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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작은 것들에 깃든 바꿀 수 없는 가치 - 넉살 정규 1집 [작은 것들의 신] 리뷰

title: André 3000Alonso20002시간 전조회 수 128추천수 4댓글 3

https://blog.naver.com/alonso2000/224177942844

 

발매: 2026.02.04.

기획사: STONESHIP, VMC

01. 팔지 않아

02. Make It Slow (feat. DJ YTst)

03. Skill Skill Skill (feat. DJ Wegun)

04. ONE MIC

05. 악당출현 (feat. ODEE, Deepflow, Don Mills, 우탄)

06. 올가미

07. 밥값 (feat. Koonta)

08. I Got Bills

09. 얼굴 붉히지 말자구요 (feat. Don Mills, 뱃사공)

10. HOOD (feat. 화지, 차붐)

11. Do It For (feat. Paloalto, MC Meta)

12. 작은 것들의 신

(...)

본능적으로 그들은 '작은 것들'에 집착했다.

'큰 것들'은 안에 도사리고 있지도 않았다.

자신들에게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미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작은 것들에 집착했다.

Arundhati Roy, 박찬원 譯, <작은 것들의 신> 中

 

Arundhati Roy가 소설에서 조명하려 했던 '작은 것들의 신'은 사실 간단한 것이었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얼마나 사랑할지 진작에 정해놓은 '사랑의 법', 이를 벗어나고자 했던 억눌린 이들이었고, 또한 그들의 믿음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 신은 '사랑의 법'을 수호하던, 역사와 제국주의, 계급 질서, 공권력 등등으로 대표되는 '큰 것들의 신'에게 몰락당했다. 감히 신분과 통념을 넘어서려 했던 벨루타와 암무의 사랑은 파국을 맞았고, 그들의 두 쌍둥이가 오래 떠났다 돌아온 고향에는 신성했던 의식과 어머니의 비극이 깃든 장소가 관광 자원으로 박제 되어 있었다. 그렇게 작은 기억은 또다시 역사와 경제의 거대한 담론에 매몰되어 갔다.

분명 소설가의 이야기는 그러한 붕괴의 서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이야기가 시공간을 넘어 전해질 때, 파괴에 비극적으로 침잠해 가던 와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려 했던, 또한 기꺼이 살아낸 누군가의 삶을 다시 쓰고자 했던 이가 분명 있었다. 암무가 절망 속에서 세상을 떠났던 즈음의 - '늙지도 않은, 젊지도 않은, 하지만 살아도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 나이였던 먼 훗날 서울의 청년 이준영이 아예메넴의 암무에게 답신을 보냈다. 우리도 자본과 세태라는 큰 것이 휩쓸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 밥값하며 당신들 몫까지 살아내 보이겠다고. 그는 이내 마이크를 들어 스스로에게 '넉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름에 깃든 유머 뒤에는 가치를 입증할 기술이 있었다. 이를 알아본 딥플로우와 차츰 인연이 쌓였고, '우리가 도와줄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딥플로우의 제안을 넉살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한 청년의 내재적인 에너지로 시작되었던 [작은 것들의 신]에 동시대의 언더그라운드를 아우를 보편성이 입혀지는 순간이었다.

 

자유로워, 내 뜻대로 살기에

아름다워, 내 젊음을 알기에

밀지 마, 너나 빨리

내 템포는 미디움, 잘 익었어

넉살, "팔지 않아" 中

 

 

 

 

