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의 다양한 동물들의 행위자 군상은 오직 조지 오웰이 속하던 세계의 모습을 그리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써 존재했다. 그렇다, [동물농장]은 시대적 배경에 따른 독재 정권의 붕괴 과정을 그리기 위해 꾸민 비유로 가득 찬 소설이었다. 그리고 언텔의 정규 2집 앨범 [ANIMAL] 역시 다양한 동물이 등장하는 것처럼 보이나 각각의 동물들은 언텔의 다양한 페르소나를 묘사하기 위한 장치로 쓰였다는 점이 재밌다. 만약 언텔이 전시한 동물농장 역시도 무언가를 비판하기 위한 작품이라고 본다면, 그 대상은 조지 오웰이 의도한 하나의 세상이나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언텔 본인이라는 점이 주된 차이점으로 작용한다.
앨범을 살펴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각기 다른 4글자로 소개된 트랙의 제목이다. 이들의 제목은 짧지만 직관적이다. ‘나태하마’, ‘열등동물’, ‘망상정글’ 등의 다양한 제목에서 언텔이 묘사한 동물과 거주지가 의미하는 바는 리스너에게 아리송함을 제공하나, 혹 듣기 시작한다면 충분히 납득할 제목이기도 하다. 인트로를 담당하는 ‘나태하마’ 부터가 그러한 트랙이다. “소파 위의 히포~하늘을 나는 히포 꿈을 꿨으면”으로 이어지는 호접지몽과도 같은 하마를 향한 인식은 나태함을 비추는데 적극적이다. 하마가 되고 싶은 언텔인 것인지, 이미 하마가 된 언텔로 보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것은 나태라는 사실이다. 한 마리의 나태한 하마 내지 언텔은 나긋한 보컬과 미니멀한 드럼 위에서 자기 인식을 거울에 비추어 볼 뿐이다. 다음 트랙 ‘열등동물’ 역시 흥미롭다. 첫 부의 가사에서 제시한 ‘열등동물(Ugly Animal)’은 불특정 다수를 저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2절로 들어가며 그 양상은 바뀐다. 남을 비판하는 듯한 시선도 사실은 자신을 향했다. 게다가 하찮은 동물에게는 자신의 주제를 깨우쳐 줄 우리가 따로 필요한 법이다. 언텔도 그러하였을까? 재밌는 점은 우리에 가둘 동물의 주체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열등동물을 묘사하는 방식이 본능에 치중한 자신의 모습을 빗댄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명확해지는 순간은 열등동물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임을 자각하는 순간뿐이다. 어쩌면 앨범에서 가장 공격적인 트랙인 열등동물은 그의 자성한 시선처럼 본인을 포함해 모두를 현실에 안주한 열등동물로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열등동물’은 누군가가 두드리는 문소리로 마무리한다. 그 문소리에 이어지는 ‘김자각몽’은 현실과 이상(꿈) 사이의 갈등을 효과적인 방식으로 드러냈다. 자각몽은 꿈을 꾸는 중임을 아는 상태에서 새로이 꾸는 꿈을 말한다. 언텔은 이를 영리하게 활용해 생각이 확실해지는 것도 꿈이라는 묘사로 나타내는 것이다. 자신의 깊은 뜻을 담기엔 현실은 개돼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몽상의 한 장면도 쿤디 판다의 랩이 들어서며 극적인 전환으로 들어선다. 모두에게 달콤한 몽상은 환상을 제공할 뿐이다. 언텔이 쿤디판다와 함께 작업했던 'Hardrally'에서 드러낸 랩 실력과 포부가 그 예시다. 그랬던 모습도 '김자각몽'이라는 이름으로, 꿈 속에 꿈이라는 방식으로 잊었던 현실 혹은 이상의 괴리 속에서 다시금 드러날 뿐이다. 그리고 드러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망상정글'이다. 사자들이 도사리는 정글이거나 이상과 거리가 먼 힙합 씬이던 어떠한 연유에서 망상 속 정글은 필히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실과 꿈 사이의 괴리감은 필시 다른 방향으로의 도피를 갈구하게 되었다. '이사철새', 신스 팝의 새로운 동물로 변장한 언텔은 이윽고 푸른색이 가득한 곳으로 떠나게 된다. 초대받지도 않고,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기에 그에게는 자유로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곳에서 미리 도착한 사람들 혹은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이사의 과정 속에서 발견한 여유로운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겨우 숨돌린 결과는 새로운 거울을 마주하는 데, 바로 '낙타거울'이다. 아마 무려 4년 전의 쇼미더머니8 시절로 추정되는 언텔의 이야기가 드러났다. 노란색 머리, 초췌해진 몰골, 잔혹한 분노, 어머니와의 불화까지 모든 요소들은 변주되는 비트와 함께 변화하는 거울의 초상화로 드러날 뿐이다. 솔직한 고백이 가득한 모습만큼이나 거울 속에 드러난 모습은 오로지 낙타로 설명되며, 본인이 거울 속 화난 낙타임을 파악하는 데에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다음 트랙 '여행사자' 역시 재밌지 않을 수가 없는 트랙이다. 사실상 도피에 가까운 '이사철새'의 모습은 '낙타거울'을 현상하여 지워지고 '여행사자'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철새에서 사자로 가는 과정 역시 지나간 시체와 죽음을 마주하고 새로운 안식을 마주하기 위한 여행을 그린다. 어디까지나 내 해석일 뿐이나 사자 역시 시체로 남겨지는 것은 다음 트랙을 위한 발판으로 보인다. 기타 선율이 가득한 록 넘버인 '여행사자'는 두려움이라는 시체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더 가라앉는 순간 청춘에게 지워진 기억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하마와 철새, 낙타와 사자를 지난 언텔이 도착한 곳은 인간 그 자체다. [ANIMAL]이 [HUMAN, the album]의 프리퀄임을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트랙이기도 한 '아기휴먼'이기도 하다. 시체였던 사자의 부활이 아기휴먼이라는 형태일 수도 있으며, 과거나 미래보다는 지금을 살기로 다짐하는 랩이 인상적이다. 사실 결정적인 가사는 "I LIVE A LIFE"라는 한 구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삶에 대한 다짐이 돋보이는 트랙이다. 동물에서 진화한 인간이 된 언텔은 아기에서 만족하지 않으며 어른으로 자라기를 다짐하는 장면 역시 극적이다. 조지 오웰의 돼지는 인간이랑 구분되지 못하는 만큼이나 절망적이었던 반면, 아기휴먼은 허물을 탈피하듯이 열등동물을 벗어나 인간으로 향하는 과정으로 도출되니 충분히 희망적이지 않은가. 언텔에게 프리퀄이 현재진행형으로 느껴지는 순간은 '아기휴먼' 하나이니, 그 다짐이 청자에게 닿는 순간은 또 어떤가. 각자의 파라다이스, 각자의 정글을 어떻게 보낼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그리고, 언텔 역시 자기의 파라다이스를 위해 삶을 살아갈 뿐이라는 사실이 이 앨범의 대미를 장식한다.
