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한 작품이라는 것은 알겠다. 버밍햄 출신의 언더그라운드 래퍼 핑크 시푸(Pink Siffu)의 3번째 솔로 프로젝트, <BLACK'!ANTIQUE>는 지금껏 그가 보여준 모든 음악들이 그 질서 따위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이 거대하게 뭉쳐져 있다. 블랙 아메리카를 향한 그의 편집증적인 고백들과 <NEGRO>의 질주하는 랩-펑크, <GUMBO>와 <Leather Blvd.>의 몽환적인 소울 음악, 그리고 최근 HiTech와 손을 잡고 제작된 남부 트랩 뱅어들까지. 77분이라는 기나긴 러닝타임 속에서, 핑크 시푸 본인의 그득그득한 욕심으로 뒤엉킨 이 음악들은 의외로 나름의 응집력과 일관성을 유지하며 운영된다.
사실, <BLACK'!ANTIQUE>와 같은 음반들의 퀄리티가 끝까지 유지되기란 어려운 일일 테다. 이 정도로 방대한 볼륨의, 나아가 자신의 모든 역량을 한데 쏟아부은 작품들은 되려 러닝타임이 길어질수록 집중력을 잃기 쉽게 되고, 결국 흐릿한 인상만을 남긴 채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BLACK'!ANTIQUE> 역시 전반부는 흥미롭고 맹렬하게 진행된다. 인트로 트랙 "BLACK'!ANTIQUE'!"에서 우리는 거친 노이즈와 비정형적인 텍스처로 시작되며, 이후 날카로운 인더스트리얼 비트 위에서 핑크 시푸의 날선 래핑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등장하는 "ALIVE & DIRECT’!", "1:1[FKDUP.BEZEL]"와 같은 트랙들에서도 그의 포효는 다채롭게 왜곡된 비트와 혼합되며, 본인의 재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에 이른다.
<BLACK'!ANTIQUE>는 "SCREW4LIFE'! RIPJALEN'!"이후로 점차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핑크 시푸는 보사노바, 클라우드 랩, 어두운 트랩을 비롯한 다채로운 스타일을 전환적으로 배치시키며, 전형적인 핑크 시푸의 스타일인 몽환적이고 추상적인 스타일의 음악이 앨범의 주된 무드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BLACK'!ANTIQUE>는 그 순간 본연의 힘을 모두 잃게 된다.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곡들의 길이는 한없이 짧아지며, 사운드도 단순해지며 고요해진다. 핑크 시푸는 의도적으로 앨범의 텍스처와 밀도를 조절하며 긴 러닝타임을 다채롭게 구성시켜보고자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본작의 후반부는 전반부에 비해 명확한 방향성을 잃은 채 흘러간다.
결과적으로 <BLACK'!ANTIQUE>는 핑크 시푸가 지금껏 탐구해온 음악들을 총망라한 작품이지만, 그 모든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엮이지 못하고 흩어져 버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앨범의 전반부는 이를 가장 이상적인 방식으로 구현해 내었다. 여러 장르들이 혼란스럽게 융합되며 강렬한 추진력과 함께 전개되고, 그 안에서 수많은 사운드들이 핑크 시푸의 외침과 함께 거칠고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러한 긴장감은 점차 희미해지며, 균형을 이루던 음악들이 끝내 뿔뿔이 흩어지며 흐릿한 잔상만을 남긴다는 것이다. <BLACK'!ANTIQUE>를 핑크 시푸의 커리어의 변곡점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칭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본작은 그가 가진 음악적 야망과 한계를 모두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제대로 결실을 맺지는 못했을지언정, 본작을 통해 이 독창적인 래퍼의 순간적인 충동이 이제 신뢰할만하다는 사실이 한층 더 분명해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On w/HOM -> https://drive.google.com/file/d/1lv7Ke2wvVGfxZbPGHr2zJVWLVahTgYdJ/view
스크랩해두고 내일 듣고 읽어야겠다
초반부에는 빡세게 달리다가 후반부 가서는 늘 하던 거 했다는 게 조금 아쉽긴 했는데 전 그래도 되게 좋게 들었음.
시푸 감성 트랙이 취저기도 하고…암튼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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