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한국힙합 유저매거진 Haus of matters #22에 수록되어있습니다. 이 글 외에도 여러 다양한 소개/리뷰글 많으니 시간 날때마다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https://hiphople.com/kboard/31388291?member_srl=1053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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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디 (Moldy) <Kpop Addict>
1. KKKKK
2. Pill 2 Feel 2
3. Asiana
4. Enter The Void
5. ZONK!
6. Love My Kitchen
7. 100
8.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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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t2Cpxjal11k
https://www.youtube.com/watch?v=z6JH9RH7ZQs
2010년대 후반,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을 주목했던 이들이라면 그랙다니(Grack Thany)라는 크루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힙합 장르를 붐뱁과 트랩만으로 이분화하여 구분하던 당시, ‘대안적 힙합 음악’을 전면에 내세웠던 이들은 전자음악을 적극 도입한 얼터너티브/익스페리멘탈 힙합을 선보였다. 이에 TFO의 <ㅂㅂ>, 몰디의 <Internet Kid> 등 소속 멤버의 작품들이 알음알음 리스너들에게 주목받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 중 <Internet Kid>의 주인이기도 한 몰디는 그랙다니의 설립 초기부터 현재까지 크루의 프론트맨 역할을 겸하는 래퍼이다. 자유자재로 흘러가는 래핑과 유려한 박자 감각을 통해 쉽게 소화하기 힘든 크루 특유의 음악 스타일을 선보이며 존재감을 발휘했다. 더불어 프로듀서가 주를 이루는 멤버 사이에서 몇 안 되는 래퍼 포지션이기도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의 랩 역시 크루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가 되었다.
<Kpop Addict>은 이러한 몰디의 정규 2집이다. 1집 <Godspeed Love>로부터 약 4년, 전작 <PORNO CHANNEL>으로부터 약 2년 만에 나온 앨범이다. 최근들어 그랙다니의 활동량이 줄어드는 인상이 강했기에 더욱 반갑게 다가온다. 사실 본작의 존재 자체는 작년 초부터 밝혀왔으니, 1년 이상의 작업 기간을 거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그가 만들어낸 케이팝의 실체를 처음 마주하게 되면 이런 생각이 자연스레 들지 않을까 싶다. ‘이게 어디가 케이팝이야?’
시작을 여는 트랙 “KKKKK”는 신비스러운 신디사이저 음이 수놓인 인트로를 지나 몰디의 랩이 시작되며 본격적으로 폭력적인 드럼 사운드가 곡의 주도권을 쥔다. 이처럼 앨범의 뼈대는 프로듀서 션만이 주도한 하드 테크노로 이루어져 있다. 장르에 걸맞게 격렬한 퍼커션과 신스음이 곡 전반에 분포되어 있고, 변주 또한 끊임없이 진행된다. 이는 곡 전반이 벌스-브릿지-코러스(훅)의 기본 구성을 벗어난 비전형적인 전개를 가지게 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맹렬하고 혼란스러운 인상을 심어준다.
변화무쌍한 것은 몰디의 래핑도 마찬가지다. 더욱 다이나믹해지고 변칙적인 플로우를 통해 곡을 헤쳐 나가며, 변조음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마치 하나의 악기처럼 곡 안에 녹아들었다. 또한 강단 있는 딜리버리를 선보이다가 바로 멈블 랩을 하는 등, 짧은 순간 안에 온도차가 큰 퍼포먼스를 통해 예상치 못한 전개를 구성하기도 한다. 가사또한 추상적인 은유을 통해 난해한 인상을 부각시키며, 제목의 'Pop'을 팝 음악과 마약의 은어로 이중적으로 해석하고 곡의 주제로 활용해 쾌락 지향적인 내용을 표현한다.
그로테스크한 앨범 커버가 괜히 있는 게 아닌 듯, <Kpop Addict>의 내용물은 그리 대중 친화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 대척점에 서있는 작품에 가깝다. 몰디의 커리어 전체를 봐도, 드리프트 퐁크의 <Gongdo Racing! (公道レーシング!)>와 테크노의 <PORNO CHANNEL> 등 그가 최근 시도한 일렉트로니카 기반 장르를 더욱 실험적으로 발전시킨 형태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그는 왜 케이팝스럽지 않은 본작에다가 ‘케이팝’이란 타이틀을 붙인 걸까?
