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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랩가사란? 문학적인 경우

아드아스트라2025.08.10 23:31조회 수 703추천수 1댓글 4

좋은 랩 가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는 쉽지 않다. 애초에 ‘무엇이 좋은가’라는 물음은 모든 예술에서 끝없이 제기되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랩 가사는 시, 특히 정형성을 지닌 소네트에 가장 가깝다. 물론 각운의 배치, 전개, 소재 면에서 훨씬 자유롭지만, 결국 랩도 힙합 음악의 일부로서 음악적 요소를 품어야 한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기준은 이 정도일 것이다.

“라임을 적절히 배치하여 주제를 자연스럽게 이끌어갈 것.”

여기에 언어만이 가능한 비유와 상징, 어휘 선택, 구조, 이미지 창조력이 더해진다면 그 랩가사는 문학적인 성취를 목적으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타블로의 「당신의 조각들」은 교본에 가깝다. 백 명이 읽고 들어도 뛰어난 문학적 가사라 부를 만하다.


이 가사의 정점은 핵심 비유에 있다. 비유란 서로 다른 개념을 연결하는 행위라면, 타블로는 그 연결을 가장 정교하고 감동적으로 수행한다. 부모의 신체와 부모의 역할을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눈’을 거울, 여울, 별로 확장한 시각적 심상은 아버지의 헌신을 비춘다. ‘두 손’을 저울과 지구본에 빗댄 부분은 자식에게 세상을 가르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시각적 이미지가 이어지다가 ‘종소리’라는 청각적 심상, ‘따뜻한 두 손’이라는 촉각적 심상이 차례로 덧붙는다. 마지막에는 눈과 손이 결합하며 이미지는 완결된다. 그야말로 장면이 그려지는 생생함이다.


라임도 빼놓을 수 없다. ‘눈동자–주고파’에서 드러나는 ㅜ·ㅗ·ㅏ 모음 라임은 ‘조차–숨고자’로 변형되며 반복된다. 기본 골격은 ㅜ·ㅗ·ㅏ이지만, 단음절 라임과 ㅐ·ㅏ 같은 변형 라임이 섞인다. 후반부로 갈수록 반복을 전면에 내세워 라임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부모에 대한 마음을 더욱 곡진하게 드러낸다. 받침에 ㄴ·ㄹ을 두고 발음을 부드럽게 마무리하거나, ‘여’처럼 온화한 어감의 음절을 자주 써서 사랑이 주는 따뜻함을 살린다.


당신의 눈동자, 내 생의 첫 거울

그 속에 맑았던 내 모습 다시 닮아주고파

거대한 은하수 조차

무색하게 만들던 당신의 쌍둥이 별

내 슬픔 조차 대신 흘려줬던 여울

그 속에 많았던 그 눈물 다시 담아주고파

그 두 눈 속에 숨고자 했어

당신이 세상이던 작은 시절

당신의 두 손, 내 생의 첫 저울

세상이 준 거짓과 진실의 무게를 재주곤

했던 내 삶의 지구본

그 가르침은 뼈더미 날개에 다는 깃털

기억해, 두 손과 시간도 얼었던 겨울

당신과 만든 눈사람

찬 바람 속에 그 종소리가 다시 듣고파

따뜻하게 당신의 두 손을 잡은 시절

당신의 눈, 당신의 손

영원히 당신의 눈을 바라보며 손을 쥐고 싶어

벌써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물론 힙합 가사의 미덕이 반드시 이런 문학적 향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랩은 문체와 구조에서 훨씬 자유롭다. 내가 타블로를 한국 대중음악사 최고의 리릭시스트라 부르는 것도, 그가 이런 문학적 가사만 잘 쓰기 때문이 아니다. 다음에 이야기할 작사가로 씨잼을 꼽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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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문학적으론 타블로 화나 빈지노가 탑인거같음

  • 2 8.10 23:43
    @디스포일드차일드

    저는 타블로를 가사에 있어서는 독보적이라고 봐요. 순전히 개인적인 평가지만. 화나,빈지노도 대단하죠.

  • 1 8.11 06:49

    이런가사 요즘 좀 보고싶다

  • 1 8.11 15:17

    죽어가는 화가의 붓처럼 떨리는 입술로

    넌 내게 미완성 미소를 그려주고

    -이별, 만남 그 중점에서-

     

    이런 가사에서 타블로가 문학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했어요.

     

    비슷한 케이스로 키비도 있는데 광화문 글판에 가사가 걸리고, 은희경의 장편소설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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