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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엘이 매거진 이벤트] 약내음과 핏자국으로 얼룩진 회고록 - DAYTONA

title: Playboi Carti (WLR)노는아이카르티9시간 전조회 수 472추천수 11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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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TONA - by Pusha T (2018)

장르 : 하드코어 힙합, 갱스터 랩, 붐뱁







지나치게 거칠다. 비트에는 흥겨움 리듬이 아닌 쇠를 때리는 듯한 둔탁함이 자리하고 있고, 사운드는 감미롭다기 보다는 섬뜩할 정도로 스산하다. 푸샤 티의 랩은 여느때처럼 훌륭하지만, 그가 내뱉는 구절에는 은은한 살기가 묻어난다. 본래 흥겨움을 목적으로 하는 힙합 장르의 앨범임에도, DAYTONA가 내뿜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듣는 이들에게 소름 끼치는 느낌을 선사한다. 흥이 없는 힙합 앨범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 장르의 목적성을 상실한 작품이 과연 성공한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DAYTONA의 고유한 정체성, 그리고 목적성은 이러한 섬뜩함에서 기인한다.


DAYTONA는 Pusha T의 디스코그래피 내에서 그의 인생사와 신념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친형인 Malice와 함께 힙합 그룹 Clipse로 활동하기 전후, 그는 약을 파는 장사꾼, 소위 '트래퍼' 로서 나날을 살아가며 온갖 위협과 고난을 버텨가며 하루하루를 고단히 살아가는 이들 중 하나였다. 빈민가에서 자라가며 생계를 위해 트래퍼로서 살아왔던 그의 과거는 Pusha T에게 있어서 다시는 겪고싶지 않은 끔찍했던 기억이자, 동시에 밑바닥에서부터 정상까지 올라온 그의 성공신화를 뒷바침하는 증거 그 자체이다. 그의 과거사가 대비되는 이러한 모습들은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난다. 트래퍼로서 살아가며 보고 들은 범죄 행위들과 끔찍한 모습들, 그리고 이러한 끔찍함 속에서 아티스트로서 성공을 거두게 된 것에 대한 프라이드. Pusha T는 자신의 과거를 여과없이 있는 그대로의 끔찍한 모습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구렁텅이에서부터 올라온 자신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이러한 모습은 DAYTONA에 접어들며 이전보다 훨씬 거칠고 공격적인 이미지로서 나타나게 된다. 그저 트랩 뮤직을 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트래퍼라 칭하며 힙합씬에서 활개를 치는 가짜 약팔이들, 그리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자신을 적으로 간주하며 끊임없이 위협을 가하는 이들에게 Pusha T는 자신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듣기에도 섬뜩하고 공포스러운 구절들을, Pusha T는 살기어린 랩과 함께 하나하나 내뱉는다. 거친 비트 위에서 이를 '씹어먹는' 듯한 Pusha T의 랩은 누가 듣던간에 진심어린 공포심을 느끼게 한다. 가짜배기 트래퍼들이던, 가소로운 적들이던 간에 Pusha T가 절대 만만한 인생을 살아온 이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협적인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뿐인가? Pusha T는 현재 힙합씬에 대한 회의감과 의문을 강한 어투로 전달한다. 기믹 래퍼들이 진짜로 대우받는 현실, 실력없는 래퍼들이 다수의 팬층에 의해 올려치기 당하고 힙합 OG들이 퇴물 취급을 당하며 무시받는 모습. 이러한 현실에 대해 Pusha T는 현재의 힙합씬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며 강도높은 비판을 이어간다. 언더그라운드에서 OG로서 살아가던 그의 비판에는 뼈가 있고, 한마디한마디가 무겁게 다가온다.


다만, DAYTONA가 이러한 노골적인 메시지와 신념이 드러나는 것 만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DAYTONA에서 Pusha T의 메시지가 한층 더 강하게 드러나는 데에는 Kanye West의 프로덕션이 큰 역할을 했다. The Life Of Pablo 투어 때의 조현병 증상 이후, 정신병원에서 지내다 퇴원 후 치유 목적으로 진행된 와이오밍 프로젝트는 소위 '올드 칸예' 이후로 Kanye West의 감각적인 프로덕션이 그 정점에 도달한 시기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시기에 작업된 Kid Cudi와의 합작 앨범 KIDS SEE GHOSTS, Nas와의 합작 앨범 Nasir, 그리고 Kanye West의 정규 8집이자 그의 조현병과 개인적인 감정에 대해 가장 솔직한 생각을 전달한 Ye에서는 샘플링을 통한 독특한 프로덕션과 사운드가 잘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와이오밍 프로젝트 내에서 가장 어두운 테마를 지닌 DAYTONA에서 거칠고 둔탁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조각조각 찢어져 원래 형태를 알 수 없는 오디오 샘플들, 감미롭기 보다는 고통의 목소리를 노래하는 듯한 보컬, 그리고 듣는 이의 고막을 때리는 둔탁한 드럼 비트까지. DAYTONA의 사운드는 상당히 불친절하고 거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Pusha T의 메시지와 그의 인생사를 대변하는 장치로서 작품 내에서 작용한다. 탁하면서도 거친 느낌을 주는 사운드는 Pusha T가 걸어온 길, 즉 길거리 트래퍼로서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살아간 그의 인생을 청각적으로 형상화한다. Hard Piano의 차가운 피아노 소리는 험한 인생을 살아온 Pusha T에게 있어서 피아노라는 악기가 결코 감미로운 선율을 낼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내고, 그 피아노 샘플 위에서 둔탁하게 울려퍼지는 비트는 피아노 소리와 한데 뒤섞이며 기존의 형식적인 틀과는 전혀다른 특징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Come Back Baby에서의 찢어지는 듯한 인트로 샘플은 듣는 이들의 귀를 시끄럽게 울리고, 떠나간 애인을 되찾고자 구슬프게 노래하는 보컬 샘플은 약에 중독되어 끊임없는 쾌락만을 쫓는 마약 중독자들의 기괴한 절규로 변모한다. What Would Meek Do? 에서의 괴상한 사운드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이유모를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Infrared의 공허한 드럼 비트와 사운드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듯한 허무함을 자아낸다.


