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보면
음악엔 우열이 없다.
자신의 감정, 지식, 환경등 주어진 조건에 따라 취향이 다를 뿐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 있는데
전 이런 사람들 진짜 위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취향이라는 단어로 전부 올려칠거면 세상에 안 후진 음악이 어딨으며
음악의 우열은 물론이고 못하는 아티스트, 잘하는 아티스트의 구분을 어떻게 나누나요?
칸예의 Late Registration가 2005년 발매고 MC몽 2집이 2005년 발매로 발매년도는 똑같지만
과연 두 앨범의 음악에 우열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하라고 하면 과연 우열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티스트간의 우열도 마찬가지입니다. 칸예와 MC몽은 둘 다 힙합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한 아티스트이지만
두 사람의 이름을 나란히 놓고 봤을때 그 무게감이 과연 한치의 우열 없이 같아보이시나요?
제가 말하는 우열이란 "클래식 신봉자가 트로트를 우습게 본다." 라는 식으로 장르간의 우열을 말하는게 아니라.
조금 더 지엽적인, 같은 장르의 음악 사이에서 우열이 과연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저도 글쓰신 부분에 대해 동감하는 부분이 크고 가끔은 주위에서 저를 독선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항상 어렵죠 이런부분은 ㅠ 저에겐 깊게 들어갈수록 더 어렵네요ㅠ.
저는 요새는 개인적으로 김종국형님 운동명언 중 하나를 음악에도 적용시킵니다.
"정답은 없어도 오답은 있다"
속시원한 해답은 되진 않지만, 저에겐 이 말이 말씀하신 주제에 대해 어느정도 정리하게 해주더라구요.
우열이 없을리가 있나요. 저는 우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윗분이 말씀하셨지만 예술,음악에 정답은 없지만 오답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정도 비슷한 수준끼리의 음악에서 다른 느낌이나 장르 방향에 따라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뜻으로 이야기 하는 거져
당연히 있는데 다만 어떤 경지에? 다다르면
그때는 우열 보다는 취향으로 갈리는 거 같아요
취향에는 우열이 없지만 수준에는 우열이 있죠
장르간에도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좀 지난글이라 죄송한데, 예를 들면 어떤 장르가 있을까요? 태클은 아니고 생각이 궁금해서ㅋㅋㅋㅋ
좋음은 달라도 구림은 확실하다
길가는 무작위 사람 붙잡고 칸예 2집과 Mc몽 2집 들려주었을때 Mc몽 앨범이 더 듣기 좋다고 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을거라고 확신하시나요? 유의미한 비율로 엠씨몽을 택할 사람이 없다는데에 걸어야 한다면 절대 못 걸겠습니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우열이 없다는 뜻이구요. 위선이 아니에요.
선호의 영역과 가치 평가의 영역은 구분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 앨범의 가치를 따져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감상자라면 Late Registration을 고르겠죠.
예술에서 가치평가의 기준은 정형화될수가 없는데 선호의 영역과 완전히 구분되어질수 있나요. 예술에 가치를 부여하는건 결국 선호 아닐까요.
아니요. 해석과 평가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논쟁을 벌일 수는 있지만 가치 평가의 기준을 정할 수 없다는 회의주의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결국 작품 내재적인 형식미나 구성미, 예술사적인 의미와 위치, 작품의 범주적/1차적 의도와 작품 내에서의 실현 등을 고려한 해석이 그 작품의 가치를 최대한 끌어낼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적절한' 감상자는 보다 나은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는, 가치 있는 작품을 구분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죠.
