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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3.

LucindatomasBBreaux2024.01.30 11:17조회 수 494추천수 10댓글 10

 1994 #3.

Organized Konfusion - <Stress: The Extinction Age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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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로아 먼치(Pharaoh Monch)가 가지고 있는 재능의 크기가 그 명성에 비해 과하게 크다는 사실은 세인의 공통된 의견이지만, 그 활동에 대한 호오는 시대별로 제법 갈린다. 간단히 이분법적으로 보자면 그의 랩을 사랑하는 이들과 하드코어 정신을 향유하는 이들은 솔로 활동 시절을, 앨범의 전반적 톤과 프로덕션을 따지는 이들은 프린스 포(Prince Po)와의 오가나이즈드 컨퓨전(Organized Konfusion) 시절을 사랑할 것이다. 시대의 명암을 휩쓸고 갔던 숱한 힙합 듀오들의 가장 큰 교집합이라면 많든 적든 실력 차로 인한 스포트라이트의 차별이 존재했다는 것인데, 끝내 먼치가 속한 OK도 이러한 법칙을 피해간 그룹으로 남게되지는 못했다. 다만 자신의 매끄러운 랩 실력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멤버와의 조화와 전반적 프로덕션에 집중한 먼치의 중층성이 있었기에 OK가 역사에 그 이름이라도 혁혁히 기록된 듀오가 된 것이 아닐까, 나는 가끔 생각한다.

 

 오가나이즈드 컨퓨전이 남긴 활기찬 세 장의 앨범 중 가장 애정하는 것은 2번째 프로젝트 <Stress: The Extinction Agenda>인데 그건 단순히 이 앨범이 1994년의 황금기를 수놓은 앨범 중 하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울 것이다. <Illmatic>과 <Ready To Die>가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1994년에서도, <Stress>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음습한 서정성이 그 연도를 몇 배는 가치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얼핏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기운이 서린 듯한 앨범 안에는 심오한 철학으로 뒤덮인 청년들의 의제가 있고, 시심에 뒤덮여 뻐기다가도 문득 현실을 깨닫는 허심탄회함이 있다. 아마 그런 것들이 앨범 특유의 활동성 이면에 혼재된 녹작지근함을 불러일으키는 원초적 맹아일 것이다. 나는 종종 골든에라의 랩스타들에 관한 서평을 읽곤 하는데, 'The Source지'가 남긴 <Stress> 논평이 그러한 내 단상을 잘 잡아내준 것으로 기억한다. "Organized Konfusion의 본질은 순수한 서정성에 가까워요. 그들은 정념적인 언어를 왜곡해 창작합니다." 과연 맞는 말이다. 

 

 물론 이 앨범의 음악은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가치를 부여하지 않아도 충분히 훌륭한 것들로 가득하다. 현실의 아젠다로써 놓인 어떠한 장애물도 뚫어버릴 기세로— 쏜살같이 랩을 내뱉는 먼치의 플로우가 그렇고, 그보다는 조금 유머러스한 프린스 포의 랩송이 그렇다. 이들의 랩 속에는 거의 순도 백 퍼센트의 활기가 저며있다. 고행을 통한 예술적 목적 성취나 상업적 이익을 위한 야망같은 것들이(그것도 그들의 힙합 씬 잔존을 위해서는 필수적이었던 야망같은 것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얼핏 단순해보이는 이들의 깊이를 다시 보게 하는 매개체다. 그들의 음악 속엔 혁신이 없지만 자유로운 기백이 있고, 압도적인 재량이 없지만 결점을 허용치 못하는 치밀함이 있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는 유실유득의 원리처럼, '세기의 명반'으로 남을 창의성과 발화점 같은 요소들은 눈을 씻고 봐도 없지만 당시 힙합 행렬의 최고점을 향하는 완성도가 앨범의 현주소를 위시한다. 그런 것들이 <Stress>를 정의하는 매력이지 싶다. 파로아 먼치는 강렬한 영혼을 쐐기 박듯이 표출할 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다소 투박했고, 프린스 포는 다소 활기차고 유순한 스타일이지만 스타성이 부족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이 서로의 결점을 예리하게 보완하는 때가 와서야 앨범의 완성도가 퍼즐 맞춰지듯 깔끔하게 조직된다. 이런 사실들이 포와 먼치가 주거니 받거니 이어나가는 랩들을 하나의 원숙한 운명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 아닐까.

