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르렁 드르렁.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다. 15년간 군만두 감금 먹방을 한 오대수 씨도 정신 차리고 나니 장도리로 사람들을 썰고 다녔는데, 두세 달 동안 리뷰할 음악만 줄기차게 듣고 다녔더니 새 음악을 찾아듣는다는 개념 자체를 죄다 까먹어버렸다. 덕분에 아직 [Cry Baby]도 못 들어봤다-는 말을 하는 지금이야말로 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어폰을 꽂았다.
체감상 요즈음 새 앨범이 자주 나오는 장삿집은 크게 두 가지다. 동묘에서 옷 장사하듯 인해공작술을 쏟아내는 드럼리스 떼거리들, 그리고 디지코어 하이퍼팝 댕청무식 맥도리아 군단들. 전자는 다들 고점을 찍었던 과거의 나와 싸움 중이라 관심이 없고, 후자는 밥 좀 먹었으면 & 그만 먹었으면 싶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과 별개로 취향 맞는 사람이 다섯 손가락 안에 안 들어오는 편이다. 그럼 늙은이들은 자연스레 탑골공원으로 향한다. 5년 전, 10년 전, 점점 더 전으로...
문득 새삼스럽지만, 그럭저럭 좋게 들었던 앨범을 다시 꺼내 듣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대담하고 호기로운 일이다. 당장 Endtroducing.....부터도 처음 감상했을 적엔 Donuts와 비교도 안 될만큼 무덤덤한 편이라고 넘겨짚었으니까. 지금은 서로 자웅을 겨루는 수준이다. 이런 식으로 다시 본 이들이 몇 된다. 벨벳 언더그라운드 2집, 빅엘 사후작, 릴비, 바이퍼, 이브 튜머...
그 중 가장 최근은 Endless다. Blonde에 콩깍지가 씌어 처음 헤까닥 넘어갔던 시절 이상으로 프랭크 오션을 열심히 들은 게 처음이다. 첫째로 놀란 건 이 작품이 정말 데프잼 떨거지로 여길 만큼 조잡한 무언가로 치기에 한참 실례라는 점이고, 둘째로는 단순히 Endless에 대해 나누는 감상이 Blonde를 둘러싼 그 모든 왈가왈부의 반의 반의 반의 반도 없었다는 점이다. 너 힙스터 행세하고 싶구나-로 느껴지신다면 사죄드리며 영업을 시도해본다. 이거 꽤괜이 아니라 그냥 맛있다니깐요.
느끼는 바가 이렇게 변해왔다. 디깅 너무 열심히 안 해도 돼 -> 옛날 앨범들 디깅하는 게 좀 더 재밌네 -> 디깅하기 싫어 싫어 잉잉잉 -> 그냥 듣던 거나 똑바로 잘 들어야겠는데?
첫눈에 맞은 작품과 평생을 함께 한다면 천운같은 삶이겠지만- 알다가도 모르고 모르다가도 아는 법이다. 콩깍지가 유행병처럼 옮겨 다닐 수도 있는 거니까. 지금껏 단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는 녀석들도 있고(Donuts Donuts Donuts), 한참 전에 떨어진 녀석들도 있고(칸예를 둘러싼 그 모든 것), 슬쩍슬쩍 눈에 밟히는 미작(美作)도 있다(참 신기한데 퓨처랑 영떡이 원래부터 이렇게 음악력이 높았었나;). 여튼 중요한 건 언제라도 이상형이 변할 수 있으니 상시 항시 눈독을 들이라는 것!!!
후략하며- 당연하지만 너무 과하게 자주 들으면 안 된다. 목소리가 주(主)로 있는 앨범은 공부하며 듣기에 정신 사납다는 이유 때문에 이번 봄은 곧 Endtroducing.....이었다고 불러도 될 정도로 정말 줄기차게 들었다. 가사가 없다며 집어든 앨범인데 보이스 샘플과 스크래치 타이밍에 맞춰 입으로 꿍시렁 중얼거리는 지경에 이르자 루핑은 노이로제가 되고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사랑하는 앨범이 내 귓바퀴에 림샷을 꽂을 줄이야. 우리 잠시 몇 달만 헤어져 흑흑. 부디 여러분도 조심하길.
- 20260809




글 존내 재밌어요
크....저도 동감합니다. 새롭고 낯선 앨범을 들으며 새로운 시도에 대한 긍정적 감각을 일깨워 나가는 것 역시 즐겁죠. 하지만 그것이 제가 사랑하는 작품들을 깊게 이해하나가는 것 이상의 감동을 선사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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