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op 7>은 정말이지 느닷없이 발매되었다. 관용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프로모부터 발매까지 채 닷새가 걸리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글을 읽어내려가는 독자라면 이 대목에서 우리가 어떤 특이점들을 짚어낼 수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리틀 심즈(Little Simz)가 얼마나 상업적 성과에 연연치 않으며 또 얼마나 소극적(Introvert)인 여성 아티스트인지. 또 그녀가 자신의 예술적 가치와 발열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놓고자 하며 대중에게 어떻게 보이기 원하는지를. 돌아보면 리틀 심즈의 이러한, 일대 Frank Ocean스런 이디엄이야말로 그녀의 힙스터적 성향과 마인드셋을 잘 재량할 수 있는 지표였을 것이다. Yves Tumor만큼이나 거대한 자아를 부둥켜안고— 대중 앞에서는 언제나 소극적이며 대담치 못한 에고를 펼쳐내는 그녀의 모습은 달리 21세기 힙합의 Rick Wright라 부른다고 해도 큰 문제가 없었을지 모른다. 다만 일상과 셀러브리티에서의 소극적 모습이 꼭 예술의 발로로 직결되지는 않듯이, 심즈 또한 음악 이야기로 들어가자면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심즈가 소위 '쇠 맛 나는 익스페리멘탈'을 뱉어내는 것은 Harper Lee가 Trump 지지를 선언하는 것만큼이나 이질적인 광경이지만, 어쨌건 그녀는 이번 Ep 앨범을 통해 최초의 무채색 세계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앨범의 톤과 사운드가 금속성을 가진 것처럼 들리는 것은 SF스런 커버의 시각적 이유도 내포하나— 원론적으로는 그녀 음악 자체의 대담함이 작용한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인터넷 소통이 여전히 소심할 정도로 폐쇄적일지라도, 그 음악의 비약은 감소한 소통량을 반비례해 널뛰기할 만큼 대범해진 것이다.
실제로 앨범 내 그녀의 음악론은 자신의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도 상당히 위화감이 드는 종류의 물건이다. 당신이 심즈의 4집이나 5집을 들어봤다면, "Mood Swings"가 "Introvert", "Angel"과 몇 광년이나 떨어진 곳에 착점된 오프너 인트로덕션이라는 사실을 금새 깨닫을 수 있을 것이다. 조금만 귀를 귀울이면 청각의 입체감 자체를 파격적으로 확장시키는 에코와 공간감, 리듬 행렬의 바깥쪽에서부터 저돌적으로 몰아치는 전자음의 향연이 모두 그녀의 스타일 변화를 가리키고 있다. Danny Brown이나 Daft Punk의 음악에서 기대할 법한 사운드가 리틀 심즈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이제 예술의 시금석으로 변모한 힙합사 또 하나의 아이러니처럼 들리기도 한다. 다만 이 부분에서 필연적인 호오의 영역이 개입한다는 점 또한 무시하기 어려운 요소다. <Drop 7>에서 <Sometimes I Might Be Introvert>의 클래시컬한 익스페리멘탈 재즈 랩과 <NO THANK YOU>의 선연한 스타일리시를 기대한 청자라면 15분간의 실험적 드롭에 실망할 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어쩌면 —모든 아티스트의 급진적 변혁(<Whole Lotta Red>, <Yeezus>, <Testing>)이 그러하듯이— 이 작품 또한 아티스트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작품성을 재량하는데 대단히 치명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앨범이 될 지도 모르겠다. 본작을 선봉대로 내보낸 미지의 6번째 스튜디오 앨범 역시, 또 한 번의 반전이 계획되지 않는 한 비슷한 타석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앨범의 전반적 사운드는 토속적인 아프로리듬과 둔탁한 기계음으로 가득 혼재되어있고, 그에 따라 음악 내부의 보컬도 근작들에 비해 상당히 기계적으로 변모했다. 시적이며 스타일리시한 그루브는 어딘가로 내던져버린 채— 반복적으로 무감정한 라인을 뇌까리는 그녀의 스타일에는 좋던 나쁘던 간에 확실한 '위화감'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 그런 지점들만이 이 혼란스런 앨범의 실마리를 찾아나가는 방점이 될 것이다. 심즈가 15분의 러닝타임 전반에 걸쳐 공포하는 것이 확연한 위화감이라면, 이 앨범은 그녀의 여섯 번째 정규와 함께 개막되는 새 에라의 완충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근작들의 오케스트라스러운 화성은 단번에 딱딱한 무조로 전환되고, 음향의 흐름 속에서 찬란하게 뜀박질하던 래핑은 일순간 차디찬 기계음의 속으로 침전된다. 요점부터 말하자면, 심즈는 자신만의 <Testing>, 본인의 이데아가 서린 <Yeezus>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비록 "Women", "Protect My Energy"가 지닌 Inflo의 싱그러운 프로덕션이 Jakwob의 변증법적 "Torch", "Power" 리듬으로 전이되는 것을 관람하는 일은 유쾌하지 않지만, 그녀가 음악적 변태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 또한 그곳에 있다. 심즈의 변화무쌍한 모던 세계가 저물고, 공학적이며 기계적인 세계가 온다 해도— <Yeezus>의 Kanye가 여전히 Kanye이듯 <Drop 7>의 심즈 또한 여전히 심즈인 것이다.
