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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 더 질라 정규 5집-94-24

title: ASTROWORLDAlonso20004시간 전조회 수 203추천수 2댓글 1

https://blog.naver.com/alonso2000/223797429402

 

 

 

 

* 본 리뷰는 2024년 11월 22일 발매된 정규 앨범 <94-24>와 2025년 1월 23일 발매된 보너스 트랙 <94-24 + 1>을 동시에 리뷰하는 것임을 밝혀둔다.

옛사람들은 30세를 일컬어 '이립(而立)'이라 칭했다. 자신의 뜻이 확실히 서서 성숙해질 시기를 서른 즈음으로 여겼던 생각은 어쩌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현행법상에서는 대체로 29세까지를 청년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적어도 30대가 끝나기 전에는 결혼, 혹은 취업 둘 중 하나는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서있는 땅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물론, 모든 이들이 이를 해결하는 데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재능과 기회가 많은 것을 좌우하는 예체능의 세계에서는 이를 해결하는 것이 더더욱 어렵다. 그리고, 여기 서른 살을 맞은 또 하나의 아티스트가 있다.

제네 더 질라의 20대는 언뜻 밝아 보였다. 동료의 방송 출연으로 인한 주목을 덩달아 받기 시작하더니, 팔로알토, 박재범 등 장르 씬의 거물들의 지원을 얻었고, 더 콰이엇과 계약까지 성사되며 견고한 활동 기반까지 확보하였다. 그러나, 그 성세 이후의 바이오그래피는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방송에서의 실수로 평판이 깎였고, 앨범의 퀄리티는 준수했으되 결정적이라 하기는 어려웠으며, 레이블의 기존의 스타들, 그리고 새로 합류한 신성들에 비해서 그의 입지는 확연히 작아졌다. 그럭저럭 버틸 만한 수준으로 커리어는 이어졌으나, 그는 이에 만족하기는 어려웠다. 아니, 만족할 수 없었다. 안주했던 지난날들을 돌아보니 야망과 뜨거움을 말했던 자신의 모습에서 너무도 틀어져 있었다. 이를 돌아보고, 정리하고, 또한 해소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제너 더 질라가 <94-24>를 제작하였던 것이다. 과연 그가 맞이한 서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그는 서른이 되어 무슨 뜻을 세웠을까?

 

 

 

 

뚜렷한 억양과 재치로 타격감을 조성하는 제네 더 질라의 장점은 <94-24>에서 가장 정제된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 기존에 목소리를 꺾고 뒤집어가면서까지 드러냈던 강한 개성에는 진정성을 위하여 기름기가 쫙 빠졌다. 트랩에 잘 어울리는 미니멀한 랩 디자인도 여전하지만, 자신의 인생담이 담긴 가사와 짙은 페이소스가 더해지며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작가주의적인 작품으로 거듭났다. '인생이 쉽지 않아'라는 "No easy"의 주된 테마는 자신의 자만했던 삶 전반을 돌아보는 "Life"로 더욱 확장되었다가 이내 자신의 움츠러든 현주소를 비추는 "빛이 바랜 별"로 치닫는다. 이를 재확인 시켜주는 것이 있다면 "1500"에 드러나는 구체적인 일화일 것이다. 유기묘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쓸 1500만 원을 두고 했던 고민과 환멸을 품은 채 제네 더 질라는 "서울의 달" 아래서 다시금 희망을 쫓는다. '비 속에서 춤추는' 그의 모습은 어쩌면 역경 아래서도 꿋꿋하고자 하는 표현이요 의지이다. 그 꿋꿋함이 그가 "적자생존"이 가능하다 여기는 원동력이며, 인생을 "한 바퀴" 돌아본 뒤 당당히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치킨을 뜯을 수 있는 비결이다. 방황했던 과거를 딛고 제네 더 질라는 이제 승리와 희망을 다시금 외친다. "ㅈㄴㄷㅈㄹ"의 두터운 의리와 포악한 야망, "Pairing"에 묻어나는 연륜어린 여유와 "돈 생각"으로 다시금 가득해진 그의 마음은 그의 초심 찾기가 성공했음을 전력으로 말한다. 그럼에도 앨범의 마무리가 "No easy"의 리믹스로 수미상관을 이루는 것은 견고한 초심을 지니고도 세상살이는 쉽지 않음을, 그래도 우리는 꿋꿋이 살아가야 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앨범의 토픽이 진중해졌으니 만큼 사운드의 결 또한 전작들에 비해 확실히 무거워졌다. 프로덕션의 고급화를 위하여 제네 더 질라는 2000년대 초중반의 트렌드였던 칩멍크 소울 샘플링의 활용에 주목하였고, 때마침 성공적으로 트랩과 칩멍크 소울을 조화시킨 21 세비지(21 Savage)의 <american dream>이라는 선례 겸 레퍼런스도 있었다. 레퍼런스가 명확하니 만큼 프로듀서 인선도 선명하다. 근래의 시류를 따라 타입 비트 메이커를 활용하되 FLAGMAN 1명 만을 "No easy", "적자생존" 등의 킬링 트랙에 집중적으로 배치하였으며, 재즈, 블루스 계통의 사운드에 정통한 돈 사인(Don Sign.) 역시 "한 바퀴", "Pairing"에서 기타 샘플과 브라스, 오르간의 활용을 통해 뚜렷한 그루브와 존재감을 남긴다. 프로듀서 팀 스머글러스의 주말(Jumal)이 명징한 현악기 선율로 앨범이 요구하는 서정성을 채워내는 사이에 평소대로 육중한 피아노와 함께 멤피스 사운드에 기반한 타격감을 새겨내는 헤콥(Hecop)이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그 와중에도 가장 팝적인, 또 동시에 이모 랩적인 결을 지닌 888언퍼블릭의 "Dancing in the rain"은 전작 <Bad Night>의 대중적인 지향을 앨범의 서사에 자연스레 녹여내며 30분가량의 짧은 러닝 타임에 최대한의 다양성을 확립시킨다.

