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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의 끝은 마침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comma]

title: 털ㄴ업 (1)lignis2024.04.13 20:50조회 수 2077추천수 10댓글 8

comma.jpg

 

<comma> (우원재, 2022/11/24 발매)

 

트랙리스트

(1) Repeat

(2) Glass (feat. 원슈타인)

(3) 우리 [Title]

(4) Me (나야)

(5) Mommy

(6) 그래요

 

#0. Prologue: 과부화로 인한 블랙아웃, 그리고 쉼표가 된 전원 버튼.

-> <쇼미더머니> 시리즈에서 래퍼가 아닌 일반인의 입지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은 누구일까? 2010년대 후반부터는 사실상 이미 래퍼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중에게 자신을 드러내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출연이 상당수를 이루게 됐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래퍼로의 데뷔를 꿈꾸는 일반인 참가자의 수도 적지 않았다. 만약 나에게 일반인 참가자 중에서 단 1명만을 뽑으라면, <쇼미더머니 6>에 출연했던 우원재를 뽑을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검은 비니를 쓰고 등장한 우원재는 대중들에게 다양한 임팩트를 남겼다. 자신의 아픔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알약 2봉지 라인의 가사. 어린이와 산타의 이미지를 연결시켜 창의성으로 대중을 놀라게 한 산타 라인. 그리고 쇼미더머니를 3위로 마무리하면서 공개했던 데뷔 싱글 <시차>까지. 쇼미더머니에 출연했던 일반인 중 가장 성공적인 데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행적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우원재가 내놓은 <comma> 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꼭 그의 적성이었던 것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EP <comma><af>(2018), <BLACK OUT>(2020)에 이은 우원재의 3번째 앨범이다. 이 중 <BLACK OUT>은 그의 정규 1집으로, 원래부터 네거티브의 색채가 강했지만 유독 솔로 트랙에서 조용히 침잠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미디어에 본격적으로 노출되기 전에도 우원재는 이미 심신이 그리 편안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순식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그의 겉과 속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겉은 화려하고 찬란해 보일지언정, 내면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던 걸까. 다른 이들의 작업물에 참여하는 피쳐링과 달리 우원재의 개인 작업물은 계속 네거티브의 색채를 유지했고, <BLACK OUT>의 그림자는 <comma>로도 이어졌다.

 

#1. Repeat

어릴 적에 넘쳤던 패기는 모두 잃어버렸지 하루 종일 젖었던 내 맘도 건조해졌지

내일도 뻔해 오늘과 같을걸 I’m in the loop always plz god stop it all

->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시간의 단위로 여겨지는 일주일은 총 5일의 평일과 2일의 주말로 이뤄진다. 아직 본격적인 사회 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평일과 주말의 경계가 다소 모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사회의 소용돌이 속으로 한 번 뛰어들고 나면,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총 5일의 정상 운행과 2일의 절전 모드로만 나눠져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가진 것이라고는 패기와 자신감밖에 없던 청년은 대다수의 유명인이 그렇듯 유명을 얻고 대신 평범한 것들을 잃어야 했다. 그렇게 알약 2봉지와 비니로 이뤄졌던 삶은 짧은 여명을 남기고 사라졌고,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목에 새긴 가시와 같은 타투뿐이었다.

 

#2. Glass (feat. 원슈타인)

네모 window를 통해 비친 건 흐린 내 모습

아니면 그 너머의 것들 근데 뭐 얼추 보기엔 비슷해 본새

->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앞에 유리를 놓는다면 그 유리가 투명할지라도 필연적으로 왜곡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그 유리가 불투명하다면 눈 앞의 세상 속 현실은 믿음직스럽지 못한 모습일 것이다. 그렇다면 연예인, 혹은 유명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왜곡이 일어나지 않은 순수한 관점이라 할 수 있을까. 비록 이 트랙의 제목이 유리라는 뜻의 glass이긴 하지만, 우원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오히려 색안경에 가깝다. 진실과 거짓 중에서는 정확한 것보다 오히려 자극적인 것이 더욱더 멀리까지 퍼져나가게 된다. 오늘날 온라인과 인터넷 세상 속에 선행보다 가십이 훨씬 더 눈에 많이 띄는 것도 그 이유다. 그리고 이미 꽤 구석에 몰려있던 우원재에게 대중의 시선은, 색안경에서 나온 방사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3. 우리 [Title]

끈질기게 미행하는 시간은 내 못된 사생팬

친구들은 물어 요즘 잘 지내? 쉽게 답 못해
-> 유명을 얻는다는 것은 평범을 잃는다는 것과 동의어일 수 밖에 없는 걸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빛이 비춰지기 전의 기억들은 조금씩 흐려졌고, 검은색으로 스스로를 둘러싸던 자기 방어는 어느새 무수히 많은 빛에 의해 느슨해져 갔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손을 잡아주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뒤를 돌아봤을 때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서, 더 이상 우리라고 부를 수 없는 거리까지 벌어져 있었다. ‘I have to be patient but another day’라는 가사에 이어 애써 ‘We okay now’라고 되뇌어보지만, 우원재가 느끼는 우리는 cage에 가까웠다그리고 우리의 카테고리를 쫓아가기 위해 이리저리 흔들리던 그의 움직임은, 결국 어딘가에 묶인 것처럼 나아갈 힘을 잃고 말게 된다.

