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 신앙을 믿고 있는 저로서는 신의 존재를 믿는 건 사실입니다. 그것은 개인적 경험등의 확증으로 아마 강화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걸 남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구요.
일단 철학적으로 볼 때, 다들 오해하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인본주의는 르네상스 시절부터 주창된 것으로 신본주의를 타파한 것은 니체가 아닙니다. 니체의 시기에 주변에 무신론적 흐름, 무질서함, 혼돈, 아노미등의 상황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고 니체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 살아가야하는 이유와 무엇을 추구해야하는 가에 대해서 고민했습니다. 쇼펜하우어와 인식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입장은 비슷한 상황이지만 니체는 그러나 방향이 다릅니다. 니체는 신의 부재라는 상징을 통해서, 이성주의, 절대적 가치와 질서체계의 붕괴로 인한 혼돈적 상황을 묘사한 겁니다. 그러나 니체는 그럼에도 칸트와 일면 비슷한, 초인이라는 존재를 상정하고 파괴와 역경에의 발걸음을 피하지 않고 그저 걸어감을 통해서 오히려 더욱 거듭나는 인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모순을 안고서도 노력해서 결과에 도달하는 부분은 어찌보면 비기나 투팍, 여러 래퍼들과 같은 근현대 아티스트들과도 닮아있다고 봅니다. 니체가 신을 부정했다, 신본주의의 타파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기존의 무신론자들이 배경지식 없이 ㅋㅋ 니체로 반박가능함ㅋㅋ 너네 신 죽었음 ㅋㅋ 이런 식으로 대충 얘기를 꺼냈기 때문입니다. 니체의 저서는 물론 기존의 정신적 지표중 하나였던 종교의 영향력이 사라진 후의 세계에 대해서 그린 것입니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의 대다수인 회의론자처럼 그냥 방향성없이 떠도는 것과 니체가 추구하듯 창조적 파괴를 통해 특정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방향은 다릅니다. 쇼펜하우어로 대표되는 회의론자는 본질이 없다고 생각하며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유지해나갈 필요도 없죠. 니체의 초인은 반면 본질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오히려 실제로 신을 반박한 건 리처드 도킨스라고 볼 수 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슬쩍 슬쩍 종교집단의 무의식성, 한심함등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에도 한계점은 그것이 종교집단에 대한 반박이자 종교집단의 한심함을 드러내보일지언정 신에 대한 반박이 정밀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심바님의 가사도 아예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렸을 적엔 저도 니체가 오히려 노년엔 정신질환을 가지게 된 설에 대해 혹시 신에 대한 부정과는 달리 철학적인 상충이 생겨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이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정신질환과 철학적 상충을 연결지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니체보다는 리처드 도킨스가 만약 철학적 상충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거나 노선을 바꿨을 때 그런 부분이 더 확실한 반박이라거나 논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체가 신의 부재를 던진 거는 말하자면 현재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자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에 대한 밑밥, 전제조건 세팅이에요. 본론은 그 뒤에 나오는 추구해야하는 삶에 대한 주장입니다.
씬은 죽었다고 말한 피타입은 살았다
원래 부재 증명 불가능은 논리적으로 아무런 가치도 가지지 못합니다.
러셀의 찻주전자, 보이지 않는 분홍 유니콘, 내 차고 안의 용 같은 개념이 왜 나왔는지 알아 보시는 걸 권합니다.
그리고 만약 선포로 해석되는게 맞다면
신본주의가 옳은가 그른가,
심1바 본인은 다원주의 사회의 득을 얼마나 보았는가
등의 담론은 저 라인의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호불호와 개인의 신념에 따른 문제긴 하죠
그래, 넌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거나
난 그런 방향을 지향하는 게 싫어 하거나
이걸 옳고 그름으로 단정지으려면
일개 래퍼의 크기가 아니라
기독교의 방향이 옳고 그른지 수준의
아주 큰 담론 먼저 해결을 봐야 할 테니까요.
