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여....
이 세상은 죽음을 기점으로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현재가 죽음에 가까운 사람. 다른 하나는 현재가 태어난 날에 가까운 사람. 2020년 기준 대한민국의 기대수명은 평균 83.5세이므로, 큰 사고나 질병이 있지 않다면 40-50대를 기점으로 슬슬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기대수명이 늘었으니까 죽기 전까지 할만한 다른 일을 찾거나 배우자가 있다면 앞으로의 부부관계는 어떤 방식으로 재정립할지 등 정말 수많은 것들을 이전과 다른 형태로 끌고 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과거를 돌이켜보기도 하고 찬란했던 젊은 시절을 돌이켜보며 "아, 그때 그랬었는데. 지금은..." 같은 소리를 하기도 한다. 소위 "라떼는 말이야"가 이런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다.
젊은 것들은 이"라떼"를 이해하는 게 참 어렵다. 특히 필자 포함 대한민국 젊은 것들은 더 어렵다. 대한민국의 70대 80대, 90대는 한국전쟁을 겪었다. 유년 시절에 웬만하면 농사를 지었을 확률이 높은 분들이다. 청년기에는 공장에서 15-16시간씩 미싱 돌리고 전태일 같은 분들이 나왔다. 50대 60대는 유년기에 급격한 산업화를 겪었고, 그들의 20대에 민주화 운동을 했으며 IMF, 론스타 게이트가 터지는 등 외국의 선진적인 금융 및 경제 시스템에 열심히 두드려 맞았다.
그러니까 농경시대와 산업시대를 수십 년에 압축해서 겪다 보니 세대 간 갭이 크다는 말이다. 같은 나라에서 같은 공간에 살지만 자라난 사회, 문화적 맥락이 판이하게 다르니까. 그리고 이는 젊은 것들이 윗세대를 이해하는 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심지어 현재 대한민국이 어떤 상황이냐, 전 국민이 공통으로 즐기는 콘텐츠가 없는 상황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21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에 포함된 표를 보자.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TV를 볼 확률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유튜브는 이용자가 시청한 콘텐츠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 맞춤 추천 영상을 올려준다. 고 연령 대는 TV를 기준으로 콘텐츠를 시청하는 동시에 스마트폰으로도 콘텐츠를 시청하는데 스마트폰 콘텐츠는 개인 맞춤이다. 그런데 젊은 세대로 올수록 개인 맞춤형 콘텐츠만 시청한다. 즉, 세대별로 접하는 콘텐츠가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콘텐츠는 어떤 집단을 하나로 결속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당장 우리는 월드컵을 시청하며 전 국민이 하나로 뭉쳐 다른 나라와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축구 경기에서 뛰는 선수들은 가슴팍에 태극기를 달고, 포르투갈 전에서 이긴 뒤 태극기를 펄럭거린다. 이걸 보고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고 결속력을 다진다. 조금 나쁘게 말하면 국뽕이고 좋게 말하면 애국심이다. 애국심은 국가라는 집단의 내적 결속을 다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집단의 내적 결속이 강한 만큼 사회는 안정된다. 이걸 명확하게 설명하려면 "국민 국가"라는 개념이 뭔지, 교육을 비롯한 사회화 과정에서 어떤 양태를 보이는지 등 수많은 것들을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이걸 설명하면 앨범 리뷰가 아니라 엄한 주제의 논문이 되므로 생략하겠다.
말이 좀 샜는데 이렇듯 비슷한 걸 보고 자란다는 경험은 어떤 집단의 결속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세대별로 보는 콘텐츠가 극명하게 갈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거기다가 자라난 사회문화적 맥락까지도 다르다. 그러니까 역대 그 어느 시대보다 세대갈등이 심할 수도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시청률 50% 찍는 드라마가 없다니까? 00년대까지만 해도 "대장금", "불멸의 이순신"같은 국민드라마가 있어서 국민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했지만 지금은 턱도 없다. 심지어 젊은 것들끼리도 보는 콘텐츠가 갈리는데 위아래 세대별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대중음악은 젊음을 부르짖는다.
K-POP부터 살펴보자. 걸그룹의 르세라핌, 뉴진스, 에스파, 아이브의 음악과 활동은 "이상적인 젊은 여성"에 포커스가 맞춰져있다. 높은 자존감과 당당함을 바탕으로 한 가사, MV에서 아티스트가 드러나는 방식, 음악이 조성하는 분위기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보다 더 전에 데뷔한 블랙핑크, 트와이스, (여자)아이들도, 그보다 더 전에 데뷔한 에프엑스, 소녀시대 등등의 그룹도 결국 "젊은" 여성의 아이콘을 만들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활동한다. K-POP 시장의 주요 소비층이 10대-20대임을 감안해서 나온 전략이다.
보이그룹은 다른가? 방탄소년단도 결국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한다. 갓세븐, 세븐틴, 골든차일드,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 등등 K-POP 음악 메시지의 기저에는 젊음이 깔려있다.
