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예술은 어느 정도 프로파간다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 저서 中
그렇다고 모든 프로파간다가 예술은 아니다. 사실 ‘선전(propaganda)’은 본래 나쁜 뜻이 아니었다. 시작은 종교 위원회의 포교라는 행위에서, 다음은 세계대전의 운동으로, 그리고 오늘날 시스템에서는 수단으로써 ‘선전’ 그 자체가 인식하기 어려운 형태로 짙게 우리 삶에 남아있다. 선전의 정체성에서 나오는 근간은 두루뭉술하게 사람들 사이를 배회하는 유령과도 같이 어느 순간을 기두로 우리가 사는 공간에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경험하는 정치라는 것도, 문화라는 것도, 심지어 생활 환경 자체의 시스템과 현재 과학문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당연시되며 알게 모르게 선전이라는 형태로 존재했다. 의도했던 안했던 본인도 모르게 참여하며 그것이 맞다고 손뼉을 치고 결국 속으로는 굳게 믿게 되는 그런 일 말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거짓과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 꾸밈없는 진실은 애초에 없다. 매스미디어의 역할은 적당하게 전달하고 성공하면 될 뿐이고 그 성공법에는 다양한 방법론이 존재하는 것이다. 누구나 혹할 이념이나 이상향을 만들며 선동하고, 타자화를 통해 적을 만들거나, 그것도 아니면 감정을 기만하고 과장하는 등의 방식으로 말이다. 이 앨범은 바로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앨범이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유령들로 꾸며진 이상향을 고발하고, 고뇌하며, 뜯어보는, 바로 선전의 기술을 선전하는 앨범, [선전기술 X] 이다.
https://youtu.be/unpE0cX_Kz4?si=sH8xkoKvSGDlTjeT
교리를 내뿜는 성가대와 같은 백예린 노래로 시작을 선보이는 곡 ‘Doctrine’ 이 앨범의 시작을 맡았는데 그 뜻에는 교리, 신조, 정책, 주의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정의가 어떻든 간에 전파가 된다는 속성은 같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백예린의 초반 보컬 가사에서 증명되는데, 거짓이란 것도 믿으면 진실이 되니 위대한 선전(propagation)을 찬미하라는 의미 심장한 가사를 남긴다. 결국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의 시작은 이념일지도 모르겠다.
Oh, praise thy propagation
Doctrine (feat. 백예린) 中
이어지는 종말을 예고하는 듯한 감상을 주는 뉴스 기사도 인상적이다. 마마나 재앙 그리고 Y2K problem으로 화두되는 이야기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 대상들 간 실상의 뚜겅을 열어보면, 의도적인 공포를 제조하고 이것을 전파하여 대중들에게 믿게 만들기도 하는 등, 그 대다수는 여러 추측이 난무한 허황된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이들을 고발하는 듯 수많은 정치사상, 이념들, 종교와 신념들을 열거하며 삶을 매트릭스에 비유하는 폭력적이라고 느껴지는 랩을 하는데, 이는 단순히 그 대상들을 비판한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도 그럴게 오도마 본인도 그가 열거한 시스템에서 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앨범 내에서 모피어스가 제시하는 건 빨간 약뿐이라는, 앨범 [선전기술 X] 전체를 관통하는 힌트 아닌 힌트를 남긴다. 그렇기에 그는 매트릭스 내의 악역과도 같은 사람을 자처하며 본인을 시스템의 선동가로 묘사한 ‘MC’라는 단어로 곡이 마무리된다. 이 ‘MC’의 뜻은 뒤에서 더 자세히 언급하겠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듯이 선전에는 결코 진실과 거짓이 상관 없으며 믿고 마는 순간에야 끝이 나는 것이다. 더욱이 더 콰이엇의 '진흙 속의 피는 꽃'을 인용하면서까지 선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 곡 ‘기호 2번’이라는 제목을 차용한 것도, 인용의 이유도 곡 중반에서 화자의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실상은 남들의 이전 행적을 부정하며 시작하는 오도마라는 선전가로써의 출사표이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본다. 그 역시도 물론 과거 그리고 현재의 선전가들도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써의 모순은 존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 사이에서 애써 선전을 펼쳐보려는 것이다. 현실이 팍팍하고 부당하게 여기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선전가니까. 마지막 가혹한 세상을 읊조리는 나레이션에게 ‘스페이스 X’라는 미지의 이상향을 제공하는 것도 선전가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것일 테니까.