앨범의 랩은 기계적이지만 심즈는 매력적인 발성만으로 이어폰 사이의 공간을 왜곡하고, 실제로 한정적인 플로우 내에서도 그녀의 랩은 본연의 균형미를 잊지 않는다. 그런 고고한 기품을 반추하고 있노라면 '리틀 심즈'가 가진 랩 세계가 얼마나 풍부한 신축성을 가지고 있는지 새삼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이 앨범의 보컬 전반이 좋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Mood Swings"나 "Torch"의 랩이 가진 유동성과 "I Ain't Feelin It"의 부자연스러운 흐름, "S.O.S"의 지루한 샘플 일변의 완성도적 격차가 차마 거부하기 힘들 정도로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이다. 물론 치밀하게 공학 서적을 탐닉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보는 것마냥, 이과적 앙상블을 시종일관 생성하는 심즈의 모습엔 확실히 어딘가 기묘한 구석이 있다. 하기야 "I Ain't Feelin It" 같이 보기 드물게 훌륭한 프로덕션에서 'They gon' have to give me more of your soul when I'm needin' it...' 같이 허술한 라인을 뱉는 것을 보면 심즈 스스로도 앨범 내 무언가 불안정한 기조를 포착했을지 모른다. 따라서 이 앨범은 MC와 DJ가 완벽한 합주를 이루는 콩쿠르보단 서로의 부자연스런 부분을 가위질하는 재정립기로 이해하는 편이 쉬울 것이다. 개척의 미숙이라기보단 연출의 퇴보로써, 영혼의 파트너 Inflo와 작별을 고하기엔 Jakwob의 프로덕션 일체가 다소 부족했던 것 또한 사실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근시안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전혀 없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Drop 7>을 통해 예견된 여섯 번째 앨범의 청신호를 실견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예상이 빗나가지 않는 한 Jakwob의 첨단기술적 프로덕션은 스튜디오 앨범에서도 계속될 것이고, 일련의 '위화감'이 신선함으로 발로될지, 이접적 방향성으로 전락할 것인지의 방향추는 오로지 그의 프로덕션 수완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라면 그 키의 방향추가 —적어도 <Drop 7>에서만큼은— 상당히 엉뚱한 방향으로 휘어졌다는 쪽에 무게를 더하겠다. 인트로덕션 "Mood Swings"와 "Torch"를 필두로 한 "Power" 같은 랩 트랙은 감칠맛 나지만 "Fever"의 라틴 억양은 당혹스럽고 "S.O.S"의 클러버는 다소 무안스럽다. 앨범 내에서 가장 MC와 DJ의 합이 잘 맞아떨이지는 곡이 "Far Away"의 얼터너티브 알앤비라는 데에서, 당최 우리는 심즈와 Jakwob 사이의 어떤 '힙합'적 협의점을 찾아낼 수 있는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음악이란 담론에 일개 협의점이란 없고— 심즈는 그저 Jakwob의 공학적인 무조를 자신의 새로운 세계에 음각했을 뿐이다. 만약 심즈의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 <Gray Area>, <Sometimes I Might Be Introvert>, <NO THANK YOU>와 비슷한 노선을 걷게된다면 일련의 수사들 역시 무의미해지겠지만, 그렇대도 위와 같은 사실 하나만큼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전술했던 수많은 불만과 기우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가지고 있는 속성은 유동적이고 모호한 요소인 것이다. 특히나 15분이라는, 하나의 앨범으로 평가하기도 무안한 볼륨의 작품을 바라볼 때면 더더욱이. 그럼에도 나는 이 글을 빌어 전언할 수 있다. 심즈의 음악은 그 어떤 변혁을 거치더라도 그녀의 인장이 짙게 묻어날 것이라고. 그러한 단언은 한 아티스트의 에고와 예술관 전체에 뿌리내린 기념비적 신념에 기인하지만, 난 심즈가 수많은 음악적 고투를 거치더라도 그 신념을 휘둘릴만 한 사람이 아니란 걸 확신한다. 물론 이 문장은 과하게 애상적이다. 어쩌면 내 의견은 음악보다 아티스트의 가치로 작품을 판단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음악사의 바다에서 심즈가 크나큰 파도가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Drop 7>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도 못했으며, 어떤 면에서는 Tyler, the Creator의 <Music Inspired by...>처럼 단발적 팬서비스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리틀 심즈'의 인장이 서려있기에 귀중하다. 간혹 아티스트를 뼛속 깊이 사랑하게 될 때마다 느끼는 사실이지만— 때때로 어떤 음악은 그 존재 자체로 충분하게 되는 것만 같다. 영국 힙합의 여왕, 소극적 라디에이터, 아워 리틀 심즈(Our Little Simz)의 음악을 들을 때면 그런 생각이 든다.
2024. 02. 16. Fri. Seoul / Lucinda Tomas B. Breaux.
2024. 02. 09.
14:52
Forever Living Originals
Jakwob
Mood Swings / Fever / Torch / S.O.S / I Ain't Feelin It / Power / Far Away
마침.
아직 안 들어봤는데 기존의 심즈 스타일과는 정말 큰 변화가 있는 듯 하네요 금속성 사운드와 심즈의 조합은 신선하고 매력적일 것 같습니다 들어봐야겠네요
신선하고 매력적이라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완성도와 볼륨의 무게는 조금 떨어지지만 충분히 들을 가치가 있는 작품이에요 ㅎㅎ
쓰리 투 원 대격변!!!
여기가 아닌가??
Far Away 이 트랙이 굉장히 좋음
앨범 내에서 가장 힙합스럽지 않은 곡이 가장 좋은 것도 아이러니하죠ㅋㅋㅋ 물론 그렇대도 Far Away는 정말 좋은 곡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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