I Wish You To Be A Guy
아기휴먼 中
듣는 이의 입장에서 [ANIMAL]은 [HUMAN, the album]의 진행 방식은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 스토리 진행 방식, 정식적인 스킷 곡의 부재, 두드러지는 나레이션의 포함, 가장 두드러지는 프로듀싱까지, 이들의 차이가 뚜렷하게 보이는 까닭은 그가 모종의 이유에서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가 모두 달라졌기 때문이다. 동물이 진화하듯이 언텔 역시 진화의 과정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이 이야기는 본인의 쇼미더머니 8 시절보다 과거의 시점부터 진행되기 때문이다. 2년 전에 낸 앨범보다도 훨씬 이전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ANIMAL]이다.
918과 Will Not Fear가 주로 키를 잡은 1집은 전자 베이스 및 드럼 등의 사이버네틱한 사운드가 두드러졌다. 그러나, 2집 [ANIMAL]은 918, 이찬진 그리고 언텔 본인의 프로듀싱으로 넘어와 간소해진 드럼, 피아노 리프, 록 사운드의 차용 등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미래에서 과거로 향하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과감하게 전작의 사운드를 버렸지 않았을까. 게다가 빛이 바랜 아날로그틱한 감성이 악기들을 통해 느껴지니 충만한 효과를 남겼다. 게다가 모든 속들 '아기휴먼'의 무대를 그리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한다먄 더욱 효과적인 방식이 아닐 수가 없다.
언텔 본인의 역량 역시 발전했다. 한영혼영이 가득했던 랩은 줄어들어 한국어가 대다수를 차지한 랩을 펼친다. 특히 '낙타거울'은 뚜렷한 한국어 랩에 힘입어 직설적인 독백을 적절히 토로한다. 변환되는 비트에 맞춘 플로우의 조절 역시 돋보인다. 두 번째는 언텔 본인의 감미로운 보컬에 있다. 쿤디판다의 충고와 같은 랩을 제외하면 코러스와 랩와 보컬 모두 언텔 본인이 담당한다. 특히나 록 트랙 '여행사자'나 발라드 풍의 '이사철새'와 같은 트랙을 비교한다면 언텔 본인의 기량이 어느 능숙한 지점에 도달했기에 음악적으로도 어색하지 않았다. 게다가 다양한 트랙의 구성 전환에도 어색하지 않았던 점은 언텔이 주도한 프로듀싱과 보컬 그리고 랩이 장치적으로 얽혀 충분한 조화로움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본작에는 다양한 동물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Animals가 아닌 Animal로 표기한 데에는 어떤 동물 군상이든 간에 언텔 본인만을 형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대 위의 동물의 진화 과정은 가혹하지만은 않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언텔의 탈피의 과정 중에도 트라우마와 같은 아픔이 버젓이 가슴 한편에 자리 잡았고, 그럼에도 진화의 결과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하니, 이 또한 삶에 대한 예찬 아닌 예찬이다. 결국, 언텔이 들려주는 [ANIMAL]이란 동화책은 마냥 잔혹한 정글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구체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점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https://youtu.be/2jTrmTA_dTQ?si=XxKjdsU_73make3X
ㅈ되는 앨범에 ㅈ되는 리뷰네요.
솔직히 리드머 리뷰글보다 작성자 님이 쓰시는 리뷰가 훨씬 알차고 읽기에도 재밌습니다. 평론쪽에서 일 하시는건가?
암튼 좋은 리뷰 잘봤습니다. 가뜩이나 좋았던 앨범인데 이 리뷰 듣고 다시한번 앨범을 들으면 전에는 찾지못한 또 다른 감상점을 볼 수도 있을것같네요.
감사하지만 아닙니다…ㅋㅋㅋㅋ
좋았다도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아직은 미숙하지만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슬라피 프리스타일에서 animal 낼거다라는 언급만 보고 아직 들어보지는 않았는데
확실히 평도 좋고, 이런 리뷰글도 보니 더욱 궁금해지는 앨범이네요
리뷰 잘읽었습니다!
앨범이 취향에 맞으시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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