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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기간: 2019.12.~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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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ings7777/222184197753
-General Field-
[Best Album of 2020]
추다혜차지스,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펑크(funk)와 굿을 합친 '펑쿳'이라는 독특한 컨셉을 지닌, 추다혜차지스의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undo〉에서 마치 프리스타일 랩을 하듯이 창을 읊는 추다혜와, 그 사이사이에 들어서는 차지스의 강렬한 잼(jam)은, 기대를 한껏 부풀리며 앨범의 포문을 열어젖힌다. 이어지는 곡 〈비나수+〉에서는 방울소리와 싸이키델릭한 연주와 함께 무가를 읊는데, 이와 함께 본작에서 제일 주목받는 가사 "서울하고도 특별시라 서대문구 연희동 로그스튜디오로", "굿패키지로다" 등의 라인을 남기면서, 노래의 배경이 먼 옛날이 아닌, 지금 여기 우리가 사는 현대임을 드러낸다. 〈사는새〉에서는 김오키가 함께 참여하며 쉬이 잊을 수 없는 하이라이트를 맞이하고, 이후 〈리츄얼댄스〉에서는 Funkadelic을 연상시키는 루프와 함께 재즈 힙합스러운 바이브로, 〈에허리쑹거야〉에서는 레게로, 〈차지S차지〉에서는 (직접 창작한 가사와 함께) 펑키하고 로큰롤스러운 소리로 댄서블한 기조를 이어나간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이르러, 수록곡을 덥으로 재해석한 〈복Dub〉으로 여러 장르와 함께한 퓨전의 여정에 강력한 마침표를 찍는다.
앨범의 중심축을 잡아 빛내는 것은, 서도민요 창법을 블랙뮤직의 그루브로 승화시키는 추다혜의 엄청난 보컬이다. 서도민요는 타 지역 민요에 비해 장식음(시김새)를 사용해 앓는 듯 흐느끼는 듯한 하행선율진행이 많고, 이 특징을 악보로 옮기기 힘들어, 기악반주보다는 장구 하나로 반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작에서는 본격적으로 밴드 합주가 이루어지고, 그러면서도 추다혜의 보컬 역시 〈몽금포〉 등에서 보였던 기량이 반주에 눌리지 않고 제 방식으로 펼쳐내보인다. 아니, 오히려 이를 그루비하게 발전시키면서 동서양 장르간의 융합 시도를 완성형으로 이끄는 일등공신 역할을 한다.
밴드로서의 면모도 살펴보자. 프론트 퍼슨인 추다혜는 해외에서도 주목받던 퓨전 밴드 '씽씽' 출신이고, 공동 프로듀싱을 맡은 기타 이시문을 비롯해 베이스 김재호와 드럼 김다빈은, 윈디시티, 까데호, 김오키뻐킹매드니스, 노선택과 소울소스 등등의 굵직한 밴드에서 활동해왔다. 국악퓨전밴드 씽씽 출신의 멤버들이 각자 이날치, 오방신과, 한국남자 등의 퓨전밴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점도 흥미로운데, 더불어 차지스 밴드 멤버들의 경력이 불후의 명작 《Sound Renovates a Structure》(2003)를 남긴 아소토 유니온과 같은 국내 펑크(funk)밴드의 계보와도 맞닿는다는 점에서, 본작은 퓨전음악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블랙뮤직밴드의 음반이기도 하다.
2020년에는 이날치의 《수궁가》 트랙들의 인기를 비롯해 심은용(잠비나이 멤버), 오방신과, 악단광칠, 고래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트레봉봉 등에게서 수많은 양질의 퓨전 음반을 만날 수 있었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각 장르간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가 계속해서 등장하는 흐름 가운데, 본작의 시도와 완성은 2020년을 당당히 대표할 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사에도 손꼽히는 음반으로 남을 것이라 섣부르지만 감히 선언해본다. 그리고 이러한 찬사의 바탕에는, 우리 세대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전세계가 멈춘 재난의 상황에서, 오직 음악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위로의 말을 건네는 마법 같은 온기가 자리잡고 있다.
※강일권님의 리드머 리뷰, 박수진님의 IZM 리뷰, coloringCYAN님의 온음 리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도민요" 기사 등에서 참조 및 인용했습니다.
[Best Track of 2020]
이랑, 〈환란의 세대〉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듯한 슬픔, 절망감, 막막함. 그 가운데서 차라리 그 벽에 콱 머리 박고 죽어버리고 싶은 기분.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당혹감은 이내 그런 심상을 자아냈고, 직설과 역설(逆說) 사이를 눈 가리고 폭주하는 그 묘하고, 아찔하고, 압도적인 감정에 젖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도입부에서 노래된 인천공항과 나리타 공항에서의 작별 이야기는 나에게도 우연찮게 익숙한 공간이면서, 이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막막한, 건넌다면 다시 올 수 있을지 막막한, 정녕 이별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키보드와 첼로가 한껏 긴장감을 다잡더니, 생각이 점차 부정적으로 추락하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경쾌한 리듬의 피아노가 돋보인다. 그리고 이윽고 하이라이트의 돌림노래 합창에서는 보컬과 코러스의 경계가 사라지며 화합과 붕괴, 환희와 절규 사이의 무언가를, 그저 내지른다. 이런 식의 모순은 다른 데에서도 보이는데, 이를테면 키보드와 첼로가 고풍스럽게 울리는 동시에 쨍하게 더블링된 목소리가 박자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만들어내는 기묘한 순간에는, 이미 무언가를 포기한 듯한 감정이 차올랐다.
