mortar Shop (SKRR GANG), 차무식 (Ft.Leellamarz), 이 동네에서 젤쎈약 (Ft.TRADE L), 아침 점심 저녁 (Ft.Rakon)




본 리뷰는 HOM#36에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hausofmatters.com/magazine/hom/#36
개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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