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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리뷰] 래원, 〈원효대사〉 (2020)

title: Kanye West - The Life of Pablo라이프오브타블로2020.10.14 22:29조회 수 1018추천수 3댓글 3

래원, 이태원.jpeg

 

 

Artist : 래원 (Layone)

Track : 원효대사

Released : 2020.09.15

Label : OUTLIVE

Genre : Hip-Hop

 

 

전제 하나. 이 글은 사실 〈원효대사〉 트랙 자체를 깊이 다루게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본 트랙에 사용된 랩적 방법론과 그 수용에 대한 소고(小考) 위주가 될 것입니다.

전제 둘. 본 트랙에 대한 선행된 가장 주효한 글로는 온음에 게재된 양소하 님의 리뷰가 될 것입니다. 저는 그 기사에 감명 받아 이 글을 썼음을 알립니다. 그 논지에 (식견이 부족해 온전히 이해를 못했을지언정) 상당 부분 동의하고, 이를 발판 삼아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려는 목적에서 작성하는 글입니다.

랩 메이킹을 위해 나열되는 무의미한 단어들. 무의미, 라기보다는, 쉽게 인식 가능한 맥락이 거세된 문장의 나열이라 보는 편이 낫겠다. 언어는 해석을 요하는 매체이고, 어쨌든 우리는 본곡에서 표현된 언어에 맞춰 필연적으로 무언가 상상을 하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쉽게 인지하기 어려운 기괴한 무언가로 탄생할 것이며, 발화자 역시 그러한 단어 조합에 큰 의도를 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의미/맥락을 희생해서 얻어내는 온전한(이라기보다는, 효과적인) 라임. 나는 래원의 노래를 들으면서 종종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칫솔을 마이크 삼아 중얼대는 뻘 라임들을 훨씬 세련된 형태로 발전시켜 정립된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정립된 물건, 머리에는 verse, 거지될 운명... (죄송합니다... 계속 갑니다... 메로나 1빠...) 아무튼 그렇게 만들어진 랩 퍼포먼스는 실로 쾌감이 크다. 우선 변칙적인 리듬과 강세를 이리저리 조절하며 랩 벌스에서 기대할 수 있는 다양한 스킬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단어의 조합이 순간적으로 충돌하며 피식거리게 되는 부분은, 과장 좀 보태서, 시적 미학을 충실히 재현한다고까지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 이제 힙합팬들, 뿐만 아니라 여러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단골인 논쟁거리를 피할 수 없겠다. '음악에 있어서 가사가 점하는 위치' 말이다. 솔직히 나는 이 주제에 대해서 확실한 입장이 없고, 그때그때 생각이 종종 바뀐다. 대중음악 독해에 있어서 가사는 뗄래야 뗄 수 없는데... 그러나 가사의 언어는 필연적으로 그 1차 청자를 해당 언어 구사자로 국한시켜버리는데... 그렇다고 언어 이외의 소리가 모든 청자에게 객관적으로 다가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닐 테고... 그래서 가사는 온전히 '소리'로 종속시켜야 하느냐? 하면 그간 사랑 받아온 노래 대부분에 대해 설명하지 못할 것이고... 랩, 포크, 심지어는 스포큰 워드까지 '언어'가 중요한 음악은 또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이며...