바로 다음 이상향을 담당하는 'Hiphop, Hood, Honor' 즉, 세 개의 '3H 정책'은 문화의 정체성을 암시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누구나 외치는 것이지만 의도나 목표는 다르다는 현실을 꼬집는다. 대중과의 괴리감이 느껴져도 문화라는 포장지로 이야기하면 되니, 큰 책임은 따질 필요가 없다. 과거 전두환 정부의 '3S 정책'에서 따온 제목에 맥락도 비슷한 부분이 어느 정도 존재함을 본다면 그가 느낀 문화의 이상향은 어딘가 일그러져 있다. 이희문의 훅 보컬은 '개소리말아라'라는 원곡이 존재하는데, 훅의 원제목이나 랩의 가사적 인용과 태도를 보아도 그릇된 현실을 이야기한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세상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D.M.C'의 'MC'는 힙합 안에서는 보통 'Microphone Checker'란 래퍼를 의미하기도 하나 Rakim의 ‘Eric B. is President’에서 유래된 'Move the Crowd'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곡에서는 후자의 뜻으로 인용되었는데, 래퍼 Rakim과 그의 가사가 인용되기도 했다. 사실 랩이 시작된 역사를 살펴보아도 그 자체로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는 데에서 시작했으니 관객을 움직인다는 말은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이 ‘MC’가 중요한 이유는 '3H 정책'의 훅가사 'i am here for entertain'와도 상통하기 때문인데, 결론적으로 본 곡은 기득권의 부당함과 그에 당하는 본인의 모습을 비추며 MC들이 뭉쳐야 한다고 말하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그것도 아주 절묘한 방식으로, 현재의 MC들을 비판하는 듯하지만 본인의 처지와 감성에 호소하며 함께 뭉칠 것을 강조한다. 어찌보면 타고난 선전가들이 사람을 모으는 방식과 닮았다.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은 선전가로써 필요하고 이성보다도 유효한 방식이니까 말이다. 만약 이 앨범을 위와 같은 선전의 방식으로 본다면 다음의 인터루드 트랙 '광고'도 이해가 된다. 매스미디어를 통한 선전 활동이라니, 납득이 가는가? 사실 선전(propaganda)은 광고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과거의 세계대전 모병 포스터부터 대북 포스터도 광고라면 광고라고 볼 수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우리가 알게 모르게 대신하여 그려준 환상 내지 이상향이 있다는 것이다 .
'Hating mainstream is also too mainstream', '메인스트림을 싫어하는 것은 너무 메인스트림이야.' 그 선전에서 가장 용이한 방법은 적을 만드는 것이다. 확실한 적은 본인의 가치관을 확실히 하기에, 특히 음악에서는 특정 소수나 일부의 사실로 공격을 가한다면 쉽게 비난 여론을 만들 수 있으며 논리도 어느 정도 보장되니 편하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약점은 숨기기 쉬운 법이다. 본인조차 알고 있는 사실이 남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은 본인의 약점만큼이나 남들에게서도 쉽게 보이는 법이니까. 그 약점을 교묘히 이용한 센스는 상당히 중요한 선전기술이다.
나도 거짓말 그 거짓말 뒤에
다 똑같은 말 그 거짓말 뒤에
Hating mainstream is also too mainstream (feat. 이현준) 中
'K.U.J' 는 감상에 따라 정말 재밌는 곡이 될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화자가 총 세 명인 곡이라니, 재밌지 않은가? 비트도 세 번이나 바뀌고, 화자도 세 번 바뀌며, 언어도 총 세 번 바뀐다. 초반의 K-POP 노래를 부분적으로 인용해서 한국의 입장을, 단순하게 영어로 랩하는 미국의 입장을, 마지막 아웃트로의 일본까지. 이 곡의 존재는 말그대로 선전 기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동기를 바꾸는 것은 동기를 추구할 까닭을 만드는 것보다 상황을 바꿔주는 것이 편하니 말이다. 다시 말해, 물건을 사게 만드는 데에는 물건을 살 이유를 심어주는 것보다 살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용이한 것이다. 적어도 오도마의 시선에서 각국의 상황은 그랬다. 상황이 맞추어 굴러갔을 뿐이다. 그것도 선전이라는 의미로 말이다.
결국 여기까지가 '선전기술'이다. 이리를 둘러봐도, 저리를 둘러봐도 자본주의가 만든 시스템이 만들어낸 산물들이 즐비하다. 선전이 믿음을 강요한 것보다 더한 것은 모두가 향유한 공통된 경험을 만드는 것이다. 당장 우리가 보는 매스미디어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가진 물품, 취향, 편견도 어쩌면 욕망까지도 그들로부터 비롯되지 않았나. 우리가 느끼는 것, 오도마가 말하는 ‘시스템의 노예'라는 가사는 그곳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말하는 선전기술은 결국 당연스럽게 주위에 도사린 유령과 같은 시스템이며, 생각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코끼리와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한다면 우린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가? 아니, 당연스럽게 '코끼리'라는 말이 수면 위를 오른 시점부터 코끼리가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코끼리를 인식하는 순간에 코끼리를 지우기란 쉬이 불가능 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안다. [선전기술 X]의 마지막 곡에 등장하는 '코끼리'는 '힙합', '문화', '시스템' 심지어는 '삶' 까지도 장악한 걸로 보인다. 그리고 코끼리의 거대한 발자국에 결국은 사라지고 없어질 것이며 지워버리기에도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생각하지 마', '생각해'의 이지선다와 같은 갈등 속에서 문제로 논의되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만드는 프레임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우리가 해야할 것은 대체 무엇이길래. 결국 오도마 본인이 주도한 선전은 결국 듣는 이를 향한 물음으로 귀결되는 까닭은 무엇진지가 궁금하다. 우리는 어디를 봐야하는가. 그래서 나는 오도마와 대면하여 직접 묻고 싶다. ‘왜 앨범을 만들었는지를’, 그것도 아니면 '더블 앨범으로 예상되는 [선전기술 X]의 다음 장 내지 속편이 어떤 내용인지를.'