앨범의 시작과 함께, 시원하고 훵키한 그루브 위에 뱉은 긍지는 '작은 것'이 내보일 수 있는 포부와 여유로 가득하다. "팔지 않아" 내내 넉살은 솔직한 자아에서 기인한 자유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를 통해 어떤 것을 얻었고, 무엇을 얻을 것인지 웅변한다. 비록 앨범 내내 흔들릴 도그마이지만, 태도와 퍼포먼스 양면에 녹아있는 유연함과 순수함은 이마저도 넘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친다. 넉살의 쨍쨍하고 날렵한 랩은 이 긍정의 메시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단이 된다. 넉살 스스로도 이 강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만큼, 그는 앨범의 프로덕션이 방대한 스케일로서 압도하기보다는 자신의 랩을 효과적으로 보조할 만큼 담백하면서도 옹골차게 응집되기를 바랐다. "팔지 않아"는 물론 이후 트랙들에서도 톡톡히 활약하는 디프라이(Deepfry) - 본작에서는 연주자 준백과 함께 'MGFC'로서 참여하기도 했다. - 는 이를 위한 좋은 옵션이었다. 긍지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술이라는 무기를 집어 드는 "Skill Skill Skill"을 보자. 윈디시티 출신의 숙련된 기타리스트 이시문의 훵키한 연주와 DJ 웨건의 신명나는 스크래칭이 곁들여진, 언뜻 Beastie Boys의 그림자가 스치는 뉴 스쿨 프로덕션 위로 넉살의 매끄러운 텅 트위스팅과 라임, 명징한 하이 톤이 맞아떨어지는 순간만큼 앨범에서 청각적인 쾌감이 폭발하는 순간도 드물다. 기술이라도 배워서 돈이나 벌라는 아버지의 핀잔마저도 그에게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음악적 테크닉으로 전복된다. 작은 것으로서 자본에 대한 압박이라는 거체를 쓰러트리고자 하면, 재치와 실력이 뒷받침된 한판 엎어 치기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넉살이 지닌 그것은 이를 현실화 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분명한 실력이 뒷받침되니 느린 출발에도 여유가 있다. 세상의 템포에 억지로 맞춰가려다 스텝이 엉키고 꼬이는 것보다는, 자신만의 속도와 박자로 추는 춤이 더 나답고, 아름다운 법이다. 포커페이스(4KAFACE)의 차분하고 재지한 피아노 선율과 DJ YTst의 잔잔한 디제잉이 동행하는 "Make It Slow"에서도 이러한 넉살의 철학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펑크 패션의 대모인 Vivienne Westwood는 서른 살이 되어서야 자신의 첫 가게를 열어 패션 업계에 투신했고, 야구 경기를 보다가 문득 소설을 써보기로 한 스물아홉의 재즈 바 사장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이제 일본 문학의 거성으로 자리 잡았다. 힙합으로 눈을 돌리면, 28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첫 음반을 가졌음에도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가 된 Jay-Z가 눈에 들어온다. 아스라하게만 느껴졌던 그들이 멀리서 천천히 들려온다는 넉살의 말은, 자신의 템포로 걸어도 작은 것으로서 단단히 뿌리를 내려 세상의 압박을 버틸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의 발로였으리라.

