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EGMAFIA - Veteran
펑크는 죽었다. 그러나 이번엔 장례식이 아니라 메모리 누수다. 그 죽음은 전송되지 않는다. 대신 Veteran은 그 오류 알림 자체를 앨범의 포맷으로 채택한다. JPEGMAFIA, 혹은 알 수 없는 언어체계로 구현된 Barrington DeVaughn Hendricks는 이 파열음을 수신하지 않는다. 그는 그 파열음 안에서 출현한다. 그러므로 이 앨범은 트랙 리스트를 갖춘 음반이 아니다. 그것은 부팅되지 않는 운영체제의 부검 보고서이며, 자기 자신을 역재생하는 검열 불가의 신경망이다. 우리는 지금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내부 장기에 삽입된 RFID 칩으로 무언가를 받고 있다.
그는 래퍼가 아니다. 목소리는 있지만 화자는 없다. 그것은 전기신호가 잘못 감긴 공진, 혹은 자신의 프로토콜을 스스로 훼손해가며 작동하는 루프다. 플로우는 기각되고, 라임은 폐기되며, 말은 터지기 직전의 형상으로만 존재한다. 가사는 이해되지 않는다. 그것은 의미에 도달하지 못한 발화의 화석, 혹은 중단된 프로세스가 남긴 캐시 파편에 가깝다. Baby I’m Bleeding의 훅은 문장이 아니라 구호이며, Thug Tears는 감정이 아니라 메아리다. 정확히 말해, 여긴 감정이 아니라 감정이 시뮬레이션되다가 멈춘 장소다.
그가 사용하는 비트는 소리라기보다 진입점이다. 하나의 비트는 하나의 코드 파편이고, 하나의 코드 파편은 하나의 기억 오류이며, 그 기억 오류는 다시 인종과 폭력, 검열과 욕망의 역사적 압축파일로서 작동한다. 그것은 압축되기 이전의 서사도 없고, 압축 해제 이후의 완결도 없다. 사운드는 애초에 전개되지 않고, 그냥 어디선가 추락해 있다.
Veteran은 미학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청취자 내부에 잠입하는 루트킷이며, 힙합이라는 거대한 인터페이스에 대한 비인가 접근 시도다. JPEGMAFIA는 공격하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존재 자체가 공격처럼 작동하도록 설계된 인물이다. 검열을 피하지 않는다. 그는 검열이라는 구조 안에서, 그 구조가 용납할 수 없는 발성만을 선택적으로 출력한다. 이는 곧 힙합의 맥락 위에서 이루어진 일종의 정밀 파괴 작전이다.
이 앨범은 '무슨 말을 했는가'를 질문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말이 생성되기 이전의 세계, 혹은 말이 삭제된 이후의 세계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의미'는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잔류한다. 그것은 완성되지 않고, 가끔 노이즈와 함께 나타나고, 때로 재부팅과 함께 지워진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출몰이야말로 이 앨범이 유일하게 허용하는 감각이다. Veteran은 완곡 어법이 아니라 백색 소음 속의 저주에 가까운 무언가로 남는다.
결국 Veteran은 청취 경험이 아니라 기억 오류의 체험이며, 앨범이라기보다는 자기파괴를 통해 형성된 일종의 탈출 루트다. 여기는 그 어떤 지점에서도 '해석'에 도달할 수 없다. 오직 잔상, 메아리, 격렬한 시퀀스의 반복,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없는 감각의 깊이만이 남는다. JPEGMAFIA는 이곳에서 말을 하려 한 적조차 없었다. 그는 다만 존재했고, 그 존재가 하나의 음파처럼 발신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다시, 펑크는 죽었다. 그러나 이번엔 관 속에서도 잠들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가 그 관을 열기 전부터 이미 여기 있었다.
사운드가 도중에 전달되지 못하고 추락했다는 표현이 공감 되네요
음악이 전개되기 보단 파편적이란 것도 매우 동의하구요
그러다보니 음악으로서의 기대보단 그 의의만 살필 수 있지, 이걸 좋아하고 즐기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전 하나의 트롤링이라 느껴지기도 합니다
페기는 본작에서 듣는 이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말이 되지 않는 가사, 왜곡된 샘플, 고주파 노이즈 같은 요소들은 기본적인 청취의 쾌락을 전면적으로 파괴하잖아요? 이건 그냥 실험정신이 아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트롤링, 그러니까 듣는 이의 태도 그 자체에 대한 공격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거죠. 댓글 감사드립니다.
전 즐겨욤
귀를 긁는 듯한 질감에서 오는 쾌감이 분명히 있음
Veteran은 마치 콜라주 회화처럼 다양한 샘플을 깨고 붙여서 사운드를 설계했기 때문에, 음악을 듣는 경험 자체가 일종의 소리 실험 혹은 예술 감상처럼 느껴지게 되는것 같습니다 이런 이질감이 오히려 저한텐 쾌감으로 다가왔어요.
조만간 들으려고 했는데 참고가 될 거 같습니다. 인상적인 표현이 많네요.
질읽었어요사랑해요
왜 나가셨지
먼가 읽을수록 어휘력이 상승하는 느낌입니다
원관념을 이리저리 비틀어 표현하시는게 능수능란하네요
진짜 부러운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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