오도마의 전작 [밭]과 마찬가지로 [선전기술 X]는 1MC 1PD의 앨범이다. 전작은 '건배' 프로듀서, 이번 작은 베일에 쌓인 '가짜인간'이라는 프로듀서가 총괄 프로듀서를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가짜인간 본인이 제2의 ID를 쓴 건배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는데, 맞을지는 모르겠다. 이런 논지는 앨범의 방법론이 전작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사운드적으로는 분명 차이가 있을지언정 보이스 샘플의 활용 및 앨범의 진행 정도가 상당히 흡사한 부분이 있다. 심지어는 듣는 이에게 물음을 요한다는 점도 상당히 비슷하다. 다만 크게 추가된 점은 뉴스 나레이션 같은 샘플을 적극 도입하여 내셔널리즘틱한 구성을 자랑한다는 점이 있겠다. 이는 [선전기술 X]라는 제목답게 앨범 제작과정에서도 상당하게 필요한 요소였으며 앨범 내에서도 유효하게 작용했다.
랩적으로는 투박하며 거치나 여전한 기본기와 발전된 가사 내용을 보여준다. 특히 의도적으로 과장한 사이버네틱한 사운드와 그 랩의 조화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적절하게 서로 어울려 자리잡았다. 또한 'Doctrine', '선전기술' 같은 곡에서의 비장감이 넘치는 랩은 저릿한 쾌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오히려 랩메이킹에 있어 전작보다 더욱 발전해 본인의 메시지를 부각시키는 법을 깨우친 듯 하기에 가사의 주목도를 올려주는 프로듀싱과 비트 이해도가 빛을 발한 순간이라 말하고 싶다.
피쳐링 역시 오도마의 곡조를 빼앗거나, 특출나게 다른 곳으로 주목을 돌리지 않는 점이 만족스럽다. 상당히 중요한 인트로를 담당한 백예린의 독트린 선언 보컬은 앨범의 훌륭한 포문을 열었으며 DD!와 James Key의 코러스와 ph1의 자아를 나누는 랩은 오히려 오도마의 결혼 이후의 입장을 설명하는 장치로 훌륭하게 작용했다. 이희문 혹은 이현준의 보컬 역시 자칫 지루해질 뻔한 과장된 사운드와 복잡한 가사들 속에서 지루해질 틈을 없애주며, 앨범의 성격을 부각시키고 흐름을 잃지 않게 한다는 점에 결정적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노력하고 신경 쓰고 재미나게 드러나는 점은 앨범 내의 수많은 장치들이 담당할 것이다. 더콰이엇, 버벌진트, 이현준과 같은 아티스트들의 앨범 내지 곡의 래퍼런스는 차치하고서도, 오도마의 앨범은 사회에 담론적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주제의식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 주제는 본질적인 물음이자 '선전기술' 그 자체였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다. 이 앨범의 제목이 [선전 X] 내지 [프로파간다 X]가 아니고 [선전기술 X]인 까닭도 단순하게 선동이나 누군가를 현혹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니며 선전+기술을 소개하기 위함이라 추측해본다. 종교적 색채를 띄는 ’Doctrine'이라는 앨범 시작부터 수많은 매스미디어와 관련된 샘플 장치와 프레임 장치까지를 다루면서도 본질은 우리 삶의 당연시해온 것들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는 메시지는 온전히 남았다는 것이다. 결국 [선전기술 X]는 선전기술을 위한 훌륭한 선전 앨범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성과를 거뒀지 않았을까.
https://youtu.be/bXtjHtlvBKY?si=xIuPYVXAYAQQAtaK
제가 한 해석 내지 평가가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은 제 해석이 아예 뜬구름 잡는 소리일 수도 있을 것 같군요. 다만 그렇기에 더욱 그에게 묻고만 싶어지네요... 오도마가 생각한 코끼리, 프레임의 너머는 어디인지… 좋은 앨범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로 D.M.C의 한글 더빙 밑에 영문을 들어보시면 아예 정반대로 인류의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다고 얘기합니다. 이것도 선전기술의 메세지에 맞춰 매채를 통한 왜곡이 얼마나 쉬운지를 이야기하는 장치라 생각합니다.
골든타임이 지난게 핵심인 것 같습니다....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리뷰 퀄 데박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격한 개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10트랙이 너무 기대되는 앨범
반만 나온거였어요?
펀딩으로 하는 앨범 구매시 CD only 트랙이 10곡 정도 됩니다.
허ㅋㅋㅋ구매 강요네요
미친;;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추 개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트랙들이 무슨 내용을 보여줄지가 너무 궁금하네요 과연 앨범에 대한 오도마 본인의 결론을 보여줄지
리뷰 재밌게 읽었습니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뷰의 질이나 구성이 정말 수준 높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