그러나, '큰 것들'의 개입은 '작은 것들'이 꿈꾸던 순수한 열망과 꿈, 확신마저도 뒤틀어놓았다. 소설에서 에스타와 라헬 남매, 암무와 벨루타의 비극이 서린 '역사의 집', 그들의 운명을 암시했던 종교적 전통극이 자본화의 흐름 속에 관광자원으로 박제 되어버린 것처럼. "ONE MIC"는 대자본에 인한 소망의 변이를 실감 나고 소름 끼치는 필치로 묘사해 냈다. VMC의 중핵인 TK와 버기가 자아내는 더리 사우스 비트 위로 한 가상의 래퍼의 커리어가 상영된다. 처음에는 자신의 재능을 사랑하여 창의적인 믹스테이프를 발매했던 그는 잠깐의 하입에 도취되었다. 금방 떠오른 열기는 쉽게 가라앉았고, 애써 장만해 놓은 장비에는 먼지만 쌓여갔다. 침잠해 가던 그에게 방송 컴페티션의 유혹이 다가온다. 촬영장으로 가보니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심사하러 온 Snoop Dogg 앞에 하나의 마이크가 기회로써 놓였을 때, 이를 붙잡으려는 참가자들의 몸부림과 아귀다툼은 짠하면서도 애달프다. 그렇게 기회를 붙잡고 성공에 도달한 순간, 그는 어느새 거만해지고 말았다. 이제는 자신이 시작했던 언더그라운드는 그저 비루하고 어색하게만 보인다. 앞에서는 존경을 말하지만, 뒤에서는 선배들과 팔로워 수를 비교하며 우월감에 빠진다. 넉살 자신의 이야기와 <쇼미더머니4>에서의 지옥 같았던 사이퍼 미션이라는 선명한 실화가 원작이 된 만큼, "ONE MIC"는 분명 가상의 이야기임에도 리얼리즘의 색채를 띤다. 그의 모습이 변해가는 동안, 훅에서 반복되는 Nas의 명가사 - 'All I need is One Mic!' - 의 의미는 열정에서 처절함으로, 다시 성공과 자만을 전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어간다. 의지와 패기가 성공에 물들어 퇴색되는 순간 입안에는 성공의 달콤함 이전에 씁쓸함과 외로움이 감돌 뿐이다. 꿈이 같잖은 우월감으로 꽃피는 지점, 여기서 거름이 되는 사운드가 남부의 노골로 가득차있다는 사실은 퍽 골계스럽고도 처량하다.

 

열심히 안 사는 놈이 어딨겠냐만

난 정말 열 올리며 살았지, 질 수 없어

나만 멀리 떨어지면

다들 비웃을 거야, 비웃을 거야

난 이제 지쳤어, 내 자릴 비워둘 거야

어제는 보이지 않던

내 머리 하나 들어갈 올가미

넉살, "올가미" 中

 

"큰 것"의 권능은 꿈의 변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상이 강요한 경쟁에서 패배하는 순간, 누군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한 채 세상을 등지려 할지도 모른다. 넉살이 '살아서 뭐 하냐' 싶은 우울한 감정을 녹여내기 위해 반년이 넘는 시간을 소요해야 했을 정도로 "올가미"의 정서는 앨범에서도 유독 차갑고 음울하다. 리짓 군즈에서 차출된 어센틱(Authentic)은 이에 무거운 듯 원시적인 드럼으로 시작하여 몽환적인 건반이 교차하는 추상적인 프로덕션을 안겨주며 질식될 것만 같은 건조함을 새겨낸다. 결국, 세상의 요구와 압박 아래서 우리는 때때로 비굴해질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되고 편해지겠거니 하지만 그 사이에 젊음은 다 마모되어버린다. 분명히 열심히 살며 꿈을 좇았지만, 이제는 되려 꿈에 대한 망집에 내가 쫓기고 만다. 코너에 몰리다 결국, 눈앞에는 죽음이라는 선택지가 아른거린다. 잠깐, 이 죽음이 정녕 스스로 욕망한 것일까? 어쩌면, 세상이 강요한 경쟁에 졌다는 누명을 쓴 채 사회에 교수형을 당한 것은 아닐까? 앨범의 초안부터 함께한 세 트랙 - "올가미", "밥값", 그리고 "작은 것들의 신" - 가운데서 "올가미"가 유독 차갑고 절박한, 심지어는 극단적인 것은, '작은 것'이 지닌 본질적인 연약함과 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사회의 비정함이 어쩔 수 없이 반영된 부분이기도 하다.