그런 의문들을 가진 채 노래를 다시 들으면, 일단 이 가사가, 어쨌든 (가사집을 확인할 때) 한국어 구사자라면 거의 인지할 수 있는 단어로 구성된 것을 알 것이다. 청각적 효과를 위해서 래원은 언어의 '맥락'을 포기했지만, 그렇다고 '언어'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가정을 하게 된다. 그가 이제 최소한의 형태소 단위조차 사라진 '목소리'만으로 본곡과 같은 퍼포먼스를 구사할 때, 거기서 오는 쾌감은 그 이전과 유사할 것인가? 섣부르고 단정적이지만 나는 일단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술했듯이 라임이 맞아떨어지면서 오는 쾌감에는 예상치 못한 단어 조합이 벌이는 충돌이 동반한다. (한편, 흔히 '리리시스트'라 불리는 래퍼들에게서는 라임과 함께 그 의미도 맞아떨어지면서 오는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거기 사용된 단어가 정말 단순히 사전에서 랜덤하게 뽑아온 것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우선 '원효대사'라는 표제 자체가 한국인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지식 코드이다. '원효대사? 해골물!' 정도의 지식은 청자층 다수가 인지하고 있을 한국사 에피소드이고, 래원 역시 (그것을 담는 서사적 맥락 따위는 무시할지언정) '해골물' 키워드까지 소홀히하지 않고 끼워넣는다. 또한 현역 대상, 반 페르시, 스필버그, 네이버 등등 무맥락으로 튀어나오는 단어들이 그렇다고 막 완전히 동떨어진 단어들도 아니고, 동시대 한국 사회인들이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것들이다. 본곡을 들으면서 생기는 골계미는 바로 우리의 보편적 인지 가능한 단어들이 맥락을 잇지 못한 채 충돌하는 낙차에서 비롯되며, 반대로 말하자면 그 낙차를 위해 깔아놓은 단어들은 동시대 한국 사회인들에게 익숙한 것이다.

이러한 언어적 효과는 음악적 효과로 귀속될 수 없는 것인가? 적어도 나는 가사의 맥락이 소거되었다고 평가받는 본곡에서조차도 언어를 온전히 '소리로서만' 해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라임을 위한 의미 없는 단어 나열은 꾸준히 있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래원이 랩과 가사의 괴리감을 중심으로 화제가 된 것 자체가, 음악과 언어의 구분을 비웃는 적극적인 창작 놀이의 성과일 것이다.

추천도 : Good

 

 

https://youtu.be/dwXXa3jL60Q

 

 

여담 1: 부족한 식견에서나마 연상되는 음악들이 몇 가지가 있다. 랩을 온전히 소리로서 사용하는 걸로 알려진 Young Thug, Playboi Carti 등을 필두로 하는 멈블 랩이 우선 떠오르고, 멀리 가서는 Radiohead 또한 단어의 랜덤한 조합으로 작사하는 실험을 했다고 전해들었던 것 같다. 음악과 언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은 항상 전개되고 있다. 그것도 우리가 인지하는 범위의 상당히 가까이에서. 다만 글에서 내가 얘기한 언어가 지닌 음악적 효과설(?)에 따르면, 멈블랩이 채우는 트랩의 클리셰 워드 역시 정말 '소리로서만' 수용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멈블랩이 온전히 소리로 작동할 거면 여전히 혐오 표현이 난무하는 클리셰 워드는 진정 가치 중립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여담 2: 한편 국힙에서는 Uneducated Kid가 연상이 되기도 한다. 트랩 클리셰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서 도리어 힙합씬의 리얼리티를 흔드는 것처럼, 래원의 소위 '리리시즘이 심각하게 결여된' 가사 역시 부정적 통념을 오히려 무기 삼아 극대화시키면서 새 담론을 구축할 여지를 보인다. 생각해보면 스윙스 역시 그랬다. 멍청해보이는 워드플레이를 통해 오히려 한국 랩 작사법의 폭을 늘린, 이 어찌 아름다운 정반합의 미학.

여담 3: 한 아티스트(혹은 장르)의 특징 자체가 개성이 매우 강해 기존 통념에서 벗어나 생각해야 할 경우, 개별 작품 단위(트랙, 앨범 등)에 대해서는 각각 어떻게 평가를 해야하는지 궁금하다(물론 음악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관점이긴 하다만...). 이 글의 요지는 꼭 〈원효대사〉가 아니더라도 가능했을 것이고, 이왕 '작품 리뷰'를 하는 만큼 조금 더 개별 작품에 집중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아있다. 〈원효대사〉와 〈느린심장박동〉의 차이점은? 이런 관점에서 전술한 Playboi Carti와 같은 아티스트의 작품군을 바라보는 관점 세팅에 대해서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강하리라는 생각도 들고, Uneducated Kid 《HOODSTAR》가 멜론에서 '명반' 딱지를 받은 데에는 도저히 동의가 안 되고...

 

 

https://blog.naver.com/ings7777/222115807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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