물론 여태까지 수백년간 사람들이 토론했고
그럼에도 계속 같은 토론이 이어진다는 건
아직도 결론이 안 지어졌단 뜻이니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새 방향성을 제시하는건
조금 아득하게 크고 먼 문제같긴 합니다.
니체가 신본주의를 끝내고 인본주의를 시작했을 때 '신은 죽었다' 라고 말했으니 다시 신본주의로 돌아가기를 선포하며 '니체는 죽었다' 라는 라인을 쓴거면 납득이 가네요...
니체가 워낙에 왜곡된 방식으로 퍼져있어서 사람들이 오해하기 좋은 구절인듯...?
전 그냥 기독교가 싫어서 저 라인을 안좋아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이성으로 대변되는 시대의 산물들을 좋아하고 이용하면서 이를 부정하고 신본주의로 돌아간다? 이해가 안되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신본주의는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쓰레기 사상이라고 생각해요
카톨릭 신앙을 믿고 있는 저로서는 신의 존재를 믿는 건 사실입니다. 그것은 개인적 경험등의 확증으로 아마 강화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걸 남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구요.
일단 철학적으로 볼 때, 다들 오해하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인본주의는 르네상스 시절부터 주창된 것으로 신본주의를 타파한 것은 니체가 아닙니다. 니체의 시기에 주변에 무신론적 흐름, 무질서함, 혼돈, 아노미등의 상황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고 니체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 살아가야하는 이유와 무엇을 추구해야하는 가에 대해서 고민했습니다. 쇼펜하우어와 인식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입장은 비슷한 상황이지만 니체는 그러나 방향이 다릅니다. 니체는 신의 부재라는 상징을 통해서, 이성주의, 절대적 가치와 질서체계의 붕괴로 인한 혼돈적 상황을 묘사한 겁니다. 그러나 니체는 그럼에도 칸트와 일면 비슷한, 초인이라는 존재를 상정하고 파괴와 역경에의 발걸음을 피하지 않고 그저 걸어감을 통해서 오히려 더욱 거듭나는 인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모순을 안고서도 노력해서 결과에 도달하는 부분은 어찌보면 비기나 투팍, 여러 래퍼들과 같은 근현대 아티스트들과도 닮아있다고 봅니다. 니체가 신을 부정했다, 신본주의의 타파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기존의 무신론자들이 배경지식 없이 ㅋㅋ 니체로 반박가능함ㅋㅋ 너네 신 죽었음 ㅋㅋ 이런 식으로 대충 얘기를 꺼냈기 때문입니다. 니체의 저서는 물론 기존의 정신적 지표중 하나였던 종교의 영향력이 사라진 후의 세계에 대해서 그린 것입니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의 대다수인 회의론자처럼 그냥 방향성없이 떠도는 것과 니체가 추구하듯 창조적 파괴를 통해 특정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방향은 다릅니다. 쇼펜하우어로 대표되는 회의론자는 본질이 없다고 생각하며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유지해나갈 필요도 없죠. 니체의 초인은 반면 본질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오히려 실제로 신을 반박한 건 리처드 도킨스라고 볼 수 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슬쩍 슬쩍 종교집단의 무의식성, 한심함등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에도 한계점은 그것이 종교집단에 대한 반박이자 종교집단의 한심함을 드러내보일지언정 신에 대한 반박이 정밀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심바님의 가사도 아예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렸을 적엔 저도 니체가 오히려 노년엔 정신질환을 가지게 된 설에 대해 혹시 신에 대한 부정과는 달리 철학적인 상충이 생겨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이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정신질환과 철학적 상충을 연결지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니체보다는 리처드 도킨스가 만약 철학적 상충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거나 노선을 바꿨을 때 그런 부분이 더 확실한 반박이라거나 논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체가 신의 부재를 던진 거는 말하자면 현재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자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에 대한 밑밥, 전제조건 세팅이에요. 본론은 그 뒤에 나오는 추구해야하는 삶에 대한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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