경쟁에서 밀려난 '작은 것'들의 이야기는 "HOOD"에서 자신의 주변부로 확장된다. 아예메넴의 에스타와 라헬도, 사우스 센트럴의 Tre와 Doughboy도, 연희동의 미애도 결국 고향, 즉 힙합에서 흔히 말하는 'Hood'의 주박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앨범의 전체적인 템포가 급하니 느린 곡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딥플로우의 조언에 따라 선택된 마일드 비츠의 프로덕션은 이에 탁월한 선택이었다. 눅눅하고 블루지한 레이 백은 고향에 묶였지만 차마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의 뒷모습을 연기처럼 감싸안는다. 성공을 꿈꾸며 떠난 동창생이 유흥가의 도우미가 되어있었다는 넉살의 실화와 함께 화지, 차붐이 돌아가며 21세기 실향민들을 비춘다. [EAT]에서 동시대, 동세대 청년들의 삶을 관조적으로 반영한 화지와 한국적인 뒷골목의 정경을 [Original]에서 예리한 필치로 묘사해낸 차붐은 서사는 물론 느긋한 그루브까지 "HOOD"에 있어 최적의 인선이었다. 얼굴도 모습도 달라진 지라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 세련된 척 곁을 꾸미고 다니지만 그마저도 틀어진 모습인 누군가,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었지만 과욕과 만용에 몰락한 아무개. 누가 보기에는 실패한 군상들에게 이 셋은 조용히 술잔을 건네며 돌아와도 괜찮다고 말한다. 실패해버린 '작은 것들'을 위한 인정과 유대는 아직 고향에 넉넉히 남아있으니.

 

 

 

 

이렇게 보니, 앨범에서 유독 이질적이었던 "악당출현"도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 버기가 주조하고 VMC의 동료들이 가세하는 Wu-Tang Clan 풍의 붐뱁 뱅어는 물론 파괴적이지만, [작은 것들의 신]이 말해온 고단함, 이를 관통하던 위로와 희망에 비추면 외관상으로는 기이한 불협화음을 자아낸다. 앨범의 다른 트랙들과 달리 딥플로우가 직접 파트 분배는 물론 훅, 심지어는 더블링과 톤까지 섬세하게 관여한 데다, 애초에 VMC의 컴필레이션을 염두에 둔 트랙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잠시 관점을 달리해 보자. '사랑의 법'을 어겼던 벨루타와 암무는 아예메넴의 기성세대와 공권력에게는 분명 악당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소외 속에서 누명을 쓴 채 당했던 저들과 달리, VMC는 공격적인 퍼포먼스와 기개로 되려 '큰 것'들을 약탈하려 든다. 그 기저에 농구 만화 <슬램덩크>에서 동세대 최강의 팀인 산왕공고에 맞섰던 북산과 같은 유대와 연대가 있음은 물론이다. '포기하면 그 순간 시합 종료'라던 작 중 대사처럼, '작은 것들'의 연대와 생존 또한 결코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남아 왔으니까.

"악당출현"의 연대가 화끈하고 맹렬하다면, "I Got Bills"와 "얼굴 붉히지 말자구요"의 연대는 조금 더 인간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럽다. 칩멍크 샘플을 곁들인 딥플로우와 연주에 기반한 MGFC의 훵키함은 넉살이 낀 어느 술자리들의 정경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불공평한 세상, 한달에 핸드폰 요금이 10만원 씩 나오고 성공은 아직 멀리 있는 현실이지만, 오늘만은 빚내서라도 내가 쏘겠다는 넉살의 호언장담은 동료들을 따뜻하게 뎁히기에는 오히려 충분하다. 서른 쯤에는 풀릴 관상이라던 점쟁이의 점괘 사이로 울려퍼지는 'I Got Bills(나 청구서 받았다)'라는 당당한 코러스는 힘든 오늘을 버티게 하는 내일의 행운이요 희망이다. 물론 이 열기에 힘입은 연결이 매번 순탄하지만은 않다. "얼굴 붉히지 말자구요"에 묘사되는 VMC와 리짓 군즈의 술자리는 던밀스가 평소 술자리에서 외치던 말에서 따왔을 정도로 - 넉살은 이를 자신의 곡에 쓰는 대신 던밀스의 벌스와 코러스를 해당 트랙에 사용해야 했다 - 인간적이고 유쾌하지만, 화목하지만은 않다. 소주에 잔뜩 취한 채 왁자지껄하게 이어지며 실수도, 지질함도 그득해 진다. 던밀스는 넉살의 실수에 배은망덕하다 핀잔을 주고, 뱃사공은 넉살의 성공에 배가 아픈지 [작은 것들의 신]이 망하길 빈다고 저주하지만, 이것이 술자리에서의 작은 소동으로 그칠 수 있는 건 어째서일까? 어쩌면 겉치레로 이어지는 그럴싸해 뵈는 관계보다도, 흉금 다 터놓고 할말하는 솔직함에서 비롯되는 우정이야말로 진실되고 굳건해질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MGFC의 밴드 사운드의 여유로운 협연이 이 술자리와 그럴 듯 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 역시 이러한 친목과 우정의 표출이다