한국 힙합은 뭔가 다를까? 힙합도 똑같다. 공공구도 20대의 젊은이를 노래하고 이현준의 번역 중 손실은 대상이 광범위할 뿐, 결국 젊은이의 연애를 중심으로 소통이라는 주제를 풀어간다. 쇼미더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주요 소비층이 젊은 세대이므로 힙합씬을 노래하는 음악도 결국 젊은 세대를 노래하는 음악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았을 때 장년층을 전면에 내세운, 250의 [뽕]은 매우 독특한 포지션의 앨범인 동시에, 젊은 것들에게 우리 윗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앨범 커버
250의 오른쪽 아래를 바라보는 표정이 상당히 무겁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한 표정, 삶에 찌든 것 같으면서도 담담한 시선이 포인트다.
짙은 눈썹과 코와 눈썹이 부각되는 안면 실루엣이 굉장히 마초적인 인상을 주는 한편,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듯 뭔가 뿌연 사진과 시원하게 이마를 드러낸 헤어스타일이 옛날 사람 같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250 본인이지만. 배경을 온통 까맣게 칠해서 인물에만 집중할 수 있게 화면을 구성한 지점에서도 주제가 인간임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이 앨범 아트는 우리 윗세대를 묘사한 앨범 아트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그냥 어디에나 있을 법 한 사람들.
사운드: 신과 구의 연결고리
앨범을 다 듣고 "노래방 MR 제작하는 악기들로 곡을 세련되게 만든다면 이런 느낌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물론 필자에게 트로트는 거의 안 듣다시피 하는 음악이라서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힘들었다. 다만 편곡 요소는 "뽕을 찾아서" 다큐를 보면 좀 더 세세하게 알 수 있다. 동묘 악기상에서 구식 신디사이저를 구해오거나, 직접 어르신들 음악교실에 가서 춤을 배워오는 등 소위 "뽕짝"을 이해하기 위해서 250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동시에 중간중간 "요즘 것들 음악"을 뽕짝에 맞추어 변형한 모습이 자주 보인다. 가령 "로얄블루"에서 3, 7박자에 스네어를 꽂아 넣고 하이햇을 쪼갠다든지, "레드 글라스"에서 VOX 샘플을 이용한 EDM스러운 연출 등 익숙하지 않은 포맷에서 익숙한 패턴이나 소리를 찾아 듣는 것 또한 앨범의 감상 포인트이다. 뽕짝과 요즘 노래의 결합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를 거듭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다큐에서 [뽕]의 데모를 들어본 사람들이 "이거 뽕짝 아니에요?"라는 이야기를 했을 정도니까.
앨범 전개
할아버지의 노래로 앨범이 시작한다. 가사가 정말 묘한데, 마치 먼저 돌아간 배우자(너무 정 없으니 할머니라고 하겠다)를 떠올리며 노래를 부르는 느낌을 받았다. 옛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잠에서 깨고 보니 모든 게 꿈이었다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가사, 후에 조그맣게 들리는 "에잇, 내가 가수가 아니니까"라는 작은 투덜거림까지. 가수가 아니기 때문에 넣을 수 있는 농밀한 감정이 음악을 장식한다.
"뱅버스"의 검열되지 않은 버전은 중년 커플의 섹스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무래도 불륜이었는지 사람들이 방에 들이닥치고 남자는 구두에 속옷 바람으로 헐레벌떡 도망을 치는데, 그 과정에서 치이고 넘어지고 깨진다.
"이창"은 중년 여인이 저녁밥을 차리는 이야기인데, 재료 손질과정부터 이를 먹는 과정까지 성적 요소가 가득하다. 특히 닭 씻는 과정에서 "아니 굳이 저렇게 닦는다고? 이거 빼박인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 화장까지 예쁘게 하고 기다려봐도 기다리는 사람(아마도 남편)은 오지 않는다. 와인을 팽개치고 소주에 닭도리탕을 먹는 장면은 MV의 백미. "이창"의 영제는 "Rear window"로 자동차 뒤쪽 창문이라는 뜻인데, 이웃을 훔쳐보는 사진사가 주연인 히치콕 감독의 작품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카메라(어떤 시선)가 창문 밖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연출로 보아 모든 과정을 훔쳐보는 것임을 암시한다.
"로얄블루"는 바에서 술을 마시는 남자의 모습을 다각도에서 촬영한다. 마지막에 250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며 마무리되는데, 표정에서 복잡한 감정이 드러난다.
총 10개 곡을 지나 "휘날레"에 들어서면 보컬 아카펠라가 아련한 느낌을 전달하게끔 믹스되어 있다. 가사의 내용은 과거를 추억하는 내용이다.
나이를 조금 먹었어도 똑같은 사람이다.
