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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살은 왜 석탄을 다이아몬드보다 더 원했을까?

title: MBDTF저세상소설가2023.07.30 18:24조회 수 5624추천수 25댓글 14

 

작년 한국 힙합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였죠. “넉살”과 “까데호”의 합작 앨범 “당신께”를 주제로 에세이를 썼습니다. 내용이 많이 길어서, 여기엔 내용의 일부분만 올립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으신 분은 하단 링크로 들어가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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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트랙 “알지도 못하면서”는 “박재범(Jay Park)”과 함께 만든 트랙이다. 여기서 넉살은 자신에겐 음악 그 자체였던 힙합, 그 힙합의 원류인 펑크(Funk)를 찾아간다. 자신의 음악이 어디에서 출발했고, 자기 삶의 뿌리가 무엇인지 찾는 과정에서, 펑크 밴드 까데호와 넉살의 협업은 어쩌면 운명이었을 거다.

 

“몇 개의 시로 나는 이제 부르주아. 몇 개의 시로 어디든 날 불러줘. 멱살잡이 돈에서 날 풀어줘.”

 

처음부터 청자의 귀에 박는 언어유희가 인상적이다. “부르주아”에서 “불러줘”, “불러줘”에서 “풀어줘”로 이어지는 흐름이 흥미롭다. 이런 언어유희로 시와 돈에 대한 성찰까지 담아냈다. 내 마음을 풍요롭게 만드는 건, 돈이 아니라 시라는 걸 이런 식으로 표현한 거다. 그런데 어째서 돈은 내 멱살을 잡게 되었을까. 어째서 시가 부르는 곳으로 갔다가, 돈이 잡은 내 멱살을 풀어달라고 간청하게 되었을까. 가난해서? 아니, 오히려 정반대다. 내게 돈이 없는데 돈이 어떻게 내 멱살을 잡을 수 있을까. 내게 돈이 있으니까 돈이 내 멱살을 잡을 수 있는 거다. 돈이 많아질수록 돈이 내 멱살을 잡는 일도 많아진다.

 

“비기(Notorious B.I.G.)”는 “Mo Money Mo Problems(더 많은 돈이 더 많은 문제)”라는 말을 남겼다. 자본주의는 돈이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준다고 사람들을 세뇌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돈은 하늘에서 그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돈은 누군가 노동을 한 결과물이다. 불로소득으로 번 돈이라도, 돈 그 자체가 이미 노동의 산물이기에, 돈을 갖는 것은 누군가의 몫을 갖는 거다. 누군가의 몫을 많이 가지는 게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돈을 많이 갖는다는 건, 오히려 책임져야 할 몫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많은 돈을 유지하기 위해선 마땅히 많은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그렇기에 우리 마음을 진정 풍요롭게 만드는 건 돈이 아니라 시다. 시가 우리를 진정 자유롭게 만든다.

 

이 곡의 격렬한 펑크 연주는 “멱살잡이 돈”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치열한 몸부림을 담고 있다. 이런 치열한 연주와 함께 박재범의 랩은 곡의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TV에서 몇 번 봤다고, 난 네 친구가 아니야. 기본적인 예의 좀 갖춰줘. 나도 똑같은 사람이야. 너도 기분 나쁘듯이 나도 똑같이 기분 나쁠 수 있잖아. 허락 없이 상품 다루듯이 막 사진 찍어댔잖아. 난 기도 매일 밤 Oh, lord. 오지랖쟁이들 피하게 해주세요.”

 

박재범은 시대에 정면으로 반항한다. 방송도 예술도 노동도 모든 게 상품으로 환원되는 이 시대. 음악을 삶으로 만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은 상품이 되기를 택했지만, 막상 음악이 삶이 되어버리니 자신의 삶을 음악으로 이끌어준 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위에서도 말했듯, 시는 즉 진심이다. 박재범은 자신의 삶을 이런 꼴로 만들어버린 세상을 향해 외친다. 진심도 없이 내게 관심 갖지 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에 대해 함부로 떠들지 마. 내게도 당신의 진심을 줘. 나도 몇 개의 시로 부르주아가 되고 싶어. 나는 상품이 아니야!