2020년. 전지구 단위의 환란 가운데 놓인 우리는 일상을 잃었고, 무기력이 세계를 엄습한다. 이러한 재앙들을 앞에 두고 찾아오는 신경증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개인에게 지워지는 실정이다. 그러나 특히 젊은 여성에게서 늘고 있는 자살율의 통계는 이것이 보편적인 문제임을 재확인시킨다. 본곡의 재등장 역시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기 쉬운 보편 무력감과 자살의 문제를, '환란의 세대'라는 키워드를 다시 가져옴으로서, 이를 전지구적 재앙과 함께 엮어버리는 데서 시의성을 지닌다. 또한,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전반에 불던 인디밴드 리바이벌 붐 기저에 깔린 패배 의식과, 2010년대 중후반에 힙합 장르를 중심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한 정신병 고백 서사와 같이, 이미 대중음악 가운데 존재하던 보편 감각을 본곡 또한 대표하며, 개인이 파편화된 시대에 공유되는 문제 의식을 전면에 드러낸다.
"또 사람 죽는 것처럼 울었지"라는 첫 구절로 다시 돌아가보자. 5분 이상 이어지는 혼란스러운 소동의 근원에는, 소중한 사람을 그리는 눈물이 있다. 우리의 절망은 사실 가장 인간적인 희망에서 시작되었고, 어쨌든 이 죽을 것 같은 감정은 이제 '함께 모여 부르는' 노래로 만들어져 세상에 나왔다. 환란의 세대인 우리는 가로막히고, 절망한다. 다같이.
※본곡의 데모 버전은 본래 2016년에 발표되었으나, 의도적으로 2020년의 맥락에서 재해석하였음을 밝힙니다.
[Best Musician of 2020]
방탄소년단
이왕 온 거 솔직하게, 빌보드 안건부터 꺼내보자. 뮤직비디오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그 전설의 PSY 〈강남스타일〉도 뚫지 못한 빌보드 HOT100 차트 1위의 벽을 그들이 뚫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Dynamite〉는 영미팝계에 불고 있는 디스코 리바이벌 유행의 대표주자로 케이팝 그룹이 올라섰다는 데에서, 〈Life Goes On〉은 한국어 음악 최초의 HOT100 1위라는 데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사실, 빌보드는 그들의 성취 중 하나일 뿐이다. 투어는 멈췄지만 두 장의 레귤러 음반과 〈Black Swan〉 등을 비롯한 히트 싱글들은 꾸준히 반응을 얻었고, 그들의 매력적인 퍼포먼스는 세계로 나갈 수 없는 시점에도 온라인을 통해 계속해서 세계의 러브콜을 받았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케이팝 담론의 바탕에는 우선 그 팬덤의 어마어마한 인기와 영향력이 자리잡고 있고, 팬덤과 함께 이뤄내는 성취는 곧 국내외의 대중음악 담론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시킨다. 케이팝이라는, 비교적 특수한 환경의 음악산업은 이미 세계를 대상으로 팝, 비주얼, 패션, 서브컬처 등을 넘어 인종, 젠더, 정치의 영역까지 다양한 레이어로 전개되며, 수용되고 있다. 그 중심에, 정말 수많은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서있지만, 그 셀 수 없는 맥락들의 대표로서, 여전히 방탄소년단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
[Best Rookie of 2020]
과나
노래와 랩으로 요리 레시피를 소개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과나. 영상마다 내놓는 창의적인 레시피도 일품이지만, 이를 꾸미는 음악적 아이디어 또한 보통 내공이 아니다. 랩에 있어서는 직관적인 라임을 통해 몰입을 유도하고, 보컬의 튠과 어조를 다양하게 구사하며 각 상황에 맞는 캐릭터를 만들어 연기한다. 장르마저 가리지 않는다. 힙합, 록, 트로트, 발라드팝은 물론, 앰비언트, 메탈에까지 도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음악 이전에 유튜버이기 때문에 전문 음악인이라 보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올해에 이미 음원을 발매하고 광고음악까지도 제작하는 모습을 볼 때, 애초에 '전문 음악인'이라는 경계마저도 재고케 한다. 여러 방면의 재능이 놀라우면서도 극도의 DIY스러움의 갭에서인지 그만큼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는, 유튜브 시대의 만능 크리에이터.
[Best Video of 2020]
달의하루, "염라"
이별의 상처와 죽음에 대한 충동이 의인화해 싸우고, 가사와 리듬에 맞춰 영상이 교차하며 반전을 거듭한다. 레트로 애니메이션 크리에이터 람다람의 비디오는, 확고한 캐릭터 빌드와 독특한 불교적 배경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이 컨셉트는 다음 곡으로까지 확장하면서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확립시킨다.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즛토마요, 요루시카, 요아소비 등으로 대표되는 '포스트-보컬로이드'적인 명맥을 잇는 트랙과 걸맞는 감성의 애니메이션인데, 람다람 특유의 데포르메한 터치는 거기에 팝한 감각을 불어넣어 서브컬처 향유층뿐만 아니라 여타 대중 리스너들에게까지 전파된다. 그 영상미와 더불어 '하루, 하양, 미타'라는 명확한 캐릭터와 의미심장한 스토리는 동인음악계 특유의 활발한 커버곡 활동으로 이어졌으며, 팬들의 다양한 2차 창작 등을 통해 세계관이 스스로 확장되는 등, 여러 분야에 신선한 활력을 만든 뮤직비디오다.
-Genre Field-
[Best Rock/Metal Album of 2020]
Various Artists, 《We, Do It Together》
페미니즘 리부트의 정신은 문학을 비롯해 문화계 여러 방면에 걸쳐 전개되고 있고, 대중음악 또한 예외가 아니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드러내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사회 운동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인다. 본작은 '최초의 여성 록 컴필레이션 앨범'이라는 콘셉트 하에, 인디음악 씬을 빛내고 있는 내로라 하는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애리, 에고펑션에러, 향니, 아마도이자람밴드, 아디오스 오디오,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천미지, 다브다, 황보령, 카코포니, 티어파크, 빌리카터까지. 인디 록 팬이라면 결코 놓칠 수 없는 참여진의 슈퍼 컴필레이션이다.