이러한 사운드들은 Pusha T의 서사와 한데 융합되며, 가사를 읽는 것 뿐만 아니라 음악을 감상하는 것 만으로도 그의 인생사와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거칠고 둔탁한 프로덕션은 험난한 삶을 살아온 Pusha T가 전하는 이야기와 그대로 상응하며 일체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Pusha T의 랩이 곧 사운드가 되고, 사운드가 곧 Pusha T의 이야기로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DAYTONA가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이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 같다. DAYTONA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가볍게 흘리기엔 너무나도 무겁고, 사운드 또한 편안하게 듣기에는 너무 둔탁하고 거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DAYTONA가 실패한 작품이냐고 물어본다면, 이것 또한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DAYTONA라는 작품을 통해 드러난 Pusha T라는 아티스트의 고통스러운 삶과 그가 쟁취한 프라이드, 그리고 Pusha T가 트래퍼로서 힙합씬에 던진 날카로운 비판의 메시지는 있는 그대로 전달되었고, Kanye West의 감각적인 프로덕션이 이러한 메시지와 한데 뒤섞이며 작품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결코 과대평가 하는 것이 아니다. DAYTONA는 Pusha T라는 아티스트의 최고의 걸작이자, 2010년대 최고의 힙합 앨범들 중 하나로 영원히 기억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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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4
  • 9시간 전

    글 잘 읽었습니당

    중간에 문단 하나 나누고, 앨범/트랙 표기만 따로 정하셔서 한다면 더 가독성 좋은 글이 될 것 같아요!!!

  • 9시간 전
    @공ZA

    피드백 감사합니다

    항상 글을 잘 못써서 고민이었는데 잘 읽어주셨다니 다행이네요ㅠㅜ

  • 9시간 전
    @노는아이카르티

    DAYTONA에 대한 인상이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글이라서 더 술술 읽히는 것 같아요 ㅎㅎ

  • 9시간 전
    @공ZA
  • 8시간 전

  • 8시간 전
    @릴해린

    샌즈

  • 8시간 전

    DAYTONA를 듣다 보면 미니멀하면서도 잠재력이 넘쳐나는 프로듀싱에 감탄하면서도 플레이어의 무결점에 가까운 폭력적인 퍼포먼스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는 것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가끔 이 앨범의 성공을 따질 때 프로듀서 진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플레이어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고민하곤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의미 없는 잡생각이었네요. 훌륭한 프로듀싱과 플레이어의 퍼포먼스가 서로를 빛내며 이 앨범을 최고로 만든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이 참 '힙합' 다워서 좋네요.

     

    전, 이 앨범을 들으면서 사운드 위주로 들었던 것 같은데 위 리뷰를 읽어보니 앨범 속 메시지에 집중해 한 번 더 들어봐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1 8시간 전
    @NatyelinC

    저도 데이토나의 미니멀한 프로덕션과 푸샤티의 퍼포먼스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와이오밍 세션 때 작품들 중 가장 좋아하기도 하구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8시간 전

    벌써부터 강적이..

  • 8시간 전
    @카티야앨범내

    좃밥임ㅠㅠ

  • 후보에 넣어드리도록..

  • 8시간 전
    @돈없는길치

    이거진짜에요???

  • @노는아이카르티

    사실 글만 올리면 다 후보긴혀

  • 7시간 전
    @돈없는길치
  • 7시간 전

    글 잘 읽었습니다

  • 7시간 전
    @에미넴앨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7시간 전

    오 뭐야 이번꺼 존나 잘 썻네

  • 7시간 전
    @명둥이입니다

    데이토나는 두번째 리뷴데 처음쓴거보다 이번에 쓴게 더 마음에듬

  • 6시간 전
    @노는아이카르티

    훨씬 깔끔해지고 글도 술술 읽히네요

    일단 가독성 좋은 것 부터가 ㅆㅅㅌㅊ

  • 6시간 전
    @명둥이입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이번엔 구상 시간을 좀 더 길게잡아서 그런걸수도

  • 뭐야 미친

  • 5시간 전
    @DJ브라키오사우르스

    미친 뭐야

  • 4시간 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번에 쓰신 글 보다 더 재밌게 읽었네요

    벌써 우승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 4시간 전
    @FINNIT

    재밌었다니 다행이네요

    우승감은 절대 아닙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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