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소년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94년은 나의 탄생으로부터 몇 년 전이고 나는 뉴욕이 아닌 한국의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이 앨범이 가지는 절대적인 위상은 납득보다는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왜 90년대 골든 에라의 월계관이 19살짜리 천재에게 돌아갔는가.
이것이 첫번째 질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두어시간의 최저임금 노동만 있다면 하이파이 음질의 음악들을 들을 수 있다. 이제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라 '들으면서'로 변했다. 특정한 장소와 상황을 제외한다면 음악은 수용자들의 배경으로 변했다. 이런 시대에 나스의 진지함음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이건이 두번째이다.
왜 doggystyle이나 enter the wu-tang, ready to die는 일매틱이 되지 못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내 답은 이렇다.
'나도 몰라, 나스는 천재였고 그런 문제는 시대의 선택이야'
하지만 10개의 트랙으로 이루어진 약 40분간의 시간을 듣다보면 이런 대답은 그저 내 게으름의 소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여기서 나스의 랩스킬은 경이롭다. 나스의 랩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메시의 드리블이나 스테판 커리의 3점슛, 보르헤스의 상상력, 챈들러의 묘사력, 오슨 웰즈의 창조력, 한강의 문장력에 대해 말하는 일이다. 단지 찬사를 보내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19세 나스의 랩스킬은 플로우라는 용어보다 더 플로우를 가지고 있으며 정교한 라임배치는 라킴, 비기 이후의 작사법에서 나스의 영향을 짐작하게 한다.
예컨데 마디 끝에다가 라임을 배치하던 구식의 방법은 라킴의 다음절과 문장 안에 라임을 삽입하는 작법으로 거의 사라졌다. 나스는 이를 개화시키고 완성시키는데 그는 어떻게 생각할 지는 몰라도 우리에게는 KDB의 패스나, 커리의 슛만큼이나 쉬워보인다. 라임의 정교한 이용과 마디를 미묘하게 비틀어내는 절묘한 리듬감과 플로우는 미려하다.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들이 골방에 나스를 던진다.최고의 비트로 그들이 스크린을 서주자 나스는 마치 르브론 제임스마냥 비트와 당시의 힙합을 박살냈다. 이는 환상의 픽앤롤이였고 불변의 진리를 후대들에게 전달한다.
'최고의 앨범을 만드는 법? 유행이든 뭐든 엿 먹으라고 해. 너가 구할 수 있는 최고의 비트를 얻고 너가 뱉을 수 있는 최고의 라임을 얹어.' 참 쉽지 않은가?
온갖 프로듀서들이 달라붙어 주조해낸 비트들은 샘플링과 컷의 미학을 선보이며 청자들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나스는 그 창공을 환상적으로 비행한다. 자 이게 첫번째 질문의 대답들 중 하나다. 나스는 좋은 힙합의 표준을 제시하고 그동안의 방법론을 총망라해서 힙합을 정의했다. 물론 다른 래퍼들도 그랬다. 하지만 나스가 가장 잘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이로는 충분치 않다. 나스의 가사는 특별하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 나스 가사 해석본을 보았을 때 실망했었다. 대중음악곡에 푸코나 들뢰즈의 인용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다. 나스의 가사들은 무언가 밥 딜런과 수프얀 스티븐스의 시적인 함축성의 묘미가 없었다. 라임을 자연스럽게 심어 가사를 전개하는 나스의 능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의 가사들은 나에게 명반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고찰이 없어보였다. 자고로 걸작이라고 하면 그 매체형식의 존재이유를 증명(쿤데라)하거나 삶에 있어서 실존을 경험하고 살아있게 만들어야(내가 한 말이다)한다고 믿었던 나로서는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이것이 나스가 특별한 이유다. 스티븐 핑커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것처럼 쓰라 라는 조언을 그의 책에 남겼다. 나스는 그렇게 한다. 그는 보여준다. 믿기지 않는 묘사력과 흡입력으로 그가 경험한 거리를 설명하지 않고 들리게 한다.
N.Y.state of mind 에서 이 구절을 보자
Now, bullet holes left in my peepholes 틈구멍에 남아있는 총구멍이라는 가사는 단번에 게토의 삶을 전달한다. 잠이 죽음의 사촌이라는 비유는 셰익스피어의 잠과 죽음을 비교한 위대한 구절들(늘 셰익스피어다 그렇지 않은가?)만큼 아름답고 깊지는 않지만 효과적으로 게토의 삶을 소묘한다.
여기서 비기와 나스의 차이가 있다. 비기는 우리의 언어로 말한다. 예컨데 비기의 천재성은 마치 고전적 연기법에 정통한 배우처럼 상황에 가장 적절하고 납득가능한 랩을 하는 것에 있다.
나스는 메소드 배우마냥 자유롭게 활보하고 본인만의 시선을 견지한다. 하지만 여기서 나스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청자들이 마치 자기처럼 보게 만든다. 나스가 거장인 이유는 그가 사람들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한 게 아니라 그들의 시선을 본인의 것에 합치시키려 했고 그들의 눈높이를 올리려한 것에 있다. 그리고 그는 성공했다. 이것이 두번째 답변이다.
두번째 질문이다. 과연 음악을 집중해서 듣지 않는 시대에 나스의 가사들이 힘이 있을까. 이는 2012년 미친 도시에서 자란 착한 소년이 증명한다.
여전히 힙합이라는 양식을, 랩만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있는 한 사람들은 가사집을 보고 슬랭을 찾고 라임을 확인하고 일매틱을 생각할 것이다. 나는 뉴욕 여행 지하철서 나스의 노래들을 들었고 마치 내가 나스의 동료가 된 듯 했다. 일매틱은 그런 앨범이다. 영원히.
간단이라뇨 개추
굳
개추
와 글이 감탄이 절로 나오는데요
혹시 Ka의 The Thief Next to Jesus라는 앨범도 듣고 후기 써주실 수 있을까요?? 너무 궁금해요
감사합니다. 한 번 들어볼게요!!
좋네요
간?단 리뷰 잘봤습니다
님 글은 수준급이네요 언제나
추천이나 받아
벽 느껴진다..
개잘쓰셨다 ㄷㄷ
개추
마지막 너무 좋다
개추
와우 꾸준히 써주시면 좋을 듯
개강이어서 힘들겠지만 꾸준히 해보겠습니다..
와 진짜 쩔어요
와ㅏㅏ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