이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우리가 말하는 케이팝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부터 짚어보자. 정의대로라면 ‘한국의 대중가요’를 뜻하겠지만, 우리는 보편적으로 ‘아이돌 음악’에 한정해서 말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돌 음악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대체로 경쾌하고 신나는 분위기와 사랑 같은 대중 친화적 주제와 가사가 주를 이루는 일렉트로니카 팝 음악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아이돌 음악은 단순히 위에 설명한 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 힘들 만큼, 날이 갈수록 복잡한 형태를 띤다.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반영해 일렉트로니카를 넘어, 힙합, 하이퍼팝 등 여러 장르를 혼합한 사운드를 구현하기도 하며, 팀의 ‘세계관’을 활용한 독자적인 주제와 추상적인 가사를 가진 곡의 수도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욕설을 곡에 집어넣는 등, 대중 친화적이고는 거리가 먼 과감하고 도발적인 시도들도 등장했으며, 이러한 도전이 상당히 성공적인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처럼 케이팝은 이제 단순히 한 형태로 정의할 수 없는 얼터너티브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를 다른 시선으로 보자면 ‘어떠한 형태를 지니고 있어도 케이팝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리고 몰디는 이러한 특징에 주목한 것 같다.
몰디는 본작을 만드는 데 있어, ‘한 가지 장르로 묶이지 않는’ 케이팝의 특징을 모티브 삼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앨범의 불친절한 겉모습을 한 차례 걷어내면, 생각외로 우리에게 익숙하게 느낄 구성이 보일 것이다. 먼저 일렉 기반 장르를 차용한 만큼, 종잡을 수 없는 전개 속에서 분위기를 고조시키다 하이라이트 구간에 터트리는 구조를 기본으로 삼고있는걸 쉽게 볼 수 있다. 또 “100”이나 “한국”을 제외하면, 비전형적인 구성 안에서 짧고 단순한 코러스가 자주 반복되는 후크송의 형태를 띠고 있다.
쾌락주의적인 내용의 가사도 몰디가 추구하는 음악가로서의 자유로움을 과격하게 표현한 형태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서술했듯이 앨범은 ‘Pop’을 팝 음악, 그리고 마약의 은어로 이중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초반부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마약에서 팝 음악으로 표현의 뉘앙스가 바뀌어간다. 특히 마지막 트랙인 “한국”에서 자유를 원하는 음악가로서의 자신과 이에 대비되는 사회상을 그린 것을 생각하면, 내용 자체가 한국이라는 사회로부터 거리를 두는 도발적인 태도로 비춰지기도 한다.
물론 이런 복잡한 해석 없이 사운드만으로도 큰 쾌감을 주는 작품이다. 앨범 전반에 깔린 거침없는 진행은 일렉 기반의 헤비한 사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이에 더해 “KKKKK”나 “100”처럼 몽환적인 소스를 적극 첨가하거나, “Love My Kitchen”처럼 묵직한 전개를 활용하는 식의 변주를 통한 다이나믹한 구성, 그리고 “Enter The Void”라는 숨을 잠시나마 고를 수 있는 트랙의 배치 등, 앨범의 구성은 하드 테크노에 익숙치 않은 이들까지도 흥미를 놓지 않도록 만든다. 다만 초반부 트랙인 “KKKKK”와 “Pill 2 Feel 2”가 누군가에게는 자칫 질질 끈다는 인상을 줄 만큼 필요 이상으로 곡 길이가 긴 점이 앨범의 옥의 티이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만 잘 넘어간다면, 앨범은 정신없지만 스릴 넘치는 롤러코스터 같은 경험을 청각적으로 느끼게 해줄 것이다.
<Kpop Addict>은 오늘날 케이팝 음악의 과감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극대화해서 표현한 작품이다. 앞서 말했듯, 첫 모습에는 상당히 전위적이고 비주류적이라는 시선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낯선 형태가 의외로 익숙한 모습과 교차하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면 꽤나 신선한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색다른 융합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환영한다. 당신도 몰디가 선사한 케이팝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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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반가운 이름이기도 했고, 또 올해 나온 작품들 중 많이 돌리고 좋아했던 앨범 중 하나였던지라 오랜만에 긴 리뷰글을 쓰게 된 것 같네요.
케이팝을 제목에 붙히는 것으로 대놓고 연관성이 있다는걸 암시하기도 했고, 그 연관성이 무엇인지 해석하는 식으로 작성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앨범은 케이팝와 대비되는 낯선 음악' 어쩌구로 표현하긴했는데......사실 그렇게까지 어려운 앨범은 아닙니다. 물론 몰디 음악 특유의 '낯설게 하기' 기법이 깔리긴 했다만, 전반적으로 하드 테크노 장르에 랩을 얹은 식이라 그랙다니 소속 멤버들 음악이라든가, 만약 그랙다니를 모른다면 힙노시스 테라피 음악을 떠올리신다면 대강 어떤 느낌인지 파악하실겁니다. (아님 그냥 제가 익페 악귀라 실제로 진입장벽 높은 음악일수도 있겠고요.)
여하튼, 이 앨범 짱 맛있어요.....츄라이해보세요...
텍스트복사하셧는지 색반전돼서안보이네요 다크모드기준
방금 기본값으로 수정했습니다.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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