 

 그런만큼 돋보이는 것은 혁신성이나 프로덕션보다는 랩이다. 파로아와 프린스는 자신들의 혼 내부에 침잠된 거의 모든 리듬감과 운율을 동원해 <Stress>의 호기로운 기운을 랩으로 수놓았다. 일순간 Nas를 연상시키는, 재주넘기를 하는 듯한 플로우와 치밀한 댄스마냥 기술적인 라이밍, 힙합의 초연이 가득한 목소리까지— <Stress>는 그야말로 정석적인 랩 테크 뮤직이라 부를 수 있는 물건이다. 말하자면 랩 방법론의 진열대 같다. 포와 먼치의 숨결과 태도에는 여유와 나이스함이 서려있지만 그 래핑에는 은근한 과시성이 물 오른 과일처럼 풋풋하게 베어있는 것이다. 촌철살인으로 뒤덮인 스토리텔링, 참신한 라임의 활용 등 <Stress>의 랩엔 이정표스러운 구석이 많지만 이 앨범의 랩이 맘에 드는 것도 정확히 그 부분에 있다. 스킬적으로도 풍부하지만 그 내면에 펄펄 끓는 혈맥이 있고, 열정에 넘치게 뿜어내는 시대현실의 해상력이 있다. 아마 그런 것들이 포와 먼치가 갖는 젊음의 무기이자 언어학의 비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들의 랩 테크닉에 스민 재주가 단순한 취향의 영역을 넘어 절대적 완성도를 지닌 하나의 명제로 넘어갈 때— 우리는 그들 안에 담긴 청렬한 에고를 보게 된다. 그 에고들은 예술을 향유하고 시대를 고뇌했던 우리의 청년기와 놀랍도록 닮아있는 것들이다. 아주 닮아있다.

 

 한편 앨범의 프로덕션 또한 랩의 아성에 미치지 못할지언정 훌륭한 구석이 많다. 파로아와 프린스, 단 두 명의 손에서 한 땀 한 땀 제조된 전반적 재즈 텍스처의 랩 비트들은 앨범의 풍취를 더욱 다채롭고 색감적으로 만들어낸다. 찰스 밍거스의 솔로와 허비 핸콕의 키보드 스윙이 담긴 'Stress'와 'The Extinction Agenda', 패트리스 러센의 오프너와 캐넌볼의 전위적 화성이 착종된 'Let's Organize', 'Maintain' 모두 마찬가지로 이들은 앨범이 내포한 익스페리멘탈 정신과 재지함을 동시에 발로시켜냈다. 정석적인 힙합 앨범임에도 변칙스럽고 실험적이며, 래핑이 담긴 그루브임에도 각 트랙들이 결연히 스윙하는 앨범의 톤앤매너는 모두 이러한 프로덕션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큰 기여를 해낸 것은 누가 뭐래도 포였다. 자신의 솔로 앨범에서 단 한 번도 씬에 유효타를 날리지 못한 포는— 먼치의 인력권 안에서 꾸준히 자신이 가진 재능의 고점을 피력한다. 먼치가 지극히 자신스러운 하이톤으로 최고의 벌스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는 동안, '단단한' 펑크 드럼으로 치밀하게 비트를 찍는 그의 모습에는 힙합씬에 영원한 존재로 남을만한 재능이 있고 기백이 있었다. Rakim의 아성에도 씬에 이름을 각인시킨 Eric B와, André 3000의 압도적 사유력에도 입지를 지킨 Big Boi처럼, OK의 프린스 포 역시 스포트라이트의 차별은 받았을지언정 자신의 역량은 톡톡히 선보인 셈이다. 

