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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온 정규 1집-Garion

title: Kanye West (Vultures)Alonso20002024.02.14 22:17조회 수 1116추천수 6댓글 9

https://blog.naver.com/alonso2000/223353786821

 

 

 

'로컬라이징'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오히려 2000년대의 한국 힙합이 현재보다 나은 구석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라킴(Rakim)이 제시한 다채로운 라임 운용을 어떻게 한국어로 구사할 것인가가 주된 관건이었고, 가사에 있어서도 한국 고유의 표현 내지는 어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한 것이 돋보였다. 이러한 현지화의 과정에서 가리온이라는 그룹의 존재는 대단히 중요했다. MC 메타와 나찰은 한국어만을 활용하여 꽤나 그럴듯한 랩 메이킹을 보여줬고, J-U가 선사하는 붐뱁 프로덕션에는 동양적인 깔끔함이 훌륭히 배어있었다. 오랫동안 공연에 중점을 두고 움직이던 이들의 첫 정규인 <Garion>은 그동안 그들이 지향해왔던 모든 것의 집합체와도 같았다. 랩의 설계와 어휘의 선정, 한국의 음악을 공들여 샘플링한 붐뱁 프로덕션에 이르기까지, <Garion>에는 90년대부터 가리온이라는 그룹이 꿈꿔온 모든 것이 오롯이 담겨있다.

앨범이 한국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장르적으로도 견고할 수 있던 데에는 J-U의 힘이 무엇보다도 컸다. 둔탁한 드럼과 정교히 재조합된 샘플이라는 90년대 동부 힙합의 클리셰를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그 재조합된 결과물은 지극히 동양적이고 한국적이었다. 기존의 동부 힙합에서 자주 쓰이던 재즈 곡들은 물론이거니와, 30년대 해학송("엉터리 학생 / B.S.Y.I (Interlude)"), 70년대 가곡("옛이야기"), 심지어는 J-U의 어머니의 자장가("자장가") 등 한국의 옛 음악들에서도 두루 소스를 가져왔고, 이를 정교히 미분하고 적분하여 놀라운 결과물을 빚어낸 것이다. "가리온"과 "이렇게 (U Practice The Art Of Hiphop)"에서의 베이스 운용이라거나, "언더그라운드"에서의 하프 샘플 활용을 통해 흡사 동양권의 전통음악을 연상케 하는 효과를 자아내고, "옛이야기"나 "마르지 않는 펜 (Brainstormin')"에서 피아노 활용을 통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조성해내는 솜씨는 발매 이후 20년이 다 된 현시점에도 유효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J-U가 이렇듯 전반적인 밑간을 통해 앨범의 묵직함을 책임졌다면, 객원 프로듀서들은 보다 캐주얼한 방향을 꾀하고 있다. 같은 재즈 기반의 힙합 곡이라도 킵루츠의 "회상"은 다른 곡들에 비해 부드럽고 말랑한 방향을 견지하고 있으며, "음의 여백"에서 더 지(The Z)의 훵키한 접근도 앨범의 여타 트랙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대중적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일탈이 크게 위화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앨범의 전체적인 톤이 일관적이고 유려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발매 시점 기준에서 보아도 이 앨범의 랩 메이킹이 어느 정도 과거 지향적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미 90년대부터 라이브로 공개된 곡은 물론 마스터플랜에서 발매된 컴필레이션에 수록된 트랙까지 리마스터링되어 수록되어 있다 보니 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맞춰 가사를 수정하거나 재녹음하지 않고 그때의 랩 메이킹 그대로 앨범에 옮긴 J-U의 결정은 확실히 옳았다. 가능한 외래어와 한영혼용을 배제한 채 한국어의 문장구조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구성은 앨범이 지닌 고전적이면서도 투박한 향취와 절묘히 맞물렸고, 이를 통해 전달되는 음악적 자부와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애정, 이 두 가지에 기반한 추상같은 날카로움은 한국적인 단아함으로써 번역된 힙합적인 멋의 한 이상적인 예시였다. 마스터플랜에서 같이 무대를 누비던 동료들 역시 가리온이 지향하던 이러한 멋에 충실히 장단을 맞춰서 걷는다. MC 성천(現 Fascinating)의 한국적 현학성, 혹은 대팔의 차분함이 "엉터리 학생 / B.S.Y.I (Interlude)"의 은은한 해학과 어우러지는 모습이 대표적이고, 다 크루(Da Crew)의 세븐 역시 "옛이야기"의 환상적인 프로덕션 아래서 한국어 랩에 대한 진일보된 연구를 보여준다. 이러한 언더그라운드의 또 다른 목소리들은 J-U가 디제잉을 통해 앨범 곳곳에 삽입한 "초"(2000), "파수꾼"(2001) 등 당시 한국 힙합 곡들과 맞물려 시너지를 낸다. 이로서 <Garion>은 베테랑 그룹의 때늦은 실험적 데뷔작을 넘어 당시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대표하는 정통성 있는 작품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가리온의 이 앨범에서 보여준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아이코닉함은 이후 이들의 활동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렇게 (U Practice The Art Of Hiphop)"의 부제에서 드러나는 'The Art Of Hiphop', 즉 힙합의 예술적 아름다움은 이내 재즈합 프로젝트를 통한 프리재즈와의 결합, 혹은 '메타와 렉스' 프로젝트에서의 사투리 활용 등의 다양한 실험으로 이어졌다. 음악적인 활동 이외에도 하자센터에서의 랩 레슨, 플라잉 카펫 프로젝트, 그리고 랩 컴페티션 '모두의 마이크'를 통한 후배 양성을 통해 이들이 음악에서 보여준 자부와 긍지를 직접 실천하였다. '홍대에서 신촌까지 깔아놓은 힙합 리듬'이라는 가사는 결코 허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들이 걸어온 20년이 넘는 시간의 무게, 그리고 이로서 형성된 '가리온'이라는 이름의 무게보다도 이들이 음악에서 말해온 대로의 진정성을 보여준, 고결한 태도의 무게가 더 크고 무거울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시간과, 이름과, 태도를 지탱해온 것은, 결국 굳건한 음악의 힘 일것이다. J-U와의 갈등으로 인한 재편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들에게 쇄도하는 나이의 파도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정력적인 활동을 유지하게끔 하는 강인함 말이다. 한 사람의 한국 힙합 애청자로서, 이들의 강인함과 씩씩함, 열정과 헌신에 존경을 담아 이 리뷰를 바친다.