 

#4. Me (나야)

인생이 그래 뭐 원래 덧없지 잃을 게 없을 때 나는 겁 없지

가진 게 많은 난 몸이 무겁지 주춤대는 발걸음 두렵지

->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톰 행크스가 사회로 돌아왔을 때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던 것처럼, 이미 떠났던 자가 오랜만에 돌아오면 이상할 만큼 공기의 흐름이 무거워지는 듯하다. ‘우리에서 멀어진 사람들을 향해 인사를 건네기 위해 손을 내밀었을 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향한 반가움이 아닌 유명인을 향한 환호였을지도 모를 일이 아니다. 당시 같은 회사(AOMG)의 선배가 외쳤던 니가 알던 내가 아냐라는 말을 통해 미디어의 왜곡을 뚫고 진심을 보내려 하지만, 소통의 오류는 그리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다. 그렇게 진짜 나를 외치는 소리는 다양한 소음에 의해, 조용히 묻혀갔다.

 

#5. Mommy

모든 게 의미 없기에 값지고 아름다운 거라는 말은

아직도 반의 반의 반의 반도 이핼 못했지만 아마 맞을걸

-> 모든 관계의 흔적이 무뎌지더라도, 가족만큼은 쉽게 그 고리가 흩어지지 않는다. 특히 그 중에서도 부모님의 존재는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마지막을 지켜줄 수 있다고 믿는 최후의 보루와도 같다. 막이 내려가지 않은 상태에서 무대를 비추는 빛을 피해서 도망친 그가 가족에게서 발견한 것은, 지금의 자신을 이루기 위해 그들이 지나쳐 버린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는, 그 또한 적지 않은 세월과 나이를 겪으면서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가족들이 지나왔을 찬란한 시간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가족과 함께한 기억이 담긴 앨범을 조용히 뒤적이면서, 그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가족의 쉼표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6. 그래요

어릴 적 내 가방은 컸고 이젠 그걸 벗고도 무거워요

이유 없는 결과에 왔고 난 그게 무서워요

-> 다수의 인간이 뭉치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힘을 발휘하지만, 반대로 1명의 인간은 그저 이리저리 휩쓸릴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다. 그리고 그 한 명이 다수가 쉽게 얻을 수 없는 높은 가치의 것을 보유하고 있다면, 다수는 1명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할 수 밖에 없다. 이 때 사람의 성격에 따라서 행보가 갈리게 되는데, 이러한 무대의 조명을 만끽할 수 있는 타고난 스타맨들이 있다면, 반대로 지나치게 밝은 빛이 부담스러워 최대한 그 빛을 피해다니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앨범을 마치며 트랙의 마지막에 모두 미움만 받지 말길, 누굴 미워하지 말길이라는 말을 남긴 걸 보면, 우원재는 후자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7. Epilogue: 아직 꺼지지 않은 스포트라이트, 그러나 돌아올 줄 모르는 절전의 쉼표

-> ‘슈퍼스타는 수많은 빠와 까를 미치게 만들 수 있는 존재라는 말처럼, 유명인을 따라다니는 무수한 시선은 한 인간에게 양날의 검이자 독이 든 성배와 같이 작용할 수 있다. 마치 적절한 양만 복용하면 문제가 없지만 남용과 오용이 이뤄지만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처럼, 인간이 아무리 관심과 주목을 필요로 하는 존재여도 과유불급은 필연적인 소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면, 보통 과부화 상태의 사람은 잠시 전원을 끄고 절전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comma>를 들으면서 나는 우원재가 기약 없는 절전 상태에 놓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comma>를 낸 이후 지난 2년 동안 우원재는 다양한 협업과 작품을 만들었지만, 앨범 단위의 개인 작업물은 여전히 <comma>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나는 일반인에서 지금까지 올라온 행적을 생각하면, 우원재는 충분히 좋은 음악을 전할 수 있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팬 입장에서는, 그저 그가 충전을 끝낸 후에 독특한 아우라와 개성이 담긴 음악을 들고 돌아오길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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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 1 4.13 20:56

    캬 이 앨범 너무 좋죠 리뷰 잘 읽었어요!

  • title: 털ㄴ업 (1)lignis글쓴이
    1 4.13 21:00
    @dndhkd0726

    좋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리뷰 쓰기 위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ㅎㅎ

  • 1 4.13 23:24

    우왕 잼게 읽었습니다 글 많이많이 올려주세요 케헤헷

  • title: 털ㄴ업 (1)lignis글쓴이
    4.13 23:42
    @쟈이즈

    재밌게 읽으셨다니 꽤 마음이 편해지네요 ㅎㅎ

    부족한 글이지만 앞으로도 잘 써보겠습니다!

  • 1 4.14 02:18

    와 글 너무 잘 쓰십니다 부러워요

  • title: 털ㄴ업 (1)lignis글쓴이
    4.14 07:00
    @겁먹은괭이

    비록 아직 많은 경험이 쌓이지 않아 미숙한 글이지만, 앞으로 더 많은 앨범과 글을 받아들이며 더 깊은 글을 쓰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1 4.14 21:23

    와 클리셰도 그렇고 정성이 드러나는 리뷰네요!

    앞으로의 글들도 기대하겠슴당!

  • title: 털ㄴ업 (1)lignis글쓴이
    4.14 21:49
    @MODM

    앨범을 들을 때 아티스트의 진심이 와닿는 곳에서 쾌감을 느끼기에 저 또한 글에 최대한의 진심을 담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진심과 사심이 가득한 리뷰를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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