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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반 다섯 장

title: loveless닝닝2025.07.16 19:26조회 수 1804추천수 7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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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h-Hommy - The G.A.T...



초자연적인 추상성의 정점을 오직 스네어와 햇 리듬에게 골자를 내바친 힙합에게서 볼 줄은 몰랐다. 이 앨범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칼날을 들이밀어 해체하고 싶어도 찢어지는 살점이 없다. 멀고 깊은 세상의 작은 부품 쪼가리인 인간이, 그의 머릿속에서 번져대는 나만의 세상을 펼치고 마무리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몇 마디로 축약하고 붓질하는 초월자 같은 태도. 이 모든 서사가 절필도 아니고 막 커리어를 시작한 남자의 초기작 중 하나라는 게 존경과 경외심을 넘어서 실로 로맨틱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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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Dilla - Donuts



이 예술품의 자태는 잠시 제쳐두고, 역작을 위해 평생의 작법을 정반대로 내던진 그 선택에 집중하고 싶다. <Donuts>는 조악하지만 견고하고, 무작위적이지만 균열이 없다. 감각은 동시다발적이다. 시작하는 루프엔 웃고 끝나가는 루프엔 울게 된다. 그는 DJ Premier도, Pete Rock도, RZA도 되지 못할 운명이었다. 이렇게 원시적인 들끓음은 누구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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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ZA - Liquid Swords



한 남자가, 삶과 세상에 견지하는 태도를, 그리고 예술적으로 터뜨리고 싶은 지향점을, 최대한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나 자신을 온전히 녹여냄과 동시에, 은유와 상징으로 가장 세련되고 멋있게 빗댄, 그런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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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villain - Madvillainy



위대함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누군가 억지로 장엄함을 강요하지 않아도 제 스스로 낚싯바늘을 물어 쫓기게 만드는 작품들을 떠올리곤 한다. 두 악당은 얌전히 먹잇거리를 던져주기만 한다. 아주 질 좋고 일관적인 랩과 비트 덩어리들을. 그들은 제법 깊이 심취해있다. 던지고 쫓고, 먹고 먹히는 정직한 화폭이다. 그들에게 온전히 닿은 뒤라면 이제 모든 해석은 가로챈 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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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ribe Called Quest - The Low End Theory



25년이 지나 완벽한 피날레를 장식하기까지, Tribe는 우스운 농담과 엉뚱한 장난기로 똘똘 뭉쳐 있었지만 언제나 들여다보기 귀찮고 쉽게 이해하기 힘든 철학을 얘기했다. 어린 나이부터 원숙했던 영혼들은 예리한 일침과 시시콜콜한 말장난을 뒤섞는 일에 겁내지 않았다. 그들은 음악과 말과 삶 모두 잃을 수 없는 과거의 진리에서 가져왔고, 그러니 가장 낮은 곳에 있어도 가장 뜨거운 목소리를 가질 수 있었다. 내게도 탐나는 목소리다. 말은 언제나 가장 날카로운 칼이고, <The Low End Theory>는 그 칼을 뽑아들 칼집처럼 얌전히 때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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