 

 

비록

돈이 없이 하고픈 일만을 하더라도

돈 때문에 하고픈 일을 못하더라도

밥값 해, yeah

밥값 해, yeah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열심히 해, 밥값을 해

넉살, "밥값" 中

 

 

 

 

연대와 우정에 힘입어 넉살은 당당히 삶을 영위할 동력을 얻게 된다. "밥값"한다는 표현은 이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자, 모두가 그러고 있고, 그럴 수 있다는 위로와 용기의 말이다. 이를 구체화 하기 위해서, 넉살의 가장 절친한 벗이자 음악적 도반인 코드 쿤스트의 도움은 필수적이었다. 빈티지하며 몽환적인 신스 운용, 낮은 채도와 독특한 드럼으로 완성되는 코드 쿤스트만의 그루브는 서울에 사는 보편적인 젊은이들의 초상을 놀라울 정도의 선명함으로 복각해낸다.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물론 세상의 섭리이다. 넉살은 그러한 각자의 삶에 편안함이 있기를, 마땅히 주어져야 할 작지만 따스한 밥상이 있기를 기도한다. 그 순간, 공연을 하러 양화대교를 건너는 넉살의 모습은 출근길로, 등굣길로 발을 옮기는 수많은 청춘들의 초상과 겹쳐진다. 쿤타가 걸쭉한 톤으로 훅에서 말하는 생존의 이야기도 언뜻 각박하지만, 그 표현과 톤은 되려 레게와 소울 특유의 따뜻함이 배어있다. 세파에 휩쓸려가던 '작은 것들'이 다시 자기 방향을 찾을 수 있게 하는 자신에 대한 긍정과 가족에의 향수, 이에서 출발해 점점 넓어지는 세상과의 유대. 이것이 작은 것으로서 우리가 가지는 무기라고, 넉살은 1969년의 암무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살아 남는 것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자신다운 삶과 사랑을 지켜나가기 위해 '큰 것'들과 투쟁하는 고단한 과정을, 당신이 그랬듯 어떻게든 버텨 내겠다고.

어쩌면 그것이 넉살이 마이크를 든 이유였다. 아르바이트로 지친 와중에도 자신을 출세케 했던 "Organ"의 가사를 적어내렸고, 그 열정으로 자신이 꿈꾸던 낭만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넉살이 내민 사랑에 대한 세상의 대가는 돈이었다. 사랑에는 가치를 매길 수 없다 말하지만, 상품화가 됐든 예술이 됐든 이것이 형이하학적으로 내려오는 순간 여기에는 나름의 값이 매겨진다. 이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언제나 이곳을 떠날 용기도 있지만, Common을 동경하던 열다섯 소년이 아직 마음에 살아있기에 넉살은 파렴치한 얼굴을 연기하며 이곳에 남는다. 이를 다잡아 주는 것은 힙합 씬의 큰 선배들인 팔로알토와 MC 메타다. 자신의 재능에 감사하며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룩한 예술적 가치를 대변하는 팔로알토, 그리고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한 뜨거움으로 초심에 다시 불을 지피려는 MC 메타. 여기에, 기존의 팝적인 지향을 넘어 비장한 건반과 매서운 서던 힙합 드럼으로 그들을 수호하는 애즈브래스(ASSBRASS). 이들의 모습이 넉살의 전후에 각각 배치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다. 가치를 긍정하며 모든 것에 감사하던 이가 잠깐의 성취에 흔들리다가도 결국 초의의 매서움으로 돌아오는 여정, 이 과정들을 지나오는 것이야 말로 이들이 행동하는 이유("Do It For")일 것이다.