그 다양한 면면답게, 본작의 소리는 록 음악의 여러 서브 장르가 다채롭게 구현된다. 싸이키델릭, 펑크(punk), 포크록과 더불어 전자음악, 아트팝의 영역까지. 이야기하는 메시지 역시 다양하다. 이를테면, 누군가는 그저 자신이 존재함을 외치고(〈나는 깜빡〉, 〈사적인 복수〉), 불평등한 법 체계를 풍자하며(〈판〉), 때로는 "오늘도 생존"한 여성들에게 위로를 건넨다(〈Good Night〉, 〈숨〉).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절당하는 경험과(〈I've Never Invited Her〉), 억압과 폭력 속에서 고통받은 모습이 그려지며(〈무궁화〉, 〈소녀〉), 이윽고 여성에게 있어 현존하는 지옥인 이 사회에서 계속해 투쟁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Hell〉). 각각의 삶과 예술관이 다르듯, 각 트랙에서 발화되는 메시지를 임의로 통일하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작을 관통할 키워드는 포착한다면, 그것은 '존재'라 보고 싶다. 거기에 여성이 존재함을 알리고, 여성으로서 겪는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존재해 나갈 것을 응원한다.
그 삶의 모습이 다양하기에 다채로운 음악을 담아낸, 본작의 '컴필레이션'이라는 형태 역시 주목할 만하다. 《Our Nation》(1996), 《2000 대한민국》(2000)처럼 인디/장르의 불모지였던 한국 대중음악씬에 장르의 존재를 알리기도 했고, 《우리노래전시회》(1984), 《젠트리피케이션》(2016)처럼 저항의 목소리를 한 데 담아냈듯, 특히 한국대중음악사에서 컴필레이션 앨범은 당대의 언더독 정신을 대표하는 지표가 되어왔다. 그리고 현재, 페미니즘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시기에, '한국 최초 여성 록 컴필레이션' 타이틀을 지닌 본작은, 인디씬을 빛내고 있는 이들을 한 데 모으며 대표성을 확보했고, 그 대표성이 유효한 이유는, (순환논증적이지만) 역시 이들의 음악이 지금 여기의 인디씬을 지탱해왔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본작은 여성으로서의 목소리를 담고 있지만, 전체 참여진이 모두 여성인 것은 아니다. 이는 바꿔 말하자면, 그 목소리를 지지하는 데에 누구나 동참할 수 있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며, 나 역시도 실례를 무릅쓰고 이 글을 작성하는 하나의 근거이기도 하다. 적어도 그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데에서부터, '우리'는 함께 할 수 있을 것이기에.
※WeWeWe기획단과 김윤하님의 라이너 노트, coloringCYAN님의 온음 리뷰를 참조 및 인용했습니다.
[Best Rock/Metal Track of 2020]
실리카겔, 〈Kyo181〉
"Kyo야, 사랑을 해봤니?" 'Kyo'를 불러 여섯 글자로 질문하는 형식의 수수께끼를 풀면 풀수록, 우리는 어떤 황홀하고 위태롭게 반짝이는 미궁으로 빠져들어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Kyo'의 존재처럼, 곡을 구성하는 악기와 보컬 또한 두텁게 왜곡되어, 곧바로 따라갈 수 있는 확연한 요소를 붙잡기 힘들어 마치 몽중을 헤매는 듯한 가운데, 곡 진행 내내 반복되는 구조를 단서 삼아 점차 곡과 친숙해져간다. 그렇게 이윽고 맞이하는 하이라이트와, 이완된 연주 이후 다음 하이라이트로 향하는 사이에 뮤직비디오를 통해 드러나는 반전은, 쨍한 기타 소리의 등장과 더불어 공포와 쾌감이 뒤섞인 모순된 감정을 흔들어놓는다. 어느새 나 또한 마법처럼 부르게 되는 그 이름, 'Kyo'. 김한주에 의하면 'Kyo'는 특정 인물이 아닌, 이야기를 절규하고 싶은 가상의 포인트라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yo'에게 말을 건네본다. 반복과 변주, 때때로 시간을 역행하는 장치들을 통해, 반복되는 오늘(今日[kyo:])을 황홀하게 만들어 줄 누군가가 되어주기를 소망하며.
[Best Folk/Country Album of 2020]
문소문, 《붉은 눈》
"소문을 들었다. 붉은 눈을 가진 여인이 어느 날 나타났다고."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붉은 눈동자.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올해 만난 인트로 트랙 중 가장 몰입도가 높았던 〈moonsomoon.net〉은, 실험적인 배경음악과 함께 읊는 내레이션은 앞으로 이어질 모든 곡들에 판타지 소설같은 세계관을 명확히 부여한다. 너무나 매혹적이고 이질적인 눈동자를 가진 나머지 사람들의 박해를 받고 사라진 '붉은 눈'.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를 찾기 위해 자연스레 이어지는 곡을 미스터리 풀듯이 독해하게 된다. 누군가는 소문을 듣고 그녀를 동경하며, 모두가 평등하다 맹신하는 갑갑한 세계의 방아쇠가 될 그녀에게서, 붉은 빛을 계승받으려 떠난다. 그리고 남겨진, 소문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다는, 의미심장한 농담의 유서.
