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6
East Coast Hip Hop, New York Drill, Jersey Club, Chicago Drill
아이스 스파이스(Ice Spice)가 리스너들의 주목을 처음 받게 되었던 때는 2021년, 바로 Drill 장르의 패권이 브루클린에서 브롱스로 넘어가던 때였다. 브롱스 출신의 그녀는 프로듀서 RIOT과 손을 잡고, 당시 유행한 Sample Drill 음악 스타일을 착안하여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뱅어 트랙들을 만들어냈다. Zedd의 "Clarity"를 샘플링한 "No Clarity"와 Martin Garrix의 "In The Name Of Love"를 가져온 "Name of Love". 단 두 곡만으로 그녀는 Sample Drill 씬에서 가장 주목받는 유망주로 거듭났다.
그러나 2022년 8월, 그녀는 전혀 다른 곳으로 향로를 틀었다. 그녀는 EDM 클래식들을 샘플링한 Sample Drill이 아닌, 온전히 자신만의 것인 Drill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발매된 첫 싱글 "Munch (Feelin' U)"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말 그대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TikTok에서 트렌드가 되고, 빌보드 싱글 차트에 이름을 올렸으며, 이후 발매한 "In Ha Mood"등의 트랙들 역시 계속해서 히트를 치며 음악 업계 최고의 신예로 떠올랐다. PinkPantheress와 Nicki Minaj, 심지어는 Taylor Swift까지 그녀를 찾기 시작했고, 유명 기업들의 러브콜이 계속되었으며, 영화 바비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했으며, 그래미 시상식에 4번이나 노미네이션 되기까지. 그녀는 무서운 속도로 계속해서 성장을 이룩해왔고, Savage 한 이미지와 여린 10대 소녀의 마음을 융합한 친근한 캐릭터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아이스 스파이스의 데뷔 EP이자 2023년 최고의 화제작 <Like..?>에서 그녀가 순진하지만 또 치명적인 주인공의 역할을 했다면, 그녀의 첫 정규 앨범 <Y2K!>에선 완전히 거친 모습들을 위주로 보여준다. 그녀는 "Boy's a liar pt. 2"의 외줄타기 하는 로맨틱한 여주인공이 되지 않았고, "In Ha Mood"처럼 부드러운 그루브로 흘러가는 트랙들 역시 선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역동적이고 강력한 래핑과 보컬을 23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시종일관 눌러 넣는다. 그녀는 자신의 헤이터나 팬을 만족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저 자신의 음악과 Drill에만 관심이 있어 보일 뿐이다.
아이스 스파이스는 비교적 짧은 영역에서 자신의 역량을 자랑하지만, 그 퍼포먼스들이 결코 인상적이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Nicki Minaj의 영향을 받은 티가 팍팍 나는 "Phat Butt"에서 그녀는 환각적이고 불경스럽게 앨범의 포문을 열어젖히고, 무자비하게 리스너들의 목을 조르는 "Papa"에서 처음으로 레이지 스타일의 비트를 차용한 "Plenty Sun", 작은 악마가 되어 바람을 피운 것에 대해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Did It First", 처음부터 끝까지 인정사정 없이 기세로 몰아붙이는 "Gimme A Light"에 이르기까지 — 아이스 스파이스는 리스너들의 목덜미를 우악스럽게 잡아채 사정없이 자신만의 Drill 세계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Y2K!>에는 여전히 눈에 띄는 미숙함과 단점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본작의 가장 큰 아쉬운 점은 바로 아이스 스파이스의 가사에 있다. "난 단순한 걸 좋아해", 이런 스탠스에 맞게 그녀는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쭉 단순하고 이해 쉬운 가사들을 써왔다. 그러나 그녀의 커리어에 있어서 본격적인 새 지평을 열게 될 야망 넘치는 작품 <Y2K!>에서 쓰인 가사들은 너무 진부하고 매력이 덜 느껴진다. 싱글 발매 당시부터 큰 논란과 화제를 불러 모았던 "Think U The Shit (Fart)"의 "Think you the shit, bitch, you not even the fart"라는 펀치라인은 유치원생들로부터 인기를 끌 수야 있겠지만, 결국엔 <Y2K!>라는 작품의 몰입도를 해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앨범에 참여한 게스트들은 영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Oh Shhh..."에 참여한 Travis Scott은 곡에 대한 이해도가 충분치 않다 느껴질 정도로 지나치게 저돌적인 벌스를 보여주었다. 곡의 비트나 분위기와 전혀 맞물리지 못하는, 다소 나긋나긋하다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어색하고 인상적이지 못하다. 4번 트랙 "Bitch I'm Packin'"엔 Gunna가 힘을 보탰는데.. 굳이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있나. <One of Wun>과 <DS4EVER>에서 보여준 래핑들과 동일한, 그저 '거너가 거너했다' 식의 벌스를 확인할 수 있다. 앨범의 최고 인기곡, "Did It First"의 Central Cee는 아이스 스파이스에 비해 조금은 약하다고도 느껴지지만, 앞서 언급한 두 아티스트보단 곡을 더 잘 이해하고 더욱 준수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Taylor의 "Karma" 리믹스 버전에 참여하고, PinkPantheress와 함께 빌보드 3위에 오르며, 기업들과 대중들의 무수한 러브콜을 받는 아이스 스파이스는 첫 정규 앨범에서 음악적으로 타협을 하고, 대중들의 눈치를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틀에 박히려 하지 않았고, 무수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리를 담은 작품을 만들어내었다. <Y2k!>는 빠르고, 다채로우며, 또 몹시 강렬하다. 그녀에게 두려움이란 없으며, 또 그녀를 막을 이 또한 존채치 않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2KC-8IULfqY
평점: 8.1 / 10
(본 리뷰는 w/HOM #14호에서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다만 전 아이스 스파이스가 대담하단 감상 보다는
여전히 데뷔 초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신선하지도 않았고, 첫 정규 치곤 이렇다 할 반전도 없었구요.
그리고 대중을 의식하지 않았다기엔, 앨범 대부분의 곡이 기존 히트 싱글들의
형태를 그대로 따라갔고, 반응도 예나 제나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생각합니다.
그래도 다 쌍욕 박을 때 이런 흥미로운 관점에서 앨범을 다시 보게 된건 좋은 경험이네요.
쌍욕 박는 사람들 대부분 다 앨범도 제대로 안 들어보고 이미지로 평가했을 가능성이 농후하죠. ㅋㅋ
저도 실력과 포텐에 비해 아이스 스파이스가 확실히 저평가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앨범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성과를 보여줬던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이미지가 되는 데에 본인 몫도 컸으니까요. 리스크가 큰 컨셉인만큼 더 대단한 무언가를 보여줬야 하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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