다만 MC몽 2집을 칸예 2집보다 좋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일반적인' 감상자의 관점에서 있을 수 있습니다. '적절한/이상적인' 감상자가 아니니까요. MC몽 2집이 칸예 2집보다 예술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감상자의 선택은 선호의 영역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봅니다.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작품이 개별 감상자에게 더 나은 예술적 경험을 주었을 수는 있지만, 이는 그 감상자가 더 가치 있는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최대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술을 수치화하여 순위를 매길 수 있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이상적/진리의 관점에서 볼 때 어느 두 작품을 비교했을 때 보다 가치 있는 작품은 존재할 것이고, 단지 감상자 혹은 평론가들의 평가가 진리 혹은 정답이라고 확정될 수 없는 것 뿐이라고 봅니다. 과대평가한 가치라던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가치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정치인들의 정책 논쟁에서 우리는 어떤 정책이 옳고 그르다고 평가할 수 있는데, 그 정책의 진정한 가치/효과는 실제로 그 정책이 시행되어 봐야 안다 정도로 예를 들 수 있겠네요. (여기서 분명 더 옳은 정책은 존재하나, 그에 대해 논의하던 시점에서는 확실히 알 수 없달까요)
말이 길었지만, 결론은 더 가치 있는 작품은 존재하지만, 감상자들의 평가를 통해 작품 간의 가치 비교를 완벽히 수행할 수는 없고, 특히 일반적인 감상자의 경우에는 작품의 우열이나 가치를 따지기 보다는 선호에 의해 작품을 평가하기에 이상적인 가치 평가의 상황과 현실적인 선호 판단의 상황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점에 의거하여 작품에는 우열이 있지만, 열등한 작품을 '선호'한다고 비판받을 필요는 없고, 다만 열등한 작품이 우등한 작품보다 가치 있다는 주장을 한다면 상당한 규모의 타당한 비판에 직면하게 될 거라고 봅니다.
적으신 의견 잘 읽었습니다. 음악이 특정 계층에게 주로 향유되어 감상자가 '이상적인 감상자'일 확률이 높던 시절에는 말씀해주신 요소들로서 음악의 우월판단이 가능했지만, 저는 현 시대에 있어 일반적인 감상자 - 대중의 선호도가 음악의 가치를 판단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남긴 의견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이상적인 감상의 기준조차 다수 일반적인 감상자들의 선호의 기조에 따라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예시로는 칸예 웨스트의 돈다가 각종 평론지, 전문가들에서 음악적인 기준보다는 '도덕적인 기준'들에 의해 낮은 점수를 받은게 있겠네요.
당연있죠 우열? 수준차이? 이런게 있죠
사람들이 우열이 없다는건 좋은 질의 음악을 가정할경우 우열이 없다는거 아닐까라고 믿습니다
취향차이가 크긴하더라도 결국 퀄리티 차이라는게 있죠. 그게 없다면 퀄 좋은 음반이라고 부를 것도 없고 명반이나 수작이나 이런 개인의 평가도 다 무의미해지는거죠.
일정한 환경, 일정한 기간내에는 우열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절대적인 우열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Trap(정확히는 전신이였던 Dirty South)이 예전에 거의 지금 얘기하시고자 하는 "MC 몽"(정확히는 힙합이 아닌 저질 클럽음악)취급을 받았었다가 지금 대세가 됨
저는 우열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심되죠. 이게 논쟁거리가 되나요
당연히 있죠 있으니 올해의 앨범이나 트랙이 선정되는거 아닐까요?
예를 들어 내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아티스트음악을 주변에 들려줄 기회가 생긴다면...
그걸 남이 들었을때 제가 느끼는 감정과 똑같을까요 ? 전혀 다르겠죠..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열등한 음악도 우월한 음악도 없습니다..
단지 그 기준을 스트리밍수, 리뷰어들의 평가, 음반판매량 등을 기준으로 보기 때문이죠...
이런 기준을 배제한다면 과연 우월한 음악이란게 존재할수 있을까요??
취향은 다를 수 있어도 퀄차이의 우열은 존재한다고 봅니다
당연히 우열이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수준 높은 음악을 들어야 하는건 아니지만 음악 안에서 수준은 당연히 갈린다고 생각합니다.
'미켈란젤로 천지창조가 니 취향이 아닌게 어딨냐' 라는 가사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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