숨결 하나하나까지 통제하는 듯이 페이소스를 쥐어짜내는 엄청난 기량의 보컬과 이에 걸맞는 영화적인 프로듀싱으로 《和》(2018), 《夢》(2019) 등의 인상적인 작품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아티스트, 카코포니. 그리고 《이유도 없이 나는 섬으로 가네》(2017) 등으로 알려진 포크 밴드 도마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는 거누. 이 둘이 뭉친 팀은, 포크에 기반을 두지만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전개를 시도한다. 〈쉿〉에서는 현악과 하프 등의 사용으로 환상동화 같은 무드를 만들고, 〈안녕〉, 〈붉은 눈〉 등에서는 블루지한 기타가 종교적인 감흥을 더한다. 곳곳에 흩뿌려지던 노이즈와 왜곡은 〈Entropy〉에서 집약되어 '붉은 눈'의 낙인찍힌 세계를 대변하고, 〈내 유언은 썰렁한 농담〉의 절규는 코러스와 오케스트라가 더해져 본작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완성한다.
'붉은 눈'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증오의 대상이 되는 여인. 이 세계는 차별과 배제, 혐오가 만연한 현실의 비유이기도 하다. 세계를 상상하게 만드는 시적인 가사와, 단편적인 소문에 감정을 부여하는 카코포니의 극적인 보컬. 그리고 거누의 침침하고 환상적인 기타소리. 그렇게 형성된 본작은, 음악을 들으며 환상적인 픽션 세계를 적극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올해 만난 유일무이한 국내 작품이었다. 마치 동화를 통해 교훈을 찾아냈던 어린 시절처럼, 지금 여기 세계의 진실까지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의 힘.
※ moonsomoon.net 에 접속해 퍼즐을 풀면, 보너스 트랙 〈문소문〉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Best Folk/Country Track of 2020]
이랑, 〈환란의 세대〉
("Best Track of 2020" 코멘트로 대체.)
[Best Electronic Album of 2020]
아슬, 《Slow Dance》
희뿌연 안개가 내려앉은 도시의 일요일 아침은 감상에 젖기 충분하다. 아슬 특유의 로파이(lo-fi)한 질감으로 내보내는 즐거운 멜로디는, 마치 오래전 추억이 담긴 VHS를 트는 것처럼, 멜로디가 품은 기분을 과거의 것으로 만들어, 현재 느끼는 감정의 필터를 한 겹 더 씌운다. 안개 뒤편에 아른거리는 추억은 쫓아가도 잡을 수 없기에, 지금의 내가 더 무기력하게 보인다. 본작의 “Slow Dance”라는 타이틀은, 나른한 댄스-팝을 담은 음악을 표현하기도 하고, 아련하게 재생되는 추억의 슬로우 모션, 이에 묶여 무기력한 지금의 상태까지 수식하는지도 모른다. 퍼지는 소리처럼, 나도 퍼져있기에.
맑고 퍼지는 소리의 질감이 일관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드림 팝이라 부를 만한 비슷한 무드가 이어지지만, 그 안개 뒤에 울리는 장르는 다양하다. 타이틀곡 〈Bye Bye Summer〉의 경우는 하우스 비트가 바탕이 되어있고, 다음 트랙 〈Paradise〉에는 퓨처 베이스스러운 샘플 운용 아래로 정글 비트가 사용된다. 또한 느릿느릿한 리듬 위로 타는 그루브는 얼터너티브 R&B라 불러도 될 테고, 마지막 〈말해봐요〉의 경우는 아예 어쿠스틱 기타가 주축이 된 포크 팝이다. 놀라울 정도로 일관된 세계를 제시하면서도, 이런 다양한 시도들은 트랙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더 귀기울이게 한다.
아슬의 꾸준한 음악색은 해외에까지도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다. 꿈결로 이끌지만 지극히 현실에 기반한 감성. 밝은 멜로디에 감출 수 없는 아련함. 프로듀서, DJ, 보컬리스트로서 각 영역을 조화롭게 모아 한 사람의 이별 이야기를 꿈결 같은 세계로 구성해 제시한다. 울적함이 온몸을 적시더라도, 찌르는 아픔은 잠시만 퍼뜨려 잊게.
[Best Electronic Track of 2020]
Omega Sapien, 〈Happycore〉
제목 그대로 해피코어(해피 하드코어) 장르 트랙으로, 칩멍크 기법으로 왜곡된 보컬 샘플과 두텁고 웅장하게 울리는 베이스가 서서히 긴장감을 높이더니, 정신없고 센 정글식 비트와 밝은 키보드 등이 얹히고, 거칠게 휘몰아치는 레이브 비트 위에, 장르명에서 그대로 차용한 '행복'을 주제삼은 랩이 더 에너제틱한 모습으로 오르며, 정신없으면서도 각 장르의 특징을 온전히 살린 매우 흥미로운 곡이 되었다. 과하게 흘러넘치는 에너지와 함께 "Power, Fame, 이것들은 당신의 행복의 전부가 아닙니다!"라고 설파하는 모습은 언뜻 키치스럽지만, 오메가 사피엔의 탄탄한 퍼포먼스가 왠지 모를 설득력을 부여한다. 그렇듯 랩이 중심이 되지만 그럼에도 전자음악 결산에 올린 이유가 있다. 우선, 본곡의 장르나 맥락에 있어 하드코어 테크노, 하이퍼팝 등으로 드러나는 해외 서브컬처 전자음악씬의 흐름 가운데 위치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트로트계의 이단아, 이박사의 〈Space Fantasy〉로 거슬러 올라가는, 해피코어 장르가 한국음악계에 미친 파격적인 영향을 계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자음악부터 힙합, 심지어 케이팝에까지 미치는 담론들마저도 담아낼 수 없을 만큼, 본곡의 존재감은 거대하다.
