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ZA - Liquid Swords
"What are the biggest lessons you have learned about life through chess?"
(당신이 체스를 통해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인가요?)
"So many. It involves critical thinking, planning ahead, strategising – it’s very helpful, on many different levels, and sometimes I can be dealing with a situation, or… anything, and I would think of chess and relate whatever I was doing with the chess board – a certain opening, or a tactic."
(너무 많아요. 비판적인 사고, 수를 내다보는 법, 전략 세우기... 다양한 수준에서 도움이 되고, 어떠한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게 해줘요. 체스에 대해 생각하며 체스판에서 두던 어떠한 오프닝이나 전술을 무엇과도 연결지었죠.)
<Liquid Swords>는 세 가지 모티프의 융합이다. 영화 장군 암살자[Shogun Assassin, 1990], 체스, 그리고 GZA의 Wu-Tang Clan. 이 중 셋째가 굳이 ‘GZA의’ Wu-Tang Clan인 이유라 하면, 모티프들 중 누가 가장 큰 목소리를 가졌는지 짚어봐야 한다.
모두들 GZA를 래퍼의 면모로 들여다본다. 그를 묻는 인터뷰에서 GZA는 힙합이나 음악 이야기보다도 체스 기사의 사명감과 목표 의식을 보여왔다. 이 관점에서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Liquid Swords>도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인다. 앨범 커버에는 무당파 객원들의 무공 향연으로 빗댄 체스라는 대주제를 떡하니 꺼내두고, 이후엔 감상 확장의 일환으로서 <Liquid Swords (Deluxe CD Chess Set)>를 발매한다.
다만 겉면을 넘기면 작품에 ‘체스’라는 개념이 개입하는 정도는 그리 크지 않다. GZA와 RZA를 비롯해 익숙한 무당파의 이름들이 줄짓고, 트랙리스트는 영락 없는 90년대 중국풍 소림 영화의 냄새를 풍겨댄다. 레퍼런스 요소도 없다. ‘앙파상’, ‘체크메이트’, ‘블런더’ 등의 무질서한 모티브 단어 열거도 없다. 감상에 체스 규칙이나 배경지식 따위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체스란 그저 주제의식을 위한 맥거핀인가? 의미를 이해하기 전 당대 Wu-Tang Clan의 무자비한 총아들을 쫓아보아야 한다.
90년대. A Tribe Called Quest, Outkast, Public Enemy, Mobb Deep, The Roots, The Pharcyde, De La Soul, Gang Starr... 기라성들은 오랜 기간 그룹의 명의로 작품을 발표해왔다. 공과 명성은 오롯이 그룹의 몫이었다. 모든 그룹이 뽐내온 자랑거리는 단 두 가지로, 죽어가지 않는 음악과 그들의 끈끈한 결속력이다.
Wu-Tang Clan의 유산은 다소 상이했다. 세간에 충격을 선사한 데뷔 이후 다음 발자국은 2집이 아닌 멤버들의 솔로 작품이었다. Method Man과 Ghostface Killah는 히어로 만화 속 Johnny Blaze와 Tony Stark를 빌려와 완벽하게 흡수했고, Raekwon은 마피오소 시나리오 속 코카인 셰프로 거듭났으며, Ol' Dirty Bastard는 기어이 "Shimmy Shimmy Ya"와 "Brooklyn Zoo"를 낳기에 이른다. 속편으로 세부 인물의 세계관을 확장시켜나갔다.
‘우리’를 보여준 Wu-Tang Clan은 다음 단계인 ‘우리가 누구인가’로 나아갔고, 1993년부터 1997년까지 4년간 Wu-Tang Clan은 개인을 선사하여 더욱 비대해졌다. 2집의 발매에 관중들은 다시 뭉친 주연들에게 열광하며 'Wu-Tang Forever'를 외치고, 그리 재방문한 <Enter the Wu-Tang (36 Chambers)>는 별들의 전기를 감상한 뒤 돌아보는 영웅전이 되었다.