 

 

믿는 신이 없더라도

두 손 모아 바래 본 이들은

역시 나와 같아

잡초처럼 살아가는 내 친구들 나 가족

닿기 쉽지 않겠지 만족하지만 나아가

계속 나아가 듣지 않던 기도들이

점점 하늘에 닿아가

넉살, "작은 것들의 신" 中

 

 

수많은 작은 것들의 삶을 살아온 넉살이 마침내 첫 앨범의 끝에 다다랐다. 퓨처 헤븐의 동료로서 넉살의 커리어의 시작점을 같이한 애니마토(Animato)가 초안을 잡고, 지금의 넉살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있을 코드 쿤스트가 가다듬은 프로덕션에서 보이스 샘플과 건반이 교차하며 하늘로 향하는 환상적인 계단을 지어낸다. 여전히 삶은 지치는 일들 투성이로 우리를 압박하지만, 그럼에도 살아있으며 분투하는 한 삶은 계속 바뀌어간다. 같이 플스방 아르바이트를 하던 던밀스는 이제 슈퍼스타인 빈지노의 부름을 받았고, 오랜만에 만난 애니마토는 결혼 얘기를 꺼내며, 둘째 누나는 새 생명을 품었다. 이 숱한 새 출발의 와중에, 넉살은 아직도 랩을 하고 있다. 계속 자신만의 언어로 또다른 투쟁하는 작은 것들의 삶을 그려내며 이 모두가 소중한 것임을 외치고 있다. 수많은 외침들이 쌓이고 쌓여 서서히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닿지 않을 것만 같던, 모두의 편안함과 행복, 희망을 축원하던 기도가 마침내 "작은 것들의 신"에 맞닿은 순간, 앨범이 품은 이야기는 비로소 새로운 이야기로, 여전히 고되고 거칠겠지만 그럼에도 꿋꿋할 '내일'로 나아간다.

역설적이게도, 모든 작은 것들을 대변하며 응원했던 [작은 것들의 신]은 되려 넉살을 큰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수많은 지지와 찬사, 천부적으로 타고난 유머에 힘입어 넉살은 방송으로 나아갔고, 그 시작점에는 분명 본 앨범으로 거두었던 거대한 성공이 있었다. 그럼에도, [작은 것들의 신]만은 여전히 언더그라운드의 한 구석에서 우리네 '작은 것들'이 돌아올 곳을, 에스타와 라헬이 그랬듯 경계마저 초극한 연결을 빚어내고 있다. 여전히 넉살은 자신의 삶을 살며 밥값을, 단지 이전보다 더 크게 치뤄내고 있고, 이를 보고 듣는 우리도 다시 용기를 얻어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2016년의 넉살이, 1969년의 암무를, 1993년의 에스타와 라헬을, 지금의 우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항상 긍정적이다. 여전히 이 앨범 만큼 한국 힙합에서 평범한 다수의 일상의 투쟁을, 이를 가능케 하는 사랑과 연대를 체화해낸 작품도 드물기 때문이다. 결국, 이 싸움은 고고한 역사의 흐름과 같은 '큰 것'마저 울리고 격동시켰다. 단지 수상 실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이 앨범에 응원받은 우리네 작은 것들이 모이고 모여, 작은 강물들이 바다를 이루듯 결국 큰 움직임을 이뤄낸 것이다. 본 앨범의 가치가, 세상과 아티스트 자신의 변화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흔들릴 수도 없는 이유다. 금기조차 넘어서는 이어짐은, 언제나 그렇듯 내일을 향해 있기에.

Best Track: ONE MIC, 밥값 (feat. Koonta), Do It For (feat. Paloalto, MC M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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