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naver.com/alonso2000/223728033076
코르 캐쉬(KOR KASH)와 이안캐시(Ian Ka$h)는 참 공통점이 많다. 이 둘은 씬에 처음 등장한 이후 하입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타 아티스트들의 굵직한 작품에 참여하며 역량과 영향력을 키워왔다. 여기에, 여러 서브 장르에 두루 능함에도 주 장기는 트랩으로 귀결되는 둘이니, 이 콤비의 만남은 사실상 필연이고 운명이었다. 두 아티스트의 예명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금전(Kash)'을 이용한 언어유희로 된 제목만큼 <KASH on Ka$h>에는 힙합적인 욕망과 야심의 서사가 있고, 이를 받쳐줄 맹렬하고 흉포한 트랩으로 20트랙 내내 달려나간다. 사실 이미 너무도 흔해져 버린 아트 폼인만큼, 명확한 차별점이 <KASH on Ka$h>에 요구될 것이다. 다행히도, 이 둘의 개성이 이미 탁월하기에, 이 앨범은 2024년의 한국 트랩을 상징하는 앨범이 될 수 있었다.
이안캐시 특유의 음울하고 사나운 트랩이 앨범 내내 반복된다. 특히 곡의 콘셉트에 맞춘 악기의 활용이 유독 두드러진다. 스스로 힙합 씬의 보스를 자처하는 "Boss Talk"에서 지폐계수기 소리를 삽입하고, 유명 격투기 선수인 정찬성의 링네임을 가져온 "Korean Zombie"에 공(Gong) 치는 소리가 지속적으로 거듭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스트링 샘플, 혹은 성악 샘플을 통해 장엄함을 조성하였고, 이를 100대 중반으로 빠르게 당겨버린 BPM과 더불어 멤피스 랩의 영향이 짙은 파괴적인 드럼까지 곁들여 긴박감과 타격감을 더했다. 이렇게 질주하는 와중에도 중간중간 변주를 통한 드리프트로 이 트랩 드라이브는 더욱 화려해졌다. "Go" 중간에 올드스쿨하게 변하는 드럼에서는 이전에 몇몇 붐뱁 비트에서도 날카로웠던 이안캐시의 예리함이 드러나며, 서정적으로 시작했다 중간에 폭발하는 "Good Day To Die"의 구성도 상당히 훌륭한 편이다. 앨범 곳곳에 칩멍크 샘플을 통해 고전미와 품격까지 더해주니, 이안캐시가 20트랙, 1시간에 달하는 거대한 볼륨 내내 트랩으로 진행하면서도 어떻게 지루함 없이 뻗어갈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는, 보란 듯 성공적이다.
래퍼로서 코르 캐쉬가 지니는 장점을 정리하자면, 1. 심플한 랩 디자인과 정교한 완급조절, 2. 톤과 오토튠의 영리한 활용, 3. 수많은 프리스타일 경험에서 우러나는 날것의 표현일 것이다. <KASH on Ka$h>에도 그의 이러한 장점은 유감없이 드러난다. "Boss Talk", "36524", "Good Day To Die"에서 타이트하게 뱉는 솜씨는 EK, 스윙스, 창모 등 랩 피지컬에 자신이 있을 게스트들에 쉽사리 밀리지 않는다. 멜로딕한 영역으로 넘어가자면, "Skrrrt"의 조금은 과잉된 부분부터 "To My Friends"의 진솔함에 이르기까지 오토튠의 활용도 역시 상당히 준수한 편이다. 이러한 탁월한 랩 기본기가 다양한 경험으로 형성된 한국 언더그라운드 트랩 씬에서의 네트워크와 어우러지는 것도 앨범의 묘미이다. 예컨대, "36524"에서 코르 캐쉬의 직진성과 스윙스의 저돌성, 바이스벌사의 광기가 킬링 트랙을 형성하기도 하고, "Go"에서 부현석, 노윤하와 각기 다른 결의 그루브를 주고 받으며, "Fa Fa"에서 코르 캐쉬와 오왼의 하이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이렇게 드러나는 그의 큰 그릇은 앨범에 한국 언더그라운드 트랩의 여러 유망주를 끌어들이는 것으로 이어졌다. 코르 캐쉬하고는 드랍 더 비트 동기이기도 한 히어로인시티는 조금은 익숙할 수도 있겠지만, 영 씨프(Young Thief), CIKA 처럼 일반 리스너에게는 생소한 이름도 더러 눈에 띈다. 장르 씬의 빅네임부터 아직은 낯선 이들까지 자신의 앨범에 고루 녹여내는 솜씨는 현재 코르 캐쉬가 지닌 역량과 위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고향인 평택에 대한 자부, 거친 삶을 탈출하기 위한 허슬과 부에 대한 야망, 지독한 공격성과 가족애에 이르기까지, <KASH on Ka$h>의 소프트웨어는 사실 너무도 익숙한 것이다. 그럼에도 <KASH on Ka$h>가 빛나는 것은, 앨범이 발매된 2024년 현재의 한국 트랩을 가장 장르에 충실한 형태로 구현한 앨범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코르 캐쉬만의 생것의 느낌을 이안캐시의 풍부한 경험으로 지지하면서 그의 이야기는 짙은 설득력을 갖추었다. 이렇게 앨범 전체에 녹여낸 트랩의 클리셰를 가능한 한국어로, 지역주의적으로 해석해내며 앨범은 조금 더 생활에 밀착된 이야기를 꺼내놓게 되었고, 그렇게 되니 공감대는 자연스레 따라왔다. 한국 트랩 씬의 고금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은 그들의 로컬라이징과 정통성에 반응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야심과 열정, 이에 상응하는 역량은 이들로 하여금 한국 힙합의 지금을 가장 잘 반영한 작품을 내놓게 했다. 교집합에서 드러나는 힘이 이토록 매섭다.
Best Track: Go (Feat. 부현석, 노윤하), 36524 (Feat. Swings, viceversa), Good Day To Die (Feat. CHANGMO)
https://drive.google.com/file/u/5/d/15haVGCwub2CYnAtF9qXBnHkrgPNMQfVs/view
본 리뷰는 HOM#20에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동문으로서 평택 샤라웃은 마음에 들더라고요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