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RateYourMusic에서 파란노을 앨범이 기어이 2021년 차트 1위를 먹었더군요...ㄷㄷ
나오자마자 엄청 하이프 받아서 저도 부랴부랴 리뷰를 썼는데, 다들 이 정도로 좋아할 줄은 몰랐네요
그 기념으로 오랜만에 엘이에도 리뷰 가져와봅니다 (결코 조회수가 생각보다 안 나와서 그런 건 맞음)
https://blog.naver.com/ings7777/222276083608

https://parannoul.bandcamp.com/album/to-see-the-next-part-of-the-dream
Artist : 파란노을 (Parannoul)
Album :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Released : 2021.02.23.
Label : Self-Released
Genre : Shoegaze, Emo Punk, Lo-Fi Indie
익숙한 도입이지만, 우선 밝히자면 나는 인디 록 음악의 열렬한 청취자가 아니다. 본작을 듣고 즉각 그 뿌리를 찾아내어 감동하는 록 팬 청취자들과 비교해 그 미덕에 대해 이해도, 공감도 부족하다는 뜻이다. 만약 본작이 RateYourMusic 사이트에서 유의미한 하이프를 얻지 않았다면, 당장에 내가 들을 가능성은 드물지 않았을까.
그리고 본작은 내가 듣기 전부터 이미 문제작으로 인식되었다. 밴드캠프 라이너노트에 음악가 스스로 ‘찐따’라 자칭하며 소위 ‘루저’스러운 자기변명을 가감없이 늘어놓은 점과, 수록곡 〈청춘반란〉의 “찐따무직백수모쏠아싸병신새끼” 라인이 SNS 등지에서 소소한 밈이 되어 돌아다닌 점 등은 사실 본작 청취에 있어서 그렇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튼, 청취 전부터 인지하게 된 본작을 휘감는 감성에 공감을 하든 하지 않든—사실 저 라인에 ‘공감’이 안 되기는 힘들고, 굳이 따지자면 ‘수용’의 문제일테지만—50분이상 이어지는 조악하고 거친 기타와 드럼 소리가 그리 낯선 편은 아니었고, 익숙한 청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고 느낀다. 가장 먼저 초기 Car Seat Headrest 《Twin Fantasy》(2011)와 같은 조악한 음질에 과잉된 감정을 한껏 눌러담은 앨범이 떠오르고(〈Beach Life-In-Death〉와 같은 대곡이 있는 점도 포함해), 그것이 겨냥한 90년대 이모 록 레코드들, 그 외에 여러 국내 인디 포스트록/슈게이즈 유산의 이름들이 속속들이 떠오를 것이다.
첫 곡 〈아름다운 세상〉에서, 곡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뭐 듣고 있어?” “릴리 슈슈(*이와이 슌지 감독의 2001년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 등장하는 가공의 밴드)”라고 대화하는 영화 샘플, 그리고 디지털 시계 소리 같은 카운트다운과 함께 폭발하는 기타 스트로크는 본작이 주조하는 ‘꿈’에 진입하기 위한 가장 직관적인 장치 아닐까. 이어지는 〈변명〉과 〈아날로그 센티멘탈리즘〉은 제시된 로-파이 슈게이즈 펑크 넘버를 질주감 있게 표현하며 화자의 청소년기 회기적 상태를 소개하는 적절한 트랙들로 보인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게 된 계기는, 본작 최장의 대곡 〈흰천장〉의 성공이다. 포스트록 문법으로 소리 밀도의 완급을 조절하며, 피아노와 신디사이저 등을 이용해 서정적인 터치를 돋보이다가, 후반부 하이라이트에서는 영화 샘플을 통해 노스탤직한 감흥을 끝까지 유지한다. 또한 곡의 컨셉트에서도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파생된 밈을 통해 화자의 문화적 배경을 드러냄과 더불어 그 세대가 공유하는 무력감을 공감하게 한다.