 

넉살에게 시는 음악이었다. 음악을 삶으로 만들기 위해, 넉살은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한다. 4번 트랙 “굿모닝 서울”은 음악을 삶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을 담았다. 여기서 까데호는 음악을 삶으로 만들어가는 설렘과, 설렘 사이에 스며드는 환멸을 표현한다. 시를 삶으로 만들겠다는 꿈은 도시 풍경 속에 서서히 녹아들고, 삶이 된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었다. 꿈을 이룬 도시의 풍경은 오히려 삭막하고 답답하다. 꿈은 없고 온통 현실뿐이다. 이런 현실은 나를 더 이상 꿈꾸게 만들지 못하고, 꿈이 없으니 진심도 없다. 진심으로 살고 싶어서 서울로 향했는데, 서울에 왔더니 시는 달아나버렸다.

 

“석탄 혹은 다이아몬드, 선택하라면 난 불이 붙는 검은 돌. 차가움보다 뜨거움을 목에 걸고 싶어.

 

곡이 팔릴 때쯤, 실체 없는 유명세에 놀라.”

 

석탄은 열정, 다이아몬드는 돈이라고 볼 수 있다. 돈이 내 열정을 만든 줄 알았는데, 막상 돈이 내 손에 들어오니, 열정은 달아나버리는 현상이 벌어진 거다. 이걸 깨달은 넉살이 말한다. 이젠 돈이 아니라 열정을 갖고 싶다고.

 

충분히 유명해지고 충분히 돈이 많아졌지만, 이런 유명세와 돈을 만든 건, 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도무지 내가 쓴 시, 내 진심에 관심이 없다. 내 진심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만 내 곁에 모인다. “알지도 못하면서” 나에 대해 떠드는 사람들만 주변에 많아진다. 그러니 이건 “실체 없는 유명세”인 거다. 이런 실체 없는 유명세에 놀라고, 놀란 마음은 도시와 함께 빠르게 식어간다. 도시를 걷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숨이 들이켜, 내 폐 속엔 도시의 먼지. 그건 살기 위해 땅을 박찬 당신의 열기. 자신이 먹기 위해 아님,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뿜어내는 매연은 그저 해로운가.”

 

시가 달아나버린 삶이 꼭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시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도 이 도시에 이렇게 많은데, 시가 내 삶에 꼭 필요한 걸까. 사람들은 시가 없어도 저렇게 씩씩하게 잘 살아가는데, 저들을 해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 없는 삶도 저렇게 아름다운데 “실체 없는 유명세”에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다른 고민이 나를 방황으로 이끈다. 대체 시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진심이란 어디에서 오는가. 방황은 나를 “숲”으로 이끈다. 여기서 숲은 상쾌하고 여유로운 공간이 아니다. 길 잃은 사람들이 원치 않게 당도한 공간이다. 숲에는 길이 없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방향조차 모호하다. 집에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 6번 트랙에서 까데호가 연주하는 숲이란 2번 트랙 “생일”에서 표현한 삶과 같다. 누군가는 삶을 축복이라 부르지만 내게는 삶이 저주였던 것처럼, 누군가는 숲을 평화라고 부르지만 내게는 숲이 방황인 것이다. 넉살은 방황 끝에 문득 깨닫는다.

 

“우습게도 방황은 삶이고 난 바람이었어. 그냥 제대로 살아보는 게 내 바람이었어.”

 

“강이채”의 바이올린 연주는 넉살의 방황을 깨달음으로 이끈다. 넉살이 이런 깨달음에 도달했을 때, 그의 바이올린은 가장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방황이 곧 삶이 되고, 숲이 곧 집이 되는 순간이다. 내가 시를 쓸 수 있다면 도시든 숲이든 어디든 내 집이고, 어디든 내 놀이터다. 시가 삶이 되자, 시는 삶에서 달아나버렸다. 그러나 달아나버린 시를 쫓아가, 숲으로 향하는 과정 또한 시가 된다. 제대로 사는 것과 방황하는 것 모두 내 바람이었다. 나는 제대로 살기 위해 방황했던 거다. 방황으로 빚은 나의 삶이 곧 나의 시였다. 삶은 모순의 연속이다. 모순을 위해 오늘도 나는 기꺼이 방황한다. 모순은 시의 가장 중요한 재료니까. 방황이 삶이고, 모순이 시라는 걸 깨닫자, 세상 모든 것이 “죽”처럼 편안하게 잘 넘어가는 느낌이다.

 

https://temple-resistance.tistory.com/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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