Wu-Tang Clan 일원들의 전기 중 <Liquid Swords> 역시 래퍼 본연을 보여주려는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본래 Wu-Tang Clan의 철학이란 직관적이었다. 동양계 쿵푸 영화 속 무당파의 오리엔탈리즘 이미지를 빌려와 비추는 잔인하고 무자비한 하드코어 힙합. 그러나 <Liquid Swords>의 주인공 GZA는 지혜롭고 현학적인 시인이자, 차분하고 견고한 연구를 뽐내는 랩 아티스트다. 어찌 보면 그 집합체에서 가장 동떨어진 자칭 ‘Genius’라는 이명을 가진 사나이다.
섬세한 성미에 어울리게 <Liquid Swords>에서 GZA의 모든 랩은 세 걸음 앞서기 위해 두 걸음 물러서며 시작된다. 다른 일원들이 욕지거리를 내뱉거나 멱살잡이를 벌이려할 때 그는 다소 힘이 들어간 악수로 가볍게 격식 있는 실랑이를 벌인다. 적어내린 활자들은 글씨가 번지지 않게 매끈히 그어낸 잉크들로 채우려 한다. 랩핑은 운치 있는 카리스마를 잃지 않는 선에서 다소 얌전히 휘어지고, 넌지시 던지는 'Wu'의 흔적들만이 대문자로 표기될 뿐이다.
때로는 덜떨어지고 미성숙한 래퍼들을 꾸짖기도 하고("Shadowboxin'"), 어느 날에는 세관과 경찰들에게 뒤쫓기기도 하며("Gold"), Cold Chillin'과의 갈등을 우회적으로 쏘아대기도 한다("Labels"). 촌각을 다투는 모든 상황에서 GZA는 한시도 급하게 걷지 않고 감정에 격해지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불순한 단어들을 뒤섞지만 불필요한 전쟁과는 거리를 둔다. 기품 어린 말들은 듣는 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고, 1995년 당시 29세였던 GZA의 멋은 오늘날 나이를 먹은 중후한 예술가와 다를 바 없다.
그런 GZA의 격조는 휘하의 일원들에게도 물든다. 잔뜩 날이 서 있지만 기폭을 기다리며 타들어가는 심지가 되고, 덫을 밟고 벌집을 건드리기까지 눈독들이는 철칙을 지킨다. 어느 때고 불타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게스트들은 GZA의 지령에 따라 제각기의 머리 모양을 한 기물이 되어 자신의 순간만을 벼른다.
때문에 <Liquid Swords>에서는 세련되고 품격 있는 아우라와 잘 어우러지는 인물들이 돋보인다. “4th Chamber”에선 이슬람에서 키로스와 페르시아 왕국을 오가는 RZA의 칼춤이 벌어지는가 하면, 앨범을 꿰뚫는 최고의 벌스가 흥미잃은 풋내기들 싸움 속 무신경한 듯이 유연하게 뱉어내는 “Shadowboxin'”의 Method Man에게서 나오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주인공이자 지휘자로서 마무리마저 Killah Priest에게 일임한 "B.I.B.L.E."은 GZA의 철학과도 같은 엔딩 크레딧이다. 공허한 드럼 소리만이 연이은 와중에 GZA는 미련없이 자리를 뜬 지 오래다.
<Liquid Swords>의 GZA는 몸소 총칼을 들이밀며 상대를 겁박하거나 으름장을 놓지 않는다. 턱수염을 매만지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필요하다면 몇 분이나 몇 시간이라도 들일 기세다. 다음 기물의 움직임을 고민하며 상대를 짓이기기 위해 찰나에 눈독을 들인다.
이 전술이 곧 GZA의 문법이다. 힙합이 가장 뜨겁게 작렬하던 동부 황금기의 한복판, GZA는 작품을 ‘전략’의 개념으로 접근한다. 체스는 컨셉도 콘셉트도 아니다. GZA 본연의 상징성에서 떨어져나와 자연스레 작품의 매커니즘으로 녹아든 GZA의 삶 자체와도 같다.
음악과 그 너머의 무언가를 내다보는 태도. 그 태도가 GZA와 <Liquid Swords>를 완성시킨다.
와 감사합니다
고마워용
글삭을 하지 말아다오
왜요
오랫동안 즐기기 위해서
맘에도 없는 소리 😖
진심인데
알겟슴미다 😋
When the MC's came, to live our their name
😋😋😋
잘 읽었습니다
고마워용
체스는 진짜 우아한 제재인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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