생물학적으로,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다. 이건 100% 확신 가능한 명제다. 생물학적으로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에 성공했으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생겨났을 테니까.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나이든 사람의 욕구 해소에 엄격하다. 젊은 것들은 쉽게 연애하고 원나잇도 할 수 있지만 나이가 조금만 들어도 나잇값 못 한다며 혀를 찬다. 사랑을 묘사하는 콘텐츠는 늙은 사람보다 젊은 사람을 다루는 경우가 더 많고, 가수는 나이를 먹을수록 TV에서 보이지 않게 되며, 아이돌 백업댄서 중 늙은 사람은 없다.
물론 박진영은 방년 5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작업물을 내고 춤을 춘다. 그러나 최근에는 젊은 가수와 공동작업하는 게 아니면 차트인 하는 걸 보기 힘들다. 나이를 먹으면서 창작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시각이나 대중가요의 주요 소비자가 10대 20대이기 때문이라는 관점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관점에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게 젊은 것들이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배제된다고도 볼 수 있다. 이 경우, 우리는 중장년의 욕구에 의해 태어났지만 그들의 욕구에 엄격하다는 재미있는 문장이 나온다. 이유는 늙어서. 그런데 이들도 노는 거 좋아하고 사랑을 주고 받고 싶어 한다. 우리랑 같은 사람이니까.
각종 욕구를 눈치 보면서 몰래 해소해야 하는 반면, 사회는 중장년에게 생각보다 더 무거운 짐을 부과하고 있다. 중장년층은 대부분 차장, 부장, 임원급 인사다. 다른 말로 책임자다. 역할만 따졌을 때, 일 수틀리면 본인이 다 끌어안고 명예롭지 못하게 회사를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다."아니 회사 생활도 못 해본 놈이 뭘 알아?"라고 말씀하신다면 딱히 할 말은 없으나 위로 올라갈수록 책임이 크다는 건 회사 생활 못 해본 나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권한은 책임과 같이 오니까. 한마디로 책임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는 사람들, 그것이 중장년층이다.
노년층은 다른가? 자식들이랑 같이 살면 눈칫밥 먹어야 하고 혼자 살면 고독사하기 딱 좋다. 생명에 대한 위협보다 더 큰 짐이 어디 있는가?
[뽕]은 이런 것들을 드러낸다. 시각적으로는 몰래 성욕을 해소하려다가 현장 발각 이후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거리를 뛰어가야 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오늘 의무 방어전을 치르라고 해야겠는데 회사에 가서는 전화를 받지 않는 남편을 보여준다. 그리고 힘든 표정으로 술집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의 복잡한 표정을 클로즈업한다.
청각적으로는 그들이 주로 듣던 음악과 요즘 것들이 젊음을 불태울 때 듣는 음악을 결합시켰다. 이들이 듣던 소리는 당시 최신 유행이었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언제적 사운드냐며 무시할 악기들에게 250은 이 시대에 있을 자리를 찾아줬다. 아주 조심스럽게 손질해서.
내가 지금 듣는 음악도 언젠가 250같은 사람이 그 시대에 있을 자리를 찾아줬으면 좋겠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하나라도 좀 더 살면 좋잖아?
잘 읽었습니다
필력 짱 좋으시네요.. 잘 읽었어용
양질의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뽕 30초 듣고 끈 사람이었는데 이런 의도와 메세지를 가지고 있었다니.. 읽고 다시 들으니 정말 좋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멋진 글 감사합니다!
글 너무 잘 쓰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모든 것이 꿈이었네와 피날레 같은 아련한 트랙으로 시작과 끝을 맺어 앨범 전체가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힘들면서도 좋았지~' 감성을 불러 일으키는데, 이게 으르신들이 느끼는 감성이 아닌가 싶음.
잘 읽었습니다!!
저는 뽕이 ‘지나치게 현대 사운드에 친화적인 음악’
이라고 생각해서
노래들이 좋은걸 떠나서 뽕이라는 음반이 그 음반 제목의 본분을 다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거랑 별개로 세대차이라는 사회현상과 연결지은 내용의 리뷰는 재밌게 읽었습니다.
결국 그 현대적인 사운드의 출처는 구형 신디사이저와
뽕짝을 향유하셨고 앞으로도 향유하실 어르신들에게 배운 장르적 문법을 요즘 음악과 결합한데서 나왔다고 봤습니다. 다큐에서 그렇게 묘사 하기도 했구요.
글쓴 분 입장도 이해 갑니다. 어떤 악기를 썼는가도 장르를 가를 때 사용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대표적으로 퓨처베이스가 있죠. 물론 이걸 장르 이름으로 사용해도 되느냐는 논쟁이 있긴 합니다만 이미 널리 쓰이는 중이니 사실상 장르 이름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뽕짝 특유의 무드를 구현하지 않는 250의 편곡과 뽕이라는 앨범 제목의 관계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질만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상적으로 생각하던 내용을 이론적으로 정리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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