 

 그리고 그런 점들이 'Let's Organize'와 같은 곡들에 이르러 제각기 장기를 발휘한다. <Stress: The Extinction Agenda>에는 손에 꼽을만큼 훌륭한 곡이 많지만 그래도 단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 누구라도 이 곡을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Q-Tip의 싱그러운 목소리와 O.C의 초연 가득한 래핑, 러센의 우아하고 고풍스런 재즈 합이 맞아떨어질 때 앨범은 상상할 수 있는 '힙합적' 표현력의 내핵까지 질주한다. 그 광경을 조금이라도 보고 있노라면, 세 명의 솜씨좋은 래퍼들이 여유롭게 랩하는 모습이 얼마나 따스하고 정열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특히나 트랙 프로듀서로 참여한 프린스 포의, '저물어가는 석양 같은' 프로덕션이 인상적이다. 보조 프로듀서 Buckwild나 Rockwilder가 직조한 차갑고 날카로운 분위기를 뒤엎고, 앨범의 톤을 따뜻하게 바꿔놓는 포의 샘플 차핑에서는 짧지만 견고한 경이마저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뜨겁게 저물어가는 주황빛 석양을 등지고서, 브루클린 다리 아래 모인 네 예술가들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포의 손길이 닿은 프로덕션을 청취하고, 파로아와 Q-Tip, O.C가 내뱉는 랩을 들을 때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2024. 01. 30. Tue. Seoul / Lucinda Tomas B. Brea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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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08. 16.

45:34

Hollywood BASIC / Elektra Records 

Organized Konfusion, Buckwild, Rockwilder 

 

 파로아 먼치와 프린스 포의 랩 그룹 오가나이즈드 컨퓨전의 두 번째 앨범입니다. 셀프타이틀의 데뷔작과 마찬가지로 이 앨범 또한 프린스 포가 대부분의 비트메이킹에서, 파로아 먼치가 전방위적인 랩 측면에서 장기를 발휘했습니다. 이들은 이후 3집을 발매했지만, 자금과 홍보 미흡으로 인해 결국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파로아는 <Internal Affairs>을 발매하며 다시 한 번 자신을 입증했으나, 프린스 포는 힙합사에서 더 이상의 유의미한 족적을 남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본문에서는 파로아가 포보다 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고 서술했고, 실제로 그러했지만 실상은 OK라는 그룹 자체의 인지도가 거의 미비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AZ 등과 함께, 그 재능에 비해 처참한 수준의 인지도를 자랑하는 래퍼들을 언급할 때 OK의 이름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오늘은 1994년의 숨겨진 명반, <Stress: The Extinction Agenda>를 들으며 오전을 끝내는 건 어떨까요? 장담하는데 오늘 하루 중 최고의 경험이 될 것이라 자신합니다. 

 

마침.


1994 #4. 

 

Scarface-1992-a-billboard-1548.jpg

2024. 01. 31.

신고
댓글 10
  • 1.30 11:45

    좋은글 잘봤습니다 ! 글을 잘 쓰시네요 정말 ㅎㅎ 1994년에 일매틱 레디투다이에 묻힌 주옥같은 명반들이 넘 많은거같습니다

  • 1.30 12:44
    @nasty2pac

    감사합니다! 묻힌 게 되게 많죠ㅠㅠ 찾아보면 진짜 괜찮은 앨범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 1.30 11:58

    너무 잘 읽었어요. 파로아 먼치 랩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공감하면서 읽었네요. 다음은 스카페이스라니 너무 행복합니다...

  • 1.30 12:43
    @앞날

    스카페이스도 허슬해보겠습니다! 감사해요 ㅎㅎ

  • 1.30 12:02

    1994년에 미친 앨범 두개가 나와서 그런가 묻힌 앨범이 꽤 있는것 같네요

  • 1.30 12:43
    @JPEG

    굉장히 많습니다ㅋㅋㅋ

  • 1 1.30 12:02
  • 1.30 15:39

    OK는 담아만 두고 아직 안 들어봤는데, 글을 보니 제가 가지고 있던 OK에 대한 예측? 이미지? 이상으로 제 취향의 선과 가까울 것 같은 느낌이네요 어서 들어보고 싶어지네요ㅋㅋㅋ

    1994 시리즈가 얼마나 더 나올지, 어떤 모습일지 너무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잘 읽었어요!

  • 1 1.30 16:06
    @Pushedash

    너무 감사합니다! 또 와주세요 ㅎㅎ

  • 2.19 14:36

    리뷰 잘 읽고 있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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