Best Track: 가리온, 언더그라운드, 옛이야기 (Feat.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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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 title: Kanye West (Vultures)Alonso2000글쓴이
    2.14 22:19

    * 본 리뷰는 HAUS OF MATTERS #9에서도 감상하실수 있습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wYpnXAsz1T3ULlqW_iBd23USpk13Mudh/view

     

    가리온 정규 1집의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2.14 22:22
  • title: Kanye West (Vultures)Alonso2000글쓴이
    2.14 22:24
    @Writersglock

    국게가 혼란해도 리뷰 머스트 고온

     

    재작년 생각나네요. 그때 오왼 리뷰하고 재지팩트 리뷰하고 휘성리뷰 올렸었는데

  • 2.14 22:37

    뭉쳐서 셋이서 합해서 가리온

     

    옛것의 랩이지만 불현듯 흥얼거리게 만드는

  • 2.14 22:57

    만약 리드머에서 이 앨범을 리뷰하게 된다면 5점을 받게 될 것

  • 2.14 23:10

    뭉쳐서 셋이서 합해서 가리온

  • 2.15 07:01

    이 앨범을 보고 느낀 점 : 비트메이커도 곡마다 엄연히 자기 벌스가 있다는 거.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돌아갈 때 느껴지는 희열. 드럼 하이햇 하나도 허투로 찍힌 게 없음. 이 정도로 앨범이 뽑히려면 리더가 굉장히 까탈스럽고 지랄맞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요만큼도 타협이 있으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재유와 메타 나찰의 마찰이 컸겠구나 싶기도 하고요. 2집 같은 결과물을 보니 메타 나찰이 재유를 못 따라갔을지도 모른다 싶어요

  • 2.15 07:06

    앨범 부클렛? 을 보면 곡마다 날짜가 적혀 있는데 앨범의 대략적 사운드나 컨셉같은 게 정해진 날짜를 의미한다고 인터뷰에서 봤던 거 같습니다. 거의 재유가 영화 감독이었죠. 너무나 엄청난 전무후무한 앨범이었기에 가리온 2집의 1번 트랙을 듣자마자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그게 더콰이엇이 찍은 비트였나 너무 구려서..

  • 2.15 07:08

    암튼 이 앨범은 첨부터 끝까지 듣다보면 밤을 새워서라도 할 얘기가 너무 많은데 지금도 종종 듣습니다. 재유는 프리모 핏롹 뺨따구 후려갈기는 신이 맞고요 랩스킬을 떠나 메타와 나찰도 이 당시 최고의 폼을 보여줬습니다. 마르지 않는 펜에서의 그 살짝 투박하면서도 순도 높았던 진지한 가사를 좋아합니다. 그닥 가사에 꾸밈은 없는데 모든 가사가 정타를 멋지게 날리거든요. 그런 게 좋은 거예요. 저는 과학기술이 더 발달해 임의로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이 앨범 들은 기억을 지우고 다시 듣고 싶습니다. 근데 지우면 안 되겠네요 04년 고등학생 때 봄날 아지랑이와 함께 봄동과 냉이된장국을 먹던 시절 밤새워 계속 들었던 그 행복한 기억이 떠올라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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