[Best Rap/Hip-Hop Album of 2020]
Deepflow, 《FOUNDER》
《쇼미더머니 시즌9》가 종영한 이 시점에, 힙합 아티스트이자 VMC 대표 딥플로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그만큼 민감한 사안일지도 모른다. 그의 전작 《양화》(2015)에서 드러낸 국내 힙합씬을 지탱하는 정서를, 방송 출연 등을 통해 스스로 배반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 가운데, 그 수록곡 〈잘 어울려〉에서 디스를 당한 당사자가 반발에 나서며, 씬의 담론과 정서, 사실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딥플로우의 복귀작 《FOUNDER》를 2020년 대표 힙합 앨범으로 선정한 이유는, 그의 외골수적인 음악 색채가 여전히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영화 OST처럼 어떤 노골적인 분위기와 정서를 유도하면서 유기적으로 흐르는, 펑크록(funk rock)과 재즈 힙합 등을 넘나드는 편곡. 랩의 진행에 따라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걸출한 스토리텔링. B급 갱스터 무비스러운 콘셉트가 성공적으로 먹힌 까닭에는 그의 탄탄하고 균형 잡힌 퍼포먼스와 〈품질보증〉, 〈Harvest〉 등에서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피처링 기용이 있다.
스토리텔링 또한 단순히 성공담에 그치지 않는다. 극적인 하이라이트를 전반부에 몰았음에도 후반부에 긴장감이 유지되는 이유는 회사 설립 이후 운영과 관련된 현실적인 이야기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화자가 휘청거리고 빛이 바라는 지점 역시도 중요하게 연출된다는 점에서, 본작은 말 그대로 《양화》의 속편이다. 그러한 상황들의 고백은 어쩌면 '변절자'라는 비판에 대한 초라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 설득력으로서 부여하는 고유의 예술성. 이는 곧 아티스트가 처한 상황의 변명이자, 목적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확실한 건 본작이, 국내 힙합 장르가 공유하는 '씬'이라는 배경에 아티스트의 페르소나를 어떻게 위치시키는지 보여주는 성공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랩 게임은 계속된다.
[Best Rap/Hip-Hop Track of 2020]
Deepflow, 〈대중문화예술기획업〉
국내 힙합의 레이블 문화는 독자적인 장르씬을 풍성히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면서도 크루 문화와 기묘하게 맞물려, 리스너들로 하여금 캐릭터 게임과 같은 소비 방식이 정착하며 여러 장단점을 낳았다. 비스메이저 컴퍼니(VMC)의 대표인 딥플로우가 전하는 레이블 탄생 일화는, 펑키(funky)한 리듬의 밴드 형식 프로덕션이 걸출한 스토리텔링에 생동감을 더하며, 음악 시장이 형성되는 실제적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쿨하고 거침없는 장르적 이미지와 답답한 제도의 코믹한 대비 가운데, "그래 이게 다 팬서비스지"라고 투덜대는 대목은 장르적 기믹의 실체를 까발리는 블랙 코미디처럼도 느껴진다. 힙합 문화에 씌워져 있던 게임과 같은 환상을 경험담을 통해 벗겨내면서도, 이를 또 앨범의 큰 서사로 포섭하며 다시 하나의 기믹을 만들어나가는, 장르 내부적으로 흥미로운 곡이다. 또한, 음악인이 음악을 통해 직접 음악 산업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대중음악 전반적으로도 의미 있는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Best R&B/Soul Album of 2020]
A.TRAIN, 《PAINGREEN》
화자는 나침반 없이 방황한다(〈NAKED ODYSSEY〉). 그가 정처없이 강을 건너려는(〈CROSS THE RIVER〉) 이유는 서서히 드러난다. 화자가 사랑했던 이가 저 멀리 떠나간 것이다. 그 과정이 전반부에 걸쳐 그려진다. 서로에게 무심코 준 상처(〈HURT〉) 혹은 이기심(〈우리가 불 속에 놓고 온 것들〉)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화자를 남기고 홀로 떠나갔다(〈CARRIER〉). 둘이 있던 집에는 혼자 남았고(〈추모〉), 그렇게 화자가 나침반을 잃은 상황이 밝혀진다(〈PLEASE SOMEONE〉). 화자의 자살 시도는 긴박하게 그려지는데(〈SWEET SIDE〉, 〈집에 가자〉), 이 두 트랙의 모순적인 묘사는 충격적이다. 〈SWEET SIDE〉는 ‘suicide’(자살)을 비튼 제목부터가 어두운 사캐즘이고, 〈집에 가자〉는 가사만 읽을 때 단순히 귀가를 노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긴박한 프로덕션과 총을 장전하는 샘플, 이전 트랙명(〈추모〉의 영제는 “A HOUSE IS NOT A HOME”이다)과의 대비 등을 통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독해하도록 한다. 그렇게 죽음의 문턱 앞에서, 갑작스럽게 화자의 시점이 바뀌며, 의미심장한 위로를 남긴다(〈견딜 만큼만〉). 〈CORK / art nouveau〉에서는 상대방을 보고, 나침반이 고장까지 않았다고 말한다. 화자는 어디를 간 걸까. 누구를 만난 걸까. 〈그래 그렇게〉에서 떠나보낸 건, 너일까, 나 자신일까.
본작의 소리는 얼터너티브 R&B를 토대로 일렉트로닉스를 구사하거나 앰비언트, 록과 유럽 포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가져와 만들어진다. 특히 타이틀곡 〈HURT〉에서 상기한 다양한 장르의 소리가 정갈하게 조화하는 모습은 본작의 이른 하이라이트를 만든다. 또한 피아노/오르간 등을 사용한 단출한 소울에서부터 오케스트레이션 급의 크고 작은 스케일을 다양하게 사용하는데, 감정 기복에 따라 한 곡 안에서도 변화무쌍하게 적용된다. 〈추모〉, 〈PLEASE SOMEONE〉을 비롯, 특히 〈견딜 만큼만〉의, 피아노로 시작해 점차 오케스트레이션과 코러스가 쌓이며 스케일이 커지다가, 다시 순식간에 로파이(lo-fi)하게 침잠하는 모습에서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작품 전체적으로 깔린 앰비언트 질감은 때론 어두운 긴박감을 형성하기도 하고(〈SWEET SIDE〉), 햇살이 밝게 비추는 환상의 장소를 묘사하기도 한다(〈그래 그렇게〉).