〈흰천장〉뿐만 아니라, 그것의 아웃트로처럼 장식하는 듯하다가 다시금 텐션을 올려 존재를 알리는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그리고 이어지는 또 하나의 대곡 〈격변의 시대〉까지—조금 더 넓게 잡자면 문제의 “찐따무직...”을 담은 〈청춘반란〉까지—본작의 가치를 창출해내는 최고의 구간을 자랑한다. 특히 〈격변의 시대〉는 더 확실한 완급 분배와 더불어 피아노, 바이올린, 실로폰, 플루트 등의 악기까지 동원하고 로-파이의 조악한 음질 자체를 거칠게 활용하여 감정의 과잉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비교적 직설적이기는 해도) 직유를 통한 표현도 수록곡들 중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청춘반란〉 이후의 곡들이 전반적으로 텐션이 떨어져 감흥도 퍼지는 점이 아쉽게 다가오기는 하였으나, 〈엑스트라 일대기〉의 경우는 10년대 인디록 리바이벌의 향취의 연장선에서 그것이 공유하는 패배주의를 본작에서 가장 직설적으로 고백하고, 자살을 암시하는 마지막 곡 〈I Can Feel My Heart Touching You〉는 라이너 노트에서 제시한 “불평과 하소연만 남겨져있고, 극복 같은 건 없”다는 말의 실현으로서 적절한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패배주의는 늘 있어왔고, 이를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어쩌면 예술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본작에도 그것을 미적으로 승화하는 감동적인 지점들이 묵직하게 배치되었다. 그러나 본작이 끝나고 나서, 잠시 거두었던 의심의 눈초리를 다시 꺼내든다. 표현된 패배주의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바로 본작의 “시대착오적인 꿈”이 수용되는 과정은 조심스러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위에서 〈격변의 시대〉에 대해 호평했지만, “거짓된 추억에 잠겨버린 격변의 시대의 부적응자”라고 고백하는 화자의 태도는, 충분히 내게도 이해와 공감의 영역에 있으나, 어쨌든 화자도 직시하고 있듯 문제적인 태도임에는 틀림없다. 90년대 이모 록을 겨냥하는 사운드 컨셉트마저 적어도 작품 내에서 현재를 잊기 위한 도피처로서 기능한다. 이를 10년대 전후의 잉여 사회 담론의 연장, 또 SNS 시대 이후 타자와의 무한 비교 및 자기 혐오의 굴레로 빠져드는 사회 문제와도 연계해 볼 수 있을테지만, 그보다는 아즈마 히로키, 우노 츠네히로 등이 지적하는 어떤 보호받는 세계 내부에 머무른 채 빠져나오기를 거부하는 오타쿠 담론의 전형으로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 김준양의 저서 『이미지의 제국 : 일본 열도 위의 애니메이션』을 읽고 “잃어버린 20년 이후의 무력감은 그들을 더욱 소비의 사회 안으로 움츠러들게 했고, 결국 가공된 추억과 욕망의 시뮬라크르를 반복해서 소비할 뿐인 집단이 되어버렸다”고 감상을 남긴 것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 감정은 너무나 익숙하기에 도리어 경계되는 것이다. 파란노을이 푼푼을 제시했듯 내 세대에는 히키가야 하치만이 있고, 내가 조금 더 주요하게 즐겨듣는 힙합 음악에도 블랙넛, 한국사람 등이 유해한 열등감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며 해당 씬에서 컬트적인 열광을 얻어냈다. 그러나 현재, 그들이 대표해 온 2030 남성의 왜곡된 열등감이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가. 스스로를 피해자로 위치시키고, 정작 실제적인 약자들에게 혐오 폭력을 저지르는 광경을 수없이 목격하지 않는가. (알다시피 블랙넛은 심지어 음악에서 성희롱 범죄를 저질렀다.) 그래서 사실 나 또한 이 세대의 지극히 적실한 일원이면서도, 본작의 감정을 온전히 나의 감정으로 수용하는 데에는—본작의 메시지 속에 명시되지는 않더라도—어쩔 수 없이 거리를 두게 된다. 한때 그것에 열렬히 공감했던 청소년이었기에, 더욱이.
그럼에도 어쨌든, 들으면 들을수록 육중하게 깨지는 사운드 위에 감정을 자극하는 멜로디와 몽환적인 꿈의 세계로 인도하는 샘플 등을 얹은 밀도 있는 구성에 감탄한다. 나는 본작이 RateYourMusic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공감을 얻는 광경이 위와 같은 이유로 불편하지만, 역시 맨 처음 언급했듯 그 과정이 없었더라면 내게 닿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발현되는 자기 혐오는 당연히 나만의 문제가 아니고,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결국에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문제이다. 파란노을은 그것을 자신의 배경과 결부하며 고백해냈다. 그것이 내가 부족하게나마 인지하는 Emo의 자세가 아닐까 싶고, 과연 본작이 여타 서양 리스너들의 반응처럼 2021년 한국 음악을 대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그 일련의 반응들 자체가 본작을 중요한 문제작으로 부상시키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추천도 : ★★★★




한국인들 리뷰중에 소리가 깨져서 별로라니, 정통 이모락이 아니라니 하면서 되게 논리도 없이 시비조로 까는 글들이 많더라고요. 외국인들은 되게 성심성의껏 리뷰 써주던데...
저는 이 앨범 굉장이 좋게 들었습니다! 믹싱이 별로라곤 하던데 저는 솔직히 서툴긴 하지만 노력한 흔적이 보여서 좋았어요ㅎ
저는 정통 이모 락 따위 모르니까 재밌게 들었던 것 같네요 ㅋㅋㅋ 근데 확실히 한국어 가사가 양날의 검인 것 같아요. 솔직히 우리한테는 비교적 상투적이고 서툴게 들리는데 영어 번역이 되게 멋지게 되어있어서... 그래서 오히려 노이즈로 대충 안 들리게 덮이는 게 잘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의견 감사합니다 ㅎㅎ
너무 까이는 거 같기도 한데 전 좋게 들었습니다 테이프도 샀고요
저는 트위터 이외의 한국 반응은 잘 모르는데 포락갤 등지에서는 많이 까이나보네요... 솔직히 이 정도의 오버하입이 deserve한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아무튼 작품 밀도가 상당히 좋았네요 ㅎㅎ
이 앨범 좋게 듣고 있습니다 이쪽 장르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이라 뭐라 표현은 못하겠지만.. 그냥 좋아요 뭐라해야하지 델리스파이스 생각이 문득 나더라구요
대놓고 90년대 이모 복고를 노렸다는 반응이어서 확실히 그 시절 아티스트가 종종 거론되네요 ㅎㅎ
이거 멜론에서 들을 수 있긴 하나요?
군머라 다른 앱은 안쓰는데 답답 .
밴드캠프에서 무료로 들을 수 있습니당 앱을 설치하셔도 괜찮고 1달러 내고 음원 전곡 평생 소유하실수도 있어요
이 앨범 좋았는데 포락갤 가보니 진짜 많이 까이더라구여
파란노을에 대해 소개된 글 링크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본문에 밴드캠프 링크 걸어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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