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곡에서 어떤 요소가 중요시 되어야 할까'에 대한 고찰.txt

디스곡에 대해서 얘기하기전에 일단 원초적인 질문을 던져봅니다.

 

'인간은 왜 음악을 들을까요?'

 

철학적이거나 과학적으로 깊게 파고들어가지 않고 그냥

일반인의 관점에서 간단히 생각해보면

 

정답 : 청각적인 쾌감 or 그냥 '좋으니까' 

 

결론적으로는

'청각적인 쾌감'때문에 모두 다 음악을 듣습니다. 

 

힙합, 랩 뮤직에서 청각적인 쾌감이란?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랩 실력'을 빼놓을 수는 없겠죠. 

 

네. 디스곡도 힙합이라는 장르의 요소 중 하나이기에

(물론 힙합 말고 타 장르에서도 디스곡은 있지만 이 글에서 지칭하는 디스는 힙합 문화에서의 디스를 말합니다.)

랩 실력을 빼놓을래야 빼놓을 수가 없죠. 

 

네. 디스곡에서 랩 실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선순위를 어느 요소에 중점적으로 두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단 '랩을 잘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대부분의 힙합 리스너 분들에게 이의는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전 한 가지 전제를 먼저 제시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힙합씬은 매우 상향평준화가 되었고 랩을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현 메이저 래퍼들 중에서 랩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고

탑클래스 래퍼들간의 실력 차이는 사실상 취향차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일반 힙합뮤직과 디스곡의 차이는 무엇인가?

디스곡은 가상의 상대가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특정인을 대상으로 

영어 단어 그대로 'disrespect'을 한다는 차이가 있죠.

 

만약에 실력 차이가 거의 안나는 메이저 래퍼간의 디스전이 발생했을때 승자는 누구인가? 

디스전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일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매우 유치하게 보일 수 있지만

스포츠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매우 흥미로운 떡밥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애초에 프리스타일 랩배틀에서도 승자와 패자는 나뉘는 법이니까요.

 

결론적으로 '서로의 실력 차이가 안난다는 전제하에서' 디스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대방에게 얼마나 모욕을 주느냐' 여부, 즉 순수한 날것의 인신공격이 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팩트체크'

'서로간의 잘잘못 따지기'

'돈 문제' 

 

디스전에서 이런 건 솔직히 하등 쓸모가 없다고 보구요. 

리스너들은 그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고, 당사자들끼리도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죠. 

아니면 디스곡으로 내지 말고 인스타 장문글을 쓰거나, 아니면 재판을 하던가 

디스곡에서 누가 착하고 나쁘니 따지는 건 개인적으로는 이제 좀 그만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예시를 들면 전 VMC - 저스디스 디스전도 저스디스가 이겼다고 생각은 안합니다.

세간에서는 그 디스전은 거의 저스디스가 이겼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는게 사실이지만

전 넉살, 딥플로우가 저스디스르를 상대로 한 날것의 인신공격, 

저스디스 입장에서 듣고 빡이 칠만한 그런 내용들이 인상깊게 다가왔거든요. 

 

'진필이형결혼식장 일부러 눈을 맞췄고
결국 목례를 끄덕한 넌 그날 존심을 망쳤어'

 

'중학생 변성기 톤 삑사리와 중등 영어
심각한 목소리로 털어놓는 탈선경험
중학생 만한 덩치. 가사 중2. 타겟 중2
중학생 만한 91. 이 씹새끼 승이'

 

'난 팔로형이 잠궈버린게 누군지 알아
니 주변 형들 너 때문에 피곤한거 맞아'

 

'스스로 쥐덫을 놓는 쥐새끼 승이

가족들 좋아하지 백수가 취직했으니
또 열일하겠네 화가 난 자가당착 랩'

 

이런 주옥같은 라인들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저스디스의 9분짜리 디스곡은... 분명 명분과 팩트를 따지는 리스너들 입장에서는 명곡으로 들리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그냥 매우 지루하게 들렸습니다. 명분... 팩트.... 잘잘못.... 그딴게 중요한가요?

 

중요한건 딥플로우가 저스디스의 9분짜리 디스곡을 듣고 '빡이 쳤냐는'건데

제가 딥플로우였으면 그냥 코웃음치고 말았을겁니다.

 

물론 디스를 하는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는 있겠지만 

청자들 입장에서는 어쨋든 '재미있으니까' 듣는거 아닙니까. 

권투 잽 날리듯이 서로에게 모욕적인 라인으로 주고받는 그런 스포츠적인 관점에서의 디스를 즐기고 싶은거지

누가 나쁘고 누가 착하니, 이런 문제를 굳이 디스곡에서 까지 봐야 하나 싶네요. 

 

 

 

이건 저만의 주장도 아니고 스윙스가 강연에서도 했던 말이고 딥플로우도 했던 말입니다.

국힙씬에서도 서로에 대한 잘잘못을 논하는 디스전보다는 좀더 본질적으로 상대를 모욕하는

스포츠적인 관점의 디스를 지향했으면 좋겠습니다.

 

추가적으로 덧붙이자면 어떠한 디스전이 서로간의 폭로 양상으로 간다고 했을 때

그 당사자들끼리의 팩트체크, 잘잘못 여부를 제3자인 리스너들 입장에서 대체 뭔 수로 판단합니까? 

 

위의 경우보다도 더 골치아픈건 오히려 잘잘못이 더 명확한 경우죠.

A 래퍼가 매우 큰 잘못을 한 래퍼 B를 디스했다고 칩시다.

근데 디스를 한 래퍼 A는 랩을 존나게 못하고, 각인되는 라인이 전혀 없어요.

하지만 잘못을 한 래퍼 B는 랩을 매우 잘하고 맞디스를 해서 상대를 아주 찢어놨습니다.

 

그래도 우리 국내힙합 리스너분들은 결론적으로

'B가 잘못했지? 음 B잘못' 이런식으로 판단을 내리고 끝이죠.

 

대표적으로 루피를 디스한 면도는

루피가 디스전 이후로 병원에 다닐 정도로 시달렸다는 점,

면도가 루피를 디스한 명분이 고작 코비를 자신에게 비유했다는 점, 

위의 두가지 이유때문에 디스전의 승패와 상관없이 어느새 면도가 개새끼가 되어있고 

디스전 패배자로 전락했습니다. 

이런 미개한 힙합 문화는 이제 좀 사라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