듣는 내내 가슴이 저려 온다. 담담한 목소리, 힘을 잃은 목소리, 숨을 토해내는 목소리 하나하나에 헤아리기 힘든 우울이 깃든 것만 같다. Frank Ocean, James Blake, (초기의) The Weeknd 등의 이름을 불러올 수야 있겠지만, 본작의 장르 운용 양상은 분명히 이들과 다르다. 그렇게 만들어낸 고유의 영역이기에, 어쩌면 지극히 비유적일 고백이 그토록 진실하게 다가온 것만 같다.
*김효진님의 리드머 리뷰를 참조 및 인용했습니다. 본작의 스토리에 있어서 해당 리뷰의 논지와는 다소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Best R&B/Soul Track of 2020]
진보, 〈DON'T THINK TOO MUCH〉
풋워크 비트와 붕뜬 신스가 신나게 울리고, 부유하는 분위기 위로 진보의 소울풀한 보컬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듯이 유유히 들어선다. 풋워크 특유의 텅빈 공간감을 부드럽지만 톡톡 튀게 토핑하면서 다양한 악기 및 샘플들이 신비로우면서도 즐거운 질감을 만든다. 또한 그 질감과 더불어, 어지러이 부유하고 질주하는 비트에 명확한 길을 터주는 보컬의 멜로디도 일렉트로닉과 알앤비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고, 막판에 이르러 앰비언트한 질감 위에 트로트팝스러운 추임새가 갑자기 등장하며 서사에도 반전을 꾀는 장치까지, 실로 놀라운 전개다. Frank Ocean, The Weeknd, Miguel 등으로 대표되는, 일렉트로닉과 알앤비의 경계를 무화시킨 얼터너티브 알앤비는 이미 '대안'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질만큼 주류로 자리잡은지 이미 오래다. 그 가운데 프로듀서, 보컬리스트, 엔지니어로서 모든 분야에 빼어난 그는, 그렇게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문법 또한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진보'시킨다.
[Best Pop Album of 2020]
조동익, 《푸른 베개》
'어떤날'로 시작해, 김광석, 장필순 등의 음악을 프로듀싱하며 한국대중음악사를 관통해 자기만의 소리의 토양을 드넓게 구축한 음악가, 조동익. 솔로 앨범 《동경》(1994) 이후 무려 26년만에 갑자기 돌아왔다. 그의 형제, 국내 인디 음악의 큰 별이었던 고 조동진 가수를 추모하기 위해서다. 이에 덧붙여, 2020년에는 음악가이자 그의 자매인 조동희 또한 《슬픔은 아름다움의 그림자》로 돌아왔고, 본작과 더불어 중요한 음반으로 자리매김한다.
조동익 표 앰비언트/슬로코어라고 불러야 할까. 우중충하게 침잠한 공간 속에 느리게 펼쳐지는 선율은 자연의 소리와 섞여서 그런지 일말의 따스함을 남긴다. 피아노와 현악기 소리 주변을 반짝이는 글리치가 그 음악의 정체성을 알려주며, 기교가 빛나진 않지만, 발해지는 소리 하나하나가 가슴에 느리고 진하게 흔적을 남긴다. 가사 없는 트랙이 많고, 초반 세 트랙부터 그러한데다가 특히 앨범 동명의 트랙 〈푸른 베개〉는 그 러닝 타임이 10분이 넘는다. 그럼에도 그 선율에는 청자로 따라오게 하는 힘이 있다. 앨범 전체를 하나처럼 잇는 장치들 때문일 수도 있고, 추모하는 이의 존재감이 그만큼 묵직하게 다가와서 그렇기도 하다.
〈푸른 베개〉의 마지막에 돌아온 집에는 〈내가 내게 선사하는 꽃〉이 남아있다. 잠시만 피다 지기를 바라는, 슬픔의 꽃. 비오는 날인 듯한 주변 자연 소리와 달리 장필순의 목소리는 전자음으로 왜곡되어있다. 〈그 겨울 얼어붙은 멜로디로〉의 시작과 끝에는 긴박한 샘플을 통해, 그들이 별로 떠나간 순간을 그린다. 조동희가 대신 읊는, 조동진, 김남희 부부 이야기가 담긴 조동익의 일기는 가장 애닳는 기억이다. 슬픔은 과연 떠나갈까. 앨범 초반에 잠시 그려진 선율이 반복되는 〈날개 II〉에서 "소금처럼 녹아내리도록"이라 외치는 조동익의 목소리는 본작의 감정이 가장 고양되는 지점이다. 날개를 잃었기에 더욱더 높이 외치는 목소리. 그것이 하늘에까지 닿기를 소망하며.
본작의 추모가 완결되지 않았음을, 조동희의 앨범이 나오고서야 알 수 있었다. 특히 더 소중하고 끈끈한 공동체였기에, 더욱더 컸을 빈자리. 본작의 앰비언트한 자연의 소리는 너무나 드넓었고, 느린 선율은 곧 마음의 무게였다. 그래서 본작의 소리를 섣불리 '반했다'는 말로 희석하기 어렵다. 그저 그가, 아니 그들이 제공하는 기억의 자리에, 가슴으로라도 동참하고 싶다. 각자 시간의 먼지를 털어 기억해야 할 얼굴들이 떠오른다.
