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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림과 그의 가면 - 가림으로써 발현되는 솔직함에 대하여

너그나이2023.04.01 00:58조회 수 2399추천수 9댓글 7

어릴 적 저는 늘 연기하며 살아왔습니다. 상황에 맞춰 꾸며낸 모습들은 여러 이점들을 가져왔지만, 단단한 기반 위에 쌓이지 않아 자주 모래성같이 무너지곤 했었죠. 아버지께서는 '평생 연기하면 결국 그게 네가 된' 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전 평생 연기하지 못할 거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었습니다. 제 동생과 같이 TV를 보고 있었죠. 분홍색 복면을 쓰고 나온 참가자가 주목 받는 모습은 생소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생소하지 않았습니다. 제 새벽을 셀 수 없이 수놓았던 목소리였어요. 본인을 마미손이라 소개한 그는 말하였습니다.

 

"제 안에는 수많은 제가 표현하고 싶은 '나'가 있는데, 한계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매드클라운은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가면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매드클라운으로서는 뱉지 않았을 가사를 쏟아내기 시작했죠. 심지어는 가장 자신이 조명을 받게 될, 핫한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서 말이에요.

http://youtu.be/Xc2Z7My4LwA

<심지어 절었다. 정품인증>

" 네 친구 부모 너의 개 전부 묶어 원을 만든 뒤

그 가운데 널 발가벗겨 놓지

날이무딘 녹슨 면도칼이면 좋겠어

혀 내밀어 모든게 시작된 그 위에

이쁘게 사랑이라 적지"

 

마미손 - 탭댄스

사랑하는 사람의 비명을 멜로디로, 뼛소리를 리듬으로, 가죽으로 신을 만들어 신고서 탭댄스를 춘다는 가사는 매우 잔인하고 충격적이었어요. 마미손의 캐릭터성에 가려져 주목받지는 못하였지만, 분명히 그의 예전 모습과는 달랐습니다.

 

매드클라운의 사랑에 대한 가사는 이따금씩 강했지만 잔인하지 않았고, 대체로 아련하고 아름다웠어요.

 

"넌 진짜 미치도록 예뻤어

앉아있는 니 모습을 내 가슴의 캔버스로 몰래 그렸어

2008년의 겨울 그렇게 너는 내 삶 한가운데로 들어왔거든

너무나도 밝은 별을 봐버린 것 같아

꽉 채워진 가슴 난 잠 못들 것 같아"

Mad clown - Luv Sickness

그래서 매드클라운의 가사들이 거짓말일까요? 아마 아닐겁니다. 사랑을 아련하게, 덧없게, 심지어는 분노로 느꼈던 모든 날들이 진심이었을 것이고, 더욱 명확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솔직함을 위해 역설적이게도 가면을 쓰게 된 것이었죠.

 

가면을 쓰고 난 이후에도 그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분노로만 채워져있지는 않았습니다.

"사랑은 망설이게 하지 않아

수많은 선택지 위에 너와 나

난 너만을 넌 나만을 남겨둬"

마미손 - 사랑은

 

마미손은 '사랑'을 긍정적인 감정으로도, 부정적인 감정으로도 표현합니다. 결국 매드클라운이 복면을 씀으로써 얻고 싶었던 것은 '솔직함' 이었던 것 같아요. 특정한 감정이 아니라 말이죠.

 

그렇다해서 매드클라운의 모든 모습이 꾸며낸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마미손이 본인의 노래에 매드클라운의 가사를 넣었다는 것이 그 사실을 방증하죠. 동일인물이 아니라면 아주 파렴치한 짓입니다.

"삶은 짜여진 각본 없는데

난 자꾸 또 영화처럼 살아보려해"

Mad clown, San E - 외로운 동물

"삶은 짜여진 각본 없는데

난 자꾸만 영화처럼 살아보려 해"

마미손, 찬주 - 잠수

 

이처럼 마미손의 모습은 새로운 것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매드클라운 일 때도 이따금씩 표현했던 것과, 그 때는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이 합쳐진 모습인 것이죠. 매드클라운은 가면을 쓰고 마미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매드클라운이라는 가면을 벗었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지도 모릅니다.

 

'오소독스'와 '사우스포' 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이 두 단어는 각각 투기종목에서 오른손잡이 스탠스와 왼손잡이스탠스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두 스탠스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아는 양손잡이도 존재하죠. 전 마미손이라는 캐릭터는 매드클라운의 양손잡이로의 도전인 것 같아요.

 

Things get ugly.PNG

사람들에겐 수많은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 모습들 중 하나만을 표현한다면 연기하는 셈이겠죠. 하지만 '나'를 숨기지 않는다면, 보이는 모습은 '연기'가 아니라, 내 안에 수많은 '나' 중에 하나일 겁니다. 그리고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내 모습을 찾는' 게 아니라, 모든 '나'를 사랑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마미손이 그의 친구 제이켠에게 했던 말처럼 말이죠. 마미손을 보며 저도 제 수많은 '나'를 사랑하고, 자유로워지고 싶어졌습니다. 매드클라운에게 소년 시절에 받았던 위로들을 갚기도 전에 마미손에게 배우게 되었네요.

 

어쩌구저쩌구.PNG

마미손도, 매드클라운도 활동이 뜸해진 지 조금 됐습니다. 그리고 마미손은 '내 안에서 아무 할 말이 없는 사람이 됐다는 게 힘들다'는 말과 함께 '어쩌구저쩌구'를 발매했고, 아티스트로보다 뷰티풀노이즈의 대표로써 더 자주 접하게 되는 것도 같네요.

 

굉장히 전설적인.PNG

<슈퍼스타에게는 항상 잡음이 따라다니는 법>

 

하지만 그가 굉장히 전설적인 슈퍼스타이고, 요즘 그의 회사에 생기는 아름답지 않은 잡음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말을 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말을 억지로 짜내는 건 마미손을 만들 때 매드클라운이 가장 벗어나고 싶었을 행동일테니까요.

 

또한, 저는 조동림에게 마음의 빚이 있습니다. 제가 위로받았던 여러 구절들이 다 그가 겪은 감정에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의 힘겨움을 걱정하고, 미숙함을 존중합니다. 그의 미숙한 모습들은 마미손이라는 새로운 도전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자유로워지기 위함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팬으로써 주제넘는 말일 수 있겠지만, 어떤 마음이든,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든 더욱 자유롭고,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그 때까지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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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너그나이글쓴이
    2 4.1 00:59

    이 글은 Neti님의 김태균과 민트초코이념 - 나오지 않을 명반을 기다리며'를 읽고 쓰게 된 글입니다. 이런 글을 처음 써보기도 하고, 글솜씨가 부족해 형식을 조금 차용해보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1 4.1 11:47
    @너그나이

    ㅈㄴ 잘쓰심 이런게 좋은 원글의 긍정적 영향인가

  • 너그나이글쓴이
    4.1 21:24
    @파크파크

    원글이 너무 좋더라구요..! 과찬이십니다 :)

  • 1 4.1 02:08

    마미손 가면을 씀과 동시에 매드클라운이라는 가면을 벗었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은 생각도 못 했네요.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 너그나이글쓴이
    4.1 21:24
    @호잇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 4.1 20:14

    같은 너그로써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너그나이글쓴이
    4.1 21:24
    @너그창

    저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창님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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