 

 

 

 

앨범의 주제가 제네 더 질라의 개인적인 회고와 심정에 집중하고 있으니 만큼 마지막의 리믹스 트랙을 제하고 본다면 게스트의 개입은 상당히 효율적으로 이루어졌다. "적자생존"의 소울 샘플 위를 날아다니는 던말릭의 촘촘함, 혹은 "Dancing in the rain"의 위안 속으로 녹아드는 멜로의 짙은 음색으로 대표되는 앰비션-데이토나 사단과의 교류는 언제 들어도 그 합이 항상 자연스럽다. 스스로의 환경적인 변화를 위해 출연하였던 <랩:퍼블릭>에서의 경험 역시 멤피스 사운드 위에서 퉁퉁거리는 "1500"에서의 더블 다운의 모습으로 충실히 반영되었다. 자신이 프로듀싱 한 "Pairing"에 유려한 토크박스 연주를 보태주는 돈 사인의 존재감도 역시 각별하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과 동료 간의 교류는 자신이 겪었던 '쉽지 않은 삶'을 공유하는 "No easy (Remix)"에 종합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더 콰이엇의 담담한 내레이션으로 주제가 주어지고 나면 제네 더 질라의 찰진 훅을 지나 노선, 김효은, 해쉬 스완이 자신들의 삶에 대한 생각을 꺼내놓는 순간은 제네 더 질라가 겪었던 방황과 고민이 결국에는 보편적인 테마로 맞아떨어짐을 보여주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앨범의 시작과 함께 제네 더 질라가 말하듯, 인생은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실패의 경험은 쌓이기 마련이고, 그때마다 사람은 자연스레 움츠러들기 십상이다. 물론 잠깐 기회를 만나 성공을 맛볼 수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이에 안주하다 조금씩 침잠하고 무뎌지게 된다. 그러다가 예상치 못한 일 - 제네 더 질라의 경우에는 유기묘 구출과 이에서 비롯된 진료비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 이 기어이 닥쳤을 때, 문득 인지부조화가 닥치고 부정적인 감정에 뒤덮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제네 더 질라는 이런 일을 겪는 이들에게 넌지시 자신의 경험을 말해준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나답게 나아가기로 다짐했던 어느 서울의 밤을, 고된 일을 마주치더라도 끝내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을 건네준다. 결국 이러한 마음가짐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금 여유로이 치킨을 뜯으며 승리를 축하할 수 있게 된다. 거듭 솟아오르는 지신과 여유를 가슴에 품게 되니, 이제는 어떠한 회한도 두렵지 않다. 그렇게 우리는 서른을 맞고, 우뚝 서게 된다. 그렇게 제네 더 질라의 경험, 그리고 이로써 세워진 자신에 대한 믿음과 긍정적 에너지는 우리에게 시들지 아니한 초록빛 젊음으로 남게 된다. 물론 메시지의 힘만은 아니다. 이는 절제된 표현의 힘이고, 자신의 개성과 장점이 고식(古式)을 만나 조화를 이루는 프로덕션의 힘이다. 뛰어난 메시지가 이에 상응하는 음악적 표현을 만나면, 그 시너지가 우리에게 설득과 울림으로서 절절해짐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그래서 더욱 지금의 나 자신과 우리에게 더욱 짙게 다가오는 앨범이다.

Best Track: 1500 (Feat. Double Down), 적자생존 (Feat. DON MALIK), No easy (Remix) (Feat. Nosun, 김효은, Hash S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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