[Best Pop Track of 2020]
달의하루, 〈너로피어오라〉
달의하루는 즛토마요, 요루시카, 요아소비 등으로 대표되는 포스트-보컬로이드 팝-록을 도입해, 거기에 블랙뮤직 장르 문법을 융합하면서, 국내 동인음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들의 두번째 발표곡인 본곡은, 오리엔탈 팝적인 고풍스러운 창법과 멈블 싱잉 랩 등의 트렌디한 블랙뮤직을 함께 조화시키며 고유성을 확보하고 한국어 가사의 말맛을 살린다. 또한 전체적인 전개에 있어 과잉과 절제를 오가며 이야기의 기승전결과 감정의 고저가 더 확연히 드러난다. 이를테면 브릿지에 이르러 터지는 현란한 연주는 곡에 긴장감과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식으로. 소중한 관계가 단절되어 삶의 동력이 사라지고 영원한 블랙아웃에 갇힌 것 같은 인생의 암울한 순간에 느끼는 감정을, 불교 세계관과 더불어 장르적 문법을 통해, 죽음을 인용하면서 역설적으로 온전치 못한 삶의 면면을 위로한다. 독자적인 세계관과 음악의 파급은 동인음악계에 묵직한 족적을 남겼고, 유행하는 레트로식 뮤직비디오의 완성도 높은 대표작이기도 하며, 관계의 단절과 죽음의 문제를 깊이 있게 통찰한 곡으로서 본곡은 올해를 대표할 국내 팝 트랙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상실의 고통을 현란하게 감추는 소리와 단절의 불안 가운데 정갈하게 요동치는 노랫말에 위로를 받은 그 시간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R.I.P. ampstyle.
[Best K-Pop Album of 2020]
Red Velvet, 《'The ReVe Festival' Finale》
레드벨벳은 케이팝계에서 확실히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에 대한 여러 분석이 있겠지만, 아직 케이팝 장르에 문외자 입장인 나로서는 단순히 이들에게서 느끼는 '음악적 완성도' 같은 말로 밖에 수식하지 못하겠다. 멤버들의 뛰어난 보컬 역량과 함께, 일렉트로닉과 알앤비를 각기 친숙한 형태로 구사하며 장르가 주는 쾌감을 놓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융합해 진화까지 한다. 〈Russian Roulette〉에서 보인 신스 운용이 당시 유행하던 일렉트로닉 팝을 어떻게 변주하는가. 케이팝 역사에 전무후무한 명반 중 하나로 자리잡은 《Perfect Velvet》(2017)에서는 얼터너티브 알앤비가 케이팝으로 어떻게 정착하는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본작 또한 레드벨벳의 장점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과 더불어, 과감한 시도들에 빛나는 작품이다.
2019년에 펼친 레드벨벳의 'The ReVe Festival' 프로젝트 역시 매우 고무적이다. 필시 작년 케이팝 트랙 중 가장 논쟁거리였을 〈짐살라빔〉을 비롯 'Day 1' 편에선 록과 알앤비를 성공적으로 결합하며 발랄하고 즐거운 모습을 보였고, 'Day 2' 편에선 조금 더 그루비하고 재지한 곡들로 여름의 설렘을 그렸다. 그리고 연말연시를 강타한 〈Psycho〉를 필두로 한 프로젝트 총집편인 본작은, 그간 커리어에서 슬쩍슬쩍 보여주었던 언캐니(uncanny)한 순간들을 음산한 멜로디로 폭발시키며, 커다란 반전을 선사한다.
페스티벌은 성공적이었다. 'Day 1'처럼 맘 먹고 록 사운드 등의 실험을 시도했고, 'Day 2'에서는 이들의 알앤비 보컬이라는 강점을 살려 장르적으로 밀어붙인 매끈한 결과물을 얻었으며, 마지막 이르러서는 콘셉트의 융합과 더불어 프로젝트 전체를 재독해하게 만드는 서사를 부여하는 최고의 피날레를 맞이했다. 반년 이상에 걸친 축제는, 대략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기 어려운 추억으로 기억된다.
[Best K-Pop Track of 2020]
cignature, 〈눈누난나〉
발랄함, 난잡함, 하이퍼함. 본곡을 수식하는 말은 많겠지만, 내게는 의외로 '적재적소'라는 말이 떠올랐다. 신예 아이돌 그룹 시그니처의 데뷔 싱글로 발표된 본곡은, 과잉된 신디사이저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거세게 댐핑한 베이스와 리듬 파트 또한 패턴을 각양각색으로 바꿔가며 큰 낙차를 형성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보컬 역시도 추임새와 스타카토, 기계음 등을 사용해 가며 양(陽)적인 에너지를 한껏 발산한다. 그런데 본곡이 훌륭한 지점은, 모든 파트가 강하게 자기주장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매우 조화롭게 맞아들어간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JAVIS 나 좀 도와줘 (mayday mayday)" 부분에서 2음절 랩을 아무렇게 날려보내는 듯한 보컬 운용이 시끄럽게 울리는 리듬 파트와 만나 완벽히 달라붙은 점을 주목해보자. 또, "특별하게 더 아찔하게 더"의 프리-훅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사이렌 같은 신스음이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긴장감과 질주감을 불어넣는 장면이라든지. 그렇게 고조된 채 훅으로 넘어가면서 디스토션 먹인 베이스가 낙차를 더 아찔하게 만드는 장면도. 흥을 주체할 수 없이 발산하는 케이팝 트랙은 늘 있어왔고, 근래에는 '하이퍼팝'이라는 스타일 아래 의도적으로 과잉된 소리를 추구하는 시도도 늘고 있다. 그 가운데, 과잉된 에너지를 맘껏 발산하면서도, 음악적으로 완벽히 통제하는 타이밍의 미학에, 반하지 않을 길이 없었다.
[Best Jazz/Fusion Album of 2020]
추다혜차지스,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Best Album of 2020" 코멘트로 대체.)
[Best Jazz/Fusion Track of 2020]
추다혜차지스, 〈사는새〉
무가와 펑크(funk) 등을 융합한 앨범,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의 하이라이트를 점하는 트랙으로, 제주 새도림을 바탕으로 하여, 한국의 실제 샤머니즘 음악과 블랙뮤직의 영적인 접근이 효과적으로 만난다. 서도민요 특유의 떨림이 블루지한 연주에 맞춰 그루브를 만들고, 속세를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을 새 한 마리 한 마리에 투영해 나간다. 이윽고 "훨쭉 훨짱" 하는 추임새와 함께 모인 새들이 날아가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김오키의 색소폰 연주가 압권인데, 그의 작품들이 Sun Ra 등으로 대표되는 'spiritual jazz'라 불리듯, 숨막힐 정도로 고조되는 연주는 가히 영적인 합일을 이루는 것만 같다. 무가, 펑크, 재즈. 각 장르의 역사 속에서 투영되어 온 영적인 에너지가 만나 일으키는 소용돌이는 쉬이 잊을 수 없는 경험일 것이다.
※coloringCYAN님의 온음 리뷰, 김도헌님의 브런치 리뷰를 참조했습니다.
*부록* 개인적인 한국힙합어워즈(KHA) 픽
올해의 아티스트 : 서사무엘
올해의 신인 : 오메가 사피엔
올해의 힙합 앨범 : 딥플로우, 《FOUNDER》
올해의 힙합 트랙 : 딥플로우, 〈대중문화예술기획업〉
올해의 알앤비 앨범 : 추다혜차지스,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노미니 불가 시 에이트레인, 《PAINGREEN》.)
올해의 알앤비 트랙 : 추다혜차지스, 〈사는새〉 (*노미니 불가 시 소금, 오혁, 〈야유회〉. 진보, 〈DON'T THINK TOO MUCH〉는 2019년 12월이라 노미니 불가.)
올해의 프로듀서 : 수민
올해의 과소평가된 앨범 : 오메가 사피엔, 《Garlic》
올해의 콜라보레이션 : Various Artists, 〈AUTOMATIC REMIX〉
올해의 뮤직비디오 : 스월비, "파랑"
올해의 레이블 : (모름)
we, do it together는 음악을 떠나서 메세지에 아직도 의문가는 점이 많네요. 소개글에서 '무대 위에는 늘 여러 명의 인물이 있었지만 대부분 남성이었다. 간혹 등장하는 여성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키보드를 치거나 정식 멤버가 아닌 객원 멤버로 무대에 오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간혹 기타나 드럼을 치거나 노래를 부르는 여성도 있었지만, 이들이 실력과 상관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건 매우 드문 경우였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애초에 한국에서 가장 많이 얘기되는 건 보컬이고, 당장 인디 1세대만 해도 참여진 중 하나인 황보령이나 자우림, 체리필터, 아프리카 같이 여성 멤버가 밴드를 대표하는 경우가 많아서 설득력이 떨어지기도 하고요. 차라리 걸밴드가 크게 성공하지 못하는 현실같은 걸 다뤘으면 더 설득력 있었을 겁니다.
과나 선정 추
예전에 엘이에 어떤 분이 돼고비 영상 추천하는 글을 올려주셔서 보고 재밌다 싶어서 구독했는데 지금보면 과나는 그때보다 음악적 역량이 훨씬 발전한 것 같아요 절대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유튜버
막 최강창민 나오는 광고 음악도 만들고 그러잖아요 ㅋㅋㅋㅋㅋ
잘 봤습니다, 추다혜 노미니 불가시는 왜죠?
크로스오버 앨범적인 정체성이 강해서 '알앤비'로 받아들여질지가 의문이라는 건데... 아마 될 것 같아요 ㅋㅋㅋ
아 그런 의미였군요
확실히 이 앨범은 장르적 정체성을 경계짓기가 쉽지 않네요
이랑이 새 앨범을 냈군요 예전에 한대음 트로피를 박살냈나?... 팔았나?..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즉석에서 50만원에 팔았죠
앜ㅋㅋ 그렇군요 신의 놀이 인상 깊게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전 잘 듣다가 트위터 보고 실망해서 끊었던 게 기억나네요..
아ㅜㅜ 그렇군요
동명의 앨범을 낸다고 예고는 했는데 아직은 저 싱글만 나왔어요
아... 음원 이야기 했던 겁니다 ㅎㅎ
저도 그 사건과 일련의 페미 발언 으로 안듣게 되었는데 ,최근 방송에서 보니 이랑님이 보험설계사 하시더라구요. 뭔가 현실 적인모습이 조금 씁쓸하더라구요. 생각난김에 들어봐야겠네요.
보험설계사라.... 인디 뮤지션들은 되게 어려운거 같네요 코로나 때문에 공연을 못해서 더 그런 것도 있는거 같고 아쉽네요
we, do it together는 음악을 떠나서 메세지에 아직도 의문가는 점이 많네요. 소개글에서 '무대 위에는 늘 여러 명의 인물이 있었지만 대부분 남성이었다. 간혹 등장하는 여성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키보드를 치거나 정식 멤버가 아닌 객원 멤버로 무대에 오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간혹 기타나 드럼을 치거나 노래를 부르는 여성도 있었지만, 이들이 실력과 상관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건 매우 드문 경우였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애초에 한국에서 가장 많이 얘기되는 건 보컬이고, 당장 인디 1세대만 해도 참여진 중 하나인 황보령이나 자우림, 체리필터, 아프리카 같이 여성 멤버가 밴드를 대표하는 경우가 많아서 설득력이 떨어지기도 하고요. 차라리 걸밴드가 크게 성공하지 못하는 현실같은 걸 다뤘으면 더 설득력 있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올해 아티스트 아슬이 너무 좋았습니다. 지난 작품인 아소비 때도 너무 좋은 실력을 뽐냈는데 올해 Slow Dance로 더 성장하는 멋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아슬누나 사랑해요 ㅎㅎㅎㅎㅎㅎㅎ
ㅇ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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